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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먹히는’ 원초적 감각

2020.09.08 10:14

매체의 물질성과 운동성을 탐구하는 이미래. 그가 개인전 <캐리어즈 (Carriers)>(7. 23~9. 13 아트선재센터)를 열어 총 10점의 신작을 공개했다. 페티시즘 ‘보어(Vore)’가 된 대형 키네틱 조각은 게걸스러운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끈적이는 점액질을 내뿜으며 금기된 상상을 자극하는 작품은 세상을 마주하는 감각체다. / 김예림 기자



 <캐리어즈> 레진, 글리세린, 모터, 호스펌프의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0

어둑하게 그늘진 길. 거칠고 단단한 판이 한쪽으로 길게 줄지어 천장까지 담을 이뤘다. 기계가 위잉 돌아가고 액체가 왈칵 떨어지는 소음이 주기적으로 넘어온다. 소리의 진원지를 따라 내부로 걸어 들어가니 어딘지 기괴한 풍경이다. 핏빛 가죽이 다 드러나 반들거리는 껍데기와 그곳에서 떨어져 나간 듯 축축하고 진득하게 엉켜 있는 내장 파편이 사방팔방 놓였다. 천장에 걸린 조각은 심장 같은 펌프로 끈적한 물질을 빨아들이고 운반하다 금세 좁은 틈새로 뿜어낸다. 둔탁하고 단단한 벤치에 잠시 앉았다가 바깥 풍경이 보이는 창문의 빛을 따라간다. 잠든 여성 이미지가 반복되는 비디오, 허공에 길게 늘어진 찐득한 천, 부자를 먹어치우라는 드로잉, 우뚝 솟은 분홍빛 기둥 사이를 천천히 움직여본다. 하얀 벽면의 작은 구멍을 발견하면, 이제 밖으로 빠져나올 시간이다.



<누워있는 모양> 네 개의 조각 군집의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0

서울과 암스테르담을 오가며 조각과 설치작업에 몰두해온 이미래가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인전 <캐리어즈>를 열고 원초적 공간으로 관객을 초대했다. 작가는 재료를 만지고 구조를 쌓으며 작품의 정동과 에너지를 탐구해왔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작품과 자신의 관계를 구체화하기 위해 ‘캐리어즈’를 상상한다. 캐리어즈는 운반(carry)하는 존재(-iers)를 일컫는다. carry는 물건을 ‘나르다’, 액체나 전자가 ‘흐르다’, 질병을 ‘옮기다’, 아이를 ‘임신하다’, 아이디어를 ‘시도하다’를 포괄하므로, 캐리어즈는 교통수단부터 혈관, 용기, 임신한 여자, 즉 ‘무언가를 수용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이미래의 캐리어즈는 ‘보어(Vore)’를 소화한다. ‘보레어필리아(Vorarephilia)’의 줄임말인 보어는 생물을 집어삼키거나 반대로 잡아먹히는 행위에 관한 페티시즘이다. 공포를 동반하(지 않)는 쾌락을 느끼며 대상과 거리를 극도로 좁힌 나머지, 그것을 완전히 소유하려는 욕망은 <눈은 구멍으로, 밤으로 들어가 먹히듯 몸이 되었습니다> (아트스페이스풀 2018)부터 작품에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작가는 보어의 몇 가지 유형 가운데 극한의 상황을 가정하는 ‘태내회귀(胎內回歸, Unbirth Vore)’를 떠올린다. 작가는 “여성의 생식기로 잡아먹히는 상황에서 얻는 만족감은 결국 엄마의 자궁으로 다시 들어가 태어나지 않으려는 상태의 안락함이다. 보어는 궁극적으로 추상적이고 원초적인 인간 조건을 환기한다. 따라서 캐리어즈는 인간 신체를 설명하는 동시에 작업을 통칭하는 단어”라고 설명한다.



<누워있는 모양> 네 개의 조각 군집의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0

캐리어즈는 전시 전반에서 구현된다. 공간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높고 긴 벽은 건물의 콘크리트 내외 벽을 만드는 데 사용된 태고합판으로 제작했다. 거푸집처럼 쓰였던 과거의 시간을 표면에 드러내며 보어 안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선사하는 또 다른 캐리어즈다. 공간에 놓인 작품은 상반된 상태로 교차된다. 격렬한 에너지로 액체를 뿜어내는 뒤틀린 몸(<캐리어즈>)과 미약한 에너지로 누워 숨을 죽이는 몸(<누워있는 모양>, <잠자는 엄마>)이 삶과 죽음을 순환하는 신체의 양가성을 드러낸다. 드로잉 <부자를 먹어치워라>는 작가가 스위스 로잔에서 발견한 그래피티에 착안했다. “선망과 함께 혐오의 대상인 부를 먹어치우면서 대상을 흡수하거나 퇴치할 수 있다는 측면이 보어와 연결돼 흥미로웠다. 연필로 직접 드로잉을 하려 했는데 주로 입체작업을 하다 보니 그 과정이 어색했다. 지난 작업에 좌대로 사용했던 철판을 뜯어 화이트로 작업했고, 연필 드로잉은 평소 드로잉 작업을 눈여겨봤던 작가이자 큐레이터 아이반 쳉에게 의뢰했다.”
보어는 탐식과 성욕이 중첩된 성도착증이다. 탐식과 성욕은 여전히 사회에서 터부시되는 욕구이며 보어는 완전한 금기다. 그러나 이미래의 캐리어즈는 신체 일부를 닮은 채 생명을 부여받아 금지된 욕망을 수행한다. 관객은 어딘지 모르게 불쾌하고 꺼림칙하게 느끼지만, 동시에 강렬하고 직관적인 감각을 쉽게 거부할 수 없다. 균열을 내서 세계를 망치거나(<망치는 자들>(2019)), 파괴를 일으키거나(<연루된 자들>(2019)), 혼란과 장애를 거듭하는(<거짓말을 하는 사람들>(2019/2020)) 부정적이고 비생산적인 행위가 종종 그렇듯이. “공업 도시인 리옹에서 처음 사보타주가 시작됐을 때 저항 혹은 동맹을 의미했듯,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는 일에 있어 이질적인 균열은 방해 요소가 아니라 예상되는 그림에서 탈주하도록 하는 필요 불가결한 구성 요소라 생각했다.”



<캐리어즈> 일부.

이미래는 전시를 준비하며 피부를 벗겨낸 샤먼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떤 부족은 샤먼이 외부의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온전히 매개할 수 있도록 그의 피부를 벗긴다. 외부와 맞닿는 피부를 투명하게 재단해 세상과 연결된 구멍을 무수하게 만드는 셈이다. 작가의 조각은 그 샤먼의 상태와 닮았다. 비대면 시대, 우리는 여전히 인간이므로, 신체적인 자극이 선명하게 진동하는 현장에서 감각체로서 몸을 다시금 살피게 된다. 앞으로 전기 전자 및 애니매트로닉스 테크닉을 더 공부할 수 있도록 엔지니어와 자주 협업하고 싶다는 작가. 9월부터 비엔나비엔날레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안니맨해튼갤러리에서 2인전, 네덜란드 덴보스에서 이벤트 <(im)possible bodies>, 상하이 안테나스페이스와 탱크상하이에서 각각 3인전과 그룹전이 예정돼, 도시 간을 바쁘게 이동하고, 사회를 기억하며, 또 다른 작업을 마음껏 시도할 계획이다.

이미래 / 1988년 출생. 서울대 조소과 졸업. 인사미술공간(2014), 온그라운드_ 지상소(2014), 살롱빛(2013)에서 개인전 개최. 리옹비엔날레(2019), <무빙/이미지>
(아르코미술관 2017), <A Snowflake>(국제갤러리 2017), <Read My Lips> (합정지구 2017),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2016),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2016), <굿–즈>(세종문화회관 2015), <팔이 긴 모터 조각과 자존을 생각한 공간> (공간사일삼 2015) 등의 단체전 참여. 현재 한국과 네덜란드를 오가며 활동.

Posted by 김예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