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FOCUS

HomeOnlineFOCUS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1展

2020.02.06 14:20

너는중세를나의미래한다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1展 9. 18~11. 17 아트선재센터
/ 정 시 우
 

윌 베네딕트&스테펜 요르겐센 <모든 출혈은 결국엔 멈춘다> 3D 프린트, 마네킹 외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9

복원하시겠습니까?

황금빛 도상에 이끌려 길을 잃고 헤매다 바닥에 무심히 앉아본다. 바닥을 짚은 손끝에 전해지는 까칠한 현실감. 그와 동시에 생경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과거와 현재, 영원과 유한함, 성스러움과 일상이 공존하는 세계의 한 가운데 있었다. 중세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골목을 걷다 보면 이 도시만큼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킨 성화를 발견할 수 있다. 프레스코 기법으로 건물 벽에 그려진 성화를 보호하기 위한 작은 그늘막 형태의 지붕이 있고, 지붕에 새겨진 화려한 조각들과 부분이 떨어져 나간 위태로운 이미지를 비교하는 것이 흥미롭다. 전통적인 프레스코화는 곱게 빻은 안료를 물에 개어 마르지 않은 회반죽에 형상을 그리고, 반죽의 수분이 날아가며 안료가 고착되는데 이미지가 벽에 스며들어 안료가 떨어져 나가지는 않지만, 벽의 관리가 까다롭다. 영원한 형상을 그렸지만, 그것이 달라붙은 표면은 불완전한 표면이고, 이미지를 보호하는 육중한 지붕과의 대비에서 수직의 이미지를 생각한다.

수직의 이미지는 영원성을 담보한 천상의 이미지다. 시대에 따라 그 양식은 다르지만 형상화한 대상은 영원을 향한다. 그러나 천상 그 너머는 상상할 뿐 표현될 수 없기에 고착되는 순간 유한한 것이 된다. 결국, 불완전한 표면에 형상을 남기려는 시도는 실패를 담보한다. 수직의 이미지는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일종의 계시이지만 찰나의 형상이기에 그 자체로 완전하지 않다. 위태로운 벽에서 나무패널을 거쳐 캔버스라는 안정된 신체를 얻은 수직의 이미지가 수백 년간 영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지점에서 다소 아이러니하다.
 

아니아라 오만 <천 년 전의 나, 지금으로부터 천 년 후의 너> 친환경 레진, 철 마운트, 실리콘 캐스트, 게딱지, 바이오플라스틱 가변크기 2019

스마트폰을 들어 <중세에서 르네상스 시대 음악> 플레이 리스트를 재생한다. 리브로 꽈르또(Libro quarto)로 시작하는 끼따로네(Chitarone) 연주곡을 시작으로 중세풍 연주, 가톨릭 미사곡이 줄을 잇는다. 전쟁과 역병, 도시 국가 간의 패권 다툼,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것이 종교로 수렴되던 5세기에서 15세기 사이의 약 1000년을 우리는 암흑기, 중세로 칭한다. 골목의 모퉁이, 지면 아래 혹은, 발견되어 현실의 층위에 끌어 올려진 중세를 매일 마주하는 서구 유럽인과 달리 우리에게 중세는 너무도 먼 이야기, 판타지이다. 동아시아 서브컬처에서 재현되는 중세는 그 고증이나 설정을 미래와 연결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러한 게임적 판타지를 통해 나는 중세의 미래한다. 중세 풍경에 동시대를 포개어 살아가는 서구 유럽의 층위를 근대에 정비된 상대적 미래인 동아시아, 서울에 겹치면 시공간이 뒤섞여 어떠한 풍경으로 출력될까?

띄어 쓰지 않은 전시제목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1>은 아마존의 알렉사, 애플의 시리와 같은 인공지능 비서가 번역 앱을 통과해 한국어로 옮긴 듯 문법적으로 어색한데 이를 통해 전시의 주제와 구조를 짐작할 수 있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된 전시는 10회로 기획된 연속되는 전시 중 하나로 시작을 알리는 숫자 1을 달고 있는데 개별 전시는 선형적 순서를 따르지 않고,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 <스타워즈(Star Wars)>의 스카이워커 사가(The Skywalker Saga)의 전개 순서를 따른다. 전시의 전개 순서뿐만 아니라 전시 주제를 관통하는 여러 요소에서도 스타워즈를 떠올릴 수 있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제다이는 전시의 주요 키워드인 포스트 휴먼, 신인류이고 제다이 기사단은 중세 기사단에 대입할 수 있다.

나는 전반적으로 난해한 전시의 이해를 돕는 필터로써 스타워즈를 활용했는데 이번 전시는 가장 과거의 이야기인 프리퀄 3부작 중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에 해당한다. 덴마크에서 진행된 3회의 전시에 참여했던 작가, 작업이 이번 서울의 전시에도 호출되었는데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5>에 참여했던 김희천은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1>의 굿즈를 제작했고 이는 지난 전시에 관한 오마주로 읽힌다. 연속되는 전시는 큰 구조적 설정을 따를 뿐 개별 전시는 선형적 서사로 연결되지 않아 어떠한 조건에도 달라붙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전시 공간이 가진 특성이나 이전 전시의 흔적, 남겨진 벽 같은 다양한 조건이 전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이는 오래된 미래 혹은 새로운 과거와 같이 판타지를 동반한 시공간의 이동성을 드러낸다. 박물관에서 중세 유물을 관찰하듯 디스토피아 문학적 상상력에서 길어 올려진 시각 이미지와 서사가 전시 공간에 달라붙는 방식으로 전시는 작동한다. 전시의 기획자인 야콥 파브리시우스는 전시 연계 스크리닝과 도록을 통해 전시 개념의 확장을 도모했는데 전시와 연계해 발간된 전시 도록에는 선행된 전시의 도록이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그대로 삽입되어 개별 전시가 그 자체로 완결되지 않고 지연된 과거나 미리 본 미래처럼 이동하는 연속체로 기능하게 했다.
 

이미래 <연루된 자들> 와이어, 실리콘 호스, 폴리우레탄, 글리세린 외 혼합재료 300×180×380cm 2019

복원하시겠습니까?

레벨 디자인은 플레이어가 게임에 몰입하고, 기획 의도에 맞는 게임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난이도 조정과 맵을 꾸미는 게임 개발 기획의 전문 분야다. 레벨(Level)은 초창기 RPG(Role-Playing Game)에서 던전의 깊이를 게임 난이도와 테마로 구분했던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레벨 디자이너는 플레이어의 행동이나 콘텐츠 경험의 경로를 설정하는 것을 주요 업무로 한다. 레벨 디자인은 게임에서 플레이 가능한 영역인 레벨, 공간을 재창조하는 것이기에 제작에 관계된 폭넓은 분야를 아우르는 게임 디자인, 건축, 그리고 심미적 능력이 요구된다.

전시는 아트선재센터 2층과 3층, 두 개 층에서 진행되었는데 2층 전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중세의 성문을 통과해 골목을 거닐 듯 최윤의 입간판 작업을 통과해 거대한 벽 뒤로 돌아가야 한다. 벽 뒷면에 설치된 최윤의 영상 설치작업이 포착한 중세 검술 동호인의 시대착오적 시선은 과거를 향하기보다는 게임적 판타지가 추동하는 역할극에 가깝고 그들이 참조하는 것은 동아시아의 중세 판타지,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 축축하고 미끈한 생체 감각을 움직이는 기계 구조에 결합한 이미래의 설치작업이 거대한 기계의 내장이나 뼈대, 혹은 중세 광장의 분수처럼 전시장 중앙에 위치한 것을 제외하면 2층 작업의 대부분을 벽에 설치해 전시장을 넓게 비우고 조명은 밝고 균등하게 사용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3층은 조명을 억제해 전반적으로 어두운 환경을 유지하고, 아트선재센터의 이전 전시인 <색맹의 섬>에서 사용한 벽을 재활용해 전시장을 분리하고, 다시 연결해 통로이면서 광장인 형태로 연결과 이동에 관한 기획자의 태도를 보여준다. 강정석의 작업은 아트선재센터의 2층과 3층 전시장과 로비 등 전관을 활용해 설치되었는데 아마존의 인공지능 알렉사를 통과해 추상회화의 제작방식을 추적한다. 음성을 인식해 설정된 가상 환경을 더듬어가는 미래 지향적이지만 왠지 과거의 텍스트 기반 게임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추상성을 전유한다.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1>은 중세라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의 층위를 서구 유럽에서 동아시아 서울로 이동해 겹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전시이다. 과거의 전시를 참조하거나 그대로 붙이고, 주어진 전시 환경을 재사용, 재조합하는 방식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포스트-인터넷의 문법을 활용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스타워즈라는 서브컬처를 하나의 필터로 활용해 중세와 미래라는 간극을 붙잡고 있다. 중세와 미래, 동양과 서양, 현실과 가상 등 나에게서 너로, 중세에서 미래로 이동하는 감각이 표피적 디스토피아, 그로데스크로 읽히는 지점이나 다양한 층위를 내포하고 있지만, 그 다층적 구조가 오히려 상상의 개입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질문해 본다.
 

최윤 <너와 나의 서울 중세> 싱글채널 비디오, 시트지에 프린트 외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9

*최윤의 작업 <너와 나의 서울 중세>(2019)에 등장하는 대사 ‘복원하시겠습니까?’를 통로로 필자의 예전 글 일부를 발췌해 삽입함으로써 과거와 미래의 시간과 공간이 이동하고 동기화하는 감각을 글의 구조에서 드러나도록 의도했다.

Posted by Art In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