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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서 ‘자유’를 찾다

2019.04.11 15:01

임옥상의 개인전 <흙 Heurk>(2. 15~3. 16)이 홍콩의 서울옥션 SA+에서 개최됐다.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사회 비판적, 정치 고발적 작품을 선보였던 그가 신작 <흙> 연작에서 ‘흙’과 함께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성찰한다. 작가에게 흙은 생명이 탄생한 곳이자 다시 돌아가야 할 고향이다. 흙과 먹을 사용한 역동적 회화에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담았다. / 김재석 편집장
 


<흙 C1>, 캔버스에 흙, 먹과 아크릴릭 145.1×227cm 2018

임옥상은 ‘땅’의 작가다. 그는 줄곧 땅을 그려 왔다. 이 땅에 사는 ‘민중’의 이야기를 캔버스 깊숙이 녹여냈다. 그의 회화에서 땅은 개발로 뭉개져 피를 흘리듯 울고 있거나, 세상을 향해 화를 내는 것처럼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처참하게 버려진 황무지 같은 풍경들 속에서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농부들이 나무처럼 갈대처럼 서 있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작가는 땅을 그리지 않고, 그 땅을 직접 어루만진다. 지난 2월, 흙을 재료로 삼은 그의 신작이 홍콩의 서울옥션 SA+에서 공개됐다. 제목도 군더더기 없는 <흙 Heurk>이다. 흙의 질감과 먹의 스트로크가 강조된 신작은 임옥상의 것이라 하기엔 낯설어 보인다. 처음 봤을 때 그의 작품이 맞나 싶었다고 조심스럽게 말하자, “그렇게 보기를 기대했다!”고 통쾌하게 받아 친다. 왜 흔하디 흔한 흙을 재료로 삼았을까. “<땅> 연작을 그리면서 늘 괴리감이 있었다. 흙 속에서 뒹굴고 흙의 느낌을 받아야 하는데, 회화라 그러지 못했다. 땅을 그리며, ‘좀 더 가까이 흙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고민했다. 마침내 흙이 그림의 대상이 아니라, 흙 자체가 작품이 될 수 있는 단계를 찾았다. 요즘 흙의 육체성을 만끽하고 있다.”
 


<산수> 코르텐 스틸 270×900cm 2011

그는 <흙> 연작을 흙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작업이라고 소개한다. <흙> 연작은 흙을 캔버스에 5mm 두께로 얇게 바르고 마르기 전에 작업을 시작한다.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캔버스에 흙을 부착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5mm의 기적’, 즉 흙의 육체성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두께도 찾았다. “붓이 지나가는 강약에 따라 두께가 깊어지고 얇아진다. 흙이 뭉쳐지면서 높이 1cm 이상의 굴곡이 생긴다.” 그는 사용 가능한 모든 재료와 방법으로 흙 캔버스를 대면한다. 흙으로 뛰어 들어, 손으로 만지고 발로 밟으며, 붓이나 삽 등의 도구로 긁는다. 봄날 농부처럼 밭에 씨를 뿌리듯 캔버스에 펄프, 꽃가루, 숯, 볏짚이나 곡물들을 던지고 붙인다. 특히 작가의 몸집만한 큰 붓으로 일필휘지 새긴 먹의 흔적은 흙의 물성과 어우러져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다. 기운생동 하는 화면에 작가가 흙을 실험하며 느꼈을 작업의 즐거움도 흘러넘친다. 큐레이터 현시원은 그의 신작을 “느리고 빠른 운동성을 동시에 가진 모순적 회화다. 회화인 동시에 퍼포먼스이며, 퍼포먼스의 기록이기도 하다. 또 흙으로 된 땅이 ‘일어서 있는 것’ 그 자체이기도 하다”고 평한다. 작가에게도 흙은 모순의 메타포이다. “결국 흙은 모순이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고향이자,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죽음의 장소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곳, 그 순환의 중심에 흙이 있다.”
 


임옥상의 작업실 전경. 세계 각국의 정치 권력자들의 두상을 3D 스캐너로 제작했다.

지난 몇 년 사이 임옥상의 ‘뜨거운’ 작품은 갤러리에서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에서 임창동의 영화 <버닝>에서 관객과 만났다. <흙> 연작은 한국사회의 정치적 변화와 작가로서의 세월을 되돌아보며 찾은 출구와 같은 작업이다. 그는 아주 오랜만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했다고 한다. 해답은 ‘자유’였다. “이 시대에 인간이 지켜야 할 덕목과 존엄성, 세상에 대한 연대와 애정은 사그라들고 있다. 나를 즉자적인 존재로서 생각했을 때 ‘자유’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흙> 연작의 캔버스 하단에 ‘한바람 임옥상’과 함께 ‘Im OK’라는 서명이 선명하다. <흙> 연작을 통해 자유를 경험한 그가 세상에 보내는 긍정의 메시지처럼 읽힌다.
 


임옥상 / 1950년 충남 부여 출생. 서울대 회화과 학사 및 석사, 프랑스 앙굴렘 미술학교 회화과 석사 졸업. 가나아트센터(2017), 메이홀(2015) 등에서 개인전 개최. 창원조각비엔날레(2018), 성곡미술관(2017), 인사아트센터(2016), 고양아람누리아람미술관(2015) 등에서 열린 다수의 단체전 참여. 학원미술상(1985), 가나미술상(1992), 토탈미술상(1993) 등 수상. 현재 고양시에 위치한 임옥상연구소를 거점으로 활동 중

Posted by 김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