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EXHIBITION

우리가 되찾은 화가

2019.05.13 15:05

<우리가 되찾은 천재 화가, 변월룡>전은 고려인 화가 변월룡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 조현대 기자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75×60cm 1963_변월룡은 많은 수의 초상화를 남겼지만 자화상은 한 작품만 전해진다.

고려인 화가 변월룡(1916~1990). 그는 200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잊힌 화가였다. Art는 2005년 9월호 특집 <분단을 넘어 이산을 찾아>에서 러시아의 위대한 한인 화가로 그의 일대기를 소개한 바 있다. 2016년 3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된 회고전 <변월룡(Пен Варлен) 1916~1990>은 그의 삶과 예술을 본격적으로 국내에 알린 뜻 깊은 자리였다. 이 전시는 같은해 8월 제주도립미술관의 <고국의 품에 안긴 거장, 변월룡>전으로 이어졌다. 학고재갤러리가 기획한 <우리가 되찾은 화가, 변월룡>(4. 17~5. 19)전은 상업 갤러리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변월룡 회고전이다. 국내외 미술시장에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다시 조명하려는 목적이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스케치 회화 판화 펜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총 189점을 총망라한 대규모 전시. 식민 분단 전쟁 이념대립을 몸소 겪은 그의 일대기를 따라 작품세계가 변화하는 양상을 순차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 동선을 구성했다.



<풍경: 천산에서 독수리를 부리는 사람> 동판화 65×48.5cm 1960_숙청 이후에도 연해주를 주기적으로 방문했던 그는 상상을 통해 한국의 풍경과 사람을 그렸다.

먼저 러시아예술아카데미(현 레핀예술대학) 재학 시절 그린 습작들이 전시의 문을 연다. 인체를 해부학적으로 묘사한 습작 <사람 스케치>(1946),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그린 포스터 <파시즘을 타도하자!>(1942) 등은 그가 대학에서 아카데미즘과 사실주의적 미술교육을 습득했음을 보여 준다. 변월룡은 회화부 소속이었지만 판화에 큰 열정을 갖고 판화실을 자주 드나들며 훈련을 거듭했다. 이번 전시에 회화보다 더 많이 출품된 판화작품이 이를 증명한다. 소나무가 세찬 바람에 나부끼는 장면을 사선을 교차하며 생동감 있게 표현한 동판화 <바람>(1959)에는 렘브란트의 영향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는 생전 렘브란트를 가장 존경하는 화가로 꼽았다. 1953년 북한 평양미술대학교로 파견된 변월룡은 1년 남짓한 시기 동안 전쟁 직후 폐허가 된 북한의 풍경과 사람들을 그렸다. 화가 배운성, 문학가 이기영을 그린 초상화에서는 당시 그가 북한 예술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대표작이자 가장 유명한 작품인 <무용가 최승희 초상>(1954)은 이번 전시에서 마치 무대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처럼 전시장 중앙에 걸렸다. 붉은 한복 차림으로 양손에 부채를 들고 춤추는 최승희의 우아한 몸짓과 표정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이 그림에는 그의 완성도 높은 회화 기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가 되찾은 천재 화가, 변월룡>전 전경 2019 학고재갤러리

Posted by 조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