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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라는 ‘배’, 누가 어떻게 조타해야 하는가?

2013.08.13 17:13

대구사진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운영위원장 선임에 부쳐
※ Art In Culture 2013년 7월호 발췌


글|장동광_독립큐레이터, 서울대 강사

(사)대구사진비엔날레 조직위원회 주관,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자연과 사람-갈라파고스와 아마존을 가자>전(2013. 4. 23~28) 전시 전경

(사)대구사진비엔날레 조직위원회 주관,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자연과 사람-갈라파고스와 아마존을 가자>전(2013. 4. 23~28) 전시 전경

최근에 부산비엔날레와 대구사진비엔날레 운영위원장을 선임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부산비엔날레는 추천제로, 대구사진비엔날레는 공모로 진행하겠다고 공고했다. 자, 그러면 이 지점에서 운영위원장의 위상과 역할에 관해 잠시 생각해 보자. 운영위원장은 통상적으로 조직위원장과는 엄연히 다른 직책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조직위원장은 조직위원회라는 기구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해당 국제적 행사를 조직하고 전체적으로(이전 비엔날레의 평가와 차기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포함하여) 통어하는 의사결정 구조의 최상위에 있다. 반면 운영위원장은 당해 행사를 관장하는 책임기구로서 운영위원회라는 조직을 관장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추천제나 공모제로 운영위원장을 선임한다는 것은 대단한 넌센스다. 왜냐하면 운영위원회라는 운영위원 중에서 호선하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에 있어서 어떤 장르를 다루는 비엔날레던지 간에 이를 조타할 운영위원들이 조직위원회의 재가를 거쳐 사무국을 통해 선임되어 구성되면, 이 운영위원 중에서 가장 능력이 출중하고 항술에 뛰어난 분을 선출하면 된다. 예컨대, 조직위원회가 크루즈와 같은 대형 선박의 건조, 운영, 재무, 인력관리를 총괄하는 일종의 이사회 같은 기구라면, 운영위원회는 어떤 형태로든 결정된 선장(사실상 전시예술감독 같은 역할)을 중심으로 항로, 여행특화상품, 선박과 여행객의 안전, 시설의 관리 및 선진적 운영 등에 차질이 없도록 조타하는 역할을 하는 한시적 기구인 셈이다.

운영위원장을 추천받거나 공모한다면 이미 운영위원회는 의미가 없는 것이 된다. 반원들이 아직 입학하지 않았는데 반장을 먼저 선발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왜 이렇게 앞뒤가 뒤바뀐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이는 비엔날레라는 국제적 행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후진적 행정주의 발상이거나, 아니면 그간의 폐쇄적 혹은 연고적 선임에 따른 문제를 해소한다는 명분을 삼기 위한 이탈적 행태로 보이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추론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기본에서 출발해야 하고, 기본에 충실할 때 가짜들을 여과해 낼 수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운영위원들을 잘 선임해야 한다. 이 구조 안에서 스스로들이 탁월한 조타술을 가진 운영위원장을 선출하는 몫은 전적으로 운영위원들의 책임이자 권한이다.

광주비엔날레와 같은 경우 이사회가 이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례가 문제점을 던져 주는 것은 이사회가 전시예술감독을 선임하는 절차를 밟은 것은 매우 이상한 시스템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이사회는 어느 비엔날레이던지 간에 항구적, 장기적 마스터 플랜이나 사무국의 인사, 재정문제를 관장하는 것이지 당해 비엔날레라는 작은 행사에 간섭한다는 것은 정부 같은 조직에 비견하자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별도의 조직위원회나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책임을 맡기는 것이 공정한 게임의 장을 만들 수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같은 경우도 운영위원회가 구성되어 전시예술감독을 선임해야 하는데, 사무국이 이를 운영위원회의 토의 결과와는 다른 입장에서 공모로 전환하여 큐레이터 2인을 공채하는 기이한 현상도 있었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우리는 비엔날레라는 국제적 행사가 그 의사결정 구조나 선임의 절차 면에서도 그 본질과 위상을 정립하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명확한 용어의 정의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비엔날레가 무엇이고, 조직이 무엇이고, 운영이 무엇이고, 전시예술감독이 무엇인지를 철학적으로, 법리적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래에 서울미디어아트비엔날레는 미디어아트 작가 박찬경을 전시예술감독으로 선임했다. 어떤 절차로 선임됐지는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할 문제지만, 외견상으로 보기에 작가가 감독으로 선임된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하겠다. 감독으로 선임된 박찬경 작가가 국제적 감각에서나 작업의 경력 면에서 여느 큐레이터 못지않은 능력을 갖춘 사람임을 인정하는 바다. 그러나 한국 미술계가 발전하려면 국제적 감각과 코디네이터 능력을 갖춘 큐레이터나 미술행정전문가들이 절실히 필요한 실정이다. 조금 미력하거나 젊어서 아직 검증받지 못했다 할지라도 미술이론계에서 인재를 발굴해 미디어아트에 관한 큐레이팅을 살아있는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작가는 자기의 취향이나 선호적 태도에 있어서 공정성이나 객관성을 잃기 쉽다는 점도 냉정하게 되새겨봐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처럼 특화된 다양한 비엔날레가 여럿 치러지고 있는 현실에서 국제적 기준이나 호환성을 가진 기구의 구성, 운영의 문제는 예술행사의 오늘과 내일을 가늠하는 하나의 척도일 수 있다. 옛말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린다고 했다. 이를 다른 말로 치환한다면,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고 기본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운영위원장을 추천하고 공모하는 이 이상한 구조를 개선하지 않고서 비엔날레라는 이름으로 깃발을 흔들고 국제적 작가들을 초대하려는 변이적 행태는 이제 멈춰야 한다. 운영위원들을 선임하는 절차부터 체계적이고 공정하게 꾸려서 그 기구에서 자율적으로 운영위원장을 선임하게 하라. 공정한 게임의 룰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무릇 비엔날레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나무처럼 후세들을 위한 예술의 등대로 남겨지는 일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Posted by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