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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봄을 시작하는 단상들

2015.04.07 14:57

(페)봄을 시작하는 단상들
2015페스티벌봄 3. 27~4. 19

/ 이승효(페스티벌봄 예술감독)


페스티벌봄2015 포스터 및 주요 일정

개막 전야에 이 글을 쓴다. 축제 서문에는 쓰기 힘든 주관적인 소회를 적어 달라고 부탁받았다. ‘페스티벌봄은 전 세계의 실험적인 아티스트들이 집결하는 국제 다원예술축제로서 2013년에 이승효가 제2대 예술감독으로 취임했다’라는 공식적인 소개 문구까지 적고 나서, 페스티벌봄을 맡게 된 이후의 지난 1년 반을 돌이켜 보았다. 나는 어울리지도 않게, 무수히 많은 사람과 말 사이에 있었던 것 같다.

‘한국적인 것’에 강박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딱히 그런 건 아니다. 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한국적인 것에는 무지할 뿐더러 그러한 것을 일부러 찾아서 보지도 않는다. 단지, 내가 예술에 대해 전혀 몰랐던 예전부터 예술 하면 으레 따라오는 외국인들의 이름이 조금 싫었을 뿐이다. 예술사 수업을 듣고 철학 책을 읽으면서 열심히 따라가 보려고 한 적도 있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는 ‘한국에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일본 색채’가 너무 강하지 않냐는 말도 들었다. 로고와 포스터에 일본어가 난무했으니,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왜 나쁜지에 대해서, 역사 이야기와 국민 감정 이외에 설득력 있는 지적은 듣지 못했다. 투명인간처럼 대하기에는, 이제 일본이라는 나라가 너무 가까워졌다. 비약이나 과장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동아시아의 전쟁을 막기 위해 예술을 한다. 

‘칼을 빼들었다’는 말에는 피식 웃었지만 뼈가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의미를 천천히 알게 되면서 과대망상에 빠질 뻔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그들이 말하는 칼도, 내가 찌른 호박도, 한 줌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안다. ‘아젠다가 없다’라는 말에는 일부분 공감하기도 했다. 아티스트들 앞에서 굳이 예술감독까지 나서서 떠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제는 ‘아젠다 없음’을 축제의 아젠다로 선언하기로 했다. ‘상호참조’라는 그럴듯한 주제어를 떠올리고 혼자 무릎을 탁 치긴 했지만, 결국 나에게 중요한 것은 작품이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다. 1개의 작품은 100명의 관객으로 하여금 100가지 서로 다른 질문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 질문들을 예술감독의 짧은 언어로 한정짓지 않기 위해 고민한 결과, 웹사이트와 프로그램 북에 실린 코멘트들이 탄생했다.

어떤 말은 잘 들리지 않는다.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으려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작년 4월 말 이후에 페이스북을 그만둬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축제가 익숙하지 않은 한국 문화에서 어떻게 하면 자연스러운 소통의 장을 만들 수 있을지는 아직도 큰 과제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예술감독을 시작하기 전에는 거의 없었다. 내가 겁도 없이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이것 때문이다. 나는 누구에게도 갚아야 할 빚이 없었으니까. 축제를 시작하고 나서 사람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고, 도움은 정말 많이 받았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생기는 것은 결국 빚이 늘어나는 것인가 보다 하고 깨닫는다. 이제 막 서른을 넘긴 나이에 이렇게 빚을 지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눈앞이 캄캄하기도 하다. 열심히 살아서 갚아야지, 생각하면서도 태어날 때부터 게으른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페스티벌봄 사무국의 출근 시간은 오후 1시 반이다. 재밌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말을 걸 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축제 감독은 좋은 직업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예술이라는 것을 조금 더 알게 됐고, 최근에는 전통음악과 마술의 세계에 눈을 떴다.  아직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얼마 전에는 전통음악이 머잖아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게 될 거라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마술은 TV프로그램 <스타킹>에서 보던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추천하는 프로그램 한두 개 정도 포함해 달라고 해서 은근히 적어 봤다.) 이상한 사람들은 더 많다. 대부분은, 그 이상함을 적당히 감추는 테크닉을 갖추고 있어서 처음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페스티벌봄에서는, 말하자면 손발이 조금 오그라들기는 하지만, 다들 본래의 이상한 모습 그대로 만났으면 하고 생각한다. 나는 작년에 축제하다가 머리 모양이 왜 그러냐는 소리도 들었는데, 그런 이상한 거 말고 그냥 자기 모습 그대로. 제멋대로 사는 인생, 좋게 말하면 각자의 주관이다.

봄이 되었다. 아무리 이상기후라고는 해도, 페스티벌 ‘봄’ 개막식에 눈이 올까 걱정하기 싫어서 축제의 시작을 조금 늦췄다. 벚꽃이 만개하는 4월 19일까지 열린다. 글을 쓰다가 깜박 졸고 나니 어느덧 개막일 아침이 되었다.

 

Posted by Art In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