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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2.03

Abstract

art는 오랜 시간 미술시장을 주시해 왔다.『당신은 미술시장을 아십니까?』(2006.2)를 시작으로『춤추는 미술시장』(2007.5),『Go! Asian Art Fairs』(2008.6),『Asian Art Market』(2009.6),『Art Market Now?』(2010.4),『World Art Market』(2011.4) 등의 미술시장 관련 특집을 심도있게 다룬 바 있다. 또한 아트바젤이나 KIAF 등 국내외 주요 국제 아트페어가 열릴 때마다 현지 취재 기사를 싣고, 미술시장 전문분석 회사인 아트프라이스닷컴과 아트팩츠넷, 독일 경제전문지『캐피탈』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세계 미술시장을 이끌어 가는 아티스트 TOP아티스트 100인 랭킹 및 분석 기사도 게재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축적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art는 2000년 이후 급변하는 글로벌 아트마켓의 '세계지도'를 새롭게 그린다. 21세기 미술의 방향은 '돈'에 의해 잡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미술시장이 창작 환경과 미술계 시스템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점차 '훌륭한 작가'가 '잘 팔리는 작가'라는 등식이 성립되고 있으며, 비엔날레보다 훨씬 더 많은 아트페어가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개최되고 있으며, 평론가나 큐레이터만큼 컬렉터의 위상이 높아졌다. 미술시장은 정치 경제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상승과 하강을 반복한다. 미술시장의 새로운 다크호스로 부상한 중국과 중동, 반면 하락세를 보이는 유럽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한국의 경우, 유례없던 대호황을 맞았다가 곧바로 불황으로 떨어져, 그야말로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체험했다. art는 2000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국내외 미술시장을 둘러싼 주요 사건을 조사, 분석하여 연표와 그래프로 정리했다. 또한 국내 미술시장 전문가 7인이 전하는 7가지 이슈를 통해, 한국 미술시장이 당면한 과제를 짚어 내고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본다.

Contents

01    표지  서도호 <집 속의 집 1/11-프로토타입> 
스테레오리토그래피 218.8×243.04×236cm 2009~11 ⓒDo Ho Suh

34    영문초록

37    에디토리얼  김복기

38    핫피플  2012광주비엔날레 공동감독 6인
       ‘아시아의 눈’을 모으다  김재석

42    프리즘
       ‘저항’은 가장 오래된 미디어아트!  노순택
    영화 ‘아티스트’, 예술가의 숙제는…  정은영  

64    포커스
    세라믹스 코뮌展|데비 한展  정연심
    얼음 사나이展|Reflections from Nature展  정현
    이이립展|이진한展  이선영

79    스페셜 아티스트  서도호
    [1]인터뷰_‘집 속의 집’, 공간들의 대화  우정아
    [2]아티스트 노트_공간과 장소에 대하여  서도호
    [3]에세이_사라지지 않는 집  펠리시티 D. 스캇

104    WHO WE MET  마크 샌즈  김보란

106    특집  art+market=★
    [1]Research_21세기 미술시장의 세계지도  김복기 김수영
    [2]History_글로벌 마켓 2000~2012  편집부
    [3]Issue_한국 미술시장 불황 타개책 7  표미선 신옥진 박혜경 박원재 김애령 정종효 박숙희

132    오후의 아틀리에
    칸첸중가의 야전 작업실  최동열

135    해외 작가  폴 맥카시
    이상한 나라에서 온 폴 맥카시  댄 카메론

148    BRAND NEW  
    2012헨켈 이노아트 프로젝트  김재석

150    암흑 물질
    [1]예술가를 위한 연극  문지윤
    [2]기억과 권태의 야금술  서현석

158    동방의 요괴들
    요괴들,‘미술의 메카’ 뉴욕에 서다  호경윤

162    전시 리뷰
    남풍 New Wave|Stuffs!|아니크로슈
    천민정|김종영 창원생가|강석호
    다섯 개의 프롤로그|노석미|정원철|이수경

172    프리뷰
    에바 헤세|민성, 박서보|노에제네시스|최기석
    시몬 랩|X_Sound|리햅|문신 드로잉 

180    FEEDBACK
    김일성과 화가 김승희, 기념사진의 미스터리  하타야마 야스유키

182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예술가를 위한 연극 ‘나는 꼼수다’열풍과 곽노현 재판

히로시 스기모토 <Theaters-Akron Civic Theater, Ohio> 1980

예술가를 위한 연극_‘나는 꼼수다’열풍과 곽노현 재판

문지윤 · 런던 골드스미스대학교 박사과정

‘블랙박스’가 아닌 무대로의 입장

우리가 관람할 연극이 벌어지는 판은 정해진 시나리오가 있고 숙련된 배우가 나오는 ‘블랙박스’가 아니다. 아이폰 트위터 팟캐스트 등 유례없는 미디어 환경이 만들어 내는 복잡하게 얽긴 잔혹한 상황극이다. 이 무대 위에서 “야채는 동물이나 먹는 것”이라며 고기만 먹는다는 김어준의 낄낄대는 웃음에 상식화된 견해가 흔들리고, “나는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는 곽노현 교육감의 잔인할 정도의 냉담함이 좌중을 압도한다. 능글능글한 남자들의 ‘골방’과 살균 처리된 ‘재판장’. 이질적인 두 무대에서 우리가 만나는 배우는 시스템에 포획된 관념을 조롱하는 어릿광대와 합리적 이성에 복종하는 법질서를 거부하는 종교인이다.

‘세계 유일 가카 헌정 방송’을 자칭하는 시사 토크 라디오 방송 <나는 꼼수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 김용민 PD, 주진우 《시사IN》 기자가 주축이 되어 2011년 4월 처음 시작한 이후, 팟캐스트 세계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11월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나는 꼼수다> 토크 콘서트(왼쪽)에는 5만여 명(주최측 추산)의 인파가 몰린 바 있으며, 12월 정봉주 전의원이 BBK 주가조작 사건 관련 허위사실유포로 징역 1년형을 선고 받고 수감된 이후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첫 번째 무대: 골방의 광대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를 지켜 보는 관객석에는 그들의 시시껄렁한 농담에 재미있다고 같이 낄낄거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거북하다며 자리를 떠나는 사람도 있다. 또 한편에서는 그들의 어릿광대 무대가 과연 어떠한 정치적 저항을 가능하게 하는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지식인도 있다.
가면을 쓴 어릿광대가 폭군 앞에 서 있다. 그는 마음껏 폭군을 비웃고 얼굴이 새하얘진 겁쟁이 신하들을 비웃는다. 지금 이 왕국에서는 가장 미천한 신분의 광대가 가장 강력한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은 힘 있는 자들의 비겁함을 비웃고, 그들이 접할 수 없는 저 밑바닥 세계의 시선으로 현실 지배 체제에 도전하는 것이다. 어릿광대는 자신의 존재론적 가능성을 규정하는 패권적 재현 체제의 질서를 배반함으로써만 존재한다. 미천한 신분에게 허용된 행동 코드와 발화의 경계를 위반하며 자신이 마치 대단한 힘을 가진 것마냥 이리저리 떠들어 댄다.
하지만 근대적 이성으로 무장한 지식인은, 광대가 자신의 존재론적 재현 체제를 배반하고 마치 대단한 힘이 있는 사람인 양 마음대로 떠들 수 있는 것은 왕이 그것을 허용한다는 전제 때문이라고 폄하한다. 실제로 어릿광대가 전하는 밑바닥 삶의 착잡한 현실이 왕의 지배 체제에 조금이라도 위협적인 것으로 전달되는 순간 왕의 웃음은 사라질 것이며 어릿광대는 죽음까지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논리 안에서는 어릿광대의 입에서 재현되는 부조리한 현실은 한낱 농담거리로 치부될 뿐이다. 어릿광대의 무대는 어떠한 ‘정치적’ 저항도 발생시키지 못하는 비루한 것이다.
그러나 자크 랑시에르의 주장대로 ‘정치적인 것’이 현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감각적인 것을 다시 분배하기 위한 싸움이라면, 어릿광대의 정치성은 재고되어야 한다. 감각적인 것을 새롭게 분배한다는 것은 우리의 사유를 지배하는 ‘재현-기계’에 맞서는 일이다. 여기서 ‘재현-기계’란 상식 풍습 전통 관례 등의 이름으로 우리의 사유 안에서 기존의 지배 장치를 재생산하고, 우리의 경험과 인식의 한계를 설정한다. ‘재현-기계’와의 한판 승부. 이것이 질 들뢰즈에게는 ‘되기(생성)’의 문제였고, 랑시에르에게는 ‘정치적인 것’이 미학적인 이유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전받는 것은 기존의 권력이다. 권력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미셀 푸코의 네트워크로서의 권력 개념과 상통한다. 푸코는 권력은 소유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다양한 힘의 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네트워크라고 정의했다. 다시 말해 권력은 왕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왕을 통해 작동하는 복잡한 힘의 관계망이다. 이러한 관계망을 인식하고 그것과 새로운 관계성을 생산해 내는 것. 이것이 정치적인 것이며 또한 미학적인 것이다. 네트워크로서의 복잡한 힘의 관계 속에서 전략적으로 이동하며 힘의 작동을 역류시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것. 이것이 어릿광대의 무대에서 발생하는 정치성이다.
골방에 모여 앉아 농담을 지껄이면서 왕에게 자신들의 연극 무대를 “헌정한다”고 외치는 나꼼수가 검찰청에 들락거리는 것을  최대한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 스스로 “소설을 쓴다”고 말하기 때문이었다. 허위사실 유포 죄도 명예 회손 죄에서도 그들의 ‘소설’은 그들을 지켜 주는 강력한 방패였다. 현행법 체계로부터 가장 안전히 피할 수 있는 곳. 그곳은 그들만의 골방이었다. 그리고 관객은 이 골방 무대에서 발생한 역류된 힘의 흐름을 함께 즐겨 온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예기치 못한 개입이 발생했다. 근대적 이성으로 무장된 지식인들은 안 그래도 김어준의 비린내 나는 웃음소리가 귀에 거슬렸던 차였다. 그들은 잔혹한 상황극을 애초부터 믿지 않았다. 냉정한 논리로 세밀한 작전을 짜도 모자랄 판에 욕설과 낄낄거림이라니. 한 장의 젊은 여성의 풍만한 가슴 사진으로 촉발된 소위 ‘나꼼수 비키니 사건’은 잔혹한 상황극이 벌어지는 무대를  시시비비를 가리는 강의실로 전락시켰다. 이미 강의실로 변질된 무대에서 ‘무학의 지식인’ 김어준의 반박은 ‘유학의 지식인’의 촘촘한 지식 코드에 비해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나꼼수의 리더격인 김어준 총수는 김용민 PD의 “정봉주 전의원이 성욕 감퇴제를 먹고 있으니 마음 놓고 수영복 사진을 보내 달라”라는 발언이 녹음된 것은 비키니 사진이 웹사이트에 올라오기 이전이었음으로 인과관계가 없으며, 따라서 성추행이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약자의 고통에 굉장히 민감한 주진우 기자의 “가슴 사진 대박. 코피 조심해라”라는 말은 이와 같이 뒤바뀐 인과 관계와 사라진 맥락과 뒤얽혀 확대되어 ‘주키니’ 혹은 ‘김감퇴’와 같은 실재하지 않는 가공의 남성 우월 쇼비니스트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어준은 여성이 스스로를 대상화할 권리가 페미니즘 진영의 과민 반응으로 묻혔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현실 지배의 재현 체제 속에서 이미 대상화되고 상품화되어버린 여성 신체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이 과연 어떠한 정치적 의미가 있을 수 있겠는가. ‘재현-기계’에서 도주선을 만들지 못하고 기존의 권력 작동 방식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 어떠한 ‘정치적’ 가능성을 내포할 수 있으며, 어떠한 새로운 발화와 인식을 가능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진정으로 그들의 연극 무대를 되찾고 싶다면, 그들은 먼저 어릿광대 무대를 강의실로 전락시키려는 클리셰에 포획된 지식 코드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이러한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할 경우 그들의 연극 무대는 감각적인 것이 새롭게 분배되는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히 같은 자리를 맴도는 음모론으로 얼어붙을 뿐이다. 동시에 우리가 그들의 어릿광대 무대가 계속해서 지속되기를 원한다면 관념을 통해 비릿한 웃음소리를 억누르려는 폭력도 멈추어야 한다. 잔혹한 상황극은 계속되어야 하므로.

최근 1회부터 18회까지 모두 1,718분 분량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한 <나는 꼼수다> 제1권(가운데)이 출간됐다.

두 번째 무대: 곽노현의 고해성사실

최종 공판 이틀 전, 2011년 12월 29일. 참관석에 등을 돌리고 곽노현 교육감이 저편에 앉아 있다. 그는 저기에 카키색 수의를 입고 앉아 있다. 핸드폰 벨소리가 나자 청원 경찰의 눈총을 받고 한 사람이 급히 나간다. 과중한 업무에 지친 샐러리맨 표정으로 검사들이 표정 없이 앉아 있다. 지겨워 죽겠다는 표정의 피의자들 옆자리에 경찰도 보인다. 변호사의 말 한마디를 놓칠 새라 꼼꼼히 되묻고 확인하는 초인적 인내심을 보여 주는 판사도 있다. 이들 사이에서 곽노현 교육감은 스포트라이트를 한 가득 받고 있다.
저 무대 위에서 곽 교육감은 근대적 이성을 수호하는 법의 논리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고해성사를 통해 자신의 진실을 밝히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과 속을 가로지르는 고해성사실의 작은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한 줄기의 빛에 의지하며 곽 교육감은 진실을 고백하는 신앙인의 역할로 등장한다. “저는 부패의 DNA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2억을 건넨 부인할 수 없는 물증 앞에서도 그는 심지어 당당했다. “그것은 선의의 부조였습니다!”
이러한 곽노현과 유일하게 시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은 법대 동기인 강경선 교수다.(그들이 법률가가 아닌 법철학자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다음날 마지막 공판에서 그는 한 술 더 떠 박명기 교수에게 2억을 주자고 한 것은 자신의 제안이었으니 “판사님! 만약 우리에게 죄가 있다면 저를 더욱 엄하게 처벌하십시요!”라고 했다. 곽노현이 덧붙인다. “이해가 안가시겠지만 강 교수와 저는 신앙 안에서 일반인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이것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 왔습니다!” 곽노현도 자신의 세계가 강 교수를 제외하고는 공유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영장 실질 심사 최후 진술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과 달리 진실은 인격적이고 규범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진실은 고해의 대상이지 공방의 대상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는 건 때로는 불편하고 위태롭고 두렵기까지 합니다. 정황에 따라서는 너무나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 살면서 이런 일 저런 일 겪다 보니 때로는 불편하더라도 진실이 오래 간다는 걸, 결국은 승리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진실에 대한 고해성사만이 나를 살리고 사회를 살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사건이 불거진 이후 지금까지 기자회견을 통해, 그리고 검찰조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숨김없이 말하기로 마음먹고 실천했습니다. 설령 여론의 법정에서 잠시 동안 오해와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국가의 법정에서 법적으로 자기부죄의 위험성이 있을지언정 진실에만 충성하고자 했습니다.”
곽노현 교육감은 2억 원을 상대 후보에게 건넨 사실을 근거로 기소된 위기 국면에서 자신은 오로지 진실에만 충성하고자 한다고 선언한다. 이것은 사실상 근대적 이성의 언어인 법 체제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물론 곽 교육감도 법의 논리를 통해 자신의 진실을 납득시키고자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건네준 2억은 선의였을 뿐이라는 그의 진실은 법적 논리와 어떤 지점에서 만나는 듯하다가도 금세 미끄러져 현실에 안착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1심에서 교육감 당선 무효형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가 적어도 이 사건을 법정에서 입체적으로 재현해 내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쏟아 부었다는 것은 이 연극 무대를 관람한 사람들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었다. 김형두 판사는 피의자와 변호인 사이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와 항변의 기회를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열어 두고 치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했다. 피의자가 다른 피의자를 심문하는 것도 허락했고 심지어 피의자가 인용하는 한자 성어까지 정확히 다시 되물었다. 그리고 피의자가 법정에서 제시되는 모든 증거, 인터넷에 익명으로 올린 글에서부터 변호사가 최후 변론에서 사용한 만화까지 제출할 것을 요구할 정도로 어떤 것도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이 재판에 소요된 오랜 기간 동안 그가 어떻게 작은 단서와 말 한마디 놓치지 않고 진공청소기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여 유례없는 ‘아카이브’를 만들어 왔는지 한눈에 그려졌다.
하지만 사건을 아무리 완벽하게 재현해 낸다고 해도 곽 교육감이 주장하는 ‘실체적 진실’이 현실적으로 법 논리에 기반한 해석을 지배한다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왜냐하면 곽노현의 진실 주장은 논쟁을 통해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법이라는 일반적 장치가 아니라, ‘고해’라는 특수한 장치 안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4개월 여의 재판 기간, 22번의 집중 심리가 행해진 그 긴 시간 동안 ‘법 장치’와 ‘고해 장치’는 서로 맞물려 돌아가며 서로의 모순에 마스크를 씌워 주거나, 나아가 이전에 가능하지 않았던 새로운 합리성의 장을 열어 주는 역할을 했다. 여기서 잔혹한 상황극은 점점 흥미로워졌다.

2010년 곽노현이 교육감 예비 후보 시절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 학생인권 신장 정책협약식’에 참석해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모습(왼쪽)과 2011년 곽노현의 재판 진행 기간 중,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곽노현 교육감 사퇴를 촉구하는 보수 단체 ‘활빈단’의 홍정식 단장의 모습(오른쪽)이 묘하게 대치를 이룬다.

무대를 나오면서

무대는 막을 내렸다. 관념과 이성으로 논쟁하려 했다면 볼 수 없었던 두 편의 상황극이었다. 그렇다. 이 두 개의 잔혹한 상황극은 예술가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다. 들뢰즈는 예술의 뿌리를 리토로넬로, 즉 ‘파동’이라고 정의했다. 예술의 생태적 조건은 공격과 방어, 그리고 생식과 같은 동물 생태계의 운영 원리에서 발생하는 파동이다. 이것이 근대적 이성의 견고한 체계에 파열구가 발생하고, 컬러풀한 힘의 관계가 작동되는 현실 정치가 예술가에게 최고의 연극 무대를 선사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연극 무대는 표제화되고 박제화된 관념의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술가를 위한 연극 무대는 관념의 지배 아래에 있는 의미 생산이 그 목적이 아니다.
서로 먹고 먹히는 동물적 생태계의 피비린내가 발생시키는 잔혹한 상황극의 목표는 정의에 있지 않다. “나는 말이나 글로써 정의를 다투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다만 인간의 고통과 소망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나는, 겨우, 조금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소설가 김훈의 고백은 예술가를 위한 연극 무대를 관람하고 나가는 우리가 느끼는 한계이자 또 다른 가능성이다.

요괴들, ‘미술의 메카’ 뉴욕에 서다

<Drag On N.Y>전 참여작가. 왼쪽부터 박민하 이인혜 최다찰 이준복 호경윤

요괴들, ‘미술의 메카’ 뉴욕에 서다

글 | 호경윤 수석기자

마침내 ‘동방의 요괴들’의 꿈이 실현되었다! 요괴들이 ‘현대미술의 메카’ 뉴욕에 진출했다. 2009년 출범 당시부터 장차 아시아를 대표하는 ‘요사스러운 귀신’ 같은 신진 작가를 발굴, 육성하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동방의 요괴들’. 드디어 그 이름에 걸맞은 글로벌 프로젝트를 진행, 젊은 한국 작가의 해외 무대 진출에 한 걸음 나아가게 된 것이다.

<Drag On N.Y>전 전시 전경

용띠해 벽두, 첼시를 급습한 ‘동방의 요괴들’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예술가가 선망하는 도시는 단연 파리였다. 그러나 이제는 뉴욕이다. 뉴욕은 전세계의 작가들에게 도전의 땅이다. 지난 1월 뉴욕을 방문할 당시, 가고시안갤러리에서는 런던 출신의 데미언 허스트의 개인전이 3개 지점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 또한 뉴뮤지엄에서는 벨기에 작가 카스텐 횔러가 3개 층을 관통하는 미끄럼틀을 설치해 개관이래 최다 관객이 들었다. 첼시에서는 중국의 아이 웨이웨이, 일본의 온 카와라의 개인전도 열리고 있었다. 전세계의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모여 있는 뉴욕, 바로 그곳에서 ‘동방의 요괴들’의 <Drag On N. Y.>전이 개최된 것이다.
‘동방의 요괴들’이 뉴욕에 진출할 수 있었던 건 아트게이트갤러리에서 장소를 제공해 준 덕분이다. 첼시에 위치한 아트게이트갤러리는 2007년 창립, 현지에서 젊은 갤러리스트로 촉망 받고 있는 한국인 실비아 킴이 관장을 맡고 있다. 아트게이트갤러리는 접근성뿐만 아니라 전시장 조건도 훌륭했다. 외부에는 윈도우갤러리가 있어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한눈에 잡아 끌 수 있다. 내부는 복층 구조로 되어 있어 규모 있는 작품을 전시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한국의 젊은 작가를 뉴욕에 소개하고 싶다는 갤러리 측의 초청에 ‘동방의 요괴들’은 기쁘게 응했다.
작가 초청이나 작품 운송에 대한 예산이 충분치 못한 나머지, 개인이 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에서 참여를 희망하는 작가를 모집했다. 그 결과 이준복(2009), 이국현(2010), 김규리 박민하 이인혜 최다찰(2011)이 참여하기로 결정됐다. 전시 제목은 한국 젊은 작가의 작품을 뉴욕으로 ‘끌어 와서(Drag)’ 소개한다는 의미로 <Drag On N.Y>라고 정했다. 또한 ‘Dragon’이라고 읽히는 이 제목은 올해가 용띠해라는 점과 함께 ‘요괴’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Drag On N.Y>는 주제전이라기보다는 참여작가 개개인의 예술적 역량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6명의 참여 작가들은 각기 다른 매체와 주제의 개성 넘치는 작품들로 뉴욕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비교적 회화나 사진 등 평면 작품이 익숙한 첼시 화랑가에 젊은 작가들의 재기 넘치는 미디어, 설치 작품이 신선한 인상을 주었다. 또한 남북 분단과 같은 한국의 특수한 사회적 정치적 배경을 예술적 감수성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나 화려한 색감과 독특한 재현 방식으로 그려 낸 회화 작품도 주목을 끌었다.

김규리 <이층에서> 리넨에 유채 91×116.5cm 2011

개성 만점 미디어 설치 작품

미디어아트를 통해 다른 이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그 의미를 증폭시키는 데 관심이 많은 이인혜는 이번 전시에서 <구멍난 얼굴북-희노애락> 연작 2점을 출품했다. 작가는 어렸을 적 좋아했던 구멍난 그림책(타공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특히 작가는 각기 다른 사연이 있으면서 동시에 닮은 구석도 많은 인간사의 희노애락이 타공책이라는 포맷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컨셉트를 실제로 책으로 만들고, 미디어를 이용한 또 다른 버전 <구멍난 얼굴들-희노락애: 무한 루프>도 제작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얼굴들 사이의 미세한 차이와 연관성을 보여 주면서, 인물들의 감정과 스토리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한다. 뉴욕에서 10여년 동안 거주해 온 이인혜는 한국에서는 인문학을 전공했고, 미국에 건너온 이후 다시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그래서인지 한 갤러리 관계자는 이인혜 작가의 작품은 미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고 평했다. 특히 이인혜는 이번 전시의 참여 작가 중 유일하게 뉴욕에서 살고 있어, 현지에서 전시 진행을 많이 도와주었다.
작가 박민하는 이번 전시에 3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나는 유령을 봅니다> <유령소풍>과 함께 선보인 <단동 여행기>는 최근에 제작한 신작이다. <단동 여행기>는  2010년의 <유령소풍>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작업이면서도, 동시에 작년부터 미국에서 거주하며 생긴 새로운 관심사를 반영하고 있다. 미국에서 “당신은 남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북한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은 작가는 분단 현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단동 여행기>는 지난 2011년 7월, 단동부터 압록강과 두만강에 이르는 중국과 북한 국경지대에 있는 관광지를 직접 여행하면서 촬영한 짧은 영상들로 이루어진 비디오 에세이다. 관광객을 유도하기 위해 해당 지역을 테마파크처럼 세트화시킨 이 국경지대에서 사람들은 기념사진을 찍고, 압록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크루즈를 즐기며 지나가는 북한사람들을 신기한 듯 망원경으로 바라봤다. 작가 역시 마치 사파리를 즐기듯이 국경 너머로 카메라를 줌인하여 그들을 ‘보는’ 데 열을 올렸다. 여기서 작가는 과연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하게 되었다. 이 비디오 작업은 ‘북한’ 자체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라기보다는, 관광객 혹은 남한 사람으로서의 시각 프레임을 넘어설 수 없었던 관념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박민하와 동시에 북한을 소재로 다루면서 흥미로운 병치를 이루었던 최다찰의 작품 <The Reality Hunt> 역시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된 신작이다. 지난해 예일대 대학원에 진학한 최다찰의 작품은 과거 한국에서 봤던 작품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어 보인다. 기존의 작업들이 ‘이미지 소유의 정당화’에 대해 질문하는 작업이었다면, 최근작은 조형 요소 하나하나마다 타당한 이유를 찾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특히 출품작 <The Reality Hunt>는 북한에 고향을 둔 할아버지 때문에 아련한 노스탤지어로 남아 있던 북한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담아 내고자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몇 해 전부터 성탄 시기에 애기봉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설치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이에 작가는 이번 겨울 트리의 조명장치가 점등된 모습을 담으려 일부러 한국에 들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트리의 조명이 철거된 것. 오기 전부터 장기간 동안 리서치를 했던 차라, 철거 소식에 작가는 크게 실망스러웠다. 그렇지만 작가는 계획대로 애기봉을 방문, 그때 찍은 사진을 중심으로 달라진 상황을 재맥락화시켜 새로운 작품을 제작했다.

최다찰 <The Reality Hunt>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2

젊은 작가들의 회화적 감수성

이준복은 이번 전시에 회화 작품 <Pattern SB4CT 0085-0>와 설치 작품 <Reorder>를 냈다. 둘 다 200호가 넘는 대형 작품이었는데, 현재 거주 중인 런던에서 작가가 직접 가져왔다. 두 작품의 매체는 다르지만, 모두 아줌마 옷에 그려져 있는 꽃무늬 패턴을 이용한 것이 공통점이다. 여성복 디자이너인 어머니를 둔 덕택에 어렸을 적부터 아줌마 옷을 자주 보면서 자란 작가는 옷감의 화려한 패턴을 표현한다. 그에게 ‘꽃무늬 패턴’은 한국 사회의 또 다른 풍경이며, 작가는 의복의 패턴과 그 속에 잠재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욕망까지 표현하고자 한다. 한국의 관객들은 그의 작품을 보면 단번에 ‘아줌마 옷’을 떠올리겠지만, 뉴욕의 관객들은 사회적 컨텍스트보다는 화려한 색감과 꽃의 표현 등 오로지 조형적 측면에서 바라보며 매우 흥미로워 했다.
한편 김규리의 회화 작품 <이층에서> <잠의 방>  <하늘색 방>은 2008년부터 작가가 그려 온 ‘가구가 된 사람들’의 연작이다. 실내 풍경에 등장하는 침대 소파 테이블 등이 모두 사람으로 표현되어 있다. 즉 사람의 사지가 가구의 네 다리가 되어 바닥으로부터 평행하게 버티고 서 있다. 다소 경직된 포즈로 가구가 되어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시스템 안에 제재된 현대인을 은유하고 있다.
김규리의 그림이 번뜩이는 상상력과 재치로 주목을 끌었다면, 이국현의 그림은 극사실적 표현으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의 작품 <Pakage+ ism>은 관음증을 자극하는 듯한 가면을 쓴 화려한 여인의 모습으로 묘한 섹슈얼리티를 이끌어 낸다. 특히 갤러리 2층의 계단 근처의 독립된 공간에 걸려, 더욱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또한 이국현은 이번 전시에 그동안 한 번도 선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시리즈 작업을 전시했다. 우주복을 입은 사람, 비너스상, 깨진 계란, 로케트, 확성기 등 이질적 요소들을 마치 콜라주하듯 그린 <Comunication Problem>과 <Birth of Venus>가 그것이다. 이 시리즈는 올해 하반기에 개최될 개인전에서 본격적으로 소개될 예정이다.

위·이인혜 <구멍난 얼굴북-희노애락> 책, 엽서 2011
아래·<Drag On N.Y>전 오프닝 전경

글로벌 무대로의 첫 걸음, 그 성과와 과제

전시의 주인공은 작가다. 따라서 뉴욕에서 열린 <Drag On N. Y.>전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동방의 요괴들’ 자신이다. 특히 작가 박민하에게 이번 전시는 상당히 의미가 컸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그동안 각기 진행되었던 3점의 작업을 하나로 묶어서 보여 줄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영상 작품이 두 개나 있어서 설치가 까다로운 상황이었지만,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필요한 모든 장비를 구하고 설치까지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다. 바쁜 일정 속에서 다른 작가들과 작업 이야기를 나누고 전시를 만들어 가는 과정 역시 매우 즐거웠다.” 또한 작가 이인혜는  “서울에서 만난 좋은 인연이 뉴욕까지 이어지게 되어 기쁘다. 개인적으로는 작업에 등장했던 친구들이 오프닝에 와줘서 더욱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며 전시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무엇이든지 ‘처음’은 서툴고 아쉬움이 많다. 그럼에도 ‘동방의 요괴들’의 첫 뉴욕 전시는 참여 작가와 갤러리 관계자, 그리고 주변의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었다. 물론 ‘동방의 요괴들’의 해외 프로그램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 간의 해외 프로젝트 중 가장 큰 규모였고, 거리도 가장 멀었기에 전시 준비 과정에 예기치 않은 일들이 생겼다. 우선 작가들이 전시 현장에 오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미국에 체류 중이었던 박민하 이인혜 최다찰, 런던에 유학 중인 이준복이 갤러리에 직접 와서 작품을 설치했고, 김규리 이국현은 평면 작업이라는 특성으로 작품만 보냈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어 선박보다는 항공편으로 보내야 하는 까닭에 운송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이국현이 보낸 회화 작품 3점 중 1점이 파손되는 일도 생겼다.
오프닝을 준비하면서 가장 큰 걱정은 홍보였다. 첼시에 워낙 갤러리가 많은 데다, 동양에서 온 낯선 작가들의 전시에 과연 사람들이 얼마나 올까 싶었다. 다행히 미주 《한국일보》에 기사도 게재되었고, 많은 관객들이 전시장을 찾았다. 특히 <Drag On N.Y.>전이 오픈하는 날 근처 두산갤러리에서 이동욱 작가의 개인전도 열렸다. 한국미술 관계자들이 두 갤러리를 오가며 마치 ‘미국 속의 작은 한국’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New Face’ 출신으로 ‘동방의 요괴들’의 선배격인 이동욱 작가를 비롯, 구민자 김종호 박미나 박숙희 이은우 이주연 조선령 최두은 최태윤 홍범 황진영 등 뉴욕에 체류하는 한국작가들과 큐레이터들이 ‘동방의 요괴들’의 뉴욕 첫 전시를 축하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객들도 많이 왔다. 《Art in America》의 수석기자 리처드 바인을 비롯, 뉴욕 미술계의 전문가들과 컬렉터들이 한국에서 온 젊은 작가들에 호기심을 갖고 오랜 시간 갤러리에 머물렀다.
2012년 새로운 식구를 맞이한 지금, ‘동방의 요괴들’은 좀 더 장기적인 시각에서 글로벌 프로젝트를 체계적으로 마련하고자 한다. 지난 4년간 국내에서 축적된 다양한 프로모션 경험을 바탕으로 뉴욕뿐 아니라, 유럽 아시아 등지로 ‘요괴들’의 활동 무대를 점점 더 넓혀갈 것이다. 미술 한류가 ‘동방의 요괴들’에서부터 일어나길 기대해 본다.

‘집 속의 집’, 공간들의 대화우 정 아·포스텍 교수

서도호 1962년 서울 출생. 서울대 동양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 미국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 회화과, 예일대 대학원 조소과 졸업.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한국의 대표작가로서, 2001베니스비엔날레 및 2010베니스건축비엔날레 한국관과 2010리버풀비엔날레, 2003이스탄불비엔날레 등 여러 국제미술행사에 참가했다. 최근 시애틀미술관(2011)을 비롯하여, 로스앤젤레스현대미술관 휘트니미술관 테이트모던 모리미술관 MFA휴스턴 브루클린미술관 헤이워드갤러리 리만머핀갤러리 등에서 여러 전시에 참여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구겐하임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 휘트니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집 속의 집’, 공간들의 대화

인터뷰우 정 아 · 포스텍 교수

WOO 2003년 아트선재센터 개인전 이후, 근 10년 만에 한국에서 전시를 연다.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생존하는 한국작가의 개인전이 열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들었다.
SUH 이번 개인전에서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한 번도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건축가 렘 쿨하스가 디자인한 전시 공간에 대한 물리적 개념적 차원의 반응이 전시의 큰 요소가 될 것이다. 나아가 미술관이라는 제도적인 공간을 ‘사이트’라고 생각하고 작품을 설치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천으로 만든 주거 공간, 즉 모두 내가 직접 살았던 집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처럼 사적인 공간을 제도적인 공간 속에 삽입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중요한 의미다. 물론 이미 외국에서 전시된 작업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작품은 장소특정적이다. 특정 장소에 설치된 것을 보지 않은 관객에게는 모든 작품이 신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부분이 가장 기대된다.
WOO‘장소특정적’인 성격을 더 설명하자면?
SUH 나의 첫 번째 천 작업은 고정된 건물을 운반 가능한 형태로 만든 것이다. 말하자면 원래의 장소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전시를 위해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순간, 또 다른 작품으로 탄생하는 셈이다. 처음부터 이동가능성을 가지고 시작된 작업이기 때문에 ‘장소특정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전시를 할 때마다 ‘장소특정적인 작품이 다른 장소에 설치될 때 그 의미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아니 과연 변화하느냐’의 문제를 가장 진지하게 고민한다. 일례로 이번 전시에 소개될 영상 작업 <문(Gate)>은 지난해 말 미국 시애틀미술관의 의뢰로 만든 작품이다. 미술관에서 동양미술 컬렉션을 소재로 <루미너스-아시아의 미술(Luminous-The Art of Asia)>전을 기획하면서, 이 컬렉션과의 상호작용 결과물로서 새 작품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약 1년 간 담당 큐레이터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시애틀미술관 컬렉션을 이해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고, 한편 내 작품을 통해 야기되는 다양한 질문을 바탕으로 해당 전시의 방향이 결정됐다. 정리하자면 어떤 독립적인 작품을 그냥 미술관에 가져와 전시하는 게 아니라, 미술관의 문제적 관행(만약 문제가 있다면 말이다)에 대해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며 그 과정을 어떤 형식으로든 전시에 반영하고, 그 결과물로 파생된 작품을 전시한다는 계획이었다. 따라서 <문>은 물리적으로나 맥락적으로 시애틀미술관을 위한 장소특정적인 작업이다. 그런데 <루미너스-아시아의 미술>전이라는 큰 맥락은 남겨 둔 채 이 작품만을 리움으로 옮길 수 있을 지 많이 고민했다.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해서는 그것이 제작된 배경에 대해 전시도록이나 전시장의 월텍스트를 통해 충분히 설명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당시 <루미너스-아시아의 미술>전에서 나는 ‘이동의 장소로서의 미술관(Museum as a space of displacement)’이라는 나의 관점을 작품과 큐레이터와의 대화를 통해 부각시키고자 했다. 이제 그 작품을 리움으로 옮겨옴으로써 그러한 관점을 더 극명하게 나타내게 됐다.
WOO 그렇다면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고려하는 ‘장소’를 ‘렘 쿨하스의 건축 디자인’이라는 물리적 요소와 ‘한국’이라는 문화적 환경으로 양분하여 이해해도 되는가?
SUH 내 작품은 단지 렘 쿨하스 디자인의 물리적인 부분에만 상응한 것이 아니다. 쿨하스는 리움의 블랙박스를 조각적 공간 또는 건축적 조각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건물 안에 이질적인 요소를 삽입한 것이다. 즉 블랙박스는 ‘건물 안의 건물’이다. 그런데 이번 전시 제목이 ‘집 속의 집(Home Within Home)’이다. 그 동안 추구해 온 장소특정성의 개념을 명확하게 보여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쿨하스가 지은 집 안에 서도호의 집이 들어가는 거다. 크게 보면 개인적이고 사적인 가정집이 미술관이라는 집단적 공적 제도적인 공간과 대화를 나누는 셈이다. 내 천 작업들은 모두 반투명하기 때문에,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이 작품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 멀리 떨어져서 전시장을 바라본다면 작품 안에 관객이 있고, 그들이 작품을 아래서 올려다보거나 옆으로 지나가면서 작품과 여러가지 관계항을 만드는 장면을 보게 될 것이다. 그 관계항은 단지 작품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 공간을 포괄하는 다층적인 관계항이 될 것이다. 더욱이 내가 지금까지 살았던 다섯 채의 집을 천으로 만든 작업들이 한 장소에 모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과연 어떤 효과를 낼 지 나도 무척 궁금하다.
WOO 작품이 기본적으로 이동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그런데 그 주제는 집, 즉 움직이지 않는 곳이지 않은가. 이 이율배반적인 작업을 작가가 노마딕한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집을 그리워하는 것에 대한 예술적인 해결책이라고 봐도 좋은가?
SUH 흔히 집이 ‘마음의 고향’이라고 하는 것처럼, 집이 변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개념 자체가 환상이다. 집이란 한 곳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내가 가는 곳에 따라가는 것, 언제나 반복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집에 대한 이러한 의견은 일반적인 견해와는 차이가 있다. 물론 집을 향한 그리움이나 상실감에서 내 작업이 시작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노스탤지어나 향수병과 직결된 건 아니다. 집이란 한 사람이 태어나서 거쳐 가는 수많은 공간이자, 단선적인 움직임 속에 연결된 수많은 장소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 자체가 노마딕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예를 들어 몽고인들에겐 ‘성을 짓지 말라. 성을 지으면 공격을 받아 멸망할 것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유목민이 생각하는 건축, 집에 관한 생각을 정확하게 보여 주는 말이다. 정착 문화인 농경 사회에서는 집을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겠지만,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WOO‘정착’의 반대로서 ‘유목’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유목민의 삶만이 존재했다면 이동성 자체가 집이 될 수 있다는 뜻인가?
SUH 그렇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고의 전환을 돕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에 따라 집착의 종류와 정도도 다르다. 인생이란 하나의 긴 여정이자 목적지 없이 그저 통과하는 공간들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 작품에는 이러한 과도적인 공간들에 대한 관심이 집결돼 있다. 즉 인생에 시발점과 종착역이 있다는 사고방식과는 분명 다른 생각인데, 이건 노마딕하다기 보다는 불교적인 사고방식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인이라면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알게 모르게 항상 듣고 접하고 누구나 연상할 수 있는 개념이다. 굳이 노마드라고 이름 붙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WOO ‘노마드’라는 표현이 싫든 좋든 작가는 이동을 많이 한다. 그런데 2001년 9. 11 테러 이후, ‘노마드’를 찬양하던 1990년대의 다문화주의와 글로벌리즘의 질서가 완전히 변하지 않았나? 이동이 많은 작가의 삶에 변화나 불편함은 없었는가?
SUH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9. 11 당시 나는 뉴욕에 있었고, 바로 사흘 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엄청나게 보안이 강화된 공항을 이용하기도 했다. 물론 말할 수 없이 끔찍하고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반인륜적인 사건이었지만, 그 결과로 세상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도 생각한다. 그 사건은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면서 갈등의 형태로 표면에 나타나게 된 결과이지만, 길게 보면 그로 인해 타인에 대한 관심이 더 열리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9. 11을 겪은 뒤, 내 안에 나도 의식하지 못했던 타문화에 대한 무지가 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상당히 놀랐다. 경제적 문화적인 측면에서 분명 ‘글로벌리즘’의 부작용도 있겠지만, 지금 세상은 통합의 장으로 나아가고 있다. 여기에 일조한 것이 물론 인터넷이다. 바로 지금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것은 어려울 지 몰라도 인터넷을 통해 세상이 점점 더 열리고 있다. 오늘날의 현상이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의 사조가 퇴색하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 몰라도, 기본적으로는 갈등이 해소되리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갖고 있다.

<계단(Staircase)> 반투명 나일론 가변설치 2007 국립현대미술관 설치 전경 2010

아름다움은 단지 모든 것이 완성되었을 때 나온 것일 뿐

WOO 이번 전시에서는 건축 작업만 소개하고, 인물 군상 작업은 한 점도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SUH 2003년 아트선재센터 개인전에서는 천 작업이 하나도 소개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전시장의 공간적 한계 때문이었다. 반대로 이번에는 약 10년 만에 개인전을 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때 소개했던 군상들은 모두 배제하게 됐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건축만 모아서 보여 준다고 말한다면, 내 작업이 마치 건축과 군상으로 양분되는 것처럼 들릴 것이다. 그것은 사실 표면적인 수준의 이야기이다. 궁극적으로 내 작품은 모두 개인적인 공간과 그것의 크기와 의미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다. 따라서 집과 공간, 유니폼 같은 옷이나 군상 모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에 대해 탐구한 결과물이다. 건축이나 군상 작업 모두 결과적으로는 한통속이다.
WOO 옷과 집이 모두 개인적인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전시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그것을 보게 되면 결국 공적인 관계가 되는 게 아닐까? 작가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 군상 작업은 2001년 베니스비엔날레의 한국관에서 소개된 <공인들(Public Figure)>일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국가적인 기념비에 저항하는 반기념비, 혹은 역기념비가 틀림없다. 즉 비엔날레와 국가관이라는 국가주의적 관행에 대해 심미적인 비판을 제시한 것은 아닌가?  
SUH 그렇다. 물론 그런 태도가 극명하게 표면에 드러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내 배경을 생각하면 나는 기득권이자 제도권에 속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또 대단히 혼란스러웠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지만, 운동권에 참여한 학생도 아니었다. 그런데 아마도 믿진 않겠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반기득권적 반상업적 반제도적 반기념비적 반천재적인 성향이 있다. 미술관이라는 제도와 기념비적인 미술의 관행에 저항하기란 아마도 계란으로 바위치기 정도밖에 안 되겠지만, 예술의 태생이 원래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어떤 정치적 사건이나 역사를 구체적으로 비판하거나 작품화한 적은 없다. 그리고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얻게 된 당시 익숙한 시각적 언어를 사용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고등학교 교복(High School Uni-Form)> 작업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옳다 그르다의 판단, 정치적인 판단은 끝까지 보류하고 싶다. 그것은 보는 이들의 몫이다. <공인들>도 얼핏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기단을 받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억압에 고통을 받고 있는지, 아니면 전체가 주는 힘을 찬양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WOO‘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작가는 무척 아름답게 바위를 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현대미술은 사회 비판적, 제도 비판적인 아방가르드의 계보를 따른다. 여기서 아름다움은 그 상극이다. 나는 때때로 아름다운 미술 작품을 보면서 순전히 감정적으로 감동을 받을 때 지적으로는 죄책감을 느낀다. 아름다운 작품에 대한 부담은 없는가?
SUH 내 작품이 아주 좋은 예다. 학교를 다닐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뷰티’라는 단어는 아주 ‘나쁜 말(F word)’이다.
WOO‘터부’라고 하자.
SUH 맞다, ‘뷰티’는 터부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작품을 아름답게 만들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물론 나는 사실 그것을 염두에 두지도 않고, 작품을 아름답게 만들려고 ‘절대’ 노력하지도 않는다. 다만 저절로 그렇게 됐을 뿐이다. 작품 전체를 볼 때 심미적인 부분에 대한 결정은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결국 ‘과연 미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이 이어지겠지만, 사실 내 작품을 보고 왜 아름답다고 느끼는가를 파고들기 시작하면, 그 이유는 몇 가지 안 된다. 내가 고민하는 건 천 색깔을 결정하는 것 정도다.
WOO 그렇다면 천 색깔은 어떻게 결정하나?
SUH 처음에는 천을 사용해서 작품을 이렇게 많이 제작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 천으로 성북동 한옥 집을 만들 때는 옥색에 가까운 하늘색을 골랐다. 물론 아름다운 색이지만, 아름답기 위해 고른 것이 아니다. 실제로 전통 한옥의 벽은 흰 색, 천장은 옅은 옥빛 하늘색으로 도배한다. 내가 살던 한옥을 작품화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색을 골랐다. 말하자면 심미적인 결정이 아니라 개념적인 결정이었다. 이후의 천 작품 색깔은 이전 작품과 다르게 하려는 노력에서 나온 결과가 많다.(웃음) 물론 <블루프린트(Blueprint)>나 <계단(Staircase)>의 경우는 예외다. 그리고 나는 천이라는 재료 자체에 페티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 왜 투명한 천인가? 역시 개념적인 이유였다. 첫째, 가볍고 포장이 쉽고 이동 가능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움직이지 않는 견고한 건축물을 천으로 만든다’는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따라 천을 선택했다. 둘째, 기억이나 섬세한 감성처럼 기본적으로 만져지지 않는 것을 물화(物化)하려는 것이다. 거기에 가장 적합한 재료가 투명한 천이었다. 셋째, 옷과 관련된 암시를 주고 싶었기 때문에 천을 사용했다. 따라서 내 작품에서 보이는 ‘미’는 심미적인 것을 고려한 데서 비롯된 건 아니었다. 다만 모든 것이 완성되었을 때 나온 것이다.
WOO 그러나 관객이 보기에는 고운 색의 투명한 천으로 만든 아름다운 집이 천장에 걸려 하늘거리고 있지 않은가. 관객들은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을 다양한 감수성을 각기 그 집에 투사할 것이다. 거기엔 향수병도 있고 순전히 심미적인 쾌락도 있을 텐데, 작가가 그것을 통제할 수는 없다. 자신의 작품에서 관객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쾌락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SUH 나는 기본적으로 ‘저자’에 대한 개념이 느슨한 편이다. 후기구조주의의 영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물론 나만의 생각은 아니겠지만, 작품은 관객에 의해 완성되는 것 아닌가? 내가 의도하지 않고 예상하지 않았던 해석이 생기는 것을 즐겁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실제로 컨트롤할 수도 없지 않은가. 또한 작품이 작가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능만 지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술 감상이란 보는 사람의 경험 지식 배경이 연금술적 화학 반응을 일으켜서 생기는 일인데, 그 부분에 전혀 개입하고 싶지 않다.

<떨어지는 별(Fallen Star)> 혼합재료 7,844×9,644×3,780cm 2012 샌디에고 캘리포니아대 스튜어트컬렉션 설치 전경 ⓒDo Ho Suh

천은 상실과 부재, 무(無)를 다룰 수 있는 재료

WOO 작품이 유난히 개인적이다. 내가 살던 집이 익명의 군중 속에 노출되고 나면 마치 내 것이 아닌 게 되어버릴 수 있다. 이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가?
SUH 가끔 수 백 명의 관중 앞에서 슬라이드를 보여 주며 내 작품에 대해 강연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자연스럽게 옛날 작품을 보다 보면, 저게 정말 내가 만든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까 인생이란 어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정 그 자체라고 말했다시피, 작품을 만드는 건 그 여정을 이끌어가는 요소이지 결과물로서만은 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 같다. 천 작업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저 허물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작품이 허물처럼 얇기도 하지만…. 완성되고 나면 뱀이 허물을 벗는 것처럼 나는 이미 그 작품을 만들 당시의 그 사람이 아니다. 더 현명해졌든, 늙었든, 바보가 됐든, 이미 지나고 난 일이니….
WOO 아까와 마찬가지로 불교적인 개념으로 들린다. 윤회처럼 말이다.  
SUH 불교에 관심은 많지만 독실한 신자는 아니다. 그냥 경험에서 나오는 말이다. 작품은 일종의 구실인 것 같다.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도 다른 방식으로 비슷한 과정을 겪을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천 작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 정신분석적으로 해석하면서 ‘고향집을 보존하려는 제스처’로 읽기도 했다. 물론 맞는 말이긴 하다. 천 작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주 꼼꼼하게 그 공간을 재야 한다. 장님이 손으로 더듬어서 형태와 공간을 인지하듯이, 아주 촉각적인 감각을 이용해야 한다. 그렇게 공간을 더듬고 안아 주다가, 어렸을 때 낙서한 것을 몇 십 년 만에 발견하고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비유하자면,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 보면 종종 예전 연애편지가 나오지 않는가? 오늘의 목표로 책상 정리를 시작했다가, 그렇게 앉아서 옛날 편지들을 다 읽느라 계획이 빗나가는 그런 일요일 오후가 있다. 책상 정리는 비우는 제스처다. 내 인생의 중요한 이로부터 온 편지라면 그 편지를 읽은 후 남겨 두겠지만, 아니라면 버릴 것이다. 천 작업도 이와 비슷하다. 그 집의 공간을 내 머릿속에 완전히 소화한 다음에 남는 찌꺼기가 천 작업인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자유롭게 훌쩍 떠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서울 집에 계속 살면서 천 작업을 한 게 아니다. 그건 집을 떠난 후에서야 가능한 작업이었다. 결국 천이란 상실과 부재, 무(Nothingness)를 다룰 수 있는 재료, 물질적으로 가장 미니멀한 재료였다.  
WOO 내가 작가의 이번 전시 카탈로그 에세이를 쓰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런 과정이었다.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그것을 보존하고자 하는 열망이 아니라, 완전히 소화하고 나서 떠나도 아프지 않은 그런 상태, 불안과 상실을 해소해 가는 상태를 영어로는 ‘Work Through’라고 할 수 있겠다.
SUH 정신분석학에서 쓰는 바로 그 표현이 맞다. 내 작품을 설명할 때 적절한 표현인 것 같아 자주 사용한다. 예리한 지적이다.
WOO 그런데 한글로는 어떻게 번역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번역’ 얘기가 나오니, 작가의 작품 중 <Who Am We>나 <Some/One>처럼 도저히 쉽게 번역할 수 없는 제목들이 떠오른다.
SUH 제목에 드러난 말장난도 작품과 관련이 있다. 나의 애매모호한 위치와도 관련이 있고. 10년 넘게 고민하고 있지만 공식적인 번역어는 여전히 없다. 근본적으로 번역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예술이란 궁극적으로 그런 것 아닌가? 번역이란 게 필요 없는 때가 오길 바랄 뿐이다.
WOO 작품 <떨어지는 집 1/5(Fallen Star 1/5)>에는 내러티브가 있다. 작가의 서울집이 날아올라 태평양을 건너서 미국집과 충돌해 박힌다는 내용이다.
SUH 거기에 연착륙을 위해서 낙하산을 편다고 했는데, 그 낙하산이 결국 천 작업이 됐다. 천 작업은 공식적으로 미국 화단에 데뷔할 때 시작한 초기작이다. 물론 지금도 천으로 작업을 하고 있지만, 그 작품이 나를 연착륙하게 해 준 낙하산이었다. 전쟁터의 군인들을 적진에 떨어뜨릴 때 살아 남게 하기 위한 장치가 바로 낙하산이다. 내 작품을 두고 ‘전치(Displacement)’를 이야기하는데, 전치의 개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낙하산 병사와 낙하산이다. 새로운 환경에 떨어져서 살아 남아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낙하산 병사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낙하산이다. 그런데 낙하산이 너무 크면 다른 곳으로 날아가고 작으면 너무 빨리 내려와 죽게 된다. 즉 낙하산에는 적당한 크기가 있다. 따라서 낙하산 병사 바로 위의 그 공간은 한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최적 최소의 공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낙하산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던 천 작업은 연관이 꽤 크다. 상징적으로는 천으로 된 집을 만들면서 크기를 재고 만들었던 과정이, 전혀 다른 문화에서 충돌하지 않고 무던히 ‘Work Through’하면서 살아날 수 있게 도와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WOO 여기서 말하는 그 ‘천 작업’으로 <서울 집(Seoul Home)>이 떠오른다. 여러 개의 천 작업 중에서 결국 <서울 집>이 작가를 위한 낙하산이었나?
SUH  아니다. 천 작업 전부를 의미한다. 물론 <서울 집>이 가장 첫 작품이다 보니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처음에는 <서울 집>을 만들어서 L.A.로 가져갔고, 그 다음에는 뉴욕의 아파트를 천으로 만들어서 서울에서 전시했다. 이후로도 나는 내가 살던 집들을 계속해서 천으로 만들고 어떤 형식으로든 작품화하는데 구조적으로는 처음 <서울 집>을 만들었을 때와 다를 게 없다. 전부 새로운 환경에 나를 적응시키기 위한 제스처라는 점에서 말이다.
WOO 서울의 한옥 집에 특별한 의미를 두는 걸 꺼리는 것처럼 들린다.
SUH 개인적으로 다른 곳에 비해 서울 집이 훨씬 의미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옥 자체가 갖고 있는 역사가 굉장히 깊고, 또 내가 가장 오래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나는 13년 동안 살았던 뉴욕의 아파트에서 이사를 했다. 성북동의 한옥 집은 언제든 원하면 다시 갈 수 있지만 뉴욕 집은 그럴 수 없다. 게다가 졸업 후 처음 뉴욕 화단에 발을 들여 놓고 작가로서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냈던 곳이라 이사할 때 굉장히 감성적인 상태가 됐었다.
WOO 그렇지만 보는 이들의 입장에서, 작가의 그러한 떠남에 대한 감정을 더 잘 느낄 수 있는 작품은 역시 ‘한옥 집’인 것 같다.
SUH 재미있는 건 서양 사람들도 한옥 집을 보면서 공감하고 반응한다는 거다. 신기하다. 너무나 생소한 건축 양식일 텐데 말이다.
WOO 사실 한국사람에게도 생소하기는 마찬가지다.
SUH 맞다. 리움의 큐레이터 우혜수 씨도 “우리가 한옥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한옥에 살아 본 사람은 많지 않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집 속의 집 1/11-프로토타입 (Home Whithin Home: 1/11th scale-Prototype)> 스테레오리토그래피 218.8×243.04×236cm 2009~11 ⓒDo Ho Suh

작품과 전시 공간의 관계에 주목하기를

WOO 경기도의 한 호텔에 인물 군상 작업이 설치되어 있다. 이 작품은 만져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으니 어린 아이들이 특히 좋아한다.
SUH 내가 반제도권, 반상업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다. 내 작품은 실제로 많은 부분에서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유도한다. 밟고 올라가고 안으로 들어가니, 미술관 측 입장에서는 악몽 같을 거다. 게다가 천 작업은 매우 연약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반드시 없어질 것이다. 나는 영구적이라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작품을 금전적인 가치로 환산하면 영원성에 집착하게 되겠지만, 때로는 영구적이지 않은 나의 작품이 미술관에 소장되는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될 때도 있다. 나에 대해서도 허상이 많다. 신기하게도 한국의 매체에서 미술가 순위를 매길 때, 반드시 내 이름이 들어간다. 사실 실제로 서도호의 작품을 본 사람이 많지 않을 텐데, 무슨 기준으로 뽑히는 건지 궁금하다.
WOO 작가가 워낙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고, 여러 매체에서 늘 이름을 마주치기 때문이 아닐까?
SUH 그러니 허상이라는 거다. 순위를 매기는 것 자체가 무의한 것인데….
WOO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도호의 작품을 인터넷이나 화보를 통해 봤을 것이다. 사실 화보로도 충분히 그 감흥을 상상하고 느낄 여지가 있지 않은가?
SUH 사실 내 작품은 화보가 더 좋다.(웃음)
WOO 그렇다면 실제로 본 사람만큼 화보만 보고 즐기는 사람들의 감상도 인정해 줘야겠다.
SUH 그게 내 딜레마다. 세상은 점점 더 가상의 경험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는 도록뿐만 아니라 인터넷으로 이미지를 본다. 이렇게 일상은 물리적인 공간과 물질적인 경험에서 멀어지는데 내 작품은 물리적인 3차원의 세계에 완전히 뿌리를 둔 작품이다. 때문에 나는 과연 내 작품이 지금 이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남길 지 많이 생각하곤 한다.
WOO 혹시 이번 전시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SUH 메시지 같은 것은 없다. 항상 그렇듯이 말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다큐멘터리 영상도 상영한다. 대부분 이번 전시에 없는 작품을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그 영상들을 눈여겨 봐줬음 한다. 그러면 비로소 아티스트로서 서도호의 작업 세계를 어느 정도 보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작품만 보지 말고, 작품과 전시 공간의 관계, 전시장 안에서 작품과 작품 사이의 관계를 보길 바란다.
WOO 만약 내가 작가라면, 그 동안의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서 전시를 하고 난 뒤 기운이 빠져서 한동안 작품 활동을 못할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한가? 이사를 다시 가야 새 작업이 시작되지 않는가?
SUH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매번 모든 전시에 최선을 다하지만, 그렇다고 작품을 한동안 못한다면 어떡하겠나. 작품을 계속해야만 존재하는 것이 바로 예술가의 업이다. 이번 전시를 마치고 나면 올해 일본에서 두 차례의 미술관 개인전이 열린다. 8월 초는 히로시마, 11월에는 가나자와미술관이다. 특히 가나자와미술관은 공간이 상당히 아름답다. 투명하고 열린 공간이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곳이다.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전시된 몇 작품들이 가나자와에서 전시되는데, 같은 작품이라도 무척 다르게 보일 것 같다. 그 점이 내게는 중요하다. 그리고 미국에서 오랫동안 추진해 왔던 몇 건의 미술관 프로젝트가 올해 안에 결실을 맺는다. 내심 기대가 된다. 인생에 종착역은 없다고 계속 말했듯이, 앞으로도 다른 전시와 프로젝트가 계속 이어진다. 이번 한국 개인전도 무척 중요하지만, 결국 큰 흐름 속의 진행형으로 느껴질 뿐 그게 종착은 아닐 것이다.

<서울 집/엘에이 집/뉴욕 집/볼티모어 집/런던 집/시애틀 집/엘에이 집> 반투명 나일론 378.5×609.6×609.6cm 1999

<낙하산 병사(Paratrooper-1)> 리넨, 나일론 실, 스테인리스 스틸 콘리트, 플라스틱 비즈 가변크기 2001~03 ⓒDo Ho Suh

도자 공예 미술, 경계를 넘어

데비 한 개인전 전경 2012

도자 공예 미술, 경계를 넘어

글|정 연 심

<세라믹스 코뮌>전과 <데비 한, Being 1985~2011>전은 ‘도자’의 매체적 특성을 매개로 한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전통적으로 도자나 자기, 유리 등은 ‘불’을 이용하여 제작된 ‘기물’로 우리의 실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계몽주의 시기에 편찬된 드니 디드로의 《백과사전》에서는 이러한 매체들을 주로 ‘장식미술(Decorative Art)’이라는 카테고리로 구분하고, 회화와 조각 등의 하위개념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오늘날 서구에서는 ‘장식미술’이라는 용어대신 ‘물질문화(Material Culture)’ 연구나 우리의 일상성과 긴밀한 연계성을 보여 주는 정신적인 매체로서, 이러한 재료들의 속성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현대미술 영역에서도 예술, 사회문화, 페미니스트적 정체성의 영역, 그리고 공공미술 등을 포괄하는 새로운 관점으로 재조명하고 있다.

안준철 <졸업생들> 테라코타 24개 2011 <세라믹스 코뮌>전 전경 2012
오른쪽·앰버 진스버그&조셉 마드리갈 <니드프로젝트> 테라코타, 제빵재료 가변설치 2011

인종 문화 그리고 예술 제도에 대한 질문

작가 데비 한은 11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UCLA와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공부한 한국계 미국인이다. 성곡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그의 작업을 세 시기로 구분하여 전시했다. 청자의 마티에르와 비너스의 도상 등 그의 대표 작업에 익숙한 관람자라면, 마지막 전시실에서 소개된 데비 한의 초기 회화 작업(1985~1996)을 보고 의외의 놀라움을 느낄 것이다. 초기작에서는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이 회화 작업을 통해서 그대로 드러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이는 <Despair>, <Into the Unknown> 같은 제목에서도 엿보인다. 작가가 미국에서 느꼈던 문화적 이질감, 작가로서 성숙하기 위한 노력과 철학적인 모색 등이 신비로운 형상을 통해 드러난다.
데비 한의 작업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비너스 상 작업은 1, 2층 전시장을 메운다. 이 작업은 서구에서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그리스 여신인 비너스 상에 한국의 전형적인 여성 신체를 조합시킴으로써, 서구적 관점의 ‘아름다움’에 대한 염증을 드러내는 타자의 눈을 암시한다. 그밖에도 작가는 한국의 백자나 청자, 나전칠기를 연상시키는 기법으로 제작된 초상화나 기물들을 통해 한국적 기호와 서구적 기호를 혼합시킨다. 이렇게 한국 전통미술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재료와 물성과 함께, 우리가 알고 있던 비너스는 아름다울 수도 혹은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는 일상의 모습으로 변한다. 사실 미국과 한국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은 이질적인 양쪽 문화에 대한 소속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어느 쪽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으며 결국 문화적으로 사이에 ‘끼어 있다’는 의미를 암시한다. 따라서 작가가 창조하는 여성의 몸에는 백인과 흑인, 그리고 우리의 얼굴이 미묘하게 교차한다.
데비 한은 서구의 전통미술에서 많이 등장하는 ‘삼미신(Three Graces)’의 얼굴을 우리의 친근한 모습으로 변형시키기도 하고, 백자의 파편을 투명상자에 빼곡하게 쌓는다. 또한 부식된 청동으로 구성된 비너스를 통해 시간의 경과와 변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질문에 이르기까지 서양과 동양이라는 지형과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을 중첩시킨다. 서구인들이 설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이고, 또 그들의 아름다움에 익숙해지고 예속된 우리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를 ‘캐논(Canon)’으로 규정하는 예술 제도와 규칙은 누가 설정한 것이며, 또 누가 관습적으로 이를 실행했는가. 결국 작가는 한국과 서구의 상징체와 도상들을 역이용하여 예술의 개념과 제도의 규범을 파헤친다.

엄정순 <코끼리 드로잉> 종이에 아크릴릭, 유채, 오일스틱 120×400cm 2010

도자의 반란

도자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도구를 사용할 수 있었던 인간들은 빗살무늬토기 등 다양한 생활도구를 만들었고, 그 표면에 ‘장식’ 본능을 표현했다. 이인범이 기획한 <세라믹스 코뮌>전은 이 ‘세라믹(도자)을 향한 제언’일 것이다. 인간 공동체를 통해 구현된 그 역사가 입증하듯, 이 전시는 ‘도자’의 매체 실험을 포괄하면서도 시대적인 이슈와 관심사를 환기시킨다. 기획자가 밝히듯이 이 전시는 애초에 2011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본전시로 기획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원래의 골격보다는 약간의 변화가 생겼지만, 공적 영역에서 기획된 전시가 와해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애초의 기획의도대로 ‘코뮌’의 성격을 되살린 격이 됐다. 전시에는 총 16명의 개별 작가와 더불어 5개의 프로젝트 그룹이 참여했다.
1960~70년대의 아방가르드 정신이 담겨 있는 이승택의 <유리 오브제>와 <메어진 도자기>에서 로프로 연결된 유리는 바닥에 흐트러지고, 점토와 유약으로 완성된 신상호의 <달 항아리> <명상> <과녁> <말> 등은 단순한 도자의 영역을 떠나 건축적 설치이자 ‘기념비적(Monumentality)’이다. 이들 작품에서 흙과 불, 공기에서 출발한 도자는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재료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의 삶과 일상을 매개해 주는 역할로 귀착된다. 이점에서 최인수의 작업 또한 연결된다. 그의 작업은 흙과의 신체적 만남을 통해 예술작품이라는 ‘인공물’과 자연 본연의 재료가 서로 교감을 이룬다.
신미경의 <고스트 시리즈>는 겉으로는 도자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재료는 비누로, 20개의 작품이 하나의 설치를 이뤄 전시된다. 비누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완벽한 모방인지, 아니면 가짜를 모방한 시뮬라크라라고 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 제목 또한 언어적 유희를 느끼게 한다. 도자나 유리는 모두 깨지기 쉬운 속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모두 부드러운 액체 상태에서 이후 고체 상태로 고정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전부 매체의 ‘연금술적’인 변형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보여 주는 재료들이다. 그러나 비누는 물에 닿는 순간 녹으면서 소멸해버리는 덧없는 재료이기도 하다.
이수경의 <번역된 도자기>는 기물을 여러 번 겹치고 재해석하여 새로운 문화적 해석을 유도하는 작품이다. 과거 도공들은 완벽하게 제작되지 않은 백자나 청자를 모두 없앰으로써 그것의 완성도와 ‘기품’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또한 여기에는 ‘사치품’의 유통거래에 대한 질서를 유지하려는 의도도 숨겨져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도자나 자기 등이 파편화된 순간 이들의 운명은 끝나는 것이었다. 도자 파편은 이수경의 손에서 다시 숨결을 가다듬고 새롭게 탄생한 기물로서의 존재를 보여 준다. 따라서 이수경의 작품은 문화사적 영역 내에서 조명해 볼 수 있는 예술 오브제이다.

강진관요 <청자> 30점(오른쪽) 신상호 <명상> 점토, 유약 300×600cm 2011(뒤)
<세라믹스 코뮌>전 전경 2012

사회와 예술의 영역에서 ‘세라믹’ 다시 보기

앰버 진스버그와 조셉 마드리갈은 <니드프로젝트(K[ne(e){a}d] Project)>에서 신체 각 부위를 형상화한 25개의 세라믹 몰더를 보여 주며, 이것으로 구워 낸 빵을 통해 음식과 공동체, 기물의 관계를 일종의 ‘제례’처럼 형상화한다. 과거 기물들은 실용성 외에도 감상용이나 전시용으로 만들어졌다. 서구에서는 벽에 자기로 된 고급 접시들을 전시용으로 벽에 걸었고, 중국풍에 빠진 리스본의 귀족은 중국의 명대 도자기로 벽뿐 아니라 천장까지 모두 장식하기를 아끼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백자나 청자도 마찬가지 운명이었지만, 이들은 제례 혹은 일상에서 기물로 ‘사용’되었다. 주로 음식을 담는데 사용된 기능성을 이용한 진스버그와 마드리갈의 공동 작업은 기물이 단순한 기물이 아니라 음식을 통한 ‘소통’과 ‘나눔’의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사실을 구현한다. 이는 세라믹을 통한 공동체의 형성, 단수의 ‘나’를 벗어난 복수형 ‘우리’라는 다양한 목소리를 담기 위한 상징적인 제스처인 것이다.
도자의 기능과 실용성은 일상에 녹아 있다.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의 <Some Days It’s Just Not Worthgettingofthetoi let>은 사물들에 대한 인습적인 기억을 새롭게 환기시키는 방식으로, 최지만의 <길 위의 표정>은 일상 속 길 위의 ‘흔적’을 지표화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특히 점토 위에 삶의 흔적을 기록하는 방식으로서, 최지만은 길에서 우연히 접하게 되는 각종 사회적 기호들을 흰색의 모노크롬한 판화처럼 벽 위에 설치한다. 그의 작품에서 길은 일상의 기록이 표시된 지도처럼 ‘여정’을 만들어 내고, 덧없이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기억은 견고한 세라믹을 통해 반영구적인 기록으로 남는다. 한편 작가 나현은 <ARBOL>은 5분 37초 영상작업을 통해 이산과 이동의 여정을 담담하게 그려 내어 현문화의 정체성을 되짚어 보는 작업을 전시한다.
이외에도 공동프로젝트 개념을 실현하는 엄정순의 작업과 안준철의 작업, 그리고 세라믹 주거공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보여 주는 장 피에르 레이노의 작업 등은 도자를 둘러싼 다양한 접근을 보여 준다. 이들의 작업은 흙과 불, 바람, 공기 등 자연의 가장 근원적인 속성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사회와 예술의 영역에서 ‘도자’ 다시 보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는 물질 문화에 묻혀 있던 도자의 정신성과 커뮤니티의 성격을 함께 바라보게 한다.

Round Table

워크스테이션’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2012광주비엔날레 공동감독 5인.  (왼쪽부터) 캐롤 잉화 루 1977년 중국 출생. 《Frieze》 객원편집자. 스웨덴 룬트대학교 말뫼아트아카데미 아시아미술자료실 중국연구원 역임. 낸시 아다자냐 1971년 인도 출생. 독립큐레이터 미술평론가.《Art India》 편집장 역임. 김선정 1965년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2010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전시감독, 제51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알리아 스와스티카 1980년 인도네시아 출생. 2011족자카르타비엔날레 공동큐레이터. 《SURAT》 편집자 역임. 마미 카타오카 1965년 일본 출생. 현재 도쿄 모리미술관 수석큐레이터, 런던 헤이워드갤러리 국제큐레이터. 와싼 알-쿠다이리 1980년 이라크 출생. 현재 카타르 아랍현대미술관(Mathaf) 관장. 와싼 알-쿠다이리는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2012광주비엔날레 공동감독 6인, ‘아시아의 눈’을 모으다

글|김재석 기자

제9회 광주비엔날레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는 3~40대 여성 기획자 6인의 공동감독 체제로 열린다. 그 주인공은 김선정(한국), 마미 카타오카(일본), 캐롤 잉화 루(중국), 낸시 아다자냐(인도), 와싼 알-쿠다이리(카타르), 알리아 스와스티카(인도네시아)이다. 국제 비엔날레에서 공동감독체제가 아주 낯선 일은 아니다. 비근한 예로 2009년 제11회 이스탄불비엔날레를 꼽을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네 명의 여성 기획자와 한 명의 디자이너로 구성된 크로아티아 출신의 기획자 단체 WHW(What, How&for Whom)가 감독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같은 단체도 아니고, 출신 국가, 활동 영역, 동시대미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각기 다른 6명의 기획자를 공동감독으로 묶은 광주의 선택은 파격이다. 다른 국가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는 물리적으로 쉽지 않았다. 시차를 고려해 인터넷 통신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함께 모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광주 카타르 이스탄불 등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2012광주비엔날레의 첫 공식 프로그램인 ‘워크스테이션(Workstation)’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온 그들을 만났다. 공동감독 6인이 작년 4월 광주에서 처음 만난 이후, 딱 10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2012광주비엔날레의 주제를 발표하는 김선정 감독

‘라운드 테이블’, 지식 생산의 새 활로를 모색하다

2012광주비엔날레의 주제는 ‘라운드 테이블(Round Table)’. 이 주제는 일차적으로 6명의 공동감독이 비엔날레를 준비하기 위해 원탁에 둘러앉아 서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과정과 전시 준비 방식을 의미한다. 인도에서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는 낸시 아다자냐는 라운드 테이블이 ‘평등성’을 강조하는 일종의 메타포라고 설명한다. “사회 정치 문화의 위계질서를 제거한다는 의미에요. 라운드 테이블에 모인 순간만큼은 시간과 거리, 예술사의 선형적 구조, 기존 사회 체제와 구조의 억압 등이 일시적으로나마 정지됩니다. 무엇보다 개개인의 주체성과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해요.” ‘라운드 테이블’이라는 전시 주제가 다양한 목소리로 하나의 화음을 내는 과정을 의미하는 만큼, 이들은 동시대 국제 사회가 직면한 문제적 이슈를 전시에 적극 담아 낼 예정이다.   
광주비엔날레는 전시뿐만 아니라 ‘워크스테이션’,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연계한 아티스트 토크쇼와 워크숍, 지역 작가 포트폴리오 공모, 전시 주제와 동명의 전자저널 발행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형 프로젝트로 선보인다. 지난 2월, ‘윤리로서의 자기조직화’라는 주제로 광주와 서울에서 개최된 ‘워크스테이션’은 전시 준비 과정의 다양한 논의를 공유하기 위해 마련한 강연과 토론회이다. 오는 9월 본전시 개막과 함께 2차 워크스테이션이 또 한 번 열린다. 김선정 감독은 이전 광주와 올해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지식 생산’이라는 키워드를 선택했다. “올해 광주가 마련한 프로그램은 지식의 생산을 추구하는 과정에 초첨을 맞추고 있어요. 여섯 감독과 관객이 주제를 둘러싼 여러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 가는 과정을 공유하는 거죠. 이 때문에 도록이란 형식보다는 상호 피드백이 가능한 전자저널을 출간하기로 했습니다.” 전자저널은 동시대미술의 주요 담론을 소개하고 논의하는 ‘플랫폼’ 역할을 맡는다. 전세계의 사상가와 미술비평가, 예술가들을 특정 주제별로 초대해서 이메일로 응답하는 방식을 취한다. 작가와 관객과의 소통 창구도 마련했다. 작가들이 작품 제작 리서치를 위해 광주를 방문할 때마다 작은 워크숍 형식의 아티스트 토크쇼를 개최한다.
사실 많은 미술 관계자들은 올해 광주비엔날레가 6명의 공동감독 체제로 열릴 예정이라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먼저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 속의 전시’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감독들이 큰 주제 아래 각자 자신이 더 잘 할 수 있는 전시를 ‘따로따로’ 준비하는 비교적 손쉬운 방식을 예상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예상을 깨고 의외의 길을 택했다. 작가 선정은 물론 전시와 관련된 모든 결정을 ‘공동’으로 합의해 정하기로 처음부터 원칙을 세웠다. 서로 다른 의견을 상호 교환하는 과정 자체가 흥미로웠던 만큼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오히려 물리적 거리와 시차는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했다. 이들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서로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예상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김선정 감독은 “10개월 동안 혼자 전시를 준비했으면 벌써 참여작가 리스트도 발표하고 커미션 작업도 끝낼 시점”이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전시를 준비한 지난 10개월의 소회를 묻자, 이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인정 이해 관용 소통’이었다. 공동감독 6인은 전시 준비의 첫 과제로 서로의 입장과 문화적 배경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해야 했다. 소통은 그 다음의 몫이었다. 중국의 독립큐레이터이자 미술잡지 《프리즈》의 객원편집자인 캐롤 잉화 루는 감독들의 첫 공식 미팅 후에, 《프리즈》의 온라인 블로그에 〈우리가 조금 아는 이웃〉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또한 인도네시아에서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며 2011족자카르타비엔날레를 기획한 알리아 스와스티카는 지난 10개월이 자신의 전시 기획 방법론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자기 성찰의 시간’이었으며, 작가 선정 과정에서 6명의 감독이 같은 작가를 바라보는 전혀 다른 시각에 놀랐다고 한다.

지난 2월 14~15일, 광주와 서울에서 ‘윤리로서의 자기조직화’라는 주제로 제1차 ‘워크스테이션’이 열렸다. 왼쪽부터 패널로 참석한 반아베미술관 찰스 에셔 관장과 광주비엔날레 공동감독 알리아 스와스티카, 낸시 아다자냐

광주를 ‘창작의 공간’으로 빛내다

공동감독 6인은 서로 다른 의견이 수렴하는 완충지대로 비엔날레가 열리는 도시 ‘광주’를 선택했다. 이들은 5.18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광주의 역사와 광주비엔날레의 발자취를 되돌아 봤다. 광주가 비엔날레라는 국제적 문화 행사와 다층적으로 보다 긴밀히 연결되는 전시를 상상했다. 글로벌과 로컬의 문제가 첨예하게 갈등하는 아시아에서 태어나 활동한 감독 6인의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광주라는 도시에 투영된 결과이다. 이들은 관람객이 메인 전시장을 벗어나 광주 곳곳을 비엔날레의 전시장처럼 관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세밀하게 기획하고 있다. 먼저 광주의 숨겨진 역사와 독특한 문화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리서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도쿄 모리미술관 수석큐레이터인 마미 카타오카는 비엔날레가 열리는 지역 사회와 참여 작가의 관계를 강조했다. “많은 작가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광주에서 작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참여 작가들이 광주를 작품 제작의 소재나 수단이 아니라 창조적 과정의 공간으로 경험하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최종 참여작가 리스트가 아직 발표되기 전이지만, 일부 작가들은 작년 11월부터 광주를 방문해 리서치 작업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전시가 열리기 전, 짧게는 3주에서 길게는 2개월 이상 광주에 머물면서 작품을 완성할 계획이다. 공동감독들은 광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자연스럽게 여러 경로로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방법도 고심 중이다. 지역의 작가 발굴과 창작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포트폴리오 공모’를 실시한다. 광주 전남 지역에서 작품 활동을 하거나, 이 지역 출신 35세 미만의 작가들을 대상으로, 감독들의 심사를 거쳐 비엔날레에 참가할 기회를 제공한다.
6명의 감독에게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전시기획자의 경력에서 또 다른 도전임이 분명하다. 비엔날레의 성패는 결국 감독이 비엔날레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하고, 당대 시각예술 현장에 어떤 비전을 제시하는지에 달려 있다. 과연 이들은 ‘위기’와 ‘범람’이 공존하는 우리 시대의 비엔날레를 어떻게 바라볼까? 이들은 비엔날레가 서로 다른 시대 예술 사회 정치 문화를 공유하는 소통의 장(場)이고, 세상의 모든 예술가와의 만남의 지점이자, 세계의 작은 축소판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한 ‘아시아’와 ‘여성’이라는 특정 주제에 국한하기보다는, 로컬의 맥락에서 글로벌 담론을 관통하는 이야기를 전시에 담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밝혔다. 그들은 ‘공동’의 값진 의미를 퇴색하지 않고, 애써 어려운 과정을 선택했다. 그것은 비엔날레 시스템에 대한 또하나의 도전이다. 지금까지 10개월의 시간을 함께 한 6명의 공동감독은 마치 원탁에 모여 우정을 나눈 기사들처럼 각별해 보였다. 여기사들이 펼칠 화려한 무용담을 기대하며…    

글로벌 마켓 히스토리 2000~2012

데미안 허스트 <L-Lyxose> 캔버스에 혼합재료 34.5×68.5cm 2009
데미안 허스트는 지난 1월 가고시안갤러리 11개 지점에서 동시에 개인전을 개최했다.

글로벌 마켓 히스토리 2000~2012

정리 | 편 집 부

2000

W‘닷컴 버블’(.com bubble) 붕괴.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 IT, 인터넷 관련 신생 기업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던 경제 열풍이 3월 10일 나스닥(NASDAQ) 시장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것을 기점으로 대폭 하락, 경기 불황 시작.

2001

W 닷컴 버블 붕괴에 이은 뉴욕 9.11테러로 소비 심리 위축. 소더비의 가을 근현대 경매 총액이 전년도 대비 절반으로 떨어져 약 1,127억원을 기록.
W 스위스 아트바젤, 9.11테러의 후폭풍으로 미국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 개최 취소. 주최인 MCH스위스 전시그룹은 작품 운송을 시작한 화랑 등에 약 66억원의 손실액 보상.
K 1999년 창립한 서울옥션, 평창동에 서울옥선센터 개관. 서울옥션 36회 경매에서 겸재 정선의 <노송영지>가 7억원에 낙찰. 국내 미술 경매 최고가 경신.

2002

W 제1회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12. 5~8) 개최. 아트바젤의 자매 페어. 스폰서인 스위스 투자은행 UBS가 미술을 통한 자산 운용을 적극 어필.
K 제1회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9. 3~8, 부산 BEXCO) 개최. 주최 한국화랑협회. 아시아 최대 규모로 출범.
K 제1회 서울옥션페어(10. 9~14) 개최. 주최 서울옥션.
K 런던 소더비 경매(11월)에서 박수근의 <악> 시리즈 1점이 예상가의 2배를 넘는 53만2천파운드(약 9억 4천만원)에 낙찰. 한국 근현대회화 경매 최고가 경신.
K 아라리오갤러리 천안 개관.
K 서울옥션, 연간 경매 실적 약 100억원 기록(2000년 50억원, 2001년 70억원).

소더비 경매 장면.

2003

W 크리스티 봄 경매(5. 13)에서 마크 로스코의
<No. 9/와인 색 바탕에 흰색과 검정>(1958)이 1635만950달러(약 182억원)에 낙찰. 무라카미 다카시의 <Miss Ko2>(1996)가 56만7500달러에 낙찰.
W 런던에서 제1회 프리즈아트페어(10. 17~20) 개최. 영국 미술잡지 《프리즈》가 창간.  
W 필립스드퓨리 경매(11. 13)에서 데미안 허스트의 <크고 작은 생물의 표면 아래에 있는 무언가 견고한 것>(2001)이 116만4500달러(약 13억원)에 낙찰.
W 가을 경매 시즌을 맞아 침체됐던 미술시장이 상승세를 보임. 크리스티, 소더비 가을 옥션 시즌인 11월 4일 열린 인상파와 모던, 그 다음 주에 열린 전후 현대미술 경매에서 2000년 이후의 닷컴 버블,
9.11 사태로 떨어진 매상이 다시 상승하여 예측 가격을 웃도는 금액으로 낙찰.
K 뉴욕 크리스티 경매(3월)에 미공개작으로 추정되는 박수근의 <한일>이 112만7500달러(약 12억 4천만원)에 낙찰.
K 아트시카고에 박여숙화랑 박영덕화랑 표갤러리 카이스갤러리 줄리아나갤러리 참가. 표갤러리가 25개 우수 화랑 중 한 개로 선정.
K 아트바젤에 갤러리현대, 국제갤러리 참가.
K 1990년 법제화된 이후 5차례 유보되었던 ‘미술품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법안’(1점당 6천만원이 넘는 미술품 거래에 대해 양도차익의 20%를 세금으로 부과하는 법안)이 12월 18일자로 폐기.

2004

W 소더비 경매(5. 4)에서 파블로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1905)이 1억420만달러(약 1162억8천만원)에 낙찰. 세계 미술 경매 최고가 경신. 구매자는 이탈리아 식품회사 바릴라(Barilla) 그룹 회장 귀도 바릴라.
W 뉴욕 MoMA가 신규 작품 구입을 위해 잭슨 폴록과 장 뒤뷔페의 작품을 방출. 크리스티 경매(5. 11)에서 잭슨 폴록의 <No. 12>(1949)가 1165만5500달러(약 130억원)로 낙찰. 현대미술 경매 사상 최초로 1억달러
(약 1116억원) 돌파. 이보다 1주 앞서 열린 인상파와 모던 경매 총액은 5660만달러(약 631억원).
K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박수근의 <앉아 있는 여인과 항아리>(1962)가 예정가보다 3배나 높은 123만9500달러 (14억6천만원)에 낙찰돼 종전 최고가를 경신.
K 박영덕화랑, 스페인 아트페어 ARCO(1. 29~2. 20) 참가. PKM갤러리, 영국 프리즈아트페어(10. 15~17) 참가. 갤러리현대, 미국 아모리쇼(10. 28~31) 참가.
K 홍콩 크리스티 아시아 현대미술 경매(10월)에 국내 작가 첫 진출. 최소영 김동유 유승호 등 6명 작가의 8작품 모두 낙찰. 한국 젊은 작가 해외 경매에 성공적 진입.
K 서울옥션 92회 경매(12월)에서 고려시대 <청자상감 매죽조문매병>이 10억9천만원에 낙찰. 국내 미술 경매 최고가 경신.
K 조흥은행, 서울옥션과 업무 제휴를 맺고 PB고객 대상 미술 관련 컨설팅 서비스 개시.

세계 현대미술 작가의 미술시장 신용도 지수 ArtTatic.com

2005

W 일본 작가의 작품이 100만달러 호가. 크리스티 경매(5. 11)에서 쿠사마 야요이의 <No. 3>가 119만2천달러에 낙찰. 낙찰 예상 가격은 25~35만달러.
W 크리스티 경매(11. 8)에서 리차드 프린스의 <무제-카우보이>(1989)가 124만8천달러(약 14억원)에 낙찰. 사진 작품 경매 최고가 경신.
W 메트로폴리탄미술관 MoMA 시카고미술관 보스턴미술관 등에서 작품 방출 및 구입. 크리스티 경매에서 마크 로스코, 로이 리히텐슈타인, 프란시스 베이컨 등이 기록을 경신. 경매 낙찰총액은 1억5740 달러(약 1116억원).
K 정부가 미술품을 구입하여 전시나 공공기관, 일반에 임대하는 ‘미술은행’ 제도 도입. 문화관광부는 25억원의 예산을 확보, 향후 5년간 매년 30억원 내외의 작품 구입 계획을 발표.
K 서울옥션 93회 경매(1월)에서 박수근의 <노상>이 5억 2천만원, K옥션 11월 경매에서 <나무와 사람들>이 7억 1천만원, 서울옥션 99회 경매에서 <시장의 여인>이 9억원에 낙찰. 국내 현대 미술품 경매 최고가 연속 경신.
K 서울옥션에서 3월 거래된 이중섭의 <물고기와 아이>가 한국미술품감정협회 감정 및 검찰 수사에서 위작 판명.
K 베이징의 미술 붐을 타고 베이징에 한국 갤러리 연이어 개관. 갤러리이음(7월), 아라리오갤러리(12월).
K K옥션 설립(9월).
K 제1회 서울국제판화사진아트페어(10.21~30) 개최.

2006

W 크리스티 봄 경매(5. 10)에서 나라 요시토모의 <Missing in Action>이 108만달러에 낙찰.
W 중국 작가 작품 가격 상승. 홍콩 소더비 경매(10. 9)에서 장 샤오강의 <혈연 시리즈-대가족 No.15> (1998)이 112만7622달러(약12억5천만원)에 낙찰.
W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중국미술 낙찰총액이
1억천달러(약 1116억원)로 2004년(2200만달러,
약 245억5천만원) 대비 약 10배 상승.
W 소더비 중개 개인 매각(11. 2)으로 잭슨 폴록의 <No.5>(1948)가 1억4000만달러(약 1562억원)에 거래. 미술 작품 거래 현존 최고가 기록.
W 나치 독일에 빼앗긴 회화를 소송을 통해 반환받은 마리아 알트먼이 그 중 1점인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의 초상 1>(1907)을 크리스티의 중개로 개인 매각(6. 18). 이를 에스티 로더의 아들이자 노이에갤러리의 창업자인 로널드가 1억 3500만달러(약 1451억4천만원)에 구입. 미술 작품 거래 최고가 경신. 그 외 4작품을 크리스티 옥션(11. 8)에 출품. 총 1억9300만달러(2154억8천만원)에 낙찰.
W 래리 가고시안 중개의 개인 매각(11. 18)으로 윌렘 드 쿠닝의 <여인 3>(1952~53)이 1억3750만달러
(약 1534억원)에 거래. 현존 작품 거래가 2위 기록. 구입자는 헤지펀드 매니저인 스티븐 코헨.
K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김동유의 <마를린 먼로 vs. 마오 주석>이 3억2200만원에 낙찰. 홍콩 크리스티 경매의 국내 작가 낙찰 최고가 기록.
K 굿모닝신한증권이 표갤러리 및 서울자산운용과 함께 ‘서울명품아트펀드’ 출시(9월). 국내 최초 아트펀드로 75억원 규모. 김흥수 백남준 지다춘 등 아시아 작가의 작품으로 구성. 목표 수익률 연 10%+α.
K 골든브릿지 자산운용과 박영덕화랑 박여숙화랑 갤러리신라 인사갤러리 조현화랑 공동으로
‘골든브릿지 스타아트펀드’ 출시. 투자금액 100억원, 목표 수익률 연 15%.
K 한국화랑협회와 미술품감정협회의 통합으로 ‘한국 미술품 감정 발전위원회’ 발족.
K 제1회 서울오픈아트페어(SOAF) 개최.
K K옥션 온라인 경매 K몰 시작.
K 표갤러리 베이징 지우창 및 다산츠, PKM갤러리 베이징 차오창디 개관.
K 12월 마이클슐츠갤러리 서울 개관.

2000년 기준 현대미술 경매 가격 상승률과 2000~2011 현대미술 경매 낙찰 총액 artprice.com

2007

W 제1회 아트두바이(3. 8~10) 개최. 중동 최초의 국제아트페어.
W 제1회 SH컨템퍼러리(9. 6~9) 개최. 디렉터는 전 아트바젤 디렉터 로렌초 루돌프.
W 소더비 경매(5. 15)에서 마크 로스코의 <화이트 센터>(1950)가 7284만달러(약 808억원)에 낙찰. 전후 미술작품의 경매 최고가 경신. 프란시스 베이컨의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1962)은 5266만달러(약 587억원)에 낙찰. 두 작품의 구매자는 카타르 왕실의 알 타니.
W 크리스티 경매(5. 16)에서 앤디 워홀의 <녹색 자동차의 충돌>(1963)이 7172만달러(약 800억원)에 낙찰. 구매자는 그리스인 컬렉터 필립 니아르코스.
W 10년에 1번 돌아오는 ‘유럽 그랜드 투어’. 유럽의 대표적 미술 행사인 베니스비엔날레, 아트바젤, 카셀도큐멘타, 뮌스터조각프로젝트가 같은 해에 개최.
W 10월 12일, 런던 크리스티 경매(10. 12)에서 위에 민준의 <사형 집행>(1995)이 594만5937달러(약 66억원)에 낙찰.
W 소더비 경매(11. 14)에서 제프 쿤스의 <매달린 하트>(1994~2006)가 2356만1천달러(약 270억원)에 낙찰. 현존 작가 작품 최고가 경신.
K 스페인 ARCO 아트페어에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 15개 국내 화랑 참여. ‘Corea Ahora’를 주제로 한 주빈국 문화 행사에 7개 전시 및 4개 공연, 영화제와 문학제 등 개최.
K 뉴욕 크리스티 경매(3월)에서 김동유의 <콜롬비아 로드-워싱턴DC>가 10만2천달러(약 1억1천만원)에 낙찰.
K K옥션 3월 경매에서 박수근의 <시장의 사람들>이 25억원에 낙찰.
K 서울옥션 105회 경매(3. 9)에서 박수근의 <농악>이 20억원에 낙찰. 이 경매의 낙찰 총액은 113억6600만 원으로 국내 단일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
K 서울옥션 106회 경매(5. 22)에서 박수근의 <빨래터>(1954)가 45억2천만원에 낙찰.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경신. 김환기의 <꽃과 항아리>(1957)는 35억원에 낙찰.
K 홍콩 크리스티 아시아 컨템포러리 경매(5월)에서 홍경택의 <Pencil Ⅰ>이 추정가의 10배가 넘는 7억7천만원에 낙찰. 국내 작가의 홍콩 크리스티 경매 최고가. 이 경매에 출품된 국내 작가 출품작 총 40점 중 39점이 낙찰, 낙찰 총액 29억1천만원. 11월 열린 경매에서 국내 작가 출품작 52점 중 47점이 낙찰,
낙찰 총액 50억253만원.
K 뉴욕 소더비 경매 이브닝 세일(5월)에 이우환 작품 출품. 소더비 메이저 경매에 한국 작가 첫 진출.
K 5월 한국투자증권이 서울자산운용 및 박여숙화랑과 공동 설계로 PB고객 대상 ‘서울아트사모특별자산2호’ 출시, 하루 만에 판매 완료. 80억원 규모의 30명 한정 사모펀드로. 투자 기간 3년, 매년 8%의 배당과 만기시 투자 수익의 15% 지급.
K 7월 굿모닝신한증권이 ‘SH명품아트특별자산투자 신탁1호’ 출시. 120억원 규모의 사모 펀드. 아라리오갤러리가 작품을 선정하여 데미안 허스트, 임멘도르프, 신디 셔먼, 위에 민준 등의 작품으로 구성. 만기 4년 목표 수익율 10%+α.
K 박수근의 <빨래터>(1954)를 둘러싼 위작 논란. 《아트레이드》 창간호에서 위작 의혹을 제기, 서울옥션이 《아트레이드》를 상대로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면서 법정 공방이 시작.
K 삼성이 비자금을 이용해 미술품을 구매했다는 의혹이 제기. 검찰 수사 과정에서 갤러리서미 홍송원 대표가 공개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1964)과 작품 매매를 둘러싼 정황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음.
K D옥션(~2009), 오픈옥션(~2009) 설립. 대구MBC와 K옥션의 제휴로 옥션M 설립.
K 3월 서울옥션과 K옥션의 단일 경매 낙찰 총액이 각각 100억원을 넘김.
K 서울옥션 연간 낙찰 총액이 963억2천만원을 기록. 전년도(270억 2천만원) 대비 3.6배 증가.
5개 미술경매회사(서울옥션 K옥션 D옥션 옥션M A옥션)의 연간 낙찰 총액이 1943억7220만원 기록. 전년도 대비 239% 성장.
K 제1회 아트옥션쇼인서울(코엑스, 9. 12~16) 개최.
주최 서울옥션. 낙찰 총액 363억3천만원 및 온라인
경매 총액 5억6천만원 기록.
K 한국 갤러리 해외 진출. 두아트 베이징 차오창디, 아라리오갤러리 뉴욕 첼시, 아트사이드 베이징 다산츠, 카이스갤러리 홍콩 개관.

로이 리히텐슈타인 <행복한 눈물> 96.5×96.5cm 1964

2008

W 중국 현대미술의 주요 작품으로 구성된 에스텔라 컬렉션이 소더비에 작품 매각. 홍콩 소더비 경매
(4. 9)에서 작품 108점이 총 1788만8575달러
(약 200억원)에 낙찰.
W 제1회 ART HK 개최. 홍콩의 대표적 국제
아트페어로 출범.  
W 소더비 경매(5. 14)에서 프란시스 베이컨의 <삼면화>(1976)가 8628만1000달러(약 962억원)에 낙찰. 전후 미술작품의 경매 최고가 경신. 크리스티 경매
(5. 13)에서 루시앙 프로이트의 <잠자는 공제 조합 감독관>(1995)이 3364만1천달러(약 375억원)에 낙찰. 현존 작가 작품 최고가를 경신. 두 작품의 구매자는 러시아 석유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
W 홍콩 크리스티 최초로 이브닝 경매(5. 24) 개최. 수보드 굽타의 <Across the Seven Sea>(2003)가 119만4791달러(약 13억원)에 낙찰. 인도 작가 경매 최고가 경신.
W 런던 소더비 경매(7. 1)에서 리차드 프린스의
<해외의 간호사>(2002)가 846만7260달러 (94억4천만원)에 낙찰.  
W 런던 소더비에서 데미안 허스트의 신작을 대거 선보이는 기획 경매 <내 머리 속에서 영원히 아름답게>를 개최. 데미안 허스트의 신작 223점 중 218점이 총 2억64만달러(약2239억원)에 낙찰.
W 10월 9일 런던 사치갤러리가 첼시 킹스로드에 이전 개관. 개관 기념전은 <혁명은 지속된다-새로운 중국미술>. 필립스드퓨리의 후원으로 무료 입장.
W 9월 15일 투자 은행 리만 브라더스가 도산.
‘리만 쇼크’로 불리는 국제적 금융 위기 발생.
소더비, 크리스티 가을 경매 낙찰총액이 반감. 출품작 40%가 유찰. 제프 쿤스, 리차드 프린스 대표작의 작품가도 반액 이하로 떨어짐.
K 서울옥션, 홍콩에 현지법인 설립(5월).
K K옥션, ‘아시안 옥션 위크 인 마카오’ 개최.
K 제1회 아시아 대학생 청년작가 미술축제 ASYAAF (6~10, 13~17 옛 서울역사) 개최. 총감독 유진상.
K 국내 ‘미술품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법안’ 재도입, 2011년 시행을 조건으로 12월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
K 화랑미술제, 부산으로 옮겨 개최(~2010).
K 제1회 블루닷아시아 개최.(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K 옥션별(쌈지 톰보이 등 9명의 주주가 출자) 설립.
K 표갤러리 789, 표갤러리 LA 개관. 박여숙화랑
상하이 개관.

박수근 <빨래터> 37×72cm 1954

2009

W 데미안 허스트의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보관한 박제 상어 작품을 찰스 사치로부터 사들인 것으로 알려진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븐 코헨의 컬렉션이 4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 공개. 앤디 워홀의 작품 <파란 마릴린>(1967), 리사 유스카비지, 마를렌 뒤마 등 현대 작가의 옥션 최고가 작품이 한 자리에 공개. 그 중 드 쿠닝의 <Woman 3>(1952~53)이 화재를 모으며 현존 회화 중 두 번째 고가로 낙찰. 한편 소더비의 주가는 피크일 때의 50달러 대에서 9달러 대로 하락.
W 런던 크리스티 경매(10. 16)에서 마틴 키펜베르거의 <파리 바>(1991)가 371만3875달러(약 41억4천만원)에 낙찰. 런던 테이트모던(2006), 뉴욕 MoMA(2009) 회고전 개최에 힘입어 작품 가격 상승.
K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그림로비 사건. 최욱경의 <학동마을>을 구매한 갤러리 압수 수색.
K 서울옥션, 4월 부산 경매에서 박수근의 <공기놀이하는 아이들>이 20억원에 낙찰. K옥션 6월 경매에서는 김환기의 <무제 1-Vl-70 #174>가 17억원에 낙찰.
K 화랑미술제, 서울오픈아트페어 등 4개 아트페어 판매액은 전년 대비 28% 감소. 하반기에 열린 KIAF도 신종플루 등 악재가 겹쳐, 판매액과 관람객이 모두 감소. 총매출 136억원(2008년 140억원) 기록.
K 박수근의 <빨래터>(1954) 위작 논란이 2년 여의 법정 공방 끝에 ‘진품으로 추정된다’는 법원의 판결로 일단락.
K 제1회 서울포토 개최. 아시아탑갤러리호텔아트페어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 개최.
K 서울옥션 연간 낙찰 총액 387억원 기록. 전년(약 695억원)대비 44% 감소. K옥션 연간 4회 열린 메이저 경매의 낙찰 총액이 185억원 기록. 전년도(약 295억원)대비 약 40% 감소.

2010

W 소더비 경매(2. 3)에 자코메티의 <걷는 남자 1>(1961)이 1억 433만달러(약 1164억원)에 낙찰. 미술품 경매
현존 최고가 기록. 구매자는 레바논 태생의 스위스 은행가 고 에드먼드 사프라의 미망인 릴리 사프라.
W 런던 소더비(2. 10) 경매에 전후 독일의 전위 작가 ‘그룹 제로(Zero Group)’의 작품이 출품. 하인츠 마크, 오토피네, 귄터 워커의 작품이 고가에 낙찰. 크리스티 경매(3. 11)에 알리기에로 에 보에티의 볼펜 회화 연작 <익명>(1973)이 163만6830달러(18억2천만원)에 낙찰. 일본 전후 동시대 미술에 대한 관심 증가,
유럽과 미국에서 다나카 아츠코, 다카마츠 지로,
이우환 등의 전시회가 늘어남.
W 아트딜러인 제프리 다이치가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LAMoMA) 관장 취임. 이익 대립을 막기 위해 자신이 운영하던 뉴욕 갤러리 다이치프로젝트의 문을 닫는다.
W 제41회 아트바젤(6. 16~20)이 성황리에 개최. 관객 6만 2500명. 작품 가격이 리먼 쇼크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었다는 반응.
W 프랑스 최대의 아트페어 FIAC(10. 21~24)의 인기 부활. 190개의 부스에 640개 화랑이 응모. 가고시안 갤러리가 처음으로 참여, 개막 직후 파리 지점 개관.  
W 크리스티, 소더비에 이은 세계 3위의 경매 회사인 필립스드퓨리가 뉴욕 지점 개관. 개관 기념 경매(11. 8)에 아트딜러 필립 세갈로가 참여. 머그라비 패밀리가 내 놓은 앤디 워홀의 <리즈의 인생과 남자들>(1962)이 6336만2500달러(약 707억원)에 낙찰.
W 소더비 경매(11. 9)에서 앤디 워홀의 초기작 <코카콜라>(1962)가 3536만3500달러(약 394억원)에 낙찰. 다음날 크리스티 경매에서 <캠벨 수프>(1962)가 2388만2500달러(약 266억원)에 낙찰.
워홀 작품의 고액 안정화 지속.
K 뉴욕에서 코리안아트쇼(3. 3~7) 개최. 주최 한국화랑협회, KIAF. 24개 한국 갤러리와 100명의 작가가 참여. 아모리쇼와 동일한 기간에 열려 국제 미술시장에 한국 미술을 알림.
K 서울옥션 117회 경매(6. 29)에서 이중섭의 <황소>가 35억6천만원에 낙찰. 한국 미술품 경매사상 역대 2위의 낙찰가 기록. 김환기의 <영원한 것들>이 21억원에 낙찰.
K KIAF의 작품 판매 총액이 125억원으로 지난해 (136억원) 대비 8% 감소했다. 부산에서 열린 화랑미술제는 총매출 15억2천만원을 기록,
전년도 대비 50% 감소.
K 옥션단 경매에서 19세기 김홍도의 금강산 화첩 <와유첩>이 17억1천만원에 낙찰. 국내 고미술품 경매 최고가 경신.
K 미술품 양도세 법안이 2011년 1월 1일 시행을 앞두고 2년 유예됨.

2011

W 제1회 싱가포르아트스테이지(1. 12~16) 개막. 싱가포르 최초의 아트페어로 아트바젤, SH컨템포러리의 디렉터였던 로렌초 루돌프가 지휘했다. 현지 유력 컬렉터의 컬렉션 전시를 동시 개최하는 등 기획력을 발휘, 관람객 수 3만2천명을 기록.
W 가고시안갤러리 홍콩 지점 개관. 개관 행사로 <데미안 허스트>전(1. 18~3. 19) 개최. 2012년에는 화이트큐브 등 서구의 톱갤러리가 홍콩 진출 예정.
W 제1회 VIP아트페어(1. 22~30) 개최. 사상 최초로 열리는 인터넷 상의 아트페어. 뉴욕의 제임스 코언과 인터넷 사업가 조너스 암그렌 부부가 2년 반에 걸쳐서 구상. 영국의 화이트큐브갤러리, 미국의 가고시안갤러리 등 138개 화랑이 참가.
W 홍콩 소더비 경매(4. 3)에 장 샤오강의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1988)이 1015만2095달러(약 113억원)에 낙찰. 중국 회화 최고가 경신. 울렌스컬렉션이 매각한 106점의 중국 현대미술 작품 중 1점.
W 아트바젤이 ART HK를 매입. 아트바젤의 연관 회사인 MCH스위스전시그룹이 ART HK의 주식 60% 매입. 같은 시기에 개최된 크리스티 경매에서 중국 미술과 고미술을 포함한 경매 낙찰 총액은 과거 최고가에 해당하는 4억6900만달러(약 5234억원).
W 신디 셔먼의 작품이 사진 사상 최고가 기록. 크리스티 경매(5. 11)에서 <무제 #96>(1981) 센터폴드(Centerfolds) 시리즈의 1점이 389만500달러(약 43억원)에 낙찰. 미술관 소장품을 제외하고 마지막으로 남겨진 에디션으로 주목을 끔.
W 크리스티 경매(11. 8)에서 안드레아 구르스키의 <라인강 2> (1996)가 433만8500달러(약 48억4천만원)에 낙찰.
W 무라카미 다카시와 크리스티가 자선 경매 <New Day>(11. 9) 개최. 수입은 동일본 지진재해 지원 단체에 기부.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 신디 셔먼, 나라 요시토모, Mr 등 15명의 작가가 참여. 총 수익 875만6100달러(약 97억7천만원).  
W 소더비 현대미술 이브닝 세일(11. 9)에 낙찰 총액 3억1583만7천달러(약 3524억7천만원) 기록. 2008년 5월 경매 이후 최고가. 덴버시가 클리포드스틸미술관 건설을 위해 매각한 스틸 회화는 4점이 총 1억1400만달러(약 1272억원)에 낙찰.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추상화>(1932)가 2080만달러
(약 232억원)에 낙찰.
K 고미술 전문 경매회사 마이아트옥션 설립.
제1회 마이아트옥션 경매(3. 17)에서 18세기 <백자청화운룡문호>가 18억원에 낙찰. 국내 고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기록.
K 서울옥션 베이징 사무소 개관. 서울옥션 120회 경매에서 김환기의 <항아리와 매화>가 15억원에 낙찰.
K K옥션 9월 경매에 김환기의 <창공을 나는 새>가 9억 4천만원에 낙찰. 이우환의 <점으로부터>가 8억 5천만원에 낙찰. 국내 생존 작가 중 최고가 기록.
K 제1회 도어즈아트페어 개최(11. 18~21 임페리얼팰리스 호텔). 신진작가 대상의 국제 호텔아트페어.
K 서울옥션과 K옥션의 낙찰총액이 지난해 대비 18% 상승. 서울옥션이 개최한 총 4회의 메이저 경매 낙찰총액은 174억7635만원이며 평균 낙찰률은 70%. 2회의 홍콩 경매와 기획경매를 포함한 낙찰총액은 313억7771만원. K옥션의 4회 메이저 경매의 낙찰총액은 216억2787만원이며 평균 낙찰률은 73%.

2012

W 런던에서 시작된 프리즈 아트페어의 자매 페어로 제1회 프리즈 뉴욕(5. 4~7) 개최. 봄 경매 주간에 열려 아트페어와 경매의 동반 상승효과를 노림.
상대적으로 3월 개최되는 아모리쇼의 영향력은 낮아짐.
K 제30회 화랑미술제 서울에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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