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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말하는 작가 ⑤ 윤석남 * 장파

2018.10.24 10:58

Art는 10월호 특집에서 작가의 시점으로 한국미술계의 지평을 넓혀 온 주요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다시 조명했다. 이름하여, <작가는 작가의 작가>. 작가는 전시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는가? 한 작가의 조형 방법과 예술정신은 다른 작가의 창작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작가는 작가이기 전에 또 다른 관객이자 그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동지가 아닌가?…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고자 ‘작가 매칭’이라는 방법론을 끌어들였다. 총 11명의 작가들이 직접 보내 온 원고를 공개한다.
 

윤석남 * 장파


윤석남 <자화상> 한지에 분채 137×93cm 2018_<윤석남>(9. 4~10. 14 학고재갤러리)전 출품작. 윤석남(1939년생)은 자신의 어머니와 할머니부터 이매창, 허난설헌 등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삼아 여성의 강인함을 ‘어머니’로 상징화하고, 그들의 위대함을 회화 및 설치작품으로 표현해 왔다. 이번 전시는 작가 활동 40여 년 만에 자신의 이야기를 주제로 펼치는 첫 전시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전통 채색화 기법으로 그린 <자화상> 시리즈를 통해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이자, 여성 그 자체인 작가 자신의 존재를 조명한다.
 

여성 미술가의 자화상, 그 말년의 양식

혼자 끄적거리는 것이 아닌 보여 줄 심산으로 자화상을 그리려고 몇 번 시도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실패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림을 시작도 못 하고 말았다. 작가에게 자화상은 나처럼 생긴 것을 뱉어내는 것과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자화상을 그린다는 것은 나의 외피가 아닌 본질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고 자신을 대면하는 행위에서 시작한다. 이는 자기 자신을 대상화하여 몸이 직접 느끼는 경험상의 감각을 시각화하는 것으로, 회화의 근원적 문제를 건드리는 무거운 일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허투루 시작할 수가 없다. 하여 자화상을 언제 그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화상을 시작도 못 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여성이 자화상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바로 그것이다. 수 세기에 걸쳐 여성 미술가들은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면서 자화상의 양식과 범위를 확장, 변주했다. 이는 자화상의 기원이 항상 남성의 사례를 통해 설명되거나,1) 남성적 세계를 중심으로 구성된 작품이 대부분이므로 여성 미술가들은 배제되고 누락된 여성의 세계를 다루며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고자 고심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화상의 조형적 형식에 대한 여성 미술가들의 고민은 관습적 표현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을 넘어 단단한 고전성에 균열을 내며, 그 균열의 출발점에 서는 것부터 시작한다.
한편, 여성의 자화상은 손쉽게 나르시시즘으로 읽히곤 한다. 우리는 여성과 거울이 허영과 나르시시즘으로 이어지는 부정적인 상관관계를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떠올릴 수 있다. 왜냐하면 허영은 오랫동안 거울을 들여다보는 여성의 형상으로 의인화되었기 때문이다.2) 나르시시즘 역시 여성의 자기애적 이미지를 ‘비정상적 자기애’로 규정하거나 그것을 여성적 특징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여성이 자기 자신을 표현할 때 그 방식의 범위를 스스로 한정 짓거나 위축시키게 만들었다. 이러한 편견들은 여성이 자화상을 그릴 때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를 우선하여 생각하게 한다. 게다가 여성의 당당한 표정과 미소가 ‘시건방짐’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을 지난 서울시장선거에서 경험한 바 있다.
결국 여성이 자신을 그린다는 것은 시작도 하기 전에 스스로 던져야 할 질문의 층위가 복잡다단하다. 여성의 모습에 대한 다양한 편견들과 마주하며 그림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재현할지 치열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도 자화상을 그린다는 것은 잘해 보려고 미루기만 하는 일이 될지 모르겠다.
윤석남의 개인전 <윤석남>은 제목에서 단언하듯 ‘윤석남’ 작가 본인을 다루고 있다. 주로 ‘어머니’라는 주제로 여성의 문제를 다루어 온 작가가 자신을 대상으로 다룬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전시에서 보여 준 그녀의 자화상은 노년에 이른 여성 작가가 자신을 그리는 심정을 헤아려 보게 하였다. 그것은 자신의 생과 작업을 하나의 이야기로 구축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파열음을 내며, 하나의 통일된 총체성이 아니라 삶의 파편들로 구성된 다른 총체성으로 자신과 여성의 삶을 그려 내고자 함이 아닐지 가늠해본다.
2015년부터 불화 전문가에게 채색화를 배우며 민화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는 작가는 이번 개인전에서 민화의 형식으로 서재와 자신의 작업실을 배경으로 한 자화상을 선보였다. 유교적 이상을 표현한 문인화와 다르게 서민의 소박한 정취가 깃든 민화 형식은 작가가 그간 다루었던 여성의 소서사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윤석남이 그려 낸 다양한 여성들의 삶은 이름 없는 작자들이 남긴 민화의 강렬하지만 부드럽고 따뜻함이 느껴지는 색채와 함께 서로 조응한다.
한편, 한지에 가는 먹 선으로 강약을 주며 빈 배경에 자신의 얼굴과 백발의 머리카락을 두드러지게 표현한 자화상 연작은 정면을 응시하는 작가의 강렬한 눈빛과는 대조적으로 세세한 주름 및 부스러지는 머리카락이 미묘한 긴장감을 형성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림 전반에 보이는 기조는 늙어 가는 자기 몸에 대한 불안도 아니고, 자신이 살아온 삶과 시간의 주름을 펼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화면에서 보이는 단호한 표정과 자세는 남성적 자아의 전형적 표현과는 사뭇 거리가 멀다. 오히려 수십 년간 ‘여성’을 다뤄 온 작가가 ‘내가 나 같지 않다’고 그림 아래 조그맣게 적어 놓은 <자화상> 작업에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분열을 자각하는 순간 그 분열을 은폐하지도 해체하지도 않은 채 그대로 풀어놓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관한 해묵은 궁리에 대한 답을 아직 찾지 못했음을 담담히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자신의 모순과 분열을 그대로 드러내는 데 있어 무거운 고백의 형식이 아닌 담백함이 작가의 태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아직 그의 작업에서 인간사의 속절없음이나 소멸에 대한 사색은 느껴지지 않는다. 흔히 말년이라는 인생의 시점에 다다른 예술가에게 기대되는 그런 것들 말이다. 오히려 자화상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모습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마뜩잖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마뜩잖음은 삶의 허무에 잠식되지 않은 채 자신을 생경하고 힘 있게 다루는 원동력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그의 자화상들은 그간 해 왔던 작업과는 소재와 재료 및 기법 면에서 이전 작업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런데 그것은 혈기 넘치는 예술가의 형식 파괴나 실험적 예술과는 다르다. 젊은 시절 예술가들은 자신의 모순과 사회의 부조리를 극복하기 위해 그것들과 싸운다. 그러나 노년의 예술가들이 보여주는 ‘말년의 양식’들에는 그 모순과 분열이 그대로 나타난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에서 예술가의 말년에 대해 성찰했다. 그는 말년의 개념을 해결과 완성의 말년이 아닌, 모순과 역행, 그리고 파국으로 읽어낸다. 그러며 말년의 양식은 관습적인 것의 영토에 머물지 않고 그것에서 끊임없이 망명하는 형식이라 말한다. 또한, ‘예술적 말년성’은 모순들을 해결하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힘을 지니며, 오류 가능성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성숙한 주체성을 지닌 예술가가 보여줄 수 있는 고도의 경지이기도 하다.
누군가 인생은 나이의 셈이 아닌 질문한 만큼 살아지는 것이라 했다. 윤석남은 지금 자화상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묻고 있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수십 년 대변해 온 작가의 작업 세계를 아는 사람이라면 작가의 이러한 물음이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자신의 작업실을 배경으로 그린 <자화상>은 스스로 물음에 대한 대답처럼 느껴진다. 마치 소설의 액자 구조처럼 자화상 여러 점이 놓여 있는 작업 공간을 장악하며 화면 밖을 응시하는 작가의 모습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넘어 ‘작가’로서의 자의식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그는 여성인 자신을 어떻게 재현할지의 문제를 수십 년간 끊임없이 고민해 왔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고민을 풀어 놓으며 ‘나’라는 ‘이야기’를 쉽사리 서사화하지 않는다. 명쾌한 구분으로 자신을 설명하지 않은 채 여성, 인간, 작가로서의 정체성들을 펼쳐 놓았다. 마치 조각난 거울 파편들을 이어 붙여 ‘거울 밖의 나’를 온전히 비출 수 있게 만들기보다, 각각의 조각들이 ‘거울 속의 나’를 간직한 채 스스로 빛나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1) 프랜시스 보르젤로, 주은정 옮김,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 아트북스, 2017, 27쪽
2) 앞의 책, 33쪽

장파 / 1981년생. 서울대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 사회의 전형적인 여성성에 대한 문제를 회화, 영상, 설치 등으로 고찰한다. 여성 신체를 그로테스크하고 역동적으로 그리면서 남성 중심적 서사에서 소외된 여성의 억압된 감각을 표출한다.

Posted by Art In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