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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2.06

Abstract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의 단색화』전(3. 17~ 5. 13)은 197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의 단색 회화를 총망라하는 대규모 기획전이었다. 이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한국의 대표적 단색화가 31명의 구상성이 배제된 순수한 단색 추상화 150여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 전시는 지금까지 모노크롬 회화, 모노톤 회화, 단색평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던 한국의 단색화를 '단색화(Dansaekhwa)'라는 고유명으로 공식 표기했다. '우리'를 넘어, '세계'를 넘을 수 있는 한국미술의 브랜드를 위해. art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한국 단색화의 시대적 흐름을 조망하고 전통과 현대, 지역과 세계를 둘러싼 담론에 다각적으로 파고드는 특집을 마련했다. 기획자 윤진섭은 전시 기획 의도와 작가 선정 등 전시를 둘러싼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헨리 메이릭 휴즈는 한국의 단색화와 서양의 모노크롬 회화를 비교 분석하면서, 한국적 모더니즘의 정체성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한국 단색화의 대표 작가 박서보와 이우환은 당대의 미술을 이끌었던 '체험의 미술사'를 생생한 육성으로 전한다. 여기에 평론가 기획자 미술사가 전시 참여작가 등이 펼치는 '단색화, 일사일언'를 싣는다.

Contents

01    표지 권오상 C-프린트, 혼합재료 207×194×110cm 2012

34    영문초록

37    에디토리얼  김복기

38    프리즘 
    지역 미술관 시대의 과제, A to Z  이영준
    “도시를 멈추고 거리로!” 예술가의 파업  김수영

42    IMAGE&ISSUE 3  
    로켓, ‘장식의 과학’을 쏘다  이영준

44    오후의 아틀리에 
    상서로운 꽃비  장상의

62    포커스
    이재효展|올라퍼 엘리아슨展  정연심
    정정주展|정직성展  이선영
    안옥현展|오형근展  김현호
    이상원展|권오상展  홍지석

78    특집 한국의 단색화
    [1]왜, 단색화인가?  윤진섭
    [2]한국적 모더니즘은 있다  헨리 메이릭 휴즈
    [3]나의 현대미술 투쟁사  박서보
    [4]‘70년대 미술’을 말한다  이우환
    [5]단색화 이야기  이론가 및 작가 15인의 발언

120    아트마켓
    홍콩아트페어, ‘동서 빅뱅’을 꿈꾸다!  김새미

128    아티스트 스펙트럼
    ㅤ
 ❶ 한기창_삶과 죽음의 뫼비우스 띠  최광진
    ㅤ 
❷ 이동욱_작은 신체들, 팽팽한 의미망  류한승

144    WHO WE MET  빌리 차일디쉬  김수영

146    해외미술    
        
❶ 파리트리엔날레_큐레이터의 ‘지도 그리기’  김수현
        
❷ 뉴뮤지엄트리엔날레_통제되지 않는 젊음  박보나

168    암흑물질
    삐라, 반공, 주술: 전후 남한의 미디어 풍경과 불경스런 징후들  이용우

176    전시 리뷰  
    반성_Reflection|정승운|염중호|이호인|최수정
    한스-피터 펠드만|예술가들의 연구실을 개방하다|백원선
    사운드스케이프|김은혜|조새미

186    전시 프리뷰  
    두 개의 모더니즘, 진. 통.|하종현|최울가
    이보람|오쿠무라 아키후미|김태호

194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홍콩아트페어, ‘동서 빅뱅’을 꿈꾸다!

작가 제니 홀처가 디자인한 홍콩아트페어 기념 가방.
Courtesy of Spruth Magers Berlin London(Photo: Kitmin Lee)

홍콩아트페어, ‘동서 빅뱅’을 꿈꾸다!

글 | 김새미·art in ASIA 기자

작년 7월 1일 아트바젤과 아트바젤마이애미비치를 소유한 스위스 MCH그룹이 홍콩아트페어를 창설, 그간 운영해 온 아시안아트페어스(Asian Art Fairs Limited, AAF)의 주식 60%를 매입했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이는 아시아가 세계 현대미술의 경매 시장뿐 아니라 아트페어 시장에서도 명실공히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에 쐐기를 박는 사건이었다. 지난해 홍콩은 런던과 파리를 제치고, 뉴욕과 베이징에 이어 미술품 거래가 가장 많이 이뤄지는 미술시장의 ‘제3도시’로 올라섰다.
뿐만 아니라 최근 아시아소사이어티, 엠마뉴엘페로탱 화이트큐브 가고시안 시몬리 등은 홍콩에 분점을 냈다. 이는 미술계 큰손들 역시 홍콩 미술시장의 성장세를 확신하는 제스처로 해석할 수 있다. MCH그룹은 이러한 홍콩의 지역적 중요성을 고려하여 AAF의 나머지 주식 40%도 2014년까지 모두 매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년에는 아트페어의 이름을 ‘아트바젤홍콩’으로 바꾼다. 이에 따라 현재 홍콩아트페어 디렉터 매그너스 랜프루는 자연스럽게 아트바젤의 아시아 부문 디렉터가 됐고, 갤러리 선정위원회 또한 새롭게 구성됐다.

아시아원 섹션에 참가한 Y++와다파인아츠 부스

아트바젤의 전초전으로 주목 받아

5월 17일부터 20일까지 HKCEC(Hong Kong Con vention and Exhibition Centre)에서 열린 제5회 홍콩국제아트페어는 2008년 출범 이래, 일보의 후퇴도 허용하지 않으며 아시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이들의 열정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700여 팀의 지원자 중 엄선된 38개국 266개 갤러리가 3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행사장을 채웠고, 6만 7천여 명의 방문객이 다녀갔다. 작년 페어가 2층은 갤러리 섹션으로, 4층은 ‘아트퓨처스(ART FUTURES)’와 ‘아시아원(ASIA ONE)’으로 꾸며 2개 홀의 성격을 확실하게 구분했던 것과는 달리, 올해는 2층과 4층 모두 갤러리 섹션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또한 2층 홀 중앙에는 ‘아시아원’을, 2층과 4층 홀의 가장자리에는 ‘아트퓨처스’를 배치했고, 프로젝트 작품은 전체 행사장 곳곳에 설치했다.
이러한 공간 구성의 변화와 규모의 확장은 이번 페어가 내년에 열릴 아트바젤홍콩의 ‘시험장’으로서 준비되었음을 암시한다. 디렉터 매그너스 랜프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아트바젤와 아트홍콩 기획팀은 이번 행사가 아트바젤 스타일의 페어를 만들기 이전에 홍콩이라는 지역의 특성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했다. 세계 최고의 아트페어인 아트바젤을 운영해 온 노하우가 비교적 짧은 역사의 홍콩아트페어에 적용되면, 확연히 업그레이드 된 서비스가 제공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고 설명했다.
작년부터 선보인 ‘아시아원’ 섹션은 아시아 출신의 작가 1인의 작품만을 전시하는 부스다. 49개 갤러리가 참여한 가운데 박여숙화랑이 강강훈의 작품을, 갤러리스케이프가 정수진의 작품을 선보였다. 베이징의 핀갤러리는 이세현을, 홍콩의 에두아르 말링게(Edouard Malingue)갤러리는 송현숙의 작품으로 부스를 꾸몄다. 박여숙갤러리는 주최측의 제안으로 갤러리 섹션이 아닌 ‘아시아원’에 참가하게 됐으며, 강강훈은 싱가포르와 홍콩 컬렉터의 주문제작을 의뢰받았다고 한다. ‘아트퓨처스’는 신생 화랑이 35세 이하의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섹션으로, 작년에는 5년 이하 경력의 화랑으로 참가를 제한했으나 올해는 8년으로 조건을 상향 조정했다. 이 섹션에 참가한 35개 갤러리 중 한국 화랑은 갤러리엠이 유일했다.   
페어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갤러리 섹션에는 30개국 182개 갤러리가 참가했다. 중국 갤러리로는 롱마치스페이스 페이스갤러리 탕컨템포러리아트 플랫폼차이나 페킨파인아츠 갤러리아콘티누아 베이징코뮨 보에스리(이상 베이징), 펄람 상에이치아트(이상 상하이), 비타민크리에이티브스페이스(광저우), 가고시안 벤브라운파인아츠 아멜리아존슨컨템포러리 한아트TZ(이상 홍콩) 등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스카이더배스하우스 토미요코야마 미즈마아트 코나야기 슈고아츠, 호주에서는 로슬린옥슬리9 안나슈바르츠가 왔고, 대만의 소카아트센터도 참여했다. 서구권에서는 미국의 차임앤리드 데이비드즈비너 액쿠아벨라 매리엔보에스키 레만모핀 레오카스텔리 마리앤굿맨 글래드스톤 말보로 엘앤엠아츠 페이스프린츠, 영국의 시몬리 리슨 필라코리아스 스테판프리드만 화이트큐브 티모시테일러, 프랑스의 엠마누엘페로탱 샹탈크루젤 이본람베르 타데우스로팍, 스위스의 하우저앤워스 등이 참여했다. 한국 화랑으로는 국제 가나아트 PKM 학고재 현대 아라리오 카이스 인 원앤제이 등 9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왼쪽·큐레이터 유코 하세가와가 기획한 아트프로젝트 섹션에 출품된 야요이 쿠사마의 작품|오른쪽·아트프로젝트 섹션과 안도파인아츠갤러리에 단독 부스를 맡은 최정화의 작품

참여 화랑의 새로운 전략들

3층 중앙에 넓은 부스를 차지한 학고재는 이우환 이세현 이용백 이영빈 김아타 양아치 유현경, 장후완, 팀아이텔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학고재의 우찬규 대표에게 페어 현장에서 소감을 물었다. “국제아트페어는 단순히 작품을 팔기 위해서만 참여하는 행사가 아니라, 화랑의 정체성과 힘을 드러내는 자리다. 따라서 팔릴 작품들만 가지고 작은 부스를 꾸미는 일은 피한다. 이번 페어에서 고무적인 일은 페이스프린트에서 이우환과 이세현의 작품을 전시한 것이다. 이들은 30년 이상 판화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갤러리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첫 해부터 올해까지 빠짐없이 홍콩아트페어에 참여했는데, 올해가 규모나 수준 등 모든 면에서 최고다. 매년 바젤아트페어에 참가해 온 화랑들도 홍콩이 바젤보다 낫다고들 한다. 아트페어로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이번 페어의 수준에 깜짝 놀라면서도 동시에 KIAF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다른 페어를 쫓아가기 보다는 KIAF만의 차별화된 무엇을 모색해야 할 것 같다.”
한편 홍경택 최소영 최수앙 등의 작품을 선보인 카이스갤러리는 매년 그렇듯 현지 관람객의 관심을 끄는 부스를 꾸몄다. 김승권 팀장은 “여러 아트페어들 중에서 최근 미술인들이 가장 주목하는 행사이다 보니, 문의도 많고 판매도 만족스럽다. 최수앙 작품에 대한 유럽 화랑 및 미술관에서의 러브콜이 있었다. 홍콩에는 외국인 금융 종사자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국제 문화행사가 열리면 매우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강형구 이동욱, 레슬리드 차베즈, 수보드 굽타 등의 작품을 전시한 아라리오갤러리의 김수현 디렉터 또한 “전세계적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미술시장이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다수의 아시아 컬렉터를 끌어들이는 디렉터 매그너스 랜프루의 지휘력이 돋보인다. 관람객의 수준 또한 높아졌다. 과거에는 작가의 국적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면, 지금은 국가적 정체성보다는 작품 자체로 판단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예전보다 행사의 수준이 확실히 높아졌다. 아트바젤에 버금갈 만하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갤러리현대는 부스를 세 영역으로 나누어 바깥쪽에는 리우딩과 장영혜중공업의 작품으로 각각의 독립된 전시 공간을, 안쪽에는 이우환 김덕용 이수경 전광영 강익중 등 인기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로 꾸민 세일즈룸을 만들었다. 갤러리 관계자는 “이우환과 강익중의 작품이 판매됐고, 전광영과 이수경의 작품에 대한 문의가 많다. 이번에 우리가 부스의 성격을 나누어 디스플레이한 이유는 아트바젤의 개입을 의식하고 갤러리 홍보에 주력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도 때문인지 판매는 아직까지 만족스럽지 않지만, 미술관의 협업 요청이 들어오는 등 전반적인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규모가 작년보다 너무 비대해진데다가 섹션들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혼란스럽다”는 아쉬움도 내비쳤다.
이러한 부정적 의견은 다른 화랑에서도 있었다. 토미요코야마갤러리 디렉터 와타나베 케이스는 “공간 디자인이 복잡하고 동선이 혼잡하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페어의 전체적인 소감에 대한 질문에는 “프리즈나 바젤과 달리 홍콩은 그야말로 중요한 아시아 컬렉터들을 만나는 장이다. 일본 미술시장이 워낙 불황이기 때문에 홍콩에서의 판매 성과가 꽤 만족스럽다”며 즐거워했다. 레오카스텔리갤러리의 아트디렉터 에로우 뮐러는 “각각의 갤러리들이 독립적으로 여는 파티는 있지만, 이벤트나 애프터파티 등 페어에서 공식적으로 마련하는 부대행사가 부족해 보인다. 페어 참여의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모든 관계자들이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전반적인 판매 실적은 경기에 비해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다. 베르나르야콥슨갤러리는 로버트 마더웰의 <스페인 공화국에 대한 연가 45번>을 1백만 달러에, 화이트큐브는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Stalin und Woroschilov pissen von der Kremlmover>를 50만 유로, 하우저앤워스는 폴 맥카시의 <서양식의 짓이겨진 기념비>를 45만 달러, 알리기에로 보에티의 개인전 형식으로 부스를 꾸민 토나부오니아트는 그의 1984년작 <마파>를 100만 유로에 팔았다. 홍콩의 드사르트갤러리는 추테천의 1969년작 <313번>을 3백만 달러에, 한스 하르퉁의 <T1966-H32>를 40만 달러에 팔았다.
전시장 곳곳에 놓인 대규모의 설치작품을 일컫는 ‘아트 프로젝트’는 주최측이 페어의 이미지 구축을 위해 공들이는 부문이다. 올해 ‘아트 프로젝트’는 특히 2013년 샤르자비엔날레를 지휘하게 될 일본 큐레이터 유코 하세가와가 기획해 행사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다. 쿠사마 야요이의 2009년 작 <자정에 피는 꽃>(가고시안갤러리), 인슈젠의 2010년작 <블랙홀>(페이스갤러리), 셴샤오민의 2011~12년 작 <나는 나 자신의 꼭대기 위에서 잔다> (오사지갤러리), 마이클주의 2009~12년 작 <도플갱어> (국제갤러리), 최정화의 2012년 작 <숨쉬는 꽃-붉은 연꽃>(안도파인아트), 다니엘 뷔렌의 2006년 작 <세 창문으로부터, 252개 장소로부터의 다섯 색상, 현재 진행형의 작업>(리슨갤러리), 아이 웨이웨이의 2008~11년 작 <콩> 등 대규모의 프로젝트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돋보인 작품은 미야지마 다츠오의 2008년작 <호토>(스카이더배스하우스). 전면이 은색 거울로 되어 있는 6m 높이의 타워에 3,287개의 LED 디지털 조명이 부착되어 관람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전시장 바깥의 공간을 활용했던 예년과 달리 모든 프로젝트 작품들을 홀 안에만 설치해 작품이 차지하는 공간이 좁아 답답한 느낌을 줬다. 베를린의 안도파인아츠는 갤러리 부스 또한 최정화의 작품만으로 꾸며 거대한 금색과 붉은색 꽃이 숨을 쉬듯 피고 지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했다.

제임스코헨갤러리 부스 장면(Photo: Kitmin Lee)

아트페어의 무한경쟁시대

아트바젤이 홍콩아트페어를 완전히 인수하게 되면 홍콩아트페어가 또 하나의 거대한 서양 아트페어가 되는 게 아닌가라는 우려에 대해 매그너스 랜프루는 “우리는 페어가 열리는 ‘장소’를 중시한다. 때문에 아트바젤홍콩이 단순히 ‘홍콩에서 열리는 아트바젤’이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서양과 아시아의 갤러리 참여 비율을 50대 50으로 양분할 계획이다”고 답했다. 지난해 전세계 미술품 경매 낙찰 비중의 41%을 차지하며, 미국을 제치고 중국이 세계 제1의 미술품 구입국이 된 사실을 간파한 아트바젤은 아트바젤홍콩을 중국 및 아시안 컬렉터들의 폐쇄적 취향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을 것으로 다짐하고 있다.
아직도 ‘세계 3대 아트페어’로 스위스의 아트바젤, 프랑스의 피악, 미국의 시카고아트페어를 손꼽는다면, 당신은 지난 10년 간 펼쳐진 아트페어계의 변화무쌍했던 흐름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 5월 프리즈뉴욕을 개최하고, 오는 10월에는 고미술부터 근현대 미술까지 2000년 이전의 작품만을 다루는 프리즈마스터스(Frieze Masters)를 개최할 예정인 영국의 프리즈아트페어, 매년 3월 볼타뉴욕, 스코프뉴욕 등 10여개 위성아트페어의 개최를 이끌어내며 미국을 대표하는 아트페어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한 아모리쇼, 2002년 첫 회부터 성공을 거둔 아트바젤마이애미비치, 현대미술은 물론 골동품과 가구 등 7천 년을 아우르는 9개 부문의 예술품을 전시하며 유럽 최고의 럭셔리 아트페어로 성장한 네덜란드의 테하프 마스트리트(TEFAF Maastricht) 등이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아트바젤의 뒤를 잇는 상위권 순위 다툼을 벌이고 있다.
아트바젤과 아트바젤마이애미비치, 아트바젤홍콩을 세계 3대 아트페어로 키워 미국과 유럽, 아시아의 미술시장을 모두 석권하겠다는 게 MCH그룹의 야심찬 목표다. 또 한 번의 아트페어계의 지각 변동이 예고된 것이다. 내년 5월 22일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 아트바젤홍콩이 세계 아트페어 시장의 새로운 선두주자가 될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

네거-라임슈나이더갤러리 부스 장면(Photo: Kitmin Lee)

자연의 재현 혹은 교감

이재효 <0121-1110=1120210> 나무 가변설치 2012

자연의 재현 혹은 교감

글 | 정 연 심

자연은 현대 미술가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1960년대 대지미술가들은 대도시 뉴욕을 떠나 유타 뉴저지 네바다 뉴멕시코 등의 자연 속에 작품을 설치했다. 그러나 이는 자연과의 사색을 추구했다기보다는 화이트큐브라는 갤러리 공간을 벗어나기 위한 제도 비판적 행위로서 대지를 선택, 자연으로 뛰쳐나간 것이었다. 즉 그들은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공존을 꿈꾸었던 몽상가들이 아니라 대지 속에 기념비적인 작품을 설치함으로써 기후, 자연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 자체를 포착하려 했던 것이다.
1960년대 작가들과 달리, 올라퍼 엘리아슨은 인공자연(pseudo nature), 즉 자연을 시뮬라크라의 형태로 위장해 미술관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렇게 작가는 미술관 속 가짜 자연을 위해 모뉴멘털한 연극성과 과장성 인위성 등을 이용하는 반면, 진짜 자연 속에는 기계 장치에 의해 움직이는 가짜 폭포를 전시하며 자연과 인공, 빛과 색채에 대한 관람자의 체험을 강조해 왔다.
자연의 물리적 경험
PKM갤러리가 세 번째로 기획한 올라퍼 엘리아슨의 개인전 제목은 <당신의 불확실한 그림자(Your Uncertain Shadow)>이다. 마치 제목을 암시하듯, 동명의 설치 작업에서 벽에 비춰지는 관람객의 그림자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빛과 날씨처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일시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한편 거울과 노란색 유리, 알루미늄 등으로 구성된 <라바 칼레이도스코프(lava kaleido scope)>(2012)는 시시각각 변하는 이미지의 변화를 통해서 지속된 시간성을 체험할 수 있는 작업으로, 시각적인 체험이 심리적인 잔상으로 연결된다. 또한 어떤 작업들은 유리, 조명, 파편화된 거울 등을 통해서 일상적으로 체험하는 공간과 관람자 개인의 모습을 심리적인 잔상의 체험으로 느끼게끔 치환시킨다. 예를 들면 그림자의 미묘한 변화나 빛의 반사 등을 이용해 실내 공간을 감각적인 공간으로 변형시켜 관람자가 미처 알지 못했던 촉각적이고 지각적인 요소들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해외 미술관에서 소개됐던 엘리아슨의 작업들은 상상을 넘어선 대형 작업이기 때문에 빛과 색채를 통한 몰입적 요소와 감정이입과 같은 심리적 요소가 더욱 강조되고, 그 스케일 때문에 관람자들의 반응도 즉각적이고 충동적이다. 이러한 작업 특성이 갤러리라는 작은 공간으로 전이되었을 때 관람객과의 인터랙티브한 교감이 줄어드는 이유는, 물론 물리적 공간의 한계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대신 엘리아슨이 구축하는 ‘호기심의 캐비넷(Kun stkammer)’처럼 작가의 작업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오브제들의 조합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임에는 틀림없다.
엘리아슨은 2001년 페터 줌토르(Peter Zumthor)가 디자인한 브레겐츠미술관에서 <중재된 움직임, 물(The Mediated Motion (Water))>을 설치하여, 물뿐 아니라 나무, 개구리밥, 흙 등 자연을 그대로 옮겨와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을 강조했는데, 이는 PKM갤러리에 전시된 일부 작업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또한 작가는 미술관을 문화의 공간으로 자각하는 우리의 관습을 자극하기 위해 2003년 테이트모던의 터빈홀에 <날씨 프로젝트(The Weather Project)>라는, 현대미술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형 작업을 실내에 설치한 기록을 세웠다.
가짜 태양을 진짜 태양처럼 느끼게 했던 이 프로젝트는 일시적인 공동체를 구현하고 누구나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미술 체험으로 평가받았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경비와 행정력 없이는 불가능한 새로운 유형의 기념비로 전락하는 본질적인 문제점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날씨 프로젝트>처럼, 엘리아슨은 세계적인 비엔날레와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를 개최하면서 빛과 색채를 통해 주변 환경 및 ‘상황’과 미묘하게 교감하는 우리의 즉각적인 반응을 의도한다. 또한 그는 수많은 디자이너와 건축가와의 협업을 통해서 전통적인 미술관을 ‘실험실(laboratory)’의 형태로 바꿔 왔는데, 특히 데이비드 아다예(David Adjaye)가 디자인한 파빌리온에 자연의 일부인 수평선을 연상시키는 레이저 빛을 관람자들이 실내에서 체험하게 하기도 했다. <당신의 검은 지평선(Your Black Horizon)>이라 불린 이 작업은 미국 휴스턴에 있는 <로드코 성당(The Rothko Chapel)>을 연상시켰던 작업으로, 15분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색채로 관람자의 지각을 건드린다.
엘리아슨이 빛과 색채에 의존하되 물, 안개, 이끼 등 자연의 일부를 미술관에 오브제처럼 디스플레이하고 관람자에게 체험하게 한다면, 이재효의 조각은 자연 그 자체와 맞닿아 있는 지점에서 자연과 교우한다. 엘리아슨이 인공자연, 가짜 자연을 연출한다면 이재효에게 자연은 출발점이자 귀착점이다. 즉 그가 사용하는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라 사람의 손길이 스쳐간 흔적이 된다. 이재효는 그동안 못을 이용해 용접을 하거나 나무를 자르는 일련의 행위를 보여 주기도 했지만, 자연의 상태와 물성, 자연의 자취를 최대한 강조하는 방식은 그의 작업에 있어서 중요한 특징으로 남는다. 엘리아슨의 작업이 감성적인 시각 작용과 물리적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 ‘이성적’으로 빛을 설치한다면, 이재효는 그저 자연의 감성을 그대로 노출하고 보존하기 위해 나무를 쌓고, 낙엽을 빼곡히 채우는 행위에 몰두한다.

이재효 <0121-1110=1080815> 돌 95×95×600cm 2008

자연과의 일체화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자연을 탐하다>는 엄밀한 의미에서 이재효라는 작가가 자연과 일체되어 온 지난 20년 간의 작업을 보여 주는 회고전 형식의 전시다. 조각가 이재효에게 자연이 상상력의 원천이자 사색의 근원으로 자리잡아 왔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미니멀리스트들이 사용한 육중한 산업재료 등에서 보였던 불확정적인 존재로서의 조각이 아니라, 이재효에게 조각은 자연을 보듬고 다듬는 지속적인 대화의 과정 속에서 긴 노동의 결과로 얻게 되는 오브제로 존재한다.
2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미술관 전관에는 총 300여 점에 달하는 수많은 오브제가 전시됐다. 작품 모두 돌멩이 나무 못 낙엽 담배꽁초 등이 중첩되고 축적되며 그의 삶의 일부를 그린다. 나무(밤나무 잣나무 동백나무 등)의 잔가지를 비롯해 낙엽, 풀 등은 자연의 순환에서 생기거나 버려졌던 것들이지만, 작가의 손에서 다시 되살아나 서로 결합된 생명체로 재탄생한다. 작가는 인간이 우리의 필요와 욕망에 따라 자연의 대상에 등급을 매기고 쓸모 있는 기능과 쓸모 없이 버려지는 단계를 구분했다는 사실을 새삼 부끄럽게 만든다. 손이 닿으면 부서질 듯 상처받기 쉬운(vulnerable) 낙엽과 풀, 나뭇가지들을 이렇게 아름다운 선과 형태로 조형화시킴으로써 우리에게 인간의 관점이 아닌, 드러내지 않는 자연의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볼 시점을 제공하는 듯하다.
이재효는 태운 잣나무를 엮거나 여러 종류의 나무 등을 기하학적이거나 반복된 유형으로 용접하고 결합시키지만, 여기서 사용되는 못이나 볼트 철근 철사 등은 대상물을 이어 주는 역할 이외에는 인공적인 면모를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나무라는 자연대상이나 사물의 느낌을 그대로 보여 주려는 듯 나무의 나이테가 변형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즉, 일정한 유닛으로 반복되는 과정을 거쳐 작품은 응집력과 통일성을 보여 주고, 나무의 틈과 오브제의 틈 사이로 숨쉬기를 유도한다. 일종의 음악적인 운율이나 리듬처럼 나무와 돌과 같은 자연적 오브제는 인공적 결합체와 함께 서로 공존하며 어느 하나도 드러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돌이나 바닥에 설치된 원형의 돌은 우리가 오랫동안 자연 속에서 보아 왔던 익명의 돌이며, 돌 사이로 바람 소리, 숨소리, 발자국 소리 등을 미묘하게 들을 수 있도록 천천히 우리를 사유하게 하는 ‘과정’으로 이끌며 말을 걸어 온다. 사물과 ‘나’와의 조응 속에서 관람자인 내가 자연과 일체화될 수 있도록 사물이 사물로서의 속성 이외에는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전시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마지막 전시장의 작품들이다. 작가의 스케치나 드로잉을 비롯해 혼합매체를 이용한 각종 페티시나 유물을 연상시키는 평면과 입체 작업들은 작가의 궤적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아카이브 자료가 된다. 이는 최소 재료와 과정만으로도 나무와 돌의 느낌, 환원적인 형상, 축적되고 반복되는 그리드 조직 등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진 그의 작업적 과정을 보여 주는, 일명 조각가의 ‘제작노트’이자 아이디어의 보고이다. 이렇게 엘리아슨의 인공자연이나 강렬한 빛, 파편화된 거울 형상처럼 우리의 지각을 ‘물리적’으로 끌어내는 요소와는 전혀 반대의 지점에서, 우리는 이재효라는 작가가 끌어내는 자연의 지층을 미술관 안에서 대면할 수 있다.
이렇듯 이재효와 엘리아슨의 전시에서는 비슷한 나이의 미술가의 자연현상(전자의 돌, 나무와 후자의 빛, 인공자연)에 대한 각기 다른 시각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둘 다 작품을 통해  빛과 자연을 우리에게 치환시키고 있다.

올라퍼 엘리아슨 <웰커밍 일립시즈> 색거울, 알루미늄, 고무 246.7×99 cm 2008

올라퍼 엘리아슨 <인피니트 컬러 더블 폴리히드런 램프>
스테인리스스틸, 필터유리 LED조명 지름 75cm 2011

삶과 죽음의 뫼비우스 띠

<지혜로운 죽음> 수술용 의료 도구, 테이블, 폴리카보네이트, LED 가변 크기(부분) 2012

삶과 죽음의 뫼비우스 띠

글 | 최광진·미술평론가, 이미지(理美知)연구소장

우리 삶은 각종 불행한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는 체험의 현장이고, 그것이 남긴 트라우마는 우리 무의식에 저장되어 심리적 불안과 정신적 장애로 이어진다. 일반인에게 트라우마는 순수한 영혼을 옥죄고 정신을 파괴하는 원인이 되지만, 작가에게는 작품 제작의 동기가 되기도 한다. 누구나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일은 불편하고 힘든 일이지만, 그것을 관조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객관화가 가능하고 긍정적인 양태로 승화시킬 수 있다. 그럴 때 작품은 작가의 혼을 싣게 되고 공감과 감동을 줄 수 있다. 예술가에게 트라우마는 고통의 원인인 동시에 창작의 모티프가 된다. 그리고 인생의 비극은 때때로 사유의 관습에서 벗어나 삶을 관조하게 만들어 새로운 시각을 열어 주기도 한다. 삶의 불행과 비극을 관조하며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행위는 예술의 주요 역할 중 하나이다.

<자연회귀> 폴리카보네이트, X선 필름, OHP 필름, LED 200×300×150cm 2012

트라우마를 넘어 윤회를 보다

한기창의 경우도 자신의 강력한 트라우마에서 작업의 동기를 얻고 있다. 그는 1993년 유학을 앞두고 자동차 운전 중에 마주 오는 차와 정면 충돌하는 큰 사고를 당했다. 상대방 운전자는 사망했고, 자신은 병원에서 사투를 벌이며 7번의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다행히 그는 생명을 건질 수 있었지만 병원을 계속해서 드나들어야 했고, 접합한 뼈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X선 필름을 자주 봐야만 했다. 사실 인체 내부를 투시한 사진인 X선 필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몸이 건강할 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질병과 고통의 상황에서 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화를 전공한 그에게 뼈와 살의 상태에 따라 흑백의 그라데이션이 드러나는 X선 필름은 한폭의 수묵화처럼 다가왔다.
사실 인체는 뼈와 살, 혈관, 수분 등이 짜임새 있게 구조화된 하나의 풍경이자 작은 우주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X선 필름은 자연처럼 인체 풍경을 수묵화처럼 흑백으로 포착한 것이다. 그는 질병 치료의 목적으로 다루어 오던 차갑고 공포스러운 X선 필름에서 회화적 착상을 얻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죽음과 생에 대한 사유로 이어지며, 개념적으로 동양 특유의 순환적 우주관을 작품의 미학적 담론으로 채택하게 된다.
“병원에서 X선 필름에 비친 우리 몸의 구조를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희망보다는 절망과 죽음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죽음이란 목숨이 끊어지는 찰나인 동시에 찰나의 무한한 연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에 대한 깊은 관조에서 비롯된 이 말은 그의 의미론적 전략의 핵심으로 삶과 죽음이라는 이분법적 대립을 와해시키고, 동양 특유의 윤회 사상과 순환적인 세계관을 열어 보이고 있다. 이러한 개념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병원을 돌며 어렵게 X선 필름을 구했고, 그것을 오리고 잘라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죽음과 고통의 상징적 이미지인 X선 필름은 이리저리 잘리고 붙여져 아름다운 꽃과 나비, 다양한 기물과 풍경, 혹은 민화의 문자도 같은 이미지로 환생되었다. 그는 종이와 붓, 먹과 같은 동양화의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생태학적인 동양적 사유를 작업의 담론으로 채택함으로써 전통을 계승하고자 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외형적으로 자연물이나 인공물의 형상을 띠고 있지만, 그 안의 구조는 기계로 촬영한 인체 내부의 필름으로 채워짐으로써 인간과 만물의 흥미로운 반전이 이루어진다. 만물의 영장으로서 과학 문명을 이룩한 위대한 인간은 자연의 내장으로 전락하고, 인간의 뼈와 살을 내장으로 삼은 자연 만물은 그 화려한 외관을 드러낸다. 마치 인간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흙에서 다시 생명이 나오듯이, 그의 작품은 인간과 자연의 상식적인 위계질서를 무너뜨리고 죽음과 환생이라는 윤회의 고리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 준다. 이러한 외형적 정체성의 전치(轉置)는 인간 동물 식물 광물 같이 인간이 정한 위계적인 고유명사를 비웃으며 모두가 평등한 공존의 장(場)을 열어 준다.

사비나미술관 전시 전경 2012

뢴트겐 정원, 그 독창성과 딜레마

그는 이러한 개념을 양식화하기 위해서 지난 10년 동안 다양한 조형 실험을 보여 주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양식은 X선 필름을 이용한 조형 작업이다. X선 필름을 발명한 뢴트겐의 이름을 따서 <뢴트겐의 정원>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 시리즈는 2002년경부터 시작하여 최근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자신의 체험과 회화적 요소가 녹아든 X선 필름이라는 매체는 다른 작가와의 차별화를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아이디어였지만, 다양한 표현을 하기에는 제약이 많은 매체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시트지로 색을 집어넣고 LED 조명을 사용하여 빛이 서서히 변하게 만듦으로써 자연의 시간성을 반영하고자 했다. 그럼으로써 작품은 마치 지하철이나 백화점 같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고판의 형식을 띠게 되었다.
LED 조명을 이용한 <뢴트겐의 정원> 시리즈는 매체의 차별화로 인한 독창성과 의미론적 소통도 성공적이어서 곧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그리고 점차 세련된 조형 방식으로 발전해 갔지만, X선 필름이 지니고 있는 표현적 제약으로 인한 확장력의 한계는 피할 수 없었다. 또 칙칙해 보이는 X선 필름을 살리기 위한 보조 장치가 많이 들어간다는 점도 주제 표현의 경제성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면이 있었다. 개념을 살리기 위한 보조 장치가 간소할수록 작품의 임팩트가 강한 법이다. 그리고 개인적 트라우마는 시간이 지나면 해소되거나 변할 수 있다. 그럴 때 양식의 변화가 뒤따르지 않으면 작품의 혼이 빠지고 장식적으로 흐르게 된다.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다양한 변주를 시도한다. 2004년경부터 그는 병원에서 사용하는 의료용 붕대로 캔버스를 감싸고 의료 봉합용 스테이플을 박아서 문인화 같은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는 <세한도> 같은 옛 명화를 재현하기도 하고, 화분이나 풀, 혹은 정원의 이미지를 제작했다. 이 시리즈는 개념적으로 치유와 윤회 같은 순환적 세계관이 응축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제의 일관성이 묻어 났다. 치유 개념의 변주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작품의 임팩트가 약하고 스테이플로 표현할 수 있는 다양성이 제한되어 있어서 주된 양식으로 끌고 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2007년 학고재갤러리 전시부터 그는 새로운 돌파구를 위해 <혼성의 풍경> 시리즈를 제작했다. 이 시리즈는 상업용 시트지를 붙이고 칼로 섬세하게 커팅하며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작업으로 제작 방식이 목판화에 가까웠다. 그는 이러한 방식으로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자연과 문명, 인물과 풍경 같은 출처가 다른 동서고금의 다양한 이미지를 차용하고 섞어 ‘혼성의 풍경’을 만들었다. X선 필름과 LED 조명이 빠진 이 시리즈에서는 보다 견고한 조형적 짜임새와 손맛에서 오는 아우라가 증가되었고, 소장의 용이성을 제공했지만,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뢴트겐의 정원>에서 만큼 임팩트가 강하지는 못했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혼성의 방식이 포스트모던한 감각을 끌어올려 주었지만, 차용과 공간 구성에 치우침으로 인해 이전까지 끌고 오던 ‘치유’와 ‘시간 개념’이 약화됨으로써 메인 주제의 혼동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변주의 방향 설정이 여의치 않자 그는 이미 검증된 X선 필름 작업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고, 치열한 의식 또한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2010년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은 그러한 문제가 완연히 노출되고 있었다. 작품은 화려해지고 스케일이 커졌지만, 개념적인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오는 공허함과 그 공허함을 메우기 위한 화장이 짙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작가로서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위기이다. 일부 작가들은 이러한 위기를 화장발로 모면하려하지만, 진정성이 있는 작가들은 다시 진솔한 질문과 문제의식을 다듬어서 새로운 출구를 찾는다. 그러려면 다시 작업의 개념으로 돌아가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왜 그 말을 해야 하는지, 또 어떤 표현 방식이 최선인지를 다시 질문해야 한다. 고통스럽고 소모적으로 여겨지는 이 과정을 무시하면 작가는 예술가가 아니라 기술자와 장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러한 성장통을 통해 작가는 한 단계의 도약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Bio Landscapes> 장지, 잉크 각 117×106cm 2011 사비나미술관 전시 전경 2012

개념적 깊이가 가져온 양식의 다양성

그런 측면에서 이번 사비나미술관 개인전은 매우 중요한 시점에 열린 전시이고, 전시 장소로서 미술관을 선택한 것은 매우 현명했다고 본다. 판매를 의식해야 하는 갤러리에서는 자유롭게 자신의 개념을 진전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의 두드러진 특징은 양식의 다양화와 더불어 전에 없었던 드로잉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드로잉이 많다는 것은 개념에 대한 사유가 있었다는 증표이고, 더 이상 화장발에 의존하지 않고 작업의 뼈대부터 다시 점검하려는 의지의 표상이다. 아이디어 드로잉은 개념적 탐구가 이루어질 때 나오게 되고, 개념이 강한 작가일수록 드로잉에 대한 의존도가 큰 법이다. 그는 대중들에게 눈속임을 주고 내적으로 곪아가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용기 있게 직시하는 고통스런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 트라우마를 다시 관조하면서 보다 보편적인 자연의 프랙탈(Fractal) 질서로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부분은 언제나 전체와 닮아 있다는 만델브로의 프랙탈 이론은 현대 자연과학의 개가이자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이라는 불교의 화엄사상과도 통하는 개념이다. 그는 생물학이나 유전학, 신경과학의 서적을 보며 인간과 자연의 흥미 있는 ‘닮음 관계’를 주목하게 되었고, 인체의 구조와 우주의 구조 간의 연관 관계에 눈뜨게 되면서 세계가 결국 하나라는 전일적(全一的) 세계관과 일원론적 사유에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설 수 있었다. 이러한 개념적 진전은 X선 필름 작업의 의존도를 줄일 수 있었고, 단조로운 패턴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양식을 확장할 수 있었다.
그는 장지에 필기용 펜으로 수행하듯 실핏줄 같은 드로잉을 반복하면서 인간의 신체 일부나 자연의 풍경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만들기도 하고, 현미경으로 본 세포 이미지를 확대하거나 인체의 뼈대나 혈관의 모양을 두드러지게 하여 우리의 고정된 시각을 전이시켜 자연으로 향하게 했다. 어떤 작품에서는 죽음과 고통을 암시하는 수술용 의료 기구를 레디메이드로 인식하여 예술품처럼 진열장 안에 전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X선 필름뿐만 아니라 MRI나 초음파로 찍은 몸속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프랙탈적으로 다양하게 변하고 중첩되는 이미지를 영상 작업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또 기존에해오던 X선 필름 작업은 일상적 풍경을 적외선 필름으로 촬영하고, 그 필름을 X선 형상으로 재구성하고 포개어 과거보다 한층 풍요롭고 다채로운 양식을 선보였다.
이러한 양식의 다양성은 개념적 진전에서 온 것이고, 향후 그의 탄력적인 행보를 예상케 한다. 그는 개인의 주관적인 트라우마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다가 생물학이나 의학, 생태학 같은 자연과학적 개념에 다가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편적인 생태학이나 자연과학으로 너무 가까이 가게 되면 메시지가 계몽적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 그러면 작품은 자연과학적인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삽화처럼 보일 수 있다. 과학은 객관적 사실을 진리 차원에서 접근하여 계몽적으로 풀어 간다면, 예술은 현실의 문제에서 출발하여 인식의 편협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형식일 때 힘이 실린다. 그렇다면 너무 쉽게 답에 도달하기보다는 문제의식을 개인의 트라우마에서 사회의 트라우마로 확장하고, 현대인의 의식적 병리현상에 초점을 맞출 때 공감대가 강화될 수 있다.  
데미안 허스트가 약과 수술도구를 들고 나왔을 때, 힘 있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생명 연장을 위한 현대인들의 심리적 집착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영생을 위한 과거 종교의 역할을 현대에는 과학과 의학이 대신한다는 시대적 해석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성이 어떤 특수한 시대적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날 때 우리에게 더욱 실감나게 다가오는 것이다. 세상은 진리가 없어서 혼탁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응용되어 적용되지 못하기 때문에 혼탁한 것이 아닐까. 예술적 접근은 사회적 혼탁함에서 출발하여 그것이 진리로 향하는 과정을 보여 줄 때 부조리한 사회와 보편적 과학 사이를 이어 줄 수 있을 것이다.  
한기창의 초기 작업이 자신의 주관적인 트라우마를 해소하려는 경향이 강했다면, 근작에서는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상대적으로 자연과학에 가깝게 다가서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의 메시지가 다소 보편적이고 원론적으로 다가오는 측면이 있다. 그의 중심 주제가 되고 있는 동양 특유의 순환적 세계관과 범신론적 사유가 꽃피우기 위해서는 현대사회와 현대인에게로 보다 초점이 좁혀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현실에서 생명의 약화현상을 목격하고 순환적 흐름이 막힌 부분을 구체적으로 찾아 내야 한다. 그것은 그림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그런 측면에서 요셉 보이스를 모델로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역시 비행기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생명과 치유라는 주제를 갖게 되었고, 생명성과 관련된 상징적 오브제를 작품화하였다. 보이스의 허접해 보이는 작품에서 오는 힘은 조형적인 것이 아니라 그의 확고한 신념과 사회적 실천이다. 신념과 실천이 강하면 조형은 작은 흔적으로서 충분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조형성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고 장식으로 흐르기 쉽다.  
한기창은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했지만, 새로운 매체를 다루는 순발력과 자신의 아이디어를 조형적으로 풀어가는 데 재능이 많은 작가이다. 그래서 자칫 기교파로 빠질 우려가 많음에도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정신적 고뇌를 감당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에서 작가로서의 저력이 감지된다. 개념적으로 우리 시대와 현대사회에 대한 해석이 보강된다면, 그는 국제 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작가라고 생각된다.

한기창 1966년 출생. 추계예술대 동양화과 졸업. 사비나미술관(5. 16~6. 29, 2012) 학고재갤러리(2007) 파리 가나보부르갤러리(2006) 금호미술관(2003) 토탈미술관(2002) 아르코미술관(2001) 등에서 개인전 20여 회 개최. <코리안아이>전(2009 런던 사치갤러리) 미디어시티서울(2005 서울시립미술관) <아트스펙트럼>전(2003 삼성미술관) 등 국내외 단체전 참여. 파리 시테 레지던시(2005) 입주.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대병원 등에 작품 소장.

큐레이터의 ‘지도 그리기’

울라 폰 브란덴부르크 <왕의 죽음> 팔레드도쿄 아고라 설치 전경 2012(Photo: Andre Morin)

큐레이터의 ‘지도 그리기’

글|김수현·미술평론가

프랑스 문화부와 국립조형예술센터(CNAP)가 공동 주관한 파리트리엔날레(La Triennale)는 2006, 2009년 2회에 걸쳐 그랑팔레에서 열렸던 〈예술의 힘(La force de l’art)〉전이 그 전신이다. 올해 3회부터 명칭을 변경한 파리트리엔날레는 팔레드도쿄를 비롯한 전시 공간 8곳에서 동시에 개최하며 40개국 총 146명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였다. 1937년에 건축된 팔레드도쿄는 2002년에 재오픈한 뒤 지난 10여 년 동안 다양한 현대미술 전시를 기획해 온 역사적인 공간이다. 최근에는 1년 동안 리노베이션 기간을 거쳐 지하 시네마테크 아카이브를 전시장으로 전환시키고 총 면적을 7,000㎡에서 22,000㎡로 확장했다. 이 거대한 공간은 퐁피두센터 4개 층을 합친 면적을 능가하며, 프랑스 현대미술의 새로운 도약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번 트리엔날레는 광주비엔날레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나이지리아 출신의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가 총감독을 맡아, 〈극도의 인접성(Intense Proximity)〉이라는 주제 아래 4명의 큐레이터 멜라니 부틀로(Melanie Boute loup), 압둘라 카룸(Abdellah Karroum), 에밀 르나르(Emilie Renard), 클레르 스테블레(Claire Staebler)와 팀을 이뤄 기획한 전시이다. 올해는 이례적으로 전시 오프닝 1주일 전인 12일부터 13일까지 30시간 동안 논스톱으로 ‘사이 오픈(Entreouverture)’을 개최했는데, 3만 5천 여 명의 관객이 방문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극도의 인접성〉이라는 주제는 오늘날 ‘정체성’의 개념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서 출발한 것이다. 즉 후기 산업사회 이후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세계화 속에서 발생하는 정치 인종 사회 다문화간 혼성성과 근접성에 의해, 시공간적 거리가 소멸되고 주체와 타자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때론 위협 받기도 하는 현재의 시대상을 전제로 한다. 이는 전시 기획에서 생성되는 비평적 시각을 올바른 거리 두기의 문제라고 보는 자기 반영적 질문도 동시에 함축하고 있으며, 특히 개인과 국가 관계 속 주체를 포스트콜로니얼리즘으로서의 문화, 예술 현상이라는 민족지학적 개념으로 풀어 낸 시도이다.
다양한 경계의 영역이 만나는 접점으로서 이번 전시는 아프리카 중동 남미 작가들이 대거 참가했으며, ‘주체’ ‘영토’ ‘문화인류학’‘다시 배우기(desappren -dre)’라는 4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특히 네 번째 ‘다시 배우기’는 자기 반성적 의미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즉 관객들이 그동안 배운 것을 잠시 잊고 스스로의 편견과 관념을 비판할 수 있는 거리를 생산함으로써, 콜로니얼리즘과 파시즘으로 구축되어 온 서구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새로운 예술 표현 방식을 찾는다는 의미가 내포된 것이다.

아네트 메사제 <모션/이모션> 혼합재료 가변설치 2012 Courtesy of the Artist &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rk, Paris, ADAGP Paris 2012(Photo: Andre Morin)

‘거리’의 문제

터키 이민자와 독일 여성의 사랑을 비극적으로 담은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의 제목을 인용한 것일까? 팔레드도쿄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아르헨티나작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R. Tiravanija)가 중앙홀 큰 벽에 검은 글씨로 쓴 글귀  〈공포는 영혼을 먹는다〉가 첫눈에 들어온다. 이는 물론 이 전시의 기획 의도를 짐작할 만한 문구이기도 하다. 사실 오늘날 서구 정치인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인 ‘이민 정책’은 아이러니하게도 트리엔날레 전시 오프닝과 며칠 간격으로 시행된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도 중요한 이슈로 등장했다. 특히 지난 사르코지 대통령에 의해 만들어진 ‘선택 이민’이라는 신용어는 차라리 서글프기까지 하다. 이는 디아스포라로 대표되는 또다른 유형의 탈식민적 유목민의 삶의 형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최근 유럽 경제 위기 속 실업과 고용 불안은 외국인 혐오증으로 이어져, 급기야는 극우파의 융기와 신나치 운동이라는 매우 공포스러운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전시는 세계화 속 개인의 가치에 대한 불안과 포스트콜로니얼리즘적 문화 정치의 폭력에 대한 저항, 그리고 마이너리티로서의 제3세계 예술의 존재 및 모나드적 개인의 정체성을 주창하고자 한다. 즉 이처럼 불안이 지배하고 있는 현대 예술의 현상 중에서도 어쩌면 최전방에 위치한다고도 할 수 있을, 배제된 역사로서의 아프리카 디아스포라를 포함한 탈식민주의적 작가들을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한 것이다.
정치 사회 지역 개인 등 모든 관계는 사실 전부 ‘거리’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아우라적 거리가 상실되는 지점이란 내외부의 거리조차 내파되는 혼돈의 상태를 의미할 것이다. 오늘날은 비극조차 반복에 의해 스펙터클화되어 환상으로 소비되며, 타자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과잉 동일시가 일어나고, 탈식민주의 개념조차 저항에서 키치와 유희로 변질되는 글로벌 마케팅의 정보 사회이다. 그 속에서 어떻게 타자를 규정짓고 사물화되는 주체를 재확립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타자와의 최소한의 거리 확보와 사이 공간이라는 최소한의 보호처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니체는 거리의 파토스라는 용어를 통해, 자기 긍정으로서의 거리 조성 능력을 가지고 주체를 분리시킬 수 있는 생성의 세계를 주창한 바 있다.  
모더니즘 시기의 콜로니얼리즘 개념이 서구의 원시주의적 환상에 의한 타자성(otherness)이 대두된 결과라면, 그 특징은 네크리튀드 운동과 초현실주의의 물신 숭배라는 문화적 타자와 무의식 주체와의 관계에 의한 합리/비합리, 매혹/경멸, 문명/야만의 충돌로 정리할 수 있다. 한편 포스트모더니즘 시기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은 억눌렸던 환상으로서의 타자의 귀환(할 포스터)으로, 차이 속에서 반복되는 좀 더 복합적인 현상으로서 외상의 형식으로 드러낸다. 특히 영미권의 다양한 문화 연구는 중심/주변의 전복에 의한 인종 페미니즘 젠더 종교 아비투스, 그리고 다문화간 계층 갈등과 사회적 소외 속의 하위 주체라는 좀더 미시적인 문제들에 접근하고 있다. 전자가 지리 정치학적 위계 질서 속의 종적인 식민/피식민의 이원적 관계라면, 후자는 문화, 예술적 역사의 혼성성과 횡적 차이에 의한 다양한 현상에 주목한다. 물론 이 개념에 대하여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가 말한 ‘서구의 주체 확립을 위해 필요했던 허구로서의 오리엔탈리즘의 환영’ 혹은 호미 바바(Homi K. Bhabha),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 avorty Spivak) 같은 학자들이 전개한 포스트 용어 사용 논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를 현재 진행형으로서의 시간성이 개입된 ‘열린 개념’으로 봐야 할 것이다.
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거대한 트리엔날레 도록은 이러한 역사적 지층과 다 학문간의 크로스오버를 보여 주는 백과사전에 가깝다. 엔위저의 글은 자신의 전시 기획 개념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 -Strauss)의 《슬픈 열대》(1955)의 문화 인류학적 철학을 전시 기획자의 연구와 비교하며, 기획자를 여행과 타자에 대해 끝없이 탐구하는 탐험자로 동일시한다. 이중 거의 45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텍스트는 엔위저와 4명의 큐레이터들뿐만 아니라, 레비-스트로스, 프란츠 파농(Frantz Fanon), 미셀 레리스(Michel Leiris),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벤야민 부흘로(Benja -min Buchloh), 할 포스터(Hal Foster)등과 그외 수십 명에 달하는 철학, 문화 인류학, 정신 분석학, 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지난 100여 년 동안의 아카이브적 텍스트들이 얽히며 거대한 역사적 지층을 드러낸다. 이처럼 역사 속 타자들을 다시 불러 내는 동시에, 재해석과 비평을 위한 담론의 장으로서 도록의 새로운 역할을 제시하고 있다.

 ‘사이 오픈’ 전경. 파리트리엔날레는 정식 오프닝 1주일 전인 4월 12일부터 13일까지 팔레드도쿄에서 30시간에 걸쳐 논스톱 오프닝을 열었다. 이 기간 동안만 3만 5천 여 명의 관람객이 방문했다.

디테일과 모뉴멘털

서구 미술관의 역사는 타자의 오브제들로 가득 찬 ‘정복자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뮤지엄이란 이러한 타자들의 경계를 탐색하는 탐험의 지도를 그리는 장소로서, 타자를 세분화시키고 미시적 주체를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장소성을 지닌다. 엔위저 감독은 이러한 차이를 ‘디테일’과 ‘모뉴멘털’이라는 상반되는 개념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것 같다. 이러한 의도는 오브제들로 구성된 공간 설치 와 파편적 이미지들의 탈중심적 배치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사실상 팔레드도쿄라는 제국주의적이고 모뉴멘털한 공간 속에서 마치 콘트라스트를 이루듯 바닥에 흩어진 작은 오브제들의 왜소한 현존성은 오히려 빈공간의 존재감을 두드러져 보이게 하는 식민 문화의 트라우마적 흔적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디테일의 미약함은 일상의 오브제를 통해 더욱 두드러지는데, 카셀도큐멘타11에도 참여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 메삭 가바(Meschac Gaba)의 자전적 이야기 〈결혼식 방〉은 백인 여성과 결혼한 당시의 기념사진과 비디오, 결혼 증명서, 축제 때 사용했던 물건이나 신부가 착용했던 드레스 등을 미시적 내러티브로서 풀어 내며 언젠가는 완성될 ‘상상의 미술관’을 기획하는 과정 중의 작품이다. 사진 앞에 놓인 혼성적 오브제들이 유럽 문화와 뒤섞여 있는 장면에서 엿보이는 아비투스적 동일시는 마치 곧 깨질 듯 연약한 식민 문화 속 주체의 불안정함과 불안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의 결혼 이미지라는 억눌렸던 상징계의 위계질서를 전복하는 제스처가 키치적으로 표현됨으로써, 그 불안한 결합의 의미를 증폭시킨다고 할 수 있다.
나이지리아에서 활동 중인 가나작가 엘 아나추이(El Anatsui)의 〈꽃타일 정원〉은 서구 문화의 상징인 콜라나 와인병 뚜껑과 각종 상표를 연결하여 전통 타피스트리 방식으로 제작한 재활용품 설치 작업이다. 여기서 서로 얽혀 연결된 타피스트리 조직은 식민/피식민간의 혼성 문화를 은유하는 듯하다. 이 작품은 높은 천정과 대조를 이루듯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지듯 널려 있어, 멀리서 보면 마치 공사 현장의 쓰레기 더미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가까이서 살펴보면 일일이 손으로 꿰맨 오트꾸튀르적 제작 방식 때문에 마치 최고급 드레스 자락을 조심스럽게 펼쳐 놓은 듯 저급/고급의 전복적 하위 주체같은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팔레드도쿄 길 건너편의 패션디자인박물관 건물 전면을 이러한 저급 재료로 포장하듯 덮어 씌운 그의 또다른 설치 작품은 파리의 우아한 건축물을 번쩍거리는 키치적 오브제로 전락시킨다. 이러한 ‘아프리카식 아르테포베라’는 저급 마티에르와 파리 최고급 패션 아이콘인 우아한 건물이 만들어 내는 경계를 순간적으로 무너뜨린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터키작가 사르키스(Sarkis) 의 〈전쟁 보물들의 벽〉은 극도로 클로즈업된 파편화된 이미지를 벽화처럼 가득 채운 세 개의 벽과, 그 앞 진열장에 여러 오브제를 유물처럼 진열한 설치 작업이다.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의 모더니즘적 시각이 신체 절단적 지각이라면, 전쟁의 기억이란 본래의 문맥에서 박탈당한 파편화된 이미지와 주인을 잃은 유령적 오브제들로 이루어진 고통의 흔적일 것이다. 사르키스는 아프리카 전통 조각과 칼, 카오스적 샤먼, 피 흘리는 동양인의 얼굴, 뭉크의 절규와 그 옆 유사한 태아 형상의 아프리카 조각 등 지구촌 역사를 총망라한 듯한 파편적인 이미지를 무작위로 배열함으로써, 이들이 외설적인 대상으로서 엑조틱하게 소비되며 타자의 문화로 수용되는 현 시대를 고발한다.
전시란 결국 이러한 파편들이 총집합한 혼성적 구축물이다.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의 말처럼 현실의 허구화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 개념이라면, 전시란 이를 재구성하는 아상블라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인류학과 정신분석학이 유일한 민족지학적, 무의식적 탐구로서 타자에 대한 연구의 지평을 넓혀 주는 유일한 학문이라면, 이로써 미시적 차이 속 포스트 아이덴티티로서의 개별적 주체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차이의 다양성의 층위 속 공간에 열린 모호한 의미(sens obtus)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메리 루이즈 프랫(Mary Louise Pratt)이 말하는 ‘타자들이 교류하는 장소(zone de contact)로서의 미술관’이란, 경계의 최전선에 위치하면서도 동시 공존하는 실험적인 탐색의 지형도를 그리는 장소성을 의미한다. 〈극도의 인접성〉이란 이러한 경계 영역으로서의 극도의 긴장감이 존재하는 영토적 분쟁, 갈등, 충돌이 일어나는 가능성의 영역을 포함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는 먼 전쟁터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일상을 영위하는 삶의 터전이야말로 잠재적 사건이 터질 경계 영역으로서 사실상 촉각적으로 극도로 근접해 있다는 것이다. 인종과 환경의 산물로서 주체는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시점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다양한 시각이 교차하는 타자와의 담론 틈에서 긴장과 공존의 의미가 생성될 수 있을 것이다.

왼쪽· 크리스찬 마클레이 <7개의 창문> 팔레드도쿄와 도쿄잇 창문에 설치
실내 전경 2012(Photo: Andre Morin) | 오른쪽ㆍ크리스찬 마클레이 <7개의 창문> 팔레드도쿄와 도쿄잇 창문에 설치. 외부 전경 2012(Photo: Andre Morin)

큐레이토-그래피(Curato-graphy), 새 지도 그리기

영국의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에 대한 내용을 담은 아이작 줄리안(Issac Julian)의 비디오 영상 〈영토들〉은 1976년 노팅힐에서 열린 흑인 카니발을 폭동으로 제압하려고 했던 백인 경찰들의 폭력과 사건을 왜곡 방송한 미디어를 비판한다. 여기에서 작가는 흑인들을 외설적인 하층 계급으로 변형시킨 당시의 정치적 내레이션이나 이미지를 해체한다. 즉 이를 다시 콜라주하거나 몽타주하고, 슬로우모션과 이미지 중첩을 이용하거나 때로는 소리를 삭제한 정지 화면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역사적 왜곡과 폭력의 비정당성을 폭로하고 흑인 퀴어라는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벨기에 작가 샹탈 애커만(Chantal Akerman)은 구소련 지역 러시아와 동유럽,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을 직접 여행하면서 촬영한 난민들을 찍은 다큐멘터리 작업을 통해 ‘비디오-에세이’로서의 작가의 의식을 보여 준다. 자신의 어머니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 남은 끔찍한 개인적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작가는 어쩌면 이러한 유랑과 처절한 난민들의 실상을 통해 예술적 제의를 시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의 영향을 받은 작가는 3부작인 〈동쪽에서〉 〈남쪽〉 〈저편으로부터〉를 통해, 타자로서의 국경 지역의 소외자들을 묘사한다.
다니엘 뷔렌(Daniel Buren)이 1층 전시장 입구 문턱에 설치한 장소특정적 작업 〈국경을 위한 철망〉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출입 금지 구역의 칸막이로 일종의 경계 구역을 상징화한 작업이다. 특히 최근 옛 시네마테크에서 전시장으로 개조된 팔레드도쿄의 지하 2개 층은 동굴 미로 같은 원래 장소의 특수성을 그대로 남긴 채로 완성됐는데, 뷔렌은 자신의 작품을 이 공간 곳곳에도 설치하여 마치 여전히 공사가 진행 중인 것 같은 인상을 더한다. 더욱이 뷔렌의 설치는 마치 작품 간의 경계 영역처럼 기능하는데, 모로코 여성작가 바툴 시미(Batoul S’Himi)의 작품과 겹쳐지는 공간에서는 이러한 느낌이 더욱 첨예화된다. 시미의 〈긴장 속의 세계〉는 구멍난 가스통과 압력 밥솥을 바닥에 무작위로 설치한 작업으로, 지뢰밭을 연상시키는 그 장면은 국경 부근의 극도의 긴장감과 공포를 환기시킨다. 폭발한 듯 뻥 뚫린 시커먼 구멍들은 가까이 가서 보면 사실 사라진 세계 지도의 모양으로, 부재를 통해 파괴의 무의미함을 일깨우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한국작가 임민욱의 〈액체적 연극〉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나라인 한국의 경계 영역 문제를 다룬다. 여기서 작가는 오히려 권력을 통해 이러한 영역을 강조함으로써 공포를 조장하는 무기로 활용하는 정치와 미디어의 힘을 재구성한다.   
레비-스트로스적 탐험을 시각화한 듯한 독일작가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의 〈파라다이스〉 시리즈는 작가가 여행한 브라질과 아시아의 밀림 지역을 야생의 상태 그대로 드러내고자 한 사진 작품이다. 대형 스케일의 사진 프레임을 꽉 채우는 포화 상태의 밀림 속 이미지는 나뭇잎 사이의 미시적 거리에서 생성되는 묘한 원근감을 통해 관객들을 프레임 문턱 안으로 초대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기 틸림(Guy Tillim)은 프랑스 식민지이자 관광지인 폴리네시아 자연을 표현한 사진 〈두 번째 자연〉에서 식민 문화 속 서구인의 환상에 의해 재구성된 장소로서의 폴리네시아의 자연을 다룬다.
엔위저 감독은 이번 트리엔날레를 토론과 비평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담론의 장소, 일종의 포럼(Forum)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전시 도록이 그토록 두꺼운 이유도 바로 지면을 통해 다양한 비평의 차이를 교환함으로써 전시를 재구성하고 역사화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이 전시에서 레비-스트로스와 동일시된 전시기획자는 역사와 현재라는 시간적 거리를 씨실과 날실처럼 엮음으로써, 새로운 시대정신에 맞는 새 토폴로지를 창출하는 선구적 역할을 하는 자로 볼 수 있다. 결국 전시는 글쓰기 즉 ‘에크리튀르’로서, 진행형으로서의 유동적 지도 그리기를 통한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끝없는 순례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엔위저가 그린 이번 ‘지도’를 그가 말한대로 문화인류학적 방법을 시도해 타자를 통한 주체 찾기를 보여 주는 일종의 ‘전시-에세이’로 볼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지도는 조각난 과거의 파편들로 짜 맞춰진 고통스러운 실재계의 외상적 트라우마를 다시 융기시킨 다음, 이를 다른 맥락 속으로 불러내고 반복하는 시각화를 통해 치유로서의 전시 행위와 새로운 주체의 가능성을 보여 준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인터뷰 때 그가 말한 큐레이토-그래피(curato-graphy)라는 용어에서 의미하는 큐레이터의 여정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전시란 매번 새로운 탐험의 지도를 그리는 과정이며 이는 민족지학자와 동일한 자, 즉 역사를 다시 쓰는 자의 과정을 의미한다고 말이다.

엘 아나추이의 패션디자인박물관 외벽 파사드 설치 전경 2012
Courtesy of the Artist & Jack Shainman Gallery, New York(Photo: Andre Morin)

왜, 단색화인가?

김환기 <산울림 19-Ⅱ-73 #307> 캔버스에 유채 264×213cm 1973(사진: 권현정)

왜, 단색화인가?

윤진섭·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 호남대 교수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한 <한국의 단색화(Dansaekhwa: Korean Monoch rome Painting)>전(3. 16~5. 13)이 드디어 두 달간에 걸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이 전시에 초빙 큐레이터 자격으로 참여한 나로선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 없다. 이 전시는 기획 자체로만 볼 때는 준비 기간이 약 1년여에 불과하지만, 그 시발(始發)은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의 특별전 <한일 현대미술의 단면>이 그것이다. 운 좋게도 이 역사적인 전시의 기획을 맡게 된 나는 일본의 모노하(物派)와 한국의 단색화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중반에 걸친 일본의 모노하와 이와 비슷한 시기에 태동한 한국의 단색화는, 사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큐레이터라면 누구나 한 번쯤 전시 기획을 해 보고 싶어 할 ‘꿈의 전시’이다. 그 이유는 우선 전시에 소요되는 어마어마한 비용뿐만 아니라, 행정적 지원이 없이 독립적으로 추진하기에는 풀기 어려운 난제들이 도처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광주비엔날레의 후광이 없었다면, 이우환을 비롯하여 스가 기시오(管木志雄), 세키네 노부오(關根伸夫)와 같은 일본 모노하의 거장들이 선뜻 초대에 응했겠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볼 때, 12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 뒤돌아 봐도 역시 나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광주시립미술관 1층 전관을 사용한 문제의 이 전시를 통해 한국의 단색화와 일본의 모노하는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대규모로.

왼쪽·허황 <가변의식 84-A> 캔버스에 유채 91×116.5cm 1984  
오른쪽·서승원 <동시성 20-503> 캔버스에 아크 릴릭 182×227.3cm 2000

단색화를 단색화라 부르다! ‘Dansaekhwa’

역사적이라 함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한일 양국 현대미술사의 중핵을 차지하는 이 두 사조는 죽지 않고 아직도 살아 꿈틀댄다는 점에서 일종의 유기체적 특성을 지닌다. 죽었는가 하면 다시 호출되어 그 의미가 되새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일본의 모노하는 ‘Monoha’라는 영어명으로 해외전이 열리고 외국의 미술전문지나 신문에도 그렇게 표기되고 있다. 그에 반해 단색화의 경우 우리 스스로 모노크롬이나 모노톤, 단색화, 단색조 회화 등등으로 통일감 없이 산만하게 불러 왔다.
2000년 4월 어느 날, <한일 현대미술의 단면>전의 큐레이터로 도록의 영문 교정을 보던 나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우리의 단색화를 ‘모노크롬’이니 ‘모노톤’ 회화라고 부를 것인가? 서양의 모노크롬 회화와는 뚜렷한 내용적 미감적 이념적 차이를 지니고 있는 우리 고유의 예술적 산물을 과연 그렇게 포장해도 되는 것인가? 순간, 나는 이제까지 생각해 온 어떤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단색화를 ‘Dansaekhwa’라는 고유명으로 표기하는 일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나중에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일단 실행에 옮기자. 그래서 나는 거사(?)를 하는 심정으로 도록 원고의 영문판에 나오는 수많은 ‘Korean Monochrome’이라는 번역어를 모조리 ‘Dansaekhwa’로 바꿔버리고 말았다. 이 교정원고가 이번 전시의 아카이브에 전시되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은 아마도 이를 두고 하는 말인 듯싶다. 그렇게 엄청난 일(?)을 저질러 놨으니,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는 일.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여러 지면을 통해 이 용어의 사용이 갖는 의미를 역설했고, 그동안 십수편에 이르는 크고 작은 글 속에서 단색화를 ‘Dansaekhwa’라는 고유명으로 표기했다. 물론 단 한 명의 동조자나 메아리조차 없는 나 혼자만의 고독한 외침에 불과하였지만 말이다.
어떤 주장이 파급력을 갖기 위해서는 현장이 필요하다. ‘단색화’의 경우 당연히 전시가 필요했다. 그러나 내게 그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미술비평과 전시기획을 병행하는 독립큐레이터인 나에게 미술관에서의 전시는 원천적으로 막혀 있었다. 그런데 “궁하면 통한다(窮卽通)”던가. 마침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품을 활용하여 외부 큐레이터에게 전시 기획을 맡기는 ‘초빙 큐레이터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내가 꿈에 그리던 <한국의 단색화>전을 기획하게 된 것은 순전히 이 제도 덕분이다. 나는 기획안을 가지고 미술관 관계자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배순훈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의 허락이 떨어졌다. 내가 본 배 관장은 대기업의 회장과 장관을 역임한 인사인 만큼 열린 시각과 합리적인 사고의 소유자였다. 나는 작년 5월 배 관장, 이지호 학예팀장, 그리고 많은 학예연구사와 미술관 관계자들 앞에서 전시 기획에 관한 발표를 했다. 그 후 개인적인 준비기간으로 서너 달을 보내고 초겨울에 접어들면서 전시 준비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국립현대미술관에는 단색화의 대표급 작가들의 질 높은 작품이 다량으로 소장돼 있었다.
이번 전시는 곽인식 권영우 김기린 김장섭 김환기 박서보 서승원 윤명로 윤형근 이동엽 이우환 정상화 정창섭 최명영 최병소 하종현 허황 등 17명에 이르는 1세대 작가의 1970년대 및 그 이후의 작품뿐만 아니라, 고산금 김춘수 김태호 김택상 남춘모 박기원 장승택 등 2세대 작가의 출품작이 소장 작품들로 채워졌다. 그 비중이 약 70%에 달한다. 더구나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은 그 질에 있어서나 작품 크기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김환기의 대형 작품이 없는 것, 김기린의 작품이 균열이 심한 것 등이었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이 문제는 개인소장자(김환기의 경우)의 도움과 리움 삼성미술관(김기린의 경우)의 협찬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기획의 초기 단계에서 이 전시의 타이틀은 ‘한국의 단색화’였다. 그러나 전시 기획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는 나중에 있을지도 모를 해외 전시를 염두에 두고 <한국의 단색파(Korean Dansaekpa: The Korean Monochrome Move ment)>로 명칭을 바꿀 것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한국의 단색파’로 이름을 고쳤다. 그 이유는 1세대 작가들 전원이 지금도 같은 경향의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 1980년대 이후 등장한 2세대 작가들이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 등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단색화는 죽은 과거의 스타일이 아니라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이 용어는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나는 전시의 타이틀로 이 명칭을 확정하고 계획을 밀고 나갔다. 연초에 보도된 신문기사에서 ‘한국의 단색파’라는 용어가 나오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이 타이틀이 다시 ‘한국의 단색화’로 바뀌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그렇게 타이틀이 확정되고 포스터 디자인 시안이 나왔을 무렵, 어느날 정형민 관장이 전화했다. 아무래도 이 전시가 ‘단색파’라는 타이틀로 가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러운 의견이었다. 서로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결국 나는 정 관장의 의견을 수용하기로 했다. 특히 입체작품을 출품한 김장섭과 최병소를 제외하고는 모든 출품작이 회화인 점도 ‘단색파’를 고집하기에는 스스로 생각해도 무리가 따랐다. 나는 미술사를 전공한 정 관장의 조언을 지금도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전시 기획이란 무수한 의견과 견해, 아이디어의 총합이 아닌가. 단지 향후, 1970년대 당시는 물론 그 이후에 나타난 입체적 경향과 설치를 포함한 보다 대규모의 전시가 가능하다면 다시 이 타이틀을 살려, 보다 정교한 대규모의 전시를 기획하고 싶다. 특히 ‘단색파’의 해외전은 단색파를 둘러싼 한국 현대미술의 저력을 유감 없이 보여 줄 것으로 확신한다.

박서보 <묘법 No. 41-78> 마포천에 유채, 연필 194×300cm 1978

단색화의 뿌리줄기를 찾아서

1970년대 중반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나는 ‘단색파’의 태동 과정을 지켜봐 온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어떻게 시작돼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그 이면을 좀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시기획자로서 나는 내가 모르는 부분은 작가들의 회고담이나 증언, 서적을 통해 보충해 나갔다. 1970년대 중반 당시는 인사동에 화랑이 10여 개에 불과할 정도였다. ‘미술시장’이란 용어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아래 위층 합해서 도합 8개의 전시실을 갖춘 덕수궁 석조전에 들어 있었다. 거기서 때만 되면 어김없이 <앙데팡당> <서울현대미술제> <에꼴 드 서울>과 같은 대규모 현대미술 전시가 열렸다. 얼어붙은 공안정국 치하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작품은 알아서 ‘자체검열’을 하며 전시를 꾸려 가던 살벌한 시절이었다. 붉은색은 북한 공산당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빨간색을 많이 쓴 추상 작품들이 <국전>에서 줄줄이 낙선하던, 실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다.
인사동 조계사 맞은편에는 일본식 목조건물인 미술회관이 있었는데, 그나마 이 정도가 거의 유일한 공공 전시관으로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전시의 갈증을 풀어 주고 있었다. 이 빈약한 미술회관이 동숭동 문예회관 옆(현재 아르코미술관)으로 옮겨 간 것은 1980년대 미술의 폭주를 예고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런 미술회관이 동숭동으로 옮겨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열린 <현실과 발언>전의 무산은 당시 공안통치하의 정부가 가한 미술 탄압의 첫 사례였다. 이른바 민중미술의 전조였던 것이다. 그 몇 년 뒤에 불어 닥친 것은 민중미술의 거센 바람이었다. 소위 <힘>전 사태로 대변되는, 한 치의 앞도 가늠이 안 되는 황사 바람 속에서 미술인들은 이리저리 내달으며 이념의 편 가르기를 시도했다.
한국의 단색화를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고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지금도 숱한 논쟁을 촉발시킬 수 있는 불씨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나는 전시에 관한 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단색화의 면모를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①일체의 구상성을 배제할 것 ②창작열과 실험성이 1970년대는 물론 현재까지도 지속적인 작가에 치중할 것 ③전기와 후기 단색화을 통해 시대의 변화는 물론 변모된 미의식과 감각, 재료의 차이를 보여 줄 것 ④단색화 작가들에게서 보이는 공통분모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할 것 ⑤서양의 모노크롬과 한국의 단색화 간의 미학적 이념적 차이에 주목할 것 등 내가 이 전시를 기획하면서 견지한 관점이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다. 우선 이 전시에 할당된 2개의 기획전시실이 모두 합해서 1,200평에 달하는 거대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단색화라고 하는, 약 40여 년에 걸쳐 지속된 미술상의 흐름을 담아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초대된 작가 수가 전후기 합쳐서 31명인데, 이 작가들만으로 그처럼 다양한 양상과 갈래를 보여 준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이는 특히 전시 작품의 효율적인 공간 배치와 작가당 출품작 수의 적절성을 놓고 볼 때 심각하게 고려될 사항이다. 무엇보다 전시 기획은 일종의 기술이 아닌가. 특히 이번의 경우처럼 회고적 성격이 강한 전시일 경우 자칫 잘못하면 그 후유증은 만만치 않을 터였다. 이른바 백화점식의 나열로 갈 것인가, 아니면 큐레이터의 독자적인 시각에서 뚜렷한 기준을 가지고 큐레이팅의 개념을 선명하게 보여 줄 것인가 하는 문제는 큐레이터라면 누구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초미의 문제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따라서 가지치기가 불가피했다. 떠오르는 많은 좋은 작가들이 있었지만, 이들을 모두 담아 내는 문제는 전시공학상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쉽지만 이 작가들에 대해서는 훗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전시에 못지않게 신경을 쓴 부분이 아카이브이다. 작가와 작품, 그리고 하나의 이즘이 태동하게 된 배경과 전개 과정을 증언해 주는 온갖 자료의 총화인 아카이브는 전시기획자가 전시와 서문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객관적인 참조물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중앙홀은 아카이브 공간으로는 최적의 환경과 조건을 갖추고 있다. 나는 이곳을 주목했다. 1전시실과 2전시실 사이에 위치한 이곳은 드넓은 1전시실을 둘러본 관객들이 피곤한 다리를 쉴 겸 쉬어 가면서 자료를 살펴보기에는 최적의 환경이다. 게다가 중앙홀 뒤편의 넓은 채광창에서 쏟아지는 밝은 햇빛은 전시실의 인공조명에 싫증이 난 관객들에게는 더없이 신선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곳에 약 3백여 점에 달하는 각종 도록과 신문 및 잡지 기사, 드로잉, 작가 내지는 미술관계자의 영상 인터뷰가 제시되었다. 벽에는 한국 단색화의 특징과 본질을 규명한 미술평론가 내지는 미술사가의 어록을 인쇄하고 주요 전시 연보도 제시했다.
김용주 국립현대미술관 디자이너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구현된 아카이브실의 가늘고 긴 문은 1전시장과 2전시장을 8자로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이른바 순환의 논리다. 두 개의 전시실을 둘러본 관객들이 다시 1전시장 혹은 2전시장을 둘러보려고 할 때 곧바로 전시실 정문을 통하지 않고 이 문을 통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관객들은 마치 대기를 순환하는 공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전시를 재음미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문의 뒤편, 그러니까 아카이브실의 전면에 내가 구상한 ‘단색화의 뿌리줄기 개념도’가 거대한 무광의 MDF 벽면에 인쇄되었다. 이 지도는 아마도 내 머릿속에서 오래전부터 자리잡아 왔을 터이지만, 정착 떠오른 것은 도록이 편집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갑자기 이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순간, 국립현대미술관의 학예연구실 테이블에 앉아 일을 보던 나는 종이를 펼쳐 놓고 색연필로 이 뿌리줄기 개념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단어가 즉각적으로 떠올랐다. 나는 단색화을 비롯하여 몸, 모노크롬, 선(線), 우주, 모노톤, 바람, 비물질화, 오방색, 범자연주의, 촉각, 음양오행, 임시임장성, 현상학, 수행성, 무위자연 등등 약 49개에 달하는, 한국의 단색화나 서양의 미니멀리즘 내지는 모노크롬 페인팅을 기술할 때 흔히 만나게 되는 빈도 높은 용어들을 선택, 무작위적으로 배열한 후 연결시켰다. 그 샘플이 무려 6종인데 그중에서 잘 된 것을 골라 아카이브 벽에 인쇄한 것이 바로 ‘단색화의 뿌리줄기 개념도’인 것이다.
이 지도는 서양의 미니멀리즘 혹은 미니멀아트가 르네상스 이후에 전개된 선형적 구조의 끝물인 점에 반해, 한국의 단색화는 우주를 순환으로 본 주역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것은 서양의 미니멀리즘처럼 지배 논리의 산물이 아니라 상생의 구조이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성좌처럼 끊임없이 유동하며 교호(交互)와 순환, 상생의 미학을 개념화한 것이다. 데카르트의 이분법적 구조가 아닌, 다차원적, 다시점적, 우주적 내지는 대지적 세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서구의 원근법이나 합리적 공간에 지배된 과거의 틀을 벗어나 ‘잃어버린 풍경’을 찾기 위한 독자적인 모색의 발로이기도 하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 ‘단색화의 뿌리줄기 개념도’가 장차 우리가 세계의 시민이 되기 위해 나아가는 데 필요한 한 장의 지도가 되었으면 한다.

장승택 <무제> 합성수지, 안료 60×43cm(×3) 1994

한국을 넘어 세계 무대로

전시에 맞춰 개최된 국제학술세미나에 초청 연사로 온 리차드 바인(《아트인아메리카》 수석 편집장)의 조언처럼, 이제 우리는 서울이나 부산과 같은 좁은 지역에 머물며 서로 아옹다옹할 것이 아니라, 한국미술에 대해 이해도 부족하고 적대적인 생각을 지닌 반대파들이 득실거리는 세계무대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끊임없는 설득과 토론, 논쟁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 우리의 언어를 세계의 보편적 언어로 만들어 서로 소통하고 그 열매를 함께 나누는 보다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우리 시대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단색화를 ‘Dansaekhwa’라고 호칭하는 일이 시대착오적이거나 국수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그것은 시대착오적이지도 국수주의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문화는 그런 것이다. “언어가 의식을 지배한다”는, 오래 전에 내가 쓴 명제를 상기한다면 단색화를 서양식 개념의 ‘monochrome’이 아닌 ‘Dansaekhwa’로 표기하는 일은 오히려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있다. 이 전시에서 봤듯이 오랜 기간을 거쳐 숙성된 우리의 미적 산물들을 단지 서구의 화풍에서 촉발되었다는 이유로 모노크롬의 범주 속에 가둔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 우리의 것을 가지고 서구의 우산으로 들어가는 행위이다.
얼마 전에 샘표식품이 이제까지 해 온 간장의 영어 표기를 일본식 ‘soy sour ce’가 아닌 ‘Ganjang’으로 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신문을 보고 알았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서양 사람과 영어 회화를 하면서 부지불식간에 간장을 ‘소이 소스’라고 말한다. 과연 그것이 합당한 일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알다시피 한국의 전통 간장은 왜간장과 역사와 제조법은 물론, 맛 향기 영양 쓰임이 서로 다르다. 그것이 문화의 차이이며, 바로 그 차이 때문에 차이들이 모여 이루는 세계는 아름다운 것이다.
이번 전시의 공간을 구상하면서 나는 한국의 반가(班家) 전통 기와집을 생각했다. 문을 열어 놓으면 하나로 관통하는 탁 트인 공간 구조는 한국 전통 건축의 백미이다. 그것은 서양의 폐쇄적인 구조가 아닌, 개방적이며 순환적인 구조적 특징을 보여 준다. 이른바 ‘차경(借景)의 미’인 것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타나는 중정(中庭)과 다시 만나는 크고 작은 문들의 연속, 그것을 어떻게 단색화 작품들과 조화를 시킬 것인가 하는 점을 전시 준비 기간 동안 내내 고심했다. 다행히 국립현대미술관 디자인팀은 나의 이 컨셉트를 잘 구현해 주었다. 1전시실의 두 번째 방에 걸린 윤형근의 작품을 보고 나서 일(1)자로 탁 트인 공간 저 멀리 뻥 뚫린 사각 문 사이로 보이는 윤형근의 또 다른 작품은 바로 이 ‘차경’의 공간이 보여 주는 미의 진수이다.
이번 전시를 둘러본 많은 미술 전문가들이 들려 준 의견은 대략 전기 단색파 작가들에 비해 후기 단색파 작가들의 작품이 예쁘게 길들여져 있다는 쪽으로 집약된다. 이우환 선생은 강연에서 전후기 단색파 작가들의 작품에서 보이는 부정의 정신의 결여를 꼬집었다. 1970년대 단색파 운동의 초기에 충만했던, 침묵을 통한 저항과 부정의 정신이 더 이상 엿보이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나 역시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시간이 지나고 정치적 상황이 바뀌면서 작품의 내용도 변질돼 갔던 것이다. 특히 1980년대의 정치적 격변의 시기에 단색파 작가들은 지하로 잠적해 들어가 개인적인 양식화의 시기를 겪었다. 1980년대 이후에 단색화를 시작한 작가들은 플랙시글라스를 비롯하여 레진, 우레탄 자동차 도료 등 다양한 산업재료를 작품에 활용했다. 전기 단색화 작가들 중 일부는 공예품처럼 매끄럽게 다듬어진 작품들을 양산했다. 한국의 단색화가 그 자체 내에 문제를 지니고 있다면 바로 이 같은 부정의 정신의 결여일 것이다.
끝으로 이번 <한국의 단색화>전의 도록에 쓴 나의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맺을까 한다.
“<한국의 단색화>란 타이틀을 내건 이번 전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견해가 나올 수 있다. 환영한다. 나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불 꺼진 모더니즘의 잿더미를 뒤져 하나의 불씨라도 건지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가치 기준이 실종돼 지향점이 없는 이 자유방임의 시대에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이며, 또한 예술의 참 기능이 무엇인지를 묻고 싶다. 이 전시는 한국의 단색화 작가들이 40년에 걸쳐 이룩한 ‘마음의 풍경’이다. 그것은 발견된 것이 아니라, ‘발견한’ 것이다.”

김기린 <안과 밖> 캔버스에 유채 250×175cm 1990~94
김기린 <안과 밖> 캔버스에 유채 200×130cm 1980년대(사진: 권현정)

<한국의 단색화> 전시 전경. 박기원 <넓이> 한지에 유채 214×150cm 2008(왼쪽) 이강소 <허(虛)-09260> 캔버스에 아크릴릭 333.3×872.8cm 2009(오른쪽)(사진: 권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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