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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말하는 작가 ② 김종식 * 서상환

2018.10.19 15:08

Art는 10월호 특집에서 작가의 시점으로 한국미술계의 지평을 넓혀 온 주요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다시 조명했다. 이름하여, <작가는 작가의 작가>. 작가는 전시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는가? 한 작가의 조형 방법과 예술정신은 다른 작가의 창작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작가는 작가이기 전에 또 다른 관객이자 그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동지가 아닌가?…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고자 ‘작가 매칭’이라는 방법론을 끌어들였다. 총 11명의 작가들이 직접 보내 온 원고를 공개한다.
 

김종식 * 서상환

김종식 <불상> 캔버스에 유채 45.5×53cm 1986_<김종식>(5. 25~8. 12 부산시립미술관)전 출품작. 김종식(1918~1988)은 부산 근대미술의 선구자이자 작가, 교육자로서 부산 근현대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특히 작가가 절정기에 제작한 부산과 경남 일대의 풍경화 50여 점이 대거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김 화백은 활동 초기에 암울한 현실의 애환을 담은 작품을 주로 제작했다. 이후 1960년대 추상적 양식과 기법을 화면에 도입했고, 1970~80년대 특유의 필치와 색채로 추상적이고 명상적인 풍경화를 완성했다.
 

잡히지 않는 무상의 세계로 

김종식 선생의 100주년 탄생을 기념하는 대대적인 전시가 열렸다. 나도 3번이나 관람했고, 지난 날 선생과의 만남을 회상하며 아직도 가르침을 깨닫지 못한 자신을 꾸짖기도 했다. 내가 김종식 선생과 처음 만난 것은 1960년 조목하 선생이 운영하는 경남미술원 서양화반에서였다. 그때 강사진은 김봉기, 김종식 선생이었다. 김종식 선생은 당시 그림 그리는 인구가 아주 적고 일본에 유학한 사람들이 극소수였기에 자존심이 대단하셨다. 사람들은 선생의 그런 여건을 인정해 존경과 흠모를 보냈다. 김선생의 의식은 항상 남들 위에 있었다. 선을 하나 그어도 절대선이었고, 색을 칠해도 절대색이라 할 정도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 1960년대 초에는 주로 부산항을 소재로 야수파적인 굵은 선과 색을 화면에 채우고 있었다. 1940년대에 그린 사회상과는 달리 부산항을 조형화하며 만족하실 때였다.
나는 그 후 5년간 경남미술원 기초과정을 마치고, 1964년 12월 부산공보관 2층에서 수료작품전을 열었다. 조목하 선생은 “나는 서 군에게 더 가르칠 것이 없으니, 김종식 선생께로 가라”고 하셨다. 김 선생의 그림 지도 방법은 아주 독특하고 간단했다. 가지고 간 그림을 완성과 미완성 두 가지로 구분하고, 완성은 왜 완성인지, 미완성된 것은 왜 미완성인지, 그 해답을 찾아오라는 선문답 같은 것이었다. 밑도 끝도 없이 하시는 말씀은 가슴에 충격으로 남고 남았다. 그것이 선생의 지도 방법인 것을 한참 세월이 흐른 후 알았다.
한번은 태어난 곳이 어딘가 물어보시기에 경남 거창이라고 말씀드렸더니, 거창은 아닌 것 같다, 분명 고도(古都)에서 태어났을 거라며 어른들에게 물어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어른들에게 물어보니 일본 교토(京都)에서 태어난 것이었다. 선생께 사실을 말씀드렸더니 “자네 그림 속에는 옛 분위기가 가득하다” “자넨 그림엔 이코노그래피(도상학)적인 색채가 강해 신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풀기가 어려우니 신학을 공부하라”고 권하기도 하셨다. 그 후 나는 1966년 신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2학년 미술시간에 조르주 루오의 생애와 예술을 듣고 하나님께 루오와 같은 종교화가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달라고 서원기도를 한 적이 있다. 이처럼 선생의 깊은 통찰력은 순간순간 나를 놀라게 했다. 한번은 옥영식, 신옥진 공간화랑 대표, 나 세 사람이 선생 댁을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선생은 “옥영식 자네는 미술평론을 하고, 신 군은 화랑을 하고, 서 군은 그림을 그리라”고 하신 일이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 그 말씀대로 되었다. 
선생은 늘 다방이나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셨다. 다방에 앉아서 펜으로 드로잉하기를 거의 평생 하셨고, 그 펜화 속에는 선생의 애환이 그대로 스며 있었다. 그 드로잉은 자신을 치유하는 방법이 아니었나 싶다. 선생의 그림을 가만히 보면, 1940년대의 작품과 1960년대 작품이 아주 다르다. 1940년대 작품에는 현실의 상황에 초점이 맞추어 있고, 그 시점은 1960년대에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화재와 아들의 죽음이 그 변화의 원인인 것 같다. 1960년 이후는 물상의 구체성에서 벗어나 꿈속에서 헤매듯이 보아도 보이지 않고, 잡아도 잡히지 않는 무상의 세계에 몰입했다. 선생은 사회 속에 있으면서 사회와 무관한 삶의 허구 또는 무릉도원의 세계를 꿈꾸었는지 모른다. 그림을 통하여 자신을 구원하고 인류를 구원한 루오처럼 차분히 내면세계로 진입하여 영원의 세계에 귀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날 미술비평가들이 화단의 1세대 작가들을 평가할 때는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이면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김종식 선생의 경우에는 가정사뿐만 아니라 식민지시대에 젊은 엘리트들의 예술적 한계를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한 시대 작가의 작품과 작품세계를 올바르게 규명해 낼 것이다.

서상환 / 1940년생. 개인전 48회. 송혜수미술상, 부산시문화상 수상. 시화집, 아이콘(Icon) 화집 다수 출간. <단색목판화 작업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 연구로 미국 루이지애나 침례 대학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Posted by Art In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