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COLUMN

HomeOnlineCOLUMN

전후 남한의 미디어 풍경과 불경스런 징후들

2012.06.20 14:19

<<art in culture 2012년 6월호 -암흑물질>>

삐라, 반공, 주술

역사적 트라우마는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강박적으로 재생산되는가? 필자는 해부칼을 든 의사처럼 남한의 곪아터진 기억과 망각의 상처를 도려낸다. 역사적 정신적 외상의 기원과 풍경들이 굿판처럼 펼쳐진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전쟁기념관의 밀랍인형, 박정희 독재 정권과 압축 근대화, 반공만화의 주인공들, 개신교와 무속 샤머니즘, 1990년대 ‘X-세대’,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IMF사태…. 숨차게 그려 놓은 ‘기억의 습작’에, 우리의 민얼굴이 점선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너무 커버린 내 미래의 그 꿈들 속으로. 잊혀져 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생각날까.”

글 |이용우·코넬대 아시아학과
 
박찬경 <어떤 산-포옹> 디지털프린트 86×106cm 2008

박찬경 <어떤 산-포옹> 디지털프린트 86×106cm 2008

“망각에 찬사를 보낸다는 것, 그것은  기억을 비방한다는 것, 더더욱 추억을  무시한다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망각의 작업을 인정하고 추억 안에서  그것의 존재를 찾아내는 것이다. 기억과  망각은 어떤 의미로는 삶이나 죽음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막 오제(Marc Auge), 《망각의 형태》, p. 17.

2010년은 한국전쟁 6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다. 그리고 이듬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자연재해부터 정치외교 관계에 대한 식민후기적 증후와 잉여의 원한들이 온라인상에 날 것의 담론들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미야기현 센다이 시 앞바다에 리히터 규모 9.0의 강진이 발생하여 1만여 명의 일본인이 목숨을 잃었다. 잇따라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불행은 남한인들에게 스펙터클한 광경을 목도하는 관객으로서의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인 동시에 역사적 인과응보의 자연적 징계로 독해되었다. 한국-베트남 수교 20주년을 앞두고 쯔엉떤상 베트남 국가주석의 남한 방문을 통해 양국이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됨을 재확인하는 공동성명과 양해각서를 11월 9일 체결함으로써, 1968년 파병된 한국군이 쿠앙남성 디엔반현 퐁니 퐁닛에 대규모의 민간학살을 자행한 역사적 사실들이 망각되었다. 그리고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급성 심근경색과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사망했다. 9월 3일에는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분신자결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이자 노동조합단체 운동가로 활약했던 이소선 여사가, 12월 30일에는 유신군사독재시절 학생운동을 주도하며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김근태 의원이 사망했다. 2011년은 이렇게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2011년 12월 28일 열린 김정일 장례식에 눈물을 흘리며 달려가는 북한 주민들 모습.

2011년 12월 28일 열린 김정일 장례식에 눈물을 흘리며 달려가는 북한 주민들 모습.

남한, 고통과 균열의 경합장
21세기 남한의 담론공간은 우세한 담론이 자신의 영역을 끊임없이 확장하는 반면 종속적 담론, 이를테면 일탈적 하위문화의 언어는 우세 담론과 교섭하거나 통제를 완전히 전복시키는 담화적 이질언어의 장(heteroglossia)이었다. 시장경제에 지배당한 자들의 담론은 늘 고통의 경합장이다. 그래서 사이버공간의 담론장은,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경직된 우세 담론과는 상반되는 대안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사회의 기억과 상흔의 현실이 더욱 또렷이 부각되었다. 앞서 언급한 2011년에 발생한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은 사이버공간에서 한 세기 동안 중층적 식민경험을 겪은 피식민지자의 이중적 정체성들이, 예언과 종말론, 주술과 민간신앙의 논리, 일본의 전쟁 과오들이 자연재해로 응징되고 있다는 인과응보의 민족주의적 카타르시스로 재접합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 국가 속에서 서로 다른 자본주의적 수혜를 받고 자라난 세대 간의 균열을 가속화하는 경합의 터전이 되었다.
해방 전후, 일본과 북한을 철저히 타자화하고 반식민 민족 담론과 반공 교육을 통해 자기 분열을 겪으며 식민 경험을 대리 경험한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미디어를 통해 재현된 일본의 자연재해와 북한인들의 서러운 울음은 그저 물화된 슬픔과 비이성적 애도에 지나지 않았다. 스펙터클 속 타인의 고통은 남한인의 영속된 집단 트라우마와의 알레고리적 연계를 통해 더욱 물신화되고 특권화된 전 역사적 희생자 의식의 보상으로 대체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남성적 민족주의와 신자유주의에 감염된 남한에서 연속되고 있는 트라우마들의 추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왜 특정 역사 기술들은 항상 이중적 시간과 장소로서, 우리 내부에 잠재된 민족주의와 미시적 파시즘이라는 버튼을 누르고 있는 것일까?

한 노인이 김정일 사망 소식을 전하기 위해 발행된 신문 호외를 들고 있다.

한 노인이 김정일 사망 소식을 전하기 위해 발행된 신문 호외를 들고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트라우마는 역사적 사건과 그것에 대한 기억이라는, 서로 다른 시간적 간극 속에서 발생한다. 즉 이 순간은 결코 매번 똑같이 기억되지 않으며 균질적이고 획일적 시간이라기보다, 반복을 통해서 발현되고 각색된다. 왜냐하면 극도로 끔찍한 기억들은 우리 무의식 속에 영구고착돼 의식적 통제가 불가능하며, 이는 후에 프로이트의 핵심적 논의 중 하나인 ‘억압된 것들의 귀환(the return of the repressed)’, 즉 과거의 기억들이 뒤늦게 현재에 나타남으로써 모순과 갈등을 빚게 되는 현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트라우마는 늘 내재성과 외재성에 대한 자각과 시간적 발현의 차이를 통한 정신적 외상으로 표출된다.
한국인에게 있어 세 번의 근대적 전쟁 경험(태평양전쟁,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전쟁)과 그에 따른 집단 트라우마는 이미 수많은 기념비나 도서 대중음악 영화 박물관 등 다양한 미디어 재현 과정을 통해 더욱 익숙한 방식으로 순화되고 역사화되며, 전형적인 이미지와 공적 기억으로 고착화되어 반복 재생산되었다. 이렇게 반복적 강박적으로 재현된 트라우마의 귀환은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주는가? 역사적 트라우마의 반복과 반일 반공의 민족주의는 어떤 방식으로 비근대와 근대의 경계, 이성과 광기의 경계선을 넘어 사고의 분절을 배태하는 것일까?
 
2010년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한국전쟁 6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아! 6.25>가 열렸다.

2010년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한국전쟁 6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아! 6.25>가 열렸다.

기억의 얼굴성
2010년 여름, 나는 ‘한국전쟁 60주년’을 ‘기념’하는 전쟁기념관의 상설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용산으로 향했다. (한국전쟁 발발일이 어째서 ‘기념’해야 하는 날일까?) 네이션(국가-국민-민족)의 역사를 재생산하고 공적 기억을 국민에게 주입하기 위해 1994년 6월 ‘전쟁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한 이곳은, 원래 대한민국 육군 청사가 있던 자리였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단에 의해 제작된 조형물이다. “유구한 역사와 민족의 번성을 상징하는 청동검과 생명수나무”를 모티프로 서구식 화강암으로 만든 메인기념관 바로 앞쪽에, 마치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거대한 토템 남근처럼 우뚝 솟은 조형물의 노골적인 상징성을 지나 전시실 내부로 들어섰다. 약 9,000개가 넘는 각종 전쟁 관련 무기류 의복 선전물, 잡기류를 전시한 전쟁기념관은 ‘오랑캐’와 ‘일제’ 그리고 ‘빨갱이’들의 침략들로 점철된 굴곡의 역사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은 반도인의 기상을 하나하나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다. 전쟁기념관은 삼국시대부터 베트남 전쟁까지 약 2천 년이 넘는 연대기적 파노라마의 공적 내러티브를 무균질의 유리관 속에 주조해 낸다.
마치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삐라처럼, 박물관의 황홀경과 물신화된 역사 서사물의 모조품들은 실상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의 말처럼 의도적으로 “발명”된 역사이다. 전근대와 근대를 매개하는 전시된 모조품들이 주는 상징적 가치란, 결국 선조의 희생적 서사를 통해 민족주의 내셔널리즘의 정당성과 영구적 한민족 상상공동체의 논리라는 것을 지루하고 장황하게 설명해 보인다. 이윽고 나는 어두침침한 조명 아래 잡동사니를 파는 서늘한 흥남상회로 들어서게 된다. 이전 전시관들이 내부와 외부에 단단한 결계를 만들어 사적 감상자로서의 관람객과 공적 기억의 조형물 사이의 권력적 거리를 유지하며 숨죽인 채 전시품들을 응시하게 하였다면, 흥남상회의 밀랍인형 전시관은 박제된 유물들과 흔적의 불편한 아우라를 과감히 걷어 내고, 미디어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친숙하고도 처참한, 재현된 전후의 풍경 속으로 우리를 걸어 나가게 한다.
 
전쟁기념관의 <전시 생활관>에 설치된 <흥남상회 앞의 시장 풍경> 모습 (사진: 이용우)

전쟁기념관의 <전시 생활관>에 설치된 <흥남상회 앞의 시장 풍경> 모습 (사진: 이용우)

전시관의 한 모퉁이에선 끊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빙 크로스비(Bing Crosby) 풍의 꿈 꾸는 듯한 현인의 목소리가 눈썹이라도 깜빡 거릴 것 같은, 한국 전후의 얼굴성(faciality/Visagéité)을 대변하고 있는 밀랍인형들의 귓가에 ‘굿세어라’고 나지막이 읊조린다. 이윽고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쑥 뻗어 금세라도 입술을 이죽거리며 ‘김미 쵸컬렛!’을 외칠 듯한 전쟁고아 앞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스토리텔러〉(1936)에서 이야기꾼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내용이나 정보가 아니라 기억 속에 덮여 있고 망각 속에 파묻힌 것들이라고 말한다. 즉 이런 감춰진 이야기들이 지닌 효능성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과 같은 무의식적 회상이나 어떤 역사나 이야기에 대한 기억을 지니고 있는 매개물을 통해, 죽어 있던 목소리들을 되살려 내는 주술의 힘이다. 의식이 이미 문제적 사건이나 역사를 망각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무의지적 기억이 계속 살아있는 것과 같다. 박물관 속에 무심히 서 있는 전쟁고아 밀랍인형의 얼굴은 분명 우리에게 무언의 비밀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영원히 부패하지 않은 채. 전후라는 시간성 속에 갇혀 사후 생명을 통해 스스럼없이 뻗은 손으로 전후와 현재의 시간을 매개하며, 과거가 결코 현재와 다르지 않다는 비밀.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는 《기계적 무의식(L’inconscient machinique)》(1979)에서, 무의식의 잉여성의 공간적 형식을 ‘얼굴성’이라 불렀다. 그는 얼굴이 특정한 사회 구성체의 산물이자 감정의 표정을 지니게 되었을 때라야만 비로소 신체에서 분리된 독자적 ‘얼굴성’을 획득하게 된다고 말한다. 즉, 표정이라는 기표가 내재한 얼굴이야말로 비로소 타자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도구이자 기호가 되는 것이다. 전쟁기념관 밀랍인형의 무표정한 ‘얼굴성’은 이미 60년이나 지났어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우리 안의 식민적 무의식을, 피식민지자로서의 과거를, 신식민지자로서의 현재를 고요히 하지만 집요하게 소환해 내고 있다.
 
당시 식민지 조선의 소년들에게 유행했던 일본 소년 잡지인 《소년구락부》의 창간호. 채만식의 <치숙>(1938)에도 이 잡지에 대한 회고가 등장한다. "잡지아 뭐 낑꾸나 쇼넹구라부 덮어먹을 잡지가 있나요. 참 좋아요.(…) 잡지도 기왕 하려거든 그렇게나 해야지. 죄선 사람들은 제엔장 큰소리는 곧잘 하더구면서도 잡지 하나 반반한 거 못 만들어내니!"

당시 식민지 조선의 소년들에게 유행했던 일본 소년 잡지인 《소년구락부》의 창간호. 채만식의 <치숙>(1938)에도 이 잡지에 대한 회고가 등장한다. "잡지아 뭐 낑꾸나 쇼넹구라부 덮어먹을 잡지가 있나요. 참 좋아요.(…) 잡지도 기왕 하려거든 그렇게나 해야지. 죄선 사람들은 제엔장 큰소리는 곧잘 하더구면서도 잡지 하나 반반한 거 못 만들어내니!"

어쩌면 이 전쟁고아는 일본 소년잡지 《소년구락부(少年俱樂部)》와 망가 〈단키치의 모험(冒ダン吉)〉을 보며 군국파시즘 소년 전사의 꿈을 키우던 조선인 남자아이가 낳은 자식이었고, “공산당이 싫은” 이승복 반공 소년의 삼촌이었으며, 북괴를 무찌르는 반공만화의 주인공 〈똘이장군〉과 〈해돌이〉의 아비였는지도 모른다. 해방 후 단 한 번도 자신의 역사를 애도(mourning)하고 타자를 용서할 기회가 없었던, 밀랍으로 봉인된 수많은 남한인의 ‘얼굴들’은 한국전쟁과 분단, 총력전기 일제에 의해 자행된 위안부 담론들 속에 자신을 피해자로 안착시킨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을 반공웅변대회나 포스터표어대회에 입상하게 하려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으며, 아이들은 자라나 북한인들을 뿔 달린 악마나 동물로 믿으며 무럭무럭 개인적 파시즘을 자가증식해 나간다.

망각의 목소리
총력전이 한창이던 1942년 12월, 일제는 황국신민화 정책을 통해 국민학교령을 내려 소학교를 국민학교로 고치고, 조선 어린이들을 황국신민서사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통해 잠재적 군국파시즘 소년 전사로 양성하고자 했다. 그 후 30년도 더 지난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여전히 ‘국민학교’를 다니고 있던 사람들은 어렴풋이 기억한다. 오후 5시, 거리에 사이렌이 울려 퍼지면 공차기를 잠시 멈추고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 한다는 것을. 일요일 이른 아침, 눈 비비며 보았던 세련된 디즈니 명작만화와 마츠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 999〉와는 달리, 학교 단체관람에서 본 촌스러운 〈똘이장군〉의 오프닝 시퀀스 속에 그려진 굶주리고 핍박받는 사람들에게 서서히 다가가는 섬뜩한 손목과 핏빛 제목과 공포스러운 사운드를. 마침내 똘이장군이 검은 악마 돼지수령과 늑대들을 무찔렀을 때 느꼈던 환희에 찬 감격을. 무심결에 주제곡을 따라 부르며 ‘북괴’를 쳐부숴야 하는 생경한 사명감에 휩싸인 자기 자신을. “똘이장군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똘이장군 앞서 간다. 겁낼 것 없다. 덤벼라 덤벼라 붉은 무리 악한 자들아. 무쇠 같은 주먹이 용서 못 한다. 용서 못 한다.” 우리는 목적어로도 부재한 타자들을 이유 없이 미워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세했기 때문이다.
 
<똘이장군> 장면. 냉전기에 만들어진 대표적 반공만화이자 반통일적 서사를 담고 있다.

<똘이장군> 장면. 냉전기에 만들어진 대표적 반공만화이자 반통일적 서사를 담고 있다.

박정희 정권이 오랜 유신체제에 대한 사회적 비난과 관심을 돌리기 위해 대대적으로 의제설정(agenda setting)했던 북침설과 땅굴 발견의 일환으로 제작된 〈제3땅굴편 똘이장군〉(1978)은 당시 한창 인기를 끌던 할리우드 타잔의 원시적 영웅 이미지를 아동 영웅담과 반공서사로 교묘히 혼성교배한다. 에드가 라이스 버로우스(Edgar Rice Burroughs)의 원작 〈타잔〉이 1970년대 말 미국비평가들에게 백인우월주의와 여성혐오, 인종차별적 재현 구도의 혐의로 비판을 받은 한편, <똘이장군>의 인종주의적 은유는 이런 백인우월적 서사를 적극적으로 전유한다.  백인이라는 나르시시즘적 자기동일성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동시에, 같은 ‘인종’의 범주에 있기에 더는 타자화시킬 수 없는 북한인에게 동물성(animality)을 부여한다. (2012년 5월 26일, KBS 1TV <생방송 심야토론>에서, “김일성, 김정일은 개새끼다라고 말할 수 없는 자들은 모두 종북세력”이라 말한 전원책 변호사의 이분법적 언술을 기억하라.)
이처럼 일상 속의 반공서사는 해방 이후에도 놀라울 정도로 일본과 유사한 삶을 꾸려 온 남한인들에게 유일한 이질적 일상성(heterogeneous temporality)이었다. 또한 다양한 계급적 젠더적 인종적 서사를 ‘조국근대화’와 ‘총력안보’의 논리 속에 재빨리 봉합하고 재편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해돌이 대모험〉(1982), 〈해저탐험대 마린엑스〉(1982), 〈로보트왕 션샤크〉 (1985) 등 일련의 반공만화 계보는 19 86년 군사정권의 몰락으로 서서히 잊혀 갔다. 이 만화를 보며 자라난 열혈 반공 소년소녀들은 88올림픽 이후 남한이 세계자본주의 질서에 서서히 편입되던 1990년대 초중반에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최근 한국 멜로영화 사상 첫 400만 관객을 돌파한 이용주 감독의 〈건축학 개론〉(2012). 우리는 이 영화 안에서, 파워레인저와 캔디를 홀연히 떠나보내고 X세대와 오렌지족의 외피 속에 무라카미 하루키와 왕가위, 천리안과 하이텔, 〈임을 위한 행진곡〉과 〈퐁네프의 연인들〉, 《키노》와 《리뷰》, 그리고 〈정은임의 FM 영화음악〉과 전람회의 〈독백〉을 읽고/쓰고/듣는, ‘근대’라는 시공간을 건너뛰고 곧바로 아찔한 ‘포스트모던’ 속에 안착한 자아를 발견한다. 1980년대 정부의 ‘왜색’ 문화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맛치의 〈깅기라기니(ギンギラギンにさりげなく, 近藤眞彦)〉(1981)를 듣고 〈우주소년 짱가〉와 〈요술공주 밍키〉를 보며 꿈을 키웠으며, 《논노》를 통해 일본식으로 변조된 서구 유행패션을 따라 했던 아이들은 반공의식의 몰락과 신자유주의적 근대화가 급격히 자리바꿈을 하고 있던 1990년대 후반 IMF구제금융으로 “잊힌 세대”로 전락한다.

 

근대성과 전근대성의 굿판
흥미롭게도 이용주 감독의 장편데뷔작 〈불신지옥〉(2009)은 이런 포스트 IMF세대의 히스테리아를 호러의 은유로 풀어 낸다. 〈불신지옥〉은 한국 근현대사를 재단해 온 복잡다단한 정치사회 문제들에 헐겁게 끼워진 미국 지향적 압축 근대성의 구조, 해방 이래 조국 근대화에 매달려 온 중산층 소시민의 무의식적 불안감 그리고 그 속에 중첩되어 있는 기복신앙적 욕망의 충돌을 그려 내고 있다.
1994년 부실공사로 다리가 내려앉아 32명의 사망자를 낸 성수대교 사건과 그 이듬해 건물이 통째로 무너져 502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새마을운동으로 촉발된 산업화사회의 조국근대화와 총력적 국민 동원, 그에 대한 무자각적 대중 추수가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음을 뼈저리게 각성시켜 주는 시각적 증거물이 되었다. 야만에 맞서 생성된 문명의 끝이 결국 야만으로 귀결되는 아도르노식 회귀성은 삼풍백화점 자리에 새로 들어선 주상복합 아크로비스타의 지하에 유령이 출몰하고, 1989년 12월 개장 이후 강남구 서초동에서 남한 고도성장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삼풍백화점 터가 원래 조선시대 상궁들의 무덤 터였다는 흉흉한 괴소문으로 반복 회자된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현장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현장

‘한국’식 근대화의 집적물이자 생존을 위한 장으로서의 아파트라는 기괴한 복합 주거단지의 탄생은, 압축 근대화를 통한 성공신화 뒤에 자리잡은 중산층의 불안과 파편화가 집적되고 극대화될 수 있는 유용한 준거점이 된다. 따라서 영화의 가장 큰 내러티브적 맥락은 바로 이런 실패한 근대성에 대한 개개인의 상호 불신과 무방비한 상태에 놓인 파편화된 개인들이 두려움을 떨쳐 낼 수 있는 이기적이고 맹목적인 기복신앙 간의 충돌에 있다. 역사상 유례 없는 붕괴 사고들을 통해 생존에 근거한 가장 기본적인 믿음마저 불신되는 것을 목도한 남한인들은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수많은 기복신앙과 개신교 간의 혼성교배를 통해 스스로를 위안하고자 했다. 
친미-반공-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독재군사정치의 은밀한 후원자가 되어 준 한국 보수주의 개신교는 기복신앙과 무속 샤머니즘과의 혼종을 통해, 대중들이 믿고 기댈 수 있는 것은 결국 예수와 잡귀가 공존하고 주술과 기도가 병치되는 다신적 신앙들의 하이브리드 장(sphere)인 것이다. 영화 〈불신지옥〉은 개신교와 민간신앙, 그리고 오컬티즘(비근대)과 형사 수사(근대)로 대변되는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결국 모든 유령이 한꺼번에 소환되고 경합을 벌이는, 근대성과 전근대성이 한판 굿을 벌이는 담론의 공간으로 작동된다.
주인공 희진의 판타지 장면 중, 모래사장에서 뿌리 뽑힌 이빨을 주운 그녀의 손바닥을 쪼아 먹는 학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이빨은 학으로 대변되는 청정 무결한 근대국가로서의 남한이 성급하게 주워 먹은 뿌리 없고(rootless) 불안정한 근대성의 잉여를 상징한다. 이런 압축 근대성과 자본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주술적 제의를 위해 희생양으로 바쳐진 소진의 시체를 은폐하는 데 조력한 아파트 경비원 귀갑에 빙의된 파시즘적 언술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내가 월남에서 베트콩 많이 죽였어. 빨갱이 새끼들 M-16으로 엄청 죽였어. 그런 요망한 것들, 빨갱이 새끼들, 싹 다잡아서 삼청교육대에 쳐넣고 확 씹창을 내야 해. 한국놈들은 말로 해서는 안 되거든. 거기선 내 말 한마디면 다들 벌벌벌, 내가 ‘기어!’하면 서울대 나온 새끼들도 다 빡빡 긴다고. 알어? 내가 그런 사람이야!”
 
영화 <불신지옥>의 스틸컷

영화 <불신지옥>의 스틸컷

 

박정희식 비이성적 압축 근대화
아쉴 음벰베(Achille mbembe)는 미셸 푸코, 칼 슈미트, 조르조 아감벤의 생체정치, 근대적 규율 권력과 주권이론을 전유해 국가는 언제든 국민을 죽일 수 있는 권력을 가짐으로써 그들의 삶을 통제하고 굴복시킨다는 의미로, 근대 국가 권력을 네크로폴리틱스(Necropolitics)라 명명했다. 국가 권력에 부여된 ‘살인면허’를 통해 1948년 제주도 양민학살이나 거창 양민학살 등 후식민적 기억을 몸소 체현한 세대들에 있어 근대란, 반드시 달성해야 할 염원인 동시에 끊임없이 후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소진’해야 하는 상흔의 장소로 작동된다. 따라서 한국인의 베트남 참전이라는, 다분히 제국(미국 혹은 일본)에의 의태적 모방은, 총력전기 건강한 아들과 남편을 전장으로 떠나보내고 죽음으로 천황에게 보답하라며 세닌바리를 한땀한땀 떴던 총후 부인의 서사를 그대로 답습한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권력을 잡은 직후 경제개발을 국가의 ‘총력’ 목표로 삼고, 그 일환으로 1965년 8월 일본과 외교 정상화를 맺었다. 베트남 파병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경제 군사적 원조를 받는다는 내용의 밀약인 ‘브라운 메모렌덤(Brown Memorandum)’을 체결하며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약 3만여 명이 넘는 건장한 한국남성들을 베트남의 정글로 떠밀어 넣었다. 전후 일본은 패망과 미군 점령의 트라우마 그리고 다시는 전쟁에 참여할 수 없다는, 헌법 제9조를 통한 재남성화(remasculinization)의 불가능성을 통해 인격 분열을 겪었다. 그러나 전후 남한의 집단 트라우마는 전제정치의 시퍼런 서슬 아래 미국과의 자발적 동맹을 통해, 노동자의 욕망을 억압하고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며 남근적 자본주의 가해자의 탈을 쓴 채 식민자를 모방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전후 한국의 후식민적 근대국가 건설과정서 국가통제형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배태할 수밖에 없는 비합리성과 광기를 낳는 계기가 된다.
 

차주용 <산성#01> C-프린트 90×180cm 2007

차주용 <산성#01> C-프린트 90×180cm 2007

박정희식 비이성적 압축 근대화는 스스로 피식민자이자 식민자가 된 자웅동체의 모순된 정체성을 수많은 목소리 없는 타자들(파월 병사, 파독 간호사, 양공주, 여성 근로노동자, 빨갱이, 전라도)을 희생양으로 만듦으로써 재구축한다.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희생양》(1982)에서 텍스트가 보여주는 희생양은 텍스트 ‘안’의, 그리고 그 텍스트를 ‘위한’ 희생양이다. 이에 반해 우리 스스로 텍스트 안에서 찾아 내야 하는 희생양은 텍스트‘의’ 희생양이라고 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영화 〈불신지옥〉 속 희생양인 소녀의 이름이 소진이라는 점은 예사롭지 않다. 그녀는 스스로를 ‘소진(消盡)’시킴으로써 역사적으로 구조화된 한국의 압축 근대화 속에 내재한 총체적 파시즘의 희생양이 된다. 귀신과 접신한 소진은 집안에 있는 모든 먹을거리를 먹고도 늘 배고파한다. 소진이 예언하기 전, 끊임없이 중얼거렸던 “배고파”는 전근대적 주술에 접신한 포스트 IMF세대의 걸신들린 개발도상국적 공허감이다. 가해자가 결국 자신이 믿었던 가족과 이웃으로 귀결되고 애써 이룩해놓은 근대에 대한 믿음마저 배신당하는 시점이 바로 이 영화가 제시하고 있는 현실적 공포의 시발점이다. 어쩌면 삼풍백화점 생존자 신정아가 암흑과 공포 속에서 ‘생사의 찰나’를 경험하며, 스스로의 삶을 ‘각색’하고 ‘큐레이팅’하기로 마음 먹었던 것은 바로 이 순간의 주술적 현현(epiphany)이 아니었을까? 
이런 불가해한(uncanny) 공포와 집단적 외상증후는 영화적 현실(diegesis) 속에서 정확히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1995년에 태어난 14세 소녀의 접신과 강령술(necromancy)과 은밀히 교통한다. 빙의된 소녀를 절대적 믿음의 존재인 신이자 자신들의 외상적 치유를 위한 희생양으로 바치는 이 아이러니하고도 양가적 상황이 바로 우리가 현재 위치하고 있는 지점인 것이다. 자판을 두들기며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그로테스크하게 역겹고 이상하리만치 매혹적인 어휘와 문장을 배설하며 불안을 달래기 위해 은밀히 사령(死靈)을 소환하고 영웅과 희생양을 동시에 찾고 있는 우리의 얼굴, 미끌거리고 물컹물컹한 얼굴성. 우리는 여전히 이승복식 반공교육과 박정희식 근대화 속에서 유령처럼 세계를 부유하는 ‘타자’의 무의식 속에서 트라우마와 파시즘의 스위치를 조용히 끄고 켠다.
 
김동유 <박정희 & 마를린 먼로> 캔버스에 유채 227.8×181.8cm 2008

김동유 <박정희 & 마를린 먼로> 캔버스에 유채 227.8×181.8cm 2008


치유의 근대성으로
미디어 풍경 속에 표상화된 트라우마의 재현과 귀환은 중첩된 식민역사의 변주와 함께, 주술과 개신교, 반공과 민족주의를 통해 쉬이 비근대와 근대의 문지방을 넘나든다. 일본과 미국이라는 두 제국의 식민경험이 덧씌워진 보철의 근대성은 신식민자로서의 남한인들이 끊임없이 제국을 모방하면서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그어버리는 식의 후식민적 병리학을 낳는다. 도미니크 라카프라(Dominick LaCapra)는 이런 역사적 집단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상실(loss)과 부재(absence)의 개념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둘의 의미적 혼란은 후식민자들에게 대리 된 역사적 피해자 의식(vicarious victimhood)을 더욱 강화시키고 피해자 의식 자체를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게 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부재는 탈역사적이고 현재-과거-미래 시제를 지니지 않지만, 상실은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결핍, 즉 뭔가를 잃어버렸기에 반드시 채워 넣거나 보충해야 할 무언가이다. 즉 상실은 늘 역사적인 개념으로 언제든 현재나 미래 속에서 특정 담론으로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이를테면, 연인의 죽음이나 홀로코스트의 기억, 위안부 문제 등은 모두 상실의 트라우마로 작동된다. 반면에 부재의 트라우마는 더욱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무(無)의 상태’이다.
라캉식 주체 구성 과정은 프로이트가 손자를 보며 ‘포’라고 외치고 실꾸리를 멀리 던진 후 ‘다’라고 외치는 포르트-다(fort-da) 놀이에서 착안했다. 이를 통해 아이는 어머니의 부재라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실꾸리라는 매개를 통해 상징화하면서 서서히 부재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부재가 상실로 전이될 때 우리는 자아를 투사해야 할 대상에 대한 강박증과 무언가를 회복시키고 복권해야 한다는 집착에 사로잡히게 된다. 즉 끊임없이 자신의 근본적 정체성이 어떤 불가사의한 힘으로 파괴되고 오염되었다고 믿게 되고, 그것을 순교자적 서사나 희생양이라는 타자를 설정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부재를 결코 상실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애당초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재가 애도의 대상이 되면 애도는 불가능하게 되고 끊임없는 우울증을 낳게 된다. 남한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우울증은 이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거의 한 세기 동안 거세한 채, 조심스레 자신의 기억을 간직하거나 의도적으로 망각해 온 근현대역사 속의 국가 권력과 사회 구성의 균열과 깊은 관계가 있다. 우리는 자신의 기억과 목소리를 주술적 미디어 영상을 통해 격문하며 한을 달래고 찰나의 희생양들을 통해 대리만족한다.
이런 역사적 반복의 지옥 속에서 남한의 근대성은 마치 가부키의 피날레에 눈꽃(紙吹雪, Kami-Fubuki)처럼 휘날리는 삐라의 소용돌이 속 같다. 언제든 다시 재생되고 재활된 과거의 트라우마는 기억이 아니라 마치 현존하고 있는 것처럼 현실 속에서 유령처럼 출몰한다. 우리는 이런 부재와 상실감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고 애도해야 한다. 받아든 삐라에 지방과 축문을 써서 이름 없이 사라진 타자의 이름들을 새겨 넣고 다시금 기억해내야 한다.


이용우 코넬대 아시아학과와 인문사회연구소(Society for the Humanities)에서 비판적 미디어 문화연구, 동아시아 소리문화, 후식민적 역사 서술방식과 번역 문제, 집단 무의식과 트라우마에 관한 연구 및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동아시아 대중음악으로 식민의식의 연속성과 근대성의 역사적 형성 과정을 함께 살펴볼 《Voices between Empires》를 집필하고 있다.
 

 

Posted by Exhib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