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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미술관 소장품 다시 보기

2019.05.16 12:34

국내 주요 국공립미술관의 소장품 기획전이 잇따라 열렸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은 서로 다른 역사와 규모, 소장품 목록을 갖고 있다. 각 전시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최근 몇 년간 새로 수집한 작품을 소개한다. ‘소장품’을 중심으로 기관의 과거와 현재를 되짚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비전을 가늠해 본다. / 조현대 기자



<멀티-액세스 4913>전 전경 2019 서울시립미술관

작품을 수집 소장 보관하는 일은 미술관의 중요한 기능이자 주요 임무다. 미술관은 소장품과 관련된 연구의 과정과 결과를 공개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소장품 기획전’을 선보이며 기관의 정체성을 구축해 나간다. 최근 3곳의 국내 주요 국공립미술관에서 소장품 기획전을 연이어 개최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린 <신소장품 2017-2018>(3. 21~9. 1)전은 최근 2년간 수집한 소장품의 일부를 소개한다. 큐레이터와 작가가 직접 녹음한 오디오가이드를 관객에게 제공해 하나의 작품이 미술관에 소장되기까지의 여정을 들려 준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를 소개하며 이와 유사한 대중 친화적인 콘텐츠를 계속해서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8년 12월 개방형 수장고 청주관을 개관했다. 수많은 작품이 보관되어 있는 수장고에 직접 들어가 소장품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은 전시를 관람하는 것과는 또 다른 흥미를 자아낸다. 항상 열려 있는 수장고에서 어떻게 대중과 호흡하는 기획 및 프로그램을 내놓을지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한순자 <동그라미들> 캔버스에 아크릴릭 112×146cm 2009_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재-분류: 밤은 밤으로 이어진다>전 출품작

서울시립미술관이 2018년 신소장품을 공개하는 <멀티-액세스 4913>(4. 16~6. 2)전은 총 4,913점에 달하는 소장품 전체 성격을 전시의 형식에 반영한다. 단순히 개별 소장품과 소장 가치를 나열하는 차원을 벗어나 소장품 목록과 카테고리를 보여 주는 전시의 형식은 미술관의 정체성을 규정 짓기 때문이다. <멀티-액세스 4913>전은 소장품 목록을 미술관의 역사와 정체성이 깃들어 있는 저장 장치로 전제한다. 전시는 섹션을 총 3개로 구분한다. 우선 ‘아카이브 룸’은 1985년부터 30여 년간의 수집과 소장품 역사를 나열한다. 연대별 매체별 작품 소장의 현황과 이전 소장품 기획전의 도록도 열람할 수 있다. ‘전시’ 섹션은 수장고 입고시 배정받는 관리 번호의 순서대로 작품을 배치했다. 작품을 디스플레이한 방식은 수장고의 수납 시설과 소장품 관리 문서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특정한 주제를 매개하지 않은 작품의 의미를 명료하게 전달하면서 관객이 스스로 소장품 간의 연관성을 고민하도록 유도했다. ‘스크리닝’ 섹션에는 영상 및 미디어 작품의 소장 등록 번호를 따라 작품을 순차적으로 반복 재생시켜 놓았다. 영상과 미디어작품만 감상하는 섹션이 따로 마련되었다는 사실은 최근 수집한 소장품의 매체적 경향을 드러내 준다. 아카이브 룸의 수집 현황에서도 소장품의 영상, 미디어 비율이 매년 상승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같은 섹션 구분은 관객이 소장품, 그리고 미술관에 접근하는 통로를 다각화한다. ‘아카이브’는 미술관의 역사를 들려 주고, ‘전시’는 현재와 정체성을 말한다. 스크리닝은 앞으로 채워 넣을 소장품 목록을 미리 작성한다. 전시를 기획한 이설희 큐레이터는 알프레드 바(Alfred H. Barr)의 말을 인용해 “미술관의 역사를 역추적하면서 새로 수집한 작품의 역사를 쓰는 일은 ‘우수한 소장품에 의해 미술관의 실체가 형성되고, 변화할 모든 전시의 바탕’이 된다면서, 이번 전시가 “내일의 역사를 함께 써 내려가기 위한 새로운 시도”라고 밝혔다.



이중섭 <정릉풍경> 종이에 연필, 크레용, 유채 43.5×29.3cm 1956_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신소장품 2017-2018>전 출품작

한편 소장품 연구는 작품에 미술사적 가치를 부여하고 소장의 근거를 공식화하는 만큼 신중해야 하는 일이다. 수집 단계에서부터 연구의 방향을 설정하면서 미술관 스스로 비전과 정체성을 확보할 수도 있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은 개관 후 3년 동안 ‘여성주의’에 방점을 찍고 작품을 수집해 왔다. 수원에서 태어난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신여성’ 나혜석의 상징성을 고려한 수집 전략이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 처음 선보이는 소장품 기획전 <재-분류: 밤은 밤으로 이어진다>(4. 2~12. 15)는 총 17점의 작품을 선별해 보여 준다. 전시는 두 섹션으로 나뉜다. ‘첫 번째 밤’ 섹션에서는 1940~50년대생 작가들의 작품을 망라한다. 1세대 여성주의 작가 윤석남(1939년생)의 작품 <인물>은 통나무에 여성의 얼굴을 그려 넣어 따뜻하면서도 강인한 여성성을 표출한다. 부드러운 필치와 다양한 색을 중첩한 추상화 <색놀이-북한산과 캘리포니아 해변>도 돋보인다. ‘두 번째 밤’ 섹션은 여성주의로 분류되는 1960~70년대생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그런데 전시는 이 지점에서 ‘분류’에 의문을 제기한다. 질문의 요지는 이렇다. ‘왜 여성주의를 분류해야 하는가?’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가?’ 그리고 질문의 방향을 관객에게 되돌려 각자의 감각과 관람 경험을 통해 ‘재분류’하기를 제안한다.

Posted by 조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