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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 호경윤이 만난 사람 : 컴퍼니

2011.02.18 18:32

 

 

한국 사람 아무 송(본명: 송희원)과 핀란드 사람 요한 올린(Johan Olin)으로 구성된 컴퍼니(Company). 현재 헬싱키에서 거주하며 아무의 모국인 한국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를 누비며 활동하는 디자이너 듀오다. 2008년 쌈지와의 협업, 인사미술공간 1층 라운지를 〈마차방〉으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 등으로 국내에 곧잘 들어 왔던 그들을 근 몇년 간 얼굴 볼 기회가 통 없었다. (중간에 이 커플의 전통혼례가 서울 모처에서 열렸지만 가 보지는 못했다.)  최근 들은 반가운 소식은 올해에 이태원 스페이스 꿀에서 전시를 연다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컴퍼니의 웹사이트에서 그들의 근황(At the moment: 메인페이지 왼쪽 상단)을 구경하는 걸로 만족할 수밖에.

 

 

 

웹사이트  http://www.com-pa-ny.com/

 

 

 

 

컴퍼니, '함께, 따로' 즐겁게 사는 법

한국 사람 아무 송(본명: 송희원, 이하 아무)과 핀란드 사람 요한 올린(Johan Olin, 이하 유소[Juuso])으로 구성된 컴퍼니(Company). 현재 헬싱키에서 거주하며 아무의 모국인 한국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를 누비며 활동하는 ‘잘 나가는’ 디자이너 듀오다. 잠깐, ‘잘 나간다’는 말에 어폐가 있겠다. 이들을 두고 잘 나간다기보다는 ‘잘 산다’는 표현이 정확할 듯하다.
컴퍼니는 잘 산다. 그런데 이 말 역시 혼동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잘 산다’는 의미조차 시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생활하는 것이었고, 현재(특히 한국에서)에는 질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웰빙’하는 생활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가까운 미래에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스스로 즐기면서 즐겁게 사는 것 아닐까? 실제로 아무`는 《바자》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에는 돈이 좀 너무 앞서 있는데 미래에는 그게 지겨워져서 돈은 두세 번째가 될 것 같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
국수 신발, 버섯 스툴, 펭귄복, 반찬백…. 인테리어 가구 패션 출판 등 일상적인 모든 것을 디자인하는 컴퍼니의 작업을 보고 있노라면 즐거워진다.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창조하는 컴퍼니는 자신들의 머릿속에서 뭉실대는 즐거운 아이디어를 프로토 타입으로 만들고, 실제로 제품 라인까지 완성시키는 기쁨 속에 아주 즐겁게, 잘 사는 것 같아 보인다.
“휘바! 휘바!”를 외치는 자일리톨의 나라, 산타 클로스의 고향 핀란드에서 왔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유희적이고 동화적으로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핀란드를 배경으로 한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등장 인물 사치에와 미도리의 대화처럼, 사실 모든 사람은 슬프고 외롭다. “수줍기도 하지만 항상 친절하고 언제나 여유롭게만 보이던 것이 제가 알고 있던 핀란드인의 이미지였어요. 하지만 슬픈 사람은 어느 나라에서도 존재하는군요(미도리).” “물론이죠. 세상 어딜 가도 슬픈 것은 슬픈 것이고,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법이죠(사치에).”
컴퍼니가 〈심심할 때 입는 옷〉을 제작한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다. 이 작업은 원래 아무가 핀란드로 떠나기 전 서울에서 대학교 4학년 때 처음 자취를 하면서 구상했던 것이다. 당시 주변 친구들에게 심심하면 뭐하냐고 물어보던 중, 어떤 이의 ‘껌을 씹는다’는 대답에서 ‘찍찍이(벨크로)’라는 소재를 떠올렸다. 재킷 겉면에 찍찍이를 붙힌 이 작업은 2006년 핀란드 현대디자인 미국 순회전에서 유소와 함께 발전시켜 다시 제작됐다. 〈심심할 때 입는 옷〉을 입은 사람들끼리 거리에서 마주친다면, 서로 엉기어 붙게 될 것이고 설령 모르는 사이일지라도 한 바탕 웃게 될 것이다.
2050년에 있을 법한 가상 호텔로 제안된 〈Hotel? Kotilo〉는 ‘저가형 1인용’ 호텔이다. 넓은 상판에 동그란 원으로 뚫린 구멍 아래에는 혼자서만 잘 수 있는 각각의 침실이 있고, 위에서 내려오는 캐노피가 개인의 독립적인 공간으로 완전히 차단시켜 준다. 또한 깨어나서는 상판 위에 몸을 반쯤 걸치고 올라서서 옆 객실의 투숙객들과 어울릴 수 있다.
그렇다. 옆에서 말하는 소리조차 소음으로 들릴 정도로 혼자가 편할 때도 있지만,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도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자란 아무와 유소가 만나 함께 작업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학생 시절 하비타레가구공모전에 버스정류장 크기의 조명 〈Light Platform〉을 함께 준비하면서 유소는 “그때 아무가 사물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컴퍼니라는 이름은 자칫 ‘회사’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들은 ‘동료’라는 뜻을 더욱 강조한다. 10년이 넘게 함께 활동하면서 어려운 점을 물었더니 아무가 대답했다. “저와 유소는 일하는 스타일 면에서 완전 반대에요. 유소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실행해 옮기지만, 저는 스스로 계속 제 아이디어를 의심하면서 천천히 진행시키는 타입이죠. 성격도 반대죠. 유소는 ‘쿨(Cool)’하고, 저는 ‘핫(Hot)’해요. 다시 말해 유소가 물이라면, 전 불이에요. 그런데 물과 불이 만나면 커피를 만들 수 있잖아요.(웃음)”
이들의 협업은 ‘정반합의 변증법’처럼 이루어진다. 이러한 방식은 노동을 분업화시켜 생산력을 높이는 포디즘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즐겁고 행복한 미래’라는 공통의 비전 아래 서로 비평을 하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 주면서 결과적으로 더 좋은 작업을 만들어낸다. 최근 들어 컴퍼니는 협업에서 발생하는 ‘스파크’를 보다 적극적으로 즐기게 됐다.

Top Secret of Company
2007년 핀란드 키아즈마 현대미술관에서 진행했던 〈Top Secret of Finland〉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공장 사람들과 협업의 스케일을 넓혔다. 컴퍼니는 핀란드에서 사라져가는 공장 17개를 어렵게 찾았다. 각각의 공장에서 그들마다 고유한 제작 스타일을 존중하는 디자인을 새롭게 제안했다.
또한 작년부터는 (주)쌈지와 손을 잡고, 〈Made in Korea〉 컬렉션을 시작했다. 고무신을 모티프로 삼은 〈고무신 스니커즈〉, 7첩 반상을 모티프로 삼은 〈반찬백〉과 〈비빔백〉 등이 속속 출시됐다. 며칠 전 직접 부산 공장에 가서 샘플을 검토하고 온 이들에게 공장 사람들과 일하기에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저희가 운이 좋아서인지 견학을 가거나 같이 일하게 된 공장 모두 20~30년 넘게 한 분야에서 일해오신 자부심 강한 분들로 이루어진 곳이었습니다. 오히려 공장에서 아이디어에 그쳤던 것을 실제 물건으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새로운 재료나 제작 방식을 찾아 솔루션을 내주세요.”
이제 컴퍼니는 핀란드와 한국을 넘어 〈Made in Germany〉 〈Made in Vietnam〉 〈Made in Belgium〉 컬렉션을 새롭게 진행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현지의 생활 문화에서 컨셉트를 얻고, 현지의 제작 방식에 따라 제작한다. “저희의 최종 목표는 〈Made in World〉에요. 가령, 겨울옷은 〈Made in 북극〉, 여름옷은 〈Made in 더운 나라〉로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각 나라마다 좋은 점을 살려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즐기는 거죠.” 결국 컴퍼니가 꿈꾸는 것은 앞서 말했던 ‘동료’보다 ‘회사’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큰 다국적 기업으로 말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디자인을 두고 버내큘러(Vernacular)하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컴퍼니의 〈Made in … 〉 시리즈는 얼핏 풍토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관습적으로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2008년 인사미술공간 1층 라운지를 〈마차방〉으로 탈바꿈시킨 예를 살펴보면, 컴퍼니는 ‘아줌마, 아저씨’와 도시 개발로 점점 없어지는 길거리 포장마차를 모티프로 삼았다. 한국 사람들이 후지다,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핀란드 사람 유소의 눈에는 너무 멋지고 강렬해 보였다.
컴퍼니의 작업을 두고 디자인이냐, 예술이냐 묻는 사람들이 있다. 또 작품을 보는 것이 관객이고, 제품을 사는 것이 고객이라는 정의로 디자인과 예술 사이에 금을 긋는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가게에서 아이쇼핑만 한다면 그들은 다시 관객이 되고, 갤러리에서 작품을 산다면 고객이 된다. “큰 의미에서 볼 때 디자인은 모든 개개인이 자신의 삶을 계획하는 행위”라는 아무의 말처럼, 디자인이든 예술이든 삶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창조적인 그 무엇에 대해 구분 짓는 것은(장르의 구분이 없어졌다고 말하는 것조차도) 이젠 더 이상 생산적인 이야기가 아닌 듯하다.

-art in culture 2009년 3월호 아티스트 인사이드

 

 

 

 

 

Posted by 호경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