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EDITOR'S VIEW

종이매체에 담기 ‘어려운’ 미술의 진일보한 ‘그릇’을 고민하며

2017.06.07 19:32

포스트디지털 시대, 종이매체를 향한 사유

종이매체에 담기 ‘어려운’ 미술의 진일보한 ‘그릇’을 고민하며

마이클 맨디버그 <Burned Books>백과사전에 레이저 컷팅 2009~11 

포스트디지털 시대에 종이매체란 어떤 의미인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그리고 온갖 인터넷 뉴스의 바다에 서식하는 이들에게 어쩌면 ‘느리디 느린’ 매체일 수도 있겠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요즘 사람들은 온라인에 뜨는 실시간 뉴스와 더 친하다. 친구가 페이스북에 링크한 뉴스나 포털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본 뉴스’를 주로 읽는다. 눈길을 사로잡는 사진과 영상이 가득한 인스타그램 뉴스계정을 자유자재로 ‘팔로우’하거나 ‘언팔로우’하고, 정치인이나 셀러브리티가 트위터에 즉흥적으로 올린 글을 필터링 없이 접하기도 한다. 디지털 세계의 독자들은 뉴스의 수동적 소비자를 넘어선지 오래다. 기사가 업로드된 지 불과 몇 초 안에 댓글을 달거나, 자신의 SNS에 뉴스를 링크하면서 주관적 소신을 덧붙여 이슈를 확대 재생산하기까지 한다. 반면 종이매체는 인쇄 직전까지 가능한 정보를 (독자의 기준이 아닌) 편집자의 기준에 따라 ‘영구적으로’ 묶어낸 형태. 독자는 기사가 통으로 묶여있는 신문이나 잡지에서 원하는 콘텐츠만 골라서 구입할 수 없다. 인쇄가 끝난 결과물에 개입할 방법도 별로 없다. 번개 같은 속도를 자랑하고, 독자의 실시간 개입까지도 가능한 온라인 매체환경에 길들여진 이들은 전통적인 종이매체를 ‘답답해’할 것만 같다. 종이매체는 온라인매체의 ‘우월함’에 밀려, 많은 이가 우려하듯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는 걸까? 

매체평론가이자 뉴미디어 담론을 다루는 잡지 《뉴랄》의 편집장인 알레산드로 루도비코(Alessandro Ludovico)는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포스트디지털 프린트: 1894년 이후 출판의 변화》(미디어버스 2017)에서 “종이의 죽음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종이책의 특수한 가치를 디지털 출판물과의 비교우위를 언급하면서 차근차근 설파한다. 첫째, 종이책은 시각은 물론 촉각, 후각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독자를 다각도로 자극한다. 이러한 특징은 독자가 책 속의 정보를 마치 사진을 찍은 것처럼 기억하도록 하며 학습효과를 높인다. (그러나 스크린은 유동적으로 변화하며 이러한 감각을 활성화하지 못한다.) 둘째, 종이책은 그 물성을 통해 저자와 독자 사이에 실재적이고 물리적인 공간감각을 형성한다. 펼쳐진 책장 위에 줄긋기, 낙서, 메모, 포스트잇 붙이기 등의 행위를 통해 독자의 기억을 덧붙일 수 있으며, 조각조각 오려서 수없이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도 있다. 셋째, 종이책은 수천 년에 걸쳐 반영구적으로 보존되어온 효과적인 아카이빙 수단이다. (반면 디지털 출판물을 모은 디지털 아카이브는 생각보다 상당히 불안정하다. 현존하는 기술로는 데이터를 최장 50년 정도 보존할 수 있을 뿐이며, 그마저도 저장장치가 물리적 충격을 받거나 데이터를 보유한 서버에 이상이 생기면 영영 잃어버릴 위험도 상존한다.) 

마타 미누진 <The Pantheon of Books>1983/2017

그렇다면 서로 다른 콘텐츠를 정교하게 연결해 독자가 필요에 따라 텍스트를 이동해가며 읽는 인터넷의 ‘하이퍼텍스트’ 기능을 디지털 출판에 적용한 경우는? 저자는 이것 역시 “아날로그 책읽기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종이책에 수록된 주석, 용어집, 참고문헌을 동시에 찾아가며 읽거나, 일정 부분을 건너뛰고 읽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 그의 결론은 인쇄출판과 디지털 출판은 완벽하게 분리되어있지 않으며 오히려 이 둘은 이종교배하며 진화 중이라는 것이다. 인쇄출판은 하이퍼텍스트의 독특한 조합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하고, 블로거의 인쇄출판이 늘어나는 환경 속에서 저자와 편집자, 독자는 책의 제작과정에서부터 평행하게 소통하는 ‘블로그적’ 과정을 거치는 추세다. 디지털 출판은 태생적으로 종이책의 레이아웃을 모방하여 탄생한데다가, 위키피디아처럼 끝도 없는 하이퍼링크로 구성된 매체 또한 자신의 콘텐츠와 연동되는 종이책 제작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에 있을 정도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의 종이책에 대한 ‘사랑’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아카이브형 작가’들의 전시방식이 인쇄물을 보기 좋게 나열하는 전통적인 ‘종이 아카이브’인 점도 그렇고, 종이책 자체를 개념적, 물리적 재료로 삼은 작업도 꾸준하다. 2017년 도쿠멘타에서 선보일 마타 미누진(Marta Minujin)의 <책의 신전(The Pantheon of Books)>도 책이 ‘주인공’이다. 물론 책의 전통적 가치에 이의를 제기하는 마이클 맨디버그(Michael Mandiberg)의 <불에 탄 책(Burned Books)> 연작도 타당하다. 작품을 보여주는 화집 또한 더욱 더 ‘예술적’으로 진화 중. 한편 포스트인터넷아트, 무빙이미지 등 종이매체에서 그 생생함을 담기 힘든 미술의 시대이기도 하다. Art 역시 인쇄기반의 매체로서 종이와 인터넷, 혹은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하이브리드’의 기획을 고민할 때가 아닐까. / 채연 기자

Posted by 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