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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LGBTQ 관용으로 공존하기

2020.01.17 14:30

LGBTQ 예술을 주제로 한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의 전시가 열렸다. <SPECTROSYNTHESIS II Exposure of Tolerance: LGBTQ in Southeast Asia>(11. 23~2020. 3. 1 태국 방콕아트센터). 선프라이드재단과 방콕아트센터가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는 동남아시아 외에도 아시아 전역의 LGBTQ 미술을 총망라한다. 각 국가 고유의 문화 역사 정치적 지형 아래, 섹슈얼리티와 젠더 다양성에 대한 관점 또한 급변하고 있다. 이번 현지 취재는 태국 사회의 성소수자 수용에 대한 이슈, 참여 작가의 출신국 상황과의 관계성에 주목해 작품의 내용을 소개한다. 아시아 LGBTQ 예술은 과연 어떤 분기점에 마주하고 있을까? / 조현대 기자



렌 항 <Untitled> 컬러프린트 67×100cm 2011

지난 11월 23일 태국 방콕아트센터(BACC)에서 <SPECTROSYNTHESIS Ⅱ Exposure of Tolerance: LGBTQ in Southeast Asia>가 개최되었다. 전시는 주로 동남아시아 지역의 LGBTQ 혹은 퀴어 미술을 집대성하며 그것이 가진 세계와 타자에 대한 관용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낸다. BACC와 함께 전시를 공동 기획한 선프라이드재단(Sun Pride Foundation)은 2년 전 대만 타이베이현대미술관에서 <SPECTROSYNTHESIS>전을 한 차례 선보인 바 있다. 이 제목은 빛의 파장을 의미하는 ‘spectrum’과 생물학적 화학적 합성이라는 뜻을 가진 ‘synthesis’를 연결시켜,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이 다름의 가치가 평등하고 조화롭게 공존하는 상태를 지시한다.
선프라이드재단의 대표이사 패트릭 선(Patcrick Sun)은 “LGBTQ 공동체와 구성원을 위해 더 강하고 건강한, 그리고 더 공정한 세계를 위해 전진하는” 재단의 미션을 제목에 담았다고 설명한다. 이어 지역의 사회 지도층은 물론 일반 대중에게도 “섹슈얼리티와 젠더 정체성에 대한 폭넓고 건전한 이해와 인식의 효과”를 극대화해 전달하기 위해, 대만에 이어 태국에서도 지역 내 가장 유명하고 커다란 대표성을 지닌 공공미술관에서 전시를 개최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전시를 공동 기획한 BACC 수석큐레이터 찻피차이 프로맛하타베디(Chatvichai Promadhattavedi)는 “이번 전시가 동남아시아, 나아가 아시아만의 독특한 문화적 양상과 그 속의 다양한 커뮤니티와 삶의 형태를 어루만질 수 있는 열린 대화의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며 그간의 소감을 내놓았다.



앤 사맛 <Conundrum Ka Sorga(To Heaven)> 라탄 막대, PVC 체인, 악세사리 외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9

<SPECTROSYNTHESIS Ⅱ>는 전시가 열린 태국 출신 LGBTQ 작가들을 주축으로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등 아시아 15개국 출신의 LGBTQ 작가 58명이 참여했다. 특히 출품작 다수가 선프라이드재단이 그간 동남아시아를 위주로 수집해 왔던 LGBTQ 관련 작품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아시아 대륙은 지구상의 어떤 대륙보다도 드넓은 크기를 자랑한다. 전 세계 인구의 60%가 아시아에 거주하고 있으며, 그만큼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저마다 독특한 문화를 일궈 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아시아의 거의 모든 국가가 20세기 이후 근대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서구 제국주의에 의한 침탈의 역사 또한 공유한다. 하지만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당시 제국주의에 대응하거나 굴복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적 독립성을 되가져 온 이후 그들이 처한 문화 종교 역사 정치적 배경 차이에 의해 상이한 법적 제도적 구조를 갖춰 나갔다. 이에 따라 당연하게도 LGBTQ의 다양한 섹슈얼리티와 젠더 정체성에 대한 대중적 인식과 법적 제도의 양상 또한 매우 다르게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크릿사단크 인타손 <Opal’s World> 페인팅 설치 280×500×500cm 2019

태국 LGBTQ, 금기와 억압에의 저항

태국은 제국주의에 지배당한 경험이 없는 유일무이한 아시아 국가다. 아시아에 진출한 제국주의 영국과 프랑스가 서로를 자극하지 않기 위한 ‘타협의 요충지’로 태국을 선택했다는 지정학적 이점이 작용하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계기로 당시 ‘시암(Siam)’ 왕국의 국가 지도층이 탁월한 외교력을 발휘했다는 점과 무엇보다도 스스로 근대 국가로의 이행을 실천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자발적 근대화의 노력 안에서 해당 지역의 전통 사회와 풍습에 존재해 왔던 다양한 젠더 역할은 서구 근대적 이성의 보편성 논리를 통해 하나둘 사라지게 되었다. 특히 태국의 오래된 불교 사원 경내에 그려진 벽화에는 성적 행위를 암시하는 도상이 빈번히 등장한다.
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작가 아룬노타이 솜사쿨(Arunothai Somsakul, 1942년생)은 이 도상을 적극 활용한다. 전통 의상을 입은 세 남녀가 TV 속 격투기 장면을 보며 성교하는 장면을 그린 <Pra-lor>(1989)는 태국 현대 불교의 금기를 완전히 무너뜨린다. 마이클 샤오완나사이(Michael Shaowanasai, 1964년생)의 사진 <Portrait of Man in Habit #1>(2003) 또한 작가 자신이 짙은 화장을 한 채 승복을 입고 등장하며 금기에 도전한다. 해당 작품을 발표한 이후 강한 차별과 외압에 시달린 그는 승복을 입지 않은 버전의 작품을 다시 선보이며, 스스로도 불자이자 성소수자로서 모든 생명에 존중과 경의를 표하는 불교 교리의 핵심을 꼬집는다.
한편 오늘날 태국은 여타 아시아 국가에 비교해 볼 때, 성소수자들에게 관대한 사회로 발전해 왔다. 올해 치른 국회의원 선거에서 트랜스젠더가 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또한 육체적 힘과 섬세한 감각을 동시에 요하는 태국 노동 시장에서도 성소수자 노동자를 선호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GBTQ가 태국 사회의 온전한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여전히 제도와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미국계 태국인 사진작가 옴 판피로지(Ohm Phanphiroj, 1970년생)의 영상 <Underrage>(2010)는 현재에도 사회적 문제로 남아 있는 남성아동 성매매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작가는 저마다 다양한 이유로 도시 밤거리로 내몰린 성매매 소년들에게 그들이 처한 현실과 꿈을 물어보며, 이들을 보호할 제도적 대책을 강력히 촉구한다. 최근 태국 미술계에서 촉망받는 젊은 작가 크릿사단크 인타손(Krissadank Intasorn, 1986년생)은 작품 속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선언한다. 페인팅 설치 작품 <Opal’s World> (2019)를 보자. 외벽의 마초적 인물이 대중 문화 속 여성 캐릭터로 분한 그림이 작가가 세계를 향해 드러내려는 외적 자아라면, 내벽에 그려진 어둡고 음습한 이미지는 차별과 멸시의 시선으로 가득한 외부로부터 격리시키고픈 또 하나의 자아다.



마틴 웡 <Mi Vida Loca> 캔버스에 아크릴릭, 골동 액자 157.48×91.44cm 1991

다양성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해

한편 동남아시아의 몇몇 국가는 여전히 동성애를 범죄로 간주해 처벌하고 있다. 특히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는 국가가 그러한데, 2018년 말레이시아에서는 레즈비언 커플에게 공개 태형을 내려 국제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인도네시아 아체(Ache) 자치구 또한 게이 커플에게 태형을 선고한 바 있다. 브루나이는 동성애 행위에 대해, 심지어 외국인까지 예외 없이 소위 ‘돌팔매질’, 그러니까 공적 장소에서 투석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 나라다. 모두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형법에 적용한 사례들로, 비이슬람 사회의 큰 비난을 사고 있다. 이러한 국가 출신의 LGBTQ 예술가들의 삶, 그곳에서 비롯된 예술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인도네시아 출신의 요피 피터(Yoppy Pieter, 1984년생)는 <Over the Black Rainbow>(2019)에서 욕야카르타(Yogyakarta) 트랜스젠더 이슬람 학교 학생들의 개성 넘치는 모습을 필름에 담았다. 화면의 새카만 배경은 이들에게 종교적 박해를 가하는 암울한 상황을 은유한다. 브루나이 사진작가 아담 하구에 (Adam Hague, 1983년생)는 프레임 속에 신체를 직접 노출시키며 자신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예컨대, <Thunderclap>(2017)은 상반신만을 드러낸 반나체의 작가가 자신을 위협함과 동시에 단련시키는 억압을 ‘번개’로 시각화한다. 말레이시아 작가 앤 사맛(Anne Samat, 1973년생)의 <Conundrum Ka Sorga(To Heaven)>(2019)는 LGBTQ 운동에 대한 헌사이자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제단이다. 전설 속 불사조를 형상화한 구조물 위로 화려한 색의 실과 비즈가 촘촘히 엮여 있다. 흔히 ‘게이 프라이드 깃발’로 알려진 6색 무지개 패턴은 모든 다양성의 연대를 지지하며, 사이사이 매달린 이름표에는 그 선구자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신디 아퀴노 <Bond> 2013

스리랑카와 미얀마의 경우 불교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민족주의적 성향 탓에 동성애에 대한 보수적 입장을 고수한다. 중국은 동성애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성소수자를 차별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전무한 실정이다. 스리랑카 출신의 라메쉬 마리오 니티옌드란(Ramesh Mario Nithiyendran, 1988년생)은 고대 신화에서 동성애적 상징을 빌려온다. 페니스 실루엣의 도예 작품 <Snake Charmer I, II>(2018)의 윗부분에 성행위를 암시하는 구멍과 또 다른 페니스가 숨어 있다. 신화 속 ‘이빨 달린 질(vaginia dentata)’을 전유해 이성애에 대한 조롱 또한 감춰 둔다. 미얀마 사진작가 리타 킨(Rita Khin, 1992년생)은 사촌이 성전환 과정 중에 겪었던 가족과의 일화에서 영감을 받아 연작 <I want to be addressed as a brother, a son>(2018)을 제작했다. 작품은 성전환이란 신체적 물리적 변화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변화를 함축함을 드러냄과 동시에 개인의 감정적 육체적 변화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중국의 요절 작가 렌 항(Ren Hang, 1987~2017)은 주로 친구들을 모델로 삼아, 자연스러우면서도 초현실적인 신체를 포착했다. 그의 스냅 사진 속 기괴하게 뒤틀린 벌거벗은 신체에는 생전에 그가 앓았던 우울증에서 비롯한 외로움과 고립의 감정이 묻어난다.

변화하는 아시아, ‘배타성’ 배제하기

전시는 그 외에도 아시아 지역을 벗어나 서구의 주류 아트씬에서 이름을 알린 이들의 작품을 함께 소개한다. 중국계 미국인이었던 마틴 웡(Martine Wong, 1946~1999)의 회화 <Mi Vida Loca>(1991)는 고풍스럽고 화려한 문양의 금박 액자 속에 벽돌 무늬의 거대한 남근이 그려진 것이다. 그가 살았던 뉴욕 차이나타운 인근의 오래된 건물들에서 영감을 받은 벽돌 무늬의 남근은 서구 사회에서 겪은 억압과 이로부터의 일탈을 동시에 나타낸다. 베트남계 덴마크 작가 얀 보(Dahn Vo, 1975년생)는 뉴욕 자유의 여신상을 동일한 비율로 정밀 복제한 약 300개의 청동 조각 시리즈 <We The People>(2011~16) 중 1점을 선보였다. 출품작은 비교적 형체를 알아보기 쉬운 손이나 발 같은 부분이 아닌 까닭에 기하학적 조각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구 자유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여신상을 해체함으로써 그들의 헤게모니 아래에 놓인 자유의 가치를 곱씹어 보게 한다. 싱가포르 출신의 밍 웡(Ming Wong, 1971년생)은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발표했던 영상 <Life and Death in Venice>(2010)를 다시 선보였다. 이탈리아 영화감독 루키노 비스콘티의 고전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을 리메이크해, 작가가 직접 영화 속 두 인물을 연기한다. 나이 많은 작곡가가 우연히 만난 아름다운 소년을 사랑하게 되는 스토리를 통해 젊음의 아름다움과 필연적 죽음 사이의 고뇌를 녹여냈다.



사막 코셈 & 손라팟 파타라콘 <Other Sheep(Not of This Fold)> 가변크기 2019

최근 아시아 지역 곳곳에서 LGBTQ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애쓴 운동의 성과로서 기념비적 사건과 판례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2018년 7월 홍콩 법원 최종심에서 동성 간 결혼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고, 같은 해 9월 인도 대법원에서도 형법 일부가 위헌이라는 이유로 동성애자를 처벌하지 않았다. 또한 2019년 대만 정부는 동성 간 혼인을 합법화했고, 8월에는 베이징의 동성 커플이 중국 최초로 서로에 대한 합법적 보호자로서 등록을 완료했다. 아시아 국가들의 LGBTQ 권리를 위한 진일보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비교해 한국 LGBTQ와 그 예술이 마주한 상황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 선프라이드재단의 한 전시 관계자는 “한국 프라이드 축제를 방문했을 때, 기독교인들과 축제 참여자 사이의 대립 양상이 일견 흥미로우면서도 각 사회마다 성적 지향의 다양성을 배척하는 주체와 그 이유들마저도 너무 다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만약 LGBTQ를 주제로 한 대규모 전시가 한국의 공공미술관에서 열린다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Posted by 조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