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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와 우호의 장

2019.12.23 15:49

<50/50>전은 한국과 일본의 작가 11명의 퍼포먼스를 통해 양국의 지속적인 문화 교류를 희망한다. / 유 진 상



정연두 <Girl’s Talk> 퍼포먼스 2019

2005년 한일 간 독도 영유권 문제로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 한일 수교 40주년을 맞아 대안공간루프에서 전시 <40/40>이 열린 바 있다. 양국 간 감정이 매우 적대적이었던 상황에도 불구하고 당시 40대에 들어선 한국과 일본의 작가들은 예술만큼은 교류와 우호의 끈을 놓지 말자는 취지로 전시와 토론을 진행했다. 이후 양국은 문화 교류와 정치 경제적 협력을 통해 유례없이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지만, 2019년 현재 다시 적대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당시 한국을 찾았던 오자와 츠요시, 아이다 마코토를 비롯해 파르코 키노시타, 아리마 스미히사, 마츠가케 히로유키, 오이와 오스카 등과 한국의 김홍석 함경아 이수경 정연두 이용백은 이태원에 새로 문을 연 다세대아트싸롱의 지하 공간에서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전시를 펼쳤다. <50/50>(10. 29~11. 24)전은 그간 관록이 쌓인 작가들이 양국 관계를 심사숙고해 준비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오자와 츠요시 <인생은 순간이다. 40분은 영원하다> 퍼포먼스 2019

김홍석은 딸과 함께 상상 속 괴물을 그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주는 무서움-괴물을 무찌르는 방법에 대하여>를 통해 상상 속 괴물을 떠올리는 어린이의 순수함과 정치적 동기에 따라 집단적 분노, 증오심을 생산하는 국가의 모습을 중첩시켰다. 파르코 키노시타는 커다란 종이에 현해탄의 높은 파도에 빠진 ‘소녀상’들을 그리며 2019아이치트리엔날레가 촉발한 표현의 자유와 양국 관계에 대한 생각을 풀어냈다. 오자와 츠요시의 <인생은 순간이다. 60분은 영원하다>는 관객들과 함께 벽면 양쪽에 평행하게 원을 그리는 퍼포먼스였다. 원을 그리는 선들은 오르고 내려오는 기복을 반복하지만 한 곳에서 출발해 다시 같은 곳에서 만나게 된다. 이수경은 <아무 것도 묻지 마세요>에서 일본작가가 가져온 돌에 아무도 못 보게 돌아앉아 금박을 입힌 뒤 다시 되돌려주는 퍼포먼스를 했다. 사람과 집단의 관계 내에서 ‘밝힐 수 없는’ 교환과 교류의 가치에 대한 함축을 작은 돌멩이에 담았다. 함경아는 <농담>에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상’의 퍼포먼스에 대해 고민하는 두 사람의 작업과정을 영상으로 보여 줬다. 미완의 작업에 대한 기록과 ‘일본으로 떠난’ 작가의 행방을 유머러스한 언급들로 직조한 일종의 ‘메타-퍼포먼스’였다. 전준호는 관객에게 <오늘의 운세>를 알려 줬다.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가 만들어 내는 가상의 서사들을 통해 기억과 역사, 다가오는 시간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하는 우의적 작업을 만들었다.



이용백 <Behind Too Beautiful Things, There is Hideness> 2019
_이용백은 전시 참여작가 11명의 작업복을 수거해 직접 손으로 빨래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작가들의 땀과 노폐물이 뒤섞이는 과정은 향후 양국 문화교류 지속을 염원한다.

정연두는 <Girl’s Talk>에서 한국과 일본의 두 여성이 구글 번역기를 통해 대화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이들은 번역기의 미세한 오역에 대답하기 위해 노력하며 오늘날 서로 다른 나라의 시민들이 처한 상호 이해의 어려움과 극복을 위한 노력을 즉흥적으로 실연했다. 아이다 마코토는 일제의 욱일기와 교복을 가져와 퍼포먼스를 하고자 했으나 주최 측의 거절 의사를 듣고 고민하는 과정을 그대로 다뤘다. 금기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시선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리사 스미히사는 측정된 수치를 사운드로 바꾸는 즉흥 연주를 통해 관계와 거리를 음악으로 치환하는 과정을, 마츠카게 히로유키는 이틀 동안 참여작가들의 초상을 찍는 작업을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이용백은 참여작가들의 작업복을 빨면서 자신이 선곡한 음악을 들려 주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빨수록 물이 탁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을 통해 결백함에 대한 강박이 낳는 오류의 심화에 대한 흥미로운 예시를 보여 주었다.
이번 전시는 국가주의적 감정의 거친 풍경을 가뭄의 단비처럼 적셔 주었다. 최소한 예술에서만이라도 이런 시도들이 더 많이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마츠카게 히로유키 <사진 작가로서 나 in 서울> 2019

Posted by Art In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