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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낙천적 감성

2020.05.12 10:28

버질 아블로가 큐레이팅한 <커밍 오브 에이지>(에스파스 루이비통 서울). 소년의 낙천적 감성을 담았다. / 조현대 기자



<커밍 오브 에이지>전 전경 2020 에스파스 루이비통

사회적 계급이 분명했던 시대의 의복은 각각 다른 소재와 양식, 목적을 지닌다. 상류층 의복의 경우 값비싼 옷감과 장식을 통해 부와 지위를 과시했다면, 하위 계층은 고된 노동을 버틸 수 있는 질기고 불편함이 없는 옷을 만들어 입는 게 전부였다. 산업화 시기 유럽의 자본가들은 노동자에게 유니폼을 입혀 생산 및 관리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도 했다. 이처럼 패션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해당 시대를 읽어낼 수 있는 사회문화적 지표로 작동한다.
19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기성복이 생산되었지만, 파리 중심의 하이패션(high fashion), 즉 오트쿠튀르(haute couture)의 명성은 여전했다. 당시 임금 노동자들은 이 부르주아의 패션을 모방해 멋을 부리는 한편, 그에 반하는 유행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기도 했다. 고가의 패션 브랜드들은 이처럼 다양해지는 소비층의 취향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하위문화의 디자인적 요소를 전유하거나, 실용성 위주의 의복을 장식적으로 치환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웬디 이월드 <검은 자아 하얀 자아> 시리즈

지난 2018년, 루이비통(Louis Vuitton)이 아프리카계 미국인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Virgil Abloh)를 남성복 컬렉션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발탁한 일은 꽤나 파격적인 행보였다. 그간 유럽을 기반으로 한 명품 브랜드 수장은 주로 유럽 출신의 백인 남성이 차지해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가 자신의 브랜드 ‘오프화이트(Off-White)’에서 구사하던 스트릿 패션의 문법을 루이비통 상품에 재기발랄하게 차용하면서, 이에 열광하는 마니아층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버질은 루이비통에서 처음 선보인 2019 S/S 컬렉션부터 꾸준히 ‘낙천적인 소년기’의 감성을 디자인에 접목해왔다. 이는 컬렉션을 직접 연출하는 쇼에 앞서, 광고 캠페인에 활용되는 사진 화보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그가 직접 큐레이팅한 사진전 <커밍 오브 에이지(COMING OF AGE)>(2. 22~4. 26 에스파스루이비통 서울) 또한 그가 추구하는 유소년기의 긍정적인 이미지로 가득하다.



닉 와플링턴 <무제> 시리즈

다양한 국적과 연령대의 작가 18명은 모두 ‘성인이 되어가는 중(coming of age)’인 소년의 모습을 포착했다.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레이몬드 보우다(Raimond Wouda)는 버질의 루이비통 첫 컬렉션 광고 캠페인 <School Teens>를 선보였다. 작품 속 색색의 티셔츠를 입은 10대 소년들은 저마다 개성 넘치는 표정과 몸짓을 하고 있는데, 또래집단에 대한 소속감과 자유로움을 향한 양가적인 욕망을 드러낸다. 또 다른 참여 작가인 샌디 킴(Sandy Kim)은 한국계 미국인 사진작가다. 자신 주변의 인물을 촬영한 스냅숏 필름 사진으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그는 미국 내 다양한 문화권 출신의 청년들이 보여주는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모습을 담았다.
버질이 이번 전시에서 큐레이팅을 도맡은 것처럼, 최근 패션 브랜드 디렉터의 역할은 의상 디자인에만 머물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컬렉션 콘셉트부터 매장 쇼윈도 디스플레이까지 적극 관여하거나, 협업을 진행할 아티스트를 직접 선정하기도 한다. 루이비통이 아블로를 디렉터로 섭외한 이유는 그의 디자인 감각뿐만이 아니라 건축학도 출신이라는 학력,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했던 이력, 심지어는 클럽 DJ로 활동하며 쌓았던 대중적 인지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는 어쩌면 고급과 대중적 취향이 뒤섞여 서로의 경계를 흐려버린 동시대예술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버질 아블로

 

 

Posted by 조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