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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릿한 자극, 애도의 시공

2020.07.22 10:24

오민수 개인전 <전기는 흐른다>는 20대 노동자의 죽음을 기계적 움직임과 사운드로 애도한다. / 권 태 현



<전기는 흐른다> 24분 34×12×10cm 2020

오민수의 이번 전시(6. 12~7. 2 인스턴트루프)는 어느 구체적인 사건과 연결된다. 2018년 여름, 대전의 CJ대한통운 물류 센터에서 근무하던 20대 일용직 노동자가 컨베이어 벨트 아래를 청소하다 감전사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작가는 그 죽음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전시장에서 죽음의 이미지나 비극적인 서사를 보거나 들을 수는 없다. 그곳에서 감각되는 것이라곤 똑같이 생긴 7개의 차가운 금속성의 기계 장치가 20여 분간 돌아가며 만들어내는 제각각의 소리와 움직임뿐이다.
어떤 사건을 재현할 때 언제나 윤리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에서 어려움이 발생한다. 필연적으로 하나의 주체가 재현의 대상을 대표하는 문제가 따르기 때문이다. 당연히 온전한 재현이란 불가능하고, 특히 비극적인 사건의 경우 그 의도가 아무리 선하다 해도 대상을 전용, 소비, 착취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렇다면 죽음은, 애도되어야 마땅한 죽음은 재현될 수 없는 신성한 영역에 머물러야 할까?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현전(re-present)’하는 문제가 이미지를 만드는 일의 근원에 있다.
이토록 복잡한 재현 가능성의 성좌 속에서 오민수의 작업은 작은 빛을 뿜으며 새로운 별자리를 그려낸다. 그는 애석한 죽음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캄캄한 어둠에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어쩌면 작가 자신도 물류 센터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근무했던 경험이 의미를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당사자성 같은 윤리적 알리바이가 아니라, 계급적 연대에서 비롯된다. 작가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담했던 근대 문학가 이북명의 소설 「질소비료공장」(1932)을 주요 참조점으로 삼는다. <전기는 흐른다> 또한 이북명의 다른 소설명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이 형식적으로 지난 시대의 리얼리즘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제자리 구르기> 컨베이어롤러, 모터, 작업용 사다리 150×150×50cm 2019

오민수가 구축한 애도의 공간은 무언가 재현하지도 않고, 불가능한 재현 앞에서 사건을 추상화하지도 않는다. 작가는 지난 시간, 그 장소의 구체성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다. 다만 구체적인 언어나 이미지가 아니라, 또 다른 감각들을 동원한다. 귀를 찌르는 바코드 소리 같이 포드주의적 분배를 연상시키는 현장의 사운드, 혹은 기묘한 위계가 느껴지는 노동자들의 어렴풋한 목소리, 그리고 회전하는 기계가 만들어내는 위협적인 자극이 그 좁은 공간을 채워 나간다.
작가는 그러한 감각의 전이를 오직 기계 장치로만 구축한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모터 기반의 기계들이 온갖 용도의 움직임으로 전환되듯, <전기는 흐른다>의 기계들은 회전하고 멈추고 소리를 내고 또 그 소리를 잘라내며 기계적 동력을 정동의 동력으로 번역해 나간다. 전기의 흐름으로 만들어진 기계적 동력은 매서운 소리와 모션으로 변환되고, 점점 더 많은 자극을 공간에 욱여넣으며 관객의 신체와 감각을 충동질한다. 그 터질 듯한 힘들은 마치 누전된 전기가 흐르듯 몸과 마음을 이리저리 휘젓는다. 더불어 정해진 러닝타임과 암막 커튼이 제한하는 관람 경험은 모종의 강제성으로 작동하며, 관객이 그 저릿한 자극을 계속 견디도록 한다.
커튼을 걷고 나오면 단단히 구축되어 있던 공간은 일순간 그 힘을 잃고 화창한 햇살이 내리쬐는 서울 한복판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픽션의 연결이 끊어지면 우리를 감싸던 감각적 정동은 사라지지만 무섭게 돌아가던 정동의 기계는 우리의 몸에 회로를 새겨넣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택배 상자를 받아드는 순간, 우리의 세계를 움직이는 노동과 착취 그리고 죽음을 감각하게 하는 정동의 회로가 다시 온몸을 휘감을지도.

Posted by Art In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