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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개관

2016.11.02 16:37

‘물방울 화가’, 제주에 정착하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개관
 


김창열 / 1929년 평안남도 맹산 태생. 1971년 물방울을 소재로 다룬 이래, '물방울 화가'로 불려 왔다. 2004년 프랑스 국립주드폼미술관에서 물방울 예술 30년을 결산하는 전시를 열었고, 한국에서는 2009년 부산시립미술관, 2014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작품세계 전반을 회고하는 전시를 개최했다.

‘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의 예술 세계를 기리는 미술관이 건립됐다. 제주시는 한경면 저지리 문화예술인마을 내에 총사업비 92억 원을 투입해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을 올 5월에 완공했다. 지상 1층, 연면적 1,587㎡ 규모. 김창열 화백이 총 220점의 작품을 기증했다. 지난 9월 24일 문화예술계 인사, 기관 단체장, 지역 주민 등 500여 명이 참석해 개관식을 열었다. 김창열미술관은 수년 전부터 양평, 경주 등에서 건립이 추진됐으나 무산되고, 결국 제주에 둥지를 틀었다. 김 화백은 미술관 개막에 감격적인 소회를 밝혔다. “6.25전쟁의 혼란기에 제주에서 살면서 이중섭 등 좋은 분들을 만났다. 이후 서울, 뉴욕을 거쳐 파리를 흘러 다니며 반세기를 ‘떠돌이’로 살았다. 이국 생활은 정서적으로  ‘유배’나 다름없어 내 나라 땅에 삶과 예술의 종착지를 찾았는데, 제주도가 흔쾌히 내 작품을 받아줬다. 달마대사는 10년의 면벽 끝에 득도했다는데 나는 평생을 물방울을 그리고도 득도는커녕 아직도 속물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미술관을 지어 받았으니, 어쩌면 달마대사 못지않은 보상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회귀> 캔버스에 아크릴릭, 유채 194×300cm 2012

김 화백은 1929년 평안남도 맹산 태생. 해방공간의 혼란기에 남으로 내려온 실향민이다. 이쾌대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워 1949년 서울대 미술대학에 입학했으나, 6.25전쟁 발발로 학업을 중단했다. 이후 경찰학교에 지원해 1952년부터 1년 6개월 동안 제주에서 경찰로 근무한 인연이 있다. 이 인연이 결국 미술관 건립으로 이어진 것. 미술관은 건축가 홍재승이 설계를 맡았다. ‘신전’ 혹은 ‘무덤’ 같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김 화백의 뜻을 반영해 나뭇결 문양의 검회색 콘크리트로 외벽을 단장했다. 또 건물 중앙에 물을 채운 중정을 만들어 물방울이 자연 광선에 반사되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연출한 것도 특징이다. 한편 초대관장으로는 전 대구미술관 관장 김선희가 선임됐다.
 


<제사> 캔버스에 유채 46×40cm 1964

개관전 <존재의 흔적들>은 기증 작품을 연대기로 구성해 김창열의 예술 세계를 조망하는 자리다. 1960년대 초 전쟁의 상흔을 담은 앵포르멜 작품에서부터 1970년대에 물방울 그림이 나오기까지의 조형 궤적을 반추하는 ‘물방울의 기원’, 1980년대 이후부터 90년대까지 천자문을 병행해 그렸던 <회귀> 연작 중심의 ‘존재의 흔적들’, 물방울이라는 모티프로 일관하면서도 캔버스 마포 신문지 모래 나무판 등 다양한 지지체를 끌어들인 ‘물방울의 변주’ 등으로 구성됐다. 전시 서문에서 문학평론가 이어령은 그 물방울의 세계를 “정념도 이념도 모두 걸러내고 마지막 고통마저도 저온 처리한 궁극의 결정체. 오랜 질문과 탐색 그리고 참음과 기다림의 시간이 아니면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그의 정신의 결정작용”이라 썼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건물 외관

김창열 화백은 물방울 그림으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대중적인 인기는 물론이고 미학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물방울 그림은 곧 사라질 찰나를 붙잡고 있다. 그는 이 물망울이라는 단자(nomad),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궁극의 실체에 삶의 희로애락, 존재의 흔적, 더 나아가 사상(事象)을 뛰어넘는 공(空)의 세계, 무(無)의 세계를 농축해냈다. 45년간 파리를 무대로 작품 활동을 펼쳐 국립주드폼미술관에서 초대 개인전을 개최하는가하면,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Posted by Art In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