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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의 ‘껍질’, 레이어 미학

2020.07.06 11:40

홍성준의 4번째 개인전 <레이어스(Layers)>(6. 11~7. 2)가 학고재 디자인|프로젝트스페이스에서 열렸다. 지난 6년간 작가는 사람이 ‘보는 행위’와 ‘보이는 대상’으로서 작품의 관계를 고찰해왔다. 신작 주제는 ‘회화의 레이어’. 프레임, 캔버스, 천, 얇은 층의 물감 등 회화의 기본 단위에 집중하며 레이어를 연구하는 신작 회화 5점과 설치작품 1점을 공개했다. / 이현 기자



<스터디 레이어스 02> 캔버스에 아크릴릭 150x200cm 2020

연붉은 노을에 피어오르는 양떼구름, 제주 바다의 부서지는 윤슬과 주름진 파도, 소금기 끼얹는 검은 돌들의 숲. 기분을 쿡쿡 건드리며 마음속 아련한 추억에 재생 버튼을 누르는 정취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사진으로 남기고픈 유혹을 외면하기 힘들다. 손에 차마 다 담을 수 없는 현실 풍경은 이내 촬영과 저장의 대상으로, 일정한 용량 값을 지닌 IMG 데이터로 소유된다. 아이콘이 된 파일, 터치만으로 쉽게 불러오고 스크롤링으로 미끄러트리는 이미지, 상투어가 된 플랫, 카메라조차 필요 없는 검색, 수집, 편집의 제작 과정. 기억하려 애쓰기보다 순간 포착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몸짓은 자연뿐만 아니라 관광지, 행사장, 미술관이라도 별다르지 않다.
홍성준은 ‘보는 행위’를 본다. 작품의 감상 주체인 사람, 사람이 바라보는 대상으로서 작품. 둘의 관계를 한걸음 물러 관찰하며 미술을 둘러싼 환경에 집중한다. “작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사색을 다짐하며 산과 바다로 향했다. 여러 번 떠나도 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자 미술관에 방문했는데, 오히려 작품보다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작품을 관람하며 감격하거나 슬퍼하는 등 여러 감정, 표정, 태도를 취하는 이들이 과연 그 대상을 온전히 이해하는지 궁금해졌다.”
이후 작가는 전시장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관객의 모습을 꾸준히 사진으로 남겼다. 캔버스를 일종의 뷰파인더로 설정하고, 그 사각 틀에 미술관의 한 장면을 삽입해 카메라에 담아온 현실을 각색했다. 높다란 화이트큐브 벽에는 작가가 습관처럼 찍어둔 풍경 사진을 재현한 그림이 놓이고, 그가 현실에서 마주쳤던 사람들은 인물화로 소환되어 작품 속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 삼삼오오 모인다. 이때 우리는 ‘홍성준이 그린 그림을 보는 관객을 그린 그림을 보는’ 관객이 된다. 그림과 관객과 감상의 제스처, 영화 <인셉션>처럼 머리 아픈 이 삼각관계는 단순히 시각적 유희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미지의 겹’ 문제로 확장한다.



<스터디 6413> 아크릴릭 보드에 아크릴릭 30x60cm 2020

작가 자신도 “기존 작업들의 가장 정리된 버전”이라 소개하는 개인전 <레이어스>가 ‘회화’를 큰 주제로 접근한 흐름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그는 회화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에서도 특히 레이어(layer)를 눈여겨본다. 끝없는 현실이 한 장의 사진으로 가늘어지는 현상, 캔버스에 무대를 연출하고 등장인물을 섭외하고 서사를 주입하며 층위를 쌓아 나가지만 볼륨이 (거의) 생략되는 에어브러시 물성, 그럼에도 깊이가 있는 척 너스레 떠는 채색 효과를 고민한다. “이번 전시는 무엇보다 회화 자체에 집중하면서 레이어를 이런 식으로도 실험할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작품에서 레이어가 쌓인 부분이 중요하지, 그 안의 디테일한 형상은 내게 큰 의미가 없다. 나는 평소 습관처럼 찍은 사진을 외장하드에 수십 테라바이트 파일로 보관하는데, 작업 소스를 찾을 때면 그 자료를 하염없이 스크롤링한다. 하다가, ‘아 이때 기억 강렬했어’ 생각이 들면 그 이미지를 택한다. 신작에는 가장 최근 촬영한 하늘 사진을 얹었다. 한편으로는, 레이어에 자연 풍경을 올리면 뻥 뚫린 창이 그림의 착시를 좀 더 재밌게 일으킬 것 같았다.”



<레이어스 오브 2350 (2)>캔버스에 아크릴릭 30x30cm 2020

출품작 <스터디 레이어스 01>은 고동색, 분홍색, 회색, 주황색, 붉은색 레이어 위로 푸른색 화면이 겹쳤다. 레이어 하단을 감싸는 칙칙한 라인과 가운데 덧칠한 약간의 흰색 물감은 그림자와 하늘이라는 친숙한 상(象)으로 이끌며 표면에 깊이감의 환영을 조성한다. 연상 작용은 관객이 그림 안팎으로 순간 이동하는 포탈이 되며, 작가는 클리셰적인 트릭을 활용해 레이어의 평면성을 역설한다. 이 작품과 시선이 교환되는 자리에 설치한 <레이어스 오브 스터디 레이어스 01>은 <스터디 레이어스 01>의 탄생 비화를 친절히 설명해준다. 정방형 액자 내부에 <스터디 레이어스 01>과 동일한 배치로 쌓아 올린 색면 오브제 작품. 회화의 껍질처럼 모인 물감 조각은 작가의 레이어 미학을 반영한다. “<스터디 레이어스 01>의 에스키스 격이다. 관객이 두 작품을 대조해서 보길 바랐다. 천에 물감을 색별로 바르고 재단해 큰 캔버스 위에 무작위로 던진다. 그럴싸한 색 배합이 나오면 촬영하고, 조명을 바꿔서 또 촬영하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회화로 전환할 적합한 모델을 찾아 나선다. 조명을 비췄을 때 생기는 실제 그림자를 그림에 옮겼다.”
작가의 회화 연구는 프레임 변주로도 이어진다. 전시장 가장 안쪽에 걸린 <스터디 6413>은 부분 일식이 떠오르는 3개의 원형 캔버스를 중첩해 한 장의 구름 이미지를 그렸다. 아스라한 분홍빛이 새어 나오는 후면의 발광 효과는 작품에 신비감을 더하며 회화의 틀과 층에 질문을 던진다. “2019년 개인전 당시 망원경을 디스플레이에 사용했는데, 세상을 원으로 바라보는 망원경의 시야가 흥미로웠다. 그래서 이번 작품은 원형으로 제작했지만, 형태는 앞으로 계속 바뀔 수 있다. 세모, 별, 평행사변형도 모두 가능하다. 겹친 레이어가 가장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뒤편에는 형광 안료를 칠해 한낮의 하늘과 노을 진 풍경을 동시에 구현했다. 하나의 작품에 서로 다른 시간이 공존하는 것이다.”
사람을 향한 관심과 관찰로 작업을 시작한 작가. 그가 최근 주력하는 레이어 연구도 결국 보는 사람, 보이는 회화의 관계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전작의 세계를 관통한다. 앞으로 더욱 연마해 나갈 다음 작업들이 기대되는 이유다.


홍성준 / 1987년 서울 출생. 홍익대 회화과 학사 및 동대학원 석사 졸업. 라흰갤러리(2019), 63아트(2018), 에프앤아트스페이스(2014)에서 개인전 개최. 유아트스페이스(2019), 딜라이트스퀘어(2018), 서울미술관(2017), 미메시스아트뮤지엄(2015) 등에서 열린 단체전 참여. 2017~18년 크리스티 홍콩 선정 한국의 대표 동시대 작가 10인. 반스(VANS)와 협업해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에 벽화 제작.

Posted by 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