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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말하는 작가 ⑨ 백남준 * 김웅현

2018.11.05 10:21

Art는 10월호 특집에서 작가의 시점으로 한국미술계의 지평을 넓혀 온 주요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다시 조명했다. 이름하여, <작가는 작가의 작가>. 작가는 전시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는가? 한 작가의 조형 방법과 예술정신은 다른 작가의 창작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작가는 작가이기 전에 또 다른 관객이자 그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동지가 아닌가?…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고자 ‘작가 매칭’이라는 방법론을 끌어들였다. 총 11명의 작가들이 직접 보내 온 원고를 공개한다.
 

백남준 * 김웅현

백남준 <TV물고기> 24대의 텔레비전, 어항 24개, 살아있는 물고기, 3채널 비디오 가변크기 1975/1997_<30분 이상>(2. 15~9. 26 백남준아트센터)전 출품작. <30분 이상>전과 <장욱진과 백남준의 붓다>전은 비디오아트의 거장 백남준(1932~2006)의 작업을 새로운 맥락에 위치시켜 다양한 해석을 시도한다. <30분 이상>전은 1960년대 미국과 유럽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던 반문화의 흐름 속에서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재조명한다. <장욱진과 백남준의 붓다>전은 두 작가가 부처상이나 윤회 등 불교의 모티브를 자주 소재로 삼은 것에 착안해, 이들의 예술세계에 불교사상이 어떻게 녹아들었는지를 살핀다.
 

비디오아트, 과거에서 온 타임머신 

2018년, 망점 스크린으로 이루어진 데이터의 가속 순환세계 타임라인은 쉴 새 없이 팝업 시퀀스를 띄우고 연결하여 현실을 생성한다.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은 나의 현실묘사 가운데 비디오아트는 현실로 걸어 들어오는 기다란 회랑 양옆, 대리석 좌대에 위압감 있게 놓인 기사의 갑옷 같은 것이다. 실제 미술관이나 어느 회사 로비에서 주로 보는 비디오아트는 그런 느낌이다. 간혹 그마저도 고장 나 있거나 먼지가 잔뜩 낀 것을 보면 고철 기사의 갑옷처럼 유령 같다.
<30분 이상>전에서 전시장을 거닐며 비디오아트를 오래된 조각처럼 느낀 까닭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폐허의 잔해들을 주워 폐허 위에 폐허를 양산하는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거기서 비디오아트는 과거의 영광을 기리는 기념비이고, 달라진 미래에 남은 과거에서 온 타임머신 같은 것이다. 백남준의 <비디오 꼬뮨>(1970)을 보면 “전자벽지나 라이트쇼로 여기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내레이션이 나오는데,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전자벽지나 라이트쇼가 뭔지 정확하게 감이 오진 않지만 “그냥 벽지라고 생각해”라고 말하며 미디어가 곧 환경이 될 것임을 암시하는 예언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 데이터 환경에서 <비디오 꼬뮨>에 나오는 비틀즈 음악이 자연환경의 매미소리 정도로 들릴 수도 있겠다고 예상하며 ‘전자벽지’라는 단어가 지금 쓰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밖에 다른 작품을 보며 비디오아트가 미디어를 통해 자유로움이나 유희적 상상, 변혁의 상징처럼 활용됐다면, 지금의 미디어를 활용하는 예술은 시대를 부정하고, 역사의 종말과, 혼종열화된 상태의 현실을 묘사하는 특징이 있다고 느꼈다. ‘뭔가 엉뚱하지만 호시절을 그리워하면서 감상해야 하는 건가?’ 하는 자조적 질문이 떠올랐다.
전시에 출품된 백남준의 작품 대부분은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개념적 층위도 제의적인 형태가 더 많아서 미디어 담론보다는 한국의 정서적 측면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젊은 세대의 전시를 볼 때와 비교하면 정말 다르다. 특히 국내의 정서를 반영하기보다 오히려 기피하는 지점이 가장 다르다고 느꼈다. 또 미디어를 재료 삼아 어떤 제의적 형식으로 미래를 그리거나 단순 기술을 응용해 공동체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재료 자체를 열화하거나 합성하는 방식, 서로가 서로를 복제하고 재매개하는 방식들로 현실을 비판적 시각에서 보는 차이점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조금 피곤해졌다. 전시를 감상 대상으로 보지 못하게 된 게 언젠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비디오아트는 더욱 힘든 면이 있다. 그래서 더욱 오래된 조각처럼 보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관찰의 대상에서 이제 주체의 고백이 된 미디어 환경에서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는 폐허를 몇 번 뒤지면 나오는 감춰진 기념비다. 지금 폐허 속에서 답을 구하려는 많은 작가가 구체적 지형으로 들어가는 지도를 찾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환경에서 백남준의 전시는 방향을 잃은 가운데 미디어의 유령을 맞닥뜨리는 기분이 들게 했고, 그것은 썩 개운하지 않은 뒷맛만 남겼다.

김웅현 / 1984년생. 국민대 회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 미디어 보도에서 접한 역사적, 사회적 이슈와 가상현실의 요소를 결합해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모호한 ‘제3의 현실’을 구축하는 영상 조각 설치 퍼포먼스 작업을 전개한다.

Posted by Art In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