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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되거라”

2020.11.03 15:56

동시대 무빙이미지의 ‘서사’를 키워드로 김효재의 작업을 분석한다. / 권 시 우



김효재의 <태교(胎敎: 도래할 Z에게)> 퍼포먼스.

디지털 리터러시에 조응하는 새로운 서사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동시대 무빙이미지가 맞닥뜨린 과제다. 무빙이미지에서 서사라는 형식은 만연하고, 그것을 구사하는 작가들은 대체로 사용자 경험을 공유한다. 이때 사용자란 보편화된 스마트 미디어 환경에서 가상과 현실을 (재)매개하는 주체의 모델을 의미한다. 즉 현실이 일종의 데이터 소비재로 환원되어 가상/현실이라는 폐쇄 회로를 순환할 뿐인 현재, 사용자-작가는 각자 저하된 현실감을 예증한다. 그러나 결국 현실의 오작동을 체감하는 가짜-화자만 일관되게 등장하며, 그는 오로지 ‘말’에 의지해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묘사하는 데 그친다. 문제적인 내용을 다루는 서사의 방법론은 생각보다 새롭지 않다.
물론 말을 포함한 언어는 사용자의 관점을 반영해 충분히 다변화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고유한 관점을 체화하지 않고, 그저 (스크립트의) 두서없는 말을 늘어놓는 화자는 사용자를 흉내 내는 가짜일 수밖에 없다. “기믹은 죽었다.” 개인전 <디폴트(Default)>(os 2019) 이후 김효재가 반복해서 언급하는 해당 문장은 은연중에 가짜-화자를 겨냥한다. 서브컬처에서 연원한 ‘기믹(gimmick)’은 특정한 캐릭터에게 부여된 인위적인 정체성으로, 그와 유사한 가짜-화자는 사용자가 ‘현실의 오작동’으로 경험할 법한 의사-분열증을 연기하면서, 사용자에 대한 클리셰를 조장한다. 중요한 것은 인칭의 문제다. 그러니 사용자는 ‘기믹’으로 섣불리 대상화할 수 없는, 우리 대다수에 내재한 본연의 자아다. 김효재가 제안하는 ‘디폴트’라는 가설은, 무엇보다 본인이 사용자라는 사실을 자각한 채, 그에 (과)몰입하는 ‘기믹’ 이후의 새로운 주체, 이를테면 ‘Z’의 존재를 암시한다.



<태교(胎敎: 도래할 Z에게)> 영상 스틸.

<Z>(2019)가 천착하는 것은 ‘새로운 서사’가 아니다. ‘Z’는 그저 오디오 비주얼의 현란한 전개에 맞춰 춤을 추면서, 스스로를 콘텐츠로 피력한다. 결국 ‘디폴트’에 기반한 사용자의 자기표현 수단은 자연스레 오디오 비주얼의 시/청각적인 장치로 대체된다. <Follow, Flow, Feed 내가 사는 피드>(아르코미술관 2020)에서 선보인 김효재의 퍼포먼스 <태교(胎敎: 도래할 Z에게)>(2020)도 오디오 비주얼 형식을 준수한다. 본 작업은 제목이 암시하듯, 아직 도래하지 않은 ‘Z’를 축원하기 위해, 테크노 기반의 믹스 셋과 그에 조응하는 이미지의 연쇄를 동시 상연한다. 관객은 그로 인해 활성화된 감각의 채널을 경유해 축원의 현장에 합류할 뿐, 굳이 태교의 서사를 독해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메타포로 환원된다. 이를테면 본 작업은 ‘Z’로 대변되는 특정한 사용자 모델을 과시하는 콘텐츠인 한편,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중계했다는 점에서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디스플레이 전략이기도 하고, 도나 해러웨이를 인용해 ‘Z’를 혼종의 존재 “괴물”이라 호명하는 등의 다양한 맥락을 포괄한다.
그중 어떤 것도 특정 내러티브로 심화되지 않지만, 바로 그 때문에 <태교>는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변주된다. 실제로 작가는 프로젝트 <Ghost Coming 2020 {X-ROOM}>(일민미술관 2020)에서 이를 총 네 개의 막으로 재편, 중세풍의 아치형 구조물, Z의 얼굴 석상과 같은 도상을 추가해 종교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처럼 작업 차원에서 여러 메타포를 의도할수록, 태교의 함의는 풍부해진다. 하지만 여전히 태교의 콘텍스트를 명확하게 파악할 여지는 묘연하다. 관객은 축원의 현장을 오로지 직관에 의지해 경험할 뿐, 작업에서 각축하는 다채로운 감각을 해석의 프레임으로 수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서사’를 무마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사용자가 자신의 독자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과정에서 서사라는 형식 자체를 유보한 결과에 가깝다. 달리 말해 도입부에서 중단된 서사는 시/청각적으로 구현된 오프닝으로 재귀하며 관객의 감각에 호소하고 있다.

 

 

Posted by Art In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