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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과 도용 사이, ‘저작권’이라는 양날의 검

2015.09.07 18:00

차용과 도용 사이, ‘저작권’이라는 양날의 검
작가 진챙총 개인전 〈후죠시 매니페스토〉 저작권 논란에 따른 국내법 실정과 미국, 유럽 사례 비교
 


리처드 프린스 〈Untitled(portrait)〉 캔버스에 잉크젯 프린트 167×123.8cm 2015_미국 작가 션 페이더(Sean Fader)의 프로젝트 〈#wishingpelt〉(2014)의 일환으로 인스타그램에 게재된 사진을 그대로 캡처한 작품이다.

“저거 다른 작가 그림인데?!” 작가 진챙총의 첫 개인전 〈후죠시 매니페스토〉(8. 7~9. 20 커먼센터)의 출품작에 다른 ‘후죠시’의 작품이 ‘도용’됐다며 6일 오프닝 첫날부터 SNS에서 폭발적인 논쟁이 벌어졌다. 일본어로 ‘썩은 여자’라는 뜻의 ‘후죠시(腐女子)’는 망가, 애니메이션, 영화 등에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들을 차용해 기존의 서사와는 달리 이 인물들 사이에 새로운 애정 관계를 부여하는 BL(Boys Love) 동인 문화를 즐기는 이들을 뜻한다. 자칭 후죠시인 작가 진챙총은 일러스트레이션 커뮤니티 ‘픽시브(Pixiv)’와 트위터에서 수집한 한국 중국 일본 타이완 등지 후죠시의 2차 창작물을 소재 삼았다. 작가는 아이폰3로 각 이미지를 캡처해 픽셀 단위가 보일 정도로 200~300% 확대한 뒤 A4용지 단위로 텐트천에 출력해 재봉질로 이어 붙였다. 마침 이 전시 오프닝 바로 다음날, 대안적 아트페어 〈굿-즈〉(세종문화회관, 10. 14~18)가 부대행사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홍승기의 〈작가 및 미술인을 위한 저작권 특강〉을 개최했다. 기획측이 강사에게 특강 전날의 저작권 이슈에 관해 미리 언질을 주었던 터라 2차 저작물 작성권과 저작물의 ‘공정 이용(fair use)’ 문제에 좀 더 강의의 초점이 맞춰졌다.

지난 2014년 10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원본을 변형, 각색한 2차 저작물에 대해서도 그 권리를 원작자에게 귀속시키는 ‘저작권 표준계약서’를 제정했다. 하지만 미국 저작권법 제107조를 참조해 2011년 12월 신설된 공정이용 일반조항에 따르면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을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사용하더라도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공정 이용 여부는 다음의 4개 사항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1)영리성 또는 비영리성 등 이용의 목적 및 성격 2)저작물의 종류 및 용도 3)이용된 부분이 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 중요성 4)저작물의 이용이 그 저작물의 현재 시장 또는 가치나 잠재적인 시장 또는 가치에 미치는 영향.” 그러나 사건마다 쉽게, 명확하게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뤽 튀망 〈A Belgian Politician〉 2011_튀망은 표절로 판결된 이 작품을 전시하거나 재제작할 경우 50만 유로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미국 미술계에서 벌어진 저작권 소송을 살펴보면 두 가지 상반된 결과가 있다. 제프 쿤스(Jeff
Koons)는 사진작가 아트 로저스(Art Rogers)의 사진작품을 모방한 조각 작품 〈String of Puppies〉 (1998)를 제작했다. 쿤스는 당시 이 작품의 에디션 3점을 팔아 36만 7천 달러의 수익을 얻었는데, 로저스가 저작권 침해 소송을 걸어 1992년 승소했다. 미 법원은 두 작품 사이에 “상당한 유사성”이 있고, 쿤스의 작품이 로저스의 사진 자체를 패러디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패러디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반면, ‘픽처 제너레이션’에 속하는 작가 리처드 프린스(Richard Prince)는 공정 이용의 특혜를 봤다. 2009년 프랑스 사진작가 파트릭 카리우(Patrick Cariou)가 프린스의 사진 연작 〈Canal Zone〉(2008)에 자신의 사진 작품들이 도용됐다는 이유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걸었다. 2011년 첫 재판 결과는 카리우의 손을 들어 줬지만, 2013년 2심은 프린스의 작품에 충분한 변형이 있다고 보고 공정 이용에 해당한다고 판결했으며, 2014년 대법원은 이대로 이 사건을 매듭지었다. 이후 프린스는 또 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올해 6월 뉴욕 가고시안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New Portraits〉에서 다른 이용자의 인스타그램 사진을 동의 없이 캡처해 자신의 댓글만 덧댄 작품을 선보였고 일부 작품을 1억여 원에 판매해 논란을 샀다. ‘피해자’들은 인터뷰에서 “화가 나지만 법적 대응은 하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 8월 7일 홍익대에서 열린 ‘굿-즈’의 부대행사 〈작가 및 미술인을 위한 저작권 특강〉 장면. 관객 170여 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저작권법에 관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유럽은 또 사정이 다르다. 2014년 9월 유럽사법재판소가 한 판결에서 ‘패러디’를 “유머나 조롱의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고 정의 내렸는데 ‘유머러스함’에 대한 정도의 문제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유럽사법재판소의 이 애매모호한 판결에 따른 ‘피해자’는 벨기에 작가 뤽 튀망(Luc Tuymans)이었다. 그는 보수당 소속의 한 벨기에 정치인을 촬영한 전문 사진가의 사진을 차용해 회화작품 〈A Belgian Politician〉(2011)을 제작했다. 이 사진가는 표절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1월 법원은 튀망의 작품에 ‘상당한 변화’가 없다고 판단해 튀망이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The Guardian》 《Hyperallergic》 등의 언론은 기존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현대미술의 특성을 전연 이해하지 못한 판결이라며 반발하는 사설들을 쏟아 냈다. 이처럼 저작권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해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를 제한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다. 갈수록 창작자의 수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국내 저작권법 역시 앞으로 어떤 자세를 취할지 눈여겨 볼 일이다.

Posted by 탁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