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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의 풍광, 한지에 스미다

2020.02.10 14:24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자연을 포착하는 사진작가 이정진. 그가 PKM갤러리에서 2년 만의 개인전 <Voice>(1. 15~3. 5)를 열었다. 광활한 대자연의 풍경이 불러일으키는 마음속 공명을 한지에 출력한 사진 연작 <Voice>와 <Opening> 총 25점을 공개했다. 그는 시를 쓰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온몸의 감각이 열리는 순간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 김예림 기자



<Opening 13> 한지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45.5×76.5cm 2016

하얀 종이에 어둡게 내려앉은 자연의 이미지가 불연속적 파노라마 풍경을 연출한다. 바다에 솟은 바위, 산과 산 사이 협곡, 부서지는 파도, 서로를 가로지르는 나뭇가지가 벽에 걸렸다. 어렴풋하게 인지한 대상은 검은 먹을 삼켰다 뱉어낸 수묵화처럼 보풀이 일어난 종이에 올라가 있다. 표면을 더듬기 위해 작품 가까이 몸을 밀착하자, 단박에 찍어낸 듯 매끈한 화면이 예상치 못하게 밀려온다. 재료의 밀도는 없는데, 무엇인지 모를 깊이감이 자리해 있다. 흑백 사진을 한지에 출력해 독특한 질감을 선사해온 사진작가 이정진이 2년 만에 PKM갤러리에서 개인전 <Voice>를 열었다. 사진 연작 <Voice>(2018~19) 15점과 <Opening>(2015~16) 10점을 각각 갤러리 본관과 별관에 선보였다. 두 개의 공간으로 구분된 갤러리 특성을 고려해 작가가 직접 출품작을 선별하고 전시를 구성했다.
이정진은 미국에서 사진을 시작하며 구체적인 계획 없이 여정을 떠나왔다. 주로 사막이나 습지와 같은 대자연 풍경을 향했지만, 물리적 이동이나 이색적인 환경을 우선시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사색과 명상의 경험을 순간적으로 포착한다. “대상이 내게 말을 건다. 바라본 풍경에서 내면의 감정이 느껴지면 빠르게 셔터를 누른다. 촬영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같은 장소를 다시 방문하지는 않는다. 무엇이든 과거와 똑같은 맥락으로 마주하고 감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스승 로버트 프랭크(1924~2019)는 그의 사진을 두고 “인간이라는 야수가 배제된 풍경”, “자신의 냉철한 눈으로 존재하는 고독을 느끼고 본다”고 평했다.



<Opening 17> 한지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45.5×76.5cm 2016

작가는 대상의 울림을 사진에 담아 주로 한지에 흑백으로 출력해왔다. 그가 느낀 감정을 평면에 깊이 있게 드러내기 위한 방법이다. “암실에서 한지에 감광유제를 발라 인화지로 만드는데, 한지가 굉장히 얇아서 다른 한지를 덧대고 배접한다. 용지에 사진을 출력하면 작품이 완성된다.” 2010년부터는 이 단계에 디지털 프린트 방식을 더했다. 출력한 사진을 부분적으로 스캔해 컴퓨터로 이미지를 조합하고, 원하는 텍스처가 나올 때까지 섬세하게 조절해 다시 출력하는 것. 한지에 프린트하는 방식 자체가 통제하기 까다롭지만, 더욱 적절한 작품을 구현해내고자 작업 과정을 추가했다. “내가 어떤 이미지를 찍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작품의 이미지, 텍스처, 프레젠테이션 등 모든 것이 합쳐져서 내 작품이 된다. 어려워도 그 과정을 전부 거쳐 나간다. 20년간 아날로그 작업을 해오다가, 2007년부터 아날로그에만 머무르지 말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디지털 작업을 시작한 지 10여 년이 흘렀지만, 국내에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했다. <Opening>은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로, <Voice>는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후, 위의 작업 과정을 거쳐 각각 한지와 디지털 페이퍼에 다시 출력한 사진 연작이다. 작가는 특정 형식을 고집하기보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이는 <Opening>, <Voice>를 구축하는 새로운 프레임에도 잘 드러난다. <Opening>은 기존에 사용한 수직 구성에서 벗어나 마치 족자처럼 긴 수직 형태로 재탄생했다. 인간의 좁은 시야가 점차 확장되는 모습을 연출하고자 새로이 시도한 방식이다. 또한 <Voice>는 가로 2m 이상의 크기로 훌쩍 커졌다. 아날로그 출력의 한계를 극복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무언가의 음성(voice)에 귀 기울이도록 사람을 가라앉히는 힘을 발산하기에는 대형 사이즈가 더욱 효과적이었다.



<Voice 34>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52.5×213.3cm 2019

디지털 작업을 시작한 지 10여 년이 흘렀지만, 국내에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했다. <Opening>은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로, <Voice>는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후, 위의 작업 과정을 거쳐 각각 한지와 디지털 페이퍼에 다시 출력한 사진 연작이다. 작가는 특정 형식을 고집하기보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이는 <Opening>, <Voice>를 구축하는 새로운 프레임에도 잘 드러난다. <Opening>은 기존에 사용한 수직 구성에서 벗어나 마치 족자처럼 긴 수직 형태로 재탄생했다. 인간의 좁은 시야가 점차 확장되는 모습을 연출하고자 새로이 시도한 방식이다. 또한 <Voice>는 가로 2m 이상의 크기로 훌쩍 커졌다. 아날로그 출력의 한계를 극복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무언가의 음성(voice)에 귀 기울이도록 사람을 가라앉히는 힘을 발산하기에는 대형 사이즈가 더욱 효과적이었다.
대상이 부르는 소리에 응답하듯 시작한 작업은 그 끝을 어떻게 맺을까? “하나의 시리즈를 진행하다가 같은 말을 조금씩 다른 언어로 반복한다고 느껴지면 사진집을 출판하고 해당 프로젝트를 마무리한다. 책을 내면 마치 요리가 완성된 것 같다. 지금껏 말해오던 문장을 정리하고 다음 장으로 넘기는 것이다.” 신작 <Voice>의 사진집은 올봄에 출간된다. 이번에는 작가나 평론가의 글이 아니라 파블로 네루다(1904~73)의 「시」를 싣는다. 네루다의 시는 이정진이 말해오던 “작업하는 마음 밑바닥”과 닮았다. “(…) 내가 헤매고 다니던 길거리에서, / 밤의 한 자락에서, / 뜻하지 않는 타인에게서, /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 혼자 돌아오는 길에서 / 얼굴 없이 있는 나를 / 그것이 나를 건드렸어 (…)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지 (…)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 내 심장은 바람에 나부꼈어.”(파블로 네루다의 「시」 중에서)



<Voice 42>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08.5×153cm 2019

이정진에게 사진은 세상과 호흡한 결과물이다. 대상과 주고받은 숨이 작업 저변에 붙어 있다. 그 숨은 “인간 보편의 감정이자 모두의 삶”이기에, 관객은 사진에 자신을 투영하고 각자의 숨을 불어넣어 바라본다. 온몸으로 작업을 느끼고 감각을 열어 나간다. <Voice>, <Opening>, <Wind> 등 시리즈의 추상적인 제목은 작업을 자유로운 각도로 관람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상상하도록 돕는다. “자세한 설명 없이 관객에게 작품을 들이대는 편이다. 제목이 작업을 이해하는 틀을 제한할 것 같아 불필요하다고 여긴다. 촬영 과정이나 나의 시선, 감정도 마찬가지다. 내가 정해지지 않은 대로 무언가를 즐기고 직감적으로 셔터를 누르는 것처럼, 관객이 내 작업을 볼 때 어떤 느낌을 받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각자가 느끼는 대로 보면 된다.”
작가는 현재 뉴욕에 정착해 활동한다. 미국, 스위스, 프랑스 등에서 활발히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2010~11년에는 프랑스 사진작가 프레드릭 브레너가 기획한 프로젝트 <This Place>에 유일한 아시아 작가로 참여했다. 여러 미술관을 순회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프로젝트는 베를린 유대인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작가는 현재 진행 중인 개인전과 함께 사진집 『Voice』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동시에 <Voice>를 해외에 전시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풍경에서 벗어나도 되겠다. 그래도 도시로 돌아올 것 같지는 않은데, 일상 사물을 다뤘던 <Thing> 시리즈(2003~06)를 발전시켜볼까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바로 실행에 옮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마음을 비우고 여유 있는 시공간에 자신을 풀어둘 때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 작가는 향후 계획을 미리 세워두지 않는다. 여느 때처럼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겨 또 다른 여정을 떠나고, 관객은 그의 작품을 맴돌며 각자의 삶을 발견할 것이다.



뉴욕 스튜디오에서 이정진

이정진 / 1961년 서울 출생. 홍익대 도예전공 및 뉴욕대학교 대학원 사진전공 졸업. PKM갤러리(2020), 프랑스 카메라옵스큐라갤러리(2019), 국립현대미술관 과천(2018) 등에서 개인전 개최. 뉴욕 AIGA Book Competition(2018), 프랑스 Filaf Award(2018) 등 수상. 현재 뉴욕에서 거주하며 활동 중.

 

Posted by 김예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