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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조각가, 타계하다

2019.01.29 04:24
사유의 조각가, 타계하다
 
지난 12월 13일, 원로조각가 김인겸이 별세했다. 향년 73세. 그는 40여 년에 걸쳐 조각의 세계를 탐구했다. 그것은 조각이면서 조각이 아니고, 평면이면서 입체인 
‘조형적 원형’을 찾는 과정이었다. 형태의 ‘영혼’을 추구한 예술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 김재석 편집장
 

<스페이스리스> 스틸에 분채 도장 200×193×17cm 2017_작가는 이 연작을 “이미지 조각이자, 정신적 영역으로 열어가는 조각과 다름없다”고 표현했다.
 
김인겸은 한국미술사에 ‘공간을 사유하는 조각가’로 남다른 족적을 남겼다. 1945년 수원에서 출생한 그는 홍익대 미술대학에서 조소를 공부했다. 동 교육대학원 졸업 후에 고향인 수원의 유신고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한다. 당시에는 유기적 생명체를 형상화한 <생성> 연작을 제작했다. 1980년, 6년 동안의 미술교사 활동을 마치고 서울 성산동에 작업실을 마련해 작업에 전념한다. 같은 해, 중앙미술대전에 출품한 석조작품 <환기>로 장려상을 받았다.
1988년 가나화랑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 <묵시공간> 연작을 발표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묵시공간>은 ‘한국적인 조형의 특성은 무엇일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작가는 1년간 지방을 다니며 “사찰의 건축, 왕릉의 석탑, 고분의 구조 등을 유심히 관찰”하고, 이를 현대미술의 조형에 접목한다. 오광수 평론가는 맷돌이나 한옥의 문짝 같은 예스러운 형태가 익숙하지만, 조각의 일반적 형태로는 낯선 것이라 지적한다. “이 역설적 상황은 조각이어도 좋고 조각이 아니어도 좋다는 당당한 주장을 내장한 것에 다름 아니다. 상태를 지향한다고 했을 때부터 이미 이 역설은 그의 조형의 요체로서 작용하고 있었다.” 
조각이면서도, 굳이 조각이 아니어도 좋은, 그의 역설적 작업은 1990년대의 <프로젝트> 연작에서 만개한다. 1992년 당시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발표한 거대 설치-조각작품 <프로젝트-사고의 벽>은 큰 화제를 모았다. 작가 스스로 “한국 설치미술의 시작점”이라고 자부하는 작업. 관객은 녹슨 철판을 용접해 만든 미로 같은 12개의 방과 구조물 사이를 오가고, 통로나 내부를 밝히며 명상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촛불과 스테인리스 거울을 ‘경험’하게 된다.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첫 전시에 대표작가로 참여, <프로젝트21-내추럴 네트(Natural Net)>를 선보였다. 1996년에는 한국작가 최초로 퐁피두센터가 운영하는 아틀리에에 입주작가로 초대를 받았고, 2004년까지 파리에 거주하며 활동했다. 스펀지나 스퀴즈 같은 부드러운 고무판을 이용한 먹 드로잉은 2000년대의 대표 연작 <스페이스리스(Spece-Less)>로 이어진다.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부조 같은 입체, 회화 같은 조각”(정연심)이다. 
본지와 작가의 마지막 만남은 2017년 5월호였다. 당시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회고전 <공간과 사유>를 커버했다. 원판과 사각판이 맛댄 최신작이 전시장 입구에 놓였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나만의 조형적 원형을 만들어 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나는 아직도 예술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하던 작가의 모습이 선하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인겸 / 1945~2018. 홍익대 조소과 및 동 교육대학원 졸업. 가나화랑, 공화랑, 표갤러리, 파리 사이트오데옹5, 모니테르갤러리, 마카오 타이파국립미술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등에서 개인전 개최.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첫 전시에 참여. 1996년 퐁피두센터 초청으로 도불, 2004년까지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활동. 가나아트상, 김세중조각상 수상
Posted by 김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