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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s

권영석展

2017.02.06 11:25

권영석展

2016. 11. 23~28 가나인사아트센터

<Dancing in blues> 캔버스에 유채 90.9X72.7cm 2015
 

권영석은 40대에 그림을 시작한 늦깎이 신인이다. 사연이 있다. 원래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의류 사업에 몸을 담았다가, 그림으로 ‘전향’한 것이다. 권영석의 회화는 패션의 체험을 조형의 자산으로 삼으면서도, 그 디자인의 감성을 뛰어넘는 일에 도전하고 나섰다. 디자인의 감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회화적인 것(painterly)’의 대극에 있다. 미술사에서는 붓 터치가 일렁이는, 뜨거운 감성이 실려있는 작풍을 ‘회화적’으로, 윤곽선이 명확하고 마티에르마저 매끈한, 차가운 이지적 성격의 작풍을 ‘선적(linear)’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이분법에서 보면 디자인은 확실히 ‘선적’인 특성에 가깝다.
권영석은 작업 초기에 사각의 색면을 반복 나열 교차 구축하는 일련의 추상을 제작했다. 패션디자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원단의 문양 혹은 무늬에 대한 구성 감각, 이른바 패턴의 조형과 그대로 맞닿아있다. 그러나 권영석의 발걸음은 곧바로 ‘회화적’으로 이행한다. 작품은 색채, 뉘앙스, 분위기 같은 일종의 숭고(sublime)에 방점을 두는 전면균질(all-over)의 추상으로 바뀐다. 땅이나 하늘 혹은 석양 같은 풍경, 은하수 같은 우주, 이름 모를 행성의 지표, 기시감(deja-vu)처럼 불쑥 떠오르는 어떤 자연의 흔적 같은 이미지…. 화가 스스로도 그림을 통해 ‘마음의 정화(catharsis)’를 이룩한다고 고백했듯이, 깊은 내면에서 감성의 촉수가 끓어올라온 작품이기도 하다. 내면적 충동, 앙양, 긴장 등 근원적인 인간의 감정, 삶의 감춰진 의미…. 
권영석의 최근작은 화가의 호흡, 신체 리듬이 강조되는 ‘표현적인’ 작품이 많다. 이 작품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큰 붓 터치로 글씨를 쓰듯이 과감한 속사(速寫)로 제작한 작품군이다. 미끄러지는 붓의 궤적으로 작품이 결판나는 만큼 에너지를 일시에 총력 집중해야 하는 작품이다. 권영석은 마치 자신이 좋아하는 검도를 수련하듯이 화면과 맞붙는다. 붓은 죽도(竹刀)처럼 민첩하게 화면을 찌른다. 붓은 바람을 일으키고, 붓은 구름을 띄우고, 붓은 폭포를 세운다. 또 하나는 짧은 선으로 낙서하듯이 화면을 가득 채운 작품군이다. 탈방향의 선들의 교집합, 그 페티시적 반복 행위는 미궁의 화면을 만들어낸다. 중심을 결여한 구도, 이 ‘혼돈 속의 질서(chaosmos)’의 틈새에서 삐져나오는, 저 꿈틀대는 미세한 뉘앙스가 매력이다. 사실, 이 두 부류의 작품은 호흡의 강약, 감정의 온도, 시간의 장단이 서로 다르다. 권영석은 이 양극을 오가는 조형의 긴장을 즐긴다. 그는 말한다. “나는 에지(edge)를 좋아한다.” 한가운데서 가장 먼 모서리는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다. 그 모서리를 즐기는 일이야말로 ‘삐딱이 근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모서리에는 외줄을 타는 곡예 같은 짜릿함이 살아있다. 위험하지만 동시에 모험과 도전이라는 실로 가치 있는 예술의 가능성이 서식하는….
권영석은 이번 개인전의 주제를 ‘들숨 날숨(Breathe in Breathe out)’으로 내걸었다. 산소를 들이마시고(들숨),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는(날숨) 에너지 작용, 이것을 ‘호흡’이라 일컫는다. 호흡이란 생명 현상 그 자체다. 그리고 보면, 그가 꽃이란 소재를 줄기차게 끌어들이고 있는 것도 이 호흡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삼라만상의 생성과 소멸이 결국 호흡의 다른 이름이 아니겠는가. 호흡이란 사상(事象)의 질서다. 권영석은 이 질서를 자신이 일상과 호흡을 맞춰 가는 일, 그 긍정적인 삶의 힘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이 화가에게 호흡이란 그림을 통한 정신적인 치유(healing)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나아가 그 호흡의 의미는 사람끼리의 소통이나 사회적 소통 등 더 큰 이야기로도 뻗어나갈 수 있으리라. 
/ 김복기 대표

 

Posted by Art In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