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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키워드, 영국미술의 ‘성공 신화’

2012.08.15 17:51

뜨거운 응원의 열기로 밤잠을 설치게 했던 2012런던올림픽이 지난 13일 그 막을 내렸다. ‘문화 올림피아드’라는 모토를 앞세운 이번 올림픽 기간에는 아니쉬 카푸어의 대형 기념탑과 테이트모던의 데미안 허스트 회고전을 비롯한 총 90여 개의 특별전이 열려 영국 아트씬의 열기를 뜨겁게 달궜다. ‘yBa’로 대변되는 영국의 현대미술은 1990년대 중반부터 세계 미술계를 강타하며 전례 없는 주목을 받은 바 있다. 1980년대 데미안 허스트를 주축으로 기획한 <프리즈(Freeze)>전부터 1990년대 후반 충격과 논란으로 기억되는 <센세이션(Sensation)>전, 10여 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운영 전략으로 세계적인 미술 축제로 자리 잡은 리버풀비엔날레와 프리즈아트페어까지. 영국 현대미술의 역사는 한편의 잘 짜여진 ‘성공 신화’와도 같다. art in culture 8월호 특집 <BRITISH ART OF WONDER>에서는 영국 현대미술의 성공 요인을 7개의 키워드로 나눠 다각도로 분석했다. artWA는 이 7개의 키워드를 각각 살펴보며 미술관과 갤러리는 물론 미술시장 수상제도 교육제도 등 탄탄한 인프라를 구축한 영국 현대미술의 역사와 현 주소를 짚어 본다.

 

글│이대형 · Hzone 대표, 큐레이터
 
yBa  영국 현대미술 ‘신화’의 기원

 

데미안 허스트 <For the Love of God> 플라티늄, 다이아몬드, 치아 17.1×12.7×19.1cm 2007│마크 퀸 <Self 2001> 작가의 피 208×63×63cm 2001

데미안 허스트 <For the Love of God> 플라티늄, 다이아몬드, 치아 17.1×12.7×19.1cm 2007│마크 퀸 <Self 2001> 작가의 피 208×63×63cm 2001

‘yBa’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영국 국적, 1960년대 생, 1980년대 골드스미스 졸업, 기획자 역할까지 했다는 점. 그러나 나이도 비슷하고 학교도 똑같은 이들의 작업은 어떤 공통점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달랐다. 파리와 소머리, 상어(데미안 허스트), 집을 통째로 캐스팅한 콘크리트구조물(레이첼 화이트리드), 콘돔과 지저분한 쓰레기로 어지럽혀진 침대(트레이시 에민), 코끼리 배설물(크리스 오필리), 냉동된 혈액(마크 퀸) 등 기존에 생각할 수 없는 재료가 ‘yBa’ 작가의 작품에 사용되었다.
1988년 당시 골드스미스의 무명 학생이었던 데미안 허스트의 〈프리즈〉전을 시작으로 〈모던 메디슨(Modern Medicine)〉전(1990), 그리고 〈센세이션(Sensation)〉전(1997)으로 이어진 ‘yBa’의 거침없는 도발은 영국은 물론이고 세계 미술계에 충격과 논란을 안겼다. 덧붙여, 1988년부터 이어져 온 컬렉터 찰스 사치의 후원은 ‘yBa’의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이며, 런던을 유럽미술의 중심지로 단번에 각인시켰다. 이후 ‘yBa’라는 수식어는 1990년대 영국미술을 홍보하는 마케팅 툴로 활용됐다. 또한 아방가르드적인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영국작가들을 묘사할 때도 사용되었다.
 
<프리즈>전을 준비하는 작가들

<프리즈>전을 준비하는 작가들

‘yBa’가 대중에게 더욱 각인된 계기는 ‘채널 4’를 앞세운 터너프라이즈. TV를 통해서 ‘yBa’라는 단어를 수없이 접하게 됐다. 레이첼 화이트리드(1993), 데미안 허스트(1995), 더글라스 고든(1996), 질리언 웨어링(1997), 크리스 오필리(1998), 스티브 맥퀸(1999), 마크 왈링거(2007) 등 ‘yBa’가 터너프라이즈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이들 ‘yBa’의 거침없는 행보에 맞춰 이들의 실험적인 미술을 담아내기 위한 화이트큐브, 빅토리아미로, 카르스텐슈베르트, 사디콜, 인터림아트, 안토니윌킨슨갤러리 등 새로운 갤러리가 태어났다. 또한 《프리즈》 《월간 아트》 《아트 리뷰》 《모던 페인터》 《컨템포러리 아트》 등 영국 잡지가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발판을 마련되었다. 데런 알몬드(Darren Almond), 마이크 넬슨(Mike Nelson), 팀 노블(Tim Noble), 케리 영(Carey Young) 등 2000년 이후에 등장한 작가들에게조차 ‘포스트-yBa’라는 수식어가 붙고 있으니, ‘yBa’의 전설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Goldsmith College & RCA  ‘포스트-yBa’ 시대의 인큐베이터

 

 

골드스미스대 전경

골드스미스대 전경

영국미술이 처음부터 ‘쿨’했던 것은 아니다. 전후 1950년부터 시작된 뉴욕 발 미국의 문화적 영향력은 1970년대까지 이어지며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등을 양산하며 세계 미술계를 독점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독일 경제의 부상과 함께 게오르그 바젤리츠, 안젤름 키퍼, 한스 하케, 게르하르트 리히터를 내세운 독일의 신표현주의가 미국이 누려 왔던 문화 권력에 도전하였다. 반면 영국경제는 1980년 후반부터 더욱 위축되었고, 예술에 관한 관심은 사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yBa’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어슬렁거리며 도발을 좋아하는 불손하고 불경한 ‘배드보이, 배드걸’들이 활보한 1990년대 세상은 영국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 씨앗은 골드스미스에서 시작되었다. 마이클 크레이그-마틴(Michael Craig-Martin)의 지도하에 골드스미스에서 수학한 학생들이 〈프리즈〉 〈모던 메디슨〉 〈센세이션〉 전시를 만들었다. 무려 29명을 터너프라이즈에 노미네이션 시켰고, 그 중 6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기억할 만한 졸업생으로는 마크 왈링거, 데미안 허스트, 안토니 곰리, 샘 테일러-우드, 루시안 프로이드(Lucien Freud), 매리 콴트(Mary Quant), 브리짓 라일리(Bridget Riley), 사라 루카스, 게리 흄, 스티브 맥퀸 등이다.
1990년대 ‘yBa’를 이끈 작가가 골드스미스에서 나왔다면, 2000년 이후 등장한 ‘포스트-yBa’ 작가는 상당수가 영국왕립예술학교(RCA) 출신이다. 미술 디자인 건축 패션 인터랙티브 아트, 특히 자동차 디자인으로 유명한 RCA는 트레이시 에민, 크리스 오필리, 데이비드 호크니, 게빈 터크, 헨리 무어(Hanry Moore) 등을 배출했다. 페인팅과 조각을 개별 전공으로 유지하며 전통적인 시각예술의 완성도를 강조하면서도 다양한 장르와 관점을 수용하고 있다.

Sensation  세계 미술의 판도를 뒤흔든 ‘센세이션’

 

 

<센세이션>전 도록 표지

<센세이션>전 도록 표지

“변태적이고, 토할 것 같다” 1997년 뉴욕 브루클린미술관에서 열린 〈센세이션〉전을 본 뉴욕 시장 루돌프 줄리아니의 혹평은 전시를 개최한 미술관의 재정지원을 철회라는 엄포로 이어졌다. 그러자 미술계는 미 헌법 제1 수정조항, 즉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반발했다. 논란에도 첫날 9천여 명이 전시를 보기 위해 미술관을 찾았다. 브루클린미술관 175년 역사상 가장 성대한 오프닝이었다. 열기는 다음날에도 이어지며 4천여 명이 줄을 서는 풍경을 연출. 호주국립미술관은 이 전시를 너무 상업적이라며 거부했다. 전시장 밖에는 신성모독과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전시를 반대하는 피켓 시위가 이어졌고, 전시장에는 계란과 잉크 투척 사건도 벌어졌다.
1997년 3개월간 284,734명의 관객을 몰고 온 영국 로얄아카데미(Royal Academy)의 〈센세이션〉전은 환호 보다는 비난과 반대 속에서 출발했다. BBC는 “절단된 관절과 명백한 포르노그라피로 가득 찬 폭력적인 전시”라며 보호자를 동행한 관람을 권장했다.
 
제이크&디노스 채프먼 <Tragic Anatomies> 혼합재료 가변크기 1996

제이크&디노스 채프먼 <Tragic Anatomies> 혼합재료 가변크기 1996

찰스 사치 콜렉션을 중심으로 42명의 작가 작품 110점이 노만 로젠탈(Norman Rosenthal)의 지휘하에 전시장을 불경한 공간으로 바꿔 버렸다. 보수적인 230년 로얄아카데미의 역사가 다시 쓰여지는 순간이었다. 데미안 허스트의 상어작품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인 불가능성〉, 자신의 피를 뽑아 얼려서 만든 마크 퀸의 〈자화상〉, 코끼리 배설물로 성화를 제작한 크리스 오필리의 〈성모마리아〉, 트레이시 에민의 텐트 설치작품 〈1963-1995년 사이 나랑 같이 잔 모든 사람들〉등의 엽기적인 소재와 선정적인 내용의 작품, 제이크 & 디노 챔프만은 어린아이 마네킹에 코는 남성의 성기로 입은 항문으로 묘사해 전시장 한쪽을 ‘19금’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되었던 작품은 연쇄살인범 미라 힌들리의 이미지를 아이들의 핸드 프린트 콜라주로 재현한 마커스 하비의 〈미라〉였다. 파란색 페인트와 계란 투척으로 작품이 훼손되었고, 결국 경비를 더 강화하기에 이르렀다. 사치갤러리와 옥션 하우스 크리스티의 후원으로 전시가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상업적이다” “가격을 부풀리기 위한 전시다” 등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적인 기존 미술관들이 대중들이 어떤 현대미술에 열광하고 있는지 반성하며 바라보게 하였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누군가는 싫어할 수 있어도, 할 수 있는 용기가 현대미술의 한 측면이라면 〈센세이션〉은 그런 욕망을 잘 대변한 전시였다. 전시는 베를린(1998 함브루크반호프미술관)과 뉴욕으로 순회전을 가진다. 순식간에 영국 전역을 넘어 전 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Tate Modern  거대한 발전소가 세계적 ‘랜드마크’로
 
아니쉬 카푸어 <Marsyas> 2002

아니쉬 카푸어 <Marsyas> 2002

2000년 5월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개조해 탄생한 테이트모던은 테이트브리튼, 테이트리버풀, 테이트세인트이브와 함께 테이트미술관 그룹 중 가장 성공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공간이다. 모두 7층으로 구성된 건물 한가운데 99m 높이의 굴뚝이 상징처럼 솟아 있다. 20세기 미술은 상설전시관으로 그밖에 현대미술은 특별전을 통해 관객을 맞이한다. 연간 400만 명 이상이 찾아가는 테이트모던이 또 다시 변신 중이다. 100만 갤런을 저장할 수 있는 높이 7m 지름 30m의 거대한 원통형 기름 저장고 2개(이스트탱크, 사우스탱크)를 완벽하게 문화저장고로 변신시키기 위해 무려 9,000만 파운드(한화 1,600억 원)를 투자했다. 2012년 7월, 테이트모던은 석유저장 지하 오일탱크를 실험미술 전시장 ‘탱크(The Tank)’로 개조해 세상을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 2000년 리노베이션에 이어 스위스 건축가 그룹 헤르조그&드뫼론이 이번에도 설계를 맡아 완성한 탱크는 2016년까지 2억 1,500만 파운드(한화 3,850억)가 투여되는 ‘테이트 모던 공간확장 프로젝트’의 첫 번째 결과이다. 탱크의 개관전 커미션 작업은 2011년 쿤스트할레 바젤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한국작가 김성환이 맡았다. 그는 이스트탱크 지하 전시장을 서울 암스테르담 뉴욕에서 수집한 이미지 사운드 조각 등을 이용해 전시장을 영화관처럼 꾸몄다.

Tunner Frize  ‘권위’와 ‘흥행’을 거머쥔 미술상
 
1992년과 1993년 터너프라이즈 포스터

1992년과 1993년 터너프라이즈 포스터

1984년 탄생한 터너프라이즈는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경쟁에서 탈락한 작가를 ‘루저’로 만들 수 있는 숏리스트 제도가 미술에 대한 모독은 아닌지, 영국을 대표하는 중견작가냐 아니면 이제 갓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 신진작가에게 주는 것이 맞는지, 상업적인 영향력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있는지 등.
1988년 테이트에 새로 부임한 디렉터 니콜라스 세로타는 숏리스트의 잔인한 경쟁 구조를 생략한다. 심사위원이 수상자(토니 크랙)를 발표, 다음해에 테이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어 주기로 한 것. 그러자 미술평론가들은 물론, 일반 대중까지 작품을 비교 감상할 기회를 박탈당했다며 터너프라이즈의 공정성을 비판했다. 결국 숏리스트 제도는 1년 만에 복귀, 그해 리차드 롱(Richard Long)이 수상자로 선정된다. 그러나 1990년 후원사의 부도로 터너프라이즈는 열리지 못한다.
1991년 새로운 스폰서 ‘채널 4’의 도움으로 1년의 공백을 깬 터너프라이즈는 상금이 2만 파운드로 늘어나고, 자격요건도 만 50세 이하로 명시된다. 1993년 터너상은 다시 전환점을 맞는다. 최초로 여성 작가 레이첼 화이트리드가 수상한 것. 참여관객도 늘어나 전문가 심사 못지않게 일반 대중의 반응이 수상자 선정에 영향을 주었다. 1994년 후보작가의 작품세계에 관한 토론의 비중이 높아졌고, 채널 4에서 제작한 작가 소개 영상을 전시장 한쪽에 소개하는 등 작품보다는 작가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데미안 허스트라는 브랜드 힘으로 전례 없는 구름 관중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 1995년. 1996년 단 한 명의 여성 작가를 후보로 선정하지 않았다는 비난 때문인지, 1997년 터너프라이즈 역사상 최초로 모든 후보작가가 여성으로 구성되었다. 2000년 들어서 성향이 좀 더 보수적으로 변하면서 일반 대중의 목소리가 더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미술전문지보다 《가디언》을 비롯한 일간지에서 터너프라이즈 소식을 전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2002년에는 대중도 게시판을 이용해 의견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논란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의 장르를 편식하지 않으며, 영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미술관 디렉터, 매거진 편집장 등을 심사위원으로 선정하는 터너프라이즈는 비록 이전 ‘yBa’ 선수들이 보여 준 막강한 흥행성은 떨어졌으나, 여전히 가장 권위 있는 미술상으로서 영국 현대미술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Liverpool Biennial  영국 유일의 비엔날레, 도시를 위한 축제
 
리버풀 중심가에 위치한 세이트조지홀에 2010리버풀비엔날레를 알리는 거대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리버풀 중심가에 위치한 세이트조지홀에 2010리버풀비엔날레를 알리는 거대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올해로 7회를 맞은 리버풀비엔날레(9. 15~11. 25)는 영국에서 열리는 가장 큰 현대미술 축제. 2010년 총 60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런던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갤러리 미술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보유하고 있는 도시 리버풀은 2008년 ‘유럽의 문화 수도’로도 선정되었다. 미술 음악 영상 세미나 코미디 퍼포먼스 댄스 등 다양한 행사가 결합한 리버풀비엔날레 하일라이트는 테이트리버풀과 파트너쉽으로 열리는 〈Sky Arts Ignition Series〉. 올해는 제3회 백남준국제미술상을 수상한 더그 에이트킨(Doug Aitken)의 설치작품과 건축가 데이비드 에드자에(David Adjaye)의 실험적인 파빌리온 디자인이 알버트 독(Albert Dock)에 설치된다. 또한 오프닝 이벤트로 미국 아방가르드 작곡가 리스 채썸(Rhys Chatham)의 감독 아래 100명의 전자기타리스트의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그러나 가장 시선을 끄는 전시는 〈예상치 못한 손님(The Unexpected Guest)〉이다. 테이트리버풀의 한국인 큐레이터 이숙경 역시 큐레이팅에 참여해 60여 명의 작가를 엄선했다. 특히 올해는 리버풀의 3대 명소 중 하나인 커나드 빌딩까지 전시공간으로 활용된다. 또한 〈City States〉전에서는 세계 9개 도시를 대표하는 작가 40여 명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영국 신예작가들의 따끈따끈한 작품을 보고 싶다면 〈Bloomberg New Contemporaries〉전을 살펴보면 된다. 1949년 시작된 〈New Contemporaries〉는 리버풀비엔날레의 창립 파트너로서 영국에 있는 미술대 졸업생의 작품을 소개해 오고 있다. 화가들의 로망이라 할 수 있는 〈The John Moores Painting Prize〉전은 워커아트갤러리(Walker Art Gallery)에서 개최된다. 작가들이 직접 운영하는 스튜디오형 전시장 ‘로얄 스튜디오(The Royal Standard)’에서는 현대미술에서 비엔날레가 차지하는 역할과 미래라는 주제로 〈Service Provider〉전이 열릴 예정이다. 빅토리아갤러리&미술관은 올해 처음 비엔날레에 참여하며, 리버풀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폴 루니(Paul Rooney)의 전시를 개최한다. 2012년 올해의 총감독은 런던 서펜타인갤러리의 수석 프로그래머 출신인 샐리 탤란트(Sally Tallant)가 맡았다.

Frieze Art Fair  영국을 넘어 미국 진출로 도약
 
2012프리즈뉴욕 전경(Photo: Linda Nylind)

2012프리즈뉴욕 전경(Photo: Linda Nylind)

미술평론가 제리 살츠(Jerry Saltz)는 2012년 5월 5일 《뉴욕 매거진》에 기고한 글에서 올해 처음 뉴욕에 진출한 프리즈아트페어와 뉴욕 아모리쇼를 비교 분석하였다. 아모리쇼가 “얼마나 크게, 민주적으로 수익을 최대화”할 것인가의 고민하는 동안 프리즈는 “능력 있는 갤러리 중심으로 진부한 것들을 배제시켜 왔다”는 것. 전자가 많은 갤러리에게 기회를 나눠 주는 것을 민주적인 것으로 바라보았다면, 후자는 배제하고 탈락시키는 잔인한 행위를 아트페어가 반드시 지켜야 할 책임으로 실천해 왔다. 이 작은 태도의 차이가 10년이 지난 지금, 런던 태생의 10살짜리 프리즈아트페어가 100살짜리 아모리쇼를 이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한 해 6만 8천여 명의 관객이 찾는 프리즈아트페어는 첫 3년 동안은 참여 갤러리들의 판매 결과를 결산해 발표했다. 그러나 2006년 이후부터는 세일즈 결과를 발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전체 행사의 성과를 상업적인 숫자로 판단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조직위의 판단이었다. 프리즈아트페어 성공 요인으로 2008년부터 이어져 온 도이치 뱅크의 후원을 들 수 있으나, 여기에 더해 페어의 작품을 구매해 테이트 컬렉션으로 연결하는 ‘Outset Contemporary Art Fund’의 지원 역시 프리즈를 특별하게 만드는 장치였다. 캔디다 게르틀러(Candida Gertler)와 야나 필(Yana Peel)이 설립한 OCAF는 2003년부터 현재까지 매해 프리즈아트페어 참여작가 중 엄선해 테이트 컬렉션이 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2003년 100,000파운드, 2004년 150,000파운드, 2005년 125,000파운드, 2006년부터 150,000파운드가 콜렉션 기금으로 활용되었다. 이는 참여 갤러리들이 경쟁적으로 실험적인 미술관급 작품들과 작가들을 전시장에 포진시키는 촉매제가 되었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프리즈는 규모는 작지만 가장 볼만한 아트페어로서의 명성을 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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