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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근 〈철의 꿈〉,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선봉장, ‘철’의 영상 미학

2014.11.07 16:07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선봉장, ‘철’의 영상 미학
박경근 〈철의 꿈〉 특별 상영 10. 21 씨네코드선재, 정림건축문화재단



〈철의 꿈〉 HD영상 100분 2013

11월 13일 개봉을 앞둔 박경근 감독의 영화 〈철의 꿈〉 특별 상영회가 열렸다. 정림건축문화재단이 건축과 도시를 소재로 사회 문제를 탐구하는 젊은 비디오아티스트를 지원하고자 2013년 시작한 스크리닝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다. 이 작품은 감독이 다채널 비디오로 선보였던 작품을 엮어 영화화한 것으로, 해외에서 먼저 크게 주목받았다. 지난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 넷팩상(NETPAC)을 시작으로 로마아시아영화제 최우수다큐멘터리상, 타이완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작가시선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또한 뉴욕현대미술관 다큐멘터리 포트나잇, 시카고국제영화제, 리스본 닥리스보아국제영화제, 파리 장루슈필름페스티벌, 홍콩아시아영화제 등에 잇달아 초청됐다. 올 한 해 세계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대박 행진’을 이어간 이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영화계와 미술계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상영을 마치고 감독과 함께한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패널로 참석한 미술평론가 반이정, 기계비평가 이영준, 건축가 안지용의 찬사가 이어졌다. 행사 종료 후에도 몇몇 관객이 남아 감독과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철의 꿈〉 HD영상 100분 2013

〈철의 꿈〉이 영화인과 미술인의 관심을 동시에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철’을 소재로 삼은 이 작품은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와 포스코 제철소를 중점적으로 보여 준다. 영화의 백미는 배 건조 및 제철 과정을 담은 미니멀한 영상미에 있다. 조선소와 제철소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압도적인 광경을 제한된 카메라 앵글 안에 고스란히 담아 내고자 1년여의 기간을 촬영에 매달렸다. 그가 쇠에 집착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의 악몽 때문. 철판 주위로 흐르는 물과 기름,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조여지는 쇠붙이 등 원인을 알 수 없는 꿈속의 이미지는 그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매료시키기도 했다. 감독은 2011년 베를린영화제 포럼 부문에 초청됐던 데뷔작 〈청계천 메들리〉(2010)에서 이미 청계천 금속공방 뒷골목의 철공소, 주물공장, 금형공장 등을 주목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좀 더 복잡한 구조로 얽혀 있다. 키워드는 사랑, 신(神), 고래, 그리고 철. 감독은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형상을 보며 같은 지역에 있는 조선소의 배를 떠올렸고, 이 두 이미지에 맥락을 부여해 작품의 내용을 발전시켰다. 영화는 신을 찾기 위해 비구니가 된 전 여자 친구를 향한 음성 편지의 형식을 띠고 있다. 화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신을 찾아보겠다”며 울산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후 영화는 불교 의례 장면을 매개 삼아, 거대한 고래를 새긴 암각화에 제의를 지내던 ‘과거’와 웅대한 배를 축조해 내는 ‘현재’를 오가며, 신철기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 인류에게 새로운 ‘신’이 된 철에 숭고미를 부여한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는 거대한 용광로, 컨베이어 벨트, 프로펠러 제작 과정 등의 장면에 말러 교향곡 제1번 〈거인〉 3악장, 한 번에 두 가지 음색을 내는 발성법인 티베트 찬트(chant)의 묵중한 사운드를 넣어 철의 신격화를 한층 극대화시킨다.



〈철의 꿈〉 HD영상 100분 2013

〈철의 꿈〉이 주목받은 또 다른 이유는 그 미학적 측면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역사를 영상 속에 함께 녹여낸 데 있다. 2011년 12월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포스코 명예회장 박태준의 영결식, 1990년 4월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골리앗 크레인 점거 농성 장면 등이 봉은사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을 달래는 ‘천도재’,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영산재’ 장면과 교차된다. 감독은 마치 신을 영접하는 희생제의 같은 시퀀스를 영화 곳곳에 심어 두었다. 한국의 산업시대가 어떤 국면에 접어들었는지 자문하며 끝나는 이 영화를 보고 국내 관객은 어떤 답을 내릴 것인가.

Posted by 탁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