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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의 미술, 그 유토피아

2020.11.03 14:47

한국 1세대 미디어아티스트 양아치의 개인전 <갤럭시 익스프레스(Galaxy Express)>(10. 15~12. 27 바라캇컨템포러리)가 열렸다. 신작 20여 점으로 동시대 네트워크 환경과 기술 문화에 질문을 던졌다. 기술이 자본과 권력의 편에서 활용되는 현재를 비판하고, 모든 데이터가 모든 이에게 개방된 유토피아를 상상한다. / 조현대 기자



<사물 자체의 풍요로운/기분 나쁜 포텐셜> 황동 주물, 자석, 광물 각 12×15×17cm 2020(앞), <10개의 눈으로> 녹인 슈퍼글로시 프린트 60×200cm 2020(뒤)

지난 1월 소위 ‘데이터 3법’으로 불리는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등의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4차 산업혁명에 발맞춰 개인과 기업이 연구 및 상업 목적으로 더 많은 정보에 손쉽게 접근하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핵심 이슈는 개인 신상의 일부를 모호하게 표시해 공유하는 ‘가명 정보’와 관련된다. 새로운 데이터 3법에 따르면 신용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가명 정보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보로 이윤을 취하는 친기업적인 제도가 마련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나 기관이 개인을 통제, 억압, 감시하는 도구로 악용할 여지도 짙다.
한국 1세대 미디어아티스트 양아치는 개인전 <갤럭시 익스프레스>를 열고 이를 ‘전미래(le futur antérieur)’적인 상황으로 해석했다. 전미래는 우리가 도착할 미래의 시간 직전에 발생한 사건이나 상태를 의미한다. 프랑스어에만 있는 특이한 시제다. “급속히 발전하는 과학 기술은 미래가 오기도 전에 새로운 사물과 사건을 우리 세계와 연결하고 있다. ‘미리 도착해버린 미래’를 암시하는 신작 20여 점을 전시장 곳곳에 흩뿌려 놓았다. 난 이들을 ‘사물(thing)’이라 부르기로 했다. 새로운 눈을 가진 사물들이 이곳에서 서로 연결된다. 관객도 일종의 두 눈 달린 사물이다. 결국 전시는 각 사물이 이룬 하나의 은하계가 된다.”



<갤럭시 익스프레스>싱글채널 비디오 가변크기 10분 56초 2020 

양아치는 ‘기술 문화가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는가?’라는 일관된 질문으로 주제 의식을 구축해왔다. 초기작 <양아치 조합>(2002)은 인터넷 쇼핑몰 사이트를 빙자한 가짜 플랫폼을 만들어 온라인에서 거래되는 욕망을 폭로한 작업. 업로드된 상품은 한국 사회의 단면을 비추고 있었다. <전자정부>(2003)에서는 전자 주민 등록증, CCTV, 인터넷 실명제 등 당시 보편화되기 시작했던 감시 시스템을 차용했다. ‘전자 판옵티콘’ 시대의 도래를 예언하는 웹 미디어 기반 작업이었다. 이처럼 작가는 최신 기술로 화려한 미디어아트를 제작하기보다, 그것이 가진 잠재력과 가능성, 그 이면의 맹점과 위험성을 파고들어 들추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2000년대 중후반 웹은 ‘가상 공간’으로서의 잠재력을 상실한다. 현실 세계의 시스템이 디지털화된 장에 불과해졌기 때문이다. 양아치가 웹 작업을 손에서 놓은 이유다. 대신 2008년경 북한과 남한 사이 어디쯤에 위치해 있다는 가상의 영토 ‘미들 코리아’를 설계했다. 여기에 미들코리아 국민이 기존의 남북한 국가, 정부, 경제 시스템을 교란하고 파괴한다는 스토리를 입혀 작업으로 삼았다. 이후 학고재갤러리 개인전 <뼈와 살이 타는 밤>(2014)과 아뜰리에에르메스 개인전 <When Two Galaxies Merge>(2017)를 거치며 그의 작업은 크게 변화한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심신의 불안은 ‘신체’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청각, 구체적으로는 음파의 진동이 고막을 때릴때의 촉각을 시각화하고자 했다. 오밤중 산에서 만난 무당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전자와 전기만이 미디어가 아니더라. 정신적 차원에서 매개되는 세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은혜 성모 마리아, 1,000 개의 눈, 사물> 폴리코트에 채색, 광물 24×51×17cm 2020

이번 전시에서 양아치는 네트워크와 감시 체계로 관심을 되돌린 듯하다. 지난 20년간 우리를 둘러싼 네트워크 환경과 감시 시스템이 유례없이 공고해졌기 때문일까. 출품작 중 금속 재료의 ‘사물’은 모두 황동으로 제작했다. 황동은 산업화 시대부터 줄곧 쓰인 공업 자원이자, 특히 광케이블의 핵심 소재다. 흔히 디지털 데이터를 가상 혹은 무형의 질료라 여기지만, 실은 바다 깊숙이 묻힌 ‘물질’을 타고 흘러 세계를 연결한다. 작가는 이 물질을 이용해 전시장 외부와의 접속을 시도한다. 라디오 송출 장치인 <클라우드 9>(2020)은 우주의 온갖 잡음을 편집해 들려준다. 작품명은 단테의 『신곡』 가운데 천국으로 향하는 마지막 계단에서 유래한 ‘행복의 절정’을 의미한다.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이 가져다줄 ‘모든 데이터가 모든 이에게 개방된, 모든 것이 연결될 유토피아’를 꿈꾼다.
감시 체계에 대한 양아치의 문제의식은 인간의 시각적 인지 방식을 오래 연구해온 결과다. 첨단 기술이 ‘이기적’으로 활용되지 않는다면, ‘이타적’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의견. “인간은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를 재현하기 위해 원근법과 광학 렌즈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다른 눈, 정확히는 비광학적 시각 체계가 주어진다면? 심지어 2개 이상의 수많은 눈으로 세계를 바라본다면? 그래서 ‘단일한 시각 주체’라는 서구식 근대성을 완전히 폐기할 수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인간 사회가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영상작품 <갤럭시 익스프레스>(2020)는 양아치의 가설을 집약한다. 영상은 데이터의 눈으로 본 세계다. 정확히는 라이다(Lider) 센서가 전송한 도로와 건물, 지형지물의 좌푯값 데이터를 3D 매핑한 것이다. 레이저로 목표물과의 거리를 감지하는 라이다는 자율 주행 차의 핵심 기술. 작가는 현대자동차 기술 공유 플랫폼 ‘제로원’에서 활동하며 처음 접했다. “여태껏 기업은 기술을 부의 상속 수단으로 이용해왔다. 어쩌면 기술자와 예술가도 테크놀로지를 이기적으로 활용하려는 자본과 권력의 부역자가 아닐까. 더 늦기 전에 기술이 만들어낸 데이터, 생산자 및 소유자, 사용자 간의 문제를 조율해야 한다. 내 작업도 예술가로서 어떻게든 대안을 제시해보려는 것이다.”



양아치 개인전 <갤러리 익스프레스>전경 2020 바라캇컨템포러리
전시장 도처에는 여러 개의 동공을 가진 아이의 두상이 놓여 있다. 이에 결합된 기계적 신체는 미래 세대가 선취할 다중적, 확장적 시각을 은유한다. 작가는 전미래적 시점으로 현재와 미래의 확장된 눈을 제시하는 한편, 과거의 다중적 눈을 상기하며 이번 전시의 출구로 안내한다. 천 개의 눈과 손으로 중생을 돌봤던 천수관음, 네 개의 머리를 지닌 괴물 거룹(Cherub), 백 개의 눈으로 전부 볼 수 있었던 거인 아르고스(Argos) 등 동서고금의 인류는 종교와 신화에서 이미 다수의 눈을 가진 존재를 상상하고 있었다. 작가는 네모나고 투명해서 빛을 굴절, 분해하는 광물 ‘방해석’을 불상의 손과 성모상에 붙여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를 잇는다. 고대 바이킹은 이 물질로 태양의 위치를 가늠해 바다를 건널 수 있었다. 방해석이야말로 인간을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이동시킨 최초의 미디엄일지 모른다. 앞으로는 5G, AI, 사물인터넷 등 최첨단 기술이 우리를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과도하게 연결, 공유되는 세계에서 인간이 노동 활동으로부터 해방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러면 인간은 태초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우리는 손 모아 기도하며 신과 다시 소통할 수 있다. 기도하는 손은 과거이자 미래다.

양아치 / 1970년 출생. 본명 조성진. 아뜰리에에르메스(2017), 학고재갤러리(2014), 아트센터나비(2009), 인사미술공간(2008, 2003), 일주아트하우스(2002) 등에서 개인전 개최. <더블 비전>(아르코미술관 2020), <여의도 모더니티> (SeMA벙커 2017), <플랫폼 인 기무사> (구 국군기무사령부 2009) 등의 단체전 참가. 제로원데이(2019),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2018), 가파도레지던시(2018),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2009) 등의 행사 및 프로그램 참여. 에르메스재단미술상(2010) 수상.
Posted by 조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