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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이미지의 ‘진실’을 찾아서

2019.11.11 16:44

히토 슈타이얼의 저서 《진실의 색》은 위기에 처한 다큐멘터리가 예증할 수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 이 양 헌



히토 슈타이얼《진실의 색》(워크룸프레스 2019) 표지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해 보자. 오늘날, 사회적 사건과 관련해 그것을 설명하거나 증명할 수 있는 진실한 이미지를 당신은 떠올릴 수 있는가. 비행기와 충돌해 무너지는 마천루 혹은 뱃머리만 드러낸 채 침몰하고 있는 여객선의 형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한때 세계의 이미지였고 폭로의 장치로서 강력하게 기능했던 다큐멘터리는 이제 그림자놀이가 된 것처럼 보인다. 필름 기반의 다큐멘터리는 디지털로의 전환 이후 그 지표성을 끝없이 의심받는 중이고, 세계의 원리를 산출한 ‘현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다큐멘터리의 장르적 특성은 그 시효가 만료된 듯하다. 무엇보다 언어학적 전회와 이데올로기 비판은 모든 것을 회의하라는 선언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인식론의 전쟁터’로 전환시켰다.



하룬 파로키, 안드레이 우지커 <혁명의 비디오그램> 다큐멘터리 106분
1992_안규철이 번역한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의 《진실의 색: 미술 분야의 다큐멘터리즘》 표지에 삽입된 스틸. 작품은 1989년 루마니아
혁명의 현장이 담긴 다양한 영상 기록을 재구성, 문자가 아닌 영상으로 혁명의 역사를 서술한다.

히토 슈타이얼의 《진실의 색》은 다큐멘터리가 처한 이러한 위기로부터 출발한다. <다큐멘터리의 불확정성 원리>와 <유령트럭: 다큐멘터리 표현의 위기>에서 다큐멘터리는 더 이상 현실을 명징하게 비추며 그 리얼리티를 포착하는 키노-아이가 아니라 차라리 어떤 정서만을 머금은, 거의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 흐릿한 추상화처럼 보인다. 이라크 침공 중 CNN 특파원이 생중계로 찍은 전쟁의 잔상은 낮은 해상도와 불안한 구도에 의해 모호하고 불확정적이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답하지 않는다. 이라크의 대량 살상 무기를 입증하는 일련의 유사-증거들 가운데 컴퓨터로 스케치된 화물 트럭은 매스컴을 통해 과학적 검증 없이도 확증된 지위를 보장받는다. 이것은 실재주의와 구성주의의 화해할 수 없는 심연 사이에서 다큐멘터리의 쇠락한 위상을 보여 주지만, 동시에 불확정성과 정동의 생성은 결함이 아니라 동시대 다큐멘터리의 고유한 특성임을 말해 준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동시대 다큐멘터리가 예증할 수 있는 진실은 무엇인가? 비동일성의 원리를 담지한 에세이 형식 안에서 이 책은 텍스트들을 하나의 관점으로 계열화하는 대신 토대ㆍ상부구조론과 정신분석학, 벤야민의 비판이론 등을 접합시켜 각기 다른 사유의 지도를 그려내고 있다. <증인들은 말할 수 있는가?: 인터뷰의 철학에 대해>에서 증언이나 인터뷰와 같은 다큐멘터리 고유의 방법론은 서발턴이 인식론적 외부에서 오직 침묵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의해 무력화된다. 대신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을 경유해 아우슈비츠 수감자들이 찍은 네 장의 사진이야말로 그 현장의 사건과 시점을 표면화하면서 증언의 불가능성을 언표하는 진정한 증인임이 분명해진다. <실 잣는 여인들: 기록과 픽션>이나 <조심해, 이건 실제 상황이야!: 다큐멘터리즘, 경험, 정치>에서 픽션은 세계를 인식하게 하는 하나의 토대이자 오직 허구의 형태로만 표출되는 진실의 표출구이며, 현실을 초과해 그것을 재창조하는 다큐멘터리의 이중적 속성이다. 새로운 다큐멘터리성은 유물론적 생산관계와 허구의 경계 어딘가에서 가변적으로 그 형상을 드러내고 있다.
수록된 12개의 텍스트 안에서 우리는 우파 포퓰리즘과 대타자로 지탱되는 환상, 외상적 징후, 계급적 적대와 유물론적 생산관계, 원형적인 공동체 신화로부터 출현하는 서로 다른 진실(들)을 대면하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하나의 이미지로 포개질 수도 있다. 책의 표지에는 다수의 인물들이 두 팔을 벌리고 어딘가를 향해 소리치는 흐릿한 형상이 담겨 있다. 그들은 환호하는가, 혹은 절규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해 주려는 것은 아닌가. 이 이미지가 20세기에 존재했던 역사적 순간이거나 누군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다종의 진실들이 유동하는 장소로서 다큐멘터리적 이미지는 오직 자신을 규정하는 우세종의 역학과 기입의 흔적, 호명의 강도만을 보여 줄 뿐이다.

Posted by Art In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