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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헌展

2016.04.06 15:47

‘불편한 시대’ 그리기
김정헌展 3. 17~4. 10 아트스페이스풀

김정헌 개인전 <생각의 그림·그림의 생각: 불편한, 불온한, 불후의, 불륜의, ···· 그냥 명작전>이 개최됐다. 작가의 그림과 글을 담은 《김정헌의 이야기 그림·그림 이야기》 출판 기념회도 함께 진행됐다. ‘현실과 발언’ 핵심 동인, 문화예술행정가, 시민단체 소속 활동가 등 그의 이름에 붙는 많은 수식어를 내려 놓고 이번에는 오직 ‘화가’로 대중 앞에 다시 섰다. 작가와 만나 전시를 개최한 소감, 전시와 출품작에 대한 소개, 또한 예술가로서의 삶에 대한 성찰을 들어 보았다. 이는 곧 작가가 지난 세월 동안 다양한 활동을 통해 궁극적으로 실현하고자 했던 가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달의 중력으로 군함도를 격파하라> 캔버스에 아크릴릭 73×91cm 2015_아트스페이스풀 개인전 출품작. 전시는 민중미술의 대표 작가이자 ‘현실과 발언’의 창립 멤버인 작가 김정헌의 12년만의  개인전. 신작 및 그간 구작 30여 점 출품. 김정헌은 민중미술, 교육, 문화예술행정, 시민단체 활동 등 다양한 범주에서 삶과 예술을 연결시키려 적극적으로 행동한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는 작품 대부분이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 연결되어 있는 시대적 과제물이며,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생각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Art 2004년 <백 년의 기억>전을 끝으로 12년 만에 개인전을 개최한 소감이 궁금하다.

오랜만에 전시를 하게 됐다. 전시회가 힘들고 쉽지 않은 일인 줄 알지만, 작품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이전 전시에서는 실망도 많이 하고 괜히 쓸데없는 일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관객들의 반응이 비교적 진지하고 좋은 것 같다.
 

Art 이전 전시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힘들었는지?

1997년 학고재 개인전에서는 관객들이 내 그림의 의도를 읽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당시 전시장에는 관객도 거의 없었을 뿐더러 관객이 내 그림과 감각적으로 교감하거나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또한 당시 미술교육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미술교육에서부터 뭔가 잘못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학생들은 미술에 대해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단순한 실기 중심으로 대부분의 교육이 이뤄졌다. 그래서 당시 ‘비주얼 리터러시(visual literacy)’, 즉 ‘시각적 문해력’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깨달았다. 당시 전시는 자기반성을 하게 된 계기도 됐다.
 

Art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가가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는가?

지금 우리는 편하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 가운데 살고 있다. 미술을 통해 이 편하지 않은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미술과 무관하게 사는 관객들도 이런 작품들을 보면 ‘세상이 그리 편치 않은 분위기구나’라는 정도는 적어도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불안한 세상을 예술가로서 작품으로 보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을 미술의 ‘사회적 영매’라고 표현한다. <고풀이> 같은 작품은 미술이 어느 정도 이 편하지 않은 세상을 풀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제작했다. 《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의 저자 미첼(W.J.T. Mitchell)이 말한 ‘페티시(fetish)’ 역시 물질에 투사된 영적인 힘을 말하는데, 이는 곧 ‘사회적 영매’와 같은 의미라는 생각이 든다.
 

Art 문화행정가로 많은 활동을 하며 업적을 남겼다. 행정가와 작가의 삶에 대해 각각 이야기 한다면?

나는 잡다한 일을 참 많이 하는데, 이 ‘잡’자를 참 좋아한다. 내가 한국문화예술위원장 일을 하게 된 데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전에는 위원회가 아닌 정부기관이 기관장을 임명하는 독임제(獨任制)로 운영되었다. 그런데 그보다는 민간인들도 위원회를 구성해 자율기구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참여정부 시절 문화연대 대표를 하면서 진흥원을 위원회로 바꾸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긴 했다. 생각해 보면, 행정가 또는 작가로 활동하면서 그 목표는 같았다. 결국 세상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에도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68년도를 청년들의 혁명의 해로 ‘68혁명’이라고 부른다. 어른들의 세력에 억압당하고 있던 젊은이들의 감성이 폭발한 것이다. 저항이라는 것은 꼭 뭔가를 깨부수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갇혀진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자신을 해방시키는 방법은 순간의 계기가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마들렌을 접한 그 순간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은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감성’을 찾은 시간이다. 우리는 자신의 억눌린 감성을 해방시킬 수 있는 놀이가 필요하다. 갖출 것 다 갖추고 노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험하게, 불량하게, 불편하게 놀아야 한다.
 


김정헌 개인전 <생각의 그림·그림의 생각: 불편한, 불온한, 불후의, 불륜의, ···· 그냥 명작전> 전경 2015 아트스페이스풀_작가는 적나라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화면에 교차 편집하는 등 독특한 화면 구성을 통해 관객에게 불안함과 불온함을 느끼게 한다. 동시에 서사적인 작품의 제목과 광고 문구 같은 형식으로 특유의 유머와 함께 현실에 대한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회적 재난, 역사적 풍경, 도시, 농촌 등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풍경이 담겨 있다.

Art 이는 곧 이번 전시 제목의 ‘불편’ ‘불온’ ‘불륜’과도 연결되는 것인가?

그렇다. 나는 세상 전체가 불편하다고 본다. 불편함, 이 불편한 것 가운데서 불온함도 태어난다. 나는 예수가 마구간이라는 불편한 곳에서 태어난 것도 이미 불편함을 상정한 것이라고 본다. 불편한 마구간에서 태어난 것에서부터 현실을 바꾸고 세상을 뒤집어야 한다는 불온한 생각을 하게 됐다고 생각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은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관계를 맺기 때문에 모두가 다 ‘불륜’하다고 본다. 다른 사람들을 자기 이익을 위해 타자화하는 것이 다 불륜한 생각이다.
 

Art 신작과 함께 출품한 <이상한 풍경>과 같이 기존에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에 대해 설명해 달라.

<이상한 풍경>은 우리나라 비무장지대의 광경을 그린 것인데 이것을 단지 무겁게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상하게 무거우면서도 가볍게, 가벼우면서도 무겁게, 날카로우면서 둔하게, 뭐 이런 형용모순의 작업들을 많이 선보였다. 이 작품도 만화에 나오는 의성어나 의태어 같은 것을 첨가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지>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을 처음 제작했던 1995년도에는 금강산만 그렸었는데 이 그림을 다시 꺼내 무언가를 더 첨가하고 싶었다. 생각 끝에 강운구의 자장면 그림이 떠올랐다. 나는 원래 남의 것을 베끼는 것을 좋아한다. 흔히 이를 패러디라고 하는데 내가 하는 것은 패러디라기보다 베끼는 것이다. 일종의 혼성모방, 환유라고 할 수 있다. <저 달을 쳐다보는 우리는 누구인가?> 역시 1990년대에 그린 것을 다시 손질해서 우주적 공간처럼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별마다 돌아다니는 어린 왕자를 삽화처럼 그려 넣었다. <통일이 보이는 해안선 풍경>은 겸재의 <박연폭포>를 모티프 삼아 그린 그림이다. 나는 이 작품을 거꾸로 놓아도 그림이 될 수 있게 그렸다. 그래서 ‘통일’을 표현하고 싶었다.
 

Art 작업에 텍스트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친구인 신경림 시인도 그 말을 했는데 나는 말이 많은 게 좋다. 말장난 비슷하게 버릇처럼 굳혀진 것 같다. 광고 카피를 그대로 쓴 적도 있다. 작품의 제목을 작품 위에 길게 늘어 써놓기도 했는데 그것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듯, 또는 답을 하듯 되었으면 좋겠다.
 

Art 작품에 창문과 달, 원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땡땡이’ 무늬는 2004년 <백년의 기억>전에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땡땡이는 그 아래 깔려 있는 이미지를 다시 재해석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일종의 장치다. 어느 경우에는 달이 되어 등장하기도 한다. 창문은 가족이나 희망을 상징하는 기호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이므로, 곧 창문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김정헌 개인전 <생각의 그림·그림의 생각: 불편한, 불온한, 불후의, 불륜의, ···· 그냥 명작전> 전경 2015 아트스페이스풀

Art 책을 통해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들었다. 작품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책이 있다면?

나는 ‘잡독과’ 유형이다. 학생 시절, 학교는 나에게 미술을 통해 세상을 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도대체 미술이 뭔지 모르겠다고 실망도 많이 했었다. 그 당시 잡지 《창작과 비평》과 아놀드 하우저의 책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가 나오면서 놀라운 글들을 많이 접하게 됐다. 그때 책을 통해 현실과 세상에 대한 눈을 뜨게 됐다. 알랭 드 보통이 쓴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을 보면 샤르댕(Chardin)이 그린 주전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샤르댕이 그린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주전자를 나도 따라 그렸는데 내가 그린 주전자는 따뜻하기는커녕 막걸리 주전자가 되었다. <슬픈 열대>는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보고 그린 것이다. <백년의 기억>전을 개최할 때는 ‘100년’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책은 거의 다 본 것 같다. 권터 그라스의 《나의 세기》라는 책은 <백년의 기억>전의 모델이 되었다.
 

Art 앞으로의 작업 계획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앞으로는 인물을 좀 그려 보고 싶다. 지금까지 인물을 그린 작품들이 거의 없었다. 다른 인물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깊이 있게 생각해 보고 그려 보고 싶다. 그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단 하나의 특징을 살려 그 사람임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Art 마지막으로 젊은 작가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작가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출수록 작품이 좋아진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적 세계를 스스로에게 도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숙된 생각을 통해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이 좀 더 열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너무 손기술에만 빠져 손에만 의존하다 보면 생각의 깊이, 사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황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