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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작가 사이먼 몰리의 한국 체류기

2015.07.06 18:03

동서양의 ‘사이’에 서다
영국 작가 사이먼 몰리의 한국 체류기
 


〈Silence〉 캔버스에 아크릴릭 52×41cm 2014

2015년 1월 한국 체류 외국인이 170만 명을 돌파한 가운데, 최근 한국에 거주하며 활동하는 외국인 작가 또한 늘어나는 추세다. 사이먼 몰리(Simon Morley)는 2008년 한국에 와서 현재까지 총 5회의 개인전을 열고 주요 기획전에도 참여하며 활발히 활동하는 대표적인 외국인 작가다. 그는 동시에 미술사가로서 한국 미술에 대한 영문 평론까지 겸하며 한국과 세계 미술계를 잇는 ‘개척자’이기도 하다. 파주 문산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작가와 직접 만나 한국 생활을 통해 작품이 변화한 과정을 들어 봤다.

Art 런던 출신으로 서울에 정착하기까지의 여정을 소개해 달라.
_고등학교를 마치고 이스라엘에서 1년을 보낸 뒤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지를 거쳐 30세가 돼서야 런던에 돌아왔다. 돌이켜 보면 고대부터 현대까지 미술사의 여정을 따라 이동해 온 것 같기도 하다.(웃음) 이후 영국에서 쭉 활동하다 2008년 백혜영갤러리의 이태원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선정돼 한국에 왔다. 아시아에 대한 지식이나 환상을 갖고 지원한 것이 아니다. 제임스 터렐이 그곳에서 개인전을 연 사실 하나만 알고 무작정 와서 3개월을 지냈다. 이때 지금의 부인(텍스타일디자이너 장응복)을 만났다. 2010년 경기창작센터 레지던시에 입주 작가로 한국에 재방문했고 이후 정착했다.

Art 한국 생활이 당신의 삶, 혹은 작업 방식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_이성적인 사고를 우선시하는 서구 문화권에서 자랐다. 이성을 관장하는 좌뇌에 주로 의지하고, 감성을 담당하는 우뇌는 상대적으로 덜 사용하도록 교육받았다. 나는 이성과 감성 중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고 균형 잡힌 사고를 하고 싶었다. 미술사적으로 볼 때 현대 서양 작가들은 이성 쪽으로 치우친 미술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이성적이고 본능에 기반을 둔 작업을 무리하게 시도해 왔다. 나는 그것이 부자연스럽다고 본다. 한국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우뇌의 영역을 더 자주 쓰고 있다. 지금도 좌뇌와 우뇌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아 가는 과정에 있다.

Art 당신이 체험한 동양의 문화가 작품 속에서는 어떻게 반영되는가?
_한국에 오기 전부터 회화 작업을 통해 텍스트가 마치 그림에 스며든 것처럼 보이는 모호한 화면을 표현해 왔다. 글이 고체처럼 굳어지는 성질을 지닌다면, 이미지는 액체처럼 흐르는 성질을 지닌다. 이미지의 이러한 특성, 즉 흐릿하고, 불확실하고, 감정적인 상태를 드러내고자 한다. 나는 한국의 전통 문화가 이러한 ‘모호함’에 조예가 깊다고 느낀다. 한국의 전통화에 나타난 호방한 필치를 보면, 일필휘지하는 무위(無爲)의 미학이 있다. 이처럼 자유롭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완결성 있는 형태를 만들고자 한다.
 


스튜디오에 걸린 신작 <This is It> 앞에 선 작가 

Art 작품 속 흐릿한 색감과 희미한 형태를 보면 동양의 고요함이 떠오른다.
_내 작업의 목표는 관객이 작품을 보면서 표면의 질감을 오감으로 체험하고, 작품과 관객이 친밀하게 관계 맺게 하는 것이다. 나에게 회화는 마치 피와 살을 가진 한 사람과도 같다. 관객이 회화의 피부 안쪽, 즉 현실을 초월한 또 다른 차원의 공간에 진입한다면 좋겠다.

Art 최근 갤러리바톤에서 개인전(3. 11~4. 11)을 열었다. 출품작이 상당히 _흐릿해 형태가 불분명해 보였던 반면, 지금 스튜디오에 걸린 신작은 그 형태가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난다. 
갤러리바톤 출품작은 히치콕 영화 속 배우들의 키스 장면 위에 철학 서적 속 단어들을 무작위로 추출해서 그린 것으로 의도적인 모호함을 꾀했다. 신작은 1920년 무렵 독일과 러시아에서 활동한 클래식 연주자를 그렸다. 북한 미술의 선동적 계몽적 제스처를 차용해, 먼 곳을 희망에 찬 표정으로 응시하도록 표현했다. 그림 위에 얹은 문구는 초월을 추구하는 종교에 관련된 책에서 가져왔다. 인물의 시선과 텍스트 사이의 어긋남을 명징하게 만들어 관객이 그림 안으로 더 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고 싶었다. 

Art 한국의 현대 문화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는가?
_한국의 디지털 전자 기술은 우수하지만 흥미가 가지 않는다. 대신 한국의 전통적 가치가 서양의 현대적 문화와 융합하는 하이브리드 현상에 관심이 많다. 나 자신도 한국에서 살며 동서양의 두 부분을 함께 담게 됐다.
 

사이먼 몰리 / 1958년 런던 출생. 작가 겸 미술사가, 단국대 예술학과 교수. 영국 옥스퍼드대학 근대사학과 학사, 골드스미스대학 파인아트 석사, 사우스햄튼대학 박사. 프랑스 디종미술관(2009), 갤러리바톤(2015) 등에서 개인전 개최. <A Picture of Britain>(테이트브리튼, 2005), <유니버설스튜디오 서울>(서울시립미술관, 2014) 등 참여. 저서 《Writing on the Wall》 《L’Art Les Mots》 등

Posted by 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