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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회화, 자연 논리에 따르는

2019.12.11 11:54

캐나다 작가 앤드류 다드슨의 아시아 첫 개인전 <Green Piece> (11. 16~12. 20)가 313아트프로젝트에서 열렸다. 그는 캔버스에 쌓아올린 물감을 밀고 당기는 힘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이 힘은 화면 아래로 물감을 떨어트리며 ‘우연’에 의한 효과를 만들어 낸다. 또한 직접 고안한 친환경 물감을 식물 표피 위에 채색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긍정적인 관계를 모색한다. / 조현대 기자



출품작 <House Plants>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앤드류 다드슨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중력이 있기 때문에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갈 수 있다. 중력은 사물과 지구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다. 정확히는 지구 중심으로 사물을 잡아당기는 만유인력과 지구의 자전으로 발생하는 원심력, 즉 자전축 바깥으로 사물을 밀어내는 힘을 합한 값을 의미한다. 끌어당기는 힘과 밀어내는 힘, 즉 인력과 척력에 의해 자연환경은 물론 드넓은 우주 또한 그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한편 고대 서구의 예술은 자연을 철저히 모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하지만 바로 이 목적을 달성하고자 주도면밀한 제작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예술’은, ‘자연’이 우연에 의해 스스로 만들어 내는 아름답거나 아름답지 않은 현상에 비해 열등한 행위로 취급되었다. 결국 예술과 자연의 근본적인 차이는 ‘우연’이라는 예기치 않은 조건의 개입 유무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특히 예술이 ‘자연을 지배하는 법칙’을 모방한다는 데모크리토스(Democritus)적 개념은 이후 중세를 넘어 근대 미학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Half Moon> 리넨에 유채, 아크릴릭 205×152cm 2019
_작가는 유화와 아크릴 등 전통적인 회화 재료에 흙 모래 등으로 경도를 더하거나,
우유의 카세인 성분과 식물성 피그먼트처럼 환경에 무해한 재료를 첨가한다.

<Blue Sea Islands>는 망망대해에 작은 섬들이 솟아나 있는 군도의 풍경을 연상케 한다. 캔버스 곳곳 불룩 튀어나온 물감 섬들은 작가가 팔레트 나이프를 도구 삼아 여러 방향으로 물감을 밀어내며 생겨난 일종의 부산물이다. <Half Moon>은 물감을 밀어내는 도구로 하드보드지를 활용해 좀 더 거친 질감과 패턴의 표면을 만들어 냈다. 이는 가공되지 않은 광석의 미묘한 유광 진회색 물감과 함께 실제 달의 울퉁불퉁한 지표면을 닮았다. 가장 최근에 시도하기 시작한 <Wave> 연작은 해변을 향해 밀려오는 파도의 형상을 띠고 있다. 마찬가지로 두껍게 올린 물감을 화면 아래로 밀어내는 작업 방식을 고수한다.
위 회화들이 나눠 갖는 공통점을 세밀하게 하나씩 짚어 보자면, 우선 천연에서 구한 재료들이 물감에 섞여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작가는 흙 모래 자갈 등을 활용해 물감을 두껍게 쌓아올릴 수 있는 점성과 강도를 만들어 냈다. 둘째, 물감이 완벽하게 건조될 때까지 작품이 변형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물감을 올리고 미는 제작과정 중에 바닥으로 떨어지는 등의 우연적 요소 이외에도 끊임없이 중력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셋째, 자세히 뜯어 보면 상당히 많은 종류의 색이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초기 모노톤 물감만 활용했던 작가가 최근 다양한 컬러에 대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마지막으로 각 작품의 제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다드슨은 중력에 의한 자연 현상들을 회화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달이 지구 주위를 공전하며 파도의 세기, 조수 간만의 차이, 나아가 인간 세계의 시간 개념을 만들어 내고, 이따금 자연이 순환하는 몇 가지 요소들이 우연히 겹칠 때 재해 혹은 기적과 같은 자연 현상이 발생한다. 이처럼 작가가 그려 낸 망망대해 위 군도와 파도, 달의 표면을 그린 회화는 이 모든 것들이 자연과 우주의 순환 논리 안에서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Blue Sea Islands> 리넨에 유채, 아크릴릭 205×152cm 2019

한편 전시장 내 별도의 공간에 설치된 <House Plants>는 캔버스가 아닌 식물 잎사귀를 화폭으로 삼은 회화다. 다드슨은 직접 한국을 찾아 물감을 칠하기에 적당한 넓이의 열대 식물을 선택했다. 그리고 우유에서 추출한 카세인 성분과 식물성 피그먼트 등을 혼합해 만들어 식물에 해가 되지 않는 물감을 잎사귀 전체에 채색한 것. 이 지점에서 작가는 기존 캔버스 회화에서 활용하는 ‘자연을 지배하는 법칙’을 다시 끌어들인다. 화분에 심은 식물은 유기 활동을 통해 성장하기 마련이다. 점차 자라나는 잎사귀 위에서 말라가는 물감의 표면은 조금씩 갈라지고, 갈라진 물감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특히 열대 식물은 비교적 성장 속도가 빠르기도 하지만, 전시장 내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고 식물 생장을 촉진하는 LED 조명을 설치해 더욱 드라마틱한 작품 변화를 지켜볼 수 있다. 
작가는 현재 밴쿠버에서 거주하고 활동하며 지역의 공터나 건설 현장에 자생하는 야생 식물을 대상으로 위와 흡사한 회화적 시도를 즐겨해 왔다. 현대 도시는 인간의 편의만을 위한 콘크리트나 아스팔트 등으로 포장되어 여타 생물이 안착할 구석을 찾아보기 힘들다. 도시 속 이름 모를 야생화는 그 척박한 환경에서도 도로 포장이 부서져 생긴 빈틈에 자리 잡은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이들이다. 그러나 작가가 친환경 물감으로 덧칠한 식물들은 다시 세워질 건물을 위해 뽑혀 나갈 것이다. 다드슨은 고성능 카메라를 사용해 이 식물들을 촬영하고 기록한다. 때문인지 작가는 이를 사진이 아닌 기록, 도큐먼트라고 칭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Pink Yellow Flowers>는 가장 최근에 기록된 도큐먼트 중 하나다. 사진 속 분홍색 물감으로 뒤덮인 식물은 오히려 비현실적인 이미지로 다가오면서, 사라지게 될 식물의 익명성을 강조한다.



<Pink Yellow, Flowers> 잉크젯 프린트 150×190cm 2019

다드슨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유한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이유로, 당연하게도 이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도시는 끊임없이 팽창하고, 이 팽창을 위해 자연을 또 끊임없이 희생시켜 왔다. 인류는 빈틈을 비집고 자라난 식물을 뽑아 가며 자연에 대해 거리낌 없는 부정적 개입을 행하지만, 작가는 자신만의 회화적 방법을 통해 자연과 긍정적인 관계를 모색하며 창작의 폭을 넓혀 가고 있다.



<House Plants> 열대 식물, 우유 페인트,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9

앤드류 다드슨 / 1980년 캐나다 화이트록 출생. 에밀리카예술대학 졸업. 토리노 프랑코노에로갤러리(2017), 취리히 레베르본스텡린 갤러리(2013) 등에서 개인전 개최. 베를린 메디쇼 아크리갤러리(2018), 베이루트 메트로폴리탄 아트소사이어티(2015) 등에서 열린 단체전 참여. 밴쿠버에 거주하며 활동 중

 

Posted by 조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