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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샘展

2020.03.28 16:02

안과 밖에서 서는 우화(寓話)
김한샘展 1. 30~2. 25 / 3. 10~15 취미가
/ 문 정 현
 


김한샘 개인전 <드래곤즈 퐈이어> 전경 2020 취미가

초창기 패밀리비디오 게임으로부터 모티프를 얻고 주형틀을 제작한 듯 보이는 김한샘의 작업에는 몇 가지 흥미롭게 고찰해볼 수 있는 지점이 있다. 하나는 벽면에 걸린 사물들이 내용을 복사한 지지체로서 특수하게 강화되어 있다는 것이며, 또 다른 특징은 그것들이 두 가지의 개별적 화면으로 상충되지 않도록 모사해놓음으로써 하나의 면과 면이 균등하게 맺는 성립 관계를 지시한다는 점이다. 게임 스크린에서 가져온 이미지로부터 조각적 양식의 사물로 변모한 지지체가 서로의 오리지널한 소스를 참조한 형국임에도 외곽의 주형과 스크린 화면이 각각 독립적인 맥락에서 병렬하고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각 합판의 양식과 동일한 이야기의 포개짐에서 시선을 한 번 더 끌어당기는 16비트 픽셀의 고전게임 장면은 가령 용사와 싸우는 용의 용맹한 자세로 조형된 <녹색용을 무찌르는 용사>와 같이 내용과 지지체의 조응을 이룬다. 그림의 외부 틀이 내용을 좀 더 보강하는 주형으로 독해하는 재미를 선사하는 <황금성에서의 축복>과 같은 작업은 맨들맨들하게 윤이 나는 액정효과의 게임 화면을 본 자리에 양도하며 내용과 지지체의 구분이 무효화된다. 픽셀 그래픽을 표면으로 가져온 해당 사물들은 이를테면 액정을 품은 조각적 참조 방식으로 유기되거나 혹은 내용을 적확히 복사하고 재배열하여 지시하는 액자로서 동시에 성립하는 것이다.
 


김한샘 개인전 <드래곤즈 퐈이어> 전경 2020 취미가

이와 같은 측면은 오늘날 미술 작가들이 어느 장르로부터 중점적인 영감을 받고 작업적 얼개를 투사하는지 엿보게 한다. 루시 리파드의 오버레이 개념은 액정 모니터를 구실 삼은 프레임의 이중 투사라는 지점에서 흥미로운 참조 대목을 제공하는데, 더 이상 자연 풍경 위로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 한층 익숙해진 게임적 리얼리즘의 풍경 위에서 이질적인 거석처럼 사물들이 확장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른 사유 양식을 엿보게 하기 때문이다. 가령 고대의 이미지와 유물이 향수로서 현대 미술가들을 매료시켰다면 지금 그 자리에는 게임적인 리얼리즘의 이미지가 자리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지의 거동이 기존의 미술적 문법과는 다른 이러한 사물들은 또 하나의 회화적 지도 찾기 형식에 가깝다. 고대 유적과 마찬가지로 이미 오래된 상징적 형식이 된 채 벽면에 부착된 액자형태의 도상들과 오돌토돌한 그래픽 이미지는 그것이 거듭 덮어씌워진(overlaid) 지표임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모태의 오버레이임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게임적 이미지와 융화된 오브제가 고전동화와 같이 옛날 옛적의 이야기를 구전하는 과정에서 예술의 종교적인 상징 기능으로 되돌아오는 역설적 상황의 재현이다.** 종교의 폼을 떠난 예술이 다름 아닌 게임적 화면을 복사한 동태로서 다시 종교적 의례로 돌아오는 재래적 형식의 제스처가 게임 이미지의 요소들을 원천 삼아서 증명되기 때문이다. 즉 영웅적 서사 구조를 따르는 장면을 각각 복제하여서 조직된 주형틀은 그 형식상 이내 종교 의식의 모태와 연계되는 웅장한 조형성을 띤다는 것인데, 이와 같이 내부로 고전적 장면을 기입하는 오브제는 제의적인 동시에 전시적인 양가적 성격을 띠며 내적 통일성을 구축한다.
 


김한샘 개인전 <드래곤즈 퐈이어> 전경 2020 취미가

풀이하자면 일종의 경배 가치로서 지위를 격상하는 사물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의 역학을 다시 종교적 의례로 돌리는 한편, 게임적 리얼리즘의 방법을 택하는 영민한 우화적 이야기로 오늘날의 화면이 물리적인 표면으로서 성립하는 배경에 대해서도 묻는 응결된 형태의 경과가 바로 김한샘의 전시에서 포착할 수 있던 흥미로운 지점들이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필자의 자의적 판단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팩으로서의 콘텐츠와 같은 패널의 명확한 지시적 성격은 일견 게임 스크린을 박제한 상징적 도상으로서 추모하는 듯 보이기도 하며, 또 한편에서는 현대미술을 차용하는 일종의 콘텐츠 팩으로서 캐릭터 혹은 지지체가 서기*** 위한 미디어믹스 전략이 회화적 프레임 상에서도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듯 보인다.
 

*대략 30년 전에 출간된 본 서적이 어느 시기보다 시의적절하게 번역되었다는 역자의 입장은 이러한 지점에서 또한 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루시 리파드, 윤형민 옮김, 『오버레이』(현실문화연구, 2019), 22쪽.
**현실을 그려야 한다는 의무가 아닌 “현실을 그리는 것이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현실을 사생하는” 자연주의 문학 작가, 또는 캐릭터를 그리는 것이 역시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캐릭터를 참조하는 캐릭터 소설 작가와 마찬가지로 본 전시에서도 게임에서 파생한 이미지 소스는 작가에게 효율적인 의사소통의 매체적 창구로서 새 환경에 적용되는 역사적 파편이라고 할 수 있다. 아즈마 히로키, 장이지 옮김,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현실문화연구, 2015), 47쪽.
***여기에서 ‘서다’는 ‘캐릭터가 선다(立つ)’는 의미에서의 용례로 단 하나의 결말과 선형적 역사관이 붕괴됨으로써 게임 같은 소설의 양태가 발생한 배경과 동일한 맥락에서 취했음을 밝힌다. 바꿔 말하자면 그림의 지지체가 자율적으로 본 형상을 모사함으로써 ‘서’게 되는 층위로부터 또 하나의 회화적 제작 경위를 유추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위의 책, 98~101쪽 참조.

Posted by Art In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