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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게 보내는 문화예술정책에 대한 제안

2017.06.07 19:30

새 정부는 ‘문화력’을 양성하라!
대통령에게 보내는 문화예술정책에 대한 제안

미술동네의 물리적, 심리적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다. 이렇게 총체적으로 힘든 적도 드물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미술관도 예외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안정돼 보이는 미술관도 내부적으로는 사업이 축소, 취소, 부분 조정되거나 인력 재배치, 구조조정 등 크고 작은 내홍을 겪고 있다. 물론 이른바 잘나가거나 세를 확장하는 일부 화랑, 작가, 미술관도 있지만 크게 봤을 때 작금의 미술계는 심히 위축되어있다. 그동안 미술을 유지해온 주요 주체들의 타성과 관행, 관성에 따른 결과라는 지적이 있지만, 정치, 사회, 경제 등과 같은 외적 요인도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문화, 그중에서도 미술을 제일 먼저 잘라버리고 형편이 나아지거나 살만하면 제일 늦게 그것도 아주 작게, 혜택 아닌 혜택을 던져준다. 관행 아닌 관행이다. 그것이 어디 정부나 지자체뿐이랴. 기업, 문화전문기관, 가계 모두 마찬가지다. 미술이 경제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휘둘리는 부정할 수 없는 슬픈 현실이다. 언제까지 미술은 선심 쓰듯,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하며 던져지는 지원에 목을 매야 하는가? 장기적으로 미래의 미술문화를 예비하는 합리적 모색과 방안은 없는가? 

미술관 후원을 위한 합리적 해법 필요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말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오랫동안 수도 없이 문화현장을 발로 뛰어다니며 현장의 소리와 의견을 들어왔음을 대부분의 미술인들은 알고 있다. 현장에서 접한 민원과 청원도 많았을 것이지만 새 정부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화현장이자 산실인 미술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주지하다시피 미술관은 대표적 문화공공재다. 설립 주체와 관계없이 공적인 문화생산과 소비가 이뤄지는 생활공간이다. 미래의 국력인 ‘문화력’을 예비하는 생산기지다. 과거는 물론, 동시대의 살아있는 문화유산을 갈무리하여 다양한 의미구조와 유무형의 문화가치를 창출하는 미래적 공간이기도 하다. 또한 작가들에게는 소장품 수집과 전시를 통한 공증과 상장의 장으로서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다. 수용자인 시민에게는 사회교육과 평생교육의 장으로서 기능을 수행하는 또 다른 차원의 교육기관이자 소통의 장이다.
사실 국공립미술관은 자체 기획의 전시에 일체의 현물, 현금 후원을 받지 못한다. 재정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 상태의 국공사립미술관이 미술의 오늘과 내일의 비전을 안정적이고 힘있게 제시하고 인큐베이팅하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전문인력과 전시를 위한 예산의 한계가 특히 그러하다. 전지구화 시대 속에 미술문화 소비자들의 눈높이는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 수용자의 요구와 소비욕구를 공적으로 자극하고 만족시키는 양질의 전시기획과 진행에 소요되는 인건비와 예산을 미술관 자체 재원으로 충당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특히 국공립미술관이 민관, 기업 등의 후원으로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합리적 해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큐레이터 처우 개선
또한 새 정부는 미술관의 중심에 있는 큐레이터에 대한 관심을 전향적으로 새롭게 가져주길 바란다. 이들 대부분은 열악한 처우 속에 건강한 미술관 문화 정립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미술관이 올바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국내 사립미술관의 경우는 물론이고 국공립의 경우 대부분의 큐레이터가 계약직 형식으로 고용되어있다. 지난 2004년 가을로 기억한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큐레이터와 같은 전문계약직 공무원들을 계약직화시켜 버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큐레이터들은 전문직이었으며 전문가로서 대접을 받았다. 당시 필자의 급여 명세서에는 ‘전문가 박천남’이라고 찍혀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전문가’라는 큐레이터의 전문 직렬을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곧 ‘전문’이라는 직렬과 ‘가’라는 직급의 표기임을 알았다. 당시 전문계약직의 직급은 ‘가나다라마’로 나뉘어있었다. 노무현 정부의 일방적 지시로 최장 5년 이내로 재계약이 가능한 계약직으로 신분이 전환되면서 급여명세서의 표기가 바뀌었다. ‘계약가 박천남’이었다. 전문계약직의 ‘전문’이 아닌, ‘계약’이라는 단어를 적시, 강조한 것이었다. 
직렬표기가 바뀌면서 신분도 전문직에서 계약직으로 바뀌었다. 고난의(?) 시작이었다. 큐레이터의 호칭과 인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여직원의 결혼, 출산, 진학 등등은 사실상 어려워졌고 연단위로 재계약을 하면서 경험하는 일들은, 요즘말로 “내가 이러려고 공부를 했나?”하는 자괴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이후 많은 큐레이터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계약이 연장되지 않거나 특별한 사유 없이 임명권자인 관장의 입맛대로, 행정직 공무원들의 판단 및 분위기에 의해 평생 일터였던 미술관을 떠났다. 다른 미술관으로 일터가 이어지지 않으면 차츰 일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경력단절의 상태로 빠져들기 일쑤였다. 미술관이라는 곳은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일을 추진하는 곳이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신분과 불안한 상태에서 큐레이터들이 힘있게 일을 하기란 쉽지 않다. 임명권자, 혹은 행정 공무원들의 눈치를 살피고 그들에게 발목을 잡히면서 관객과 시민을 위한 공공의 프로그램을 소신껏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미래의 국력은 바로 ‘문화력’
당시 정부는 왜 전문가들의 전문성에 재갈을 물렸는가? 왜 그것이 전문직 공무원들에게만 적용되고 유지되어야만 하는가? 문화전문인력인 미술관 큐레이터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이들에게 적용되어 있는 고용형식을 합리적, 미래적으로 개선하라. 이들이 건강할 때 건강한 미술관 문화는 꽃필 수 있으며 건강하게 후대에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큐레이터를 중심으로 한 미술관 전문인력의 급여, 신분, 인식에 대한 합당한 법적 틀을 새로이 만들어달라. 전문가가 전문기관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달라. 전문기관을 장악하고 있는 비전문인들의 구성 비율을 일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는 전문인들로 과감히 대체하라. 국내외에서 전문적으로 공부한 고급 전문인력 상당수가 실/휴직상태거나 그야말로 비정규직 상태에 놓여있다. 새 정부는 이들 인력을 미술관, 교육현장 등 해당 분야에 적극 투입, 활용할 필요가 있다. 아니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풀어야할 원죄적 의무가 있다.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미래의 국력이 ‘문화력’임을. 그리고 그것이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 박천남(성남문화재단 전시기획부장)

Posted by Art In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