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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의 연금술, 자연에서 구하다

2019.11.08 14:19

멕시코를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 보스코 소디(Bosco Sodi)는 풍부한 질감과 선명한 색채 표현이 특징인 대형 페인팅을 제작한다. 톱밥 점토 흙 등 가공되지 않은 천연 자원을 안료와 혼합해 재료가 지닌 본연의 성질과 가치를 탐구해 왔다. 그가 조현화랑에서 한국 첫 개인전(10. 10~12. 8)을 열었다. ‘이중성’을 주제로 작업한 신작 <흑백> 시리즈를 포함, 다채로운 단색의 회화 소품과 원형의 점토 조각까지 총망라했다. 개인전을 맞아 방한한 그를 만났다. / 이현 기자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보스코 소디

길이 있는 곳에서 우리는 땅을 잊는다. 무엇을 밟을지 보기도 전에 이미 쉬지 않고 밟는 중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등산로를 벗어나 산을 오르는 사람에게는 눈 앞에 펼쳐진 모든 환경이 감각의 순간이다. 풋풋한 향기의 고동색 흙, 견고하고 서늘한 바윗덩어리와 그 틈새로 보송보송 피어오르는 이끼, 물기만큼 미끄러운 누런 모래의 알알,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녹색의 스펙트럼, 한없이 바스러져 땅이 되는 낙엽….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다만 배경일 뿐이지만, 개별 존재로 구분하고 언어를 붙여 줄 때 그것들은 세계를 이루는 구체적인 물성이 된다.
멕시코작가 보스코 소디의 페인팅은 특유의 거친 표면과 쨍한 색채로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대륙의 일부를 그대로 잘라 캔버스에 떠온 듯한 인상을 남긴다. 황색은 사막, 초록색은 아마존, 붉은색은 용암, 푸른색은 태평양, 흰색은 달의 이면. 작품 이미지를 관찰만 해도 손으로 만졌을 때의 촉감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지난 10월 부산의 조현화랑에서 그의 작품을 실견할 기회가 마련됐다. 한국 첫 개인전을 열고, 신작 시리즈 <흑백(Black&White)>을 포함한 작품 총 22점을 선보였다. 폭 3m가 훌쩍 넘는 대형 회화부터 알록달록 단색의 회화 소품, 클레이 조각까지 망라하면서 그의 이름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한국 관객에게 작업의 전반적인 경향을 압축 전달했다. 이번 개인전을 위해 작가는 작년 12월 초 갤러리를 방문하고, 공간 면적을 측정하는 등 전시 구성을 계획했다. “대부분의 출품작은 작업한 지 1년 반 정도 된 신작이다. 어떤 전시에 참여하든지 항상 신작 중심으로 보여 주려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첫 전시인 만큼 이번에는 다양한 색깔과 재료를 사용한 작은 근작도 포함했다. <흑백> 시리즈 외에 내가 화려한 색도 쓰고, 리넨도 쓰고, 나무판도 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무제 (BS 2770)> 캔버스에 혼합재료 92×73cm 2018

이론가들은 소디의 작업과정을 일종의 퍼포먼스로 해석하거나, 작품을 지리적 기후학적 측면에 빗대어 읽기도 한다. 그중 미술평론가 릴리 웨일(Lily Weil)은 그의 작업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소디 회화의 흡입력과 존재감은 공간 전체를 장악한다. 다면화로 구성된 파노라마도, 보다 작은 크기의 단독 회화도, 관객의 눈길을 잡아끈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소디는 여행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무한한 열정으로 세상 곳곳의 희귀한 안료를 찾아다닌다. 색채를 사랑하는 것은 멕시코인으로서 그가 물려받은 기질 중 하나다. 꿈에 그리던 색을 찾을 때마다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독특한 재료 선택과 작업 방식은 철학을 공부한 어머니로부터 접한 일본 ‘와비사비(侘寂)’ 미학이 기반이 됐다. 와비사비는 자연과 시간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소박함 단순함 진실함을 중요한 가치로 인정하는 이론이다. “인공적인 것보다 자연적인 재료가 작품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공장에서 생산된 재료는 매번 똑같은 비율과 배합으로 제조되어 똑같은 결과를 낳지 않는가. 자연은 그렇지 않다. 톱밥을 사용하더라도 나무의 종류에 따라 질감과 색감, 건조 시간이 전부 다르다. 나는 창작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수나 사고도 모두 감싸 안는다. 도구를 쓰지 않고 손으로 직접 재료를 만지면 물성과 에너지를 상호 교환하는 느낌을 받는다.”



<무제 (BS 3025)> 캔버스에 혼합재료 200×280cm 2019

이번 개인전에서 회화와 함께 선보인 클레이 조각은 마치 공룡의 알처럼 생겨 그 알을 깨고 인간이 아닌 생명체가 탄생할 것만 같다. “내 회화에는 우주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동글동글한 모양의 조각을 바닥에 깔아 놓으면서 그 느낌을 보다 강화하고자 했다. 우주의 위성처럼, 분자처럼 말이다.” 조각작업을 위해 작가는 가장 먼저 흙을 산더미처럼 쌓고, 손으로 주무르거나 던지면서 흙 안에 있는 공기를 빼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후 계속해서 동그란 형상으로 모양을 잡은 다음, 처음 2달은 그늘진 곳에서, 그 뒤 2달은 햇빛에 말린다. 마지막으로 특별 제작한 가마에 56시간 동안 열을 가하면 드디어 최종 작품이 탄생한다. 
재료의 속성과 제작과정이 유사한 만큼 소디에게 회화와 조각은 분리된 장르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페인팅은 평면이지만, 내 작품은 표면이 튀어나온 특성 때문에 입체에 더 가깝다. 매체를 페인팅으로 제한하기보다는 마치 인테리어나 물건의 일부처럼 드러내고 싶어 물성을 강하게 표현했다. 회화와 조각의 정의를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그 중간 지점의 장르라고 여긴다.” 오악사카와 뉴욕 총 2곳의 스튜디오에서 제작하는 장르를 구분 짓지는 않지만, 조각은 주로 멕시코에서 다루는 편이다. 작가가 태어난 지역과 연결되는 재료를 찾으려 했고, 그 과정에서 흙을 발견했다. 또한 물 불 바람 등 흙에 관련된 자연의 섭리도 작업의 의미에 담았다.



<무제 (BS 3027)> 캔버스에 혼합재료 150×150cm 2019

한편 작가는 2014년 오악사카에 카사와비파운데이션 (Casawabi Foundation)을 설립(안도 다다오 설계), 비영리재단으로서 오악사카와 도쿄에 전시공간 및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다니엘 뷔렌, 야니스 쿠넬리스, 우고 론디노네의 전시를 개최했으며, 내년 1월까지 이즈미 카토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다방면으로 예술 활동을 펼치는 소디. 그가 구상하는 앞으로의 작업 계획은 무엇일까? “아직 없다. 만약 계획이 있었다면, 이미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대신 내년에 예정된 개인전 스케줄이 끝도 없이 읊어진다. “상반기에는 일본 오사카식물원, 홍콩 악셀베르보르트, 말라가 CAC, 하반기에는 로마 템파뮤지엄USA, 뉴욕 폴카스민갤러리, 로마 트라잔마켓….”

 



보스코 소디 개인전 전경 2019 조현화랑_보스코 소디 / 1970년 멕시코시티 출생. 영국 블레인서던갤러리(2019), 멕시코 힐라리오갈구에라갤러리(2019), 벨기에 악셀베르보르트갤러리(2018), 도쿄 스카이더베스하우스 (2018), 뉴욕 폴카스민갤러리 (2017) 등에서 개인전 개최. 뉴올리언스미술관(2019), 밀워키미술관(2018), 달라스 내셔조각센터(2018), 아스펜미술관(2018), 디종 르콩소시움(2018) 등에서 열린 단체전 참여. 2014년부터 비영리재단 카사와비파운데이션 설립, 전시 및 레지던시 프로그램 운영. 현재 뉴욕에서 거주하며 활동 중

Posted by 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