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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작고 작가의 유작과 유족

2015.03.06 18:10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작고 작가의 유작과 유족
직접 판매에 나선 피카소의 상속자 등장에 바짝 긴장한 미술시장

/ 김형진(법무법인 정세 미국변호사)



파블로 피카소 〈Nude, Green leaves and Bust〉 캔버스에 유채 162×130cm 1932_피카소 작품 중 가장 비싼 작품으로 2010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 6백만 5천 달러에 낙찰됐다. 올해 초 피카소 작품 1만여 점을 상속받은 손녀 마리나 피카소가 생전 가족을 돌보는 데 소홀했던 피카소의 회화 작품 300여 점을 대거 판매하기로 하면서 세계 미술시장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는 경매를 통하지 않고 직접 판매해, 동남아 지역에 어린이 병원을 짓는 데 그 수익을 쓸 것이라고 밝혔다.

거장 피카소의 손녀가 그동안 소장했던 피카소 작품들을 대거 매각한다고 한다. 앞으로 대거 쏟아져 나올 작품들 탓에 시장에서는 피카소 작품은 물론 최고급 미술품 전체 가격이 하락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저작권자의 횡포로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는 굳이 말하자면 ‘저작권자’의 횡포라기보다 ‘소장자’의 횡포라는 것이다. ‘저작권’이란 일종의 재산이므로 피카소가 사망한 이후 가족들에게 상속됐다. 피카소는 2명의 부인과 수많은 애인이 있었고, 그 사이에서 공식적으로 4명의 자녀를 낳았다. 피카소 작품의 저작권은 이 모든 여인과 자녀, 그리고 그들의 후손에게 공평하게 분배됐다. 따라서 피카소의 손녀인 마리나 피카소(Marina Picasso)는 그 수많은 ‘저작권자’의 한 사람일 뿐이지만, 동시에 피카소의 작품을 아주 많이 소장하고 있는 ‘소장자’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술 화랑과 같은 작품의 소장자들은 작품의 가격에 매우 관심을 갖는데, 수집가의 상당수가 투자 목적으로 미술품을 거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외 유명 화랑들은 작품 가격을 유지하고자 재판매를 제한하거나 거래 물량을 조절하기도 한다. 그 결과 가격 변동이 심하고 투명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미술작품은 일반 상품과 다르다. 미술품 가격의 하락은 반드시 수요를 증대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투매 현상을 가져와 가격 하락과 공급 초과라는 악순환에 빠질 우려도 있다. 대부분의 미술작품에 있어서 본원적 가치, 즉 절대적 가치는 미미하다. 한국에서는 호당 가격을 정하기도 하지만, 국제적으로 미술품의 가격을 캔버스, 액자의 크기나 사용된 물감의 가격에 따라 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미술품의 가격은 경제적 가치에 의해서가 아니라 심리적 또는 감정적 가치에 의해 성립되기 때문이다.

국제 미술시장에서 거장의 작품 가격은 몇몇 화랑과 중개인들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러한 가격이 현실화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미술시장에서 일반 구매자의 묵시적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만약 시장이 공포나 우려에 사로잡히면 몇몇 화랑과 구매자들의 힘만으로는 그 가격을 유지하기 어렵다. 미술계는 이미 1990년대에 전 세계적인 미술 가격 폭락을 경험했는데, 그 이유는 일본의 경제 버블이 꺼지면서 위기에 빠진 일본 기업들이 앞다투어 내놓은 고가 미술품들 탓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만약 소장자나 거래자들이 특정 작품의 희소성이 약화된다고 느낀다면 그 작가의 작품 전체에 대한 가격이 갑작스럽게 무너질 수 있다. 미술시장은 휘발유 시장과는 달리 다수의 구매자와 판매자가 자유롭게 거래하는 광장이 아니라 임자를 제대로 만나지 못하면 몇 년을 기다릴 수도 있는 ‘불완전 시장’이다. 따라서 매수자가 없어서 매도자가 당장 작품을 매각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기다리는 동안 점점 더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퍼지면 매도자는 마치 공포에 쌓인 주식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그러하듯 폭락한 가격에라도 당장 작품을 매각하여 현금화하려고 할 것이다.

이 때문에 현대미술계에서는 마크 로스코의 경우와 같이 거장이 타계하면 유족들이 재단을 설립해 고인의 작품들에 대해 진품 여부 판정과 공급 조절을 통해 작품의 가격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 일부 유족들은 당장의 경제적 이익 때문에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가령 작가의 사후에 사진작품의 원판 필름이나 조각의 틀을 이용해 더 많은 작품을 양산함으로써 가격의 폭락을 조장하기도 하고, 심지어 유족이 전문가와 공모해 정교한 위작들을 세상에 내놓고 고인의 유작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이와 같은 행위들은 범죄 행위에 가깝기 때문에 민형사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가령 어느 화랑이나 개인이 그동안 소장해 왔던 특정 작가의 작품을 갑자기 대량으로 시중에 매각해 그 작가의 작품 전체의 시장 가격을 갑자기 폭락시키는 경우, 이와 같은 폭락을 법적으로 방지하거나 원인 제공자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그 때문인지 이런 일은 미술계에서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때로 이런 일이 있는 경우 작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기도 하는데, 한 번 추락한 작가의 작품 가격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 때문에 해외에서도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많이 소장한 화랑이나 소장자에 대해 ‘을’의 입장이 되기 쉽다.

이제 쏟아져 나올 피카소의 작품들 탓에 피카소 작품의 가격이 어떻게 영향을 받을지는, 전적으로 시장이 이 늘어난 숫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달렸다. 일부에서는 이번에 매각될 작품의 수량이 그다지 많지 않아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 말하는데, 이 주장은 타당한 듯하다. 하지만 만약 마리나 피카소나 다른 유족들이 앞으로 더 많은 피카소 작품들을 시중에 매각하겠다는 뜻을 밝힌다면, 그 뜻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과 관계없이 당장 피카소의 작품 전체에 대한 가격 구조에는 근본적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며 현재의 소장자들에게 커다란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유명 작가와 작품의 명성과 가치가 오래 유지되려면 작가의 사후에도 많은 사회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Posted by Art In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