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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보다 둘, 둘보다는 셋!

2019.09.16 16:14

덴마크 출신 작가 3명이 결성한 그룹 수퍼플렉스(Superflex)의 한국 첫 개인전 <우리도 꿈속에서는 계획이 있다>(8. 14~10. 27)가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렸다. 자본주의적 금융 경제의 흥망과 기후 및 사회 변화의 관계성을 주제로 제작한 회화와 조각 총 12점을 선보였다. 이들에게 ‘연대’는 현재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동력이다. / 조현대 기자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브외른스테르네 크리스티안센(왼쪽)과 야콥 펭거(오른쪽)

수퍼플렉스는 덴마크 출신의 야콥 펭거, 브외른스테르네 크리스티안센, 라스무스 닐슨이 1993년 결성한 3인조 작가 그룹이다. 이들은 경계가 사라진 오늘날 글로벌 정치 경제 문화 속 권력과 자본 시스템을 고찰하며, 이에 반응하는 예술과 예술가로서 역할을 묻고 대답해 왔다. 수퍼플렉스가 한국 첫 개인전 <우리도 꿈속에서는 계획이 있다(In Our Dreams We Have a Plan)>(8. 14~10. 27 국제갤러리 부산)를 계기로 내한했다. 전시의 주제는 ‘자본주의적 금융 경제의 흥망과 기후 및 사회 변화의 관계성’. 대표작 및 신작 회화와 조각 총 12점을 선보였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영향에 대한 수퍼플렉스의 고민과 실천은 그리 낯선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지난 27년간 이들의 활동 방식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왜 이 세 사람은 지난한 합의와 조율의 과정이 필요한 공동 작업을 고수해 왔던 것일까? 이번 전시의 제목에 그 힌트가 숨어 있다. 보컬그룹 아바(ABBA)가 1976년 발표한 <Money, Money, Money>의 가사 일부를 빌려와, 기존 가사의 나(I)를 ‘우리(We)’로 바꿔 제목을 지었다. 전시는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물결 이후 개인과 개인으로 파편화한 현재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방법으로 ‘연대’를 제안하고, 이들 스스로 연대해 다방면으로 실천한 결과물로서 작품들을 제시한다.
전시장 양쪽 벽을 채우는 <Bankrupted Bank> 연작은 물결무늬 사각형 원 등 단순한 조형언어의 회화와 기념비 형식을 빌린 17개의 검정색 패널로 구성되어 있다. 회화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당시 파산한 은행들의 로고를 발췌해 그렸다. “본래 로고는 은행의 이름과 배경이 함께 그려져 있는데, 이를 모두 제거해 추상화된 도상으로만 남겨 놓았다. 신용과 권위를 상징하던 로고의 본래 의미가 완전히 탈색된 것이다. 이는 사라져 버린 금융 기관의 약속, 그리고 신뢰가 끝내 파기되었던 모습과 연동된다.”
다른 한쪽 벽면의 검정색 패널에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5년 동안 파산한 은행들의 리스트와 파산 이후 다른 금융 및 공공 기관이 이를 인수했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전쟁 테러 재난 등을 추모하는 기념비(Memorial)의 형식을 빌려 경제적 실패와 좌절의 역사를 기록했다. 몇몇 은행이 사라졌다 해도 무형의 자산이 끊임없이 이동 증식 증발하는 금융 시스템은 여전히 공고하며, 파산에 대한 책임이 기관에서 개인으로 넘어갔을 뿐 이 역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도 꿈속에서는 계획이 있다>전 전경 2019 국제갤러리 부산

요동치는 하늘색 철 구조물 <Connect With Me>는 최근 격랑이 일었던 ‘비트코인’의 화폐 가치의 변화된 추이 그래프를 스테인리스 파이프로 형상화했다. 개인이 규제와 감시로부터 벗어나 금융 자산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상상력이 탄생시킨 암호 화폐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결국 비트코인 열풍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재확인하는 예시로 남고 말았지만, 한편으로 결국 흥망성쇠의 순환이 경제 논리의 본질이라는 것을 알려 주기도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자신들의 작품을 ‘도구’라고 지칭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예술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라는 태도를 강력하게 드러낸다. 결성 당시 동명의 회사를 설립한 것 또한 이와 관련이 있다. 경제 시스템 내부로 침투해 스스로 생산의 주체가 되는, 가장 역동적인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수퍼플렉스가 생산한 대표적 작품이자 상품이 바로 <FREE BEER>다. 오픈소스 개념을 실물 상품인 맥주에 적용한 사례로, 2004년 코펜하겐 IT 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처음 개발했다. 출품작 <FREE BEER>는 한국 개인전을 맞아 7번째 버전으로 새롭게 제작했다. 누구든 공유된 레시피를 따라 맥주를 만들어 마시거나 판매할 수 있다.



<FRRE BEER> 포토그라비어 인쇄 각 50×50cm 2019_전시기간 동안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체코 출신의 양조전문가의 레시피를 따라 생산한 시제품을 함께 판매한다.

오픈소스가 대량 생산과 소비를 억제해 환경 오염을 줄이려는 시도라면 수퍼플렉스는 환경 오염이 가져올 파국에 대한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Apres Vous, Le Deluge / Year 2104 0.98m>는 바닥으로부터 0.98m 높이의 벽에 설치된 푸른색의 기다란 유리 조각이다. 작품은 인류가 이미 경험했거나 예측한 자연재해를 모티프로 삼는다. ‘당신 이후, 홍수’로 해석되는 제목은 루이 15세가 자신이 죽은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다며 무책임하게 내뱉었던 말을 패러디했다. 푸른색의 유리는 이탈리아 피렌체에 남아 있는 17세기 대홍수 당시 수면의 높이를 기록한 파란 눈금에서 차용한 것. 이번 전시에서는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채택된 해수면 상승 예측치를 인용해 100년 뒤 상승할 해수면 높이에 맞춰 설치했다.
협약 체결 2년 뒤 미국이 탈퇴를 선언하며, 해수면은 기존 예측치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할리우드 재난 영화 속 주인공은 영웅 혹은 희생양을 자처하며 모든 사태를 해결하고 인류를 위기에서 구출하지만, 수퍼플렉스는 이런 스토리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위기를 야기했고, 함께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다. ‘나만 살면 돼’라는 식의 개인주의적 위기 모면은 결코 해답이 될 수 없다.” 이들이 런던 테이트모던 터빈홀과 파주 도라산 전망대에 설치한 <하나 둘 셋 스윙!(One Two Three Swing!)>은 세 사람이 함께 그네에 올라탈 수 있다. 하지만 그네를 움직이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세 명이 정확한 순간에 힘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멤버 간 갈등 차이 실수를 오히려 동력으로 삼는다”는 이들의 말은 크고 작은 갈등의 상황을 해결하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다시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수퍼플렉스 / 1993년 야콥 펭거(Jakob Fenger), 브외른스테르네 크리스티안센 (Bjørnstjerne Christiansen), 라스무스 닐슨(Rasmus Nielsen)이 결성. 런던 테이트모던(2017), 멕시코시티 후멕스현대미술재단(2013), 런던 사우스런던갤러리(2009), 스위스 쿤스트할레 바젤(2005) 등에서 개인전 개최. 샤르자비엔날레(2017, 2013), 광주비엔날레(2018, 2002), 상파울루비엔날레(2006) 등 다수의 단체전 참여. 현재 덴마크 코펜하겐을 기반으로 활동 중

Posted by 조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