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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겐하임 레이시즘

2020.08.06 10:33

구겐하임미술관 최초의 흑인 큐레이터 셰이드리아 라부비에가 미술관의 백인 우월주의에 목소리를 냈다. / 임 근 준



장-미셸 바스키아 <마이클 스튜어트의 죽음> 1983

지난 6월 3일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트위터 계정이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에 연대를 표하는 ‘암전의 화요일(Blackout Tuesday)’에 동참하며 검은 화면을 포스팅했다. 하지만 칭찬을 받기는커녕, 비난이 쏟아졌다. 쿠바계 흑인 큐레이터 셰이드리아 라부비에(Chaedria LaBouvier, 1985~)가 다음의 멘션을 추가하며 대중에게 리트윗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썩 꺼져라. 나는 구겐하임 80년 역사에서 첫 흑인 큐레이터였던 셰이드리아 라부비에고, 당신들은, 낸시 스펙터(Nancy Spector)가 나를 배제한 채 전시 좌담회를 주최하도록 방관하면서, 내 존재를 부정했다. 이 쓰레기를 지워라.” 3만 7천 명이 넘게 리트윗하고 의견을 표했다. 6만 8천 명이 넘게 좋아요를 눌렀다. 대체 무슨 일이었을까?
라부비에는 2019년 6월 구겐하임미술관에서 개막한 <바스키아의 훼손: 못다 한 이야 (Basquiat’s Defacement: The Untold Story)>전의 초청 큐레이터였다. 해당 전시는 경찰의 인종 차별적 폭력에 희생된 흑인 그래피티 예술가  마이클 스튜어트(Michael Stewart, 1958~83)를 다뤘다. 1983년 9월 15일  새벽 무명이었던 마이클 스튜어트는 친구 조지 콘도—지금은 유명 화가 가 된—와 함께 키스 해링이 주최한 피라미드 클럽에서의 파티에 끼어 들어가려다 문전박대를 당했다. 조지 콘도의 회고에 따르면 그렇다. 기분이 상한 조지 콘도는 집으로 갔고, 마이클 스튜어트는 지하철에 올라탔다. 마이클 스튜어트는 새벽 2시 50분경 경찰에게 체포되는 과정에서 질식돼 중태에 빠졌고, 13일간 사경을 헤매다 죽었다.
바스키아는 마이클 스튜어트가 사망하자, 흑인 청년이 두 명의 백인 경찰에게 공격당하는 장면을, 바로 친구 키스 해링의 노호 작업실 벽에 그렸다. 재료는 마커와 아크릴이었다. 책임감을 느끼라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책임감을 그리 표했던 것일까? 화가는 그림 상단에 ‘외관 훼손?(Defacement?)’이라 적었는데, 당시 보수 언론이 그래피티는 예술이 아니고 ‘훼손’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던 까닭이다. 같은 흑인이고 그래피티 예술가였던 마이클 스튜어트의 죽음에 감정 이입했던 것만은 분명해 뵌다.
키스 해링은 나중에 그 그림을 벽에서 잘라냈고, 자신이 즐겨 묵던 파리의 리츠호텔 장식과 유사한 황금 장식 액자에 담았다. 해당 그림을 소중하게 여겼던 키스 해링은, 1990년 에이즈 합병증으로 죽는 날까지 그 그림을 침대 머리맡에 걸어뒀다. 죽기 전에 키스 해링은, 이 그림을 자신의 대녀 니나 클레멘테(화가 프란체스코 클레멘테의 딸)에게 물려줬는데, 당시 9살이었던 니나는 현재 스탠다드호텔의 스타 요리사가 됐다.
다층적 이야기와 메시지를 담고 있던 바스키아의 그림 <마이클 스튜어트의 죽음(The Death of Michael Stewart)>을 재조명한 큐레이터가 바로, 셰이드리아 라부비에다. 클레멘테 가족에게 그림을 빌린 그는, 2016~17년 모교 윌리엄스컬리지의 미술관에 이 작품을 걸고, 흑인의 삶을 다룬 바스키아와 경찰의 인종 차별에 희생된 마이클 스튜어트에 관한, 이중의 스토리텔링을 시작했다. 전시 프로그램의 제목은 <계속 읽어나가기: 바스키아와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Getting a Read On: Basquiat and Black Lives Matter)>였다.
라부비에를 초청한 사람은 구겐하임의 예술감독이자 학예실장인 낸시 스펙터였지만, 그의 구시대적 업무 방식이 문제가 됐다. 전시 기간 동안 라부비에는 인종 차별적 대우를 비판하고 항의했다. 그러자 미술관 측은 2019년 11월 14일, 최초로 정규 채용된 흑인 큐레이터 애슐리 제임스(Ashley James)가 12일부터 업무를 시작했다고 공표했다. 라부비에를 배제한 채 전시 관련 토론회를 진행하고 딱 열흘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토론회 단상에는 애슐리 제임스 등 여타 흑인 논자들이 앉아 있었다. 라부비에는 굴하지 않고 객석에서 항의 발언했다. 그는 “흑인 큐레이터의 목소리와 크레딧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를 가리기 위해 다른 흑인의 존재를 악용하는 것이야말로, 백인 우월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매서운 비판이었지만, 놀랍게도 목소리는 차분했다.
지난 6월 22일 구겐하임미술관의 학예실 일동의 명의로, “인종주의와 백인 우월주의와 여러 차별적 행위를 가능케 하는 불공적인 업무 환경”을 비판하는 편지가 미술관장과 예술감독 겸 학예실장과 운영단장에게 전달됐고, 리처드 암스트롱(Richard Armstrong) 관장은 바로 화상 회의로 22인의 큐레이터와 이야기를 나누고 책임 있는 조치를 약속했다. (두 번째 내부 비판 연판장엔 미술관 전 직원의 1/4에 해당하는 100인과 과거 구겐하임에서 일했던 71인이 서명했다.) 낸시 스펙터는 7월 1일부터 3개월 휴직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뉴욕타임즈』 등 주요 매체가 이 사건을 다루기 시작했다.
미술관은 변호사를 선임해 바스키아 전시 때 어떤 차별이 이뤄졌는지 독립 조사를 의뢰했다. 법적 증거와 근거가 마련되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많은 이가 기대하고 있다. 구겐하임미술관은 사과하고 낸시 스펙터를 징계-해고해야 한다. 
추신) 『뉴욕타임즈』의 보도에 따르면, (유대계 가문이 설립한)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현재 276인의 정규직원이 일하고 있는데, 26명이 흑인이고, 24명이 라티노고, 20명이 아시아인이다. 25명의 이사진 가운데, 23인이 백인. 즉, 여전히 핵심 권력은 백인 독차지다.


셰이드리아 라부비에 / 쿠바 출신 바스키아 전문 연구자. 구겐하임미술관 80년 역사 최초의 흑인 여성 큐레이터다. 

 


 

Posted by Art In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