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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문화 속의 현대미술 #3 (2)

2012.05.16 15:23
하룬 파로키의 <시리어스 게임(Serious Games)>
- 미디어아트의 난점과 방향 전환에 관하여 (2)


 
글|손부경·예술학
 
하룬 파로키 <Deep Play> 12개 채널 설치, 컬러, 사운드  2시간 15분 2006 Photo: Harun Farocki "Deep Play" at DHC ART Montreal Courtesy HARUN FAROCKI FILMPRODUKTION © Richard-Max Tremblay

하룬 파로키 <Deep Play> 12개 채널 설치, 컬러, 사운드 2시간 15분 2006 Photo: Harun Farocki "Deep Play" at DHC ART Montreal Courtesy HARUN FAROCKI FILMPRODUKTION © Richard-Max Tremblay

미디어아트의 ‘탈숙련화(deskilling)'와 방향전환

<시리어스 게임>은 첨단기술을 ‘체험’하는 차원에서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가상성과 현실성의 관계를 다룬다. 관람자는 ‘시리어스 게임’을 통해 일시적으로나마 프로그램을 체험하는 병사의 시점에서 실제 현실과 현실의 시뮬레이션을 비교해볼 수 있다. 파로키 작품의 이러한 특징은 그동안 첨단기술을 선취해 온 미디어아티스트들의 연장선상에서 파악될 수 있다. 말하자면 ‘시리어스 게임’이 작품의 형식 자체로 기능한 것이다. 만약 ‘시리어스 게임’을 파로키가 직접 제작했다면 그는 제프리 쇼와 마찬가지로 산업용 기술을 미학적 맥락에서 미리 제시해 보이는 작가로 분류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파로키는 이러한 작업을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쇼의 작업과 유사한 효과를 전달할 수 있었다. 파로키는 쇼와 달리 이미 존재하는 기술적 산물을 활용하면서도 기존 미디어아트의 목적을 꽤 효율적으로 달성한 것이다. 이는 일종의 ‘발견된 오브제’의 활용, 즉, 일상적인 사물에 대한 재맥락화(Recontextualization)를 통해 그것의 의미에 대해 고찰하게끔 하는 현대미술의 방식과도 관련이 있다.

 이 과정에서 두 번째 의미작용의 축이 드러난다. 첨단기술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그의 작업 방식이 지닌 특징은 기술적 요소를 작품 속에 구현하기 보다는 그러한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는 대상을 찾아내고 분석한다는 점이다. 또한 그는 이 과정에서 첨단기술에 대한 체험을 매개하는 동시에 그 체험의 조건을 불투명하게 노출시킨다. 시리어스의 게임의 세 번째 버전에 해당하는 <몰입(Immersion)>(2009)은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몰입>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를 겪고 있는 군인을 몰입형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치료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Head Mounted Display, 머리 부분에 장착해, 유저의 눈앞에 직접 영상을 제시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 장치)를 착용한 군인은 상담사와의 대화, 그리고 가상의 사고 현장에 대한 체험을 통해 당시의 충격적인 기억을 보다 선명하게 떠올리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형태의 가상현실 프로그램이 게임과 혁신적인 미디어아트 사이에 작용함으로써 각각의 유사성과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끔 한다는 것이다. 영상 속 상황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람자들은 기록된 영상을 작품으로 봐야 할지, 기록한 행위를 작품으로 봐야할 지에 대한 판단을 일시적으로 유보할 수밖에 없다. 둘 다 예술적 기획의 속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신 비디오 게임, 시리어스 게임, 인터랙티브 아트가 있다고 했을 때, ‘이 대상들을 미학적 기준에 따라 분명히 구분할 수 있는가’란 질문이 남게 된다.  

<시리어스 게임> 중 3부 <몰입> 2009년 광주비엔날레 전시 전경 (촬영:손부경)


결론적으로 <몰입>은 특정한 미적 체험을 매개할 뿐만 아니라 미디어아트라는 범주 자체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실제로 파로키의 작업은 비교적 단순한 기술만으로 가상현실과 같은 첨단기술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미디어아트의 ‘탈숙련화(Deskilling)’ 경향을 시사한다. 제프리 쇼가 기술적으로 가장 숙련된 형태의 작품을 보여 주었다면, 파로키는 그러한 시도가 어려워진 시기에 미디어아트의 탈숙련화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알 수 있듯이, 기술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혹은 미디어아트를 실현하기 위해서 반드시 ‘첨단’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과정은 현 시점의 기술적 수준과 현대미술의 상관관계를 기반으로 적절한 방식의 매개 수단을 도입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술의 발전 속도와 미디어아트에 대한 형식적인 규정에서 자유로워질 때, 미디어아트는 새로운 가능성을 마주하게 된다. 이제 디지털 문화의 현 단계를 고려하여 미디어아트의 방향 전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때다. (끝)

Posted by Exhib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