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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아랍 아티스트와의 대화

2013.05.02 16:44
2000년대 초반부터 아랍 컨템포러리 아트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루브르, 구겐하임 등 서구의 대형 미술관이 아랍 미술계에 새 거점을 마련하는 등 아랍 국가들의 대규모 예술 프로젝트가 세계 미술계에 새로운 지형도를 그려가고 있다. 하지만 서구중심적 시각에서 바라본 ‘중동’과 인류학적 구분인 ‘아랍’ 사이에서 그들의 미술은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다. 서구 미술계도 아랍 현대미술에 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Art In Culture는 아트두바이, 샤르자비엔날레 등 부상하는 아랍의 아트씬을 조망하기 위해 2013년 4월호 특집에서 ‘아랍 컨템포러리 아트’를 다뤘다. 이중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린 아랍 아티스트와의 대화 <컨템포러리 아티스트와의 대화: 모하메드 카젬과 림 파다>를 소개한다.
 
글|이정연
 
모하메드 카젬(Mohammed Kazem) <Directions> 비디오 설치 250×250cm 2005_사진 퍼포먼스 영상과 같이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급격히 변화한 두바이와 그곳에 거주하는 작가 자신의 관계에 주목한다.

모하메드 카젬(Mohammed Kazem) <Directions> 비디오 설치 250×250cm 2005_사진 퍼포먼스 영상과 같이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급격히 변화한 두바이와 그곳에 거주하는 작가 자신의 관계에 주목한다.

2월 26일,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좌담회 <컨템포러리 아티스트와의 대화: 모하메드 카젬과 림 파다(Conversations with Contemporary Artists: Mohammed Kazem and Reem Fadda)>가 진행됐다. 그런데 왜 지금, ‘뉴욕’에서 ‘아랍 컨템포러리 아트’에 대한 대화가 진행된 것일까? 서구의 미술관과 미술시장이 아랍의 현대미술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근래에 들어서 나타난 일이다. 아랍 컨템포러리 아트에 대한 뉴욕 미술계의 연구는 구겐하임을 중심으로 이제 막 성장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며, 중동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고려할 때 그 역사는 이상스러울만치 짧다. 2005년 크리스티 옥션하우스가 두바이에 지점을 내고 전시를 개최한 이래, 아랍의 현대미술에 대한 국제 미술계의 관심은 꾸준히 증가해 왔지만, 이들 미술이 성장해 온 배경과 맥락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아직까지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구겐하임재단은 현재 아랍에미리트의 사디야트 섬에서 진행되고 있는 아부다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천문학적인 비용과 자원을 투자해서 진행하고 있는 아부다비 프로젝트는 사디야트 섬에 루브르와 구겐하임을 포함하여 다섯 개의 미술관을 세우는 등 이 작은 섬을 국제적 예술단지로 변모시키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야심차게 진행 중인 문화 사업이다. 구겐하임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미술관 내에 별도로 아부다비 전담팀을 구성하고, 유럽과 팔레스타인 등지에서 경력을 쌓아 온 아랍현대미술 큐레이터 림 파다를 고용하였으며, 아랍의 미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개발 중이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좌담회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좌담회

모하메드 카젬과 림 파다의 좌담회 또한 이러한 취지에서 기획된 이벤트이다. 림 파다는 올 6월에 개최되는 제 55회 베니스비엔날레의 아랍에미리트관 커미셔너로서, 부연하자면 아랍에미리트관의 대표작가로 선정된 모하메드 카젬과는 큐레이터와 작가의 관계이다. 행사는 작가와의 대화에 앞서, 아랍의 모더니즘에 대한 림 파다의 강연으로 시작되었다. 약 40분간 진행된 이 강연은 뉴욕의 대중들에게 1970년대에 등장한 아랍의 아방가르드 미술과 모하메드 카젬의 작품 활동에 대한 개념적인 기반을 소개하려는 취지로 기획됐다. 강연 중, 림 파다는 서구를 중심으로 구성된 ‘모더니티’ 담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아랍 현대작가들이 당면했던 사회, 역사적인 맥락과 현실을 중심으로 아랍의 모더니즘을 이해해야 함을 강조했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좌담회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좌담회

림 파다는 1971년 영국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어 독립을 맞이한 아랍에미리트의 작가들에게 실존주의적 문제가 얼마나 큰 화두였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림 파다에 따르면, 이 시대에 아랍 현대미술작가들이 개념미술을 탐구하기 시작했던 이유는 국가의 독립과 동시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회적 가치체계의 총체적인 변화(물질주의와 자유 등) 속에서 개인이 겪는 정체성의 문제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달리 말해, 아랍의 작가들 사이에서 개념미술이 등장한 것은 서구와는 달리 ‘미술사’라는 제도와 ‘회화’의 양식적인 틀을 공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겪는 정체성의 문제들을 회화의 언어만으로는 표현해 내기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림 파다는 또한 이는 문자와 그림의 경계가 상대적으로 뚜렷하지 않은 아랍의 문화적인 전통과도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림 파다가 대표적인 예로 거론한 아랍현대미술 제 1세대의 작가는 하산 샤리프로서, 파다는 샤리프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제스처, 기록에 대한 집착, 그리고 레디메이드 오브제들이 갖는 의미를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에 대한 작가의 실존주의적인 반응으로 해석했다. 이러한 아랍의 현대사회와 미술계에 대한 해석을 토대로, 림 파다는 모하메드 카젬에 대한 강연을 이어나갔다. 파다는 카젬과 샤리프 사이의 개인적인 친분에 초점을 두고 예술적 표현 방식과 내용적인 측면에서 확인되는 그들 사이의 직접적인 영향 관계를 중점적으로 논의했으며, 특히 카젬의 예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물질성’과 ‘일상성’에 주목하였다.

림 파다는 카젬이 이러한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맥락 속에서 미술을 통해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와 자아의 문제를 논의해왔다고 재차 강조하면서, 카젬의 최근작에서 자주 등장하는 시공간의 전환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이해하기 위한 틀을 제공했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좌담회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좌담회

이어지는 작가와의 대화에서도 모하메드 카젬보다는 오히려 림 파다의 목소리가 주도적이었다. 파다는 작가에게 카젬과 하산 샤리프의 관계와 회화가 작가에게 갖는 의미를 중심으로 질문을 던졌고, 카젬은 이에 “나의 모든 작품은 회화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대답하면서, 아랍의 억양이 섞인 영어로 샤리프와의 만남과 사제간 교류에 관련된 개인적인 에피소드들을 들려 주었다. 반면 관중석에서는 조금 더 무겁고 의미심장한 몇 가지 질문들을 던졌다. 특히 카젬에게는 “당신에게 전통이 갖는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그리고 파다에게는 “당신의 관객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건넸다. 카젬은 전통이란 ‘근대’나 ‘현대’와 함께 자신에게 큰 의미를 가지며, 그것은 일종의 존재이고, 우리는 그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애매한 대답을 했다. 그리고 파다는 아직까지 현대미술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아랍의 관객이 매우 소수일지라도, ‘우리(구겐하임)’는 교육과 지식전달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현대미술과 현지의 관객이 언젠가는 소통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하면서 강연을 마무리지었다.
 
모하메드 카젬(Mohammed Kazem) <Directions> 돌 위에 분필 1100×900cm 2011 Boda Gaya, India

모하메드 카젬(Mohammed Kazem) <Directions> 돌 위에 분필 1100×900cm 2011 Boda Gaya, India

림 파다의 대답은 구겐하임 아부다비 프로젝트가 갖는 사명과 지향점을 대변하는 것이지만, 무언가 껄끄러운 점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종합해 보면, 림 파다는 아랍의 현대미술이 그 문화와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지만, 막상 그 맥락 안에서 살고 있는 현지인들은 현대미술과 대화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간의 대화를 이어줄 매제로서 구겐하임과 같은 ‘서구’의 ‘모더니티’를 대변하는 미술 기관이 필요하다는 논의는 우리들에게 깊이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긴다.
Posted by Exhib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