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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의 '신성한' 해석

2019.08.20 10:33

한지를 재료로 만든 종이 무구(巫具)와 이를 재해석한 현대미술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 <신물지>가 열렸다. / 장 윤 주



<신물지>전 전경 2019 우란문화재단_사진 오른편에 보이는 4개의 종이 조각은 충남지방 설위설경의 수문철망이다. 꽃 동물 태극 등 다양한 문양으로 촘촘히 오린 종이에 혼령을 가둬 집안의 안위를 지켰다.

우란문화재단 우란1경에서 열린 전시 <신물지(神物紙)>(7. 5~25)의 제목은 ‘신성한 물건, 한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근대화 과정에서 지워진 전통적 세계관, 즉 민간신앙의 모습을 충청남도 지역의 ‘설위설경(設位說經)’(이재선 법사), 한지로 만든 꽃 ‘지화(紙花)’(정용재 장인), 제주 민간신앙에서 쓰인 ‘기메’(김영철 심방)와 같은 종이 무구(巫具)와 같은 민간신앙의 모습을 살펴보고, 이에 반응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김범 이슬기 이유지아 이이난 이진경 등 동시대 작가의 회화 설치 영상작품을 보여 준다. 이를 통해 한지가 단순히 문자를 기록하는 수단이나 매체가 아니라 ‘신성한 물건’으로 어떻게 선조들의 생활 속에서 조형성을 획득하며 세계관을 확장해 왔는지 현대적 시각에서 선보이고자 했다.
‘전통’이라는 말은 근대에 생성된 용어다. 즉, 전통을 전통이라 인식하게 된 것은 근대화라는 커다란 변화와 전환의 세기를 맞아, 분명 존재했으나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들에 대한 기록과 보존의 요구에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남겨진 전통은 무엇이 탈락되고, 왜곡하여 형성된 것인가? 탈락과 왜곡의 과정에서 전통신앙의 세계관은 근대화라는 시대적 프레임이 덧씌워져 ‘미신’이라는 오명하에 전근대적인 것, 비과학적인 것, 낡고 오래된 것, 버려야 할 것들로 배제되어 왔다.



이유지아 <와해경(瓦解經)-떠다니는 그림자> 4채널 영상 설치 10분 2019

역사적으로 도교 불교 유교의 이데올로기 아래에서도 무속이라 불리는 민간신앙은 민중들의 생활과 삶, 관습 속에 그 흔적이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이와 같은 신앙은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이자 미지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죽음’과 죽음 이후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와 존재에 관한 인간의 상상은 현실 바깥의 것으로, 이는 인식 영역 밖의 직관적 경험에 기인한 논리와 합리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현실 ‘너머’ 세상에 대한 관념을 역사 기술과는 다른 방식인 ‘이야기’, 즉 설화 신화 무가(巫歌) 속에 그려냄으로써 비논리적 비합리적 반이성적이라 여겨지는 삶과 죽음의 영속된 세계관을 기억하고자 했다.



이이난 <Beyond Cognition: 종이 무구를 위한 스크립트> 종이 무구, 텍스트, 영상 설치 가변크기 2019_근대화 과정에서 가치가 누락된 것들을 구술 문화의 어법을 빌려 설치작품으로 구현했다.

이를 의식화(儀式化) 의례화(儀禮化)하는 방법으로 민중들은 다루기 쉬운 소재인 ‘종이’를 사용해 초월적 존재나 근본적 두려움에 맞서는 형식을 구현해 왔고, 이는 종이 무구의 형태로 전해진다. 믿음의 대상인 초월적 존재가 물리적인 형태를 갖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기인한 상념임을 인지하고, 종이에 새겨진 문양과 글귀 그리고 조형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시각을 자극하여 직관적 감각을 꾀한 것이다. 이로써 설위설경 기메 지화의 종이 무구는 죽음 이후의 극락을 상징하거나, 현실의 장소를 신성한 장소로 전환하고, 영매가 활동할 수 있는 중간 영역을 구현하면서, 인간과 신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장소성을 의미하는 장치가 된다. 이러한 의식을 통해 인간은 죽은 이의 넋을 기리고 가족의 안녕과 현실의 고통을 신에게 기원하여,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기적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 왔을 것이다.
각각의 요소들은 금기시되고 단절되었던 기억을 복원하면서 전시장을 현대적 제의 공간으로 재구성한다. 이로써 전통이 그 자체로 보존 고립된 것이 아니라 시대적 변화에 따라 굴절 변형되는 과정을 제시하고자 하며, 전통이란 명명하에 미처 기록되지 못한 것, 기억하지 못한 것을 떠올려 보고자 한다.

 

Posted by Art In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