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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2.05

Contents

01    표지  홍승혜 가변크기 2004

34    영문초록

37    에디토리얼  김복기

38    프리즘  
     ‘독립 혹은 프리랜서’ 큐레이터의 살아가기  전승보
     ‘순수미술’은 대학 구조조정의 희생양?  임승환

42    IMAGE&ISSUE [2]  붉은 한반도  이영준

68    오후의 아틀리에  얼굴, 또 하나의 행복  황호섭

72    포커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展|배준성展  전영백
    서도호展  강수미
    신수진展|박경래展  정현
    페스티벌 봄展  서현석

88    특집 Performance into Museum
    [1] Exhibition_런던 헤이워드갤러리   이수연
    [2] Artist_자비에 르 루아   문지윤
    [3] Exhibition_파리 퐁피두센터   김홍기
    [4] Artist_케런 시터   김수영

114    WHO WE MET  줄리안 스탈라브라스  김수영

117    작가연구  홍승혜
    파편으로 축조한 ‘광장사각’  임근준 AKA 이정우

134    아트마켓
    [1] 아트투바이_다시 찾아온 중동의 봄  김새미
    [2] 도쿄아트페어_새로운 도전, 지역과 세계를 끌어안다  김수영

145    BRAND NEW!  우손갤러리  김보란

146    크리티컬 포인트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도시점거 운동  마사 로즐러

152    암흑물질
    사운드 아트, 업데이트 매뉴얼을 듣다  함영준

157    작고작가 재조명 신성희
    회화의 해체, 회화의 부활  김복기

168    전시리뷰
    SeMA 청년 2012|한국의 그림, 매너에 관하여
    이익태|디자인, 컬렉션, 플리마켓|김소라, 북조선 펑크 록커 리성웅
    김미루|롯본기 아트 나이트 2012|김현정
    헤나-리카 할로넨|홍순환|AR페스티벌

180    전시 프리뷰
    유영국|김성수|박영근|사운드 스케이프|이샛별|여다함, 여혜진
    마이클린, 아트앤프레스|아르세날레 2012, 베를린비엔날레

188    동방의 요괴들  2012 Best of Best
    얌전한 세대의 진지한 반항  고원석

194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2012 Best of Best전 얌전한 세대의 진지한 반항

전시장 전경. 신제헌 <불편한 기념비(후세인)> 드럼통, 카드보드 80×75×170cm 2011(앞)

2012 Best of Best전 얌전한 세대의 진지한 반항

글 | 고원석·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

강민숙 <Someone We Know> 의자, 스티로폼, 모터 가변설치 2011

대략 10여 년 전, ‘동방의 요괴들’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New Face’를 기억한다. 당시 이 프로젝트는 미술계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었던 미술저널의 영역에서 확실히 눈에 띄던 시도였다. 새롭게 대안공간들이 출범하고 젊은 작가들이 미술계의 의미있는 흐름으로 부각되던 그 때. 화려하게 등장했던 젊은 작가들에게 쏟아지던 관심을 목도하며, 당사자들이나 그들과 비슷한 연배의 필자 모두 과연 이 추세가 과거 미술계에서 명멸했던 많은 현상들의 하나로 그칠 것인지, 아니면 긴 호흡을 갖는 물결로 흐르게 될 것인지 궁금해 했던 기억이 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그것이 후자에 해당되는 의미있는 흐름으로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New Face’로 선정했던 작가들은 대부분 오늘날 한국 미술계의 묵직한 중견작가들이 되어 활발한 활동을 보여 주고 있다. 물론 당시 선정작가의 기준이 지금 ‘동방의 요괴들’보다는 더 검증된 작가를 대상으로 했다는 요소를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래를 확신할 수 없었던 그 신진작가들이 지난 10여 년 간 활발한 활동을 거듭하며 오늘날 한국 미술계의 새로운 동력으로 존재하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당시 젊은 작가들에게서 감지되었던 참신함의 양상과 정도를 기억해 보건대, 2012년 ‘동방의 요괴들’이 보여 준 ‘새로움의 충격’은 그 때 만큼의 무게를 갖진 못한 것 같다. 10여 년 전의 작가들은 당시 성공을 거두었던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작가들의 작업과는 다른 입장에서 자신의 의식이나 주변의 일상에 대한 소소한 관심을 표현하거나 오히려 더 적극적인 사회참여적 성격으로 분화하면서 다양함과 차별성을 보여 줬다. 신중하면서도 참신했던 그들의 화법을 떠올리자면, 지금 ‘동방의 요괴들’에게서 엿보이는 새로움의 밀도는 확실히 약해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동방의 요괴들’에게서 느껴지는 보다 신중한, 혹은 소심한 태도를 일방적인 개념의 틀 속에 용해시켜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러한 경향을 하나의 현상으로 바라봐야 할 필요를 느낀다. 최근 우연히 몇 개의 공모전 심사에 참여하면서 이것이 특수한 집단의 특정한 성향이 아니라 요즈음 젊은 작가들의 보편적인 속성이라는 점, 그리고 그 다수의 작품들 중에서도 ‘동방의 요괴들’이 보여 주는 작품들이 수준급이었음을 파악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여하튼 그러한 입장이 정리되자 21명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살펴보는 것이 생각보다 흥미롭게 느껴진다. 개개의 작품을 관조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다섯 가지의 유형적 범주 항목을 발견했던 것이다.

전시 오프닝 단체 사진

주제, 매체, 공간의 탐구

우선 상반된 요소간의 대립을 드러낸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백호현의 <촙>은 새로운 세대의 변화된 감수성을 가장 흥미롭게 보여 준 작품이다. 요즈음의 신진작가들이 잘 다루지 않는 매체 중 하나인 싱글채널 비디오로 제작한 그의 작업은 자신이 품어 온 판타지, 혹은 어떤 내재된 욕망 같은 것을 재제로 한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유머의 코드를 가진 작품들이 줄어든 분위기에서 철저하게 유머러스한 감성적 프레임을 고수한 점이 눈에 띄었다. 내밀한 개인의 취향이 솔직하게 드러난 그의 작품이 갖는 가장 큰 힘을 나는 의도와 표현 사이의 투명성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유쾌한 영상 속에서는 역설적으로 모종의 두려움이나 모호한 패배의식과 같은 요소들이 불현 듯 감지되곤 한다. 때문에 그 앞에서 마냥 유쾌해 할 수 만은 없을 것 같다.
주지오의 작업에서도 언뜻 비슷한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드러난다. 그러나 익명의 인간 군상을 상징하는 동일한 얼굴들이 다양한 동물의 몸을 빌려 등장하는 그의 그림을 관찰해 보면 처음에 느껴졌던 유머의 분위기가 무겁게 제어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대립되는 두 요소간의 균형 잡힌 공존이 느껴진다. 신제헌의 작업에서도 상반된 요소간의 팽팽한 대립 혹은 공존이 등장한다. 카드보드지라는 허약한 재료의 느슨한 결합으로 표현된 대상은 카다피나 조커 등 하나같이 과잉된 존재감을 가졌던 인물이다. 생전의 파급력에 비해 지극히 조악하게 존치되어 있는 그들의 흉상에서 삶의 덧없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매체나 재료의 속성에 충실하게 반응하며 그 안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나가는 작업들도 다수 있었다. 강승지의 회화는 식물성에 내재된 동물적 에너지를 표현하고 있다. 표현주의적 색채가 짙게 배어 있는 그의 붓 터치는 간결하면서도 개성있다. 유목연의 사진은 쏟아지는 햇빛과도 같이 시야에 작용하는 순간적인 상황들이 초래하는 생경한 인식의 순간들을 잡아 내고 있다. 그의 카메라는 풍경을 재현하기보다 익숙한 것들이 새롭게 보이는 그 모멘텀의 미학을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김희영은 일상의 사물을 특별하게 표현하는 도자의 어법으로 일회용 용기 같은 일상적인 사물을 재현해 내는 방법으로 자신의 개념을 보여 준다. 트로피의 전형적인 형태를 차용한 것은 그 일반성을 다시 배타성으로 귀결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조형적 매력을 발산한다. 김경진의 작업 또한 조각의 전형성에 대한 전환을 주제로 자신의 사고를 보여 준다. 가장 가벼운 물체인 종이로 접은 형태를 무거운 금속재료로 재현하는 그의 작업은 면에 대한 공간적 인식과 반사면을 이용한 이미지의 더블플레이가 인상적이다.
공간을 키워드로 한 작업들 또한 한 부류로 구분할 수 있겠다. 가장 직접적으로 공간 자체의 문제를 탐험해 들어간 작가는 박여주다. 그는 ‘공간 회화’라는 특별한 발상을 통해 공간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표현하는데, 세련된 조형 감각이 그러한 시도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박여주가 물리적인 공간을 심리적인 차원으로 끌고 간다면 심은아는 기억의 복잡한 경로 속에 단편적으로 등장하는 사건들을 캔버스 위에 새로운 공간으로 배열해 내고 있다. 그의 그림이 가진 자기치유의 동인은 풍부한 색감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박자용은 내부로 들어가서 외부와 조우하게 되는 구조를 통해 공간의 전형성이 역전된 장소의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디지털 사진으로 구성한다. 그의 사진은 디지털의 사이버틱한 감성과 오래된 공간의 바랜 분위기가 혼재된 화면 특유의 독특한 형식미가 느껴진다. 반면 이일석의 작품은 사진의 고전적인 조형 어법에 충실하게 부합하는 시각으로 공간의 생경한 분위기를 포착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나유림의 회화 작업은 익숙한 공간 위에 비현실적인 돌기 형상을 주입시킴으로써 일상적 공간의 느낌을 낯설고 생경한 것으로 역전시키며 보는 이의 공감각적 반응을 유도한다. 반면 박보리의 회화는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의 표면을 극도로 간명한 상태로 재현함으로써 기하학적 원형의 이미지를 모색하고 있다.

스페이스꿀에서 열린 ‘2012동방의 요괴들’ 발대식 장면. art in culture는 매해 ‘동방의 요괴들’의 한 해 활동 시작을 알리는 발대식을 기획,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공연과 경품 추첨, 베스트드레서 시상식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감정, 사회에 대한 고민

모호한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는 작업들도 한 흐름으로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강민숙은 명확하고 독창적인 표현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키며 내면의 정리되지 않은 심정을 모호한 형식으로 풀어 낸다. 불특정한 시점에 등장하는 생경한 순간을 놓치지 않는 그의 작업은 작은 모터 하나로 묵직하고 흰 덩어리를 가볍게 움직이는 감각적 재능을 보여 주기도 한다.
전시장 내에 독립된 방을 꾸민 송민정의 작품은 자신의 내밀한 혹은 불확실한 기억이나 정리되지 않은 두려움과 같은 감정들을 표현한다. 불확실함 앞에 스스로를 위치시키려는 노력이, 확실성으로 역전하기보다 불확실성 자체에 대한 수용으로 향하고 있음을 그의 공간이 말해 준다. 김홍의 퍼포먼스 기록 영상 작업은 작가로서의 존재성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의 고백이 전조를 이루고 있다. 흔들리는 인식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면서 작가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던지지만 이것은 역설적으로 작가가 되고 싶다는 더 강한 욕망을 감지하게 만든다.
신승주의 설치 작품 또한 일상의 익숙한 질서를 벗어난 사물들로부터 발생하는 모호한 분위기를 재현하고 있다. 건조하게 존재하는 기능적 사물들 위로 작가의 행위가 중첩되면서 발생하는 새로운 이야기들에 주목하고 있는 듯하다. 천영수의 회화는 픽션의 재현이 증가하고 오히려 픽션보다 더 드라마틱한 현 시대의 흔들리는 현실 감각을 발언하는 듯하다. 그의 회화는 음울한 분위기에 상이한 차원이 묘하게 중첩되어 있는데 강한 개성과 함께 분명한 회화적 매력을 지니고 있다. 작품에서 언뜻 사회참여적 요소가 엿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발언의 명료한 논점을 갖춘 것이라기보다 분명하게 발언하지 못하는 자신의 혼란스러운 관점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현상들에 대한 작가들의 발언을 보여 주는 몇몇 작품들을 언급하고 싶다. 이학민의 회화는 범람하는 시각문화의 시대에 파편화된 기억으로 존재하는 이미지들을 비논리적으로 배열하고 있다. 그의 작품 속 장면은 이미지를 기억하는 방법으로서의 매체가 일상화된 현실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논리와는 무관한 임의적 이미지 배열을 통해 수많은 요소들이 비정형적으로 조우하는 동시대의 매체 환경을 묘사하고 있다.
강혁의 작품 또한 문명과 건설 과잉의 시대 한편에 처참한 폐허처럼 등장하는 장소에 대한 사색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 태도는 분명한 입장을 취하기보다 배면을 배회하며 관조하는 방관자로서의 시선으로 표현되고 있다. 허물어진 시멘트 덩어리들로 가득한 장소 위로 군데군데 눈에 띄는 색면들이나 우산을 깊이 눌러써 얼굴이 보이지 않는 인물은 그러한 작가의 사고를 표현하는 요소들이다. 한편 노종남의 회화는 자본주의가 심화된 사회에 만연하는 키덜트의 상황을 다양하게 묘사한다. 그의 회화에 등장하는 가면을 쓴 주인공들은 폐쇄와 강박을 안고 살아가는 익명의 현대인이 가진 보편적인 감수성들을 보여 주는 것 같다.
2012년 ‘동방의 요괴들’은 젊음의 포효보다 고요하고 침착한 호흡을 선택한 것 같다. 형식적인 안정감의 틀을 벗어나지 않은 이들의 작품에서 가슴을 때리는 충격을 느낄 순 없었으나, 전체적으로 무난하고 세련된 조형 감각을 간파할 수 있다. 몸을 던지는 과감함은 없었을지라도 작업을 하는 미래에 대한 진지한 집착이 엿보인다. 과감함의 부족을 일방적으로 부정적인 덕목으로만 단정지을 수는 없는 것 같다. 그것은 오히려 시행착오를 줄이며 안정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장점으로 귀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이 지향하는 지점이 심원하고 위대한 예술의 숭고미라면 말이다.

본 전시는 SK플래닛에서 개발한 미술작품 감상 서비스 어플리케이션 ‘자몽갤러리’의 후원을 받았다. 관람객들은 전시장 작품 옆에 붙어 있는 NFC(Near Field Communication)와 QR코드를 통해서 스마트폰으로 해당 작품의 작가 정보, 작품 설명, 이미지를 감상할 수 있다. 이 서비스는 ‘스마트폰 속의 도슨트’처럼 친숙하고 편리한 작품 감상을 돕고자 개발됐다.

다시 찾아온 중동의 봄

주메이라 페트론 프리뷰에 붐빈 관람객

다시 찾아온 중동의 봄

글│김새미·art in ASIA 기자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마디나 주메이라에서 아트두바이가 개최됐다. 2만 2천여 명의 관람객, 75개 미술관 관계자가 방문한 올해 페어는 작년에 되찾은 아트두바이의 활기찬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아트두바이는 메나사(MENASA: 중동 북아프리카 남아시아)의 현대미술에 집중하며 아트바젤이나 아모리쇼보다도 더욱 글로벌한 그들만의 특성을 만들어 냈다. 《Art+Auction》은 ‘미술계의 다보스 포럼’이라고 평했다. 아트두바이가 성숙기에 접어든 것은 아랍에미리트의 미술 인프라가 확장된 데 힘입은 바 크다.

왼쪽_아트두바이의 레지던스 프로그램(AiR) 참여 작가들. Courtesy of Deniz Uster 아트두바이를 찾은 관람객| 오른쪽_아르야 판드잘루 & 사라 누이테만스 <Birdprayers> 알루미늄에 사진 60×80cm 2008~2011 Courtesy of Arya Pandjalu, Sara Nuytemans and Biasa Artpace

6년의 우여곡절 뒤에 찾아온 안정

2007년 걸프아트페어로 출발한 이래 지난 6년 동안 아트두바이에는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2008년 아트두바이로 명칭을 변경하고 1백만 달러의 상금을 내건 제1회 아브라즈 캐피탈 미술상과 협력을 체결하면서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일부 거물 컬렉터들이 1,500만 달러 이상의 작품을 구입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행사는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그러나 그해 9월 리만브라더스의 파산에서 시작된 세계경제위기로 이듬해의 3회 페어는 초조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경제위기의 여파로 두바이 작가들의 작품 가격이 10분의 1까지 떨어졌다는 보도까지 났다. 주최측은 부스 가격을 낮추고 페어의 규모도 소폭 줄였다. 다행히 시세를 감안한 참여 갤러리들이 예상 매출액을 하향 조정하면서 L&M갤러리가 샘 프란시스의 작품을 1,200만 달러에 판매하는 등 결과와 평가는 예상보다 좋았다.
한 고비 넘겼나 싶었더니 2009년 11월에는 두바이 국영 개발회사 두바이월드가 채무상환유예(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아부다비의 재정 원조를 받았다. 2010년 4회 페어에 그 여파가 얼마나 미칠지 전세계가 주목했다. 당시 디렉터였던 존 마틴은 부스 가격을 20퍼센트 낮춰 72개 갤러리를 참여시키며 자신감을 보였다. 관람객은 전년 대비 30퍼센트 증가했으나, 실속을 챙기지 못한 느낌이었다. 혼치오브베니슨, 리슨갤러리, L&M갤러리 등 대형 갤러리들이 모험을 거부하겠다며 재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약 3개월 뒤 페어 디렉터가 안소니아 카버로 교체됐다. 카버는 뉴욕에서 발행되는 중동미술 잡지 《비둔(Bidoun)》 편집장이자 ‘비둔 프로젝트’ 디렉터로 두바이에서 8년 간 일했던 중동미술 전문가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중동 지역의 젊은 작가는 물론, 두바이의 미술 기관과 갤러리에 대한 정보력이 이전 디렉터보다 뛰어날 수밖에 없다. 카버의 지휘 아래 개최된 2011년 5회 페어는 훨씬 성공적이었다. 2010년 5월 그리스가 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며 유로존 재정위기가 시작되자, 네덜란드 최대의 미술 및 고미술 아트페어 마스트리트 테하프(TEFAF)로 발길을 돌렸던 세계 주요 갤러리들이 두바이를 다시 찾은 것이다. 그 결과 34개국 82개 갤러리가 참여했고 2만여명이 다녀갔으며 전년도 참여 갤러리의 재참여 비율이 80퍼센트를 넘었다. 두바이의 트래픽갤러리는 1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베이루트의 에이얌갤러리는 사프완 데하울(Safwan Dahoul)의 작품을 30만 달러에 팔았다. 갤러리스트들은 “작년엔 손가락을 빙빙 돌리고 있어야 할 정도로 한산했는데, 올해는 주요 바이어들이 대거 방문했다. 아트두바이가 죽다 살아났다”고 평했다.

왼쪽_세투 레기 <Pseudophobia 1> 혼합재료 300×500×250cm 2012 Courtesy of Setu Legi| 오른쪽_갤러리페로탱 부스 전경 (Photo: Clint McLean/Art Dubai)

활기 되찾은 2012년

아브라즈 캐피탈과의 협업과 카르티에의 후원으로 화려함을 더한 올해 페어에는 32개국 74개 갤러리가 참여하여 5백여 명 작가의 작품을 선보였다. 주요 갤러리로는 페이스갤러리(뉴욕 런던 베이징), 갤러리아콘티누아(산지미니아노 베이징 물랑) 등의 국제적 갤러리와 미국의 매리안보스키(뉴욕), 프레이노리스(샌프란시스코), 영국의 필라코리아스(런던), 그린카다몸(런던), 에이컨갤러리(런던), 프랑스의 갤러리페로탱(파리), 독일의 아른트(베를린), 호주의 서튼갤러리(멜버른), 중국의 플랫폼차이나(베이징), 코노세컨템포러리(홍콩), 아랍에미리트의 더써드라인(두바이) 등을 꼽을 수 있다. 한국 갤러리로는 유일하게 아트사이드가 참가했다. 갤러리샹탈 크루젤(파리)이 양혜규의 작품을, 갤러리카샤힐데브란트(취리히)가 황란의 작품을 전시했다. 아트사이드 이혜미 디렉터는 “작년에 윤종석의 작품을 두바이 왕자가 구입하는 등 반응이 좋아 경비가 부담스러웠지만 올해도 참가했다. 장재록의 작품은 처음으로 선보이는데, 현지 컬렉터들의 관심이 많다. 유럽이나 미국의 페어와는 확실히 다른 취향이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뭔가 다른’ 중동 지역 컬렉터의 취향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아트두바이의 어시스턴트 디렉터 자인 마수드는 “전형적인 ‘중동 컬렉터’가 없기 때문에 중동 미술시장이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고 본다. 중동에는 크게 두 종류의 컬렉터가 있다. 즉각적인 느낌을 중요시하여 아랍 문화와 친근한 느낌의 작품을 선호하는 중장년층과 개념적인 작품에 큰 관심을 보이는 젊은 세대로 나뉜다. 22개국이 모여 있는 중동 지역 인구의 절반이 30대 이하다. 아트두바이의 주고객은 《프리즈》와 《아트포럼》을 읽으며 국제적 감각을 키워 나가는 젊은 컬렉터다. 이들의 취향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고 설명한다. 마수드의 말처럼 20~30대 컬렉터의 취향이 유동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페어에 참여한 다수의 갤러리들은 아랍권 문화의 특성을 고려하여 출품작을 선정했다. 모스크를 연상시키는 건축물, 아라비안 카페트, 차도르를 쓴 여성, 아랍 문자, 물담배 등의 이미지를 활용한 작품이 많았다. 출품작의 가격대는 대체로 2천~5만 달러에 집중되어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갤러리아트르(Jeddah’s Athr Gallery)는 프리뷰가 시작된 지 30분만에 출품작을 모두 팔았고, 더써드라인(두바이)도 프리뷰 시기에 이란 작가 랄레 코라미안과 이라크 태생 작가 헤이브 카하라만의 모든 작품을 팔았으며, 더러닝홀스(베이루트)는 레바논 작가 알프레드 타라지의 작품 14개를 솔드아웃시켰다. 필라코리아스(런던)는 이란 태생 작가 탈라 마다니의 1~5만 달러 대 작품 10개를 팔았다. 그로스베너 바데라(런던 뉴델리)가 선보인 파키스탄 회화작가 시드 사데퀘인의 1958년작 <출입구의 커플>은 20만 달러에, 카펜터스 워크숍(런던)이 출품한 랜덤인터내셔널의 설치작품 <떼(Swarm)>는 21만 달러에 팔렸다. 페이스갤러리에서 팔린 장후완의 <호랑이>는 판매가가 공개되지 않았으나 비슷한 작품이 25만 달러 선에서 거래된다. 나탈리오바디아(파리)는 프랑스의 조각가 조아나 바스콘셀로스의 2011년작 <몽마르트>를 9만 달러에, 갤러리페로탱(파리)은 프랑스의 듀오 콜쿠즈의 작품을 3만 7천 달러에 팔았다. 로즈이사프로젝트(런던)가 선보인 호주작가 호세인 발라매네쉬의 철조각 작품은 한 스위스 컬렉터가 1만 달러에 구입했다고 한다. 뉴욕의 알렉산더그레이어소시에이츠 대표 알렉산더 그레이는 “작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건 아니지만, 두바이 미술시장의 성장하는 에너지와 활력을 체감할 수 있는 정도”라고 이번 페어를 평가했다.

주메이라 페트론 프리뷰 중 진행된 퍼포먼스 작품

미술시장도 ‘중동의 봄’이?

아트두바이가 자랑하는 부대행사는 첫째가 글로벌 아트포럼(GAF), 둘째가 아브라즈 캐피탈 미술상이다. 올해 GAF는 두바이 문화예술국 및 카타르의 아랍근대미술관(Mathaf)과 공동으로 기획하여 아트페어가 열리기 전 도하에서 시작해 6일간 진행됐다. 주제는 ‘미디어의 수단’. ‘매체’와 ‘언론’의 두 가지 뜻을 지닌 ‘미디어’를 한편으로는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의미에서 탐구한다는 뜻이다. 디렉터 안소니아 카버는 ‘아랍의 봄’이 이번 페어에 미친 영향은 없느냐는 기자단의 질문에 “반가운 일이지만, 예술과 정치는 분리된 영역이라 생각한다”고 답했지만, 이에 대한 참가자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하지만 카버의 태도에서 드러나듯이 아트두바이는 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를 꺼려했다. 두바이의 갤러리아트스페이스는 심지어 주최측으로부터 반정부시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을 치우라는 요구까지 들어야 했다. 중동에서 반정부시위가 가장 뜨거웠던 때가 2011년 1~2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GAF가 주제를 ‘예술과 패션’, ‘작가와 관객’으로 잡았던 것을 보면 이들의 입장이 더욱 분명해진다. 그러나 올해 GAF의 주제는 작년보다는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간 느낌이다. 포럼의 강연자들은 ‘아랍의 봄’에 대한 그들의 작가  큐레이터 기자 연구자로서의 입장을 직간접적으로 표명했다. 특히 이 민주화운동에 SNS가 큰 역할을 한 만큼,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등의 소셜미디어로 확장되고 있는 보도 수단, 매스미디어에서 이미지를 다루는 선택적 방식 등이 논의됐다.
올해 아브라즈 캐피탈 예술상 수상자는 팔레스타인의 타이시르 밧니지, 파키스탄의 리샴 셰드, 이집트의 와엘 샤키, 레바논의 아티스트 듀오 조아나 하지토마스 & 칼릴 조레주와 라이드 야신 등 총 5명(팀)이다. 이들의 작품은 네덜란드 큐레이터 냇 뮐러가 기획한 <스펙트럼의/유령의 흔적(Spectral Imprints)>전을 통해 페어장 입구의 특별 전시장에서 공개됐다. 전시 제목은 과거에 대해 서술하면서 현재의 실체적인 어떤 것을 재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을 다섯 작가가 공유한다는 의미다. 거대한 중국 도자기 표면에 레바논 시민혁명의 장면을 묘사한 라이드 야신의 작품, 메나사 지역을 둘러싼 7개의 바다에서 일어난 분쟁의 역사를 표현한 리샴 셰드의 퀼트 작품, 매일같이 받는 스팸 메일에 대해 발언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현대 문명의 특성을 포착한 조아나 하지토마스 & 칼릴 조레주의 비디오작품이 흥미로웠다.     
이 외에도 교육 프로그램, 레지던스 프로그램, 의뢰를 통해 제작된 대규모 설치작품들을 일컫는 아트두바이 프로젝트, 특별전 <마커>, 아랍에미리트 작가들이 만든 상품을 판매하는 DXB 스토어 등의 부대행사가 있었다. 그러나 야외 공간과 주차장에 다양한 작품을 설치하고 작가들이 작품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도록 한 2008년의 프로젝트가 웰메이드 특별전의 느낌을 주었던 것과는 달리, 올해의 아트두바이 프로젝트는 리조트 내 야외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해 작품들이 서로 무관하게 놓여 있었다. 올해 광주비엔날레의 공동예술감독이기도 한 인도네시아의 큐레이터 알리아 스와스티카가 기획한 <마커>는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의 아트씬을 보여 주겠다고 했지만, 페어에 참가한 5개의 인도네시아 갤러리 부스들을 뭉뚱그려 큐레이팅된 섹션이라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DXB 스토어 또한 뮤지엄 아트숍과 차별화된 어떤 것을 보여 주지 못했다.
가장 돋보였던 점은 아트두바이가 ‘로컬’한 작품을 소개하는 소규모의 ‘시카아트페어’, 올해 처음으로 열린 디자인페어 ‘디자인데이즈두바이’와 협력함으로써 비슷한 시기에 열린 위성 아트페어들과 함께 시너지효과를 낸 것이다. 아랍에미리트에서 활동하는 작가를 소개하자는 취지에서 두바이 문화예술국의 주최로 열린 시카아트페어는 문화유적지 바스타키야에서 중동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이방인의 눈을 사로잡았다. 828m 높이의 세계 최고 빌딩 버즈 칼리파(구 버즈 두바이)가 눈앞에 보이는 곳에 마련된 디자인데이즈두바이 행사장에는 각국의 디자인 갤러리 22개가 모였다. 한국의 스페이스크로프트가 이정섭과 이재효의 작품을, 갤러리서미가 최병훈 장진 이헌정 강명선 김상훈 이삼웅의 작품을 가지고 참여했다. 크로프트에서는 이재효의 의자 형태 나무 조각이 2만 달러에, 갤러리서미에서는 강명선의 작품이 5만 5천 달러에 팔렸다.
2006년 두바이에 문을 연 크리스티 중동점이 개점 이래 현재까지 2억 2천만 달러의 작품을 팔았다고 한다. 그러나 두바이의 미술시장은 규모만 커진 게 아니다. 알세르칼(Alserkal) 거리, 창고지구에서 변신한 알쿠오즈(Al Quoz) 지구, 두바이의 국제금융중심지 두바이금융센터(DIFC) 등의 화랑가에 들어선 갤러리가 50여 개가 넘었다. 아트두바이 행사 첫 날, 아랍에미리트의 부통령겸 수상이자 두바이 지도자인 HH 셰이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은 경제위기로 중단되었던 두바이 근대미술관과 오페라하우스 건설 계획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두바이 현대미술계가 번듯한 모양새를 갖춰 나가고 있다.

중첩된 이미지, 유동적인 오브제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무제(페인팅)> 알루미늄에 아크릴릭 200×350cm 2010

중첩된 이미지, 유동적인 오브제

글 | 전 영 백

우리 주변의 복잡한 일상을 단순하면서 애정있게 바라보고 싶다면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회화를 떠올리면 된다. 그래픽-회화 작가이면서 개념미술가라고 할 수 있는 그의 50년 간의 작품 세계를 다룬 대규모 전시 <WORD/IMAGE/DESIRE>가 열렸다. 크레이그 마틴은 오브제를 드로잉하는 일종의 그래픽-회화 작업으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그는 자신이 오브제 드로잉에 몰두하는 이유로, 이것이 바로 가장 보편적인 언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작업이 ‘모든 것을 다룬다’는 점에서 가톨릭의 종교적 영향, 그리고 워홀과 뒤샹과의 연관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배준성 <The Costume of Painter-Still Life with flowers in cubboard> 렌티큘러 49×80cm 2011

추상적 개념과 구상 오브제의 중첩

크레이그 마틴은 일상의 오브제를 한 화면에 재배치하고 낯설게 조합하여, 기존의 시각을 벗어난 새로운 의미를 드러나게 한다. 특히 1980년대 이후에는 오브제를 직접 드로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를 위한 드로잉 북을 참고하는 등 이미 일반화된 오브제의 시각 기호를 차용해 왔다. 그는 이렇듯 이미 수집한 수백 개의 오브제 기호 아카이브에서 형태를 선택하고 10개의 색채를 변용하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자신의 드로잉을 ‘레디메이드 드로잉’이라고 부른다. 즉 크레이그 마틴의 작업은 개념적이고 기호적이라 볼 수 있다. 그의 이미지는 언제나 이름 혹은 개념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완성된 크레이그 마틴의 전형적인 그래픽-회화 작업에는 안경 전구 의자 등 일상의 오브제들이 단어와 함께 다채로운 색깔로 가득 그려져 있다. 사물의 크기 또한 마법사처럼 자기 멋대로 자유롭게 조정한다. 작가는 우리 주변의 풍부한 대상을 잘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예술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것”, 즉 새롭게 만드는 게 아니라 이미 주위에 있는 것을 다룰 뿐이라는 그의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오브제를 규명하는 그의 선은 단순, 간결하지만 사물의 특성을 리얼리스틱하게 그려 낸다. 드로잉의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감각적이고 섬세하다. 그리고 화면 속 색채는 원색이라고는 하지만 결코 튀지 않는 조화미를 감지한다. 그의 그래픽-회화 작업에서 보이는 지극히 단순한 형태와 축약된 구성, 그리고 화려하나 조화로운 색채는 노장의 원숙미를 한껏 발휘한다. 그 함축적 이미지는 많은 내용을 극도의 간결한 시어로 표현해 낸다는 역설을 담고 있다. 그 얇고 가벼운 이미지는 화면에서 유동적으로 부유하며 집착하지 않는 초월적 태도와 자신감 넘치는 자유를 지닌다.
70세가 넘은 크레이그 마틴의 화려한 스펙은 익히 알려져 있다. 더블린 출신의 그는 예일대에서 미술을 전공, 바우하우스 색채 이론가 요제프 알베르(Josef Albers)의 수업을 받았고, 영국에서 예술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훈장까지 받은 예술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1960년대 말에 영국으로 귀환한 그는 골드스미스대에서 20년 간 교육에 전념하여 데미안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줄리안 오피 등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허스트는 크레이그 마틴의 개념미술 작품 <떡갈나무>(1973)를 자신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준 작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선반에 물 한 잔을 두고 설명 자막이 있는 지극히 간단한 설치 작업이었는데, 가톨릭의 성체 성사와 연관되는 종교적 철학적 작업이었다.) 1960~70년대에 실험적이고 개념적인 설치 작품을 제작했던 크레이그 마틴이 색채와 형태로 돌아와 자신만의 독특한 디자인이 담긴 시각적 작업에 몰두한 것은 전격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갖고 있는 개념적, 기호적 특징은 작가의 일관된 관심이 지속되고 있음을 알려 준다.   
크레이그 마틴의 작업은 선이 규명한 다양한 오브제가 서로 겹치고 개입되어, 평소에 전혀 관련 없는 것들이 한 평면에서 자유롭게 통합되어 있다. 전구 수갑 우유팩은 그렇게 하나가 된다. 이질적인 삶의 요소들은 전혀 어색하지 않게 우아한 선과 색채의 미감으로 녹아 들어 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대부분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는 단어와 그것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조합하여 다양한 색채로 자유롭게 화면에 재구성하였다. 그리고 그 구조는 이미지의 중첩이라 할 수 있다. 2차원의 드로잉 평면에서 입체의 오브제는 유동적으로 겹치는데, 이 수평의 중첩은 표현 방식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중첩, 즉 추상적 개념과 오브제의 중첩이 발생한다. 시각적 관찰에 따른 오브제의 기호와, ‘욕망’ ‘예술’ 같은 추상적 단어가 한 평면에서 동일하게 다뤄진다는 점이다. 그려진 오브제는 쓰여진 단어와 공존하는 셈인데, 오브제와 개념 사이의 거리감이 그의 작품에서 내재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개념과 드로잉의 평면화를 생각하면 그를 모더니스트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연관성 없는 이질적 이미지들이 공존하는 혼종성과 기호적 표상은 포스트모던의 면모를 나타낸다.

왼쪽ㆍ배준성 <The Costume of Painter-Phantom of Museum K , Sketch girl> 캔버스에 유채, 렌티큘러 290.9×218.2cm 2011  
오른쪽ㆍ배준성 <The Costume of Painter - Museum H , A.Moore orange three ds> 캔버스에 유채, 렌티큘러 162.2×130.3cm 2008

다차원의 정물, 시각의 역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과 배준성의 작업은 표면상으로는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두 작업 세계를 흥미롭게 연결시켜 주는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중첩의 구조와 이미지의 유동성이다. 배준성의 <움직이는 정물>전에서는 평면적인 그림을 3차원의 입체적 이미지로 움직임을 부여하는 렌티큘러 작업과 영상 작업 등 최근작들을 볼 수 있다. <화가의 옷> 연작에서 즐겨 활용했던 그림 위에 ‘비닐’ 층을 덮는 작업과, 많은 장면을 단면에 한 번에 응축하여 나타내는 렌티큘러에서 보듯, 중첩의 방식은 배준성 작업의 핵심 구조이다. ‘레이어 쌓기’는 기술적 측면뿐 아니라 개념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방적이며 고정된 관점에 도전, 시각적으로 열린 체계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번 전시는 배준성의 중층 구조가 섬세함과 조용한 움직임을 지향한다는 점을 알게 한다. 전시에 나온 작품 대부분을 ‘정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그 중 고전적 의미의 정물화는 책장이라는 기본 구조에 서양의 다양한 미술 서적과 정물을 렌티큘러로 처리한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면으로 보이는 책장이 갖는 격자 구조와 그 엄격한 사각형은 전체적으로 ‘평면성’과 ‘평면성의 구획’이라는 모더니즘의 시각틀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두어 칸을 차지하는 정물은 주어진 구조에 속하기는 하나 렌티큘러가 주는 자유로운 역동성으로 말미암아 그 한정된 공간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있다. 절대적인 규율과 질서로 구축된 전체 구조와 이를 조롱하듯 자유롭게 움직이는 다차원의 정물이 나타내는 것은 ‘시각의 역설’이라 할 수 있다. 칸칸이 정리되어 꽂혀 있는 색색의 책들은 마치 사회의 여러 체제에 의해 분리되고 규정되는 현대사회의 삶을 나타내고, 움직이는 정물은 그 공간에 속하면서 동시에 벗어나고자 하는 주체의 자유로운 욕망을 반영하는 듯하다.     
이번 전시에 나온 배준성의 최근작에서는 변화의 양상을 읽을 수 있다. 이제까지의 <화가의 옷> 연작은 평면에 넘쳐나는 ‘과잉’이 주도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작년부터 제작한 추상 작업, 예컨대 <Peeling Wall_Window>(2011) 시리즈는 내성적인 작업 방향을 보인다. 포토리얼리즘과 같은 자세한 광경은 평면에 드러나지 않고 화면 안쪽의 깊은 공간에 자리한다. 작가는 성에 낀 창문같이 흐릿한 화면을 붓질로 문질러 시각을 밝히고, 관람자의 시선을 극사실적이고 비현실적인 상상의 세계로 유도한다. 화면 전방에서 보였던 과잉은 이제 후방의 깊은 공간으로 이동해 있고, 관람자는 공간 속 깊은 곳으로 초대되어 들어간다. 창문의 베일을 지울 때, 우리는 그 안에 숨겨있는 많은 구체적 사실들을 들여다본다. 지우니까 보이는 것이라니 참 아니러니컬하다. 관음증적 흥미는 화면을 뿌옇게 처리한 ‘은폐’에서 비롯된다. 시각의 유희는 지속되는 데 그 방향이 전복된 셈이다. 다만, 그 유희가 대부분 여성 누드에 대한 관음증이라는 소재의 한정성과 남성 중심적, 대중적 시각에의 편향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는 작가에게 던져진 과제일 것이다. 누드에 대한 관음증적 욕망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작업에서 보는 시각의 다층적 구조와 그 중첩에 대한 실험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크레이그 마틴은 미술 작품의 의미를 ‘의미와 감정의 유동성’이라고 보았다. 틀 지워진 구조와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난 그의 기호 작업은 우리로 하여금 일상의 오브제를 다르게 보게 한다. 이와 같이 배준성의 움직이는 정물의 유동적인 이미지 또한 관람자의 시각이 가진 불확실성을 강조하고 있다.

파편으로 축조한 ‘광장사각’

홍승혜 1959년 서울 출생. 서울대 회화과 및 파리 국립미술학교 졸업. 1986년부터 20여 회의 개인전을 국내외에서 개최했으며 다수의 기획전 및 단체전에 참여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 조형예술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7년부터 현재까지 컴퓨터 화면의 기본 단위인 픽셀(Pixel)로 기하학적 형태를 생성하고 형태를 구축하는 ‘유기적 기하학(Organic Geomenty)’ 시리즈를 발표하고 있다. 강남 교보타워 로비벽화, 마로니에 공원의 네온기둥 <말나무> 등 다수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Ways》(2004, 배리 슈왑스키 홍승혜, 아트선재센터/메리티지 출판사), 《말나무/보이지 않는 기하학/로베르 필리우》(2006, 문화예술위원회 스펙터프레스) 등의 아티스트북을 출간했다. 토탈미술상(1997), 이중섭미술상(2007)을 수상했다.

 

파편으로 축조한 ‘광장사각’

글 | 임근준 AKA 이정우·미술 디자인 평론가, 홍익대 BK연구원

아뜰리에에르메스 <광장사각> 전경
좌_<말나무_나침반(Tree Speak_Compass)> Futura Std haevy, LED, 레진, 전구, 철파이프
 철판에 폴리우레탄, 조약돌, 2012
우_<지하철 표지판> Futura Std haevy, LED 렉산에 스티커, 폴리우레탄을 코팅한 철 50×120×230cm(뒤)
<벽벤치> 왁스 칠한 합판 51.8×240×60cm 2012(앞)

01 미술가 홍승혜(洪承蕙)는 1959년 서울에서 언론인 가정의 장녀로 태어났다. 1982년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고, 1986년 파리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했다. 프랑스 체류기간은 1983년부터 1986년까지. 1986년 관훈미술관에서 소위 ‘귀국전’을 열었고, 이후 20여 회의 개인전을 치렀다. 1997년 개인전 〈유기적 기하학(Organic Geometry)〉(국제갤러리)에서 처음으로 사각의 픽셀(pixel)을 기반으로 삼은 격자 구조의 의사(擬似)-추상미술을 선보였으며, 이후 제 작업 세계를 자기 참조적(self-referential)으로 계발시켰다. 2006~08년경 참조적 특정성(reference-specificity)을 띠는 자기 인용과 매시업(mash up)의 방법론을 수립, 과거의 제 성과를 데이터베이스로 삼아 성찰적 창작의 경지로 나아나고 있다.


02 가회동에서 성장한 고교생 홍승혜는, 프랑스문화원 지하의 르누와르관에서 영화를 챙겨보는 문화 소녀였다. (작가가 기억하는, 당시 영화 관람료는 200원.) 조숙한 학생은 샹송을 따라 부르며 불어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일찌감치 서구 문화에 경도된” 소녀가 즐겨 불렀던 노래는, 세르주 갱즈부르흐(Serge Gainsbourg)가 작사 작곡한 〈밀랍인형, 노래하는 인형(Poupee de cire, poupee de son)〉(1965)이었다. (국내 번안곡 제목은 〈꿈꾸는 샹송 인형〉) 이 노래에 관해 작가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이리 간단히 말했다. “밀랍인형이 왜 난 만날 타인을 위해 노래를 부르나, 나도 인간이 되고 싶다, 뭐 그런 노래에요.” 그의 작품이 ‘추상미술이 되고 싶은 무엇’ 혹은 ‘가구 따위의 공리적 사물이 되고 싶은 추상미술’로 맥락화될 때, 관찰자는 이 사랑스러운 옛 노래를 떠올려 봐도 좋겠다.

<흡연구역 표지판> 렉산에 실크스크린, 폴리우레탄을 코팅한 철 40×35×170 2012_박광수와 협업(앞)
<바 표지판> 네온, 나무에 채색 182×595×370cm 2012_박광수와 협업(뒤)

추상이라는 정신

03 고교 시절엔 르누와르를 좋아했고, 대학 2학년 때까지는 렘브란트처럼 그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었다. 추상에 눈뜨게 된 것은 3학년 때 마티스에 빠지면서부터. 유학 시절엔 스승 올리비에 드브레(Olivier Debre, 1920~1999)가 앵포르멜 작가였기에 앵포르멜 경향에 속하는 60~70호 크기의 추상 캔버스 작업에 매진했었다. “1986년 6월에 돌아와서 11월에 관훈미술관 1층에서 일주일동안” 선보였던 콜라주 작업들이 바로 유학기의 작업을 갈무리한 결과.


04 1986년부터 1990년까지 4년 간 서울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 프랑스어 교사로 일했다. 그가 맡았던 강좌는 아침 7시 초급반.


05 1990년 홍승혜는 장 뤽 다발(Jean-Luc Daval, 1937~)의 《추상미술의 역사(Histoire de la peinture abstraite)》를 번역했다. 역자 후기엔 이렇게 적었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한 번 추상이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며 보다 넓은 시각으로 추상이라는 현상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저자의 결론대로 이제 화폭은 그 위에 나타나는 이미지가 어떤 것이든 추상이라는 정신에 젖어 있는 것이다.”


06 1991년 수화랑에서 세 번째 개인전을 열었을 때, 《공간》의 표지에 작품이 게재됐고, 《월간미술》의 이영철 기자가 전시 리뷰를 썼다. “홍승혜의 그림은 추상을 통해 회화의 본질을 탐구해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종이를 지지재이면서도 동시에 화면으로 이용하고 있는 그의 그림은, 색과 형태를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독립된 조형요소로 구성하여 회화의 동질감을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 […] 자아의 활동을 최대한 수동적인 상태에 두면서 회화적 구성물들의 부름에 조응해 가는 작업 방식은, 화면 속에 때 묻지 않은 채 은폐되어 있던 이야기가 침묵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나는 길을 터주고 있다….”


07 1993년 서울산업대학교에 신설된 응용회화과의 교수가 됐고,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2010년 교명과 학과명이 개칭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과가 됐다.)  


08 작가가 ‘픽셀’이란 기본 단위에 천착해 작업을 전개하기 시작한 때는 1997년, 그림판(Paint: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시스템의 기본 프로그램으로 제공하는 단순한 기능의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단순한 픽셀의 그림을 그리면서부터였다. 사각의 디지털 픽셀에 대한 기술적 관심이나, 사각 형태에 대한 오마주였다기보다는, “구체적 레퍼런스가 없이 (격자의) 화면을 점유하는 방식”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컴맹’에 가까웠던 그였기에, 이러한 픽셀 드로잉을 다양한 양상으로 변주하려면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옳은 지 주변에 물었고, 당해 처음으로 어도비 포토샵을 사용하게 됐다. (당시 작가가 사용한 버전은 3.0이었다.) 포토샵을 사용할 때도 해상도를 낮춰서 픽셀 하나씩 그림을 그렸고, 픽셀 몇 개에 불과한 소형 파일은 최종 작품 제작을 위한 원도(原圖)로 사용됐다.


09 “언젠가 10년 동안 작업한 결과를 데이터로 정리했더니 CD 한 장을 다 채우지 못하더라구요.” 2000년 우연히 작가의 〈드로잉> 파일을 열어봤을 때, 처음 몇 초 동안은 파일이 깨진 것은 아닌지, 잘못된 파일을 받은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파일을 확대해서 보니 분명 작품과 일치할뿐더러, 정황상 도록의 인쇄에 사용된 원본 파일임에 틀림이 없었다. Ctrl+를 눌러 최대 크기인 1600%로 이미지를 확대했다가, 다시 Ctrl-를 눌러 일대일 비율의 이미지를 본 뒤, 재차 1%로 이미지를 축소해 보면서, 비로소 작업의 숨은 차원과 매력을 감득했다.


10 작가는 아직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로는 작업해 본 적이 없고, 포토샵의 레이어 기능 또한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11 2000년 개인전 〈유기적 기하학〉에서 작가는 타일, 알루미늄 등의 소재를 처음 사용했고, 그를 통해 작업에 물건으로서의 성격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작업에 포스트미니멀리즘의 어떤 맥락을 지시하는 참조성(referentiality)이 처음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추상미술가들의 그룹전에 홍승혜의 ‘픽셀 추상’ 연작이 전시될 때면, 묘한 유비가 연출됐다. 추상미술과 추상미술의 역사적 맥락을 지시하는 의사-추상미술의 대조가 비평적 풍경을 이루기 시작했던 것. 그가 보다 명확하게 ‘물건으로서의 작품’을 제시하기 시작한 기점은 2004년 개인전 〈복선(伏線)을 넘어서(Over the Layers)〉(국제갤러리)에서 책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작품을 선뵈면서부터다. 이후 작가는 매해 새로운 가구를 제작해 왔다.


12 작품 보관을 잘 못하는 편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작업을 퍼포먼스처럼 행하는 측면이 있답니다.”


13 2008년 개인전 〈파편(Debris)〉(국제갤러리)에서 작가는 ‘유기적 기하학’이라는 표제 아래 진행했던 수많은 작업이 남긴 부산물(기하학적 도형 혹은 문장들)을 분해해 작품으로 재조성함으로써, 자신의 지난 여정을 자축하는 동시에 한 발짝 앞으로 더 나아가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파편〉에 제시된 입체 작품들은 조각 가구 건축의 경계면 어딘가를 지시하는 참조적 특정성을 뚜렷이 드러냈다. 즉 작품들이 추상 조각으로 인지되다가도, 보기에 따라서 가구 또는 건축 자재로 독해될 수 있고, 또 더 큰 프레임으로 바라보면 건축적 공간 연출의 장치로 재인식될 수 있도록 작가가 의도된 조형적 모호함을 장치했다는 말이다.


14 작가가 컴퓨터 단말기 상에서 픽셀들을 조작해 기하학적 질서를 만들고, 그것을 근거로 작품(물건)을 주문 제작할 때, 구상과 노동의 분리를 일으킨 ‘디세뇨(disegno)’라는 예술품 제조 과정의 기본 개념이 문제로 떠오른다. 컴퓨터 화면에서 구체화된 기하학적 질서(작가의 원형적 이데아)와 작품 제작의 주문(어떤 미디엄[어]로 구체화[사물화, reification]할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2차적 아이디어),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불가피한 변형을 종종 야기하는) 실물 제작 사이에 흥미로운 접합(concatenation)과 접면(interface)들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디세뇨는 16세기에 등장한 개념으로, 단순하게는 작품의 제작을 위한 드로잉이라는 뜻으로 통용되나, 선 매체 수단이라는 뜻도 거느렸고, 16세기 중후반의 미술 이론 전개에 따라 실용적 차원에서 이상적 차원의 개념으로 전환되기도 했다.) 컴퓨팅 환경에 기반을 둔 원초적 디세뇨인 ‘픽셀 단위의 기하 도형’을 조형적 정념의 바탕으로 삼은 작가는, 주문 제작 과정을 통해 변환과 변주, 복제의 반복이 일어나도록 이끈다. 종종 장식이 되거나 일상 사물이 되며 전통적 미적 미디어의 경계를 유희하는 최종 결과물들은, 최소 단위인 픽셀로 환원되는 조형질서(plastic algorithm)를 지닌 채, 컴퓨터에 의해 재매개화된(re-mediated) ‘작품의 구상 및 제조 과정’을 대상화하는 알레고리로 기능하며, 의사-유기적 계열(pseudo-organic system)을 성장시켜 나간다.

<무제> 셀 애니메이션 4분 52초 2012_심래정과 협업 음악 이병재, 편집 조형준

‘자가-매시업’, 자신의 작업을 재료 삼다

15 개인전 〈파편〉의 의의는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재료 삼아 새로운 작업을 전개하는 방식’을 양식화해 냈다는 데 있다. 나는 이를 ‘자가-매시업(self mash up)’이라고 명명했다. 고로 2008년은 작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승리의 해’라고 할 수 있다. (매시업은 다양한 음원을 동원해 파팅 라인[parting line]이 분명히 드러나는 새로운 짜깁기 음악을 만드는 DJ믹싱 기술의 일종.)


16 이러한 자가-매시업의 방법을 보다 분명한 방식으로 재확인한 자리가 2009년의 개인전 〈음악의 헌정(Musical Offering)〉(갤러리2)이었다.


17 하지만 작가가 자가-매시업을 부분적으로 실천하기 시작한 때는 2006년이다. 개인전 〈복선을 넘어서>(신라갤러리)에서 제시한 〈유기적 기하학> 연작이 바로 그것. 당시 갤러리에 설치한 알루미늄 패널 넉 점은 2005년 서울산업대학교에 설치한 벽화 〈유기적 기하학>을 재료로 삼았고, 식당에 설치한 〈유기적 기하학> 연작은 2000년에 제작한 〈유기적 기하학>을 재료로 삼았다. 슬기와 민이 디자인한 도록 《홍승혜의 공간 배양법》도 이러한 자가-매시업의 경향을 반영해 각 지면을 뒤섞어 볼 수 있게끔 지면 한 가운데 가로로 절취선을 넣었다. 〈복선을 넘어서>에서 자가-매시업을 통해 제작했던 알루미늄 패널 넉 점을 다시 재료로 삼아 제작한 괴작이, 2008년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파편>에서 선뵌 파이프 형태의 조각 〈파편>이었다. 〈파편>의 파이프를 재료로 삼아 또 다른 작품을 제조할 생각을 해봤느냐고 묻자,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다른 전시에서 〈파편>을 장작더미처럼 쌓은 적이 있죠. 실제로 뭘 만들 생각도 없지 않아요.”


18 2012년 개인전 〈광장사각(廣場四角, Square Square)〉(아뜰리에에르메스)은 작가가 자가-매시업을 통해 갱신해낸 제 작업 세계를 그릇 삼아, 실제의 전시 공간을 제 작업으로 전치하고 타인과의 협업을 성공시킨 성과를 마음껏 자랑하는 자리다. ‘실제의 상황에 조형적 환영을 투사한 결과’라고 봐도 좋겠다.


19 〈광장사각〉에서 작가는 새로운 협업의 양상을 시도했다. 협업자들이 방법론을 차용 변주 혼합하고 난감한 의사결정 사항을 피처링(ft.)이나 아웃소싱의 형태로 떠넘기는 등, 비관습적인 매시업의 협업을 통해 미술가 혹은 디자이너의 직업적 한계 지점을 넘나드는 것이 특징.


20 전시 공간을 작업으로 전치하는 방식은 〈광장사각〉에서 완성됐지만, 실은 이중섭미술상 수상기념전 〈온&오프(On & Off)〉(2008)에서 먼저 실험됐다. 〈온&오프〉의 경우, 출발 지점은 단순했다. “전시 오프닝에 많은 이가 오는데 그런 상황에서 작업을 보여 줘야 하는 문제적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문제였다고. 당시 작가가 찾은 해결책은, 격자의 구조에 사람들을 작업의 일부로 수용하는 방식. 결국 작가가 어떤 난처한 상황을 견디기 위해 현실에 환상의 메타 레이어를 투사하는 방식을 고안하면서 작업의 새로운 차원이 발견됐던 셈. 당해 작가는 도록 《유기적 기하학 홍승혜 1997~2008》을 발간했는데, 맨 마지막에 게재된 작업이 〈온&오프〉에 설치됐던 〈쓰레기통(Dust Box)〉였다. 이는 〈파편〉과 댓구를 이루는 알레고리였다.


21 관객을 작품의 일부로 간주하는 방식은, 연작 ‘레디메이드 조각’에서 자라난 가지로 뵌다. ‘레디메이드 조각’은 2005년 건축물의 일부(기둥, 벽면)에 페인트를 칠해서 그 재규정된 형태를 작품으로 제시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2006년엔 레디메이드 세면대를 재료로 삼아 포스트미니멀리즘의 역사적 맥락을 촌평하는 〈공동 세면장(United Basin)〉을 제작했다. 그러다가 2008년 이중섭미술상 수상기념전 〈온&오프〉에서 전시장 바닥에 그리드를 장치했고, 작가는 비로소 관객을 레디메이드 오브제로 간주할 수 있게 됐다.

국제갤러리 <복선을 넘어서> 전경 2004

22 ‘레디메이드 조각’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첨언했다. “화가의 조각? 화가의 건축?”


23 본디 작가는 아뜰리에에르메스에서의 개인전 제목으로 ‘에르메스광장(Hermes Square)’을 제안했다. 허나 비상업적 전시 공간을 표방하는 갤러리 측에서 난색을 표했고, 대안으로 ‘Square Sqaure’란 영문 제목을 떠올렸다.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의 건축 디자인은 정사각형을 모티프로 삼았고, 건축의 평면 중정 창문 등에서 사각형이 반복된다.) 이를 한국어로 고쳐 옮긴 결과가 〈광장사각(廣場四角)〉이다. ‘사각광장’이라고 하면 현실의 광장을 뜻하게 되고, ‘광장사각’이라고 하면 광장을 연출하는 비현실의 무엇을 뜻하게 된다.


24 〈광장사각〉의 핵심은 아뜰리에에르메스의 전시장을 픽셀의 사각으로 재규정하고, 작품 설치를 통해 각 공간을 작업으로 전치하는 데 있다. 이런 공간 연출은 ‘관계적 미술(Relational Art)’에 대한 참조적 농담의 성격을 띤다. 이러한 참조성 촌평은 ‘과거’와 ‘인용된 과거’로부터 적절한 거리를 유지 혹은 확보하는 시공간 감각에 연원한다. 2010년대의 일부 예술가들의 작업에서 발견되는 어떤 참조성을, 포스트모던 시대의 참조성이나 모더니스트의 자기-참조성과 구별 짓는 특징이 바로 그 2중의 거리감이다. ‘관계적 미술’은 평론가 니콜라 부리요(Nicolas Bourriaud)가 1998년 발간한 저서 《관계미학(Esthetique relationnelle)》에서 주창한 새로운 창작 경향을 일컫는다. 잡지 연재를 통해 ‘관계미학’을 주장하기 시작했던 때는 1995년. 간단히 요점만 말하자면, ‘관계성(relationality)’이란, 전시 제도를 비롯해 작품 창작에 연루되는 여러 사회 문화적 관계와 그 접면에 이론적 특정성을 부여해 재해석한 결과였다. 고로, 홍승혜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참조성은 참조하는 주체와 인용되거나 지시되는 대상 사이의 접면이나 (시공간적) 거리(감)에 특정성을 부여한 결과로서 비평적 의의를 지닌다 하겠다.

<유기적 기하학_밀어내기(Organic Geometry_Extrude)> 벽면에 스티커 230×770cm 2012_하이트컬렉션 <한국의 그림 매너에 관하여> 전경

‘광장사각’, 작업으로 전치된 전시 공간

25 개인전 〈광장사각〉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을 맞는 것은 기호의 명령이다. 오른편으론 〈출입금지 표시판(No Entry Sign)〉(드로잉은 협업자 박광수의 것)이, 왼편으론 〈화장실 표시판(Toilet Sign)〉이 자리했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사실 보다 근본적으로 공간을 규정하는 노릇을 하는 건 ‘레디메이드 조각’인 〈하늘조각(Sky Blue Sculpture)〉이다. 작가는 건물의 중정 때문에 발생하는 갤러리 중심의 사각 유니트에 하늘색 페인트를 칠해 제 작품으로 삼았다. 이어 주전시장으로 들어서면 바닥화 〈광장사각〉이 “어서 오세요, 여기가 ‘광장’입니다”라고 말을 건넨다. 하지만 작가는 옆에 늘어선 건물의 원기둥에도 암회색 페인트를 발랐다. 역시 ‘레디메이드 조각’이고 제목은 〈기둥조각(Column Sculpture)〉이다. ‘광장’에 서서 전시장을 조망하면,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말나무_나침반(Tree Speak_Compass)〉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까이 다가서서 방위를 생각하며 사방을 돌아보면, ‘공원’과 ‘지하철’이 나타난다. 〈녹색지대(Green Area)〉와 〈지하철 표지판(Subway Sign)〉이 그것. 〈녹색지대〉는 〈화장실 표시판〉의 머리를 확대해 바닥화로 설치하고, 그 안팎으로 율마(골드 크레스트)를 품은 녹색의 화분 60개를 배치한 작품이다. 기존의 벽화와 〈공동 세면장〉의 방법을 혼합한 결과다. 반면 〈지하철 표지판〉은 〈출입금지 표시판〉과 〈화장실 표시판〉과 마찬가지로 어떤 장소(혹은 공간)와 화학 작용을 일으켜 직해주의(literalism)의 농담으로 기능하는 관념의 조각이다. 이어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벽벤치(Wall Bench)〉 〈벤치(Bench)〉 〈다용도 테이블(Multipurpose Table)〉을 둘러보면, 전시의 1부를 다 감상한 셈이다.

인터미션은 중정과 건물 입면을 연결하는 야외 공간에서 펼쳐진다. 끽연가인 작가는 이곳의 제1기능을 흡연 공간으로 보고, 〈흡연구역표지판(Smoking Area Sign)>과 〈재떨이(Ashtray)〉를 설치했다. 하지만 곧 제2부가 펼쳐진다. 그 안내를 맡은 작품이 〈바 표지판(Bar Sign)〉(인물 드로잉은 협업자 박광수의 것)으로, 그 지시에 따라 다시 소형 전시 공간으로 들어서면 이제 음주공간이 펼쳐진다. 사선으로 두 가지 다른 페인트를 칠해 놓은 〈현기증(Vertigo)〉은 〈하늘조각〉의 하늘색에서 〈기둥조각〉의 암회색으로 어둠을 조장하는데, 전작들과는 다소 이질적인 양상의 작업이다. 이번 전시작을 특징짓는 요소가 곳곳에 사용된 사선이다. 하지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신나는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애니메이션 영상 〈무제(Untitled)〉(애니메이션을 제작한 협업자는 심래정, 음악은 이병재, 편집은 조형준)로, 홍승혜의 작업 세계를 풍자적으로 재해석한 점이 몹시 사랑스럽다. 영상을 다 보고 나면, 술병을 올려 놓을 수 있는 조각인 〈바(Bar)〉가 다시 한 번 직해주의의 썰렁한 농담을 던지고, 〈와인 보관대(Wine Storage)〉가 술집 분위기를 더하는 가운데, 물음표를 던지는 작업이 눈에 들어온다. 액자에 말레비치와 몬드리안의 작품을 담은 듯 뵈는 〈근접이웃_말레비치(Nearest Neighbor_Malevich)〉와 〈근접이웃_몬드리안(Nearest Neighbor_Mondrian)〉이 바로 그것.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말레비치와 몬드리안의 그림을, 포토샵의 ‘이미지 리사이즈’ 기능에서 ‘근접이웃(Nearest Neighbor)’ 옵션(원본 파일을 대용량으로 변형하는 과정에서 픽셀의 기본형을 유지하도록 돕는다)을 선택해 새로이 변형 정리해 낸 참조적 전유-인용작이다.


26 작가는 〈감상적인 것(The Sentimental)〉이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 연작을 꾸준히 제작하고 있다. 이 연작은 “작가가 ‘매우 감상적’이라고 느끼는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선정하고, 그 곡들의 흐름에 맞춰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기하학적 형태들의 안무를 시도하는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감상적인 것 5〉에서 작가가 고른 음악은 17세기 궁정 음악가인 장 필립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1764)의 춤곡 〈사라방드(Sarabande)〉였다. 장 필립 라모는 당대에 큰 성공을 누린 세속적 예술가로, 조금 과장하자면 ‘음악사적 중량감 보다는 철학가 드니 디드로의 풍자 소설 《라모의 조카》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고 평가될 수 있는 인물이다. 작가는 다소 유치한 취향의 삼박자 춤곡에 맞춰 픽셀 막대 두 개로 구성된 2분 28초 길이의 파 드 두(pas de deux; 2인무)를 안무했는데, 막대가 서로 마주칠 때마다 사운드트랙은 CD 플레이어에서 에러가 난 듯 같은 음을 반복 재생한다. 연력(年歷)을 자랑하는 작가가 스스로의 자기도취에 관해 ‘자기 논평으로서의 농담’을 던졌던 셈.


27 애니메이션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포토샵 상에서 ‘Ctrl+Z’를 눌러 작업을 초기형으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각 단계별로 변화하는 모습을 즐기다가 촉발됐다. 다음은 〈감상적인 것〉에 관한 작가의 발언이다. “예전에 실크스크린 작업을 할 때도 항상 완성 결과물보다는 중간 형태가 더 매력적이더라구요. 제가 ‘컴맹’이면서도 컴퓨터 화면상의 작업에 매료됐던 것도 바로 그런 까닭일 거에요. 그렇게 작업하면 그냥 제시하는 순간이 완성이니까요…. 제게 영상은 일종의 쉼터죠. 하날 만들고 나면 한 달 정도는 매일 아침 틀어 놓고 감상하며 하루를 시작해요.”


28 작가는 음악과 조형의 질서가 지니는 유사성과 상이점을 주제로 삼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 왔다. 2009년의 개인전 〈음악의 헌정〉이 대표적으로, 그는 요한 세바스천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명작 〈음악의 헌정(Musikalische opfer BWV.1079)>을 알레고리 삼아 ‘자신의 작업을 재료 삼아 새로운 작업을 전개하는 방식’을 일군 작가 자신을 기념하는, 자화자찬의 전시를 연출했다. 개막일 전시장에 흐른 바흐의 〈음악의 헌정〉에 가미된 에러 사운드는, 부끄러움의 표현이었을 터.


29 ‘마이너리그’에 해당하는 연작으로 2004년 시작된 ‘레미너선스(Remini scence)’가 있다. 작업의 유령에 해당하는 작업으로 볼 수 있다. 해당 영단어엔 “추억(담)”이나 “회상(담)” 외에 “(비슷한 다른 것을) 연상시키는 것”이란 뜻도 있다.

국제갤러리 <파편> 전경(사진: 권현정)_<파편(Debris)> 알루미늄 각파이프에 폴리우레탄 각 300×10×10cm 2008(바닥) <파편> 나무에 래커 79.2×60×21.6cm(좌) 63.6×63.6×63.6cm(우) 2008(벽면)

※추신1) 예술가로서 세속적 성공을 구가하는 일에 대해 묻자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굳이 ‘국제적’이 될 필요는 없지만 ‘지역색’이 되면 못 쓴다고 종종 이야기합니다. 전 작가로서 호황이나 불황을 느껴본 일이 없어요. 복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추신2) 전시 취재 이튿날 적은 메모: “언제나 느끼는 바지만, 작가 홍승혜의 가슴속엔 ‘소녀의 감수성을 지닌 마초’가 있다. 교양인의 염우염치가 ‘또 다른 자아(alter ego)’를 효과적으로 억압하기 때문에, 평소엔 그것을 감지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전시장-광장에 노을이 드리울 때 애써 미술이 됐던 물건들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듯했고, 그 물건들의 주인은 필경 표정을 거둔 얼굴로 불 꺼진 무대를 떠났을 테다.”

<유기적 기하학> 벽면에 스티커 2004_에르메스미술상 후보전 전경

사운드 아트, 업데이트 메뉴얼을 듣다

쇼케이스에 참여한 아티스트 (왼쪽부터) 민성기(트랜지스터헤드) 홍철기 류한길 최준용 권병준

사운드 아트, 업데이트 메뉴얼을 듣다

글│함영준·칼럼니스트, 로라이즈 운영자

항상 제 영역의 확장을 위해 전통적 재료 이외에 다른 도구를 들여 온 현대미술. 그 처절한 생존의 기술이 가장 최근에 미술관 안으로 끌어 들여 온 도구는 바로 ‘소리’, 즉 ‘사운드아트’다. 그러나 ‘소리’를 자신의 예술적 자아 발현의 도구로 삼았던 예술가들의 역사는 시각 예술의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길다. 또한 청각이라는 감각을 예술의 아우라 속에 포섭하려는 시도는 시각 예술의 다양한 시도만큼이나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도 사실. 아무튼 존 케이지로 대표되는 아방가르드 음악 퍼포먼스를 그 시작으로 잡고, 플럭서스의 퍼포먼스에서 발생하던 ‘소리’를 중간 단계로 놓는 ‘사운드아트’의 ‘역사 바로 세우기’에 따르면, ‘소리’는 미술계의 낡은 관습을 타파하기 위한 재료로서 20세기 중반부터 주목받아 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운드아트’가 공식적으로 현대미술의 양상 중 하나로 인정받기 시작한 건 2000년대에 들어서부터다. 서구 유수의 미술관이 중심이 되어 일련의 움직임에 의미를 부여하고, 크리스찬 마클레이 등의 프렌차이즈 스타에게 온갖 예술적 찬사를 쏟아 부었더니, 어느새 명실공히 새로운 아트를 지칭하는 가장 커다란 물결 중 하나가 된 것. 고요함 속에 벽에 걸린 그림을 감상하는 공간이었던 미술관은 점차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의 파형인 ‘소리’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술계가 ‘사운드아트’라는 새로운 리그를 만들어 주며 절절한 구애를 쏟아 부어도, ‘소리’라는 가능성 있는 신인선수는 쉬이 강속구를 뿌려가며 새로운 선발 명단에 끼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아마도 ‘소리’가 갖는 태생적 특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공간을 울리다가 멈추면 이내 사라지기 마련인 소리의 덧없는 성격. 그래서 ‘사운드아트’의 영역에는 아직까지 소리를 작업의 한 요소로 차용한 뒤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점유하는 설치물을 제작하는 방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 게다가 관객들을 비롯, 미술 관계자들 역시 미술관에서는 무언가를 ‘보는’ 경험을 원하는 것도 사실이다. 즉 시각적으로 돌출되는 예술적 결과물이 아니므로 ‘사운드아트’는 10년이 지나도록 미술관에서 효과적으로 ‘전시’될 수 있는 방법을 파악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언제 어느 공간에서나 존재하는 ‘소리’라는 요소 자체를 탐구하는 기획은 그 범위를 애써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황량하므로, 누구나 ‘사운드아트’를 말하지만 실제로 그것의 미학적 역사적 사회적 효용에 대해서는 명쾌한 의견을 내놓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한국의 미술계에서도 ‘사운드아트’를 다루는 기획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미디어아트비엔날레의 일환으로, 백남준아트센터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소리’를 만드는 사람들은 스스로 기획하는 공연 이외에 미술의 영역으로부터 자주 러브콜을 받아 왔다. 특히 소위 ‘젊은 감각’의 ‘새로운 미술’을 추구하는 움직임의 일환으로 ‘사운드아트’는 각종 미술관련 행사나 문화재단의 지원 프로그램에 구색 맞추기로 구비된 자리가 되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시도는 주로 ‘소리’라는 재료의 특성이 시각적 재현에 충실하게 디자인되어 있는 미술관이라는 공간과 전시 기획의 습성 속에서 무참히 분해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홍철기 연주 장면.

사운드 쇼케이스, 경계 없는 진동 속으로

아무튼 미술계는 2012년에도 어김없이 ‘사운드아트’를 호출했다. 아트인컬처의 4월호 특집 기획기사였던 ‘SOUND/ART’가 바로 그것. 물론 이쯤에서 ‘사운드아트’라는 기상천외한 움직임을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며 새로움에 대한 환기를 도모한 것에 대해서는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소리’라는 감각 요소가 만들어 내는 미학적 성과나 그 논의가 축적된 과정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보다는, ‘소리’가 미술관에 진입하게 된 경로를 나열하고 주요 아티스트의 명단을 만들었다. 즉, ‘사운드아트’가 미술계 안에서 논의의 대상으로 부각된 이후 계속 반복된 ‘소개글’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셈.
특집 기획과 함께 부록으로 발매한 CD의 트랙 리스트 역시 2012년 한국의 ‘사운드아트’를 점검하는 좋은 자료가 되었다. 특히 미묘나 스클라벤탄츠를 비롯한 몇몇 신진 아티스트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면서, 소위 ‘즉흥 음악’을 연주하며 미술계 안에서 ‘작가’로 인정될 법한 기존의 ‘사운드 아티스트’ 이외에 ‘비교적’ 대중적인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을 불균질적으로 함께 수록하고 있다. ‘사운드아트’의 영역에서 소비되어 온 ‘소리’에 ‘클럽’에서 소비되어 온 ‘소리’를 함께 담은 CD의 트랙 리스트는 큐레이팅에서 의도된 형태였다기보다는 특정한 경계를 지정해 주지 않은 채로 멜로디나 가사, 즉 내러티브가 없는 ‘소리’ 자체에 대한 낯선 시선, 특히 일렉트로닉 음악의 다채로운 질감을 그대로 ‘사운드아트’라는 덩어리로 치환한 우연적인 결과로 비춰진다.
아무튼 그 ‘사운드아트’의 부록 컴필레이션 CD는 <소리왕>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고, 스폰서인 아트센터나비에서는 공연도 전시도 아닌 ‘쇼케이스’라는 이름의 파티가 열렸다. 참여한 아티스트의 면면은 일단 현재 한국에서 활동 중인 ‘사운드 아티스트’를 아우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매우 가늘게 분절된 소리를 일정한 리듬에 맞춰 나열하는 글리치(Glit ch)라는 일렉트로니카 음악의 하위 장르를 연주하는 트랜지스터헤드. 그리고 트랜지스터헤드가 만들어 내는 미세한 파동을 영상으로 번역하여 가시화하는 고트. 일정한 사이클로 움직임을 반복하는 소형 모터 류의 기계 장치에 전기 신호를 보내서 타악기의 역할을 만드는 방식으로 연주하는 류한길. 진동을 전기 신호로 바꿔 주는 카트리지와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는 플래터로 이루어진 음향 재생기기인 턴테이블을 이용하여, 이미 만들어진 음악을 재현하는 대신에 즉흥적으로 발현되는 새로운 진동을 연주하는 홍철기. 소리를 받아 들이는 기타의 픽업과 소리를 내뿜는 앰프 사이에서 신호를 주고 받으며 발생하는 피드백 사운드를 연주하는 최준용. 딜레이 등 각종 음향 효과를 재현하는 장치를 만들어 신체에 착용하고 뮤지션 자신의 몸짓에 음악을 동기화하는 작업을 선보이는 권병준까지. 아무튼 광화문 한복판의 대기업 사옥 안에 마련된 전시장에는 무대 조명과 PA 음향 장비, 영상 장비가 설치되었고, 로비에는 마치 클럽 파티, 혹은 전시 오프닝 리셉션처럼 공짜 맥주와 각종 핑거 푸드가 준비되었다. 주말을 맞아 서울의 아트 피플이 전부 모였는지, 아트센터나비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 ‘쇼케이스’의 가장 큰 특징은, 참여한 ‘사운드 아티스트’와 개별적 작업의 특성과 기획의 의도가 예측하지 못한 부분에서 상충하며 벌어지는 드라마의 기승전결이었다. ‘쇼케이스’를 위해 대여한 음향 장비는 비교적 훌륭한 성능을 자랑했으나, 장비 오퍼레이터들은 생전 처음 듣는 낯선 ‘소리’에 맞춰 평소 자신들이 해 오던 대로 관습적인 ‘음악 공연’을 연출했고, 그 덕택에 참여자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 낸 ‘소리’ 작품들은 정확한 형태로 전시장을 울리는 대신, 조금은 어색한 방식으로 관객의 귀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트랜지스터헤드와 고트의 퍼포먼스는 단단한 댐핑으로 이루어진 글리치 사운드가 쉴 새 없이 튕겨나가는 가운데, 그 소리의 크기와 파형의 특성에 미세하게 반응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영상이 상영되는 것을 그 작품의 주된 형태로 삼는다. 그런데 의욕적으로 마련한 무대 조명은 그 미세한 영상 위에 붉고 푸른 클럽 조명을 비추며 작품 자체가 갖는 특성을 간섭하고 있었다. 특유의 작은 모터 기계 장비들을 스네어 드럼 위에 올려 놓고 미세한 전류를 흘리며 움직임과 소리에 주목해 오던 류한길은 아트센터나비의 ‘댄스 파티’라는 기획에 맞춰 원래 연주해 오던 형태와는 사뭇 다른 ‘댄스 음악’을 연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쌓인 ‘작가’와 ‘큐레이터’ 사이의 갈등은 10여 년이 넘도록 포악한 노이즈를 연주해 온 홍철기와 최준용에 의해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그들은 아트센터나비의 예술적인(Artsy) 무대와 관객에게 정면으로 날을 세우는 특유의 악취미를 발휘했다. 수레에 기타 앰프를 싣고 소음을 연주하며 무대 바깥의 공간을 돌아다니던 최준용과 기타를 눕혀 놓고 활로 그것을 긁던 홍철기는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표백하면서 ‘쇼케이스’를 ‘사운드 아티스트’의 공간으로 재정립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환기된 공간은 이어진 권병준과 손성제의 협연을 통해 깔끔하게 정돈되었다. 손성제의 색소폰에서 울리는 소리를 권병준이 받아서 매만져 다시 들려주며 교차를 반복하는 그럴듯한 셋(set)은 그 날 공연된 어떤 연주보다도 훨씬 ‘미술’의 문법과 어울리는 것이었다.

소리왕 쇼케이스를 찾은 관객들. 약 3백명의 인파가 모였다.

‘또 한번’ 처음부터 다시 소개된 사운드아트

이번 쇼케이스를 통해 관객들은 ‘사운드아트’라는 모호한 형태의 예술 형식이 갖는 미적 쾌감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미술관은 음악인들에게도 좋은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오랜 옛날부터 검증되어 왔다. 최근에도 뉴욕의 휘트니나 구겐하임미술관 같은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전시장에서는 여름이면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심심찮게 각종 인디 밴드의 공연이 열린다. 이는 현대미술을 애호하는 관객층이 널리 유행하는 팝음악보다 아방가르드한 텍스처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들리는 인디 음악을 애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술관의 음악 공연이 주변에 구색처럼 갖춰진 것이 아니라 ‘사운드아트’라는 이름을 획득한 채로 전시장을 채우는 예술의 한 형태로 구현되는 경우, 미술계의 호기심에 의해 호명되어 무대로 불려 나가는 음악가들이 어색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상황을 바라보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이러한 상황이 도래한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나는 아직 한국의 ‘사운드아트’가 제도권의 어떤 교육과도 무관하게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라는 점을 첫 번째로 친다. 한국의 ‘사운드아트’는 아무에게도 가르침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기존의 음악계에서 활동하던 음악가들이 소위 ‘인디 음악’을 즐기고 직접 만들면서 자신의 작업을 심화시켜 가는 가운데 ‘소리’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좀 더 추상적인 형태의 창작물로 발전시켜 온 과정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미술계가 미술 학교라는 제도를 통해 작가와 작품 평론 전시와 시장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을 재생산하는 것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 두 가지 장르의 문법이 지니는 차이에서 오는 낙차. 그것이 미술관에 들어간 ‘소리’의 의미가 축소되거나 과장되면서 ‘사운드아트’를 원형 그대로 감상하는 것에 방해물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소리’라는 감각 요소가 미술계로 진입된 사실 자체를 흥미롭게만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탈피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전 세계적으로 1000장이 채 팔리지 않는 CD를 계속 만들며 고작해야 10여 명의 관객을 두고 벌이는 덧없는 예술 행위가 왜 한국이라는 예술적 변방에서 투쟁하듯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사회 역사적 접근이나, TV나 라디오에서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규정된 것들이 가지는 ‘경험적 구체성’이 결여된 ‘소리’ 그 자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미학적 접근이 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것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사운드아트’는 언제까지나 미술계 주변에서 변죽만 울리는 ‘가능성 있는 신인’으로 남다가 은퇴하게 되지 않을까? 물론 미술계 바깥으로 영영 떨어져 나간다고 해도 ‘사운드 아티스트’들은 언제 어느 골방이든 모여 앉아 자신이 생산하는 소리를 나눠 듣고 있겠지만 말이다.

트랜지스터헤드와 고트

미술과 퍼포먼스, 그 역동적 만남의 역사

시몬 포티 <허들(Huddle)> 2010 (초연 1961)_시몬 포티는 로버트 모리스와 함께 동물의 움직임을 포착해 안무를 만드는 등 무용의 일상성에 주목한다.

MOVE: Choreographing You Art and Dance since 1960s
미술과 퍼포먼스, 그 역동적 만남의 역사

글|이수연·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헤이워드갤러리에서 열렸던 <Move: Choreographing You>는 퍼포먼스아트(Performance Art)의 현장성과 역사성을 성공적으로 구현한 전시였다. ‘1960년대 이후의 미술과 무용’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전시는 뉴욕대 안드레 레페키(Andre Lepecki) 교수와 큐레이터 스테파니 로젠탈(Stephanie Rosenthal)의 3년 여에 걸친 연구와 기획을 통해 이루어졌다. 전시는 한없이 광범위해 질 수 있는 ‘움직임(Move)’이라는  주제를 ‘감상자(혹은 경험자)에게 행동을 부여하고 생각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역사적 오브제와 현장적 퍼포먼스’로 한정하여 풀어냈다. 전시에 등장하는 오브제는 감상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촉구하고, 전시장에서 이루어지는 퍼포먼스는 주어진 환경과 전시된 다른 오브제들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전시에는 앨런 카프로, 로버트 모리스, 시몬 포티, 브루스 나우만, 댄 그라함, 트리샤 브라운, 리지아 클락, 프란츠 웨스트, 마이크 켈리 같은 역사적인 작가들의 주요 작품뿐만 아니라 자비에 르 루아, 재닌 안토니, 라 히보, 파블로 브론스타인, 보리스 샤마즈처럼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국제적인 명성의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선보였다.

시몬 포티 <행거(Hangers)> 2010(초연 1961)

퍼포먼스를 통한 시각적 힘의 구현

퍼포먼스아트는 3가지 서로 다른 역사적 전통에서 갈라져 나왔다. 현실을 재현하는 리얼리즘의 카운터 파트너로서의 연극적 속성을 지니는 퍼포먼스, 잭슨 폴락의 회화적 전통에서 시작되어 시각적 환경과 힘의 구현을 추구하는 퍼포먼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샤머니즘 발레 민속춤 요가의 전통에서 시작되어 인간의 몸을 탐구하는 영역으로서의 퍼포먼스 등이 그것이다.1) 이러한 3가지 특징들은 연극과 무용, 미술 등 서로 다른 영역에서 출발했지만,  서로 깊은 상호 관계를 맺으며 현대미술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
그 중 퍼포먼스를 통한 시각적 힘의 구현은 해프닝(Happening)이라는 용어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해프닝의 공식적인 등장은 1957년
4월, 앨런 카프로가 뉴브런스위크(New Brunswick) 근처에서 조지 시걸과 함께 퍼포먼스 공연을 하면서 이루어졌다. 이 당시에 해프닝은 ‘무언가 곧 일어날 일’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미술계에 퍼포먼스를 주도했던
대표 주자 중 한 사람인 앨런 카프로는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전복을 꾀하며 미술에 행위를 도입한 인물이다.2) 그의 퍼포먼스는 잭슨 폴락의 액션 페인팅 이후를 바라보는 작업으로, ‘과정(Process)’과 ‘환경(Environment)’을 중시하는 추상표현주의 계열의 퍼포먼스 행위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카프로는 1958년 《아트 뉴스(Art News)》지에서 미술사학자 어빙 샌들러(Irving Sandler)와의 논쟁을 통해 자신의 목표가 순수 회화에서 벗어나 회화가 이루어지는 과정과 환경, 즉 일상의 삶과의 연계성을 되찾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3) 그의 작업은 주로 작업에 관객을 끌어들이거나, 작업의 환경 자체를 조성하는 데에 주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4)
전시의 도입 부분에 놓였던 1959년 초연된 앨런 카프로의 <18 Happenings in 6 Parts>(1959/2010)와 로버트 모리스의 <Bodyspacemotionthings> (1971/2010) 시리즈는 이 시기의 경향을 잘 보여 주는 작업이다.
<18 Happenings in 6 Parts>는 감상자들을 작가가 의도한 대로 통제된 환경에 위치하게 하고, 작가의 지시에 따라 작품을 경험하도록 하는 작업이다. 이 해프닝에서 작가의 지시는 작곡가의 악보와 같은 역할을 하며, 이를 경험하는 감상자들은 악보를 연주하는 연주자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로버트 모리스의 <Bodyspacemotionthings> 시리즈에서 관람자는 전시장에 놓인 통나무 오브제를 직접 들어올리거나 혹은 나무 널빤지 위에서 시소를 탐으로써 작품에 참여하기 된다. 로버트 모리스는 일상의 행위들이 전시장 안에서 펼쳐지는 과정을 마치 안무가 이루어지는 행위와 같이 해석했다. 시소를 타고 균형을 이루는 인간의 몸짓은 안무가가 고안해 낸 동작만큼이나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 이 시기 작가들의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예술적 행위와 일상적 행위가 통합이 되는 경향은 전통적인 무용의 영역에서 시작이 되어 인간의 몸짓을 탐구하는 시몬 포티와 같은 작가에게서도 발견된다. 로버트 모리스와 함께 살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던 시몬 포티는 동물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안무를 만들었다. 시몬 포티의 초기 작업인 <Huddle>(1961/2010)에서 한 그룹의 무용가들은 서로 무리 지어 허리를 숙인 다른 무용수들의 위로 올라탄다. 지극히 평범한 이 동작에서, 로버트 모리스와 앨런 카프로가 보여 주었던 일상성만큼이나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무용수들의 안무가 이끌어 내는 우연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안무 방식과 규칙에는 변함이 없지만, 1961년 초연된 이래 매번 공연될 때마다 무용수의 상황에 따라 작품의 결과는 달라지는 것이다.
초기 해프닝에서 보였던 감상자를 통제된 환경에 위치하게 함으로써 일정한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경향은 1970년대 브루스 나우만과 댄 그라함의 작업으로 이어진다. 브루스 나우만의 <Green Light Corridor>(1970)는 불빛이 새어 나오는 좁은 통로를 통과함으로써 경험하는 것 자체가 작품의 핵심이다. 35cm의 좁은 통로를 감상하기 위하여 감상자는 자신의 눈뿐만 아니라 온 몸을 작품에 맞추어야 한다. 이러한 경험은 비디오로 녹화되거나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감상의 가치를 부여한다. 전시장에서 직접 작품을 ‘겪는’ 것만이 유일한 작품 감상의 방식이 되는 것이다.
거울을 이용하여 지각을 시험하는 댄 그라함의 <Two Viewing Rooms> (1975)도 작가가 제공한 환경 속에서의 특수한 경험을 감상의 방식으로 제공한다. 거울로 나뉘어져 서로 마주보는 방에서 맞은 편 방의 모니터가 전송해 오는 나의 이미지는 현재 내가 위치한 방의 거울로 보는 나의 이미지와 미묘하게 다르다. 나를 바라보는 눈높이와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누구나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댄 그라함은 거울과 실시간으로 녹화되는 모니터를 통해 전시장 안에서 그러한 경험을 만들어낸다.

트리샤 브라운 <숲 속의 플로어(Floor of the Forest)> 2007(초연 1970)
얽혀 있는 파이프 위에 빨랫줄처럼 매달린 옷들은 그 자체로 오브제로 기능하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무용수들이 퍼포먼스를 벌이며 오브제의 일부가 된다.

매체의 중간, 인터미디어

플럭서스의 대표적인 이론가인 딕 히긴스(Dick Higgins)는 1966년
《Something Else Newsletter》에 유명한 논고 〈인터미디어〉를 발표했다.
이 논고에서 해프닝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설명하기 위해 히긴스는 ‘인터미디어’라는 개념을 주창했다. 인터미디어는 ‘예술 매체’와 ‘일상의 매체’ 간의 결합 혹은 ‘매체의 중간’을 의미한다. 인터미디어라는 단어는 1812년 사뮤엘 콜리지(Samuel Coleridge)에 의해 근대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히긴스가 이 용어를 차용한 이래, 이 단어는 빠른 속도로 플럭서스 예술가들 사이에서 자리잡아가게 된다.5) 특히 인터미디어의 개념을 설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인터미디어 (Intermedia)와 혼합매체(Mixed Media) 간의 구분이다. 서로 다른 매체의 융합은 구조적인 부분에서 작동하는데, 혼합매체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오페라의 경우 무대배경(시각)과 음악(청각), 그리고 춤(행위)의 요소가 독립성을 포기하지 않은 채 공연이 이루어지는 데 반해, 이 시기의 해프닝 작품들은 시각과 청각 등 각 분야의 매체적 속성들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양상을 보인다.6)  
한나 히긴스(Hannah Higgins)는 후에 “인터미디어는 시각과 청각 등 서로 다른 감각의 속성을 사용하는 매체 사이의 결합뿐만 아니라 정지된 사진 스틸 컷과 움직이는 동영상간의 결합 등 서로 다른 매체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속성간의 결합도 의미한다”고 부연 설명했다.7) 혁신적인 방식으로 현대 무용을 이끌었던 트리샤 브라운의 <Floor of the Forest>(1970)는 조각으로서의 오브제와 무용이 결합된 인터미디어의 좋은 예이다. 얽혀 있는 파이프 위에 빨랫줄처럼 매달린 옷들은 그 자체로서 전시장에서 오브제로 기능한다. 매일 정해진 시간이 되면 춤을 추는 무용수들은 빨랫줄에 매달린 옷들을 입거나 벗음으로써 오브제의 일부가 된다. 조각과 무용이라는 전혀 다른 속성이 떨어질 수 없는 부분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 같은 결합은 리지아 클락의 <Straight Jacket>(1969)과 같은 작품에서도 중요한 요소이다.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 관람자는 ‘감성적인 옷’이라고 일컬어지는 나일론 백과 고무 그물로 연결된 오브제를 직접 입고 벗어야 한다. 팔을 교차하여 자기의 몸을 껴안도록 디자인되어 마치 정신병원에서 사용되는 구속복을 연상케 하는 이 옷은 구속의 폭력성과 포옹의 감성적 따스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전통적인 조각가에서 출발하여 관람자를 움직이도록 하는 조각(Adaptives)으로 진화한 프란츠 웨스트의 가구 <Diwan>(2010)은 기묘하게 생긴 가구가 얼마큼 사람의 자세와 동작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유쾌한 작업이다.
1950년대 위스콘신대학에서 이루어졌던 동물 실험을 바탕으로 무대를 구성한 마이크 켈리의 <Test Room Containing Multiple Stimuli Known to Elicit Curiosity and Manipulatory Responses>(1999/2010)는 실험을 상징하는 고릴라 의상과 자극 도구로 사용되는 야구방망이, 샐러드 볼 등의 조각적 요소를 연극 무대처럼 설치한 작업이다. 동물 자극반응을 실험하는 이 실험 무대는 1940년대의 유명한 안무가 마사 그라함(Martha Graham)이 주장한 “외부의 자극에 열린 반응을 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무용”과 묘하게 맞닿아 있다. 이에 따라 이 실험 무대에서 마사 그라함 스타일의 옷을 입고 안무를 하는 무용수는 오브제 도구들을 이용하여 서로 자극을 주고 이에 반응을 하는 안무를 함께 진행한다. 마사 그라함의 가르침에 따라 무대에서의 실험 대상은 고릴라가 아닌 인간이라는 점에서 미술과 사회, 무용의 익살스러운 인터미디어적 결합 방식을 보여 준다.
이와 같은 퍼포먼스의 흐름 속에서 등장한 최근 일련의 작가들은 좀 더 적극적인 상호 의사소통의 장으로서의 전시장의 기능에 주목했다. 예술의 사회적인 기능에 관심을 갖고 있는 자비에 르 루아의 <Production>(2010)은 미술관에 들어온 관람객에게 미술과 무용에 관한 사회적인 이슈를 묻고 답함으로써 관람객과의 소통 그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작업이다. 작가가 고용한 무용가들은 전시장 곳곳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다가 관람객이 들어오는 순간 춤을 멈추고 소통을 시작한다.
전시장에 들어온 관람객에게 몰래 편지를 찔러 넣는 재닌 안토니의 <Yours Truly>(2010) 또한 전시장을 만남의 장으로 적극 활용한 작업이다. “사랑하는 당신에게…”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전시장에서 나누어 주는 팜플렛에 황급히 휘갈겨 쓴 연애편지이다. 전시를 다 보고 난 후, 문득 가방을 열거나 외투를 뒤졌을 때 실질적인 작품의 감상이 시작되며, 전시장은 관람객과의 만남을 유도하기 위한 공간일 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감상하고 난 후 연애편지를 준 주체를 찾기 위해 생각을 하는 사이, 감상자의 머릿속에서 전시장은 몇 번이고 다시 경험되는 생생한 공간이 되는 것이다. 작가 라 히보는 50개의 의자에 지시어를 써넣고 관람자가 의자를 직접 옮기거나 지시어에 따라 앉아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Walk the Chair>(2010)를 전시장에 배치했다. 작가의 지시어가 직접 적혀 있는 의자는 작가와 관람자의 소통 매개체일 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을 감상하도록 하는 의자 역할까지도 충실히 수행한다.

마이크 켈리 <Test Room Containing Multiple Stimuli Known to Elicit curiousity and Manipulatory Responses>(1999/2010) 1950년대 위스콘신대학에서 이루어졌던 동물 실험을 바탕으로 무대를 구성했다.

한국에서 다시 만나는 <Move>

전시 구성과 함께 전시의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것은 바로 아카이브이다. 이 전시를 기획한 안드레이 레페키와 스테파니 로젠탈은 준비 기간 동안 전 세계 200여 개의 소장처에서 180여 개의 영상을 발굴했다. 아카이브는 프로그램 그룹 ‘Unit 9’이 프로그래밍한 인터랙티브 방식으로 구성됐다. ‘일상 오브제와 안무’ ‘춤’ ‘중력으로부터의 탈출’ ‘공간의 구성’ ‘악보와 지시어’ ‘조각적 안무’ ‘움직임의 궤적’ ‘몸의 이용’ ‘시간’이라는 9개의 주제로 구성된 아카이브는 구타이 그룹, 로버트 라우센버그, 트레이시 에민, 고든 마타 클락, 사무엘 베케트, 조안 조나스, 폴 매카시, 레베카 호른, 머스 커닝햄 등 미술사의 가장 중요한 퍼포먼스를 다루고 있다.
<Move: Choreographing You>전은 헤이워드갤러리 전시 이후, 지난해 독일 뮌헨과 뒤셀도르프를 거쳐 오는 6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순회전을 가질 예정이다. 전시의 특성이 감상자들의 적극적인 경험을 전제로 하는 만큼, 전시 구성의 초점은 전시 장소의 환경적 특수성, 유럽과는 다른 한국 관람자들의 인식의 이해에 맞추어져 있다. 특히 전시와 함께 6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매주 주말 <Move Weekend> 행사를 통해 전시의 주요 퍼포먼스와 김장언 김해주 양지윤 현시원 등의 큐레이터가 기획한 한국 작가들의 퍼포먼스가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감상자(혹은 경험자)에게 행동을 생각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역사적 오브제와 이에 접촉하여 이루어지는 현장적 퍼포먼스들이 한국의 문화적 맥락과 어우러졌을 때 어떤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지, 그 경우의 수는  무궁무진하다.

프란츠 웨스트 <이온(Ion)> 2010(Performed by Ivo Dimch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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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Ed. Adrian heathfield, Live: art and performance, routledge: ny, 2004, p.21.
2)앨런 카프로는 작곡가였던 존 케이지가 강의를 했던 뉴 스쿨 포 소셜리서치(New York’s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배웠지만, 해프닝의 주요 동력은 시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카프로는 해프닝의 역사에서 미래주의 선언과 소음 콘서트, 다다의 우연성 실험(Chance experiments)과 카바레 퍼포먼스, 초현실주의자들의 자동서술 드로잉과 시들, 그리고 액션페인팅으로 이어지는 계보가 모두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Roselee Goldberg Performance: Live Art since the 60s (London: Thames&Hudson, 1998), p. 63.
3) Robert E. Haywood, “Critique of Instrumental Labor: Meyer Schapiro’s and Allan Kapprow’s Theory of Avant-Garde Art.”, in Benjamin H.D, Buchloh and Judith F. Rodenbeck, eds., Experiments in the Everyday : Allan Kaprow and Robert Watts : Events, Objects, Document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9), p. 36.
4) Paul Schimmel, “Leap into the Void: Performance and the Object,” in Paul Schimmel et al, Out of Actions: Between Performance and the Object, (Los Angeles: Thames and Hudson, 1998), p. 21.
5) 인터미디어라는 단어는 1812년 사뮤엘 콜리지(Samuel Coleridge, 1772~1834)에 의해서 근대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히긴스가 이 용어를 차용한 이래, 이 단어는 빠른 속도로 플럭서스 예술가들 사이에서 자리잡아가게 된다.Dick Higgins, Richard Kostelanestz, eds., Intermedia (Buffalo, New York: Esthetics Contemporary, 1978), p. 186.
6) ‘Intermedia differ from mixed media; an opera is a mixed medium, in as much as we know what is the music, what is the text, and what is the mies-en scene. In an inter medium, on the other hand, there is a conceptual fusion’; Dick Higgins, 앞의 책, p. 188.
7) Hannah Higgins, Fluxus Experience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2), p.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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