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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패턴’이 아니다

2019.03.08 14:06

백현진 개인전 <노동요: 흙과 매트리스와 물결>(2. 15~3. 31 PKM갤러리)이 열렸다. <패턴 같은 패턴> 시리즈를 포함한 신작 페인팅과 설치작품을 공개하고, 전시기간 동안 매주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작가는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막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또 다른 노동요’를 상상한다. 직관과 무념이 만든 그의 작업은 관객에게 말한다. “보는 대로 보세요!” / 이현 기자
 


백현진 <패턴 같은 패턴> 시리즈 설치 전경 2019 PKM갤러리

그림 그리는 가수이자 시를 짓는 영화배우, 최근에는 드라마 속 ‘개장수’로까지 변신한 백현진. 그가 PKM갤러리에서 개인전 <노동요: 흙과 매트리스와 물결>을 열고 신작 페인팅, 설치작품,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노동요, 흙, 매트리스, 물결…. 의식의 흐름을 따라 알쏭달쏭 이어지는 전시제목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결정됐다.
“지난겨울 공터 같은 곳에 무심히 버려진 매트리스를 봤다. 동시에 흙바람 같은 것도 보이고, 아지랑이라는 낱말도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그런데 흙과 매트리스, 두 개를 조합해 보니 다소 상징적인 것 같아 그 느낌을 비껴갈 수 있는 낱말을 생각하다가 자연스레 물결이 연상됐다. 평소 물결을 보면서 멍 때리고 중얼거리는 행동을 좋아하기도 하고. 이후 단어들을 전부 감쌀 수 있는 보자기 같은 요소가 필요했는데,직관적으로 노동요가 떠올랐다.” 일반적으로 노동요가 적막함에서 벗어나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 부르는 노래라면, 작가는 오히려 적막한 상태를 유지하며 작업을 해나가는 ‘또 다른 노동요’를 상상했다. 그의 노동요는 노래로 불리거나 회화, 설치, 퍼포먼스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전시장에는 2018~19년 제작한 신작 페인팅 66점이 화이트큐브의 거대한 벽면을 무작위로 가득 채웠다. “내 그림에는 상하좌우 기준도, 전시하는 장소, 위치, 배열에 고정된 매뉴얼도 없다. 작업할 때 캔버스를 돌려가며 그리기도 하고, 설치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세로로 길게 나열하거나 바닥에 눕혀도 되고 냉장고 위에 얹어 놓아도 좋다.” 이번 전시의 페인팅은 전부 93×93cm 사이즈를 기본 규격으로 삼는다. 하지만 숫자에 특별한 의미가 깃든 것은 아니고 리넨 한 롤을 작업실 크기에 맞춰 재단하면서 도출된 실용적인 값이다. 특히 신작은 그의 예전 회화와 다르게 화면을 빼곡하게 채우지 않고 베이지색 리넨을 주재료로 사용한 점이 눈에 띈다. “한 그림 안에 그림을 덜 그리면서, 그렇게 그려진 그림을 굉장히 많이 그려 보고 싶었다. ‘뱃심’이 생기면 가능할까? 생각했다. 그런데 나를 포함한 화가들은 하얀색 표면을 보면 뭔가를 채워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그러던 중 과거 동아시아 미술의 수많은 누런색 그림이 떠올랐다. 여기다가 일을 보면, 좀 되겠다 감이 왔다.”
 


백현진 <쓸쓸한 정전기> 리넨에 유채 93×93cm 2018

출품작은 <패턴 같은 패턴> 시리즈 16점과 저마다 독특한 제목을 가진 작품 50점으로 나눠진다. 각 페인팅은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이기도 하고, 여러 점이 붙어 있는 경우 전체의 구성 요소로서 존재하기도 한다. 비정형의 이미지와 알록달록한 색채 무더기로 구성된 <패턴 같은 패턴> 시리즈는, 패턴 같지 않은 패턴과 낙서 같지 않은 낙서, 무념해 보이지 않는 무념의 집결체다. “<패턴 같은 패턴> 시리즈는 ‘패턴이 될 수 없는, 패턴 같은 무엇’을 생각하며 제작했다. ‘패턴이 읽힌다’라는 표현도 있듯이, 나는 패턴에서 벗어나는 일에 관심 있다. 그래서 오히려 패턴을 작업에 끌고 와 벗어나 보려고 했다. 표면에서 패턴처럼 읽히는 그림들을 <패턴 같은 패턴>의 카테고리로 묶고, 나머지 그림은 이 시리즈에 끼워 넣을 수 없어서 각자의 이름을 붙여 줬다.”
파란색 스파크가 튀는 <쓸쓸한 정전기>, 핏빛 물감을 바탕으로 검고 노란 막대기가 세워진 <엿 같은>, 깡마른 강아지를 드로잉한 <엄청난 동네 개>, 하얀 김이 서린 창문 모양의 <유령 없는 서울> 등 시적인 작품제목은 관객이 그림의 내러티브를 자유롭게 상상하게 만든다. “주로 작품을 완성한 다음 제목을 붙이는 편인데, 사실 제목보다는 별명에 더 가깝다. 별명이란 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고, 바뀌어도 되는 것 아닌가. 그만큼 제목은 그림에 가볍게 태그되어 있는 상태다. 출품작 중 <여기에 있는 모든 그림의 제목은 없어도 좋다>가 바로 내 작품들을 향한 마음이다.”
 


PKM갤러리에서 퍼포먼스 <뮤지컬: 영원한 봄>을 진행 중인 백현진 Photo by 김민수

갤러리 2층에서는 퍼포먼스 <뮤지컬: 영원한 봄>이 전시기간 동안 매주 1회 이상 상연된다. 작가는 전시장을 2~3가지 색상의 녹색 물감으로 퍽퍽하게 칠하면서 노동요를 부르는데, “어긋난 패턴들 / 수줍어 겉도는 / 하염없이 헛도는 / 그래도 괜찮은” 등으로 선창할 때마다 “영원한 봄”이 후렴구로 반복된다. 풀빛으로 물든 전시장은 퍼포먼스 진행 중에는 공연 무대로, 평소에는 설치작품으로 전시된다.
백현진의 작업은 종종 난해하다고 평가된다. 주입식 교육 환경과 정답 강박증으로 ‘패턴’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고, ‘영원한 봄’이라는 메타포를 풀이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작업을 말로 설명할 때면 일종의 해상도를 엄청 떨어트린다고 느낀다. 말로 안 되니까 노래도 부르고, 영화도 찍고, 그림도 그리는 건데…. 이번 전시에 선보인 66점의 페인팅을 보고 66명의 관객이 마음에 드는 작품을 모두 다르게 고른다면 가장 재미있을 것 같다. 관객이 내 작업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느끼고 경험하기를 바란다. 각자가 보는 대로 보는 게 맞다. 어떤 작품이 좋았으면, 그 사람 안에서 뭔가가 벌어지고 있는 거다.” 그는 결과물을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작업하는 순간을 즐기고 무리를 덜 하기 위해서 오늘도 노동요를 흥얼거린다.
 

백현진 / 1972년 서울 출생. 홍익대 미술대학 조소과 중퇴. PKM갤러리(2019, 2016), 페리지갤러리(2017), 쾰른 초이앤라거갤러리(2013), 런던 인버네스스트리트갤러리(2012), 꿀&꿀풀(2012) 등에서 개인전 개최. <커피사회>(문화역서울284 2018), <B컷 드로잉>(금호미술관), <매체 연구: 긴장과 이완>(대구미술관 2017), <도시·도시인>(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17) 등 다수의 기획전 참여. 제6회 올해의 작가상(2017) 후원작가 선정

Posted by 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