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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2.08

Abstract

'yBa'로 대변되는 영국 현대미술이 2012런던올림픽을 즈음하여 정점을 찍고 있다. '문화 올림피아드'라는 모토 아래, 아니쉬 카푸어의 올림픽 기념탑과 테이트모던의 데미언 허스트 회고전을 비롯, 올림픽 기간 동안 총 90개의 특별전이 열린다. art는 런던 현지의 미술 열기를 취재하고, 아울러 영국 현대미술의 성공 요인을 7개의 키워드로 분석한다. 무명의 신진작가들이 세계적 아티스트로 발전할 수 있던 데에는 작품성은 물론, 정책과 교육 그리고 미술시장과 수상제도 등 잘 짜인 시스템이 뒷받침되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이미 '포스트-yBa'를 준비 중이다. 『크리에이티브 런던』전의 참여작가 8인을 통해 '경이로운 영국 현대미술(British Art of Wonder)'의 미래를 전망해 본다.

Contents

01    표지  모니카 본비치니 <RUN> 2012 copyright@ODA(Photo: David Poultney)

34    영문초록

37    에디토리얼 미술 기자의 여행  호경윤

38    프리즘
    한국미술 컨퍼런스, 런던을 흔들다!  김찬동
    전문지 위기의 시대, 돌파구는 있다!  박성태

42    IMAGE&ISSUE [4]
    버들치터널의 슬픈 이야기  이영준
    
44    오후의 아틀리에  다시 그리다  김현철

61    뉴비전  신진 평론가 발굴 프로젝트
    제6회 뉴비전 파이널리스트 3인 선정!

68    포커스
    하종현展  김미경
    더 버티컬 빌리지展|원더러스트展  정연심
    조성묵展  심상용
    무브온아시아展|유희적 저항展  홍지석

84    특집  BRITISH ART of wonder
     [1]올림픽과 예술의 뜨거운 랑데뷰  호경윤
     [2]7개의 키워드, 영국미술의 ‘성공 신화’  이대형
     [3]yBa이후, 크리에이티브 영아티스트  이장욱
    
116    스페셜 아티스트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1]Double, 주체와 타자의 공존이 가능한  김성원
     [2]Biography 에이즈 위기 시대의 미술과 함께  임근준

136    WHO WE MET  알렉산더 로워  김수영
    
138    아트 포럼  지역 미술관, 어디까지 왔는가?  김영호

147    작가 인터뷰  문범강 
    ‘푸른 늑대’가 그려 내는 부조리극  김복기

158    아티스트 인사이드
     [1]이창원_그림자, 현실을 비추는 ‘평형 세계’  장승연 
     [2]김상돈_보이지 않는 풍경의 기묘한 역학들  김재석

166    전시 리뷰  
    김태호|이일|The Rule of Reproduction
    세탁기 장식장|경달표|황지윤|이림|양정욱, 이해민선
    키스 해링: 1978~1982|이동의 여정과 번역

176    전시 프리뷰  
     피필로티 리스트|이상남|전경, 강임윤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제곱
     곽훈, 카와마타 타다시|달 프로젝트

186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떠나는 것과 머무는 것

〈더 버티컬 빌리지〉전 전경

떠나는 것과 머무는 것

글 | 정 연 심

한스 마리아 드 울프가 기획한 〈원더러스트: 또 다른 언덕 너머로 가는 끊임없는 여정〉은 ‘여정’‘여행’‘이동’을 주제로 작업한 다섯 명의 벨기에 작가들을 소개한다. 반면 토탈미술관에서 열린 〈더 버티컬 빌리지〉는 떠나는 것이 아닌 머무는 곳, 즉 도시공간과 거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네덜란드의 젊은 건축가그룹 MVRDV는 글로벌 싱크탱크 The Why Factory(T?F)와의 3년간의 리서치 끝에 아파트라는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구조를 향한 새로운 대안으로 ‘버티컬 빌리지(The Vertical Village)’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원더러스트’라는 용어가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연상시킨다면, ‘버티컬 빌리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공간을 지금 이곳의 시각에서 다시 바라볼 것을 주문하는 단어이다. 아트선재센터의 전시가 ‘떠나는’ 수사학적 행위를 통해 정치적 문화적 심리적 현상을 표현한다면, 토탈미술관의 건축 전시는 한국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아파트형 주거 공간에 대해 리서치 형식으로 질문을 제기하고 사회학적이고 건축적인 관점에서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호노레 도 〈진주 목걸이〉 정릉천 설치 전경 2012

작업에 담긴 이동, 여행

〈원더러스트〉전에 참여한 프란시스 알리스는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물리적인 이동과 시간적인 이동을 축으로 끊임없이 여행하는 작가다. 벨기에 태생으로 현재 멕시코에 거주하는 알리스는 걷기를 통해 국경의 경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이 전시는 ‘원더러스트’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미술가들의 여정이 어떻게 정치적이고 제도비판적인 가치를 지니는지 보여 준다. 이러한 주제를 상징적으로 다뤘던 작가는 마르셀 뒤샹으로, 그가 제작한 〈여행용 박스(Boite-en-valise/box in a suitcase)〉가 이 전시에 함께 소개됐다. 뒤샹은 이 작품을 1935년에서 1940년 사이에 처음 제작했다. 이 이동식 여행용 가방은 1, 2차 세계대전 사이에 미국과 프랑스를 오갔던 다다이스트이자 초현실주의자였던 뒤샹의 정체성을 입증한다. 그가 기획한 초현실주의 전시 〈마일 오브 스트링(Mile of String)〉에서 표현한 것처럼 뒤샹은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온 유럽작가들의 망명, 정치적 이산을 상징적으로 다뤘다. 또한 그는 자신의 대표작을 모두 포함하여 휴대용 박스로 제작했기 때문에, 이는 이동식 아카이브와 같은 상징적인 개념을 띤다.
뒤샹의 여행용 가방은 호노레 도의 〈오페라 아페르타(Opera Aperta)〉나 죠엘 투엘링스의 여행가방으로 이어지며, 투엘링스의 〈엽서〉는 실재와 사진 이미지의 경계를 유희적으로 보여 준다. 특히, 투엘링스는 돌을 통해 인간 문명의 가장 기본이 된 고고학적 유물을 전시하는 방식으로 〈근본적인 컬렉션(la colletion fondamentale)〉을 제작했고 이 작품과 함께 광물학 서적에서 뜯어낸 낱장을 함께 전시했는데, 이는 책이 가진 절대적 가치를 전복시키고 시적인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시도를 보여 준다.
프란시스 알리스의 〈걷기〉는 프랑스의 국제상황주의자였던 기 드보르가 ‘심리지리학’을 구축하기 위해 기존의 지도라는 데이터에 주관적인 경험과 상황을 구축하였던 일상적 행위를 연상시킨다. 특히 알리스는 일상에 대한 새로운 실천을 걷기와 기록으로 작업해 왔다. 〈고리(The Loop)〉에서 알리스는 자신이 가는 곳을 모두 지도로 표시하고 또 자신이 체험한 공간에 대한 성실한 기록을 아카이빙하는 행위를 시도했다. 알리스는 이 작품을 샌디에고에서 전시하기에 앞서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가는 단거리 비행노선을 선택하지 않고, 가능한 한 많은 장소를 거치는 행로를 선택함으로써 멕시코와 미국의 경계, 국경에 대한 미국의 장벽을 상징적으로 제시했다. 알리스의 〈걷기〉는 때때로 자석이 달려 있는 장난감 차를 끌고 다니며 걷는다는 일상적 행위에 정치적인 침묵의 메시지를 담기도 했다.
벨기에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제도비판 미술가이자 개념미술가인 마르셀 브로타에스는 본래 오랫동안 무명의 시인이자 영화제작자로 활동하다 1963년에 갑자기 미술가가 된 초현실주의 작가다. 그는 ‘예술 제작’이나 ‘미술관’의 작품 분류 방식, 디스플레이 방식을 비판하여, 다니엘 뷔렝, 한스 하케, 마이클 애셔와 함께 대표적인 제1세대 제도비판 미술가로 손꼽힌다. 그가 제작한 가장 유명한 작업은 〈현대미술관, 독수리부서(Musee d'Art Moderne, Department des Aigles)〉로 고급미술(회화, 조각)을 분류하는 미술관의 이미지 분류 방식, 미술작품에서의 양식의 문제, 미술관이라는 제도의 문제 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반영했으며, 그는 이 작품을 자신의 집에 설치했다.
〈원더러스트〉전에 전시된 브로타에스의 작품은 〈북해로의 여행(A Voyage on the North Sea)〉이라는 영상 작업으로, 그는 1974년에 같은 제목으로 책과 영상을 동시에 제작했다. 각각에는 배가 한 채 바다 위에 떠 있는 장면이 있는데 자세히 보면, 19세기 아마추어의 그림 이미지와 20세기 돛단배의 사진 이미지이다. 작가 스스로 이러한 혼성적인 스타일을 ‘북-필름(book-film)’이라고 불렀다. 이 작업은 과거와 현재가 오가는 공간을 연출하며, 동시에 오리지널과 복제품, 이미지와 텍스트, 책과 영상과 같은 경계를 미묘하게 오간다. 〈겨울 정원(jardin d'hiver)〉도 미술관에 식물원과 19세기 백과사전식 ‘호기심의 캐비넷’을 옮겨와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대해 제도적인 비판을 가한다. 한편 조각적이면서도 건축적인 공간은 파나마렌코(Panamarenko)가 제작한 〈비행기 모형제작자(The Aeromodeller)〉에서 공중에 부유하는 이동식 공간처럼 구현되었다.

왼쪽ㆍ마르셀 브로타에스 〈겨울 정원〉 혼합재료 가변설치 2012
오른쪽ㆍ죠엘 투엘링스 〈근본적인 컬렉션〉 나무 테이블 종이, 돌 외 혼합재료 가변설치 2012

개성과 특성을 살린 신개념 빌리지

토탈미술관에서 열린 〈더 버티컬 빌리지〉전은 ‘건강한 커뮤니티’에 대한 특성을 규정하며, 오늘날의 재개발과 지나친 도시 개발이 지닌 문제점을 슬라이드 형식으로 보여 주면서 도시(Urban)의 주거공간이 처한 상황을 분석하는 섹션으로 이어진다. 이 전시는 고층빌딩과 도시화가 가속화되는 아시아의 도시 주거공간의 삶과 실태를 역동적으로 조사하였다. MVRDV의 이러한 조사와 연구가 시작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도시의 하나의 대안이었던 아파트의 수직적 형태는 유지하면서도 거주자 각각의 개성과 주거 특성을 살릴 수는 없는가?
전시 중간에는 정연두의 〈상록타워〉(2001)가 설치되어 가족들의 사진들이 슬라이드 형식으로 엮어지는 장면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작품은 같은 아파트 평수에 거주하면서도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32개 가정의 초상을 순차적으로 보여 주는데, 그들의 개성은 표정 뿐 아니라 각기 다른 인테리어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다음으로 이어진 섹션에는 ‘당신은 진정 당신이 원하는 집에서 살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으로 개성과 차별성이 동시에 공존하는 새로운 공간 모델을 구축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하며, 이는 ‘꿈’을 희망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특히 획일화되고 전통적인 주거 공간이 무너지는 아시아의 도시 공간들을 사례 연구로 삼아, 오늘날의 건축 공간에서 개인의 사적 공간 혹은 문화적 심리적 공간이 어떤 식으로 새로운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실험적인 모델을 제시했다.
전시장의 마지막을 구성하는 대형 설치물 〈모든 마을은 다르다〉는 다섯 개의 마을에 관한 연구로서 ‘버티컬 빌리지’에 대한 가상 혹은 실현가능한 모습을 디자인한 섹션이자, 이번 전시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서로 엮어 성장하는 ‘고층’ 마을, 비눗방울이나 버블 속 빌라, 둥지마을, 라이프스타일 말미잘 등은 수직적인 버티컬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형태의 다양성이나 유동적인 공간 등을 통해 그리드와 나선형, 방사선 형태 등이 다양하게 만나는 지점이다. 수직 구조는 기본적인 건축의 골격으로 고정된 느낌을 주지만, 버블이나 둥지 등은 유동적이고 투명한 공간으로 비정형적이고 친밀한 개인적 공간을 구축한다. 이것은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루프 공간에서 전시 중인 토마스 사라체노의 〈클라우드 시티(Cloud City)〉 프로젝트처럼, 공중에 부유하는 비정형적인 구조로 도시에 다양성과 개성을 구성하는 새로운 형식으로 존재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두 전시는 각기 미술과 건축 분야에서 진행된 프로젝트이지만, 결국 현대미술에 있어 조각과 건축의 영역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서로 개념적으로 맞닿아 있다. 이들 미술가들과 건축가들이 구축하는 공간 문제는 점차 주거와 이동이 동시에 중요해진 현대인들의 일상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바로 이러한 현상은 사회학자인 마크 오제의 말처럼 ‘수퍼모더니티(supermodernity)’를 형성하고 있다.

Double 주체와 타자의 공존이 가능한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개인전이 열린 2007베니스비엔날레 미국관 전경. 관람객들은 사탕과 포스터를 원하는 대로 가져감으로써 작품의 일부로 참여하게 된다.

Double 주체와 타자의 공존이 가능한

글 | 김성원ㆍ전시기획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무제”〉 빌보드 가변설치 1991~93. 플라토 설치 전경 2012 ⓒ김상태

“나는 아주 명확한 계획이 있다. 이 장소를 더 나은 장소로 만들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다. 나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예술에서 이 이야기를 끌어 내는 입장이고, 예술가의 역할을 재정의하고자 하는 작가다.”
플라토에서 열리고 있는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개인전은 국내는 물론 아시아 최초의 자체 기획전으로서 중요한 전시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곤잘레스-토레스가 작고한 후 16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현대미술 현장에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는 그의 예술적 유산이 무엇인가를 국내 관객이 직접 경험하며 토론할 수 있는 장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이 전시의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그의 수많은 전시 횟수만큼 작업에 관한 비평 텍스트들 또한 상당량에 이른다. 이미 존재하는 심도 깊고 설득력 있는 비평들 사이에서 곤잘레스-토레스의 작업을 바라보는 나만의 독특한 시각을 만들어 내기란 그리 용이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글은 곤잘레스-토레스 작품의 힘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분석하며, 그 힘이 1990년대 현대미술 전개에 미친 영향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곤잘레스-토레스의 작품 세계와 1990년대 현대미술과의 관계는 매우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될 수 있겠지만, 그 가운데 ‘작품의 존재 형식’에 관한 부분은 1990년대 현대미술에서 저자와 관객의 역할, 작품의 시간성과 공간성 그리고 미학과 정치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재정의하고자 했던 일련의 작가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곤잘레스-토레스는 사적 경험의 공유화와 공공적 사건의 사유화를 위한 독특한 과정을 창조했으며, 사회문화적 이슈, 이념과 역사, 기억, 정치와 미학이라는 가볍지 않은 쟁점들을 은밀하지만 강도 있게 가동시키는 도구를 고안했다.

〈“무제”〉 빌보드 1991. 남이섬 노래박물관 설치 전경 2012 ⓒ김상태

관객의 역할

푸른색 혹은 혈액 방울을 연상케 하는 붉은 구슬 커튼, 열린 창문 사이로 펄럭이는 커튼, 종이와 사탕 더미, 누워 있던 흔적이 남아 있는 구겨진 침대 시트 위의 두 개의 베개, 두 개의 거울, 심장 박동수처럼 돌아가는 두 개의 시계의 어긋남, 매번 형태가 변화하는 전구 설치, 댄서를 위한 무대, 커트 발트하임과 교황의 퍼즐 이미지…. 곤잘레스-토레스의 이 작품들은 “《뉴욕타임즈》에서 작업의 영감을 얻는다”는 작가의 작품으로 보기에는 그 정보 전달에 있어 너무도 인색해 보인다. 이렇게 우리의 시선에 양도된 형태들은 시각적으로 절제되고 정제된 단순미를 지향하는 듯하지만, 그 표면에 운집된 의미의 층위는 무척이나 복합적이다. 극도로 단순한 종이 더미 하나가 예술 작품의 존재 형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고 역사와 기억을 환기시키며, 매혹적인 사탕 더미는 사랑과 죽음, 소멸과 재탄생이라는 가볍지 않은 철학적인 주제를 관능적으로 가동시키고 있다. 간결하고 단아해 보이는 종이 더미 앞에서 우리는 과연 이것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 우리 앞에 놓인 종이 더미, 바닥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사탕 더미는 완벽한 형태를 하고 있는 듯하나 결코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는 것, 단순한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 곤잘레스-토레스는 지극히 최소한의 정보만으로 관객의 능동적 참여를 요구한다. 그의 전시에서 관객은 포스터 혹은 사탕을 마음껏 가져갈 수 있고, 혹은 전시를 보기 위해 반짝이는 구슬 커튼을 지나쳐야만 한다. 곤잘레스-토레스의 작품은 관객의 시선보다는 그것의 사용에 양도된 것이다.
‘관객 참여’가 1990년대 현대미술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부각되었다면, 아마도 곤잘레스-토레스 작품의 이러한 측면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와 유럽의 동시대 작가들 가운데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피에르 위그,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스터, 리암 길릭, 필립 파레노 등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관객이 작품에 관여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리크리트 티라바니자의 작품에서 관객은 더 이상 관객이 아니라 작가의 공간에 초대된 ‘손님’이 된다. 여기서 손님들은 작가가 제안한 다양한 장치를 활용하거나 사용하며 작품을 완성시킨다. “관객이 50%의 역할을 한다”는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스터 작업에서 관객은 자신의 전기를 의뢰하는 고객이 되고, 리암 길릭의 구조물은 관객을 역사적 사건의 현장으로 호출하는 도구이며 여기서 관객은 적극적 토론자가 된다. 관객이 작품을 사용할 수 있고, 손님이 되며, 고객이 되고 또 토론자가 되는 상황. 이것을 단순히 ‘관객 참여 예술’이라고 명명하는 것을 넘어, 이러한 관객 참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며 이것의 지향점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1990년대에 이 작가들은 더 이상 작품이 작가의 욕망으로 가득 채워진 폐쇄적 공간이 아니라는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들의 작업에서 관객 참여적 요소가 부각되는 까닭은, 바로 열린 공간으로서 예술 작품과 그 운명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이제 관객은 예술 작품의 운명에 일정적으로 관계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양도받았다.
1990년대 초, 곤잘레스-토레스를 비롯한 다른 작가들의 이러한 시도는 뒤샹의 ‘예술 계수(Art Coeffi- cient)’, 즉 관객이 예술가가 실현하려고 했던 것과 실현한 것 사이의 차이에 침투하면 작품의 공동 창작자가 된다는 개념을 급진적으로 실험한다. 또 1960~70년대 미술의 과정적 비물질적 형태를 선택하고 활용하면서 이제 작품이 더 이상 작가의 자아와 욕망을 쏟아 붓는 독자적 공간이 아니며 작품을 완성하는 주체가 작가만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예술적 모델을 고안한 것이다. 나아가서 작품을 완성하는 데 관객에게 일정한 책임을 부여하는 이들의 작업은 추상적 집단으로서 관객을 규정하기보다는 관객 개개인을 호명하고 관객의 주체화를 도모하면서, 주체성의 상호교류를 지향하고 있기도 하다. 곤잘레스-토레스를 비롯한 이들 작가들의 이러한 관객 호출과 권리 부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삶에서 주체와 타자 간의 이상적 공존의 가능성, 이를 위한 상호주관적 모델을 예술사례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무제”(시작)〉 비즈로 엮은 줄, 매달 수 있는 장치 가변설치 1994. 플라토 설치 전경 2012 ⓒ김상태

과정과 오브제

타자를 포함시킨다는 것은 물론 작품의 주제가 되기도 하지만 형식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1990년대 현대미술의 형태를 논할 때는 우리에게 작품의 주제와 형식적 구조와의 암시적이며 긴밀한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체와 타자 간의 등가성과 이상적 공존을 지향하는 곤잘레스-토레스 작업이 언제나 두 개의 동등한, 혹은 상반된 요소들의 동거 형식으로 표현되는 점에 주목해 보자. 이를 입증하는 예술사례들을 그의 작품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겠으나, 그 가운데 작품 ‘제목’이 유독 특별한 점에 주목해 본다. 즉 바로 제목은 그의 작업에서 형식과 내용, 오브제와 컨텍스트와의 관계를 인지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무제”(혈액 작업)〉(1989)은 오래된 스케치북에 그려진 모눈종이 위를 가로지르는 사선으로 구성된 드로잉이다. 개념미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록 과정을 연상케 하는 이 작품은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겐 에이즈와 투쟁하는 곤잘레스-토레스 연인의 백혈구 수치 변화를 기록한 것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하학적 추상과 임상기록을 연결하는 유일한 단서, 즉 ‘혈액 작업’이라는 괄호 속의 제목을 통해서 이 두 지점을 연결하게 되었을 때, 작품의 강도는 증폭되며 감동 또한 배가된다. 푸른색 구슬 커튼 〈“무제”(항암화학요법)〉(1991), 붉은색 구슬 커튼 〈“무제”(혈액)〉(1992) 또한 화려하고 관능적이기까지 한 반짝이는 구슬의 외형 이면에는 에이즈 투병을 암시하는 단서들이 제시된다. 얼핏 보면 너무도 평범한 꽃 이미지인 〈“무제”(엘리스 토클라스와 거트루드 스타인의 묘지, 파리)〉(1992)를 동성애와 연결시킬 수 있는 것도 괄호 속의 정보 때문이다. 곤잘레스-토레스의 제목 형식은 언어 이전, 규칙 이전의 자유와 이를 습득한 후의 세계를 동시에 호출한다. 이것은 선재된 규칙이 없는 공간(무제)과 제약의 공간(괄호 안의 제목)의 이상적 동거, 그리고 이 두 공간의 협상과 대화가 갖고 있는 형식의 무질서를 향하고 있다.
곤잘레스-토레스 작업에서 형식은 끊임없이 굴절하며 나와 타자를 변화시키는 주요 패러다임을 이루게 된다. 푸른색의 심플한 종이 더미 〈“무제”(러버 보이)〉(1990)와 바닥에 펼쳐진 은색 빛 사탕 〈“무제”(플라시보)〉(1990)의 캡션에는 ‘푸른색 종이, 무한 복제’‘은색 빛 사탕, 무한 공급’이라고 적혀 있다. 문자 그대로 이 작업은 끊임없이 복제되고 재생산될 수 있는 작품이다. 이것은 변화에 열려 있다. 일차적으로 이 작품의 형태는 관객에 의해 변화한다. 관객이 포스터를 가져가고 사탕을 집어 가면서 그 본래의 형태는 서서히 소멸되지만, 또 다시 원래의 형태로 되돌아 오는 과정이 끝없이 지속될 수 있다. 곤잘레스-토레스의 작업 세계에서 복제의 개념은 작품의 원본성의 문제 제기뿐만 아니라 영원성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예술 작품의 영원성을 의심하지 않는 우리에게 곤잘레스-토레스는 영원하지 않은 작품(삶), 영원할 수 없는 작품(삶)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뒤샹이 ‘예술 작품은 작가의 손이 아닌 선택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다’라는 개념을 ‘레디메이드’를 통해서 형태화했듯이, 곤잘레스-토레스는 ‘무한 복제’를 통해서 예술작품(삶)은 항시 변화하고 사라지며 다시 탄생하는 형태를 창조했다.
곤잘레스-토레스의 예술 작품의 본질, 정통성을 해체하는 시도는 1990년대 현대미술의 핵심이 된다. 이것은 곧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 이 형태는 우리가 예술 작품에서 기대하는 외형적 결과물에서 얻을수 있는 게 아님을 파악해야 한다. 오브제는 전시 과정에서 ‘해피엔드’일 뿐이라는 필립 파레노의 발언은 1990년대 현대미술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해 보인다. 이는 작품이 논리적 결론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임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작품이 결론으로 제시되지 않을 때, 우리는 흐르는 시간에 편입하고 그 시간을 운영하는 능동적 주체가 된다. 곤잘레스-토레스의 작품이 1990년대 동세대 작가들과 조우하며 영향을 미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작품의 시간성에 관한 것이다. 그의 오브제는 결론이 아니다. 변화하고 또 변화할 수 있는 ‘사건’인 것이다. 필립 파레노의 축제나 시위, 리크리트 티라바니자의 식사 시간과 파티 등은 바로 작품의 이러한 시간성을 보다 더 급진적으로 실험한다. 이들의 ‘사건’은 단지 많은 사람들을 연루시키며 화기애애한 시간들을 만든 것 혹은 1960년대 작가들의 연장선에서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축제 시위 파티라는 사회적 형태를 통해서 현실의 시간을 예술에 시간에 적용할 수 있을까, 혹은 현실의 시간을 어떻게 예술 형태를 통해서 재현할 수 있을까에 대해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작가들과 함께 이제 예술은 ‘현실의 재현’에서 현실의 ‘시간의 재현’으로 넘어섰다.
곤잘레스-토레스는 1991년 뉴욕 안드레아로젠갤러리의 개인전에서 매우 독특한 방법으로 전시 형식의 해체를 시도했다. 그는 〈매주 뭔가 다른게 있다(Every Week There Is Something Different)〉라는 제목을 제안하며 전시기간 동안 매주 다른 작업들을 추가하거나 삭제했다. 플라시보, 고고댄서, 자연사박물관, 혈액 작업 등이 매주 하나씩 등장했다가 사라졌다. 그에게 “이 특별한 설치는 상처받기 쉬운 것,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는 것, 관객이 취하면서 매 순간 각각의 작품이 재맥락화되는 갱신의 가능성”인 것이다. 전시, 즉 보여 주는 것을 “시간의 통로, 소멸과 삭제의 가능성”으로 전환한 이 작업은 1990년대 현대미술을 주도할 ‘실시간’ 작업 유형의 초석이 됐다. 1990년대 ‘워크 인 프로그레스(Work in Progress)’ 컨셉트는 이 당시 실험적 전시나 작품을 통해서 더욱 더 확장되고 다양화됐다. 1995년 보르도현대미술관에서 니콜라 부리요가 기획한 〈트래픽(Traffic)〉, 1994년 디종 르콩소르시움에서 에릭 트롱시가 기획한 〈페널티 에어리어(Surface de rㅤㄹㅒㄳaration)〉에 초대된 모든 작가들은 각기 다른 형식으로 예술 작품의 시간성을 실험하기에 이른다. 필립 파레노는 “일정한 평방미터를 점유하기보다는 2시간의 시간을 점유”한다고 선언하며 자신의 작업과 전시를 축제 혹은 레크리에이션으로 전환했고, 피에르 위그는 실시간 작업을 위해 전시 공간을 일시적이며 유동적인 TV방송국으로 전환시킨다. 이러한 ‘실시간’유형의 작업들은 퍼포먼스를 참조하거나 현실의 이벤트 형식을 호출한다. 여기서 작품은 타자의 개입을 허용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형태이며, 작가들이 전시에서 제시하는 것은 변화하는 실시간의 형태를 가시화하기 위한 일련의 상황 도구 장치인 것이다.

〈“무제”(고고댄싱 플랫폼)〉 나무, 전구, 아크릴 페인트, 은색 수영복을 입은 고고댄서, 개인용 음악플레이어 1991. 플라토 설치 전경 2002 ⓒ김상태

미학과 정치

“미학은 정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미학은 그 자체로서 정치적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가 어떻게 더 잘 사용될 수 있는가를 보여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정치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성공적인 정치적 행동은 그것이 정치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다.” 곤잘레스-토레스의 작품과 소통한다는 것은 인색하리만큼 검소한 시각 정보들 속에서 용광로처럼 끌어 오르는 인간과 삶의 변화에 대한 갈망을 감지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변화’는 자신을 타자로 인식하며 주체와의 관계에서 차별성을 촉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주체와 타자가 분신처럼 존재할 수 있는 협상의 가능성과 이상적 공존을 의미한다. 1996년 3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곤잘레스-토레스는 이 ‘변화’를 위해서 투쟁했다. 유년기를 남미의 소외계층에서 보내고, 성적 소수자로서 또 이민자로서 뉴욕에서 작가로 성장하기까지, 현실에서 이미 아웃사이더였던 그는 기존 사회의 지배 권력의 변화를 열망했다. 또한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 권력이 필요하다고 믿으며 그 권력의 중심에서 변화를 시도하고자 했고, 작품 전시 제도의 심장부를 공략한다. 1970년대 개념미술 작가들의 제도비판과 방식과는 달리, 곤잘레스-토레스는 1970년대 작가들처럼 중심에 대항하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거부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반대하며 혹은 대안을 제시하며 얻는 권력이 아니라 지배 권력의 중심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었고, 또 예술을 통해서 이를 성공적으로 입증했다. 형식적 이슈에 열광하며 그 선택에 민감했던 곤잘레스-토레스가 미니멀리즘 미학을 취한 것은 결코 순진한 선택은 아니다. 그는 물론 미니멀리즘 형태가 그것이 보여지는 컨텍스트에 따라 너무도 다양한 층위의 의미들을 수용하고 반영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하기도 했지만, 곤잘레스-토레스의 미학적 선택은 뉴욕 미술계의 백인 남성작가들이 만들어 낸 작품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곤잘레스-토레스가 1990년대 현대미술의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가 주체와 타자와의 관계, 힘의 재분배, 중심과 주변의 지배서사의 변화를 기획하는 방식때문일 것이다. 1980년대 초 그는 다문화주의,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등의 포스트모던 담론이 제안하는 주체와 타자라는 ‘다름’을 인식하며 그 차별화를 통한 변화보다는 두 주체 간의 공존 가능성 즉 상호주체성의 관계를 통해서 변화를 시도했다. 상호주체성의 공간에서는 주체와 타자가 별개의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두 개체가 동등한 관계에서 상호교류하며 변화되는 것이다. 곤잘레스-토레스의 ‘더블’, 즉 두 개, 2라는 숫자는 바로 이러한 상호주체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는 주체의 변화를 대립과 경쟁으로 풀어 나가기보다는, 조용한 침투와 평화적 동거, 하지만 급진적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주체가 타자가 되고 타자가 주체가 되는 공간, 그래서 두 주체 간의 만남과 동거만이 존재하는 이상적 공간, 곤잘레스-토레스의 예술 유산은 이 지점에서 그 영향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철학적 혹은 사회문화적 타자를 ‘더블(분신)’이라는 예술 개념으로 전환시키며 두 개체의 동등함과 그것이 영원히 동거할 수 있는 공간을 제안한 것이다.

〈“무제”(3월 5일)〉 거울 지름 30.5cm(각) 1991. 플라토 설치 전경 2002 ⓒ김상태

소박한 교감의 자유, 문화의 ‘틈새’에서

소박한 교감의 자유, 문화의 ‘틈새’에서

글|강 정 호

무더웠던 여름날, 외출을 나갔다가 파이널리스트에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한 차례 들뜬 기분이 휩쓸고 간 다음 카페를 찾아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한 모금 차갑게 넘기다 문득 ‘당선’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의 안락함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경쟁에서 이긴 기쁨을 누리는 것만큼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이념과 맞닿아 있는 정서도 없을 것이다. 이번 공모에 지원한 주요한 동기 가운데 하나가 미술계뿐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 암묵적으로 침투해 있는 신자유주의적인 정서를 미술비평을 통하여 해소해 보려는 것이었는데, 시작부터 그런 정서가 교묘하게 부추기는 자기 인정 욕구에 손쉽게 걸려들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동안 내 글을 담았던 지면은 대부분 동료 작가들이 주머니를 털어 소량으로 펴냈던 전시 도록이나 엽서였다. 읽는 사람들의 숫자 또한 셀 수 있을 정도로 조촐했다. 작품을 만든 사람, 글을 쓴 사람, 관객이 아무런 갑을(甲乙) 관계의 형성 없이 장기간에 걸쳐 일상을 공유하며 작품을 감상하였다. 나는 그때 가끔씩 우리네 일상을 좌우하는 큰 힘에서 벗어나 자유다운 자유를 누리는 어떤 문화가 일시적으로 형성되었다가 다시 흩어지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나는 그 느낌이 신비하여 이 후 몇 년 동안 간간히 지면이 주어질 때마다 사양하지 않고 글을 썼다. 나는 창가를 넘나드는 시원한 바람처럼 뜻밖의 청량감을 주는 조촐한 문화의 틈새에서, 신자유주의 이후의 세계를 예견하는 ‘근원적으로 다른’ 정서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는 사이 내 글을 지면에 담아 주었던 동료 작가들은 하나 둘씩 적자생존의 미술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의 대열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국공립 미술창작스튜디오에 선발되기 위해, 창작 지원금을 따내기 위해, 대관료를 면제 받는 전시를 하기 위해 한국 사회 대부분의 구성원들과 다를 바 없이 치열한 ‘제로섬 게임’에 동참하였다. 그 결과 어떤 이는 계속되는 성공을 거두었고, 어떤 이는 계속되는 실패를 경험하였다.
하지만 성공한 쪽이나 실패한 쪽이나, 그들이 겪게 되는 굴레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공모 당선 통지를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습속을 은연중에 내면화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과정을 바라보며 나는 한국 사회의 지배질서와 ‘근원적으로 다른’ 정서를 품지 못하게 만드는 암묵적인 거세 행위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동료들이 마련해 준 ‘조촐한’ 지면에서 오랫동안 안식을 취했던 내 글이 아트인컬처와 같은 지면에 의탁하는 것은 어쩌면 명백한 자기모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끔씩 내가 경험해 왔고, 앞으로도 경험하기를 바라는 어떤 문화의 나부낌을 지속시키기 위해 이와 같이 역설적인 성격의 글쓰기를 시도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생경한 지면에 몇 차례에 걸쳐 전개될 내 글이 이 사회의 지배적인 습속에 미혹되지 않고, 앞으로 도래할 세계의 감수성에 조금이나마 접근할 수 있는 실천력을 가지기를 바란다.

강정호 1977년 부산 출생. 한국외대 독일어과, 서울대 조소과 및 동대학원 졸업. 서울대 미술학 전공 박사과정 수료.

응모 원고 리스트
이름붙이기의 폭력/<박재영>전 서문/덕원갤러리/2008
빈 칸의 틈새/<김민애>전/관훈갤러리/2008
절대고립의 세계에서/<박유미>전/갤러리무이/2010
하찮음과 이완의 정치/<이민선>전/갤러리라메르/2011
그들의 침묵에 다가서기/<송수영>전/신한갤러리/2011
보이지 않는 직선/<최종희>전/쿤스트독/2011
88만원 세대가 쉬는 공간/<장선호>전/갤러리봄/2011
몰인간적인 세계의 외곽/<권용철>전/송은아트큐브/2011
 

‘현장-지역’을 잇는 긴장 넘치는 글쓰기

글|김 용 진

욕심이 있었다. 분석하고 설명하는 데 욕심이 있었다. 그것이 유전자에 속한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없는 서툰 재주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미술’이라는 괴물을 만나 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욕망으로 나타났고, 미술이 만들어 가는 문화 현상을 스스로 이해하고 납득하기 위해 비평이라는 도구를 갖고 오게 했다. 어렴풋이 이러한 글쓰기가 또 하나의 텍스트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러나 이때까지의 글쓰기는 부끄럽게도 설익은 요설에 불과한 것이었다. 아주 늦게 이르러서야 글쓰기에는 책임감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스스로가 부여하는 책임감이란 지극히 자의적인 해석에 의해 언제나 편한대로 부과되기 때문에 뭔가 더 무겁고 엄중한 의무감을 글쓰기의 책임으로 부과 받고 싶었다. 그것이 궁색하지만 소위 ‘평론가’라는 직함을 달고 싶은 나의 대답이라 하겠다. 이런 상황에서 글쓰기에 책임감을 부여하고자 하는 시도로 아트인컬처의 뉴비전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아트인컬처가 담고 있는 미술의 무게가 고루한 이론들에 치우치지 않고 문화 현장의 다채로운 시류를 다양한 맥락으로 심도 있게 조망하는 데 그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경험의 일천함도 한몫을 했겠지만 나의 비평 대상은 대부분 ‘현장’이었다. 그리고 ‘지역’이었다. 인천문화재단에서 추진했던 ‘지역 비평 활성화 사업’은 앞서의 ‘지역’과 ‘현장’ 두 화두를 나의 관심 안에 묶는 기회가 되었다.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던 ‘젊은 비평가 그룹’ 활동이 결국은 지역의 미술 문화 현장을 외면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지역 민예총이 발행하는 《인천문화비평》이 나에게 요구한 것도 지역미술 문화비평이었기에 가급적이면 지역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국한시키고자 했다. 앞으로도 평론의 주된 대상이 되는 것은 지역의 문화 현장 혹은 생활 세계 속에 얽혀드는 미술과 관련된 다양한 사건과 지점일 것이다.
몰론, 현대미술의 거대한 흐름을 표표히 아우르며 수렴하는 ‘거시적 담론’을 무시하고 지역에만 국한된 현장을 살피겠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거대담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피다 보면 그 기저에 미술 문화가 직조되는 현장의 미시적 움직임들이 깃들어 있음을 빈번하게 발견하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한 때는 지독한 아카데미즘에 빠져 특정한 미술이론에 경도되거나 철학적 테제에 매몰되곤 했었다. 스스로의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매끈하게 잘 정련된 이론의 체계들에 비추어 사태를 해명하고 이미지의 맥락을 논하는 게 전부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와 삶의 현장이 박리된 채 전개된 비평으로부터 현실의 존재론적 함량을 충실히 추출해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나와 현실세계 사이에 놓인 미술 행위를 해명하는 일이 나의 업이 되었다. 앞으로도 나의 평론이 작동하는 주된 줄기는 작가론이나 주제 비평이라 할지라도 지역과 사회 그리고 미술 문화 현장과의 긴장을 끊임없이 종용하는 고된 여정으로 흘러 갈 것이다.
끝으로, 상투적이지만 예심에 출품한 필자의 부족한 글을 살피고 이 소중한 경쟁에 끌어들여 준 심사위원들께 마음으로부터의 감사를 표하고 싶다.

김용진 1973년 인천 출생. 계명대 철학과 및 고려대 대학원
영상문화학과(Visual Culture) 졸업.
현재 부평아트센터 문화사업부 과장.
응모 원고 리스트
 노스탤지어를 제의적 작동 방식으로 호명하는 치밀한 기획/〈양혜규-사동 30번지〉전/인천문화재단 젊은비평/2007
도시개발: 퇴적 되지 않은 시간의 연대기
〈도시탐험〉전/인천문화비평/2009
시공간과 사회계급에 관한 우회적 탐색/<한준희>전 서문/2009
공간을 도야하는 색의 유연한 여정/〈도지성〉전/인천문화비평/2010

 ‘연기파 조연 배우’같은 비평을 꿈꾸며

글|안 소 연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요즘, 그야말로 ‘끼’ 없는 사람은 설 자리가 없다.‘위대한 탄생’‘슈퍼스타K’…. 제목에서 엿보듯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위대한’ 탄생으로 인생역전을 꾀할 수 있고,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슈퍼스타’로 혜성처럼 떠오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 무대 뒤에서 긴 행렬을 만들고 있다.  
미술계 역시 예외는 아닌지라, 연일 공모가 끊이지 않는 듯하다. ‘신진’ ‘젊은’ ‘실험적인’ ‘새로운’ 등과 같은 조건이 부담스러워 애써 무심히 지나쳤었는데, 뒤늦게 그 긴 행렬 끝자락에 이름 석 자를 올려놓고 말았다. ‘아트인컬처 2012 뉴비전 파이널 후보’라는 통보를 받고, 많이 고민했다. 위대한 탄생을 노리기에는 무대를 장악할 만한 열정도 부족하고, 슈퍼스타로 등극하기엔 더 이상 신선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로 하여금 느닷없이 이 무대를 향하게 했을까?
아마도 일반적인 조건에 역행하고자 하는 충동 때문인 듯하다. 지금은 젊은 작가들이 실험성으로 무장하고 숨가쁘게 미술계로 뛰어드는 역동적인 시대다. 더 이상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없는 이 시대에 여전히 새로움을 표방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 50 ~60여 년 전, 모더니즘의 가치를 부정하고 절대적이며 보편적인 가치에서 해방되고자 했던 젊고 실험적인 작가들은 오늘날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들의 매력은 ‘젊음’ 때문도, 발칙한 ‘실험성’ 때문도 아니었다. 미니멀리스트들이 러시아 구축주의자들을, 페미니스트 작가들이 초현실주의자들을 끊임없이 참조했듯이 새로움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연동하여 창조적인 시각으로 작동되는 것임을 믿는다.
국내 미술계는 미술시장 아카데미 전시 및 비평 등 여러 방면에서 팽창했다. 더불어 해외 미술계의 변화와 움직임에도 민감하다. 그러나 균형을 잃은 팽창은 건강하지 못하다. 다양한 층위에서 다양한 비평 언어들이 나름의 역할을 맡아 줘야 한다. 모두가 위대한 탄생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슈퍼스타’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연기파 조연 배우가 되고자 이 긴 행렬 끝에 서 있는 셈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방대한 지형도를 그려 나가면서 소수의 슈퍼스타에 주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대간, 장르간 단절로 인해 ‘탈락시켜 버린’ 다수의 참가자들을 주목하고자 한다.  
과거 3년 남짓 KBS 다큐멘터리 〈디지털 미술관〉 작가로 활동했던 경험은 나의 중요한 이력이다. TV 매체를 통한, 그야말로 대중적인 비평 활동을 한 셈이다. 최근엔 주로 강의나 학회 논문을 위한 ‘학술적’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항상 그 간극에서 균형과 긴장을 잃지 않으려 마음먹는다. 한국 현대미술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균형 있는 시각과 덜 천재적인 인내심이야말로 가장 필요한 덕목임을 깨닫는 중이다.
‘신진 평론가 발굴 프로젝트’라는 명분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동안 실타래처럼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들을 끄집어 낼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었음에 감사하며, 이제 3개월 간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끝으로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신 아트인컬처와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소감을 마친다.

안소연 1977년 서울 출생. 홍익대 조소과 및 동대학원 예술학과
졸업. 현재 홍익대 대학원 미술비평 박사과정 재학.
응모 원고 리스트
초현실주의 오브제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재조명: 1930년대 자코메티의 초기 작품을 중심으로/현대미술사학회/2010
일상성에 대한 모색과 소통을 향한 의지: 2000년대 한국 현대미술/《22명의 예술가, 시대와 소통하다》/궁리출판사/2010
자연을 담은 평면성의 조각/〈나영미〉전 서문/2010
김수자 황인기 정연두, 척 클로스 작가론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작가 정보 검색 원고/2009
나, 화가 김점선/방송원고/KBS 〈디지털 미술관〉 2003. 5. 21

올림픽과 예술의 뜨거운 랑데뷰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와 건축가 세실 발몬드(Cecil Balmond)가 협업해서 제작한  2012런던올림픽 기념물 〈아르셀로미탈 궤도〉 높이 115m. 올림픽주경기장과 아쿠아틱센터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올림픽과 예술의 뜨거운 랑데뷰

글|호경윤 수석기자

마침내 7월 28일 올림픽 개막식이 화려하게 펼쳐지며, 17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경이로운 영국(Isles of Wonder)’을 주제로 한 개막식은 영국의 전통과 혁신을 한편의 뮤지컬로 아울러 표현됐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던 감독 대니 보일의 진두지휘 아래 산업혁명을 거쳐 세계대전이후까지 영국 근현대사를 훑으며 영국문화의 집결체를 보여 줬다. 개막식 프로그램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비롯,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제임스 본드), 코미디언 로완 앳킨슨(미스터 빈) 등이 직접 출연했고, 비틀즈의 멤버 폴 메카트니가 개막식의 대미를 장식했다.

7월 28일 열린 런던올림픽 개막식 장면

문화 올림피아드 ‘세대에게 영감을’

2008베이징올림픽 장예모 감독을 시작으로, 최근 영화감독이 스포츠 개막식을 맡는 것이 트렌드로 떠오르는 가운데 2014인천아시안게임은 임권택 감독이 선임된 상태라 런던 개막식의 연출력은 더욱 주의를 집중시켰다. 2008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의 절반도 안 되는 예산 2,700만 파운드(약 488억 원)가 들어간 이번 개막식은 ‘세대에게 영감을(Inspire a Generation)’이라는 런던올림픽 공식 모토에 걸맞게 웅장한 규모보다 창작성, 예술성을 높이는 데 목적을 뒀다.
비단 개막식 뿐 아니라 올림픽 시즌에 맞춰 올림픽위원회의 커미션으로 제작된 새로운 공공미술 작품과 미술관에서 마련한 특별전이 전 세계에서 온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런던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후 2008년부터 4년에 걸쳐 ‘문화 올림피아드 (Cultural Olympiad)’를 전면적으로 내세워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준비, 올림픽 기간 동안 미술 전시만 90여 건이 열린다. 개막을 앞두고 올림픽 주경기장 앞 올림픽 공원에는 아니쉬 카푸어와 건축가 세실 발몬드의 협업으로 제작한 115m의 기념탑 〈아르셀로미탈 궤도〉가 거대한 용모를 드러냈다. 영국에서 가장 높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이 조형물은 올림픽주경기장과 아쿠아틱센터 사이에 지어졌다. 특히 60% 이상의 재료가 재활용 철재로 된 이 기념탑은 파리의 에펠탑처럼 런던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주목 받고 있다. 나선형이 소용돌이치는 듯한 〈아르셀로미탈 궤도〉는 바벨탑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카푸어는 “불가능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신화적 이미지를 연상시키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현대미술가 12명이 참여한 올림픽 공식포스터도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라 모리스는 런던의 명물인 빅벤을 재해석했고, 게리 흄은 장애인 올림픽 참가 선수들의 휠체어 바퀴를 상징하는 큰 원과 테니스 공을 상징하는 작은 원을 모티프로 삼았다. 레이첼 화이트리드는 노랑 녹색 파랑 빨강 검정 오륜기의 색채를 이용한 포스터를 제작했고, 하워드 호킨은 오직 파랑색으로만 ‘수영’의 시원한 이미지를 표현했다. 포스터의 원화는 현재 테이트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으며, 프린트 포스터는 누구나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또한 패션디자이너 폴 스미스(Paul Smith)는 런던올림픽과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을 기념하는 7개의 우표를 디자인해서 발행했다.
런던의 주요 미술공간으로 꼽히는 테이트모던, 서펜타인갤러리, 헤이워드갤러리 등에서도 야심찬 기획의 전시를 마련했다. 먼저 테이트모던에서는 ‘yBa(young British artists)’의 대표주자 데미언 허스트의 회고전(4. 4~9. 9)이 열리고 있어 날마다 성황을 이루고 있다. 허스트의 대표작인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동물 사체를 넣은 작품 등 1980년대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70여 점이 출품됐다.

아이 웨이웨이(Ai Weiwei)와 헤르조그&드뫼론 (Herzog & de Meuron) 〈서펜타인갤러리 2012파빌리온〉Courtesy of Herzog & de Meuron and Ai Weiwei Image 2012 Iwan Baan

테이트모던의 새로운 공간 ‘탱크’

또한 테이트모던은 7월 16일 지하의 기름탱크 두 곳을 전시장으로 새 단장한 ‘탱크(The Tanks)’를 개관했다. 탱크는 과거 최대 378만 리터의 석유를 저장했던 30m의 거대한 원통형 공간이다. 크게 3군데로 나뉘어, 2개의 기획전시장과 퍼포먼스의 형태의 작품을 발표하는 프로젝트룸을 마련했다. 프로젝트룸에서 열린 〈Art in Action〉에는 동시대 가장 급진적인 형태의 다원예술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들을 대거 포진시켰다. 10월 28일까지 15주 동안 전세계 40여 명의 작가들이 스케줄에 따라 작품을 발표하는 가운데, 한국작가 양혜규는 9월 11일부터 6일 간 움직이는 조각 작품 〈Dress Vehicles〉를 선보일 예정이다. 오프닝 날에는 벨기에 안무가 안나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Anne Teresa De Keers- maeker)의 대표작 〈Fase〉가 20여분 간 공연됐다.
특히 탱크에서 수잔 레이시와 함께 전시를 한 김성환은 국내 작가로는 테이트모던에서 첫 개인전을 여는 영광을 안았다. 개관전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평소에 비해 2배가 넘는 1,500여 명의 셀러브리티들이 몰렸던 오프닝에서 김성환의 개인전은 더욱 빛났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4편의 비디오 작품과 설치작품 및 드로잉을 선보였다. 그 중 대표작 〈Temper Clay〉는 작가가 어릴 때 살았던 서울 압구정동 아파트가 주요 장소로 등장하는데 “한국의 부동산 개발 바람을 통해 ‘땅’에 대한 인간의 애착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테이트모던의 크리스 더컨(Chris Dercon) 관장이 김성환을 선태한 이유 역시, 현실 사회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설치 비디오 퍼포먼스 음악 등 경계 없이 확장된 매체를 시적으로 표현하는 데 있었다.
하이드파크 내 서펜타인갤러리가 매년 진행하는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올해 특별히 지난 베이징올림픽 당시 주경기장을 디자인에 참여했던 작가 아이 웨이웨이(Ai Weiwei)와 건축가 헤르조그&드뫼론(Herzog & De Meuron)을 초대했다. 마치 고고학 발굴 현장을 연상시키듯 152cm 깊이로 땅을 파고, 배수로 형태의 구조물을 만든 뒤 기둥을 세워 둥근 지붕을 덮는 거대한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
템즈 강변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사우스뱅크센터 내 헤이워드갤러리에서도 〈페스티벌 오브 월드〉(6. 1~9. 9)라는 이름 아래, 올림픽 기간 동안 미술관 내외부에 대규모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중 최정화는 건물의 외벽 시멘트 기둥 10여개를 녹색 플라스틱 소쿠리 7,000개로 뒤덮었다. 〈Time after Time〉이라는 이 작품을 두고 《가디언》지는 “최정화의 작품은 사우스뱅크의 회색 기둥을 이국적인 식물로 바꿔 놓았다”고 보도했다. 또한 헤이워드갤러리 2층 프로젝트 룸에서는 작가 김범의 개인전 〈The School of Inversion〉도 열렸다. 김범은 2010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과 함께 신작을 선보였다.
‘K-컬처’의 확산 〈오색찬란〉
최정화와 김범의 전시를 후원한 주영 한국문화원에서는 이 밖에도 올림픽을 맞아 다양한 문화행사를 마련했다. 〈오색찬란: 한국의 색을 입히다〉라는 주제로 6월 1일부터 9월 9일까지 100일 간 런던 곳곳에서 미술 전시는 물론, 클래식 대중문화 패션 문학 음식 등에 관련한 이벤트를 기획했다. 그 일환으로 주영 한국문화원 전시장에는 꼭두박물관과 공동 기획으로 〈꼭두, 또 다른 길의 동반자〉전을 열어 꼭두, 상여, 식물문양판 등 한국 전통문화를 알린다. 또한 빅토리아앤앨버트박물관에서는 한글 문양으로 유명한 패션디자이너 이상봉의 패션쇼가 열린다. 공동주최한 문화부에서는 “런던 올림픽이라는 대형 이벤트를 계기로 우리나라가 정보기술(IT) 강국, 체육 강국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문화강국이라는 이미지를 브랜딩할 수 있도록 이번 축제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K-팝’을 넘어 ‘K-컬처’로 확산시키겠다는 취지다.
〈오색찬란〉의 또 다른 프로젝트로 신미경은 런던 중심가 캐번디시 광장의 빈 좌대 위에 비누 1.5톤으로 만든 3.5m 높이 초대형 기마상을 설치했다. 1868년 철거되기 전까지 컴벌랜드 공작의 기마상이 있던 좌대 위에 새로운 동상을 비누로 144년 만에 재현한 것이다. 이 작품은 1년간 전시되며, 그 이후 빅토리아앤앨버트미술관으로 영구 소장된다. 이미 2007년 대영박물관에서 비누로 만든 달항아리를 전시한 바 있는 작가 신미경은 “역사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작업이다. 유물이 현대미술로 변하는 과정을 조망하는 실험”이라며, “비누 조각은 야외에서 1~2년만 지나면 천 년 된 돌조각 같은 느낌을 준다. 실내로 이동한 뒤에는 풍화되지 않으니 마침내 시간이 정지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편 올림픽 공식 스폰서인 삼성전자의 후원으로 〈삼성 올림픽 게임 미디어아트 컬렉션, 블루 크리스탈 볼〉이 7월 19일 버킹검궁 근처,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부친인 스펜서 백작 가문의 스펜서하우스에서 열렸다. 오프닝에는 IOC의 티모 루멘(Timmo Lummen), LOCOG(The London Organising Committee of the Olympic Games)의 크리스 타운젠드(Chris Townsend) 등 인사 100명이 몰렸다. 화려한 대저택의 9개의 방에 설치된 55인치 스크린에 한국작가 김수자 정연두 천경우, 중국작가 차오 페이(Cao Fei)와 수잔 푸이 산 록(Susanpui san Lok), 일본작가 코타 에자와(Kota Ezawa)와 히라키 사와(Hiraki Sawa), 영국작가 에밀리 워디올(Emily Wardill), 독일작가 토스텐 라후시먼(Torsten Lauschmann) 등의 작품이 상영됐다.
9명의 작가는 이번 전시에 맞춰 올림픽을 주제로 각기 다른 영상 작품을 제작했는데, 김수자는 올림픽에 참여하는 203개국의 국기를 부드럽게 연결한 35분짜리 영상 작품 〈To Breathe-Olympics〉를 만들었다. 오륜기의 둥근 고리에서 착안해 ‘공존의 정신’ 아래 각 나라 국기의 디지털 이미지를 시작과 끝이 없는 싸이클로 전환시킨 것이다. 정연두의 〈러브 룰렛〉은 펜싱 복싱 레슬링 유도 등 싸우는 종목을 슬로우모션으로 보여 줌으로써 마치, 선수들이 사랑의 몸짓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전시는 큐레이터 이지윤의 기획 아래, 눈부신 빛을 발하며 끝없이 돌아가는 ‘크리스탈 볼’처럼 현대의 올림픽을 전세계에 돌린다는 컨셉트로 엮어졌다. 이미 지난해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미디어아트 전시 〈꿈, 백야〉를 개최한 바, 올림픽에 맞춰 뉴미디어의 속성에 따라 더욱 발전 확대 시킨 것이다. 〈블루 크리스탈 볼〉은 올림픽기간 중 영국 전역 22개소의 BBC 초대형 스크린에 상영되며, 영국 남서부 서섹의 마리나파빌리온(8. 11~12. 31)과 맨체스터과학산업박물관(8. 29~9. 2)에 특별전 형식으로 열린 뒤 스위스 로잔 IOC 본부의 올림픽박물관에 영구 소장된다.

탱크에서 열린 김성환 개인전 전경 Courtesy of Sung Hwan Kim (Photocredit: Tate Photography)

런던에서 만나는 한국미술

2009년부터 시작된 〈코리안 아이〉(Korean Eye)전 역시 이번 런던올림픽을 맞아, 전시 규모를 대폭 확장해 열린다. 사치갤러리 3개 층 전관에서 열리는 〈코리안 아이〉전(7. 26~9. 23)에는 배준성 안두진 이수경 조덕현 등 34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예년과 달리 사치갤러리 큐레이터가 직접 한국작가들을 선정한 것으로 알려져, 그 의의가 크다. 한편 런던 바비컨센터에서 열리는 〈2012올림픽미술대회〉(8. 1~7)에도 노재순 정종기 등의 중견작가 6명이 참여한다. 〈템즈강, 만리장성-세계를 품다〉 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 전시에는 전세계 작가 500여 명이 참여한다. 전시 뿐 아니라 한국미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학술행사도 열렸다. 지난 6월 29일부터 7월 1일까지 런던 코토드대학과 빅토리아앤앨버트미술관에서 ‘한국 현대미술 국제 심포지엄’이 열린 것.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권영빈)와 코토드대학의 공동 주최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국내외 미술이론가 및 작가가 모여 한국 근현대미술의 양상과 세계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 등을 모색했다.
정부나 기업 단위로 주최되는 전시 외에도 개인 자격으로 활약하는 예도 적지 않다. 화가 이강욱은 런던 옥스퍼드서커스 부근의 아시아하우스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 동식물의 세포 사진을 확대해 캔버스에 붙인 뒤 반투명 물감을 여러 번 칠해 우주 공간처럼 표현한 평면 작품 20여점을 선보였다. 한편 올림픽 개막에 앞서 올림픽 경기에서 실제로 사용될 시상대의 디자인을 결정하는 공모전에서 한국 출신의 작가가 제작한 작품이 최종 선정되었다. 구희근 엄홍렬 등이 영국왕립예술대학의 다른 동기생 2인과 함께 이룬 팀이 만든 시상대는 ‘종이접기’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이다. 시상대는 올림픽 경기 이후에는 윔블던미술관 등으로 전시될 예정이다. 또한 런던올림픽 기념공원에 한국디자이너 전주형의 벤치 작품이 놓였다. 런던건축페스티벌의 벤치 공모전에 당선된 작품으로 자전거 거치대와 벤치로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2인용 벤치다. 이 벤치는 비가 자주 오는 런던 날씨를 고려해, 선박용 합판을 이용해 다이아몬드처럼 각진 형태로 제작되었다.

최정화 〈Time After Time〉 소쿠리 가변설치 2012 사우스뱅크 헤이워드갤러리 〈Festival of the World〉 출품작(사진: 호경윤)

한국에서 만나는 영국미술

런던에 직접 가보지 못한다면, 대신 국내에서 영국 현대미술 전시들을 가 보면 어떨까? 갤러리현대는 ‘yBa’를 중심으로 영국 스타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ia)〉전(7. 24~ 8. 19)을 마련했다. 전시 제목은 1997년 토니 블레어 총리의 노동당 정부의 구호로 ‘멋진 영국’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 블레어 총리는 마가렛 대처의 경제 중심의 정책과 대조적으로 음악 예술 패션 등 젊은 영국의 이미지를 새롭게 구축하고자 했다.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를 제외한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 대부분은 196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 후반에 두각을 내기 시작, ‘쿨 브리타니아’의 직접적인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베니스비엔날레 영국관에 나왔던 게리 흄과 트레이시 에민을 비롯한 마크 퀸(Marc Quinn), 사라 모리스, 할란드 밀러(Harland Miller)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또 다른 영국 출신의 팝아티스트의 2인전이 일주&선화갤러리(7. 13~9. 6)에서 열린다. 영국대사관과 태광그룹 등이 후원하는 이번 전시에는 이미 한국에서 잘 알려진 줄리안 오피(Julian Opie)의 작품 14점을 비롯, 국내에 첫 선을 뵈는 패트릭 콜필드(Patrick Caulfield)의 작품 8점이 전시된다. 롯데갤러리에서도 전국 지점별로 영국 현대예술을 소개하는 전시회를 마련했다. 중동점에서는 〈영국 현대미술 5인전-Mind the Gap〉전을 열어 짐 맥엘바니(Jim McElvaney), 에밀리 영(Emily Young), 맷 램버트(Matt Lambert), 트리스트람 아버(Trist- ram Aver), 벤 알렌(Ben Allen) 등 ‘yBa’ 이후 차세대 작가를 소개한다. 전시 제목은 런던 지하철에서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간격이 넓으니 주의하라’는 문구로 쓰이는 말인데,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과 영국의 문화적 간극을 이야기하고 있다. 본점에서는 올림픽 아트포스터를 전시하는 동시에, 영국을 대표하는 스타 ‘비틀즈’를 주제로 한국작가 김선두 홍경택 이동재 서상익 등의 신작을 선보이는 〈비틀즈 50년-한국의 비틀즈 마니아〉전(7. 10~8. 5)을 개최한다. 한편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에서는 빅토리아앤앨버트박물관 소장품을 바탕으로 19세기 영국 디자인의 역사를 이끌었던 오웬 존스(Owen Jones)를 중심으로 유럽 디자이너들을 소개하는 〈오웬 존스와 알람브라〉전(8. 14~12. 2)을 개최한다.
한국은 2013충주세계조정선수권대회, 2014인천아시안게임, 2015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2018평창동계올림픽 등 굵직한 국제 스포츠 행사를 앞두고 있다. 2012올림픽의 공식 슬로건 ‘하나의 삶(Live ad One)’처럼 런던에서 스포츠와 예술이 만나는 장면 하나하나를 쉬이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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