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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09.03

Abstract

특집 핑크 오브 아트 2009년 봄 컬러는 핑크다. 심각한 경기 불황에 '핑크 처방'이 내려진 것일까. 온갖 매스컴에서 '핑크'의 유행을 앞 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얼마 전 있었던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는 여배우들의 '핑크 드레스'가 화재를 모았다. 경기 불황이 오면 여성들의 치마 길이가 짧아지고 컬러는 화려해진다는 속설이 있다. 패션 업계의 매출은 줄어도 화장품, 특히 립스틱은 날개 돋친듯 팔린다고 했다. 화장품 업계가 '핫 핑크' 립스틱의 열띤 광고 경쟁을 펼치고 있는 것을 보면 그저 떠도는 소문만은 아니다. '핑크 빛' 미래가 곧 찾아올까하는 작은 소망에 여성들은 핑크색 립스틱을 칠해 본다. 지금 우리 사회는 치유적 속성을 가진 핑크의 약효를 기대하고 있다. 예술에서 핑크는 어떤 모습일까? 천상의 색채에서 부르주아의 상징으로, 또 현대 대중문화, 소비문화를 상징하는 등 핑크는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핑크는 살갗을 연상시키는 까닭에 육체적이고, 따라서 에로티시즘과 연결되는가 하면 미성숙한 소녀를 떠올리며 순결함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핑크의 스펙트럼은 실로 넓고 다양하다. art는 천의 얼굴을 가진 '핑크의 예술'을 소개한다.

Contents

표지 윤정미 <핑크 프로젝트-지우와 지우의 핑크색 물건들> 라이트젯 프린트 2007


에디토리얼 미술관과 CEO_김복기


프리즘 
    영원의 갈망, 추기경이 그린 선화_최종태

    한국 디자인, 뉴욕에서 날개 돋치다_이규현


아티스트 아틀리에 아카이브
    안창홍_이선화


포커스
    정종미|정진용_김백균
    전광영|안 랜디_안 랜디
    신진식|임영선_정용도
    한순자|유진상_유진상


특집  핑크 오브 아트
    (1) 화보_Pink is ...
    (2) 글_핑크 월드, 핑크 아트_심상용


아티스트 인터뷰
    강홍구, 사라지는 것에 대한 기록_이대범


나의 얼굴 권여현


창간 10주년 기념
    (1) 동방의 요괴들
    (2) 네이버 한국인 미술가 50인
    (3) Editor’s Conference


이미지 링크 천경우


故한풍렬 화백 추모
    희고 밝은 빛의 반사체들_김병종


화가의 앨범 

    남농 허건과 남도화단의 정취 


클릭! 공공미술
    Urban Lounge, Urban Canvas_윤태건


미술 속에 ㅁ이 있다
    돈_비판과 긍정의 두 얼굴_신지영


아티스트 인사이드
    (1) 임상빈, 욕망을 읽는 시공간의 콜라주_이선화
    (2) 컴퍼니, '함께, 따로' 즐겁게 사는 법_호경윤



전시 리뷰
    홍순명|로랑스 데르보|유미옥
    이순종·변정현|이은실|정재호
    김혜수·윤소담|Mr. Mixi|이슬기
    박홍순|유비호|임흥순


포트폴리오 인사이드
    권준호|김보민|황정미|박기일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정종미 | 정진용

<정종미전> 전시 전경

예술과 역사, 그 영원과의 대화
정종미展 2. 6~3. 1 금호미술관 | 정진용展 2. 11~3. 1 갤리러도올

글 | 김 백 균

역사적 사건이 예술의 영역 안에서 재해석되고 예술가에게 상상과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매개로 쓰인 예는 셀 수 없이 많다. 예술의 기원 역시 인간의 삶을 기술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을 터이니, 그 발생부터 역사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를 예로 들더라도, 서사시의 출현은 서정시보다 훨씬 먼저 시작되었으니 예술과 역사의 만남은 인류의 문명과 함께 한다. 역사와 예술은 서로 다른 접근 방식과 방법론을 사용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인간의 행위와 그것에 대한 탐구 그리고 해석을 통해 의미를 산출한다는 점에서 목적을 같이 한다. 예술은 종종 역사를 전달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역사 사료의 일부분으로 남기도 하며, 때로는 예술 그 자체가 역사가 되기도 한다. 시든 그림이든 서사를 다루는 예술 양식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표현 방법이다. 또 예술과 역사는 모두 가치에 관한 담론을 형성한다는 점에서도 유사성이 있다.
우리는 체험과 인식을 기반으로 상상하고 사유하고 표현한다. 체험과 인식은 과거의 소산이다. 이러한 점에서 예술 활동 또한 역사적이다. 예술 활동 역시 지나간 과거나 동시대의 사건들을 묘사하고 해석한다. 그러므로 많은 예술 작품들은 미적으로 경험될 뿐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 텍스트로 ‘읽히게’된다. 예술 작품이 그것을 보는 ‘시각’과 관련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지나간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은 사실 과거를 위한 것이 아니다.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예술 역시 동시대의 나를 이해하고 반성하기 위한 것이라면, 예술이 역사적 사건의 재해석을 통해 현재의 나를 반추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면 우리가 점점 우리의 시선을 과거로 돌리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 과거로부터 무엇을 걷어 올리려는 것인가? 역사 속에서 우리는 많은 교훈들을 얻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지난 역사적 사건을 반추하는 주된 원인은 아마도 순간을 사는 우리가 영원과 대화하기 위한 시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수많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의 발견이야말로 역사가 주는 교훈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 속의 신화를 만든다. 지나간 과거가 역사로 편입되면서 하나의 사건은 단순화를 거치며 그 단순화된 사건은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된다. 신화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 신화는 기념비적인 가치로 작용하며 우리 모두의 의식을 지배하는 역사적 의미를 획득한다.
〈정종미전〉과 〈정진용전〉은 인간의 지나간 발자취, 즉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전시는 역사를 바라보고 재해석하며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고 이에 따라 소재의 선택과 형상의 처리 또한 달리 나타난다. ‘역사 속의 종이부인’이라는 주제로 열린 〈정종미전〉이 인간의 구체적 삶으로부터 이 땅에 살다간 여성상을 재현하고자 한 것이라면, ‘멋진 구조들’이란 타이틀을 내건 〈정진용전〉은 시간과 사람의 흔적의 재해석을 통해 인간의 삶의 의미를 되새김질한다.

왼쪽·정진용 <성비타성당> 혼합재료 180×180cm 2008|오른쪽·정진용 <불타는 문> 혼합재료 180×180cm 2008

여성의 삶에 대한 경배

〈정종미전〉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독보적인 삶을 살았던 여인들을 오늘날 다시 그의 작업 세계로 호명하였다. 유화부인 허황후 선덕여왕 신사임당 허난설헌 황진이 논개 매창 명성황후 유관순 나혜석. 이들은 그간 작가가 여성성과 한국적 정체성을 고민하며 찾아낸 역사 속의 인물들이다. 작가는 이들을 통해 여성의 가치와 민족 정체성의 사회적 측면에 질의를 던지고자 한다. 작가는 이들의 삶에 대한 예술적 재조명을 통해 단지 남성과 여성의 대척적인 사고 패턴을 보여주기보다는 그들의 인간적 삶에 대한 경배를 드러내고자 한다. 여성으로서의 개인적 삶은 천차만별일 것이나, 그들이 인간으로서 인간임을 자각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고자 했던 의지는 동일한 궤도 안에 있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찾고자 하는 가치가 시대를 떠나 작용하는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면, 예술 속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것 역시 한 인간의 구체적 삶을 통하여 드러나는 삶의 원리에 관한 것이다.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삶의 원리를 형상화하는 작업이야말로 기념비를 만드는 것이다. 기념비란 바로 순간을 영원으로 연결하는 매개이기 때문이다. 기념비를 통해 개별적 삶은 사회적 삶과 연결되고, 한 시대는 또 한 시대로 이어져 영원에 이른다. 그들의 삶의 철학이 우리에게 정신적 내적 기념비로 작용한다면, 그들의 형상화는 물질적 외적 기념비로 남게 된다. 정종미는 자신이 호명한 역사적 여인들을 기념비적 작품으로 남김으로써, 시대를 초월하여 이 땅에 살아간 여인들의 삶을 오늘날 자신의 삶과 연결하고 사회적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정종미전〉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질료의 연금술에 있다. 그는 이 땅에 살다간 여인의 삶을 표현 매체의 속성과 연결함으로써 설득력 있는 언어를 갖게 한다. 즉 그가 표현 매체로 삼은 종이의 물성과 여인들의 삶을 병치하고, 여성성과 오늘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장지(壯紙)가 지닌 은은함과 포근함, 표피의 부드러움 그리고 긴 섬유질의 단단한 결합에서 오는 질기고 강인한 근성, 정종미는 이러한 장지의 특성에서 한국 여인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물론 그의 종이부인은 단지 소지(素紙)의 물성의 유비에서만 그 가치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그의 질료에 대한 탐구는 수없이 많은 안료의 겹침을 통해, 밑 색이 더욱 맑게 우러나 화면의 깊이를 더하는 장지 기법을 통해 절정에 다다른다.

정종미 <황진이> 한지, 비단, 모시, 안료, 콩즙 520×193.5cm 2008

심리적 기념비로의 재인식

〈정종미전〉이 구체적 형상을 통해 역사적 인물을 기념비로 재탄생시켰다면, 〈정진용전〉은 이와 달리 ‘심리적’ 기념비를 제작하고 있다. 그의 ‘멋진 구조들’은 인류가 이미 기념비로 만들어 놓은 인공 구조물들을 다시 심리적 기념비로 재인식하게 만드는 형상화 작업이다. 타지마할이라든가 파르테논 신전, 자금성의 울창한 벽 모두 역사적 기념비적 공공 건축들이다. 이러한 신전이나 궁궐 그리고 성전 같은 기념비적 건축들의 특징은 거대한 위압감을 준다. 이 위압감과 더불어 오는 것은 장엄과 경건함 그리고 숭고함 같은 신성과 관련된 느낌들이다. 이러한 신성과 관련된 숭고와 경건한 감정이 이는 것 또한 사실 매우 치밀하게 계산된 기념비적인 인공 구조물의 작용이다.
정진용은 이러한 구조물들이 주는 느낌에 주목한다. 웅장한 고딕 성당의 내부나 거대한 고궁의 광장 한가운데 섰을 때 느껴지는 몸서리치는 전율, 모든 것이 정지된 것 같은 시공간의 체험, 이러한 느낌을 우리는 숭고라고 부른다.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영원과의 만남, 혹은 시공을 초월한 모든 역사의 흐름과의 만남, 한 순간에 인간의 모든 삶의 족적과 마주하는 듯한 경외감. 우리는 기념비적 인공 구조물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러한 감정들에 휘감긴다. 우리는 때로는 이러한 감정을 인공 구조물이 아닌 그랜드캐년 같은 자연 경관에서도 느낄 수 있다. 마치 온 우주와 하나가 되어 자신의 존재감을 잃어버리는 의식의 정화 같은 경험. 그러나 이러한 감정은 진실한 것일까? 기실 멋진 구조물인 인공적 기념비들은 모두 의도된 것들이다. 본래부터 그러한 기능을 하도록 치밀하게 고안된 것이다.
인간은 신화를 만들고 또 신화는 인간의 역사를 지속시켜 왔다. 그러므로 이 모두 인간 역사의 산물이고 의식적인 것이다. 인공적 구조물들은 이러한 인간의 의식을 반영한 인간 역사의 물증이다. 어떠한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 자체가 사관(史觀)이고 가치관에 의한 것이다. 정진용의 작품을 대하며 숭고를 통해 만나는 인간의 영원과 본성에 대한 탐구뿐만 아니라 공공의 기념비와 개인적 예술의 만남의 경계를, 동시에 반성해 본다.

강홍구, 사라지는 것에 대한 기록

작가 강홍구 (사진:권현정)

Kang Hong Koo
사라지는 것에 대한 기록감성시대의 인간 탐구

인터뷰 | 이대범·미술평론가

대범(이하 이)  2006년 로댕 개인전 이후 2년만의 전시다. 이번 전시에 대한 설명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홍구(이하 강)  이번 전시는 형식상으로는 지난 몇 년 동안 찍은 ‘은평 뉴타운’의 사진전이고, 내용상으로는 뉴타운 건설 과정 자체보다는 도대체 뉴타운이 어떻게 과거의 마을을 사라지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사라지는 것은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춰 보려한 전시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재개발과 뉴타운에 대한 개인적인 언급이다.
  은평 뉴타운 사진은 언제 찍은 건가?
  처음부터 뉴타운을 염두하고 계획적으로 찍은 것은 아니다. 2001년 무렵 불광동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그 이후에 찍었던 사진 중 일부가 2006년 로댕갤러리 개인전 <풍경과 놀다>에서 선보인 재개발 지역을 다룬 <미키네 집>이다.
2002년 무렵부터 은평 뉴타운 지역에 흥미가 있었다. 구파발을 중심으로 한 진관동 일대가 서울의 서북쪽 변두리라 그린벨트,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는 지역도 많았다. 도대체가 서울 같지 않은 지역이어서 이 독특한 분위기를 작품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면서 슬렁슬렁 찍고 있었는데, 2002년 갑자기 뉴타운이 발표되고, 사업이 진행되면서 결국 그것을 지속적으로 찍게 된 것이다.

우연은 기록에 의해 필연이 되고...

  의도하지 않은, 우연히 찍은 사진이지만 현재의 시각에서 보면 기록사진 비슷한 것이 되어버린 건가?  
  그렇다. “사진을 어떤 종류의 맥락에 집어넣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현실이 너무나 강력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현실이 사진의 위치를 정하고 편집해 버린 것이다. 존 택의 말이 맞다. 사진에 정체성이 없다는….
  그런데, 그것은 사진을 찍은 이후의 판단에서 나온 것 아닌가? 과거의 사진을 현재에서 뉴타운과 엮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촬영 당시에는 뉴타운과 관련이 없었다. ‘우연’이라는 이야기도 했지만, 대상을 접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강  그런 생각은 나중에 들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처음에는 내가 사는 동네를 구경하는 버릇에서 시작됐다. 사는 동네가 북한산 바로 아래여서, 북한산도 갔다가, 그리고 구파발 지역에도 갔다가 하면서 동네를 둘러봤다. 그때는 민족지학적 태도 비슷한 것으로 접근해볼까 생각도 했었다.
사실은 꽤 오래전부터 이 나라가 너무 엉망이라, 사는 곳 근처에서 얼마든지 의미 있는 것들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은평 뉴타운 지역은 도시의 외곽이면서 그린벨트로 묶여 있고, 농촌 흔적이 남아 있었고, 무엇보다도 21세기인데도 시간이 누적된 70, 80년대로 보였다. 그 안에 뭔가 얘깃거리가 있겠다 싶었다. 개인적 취향일 수도 있고….
  계속해서 ‘우연’이라는 어휘가 등장하는데, 선생께서 생각하는 우연이 뭔가?
  ‘우연’은 작품을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된다. 무심하게 봤던 풍경, 광경, 공간들을 지나가다 갑자기 그 뭔가와 마주치게 되는 것이 우연일테고, 그래서 다시 그곳에 가게 되고 사진을 찍는다는 게 결국 일종의 필연이 되는 거 아닌가 싶다. 진부한 말이지만 우연도 결국에는 필연 아닐까.
  촬영 당시는 대상 자체를 현실로 찍었는데, 지금 사진 속 대상은 사라지고 추억 혹은 기억으로 남았다는 말인가?
  사진이 원래 그렇지만, 찍을 때는 현실이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되고, 노스탤지어(nostalgia)를 유발시키는 요인이 된다. 어떤 면에서 보면 감성적 호소가 있어 괜찮아 보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점에서 감상주의적 측면이 강화될 수도 있겠다 싶어 우려도 된다.

<사라지다-은평:내집사랑> 디지털 사진 200×100cm 2009

현실이 추억으로 변하다

  현재는 사라진 대상을 담은 사진을 본다는 것은 관람자를 필연적으로 추억의 영역에 편입시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현실이 추억으로 변하게 하는 근원적 힘에 대한 질문일 것 같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무슨 일이 있었기에) 현실이 추억이 되었는가?” 같은 질문 말이다. 아마도 이 질문은 선생이 생활인으로서 찍은 사진 가운데 전시 사진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의 선택 기준은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었던 곳이다. 생활인으로서 돌아다니다 보면 그런 장소가 있다. 현재는 쓰레기 가득한 폐허가 되어 위치는 남아 있지만, 장소는 없고, 단지 기억만이 존재하는 상태…. 그러나 이것을 뉴타운이 가진 수많은 현실과 엮어보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아주 사적으로 이야기하면, 나는 이 장소들을 봤고, 나는 이 장소들을 좋아했고, 그랬는데, 정말 가버렸다. 사라졌다. 그리고 사라지게 한 힘은 알다시피 뉴타운이라는 이름의 개발 광풍에 가까운 힘이다. 그것들이 어떻게 개인들의 삶에 개입해서 그것을 파괴하고 흔적을 없애버렸는지. 그것을 관객이 이번 작업을 통해 짧은 순간이라도 봐줬으면 한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공간에 ‘시간’을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전시는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은평 뉴타운 사진, 둘째, 은평 뉴타운 개발 이전부터 아파트가 들어선 현재까지를 연대기적으로 나열한 슬라이드 쇼, 셋째는 내가 사진을 찍은 위치를 설명해주는 개인적 지도를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이 은평 뉴타운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적으로 잘 모른다. 그래서 연대기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은평 뉴타운 개발에 대한 설명 혹은 소개 같은 것이다. 뉴타운 이전의 상태에서 시작해 중간에 철거와 폐허가 되는 과정,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과정을 사람들이 한 번 봤으면 했다. 그리고 지도는 어렸을 적 본 초등학교 사회과 부도에 나오던 일러스트 형식으로 그림을 그려서 어떤 장소에서 뭘 찍었나를 보여주는 일종의 농담이다.
  동일한 장소에서 시간대를 달리한 작업과 슬라이드 쇼 작업에서 ‘시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개인적 일상 속에 개발적 폭력이 개입하는 서사가 구축되는 모습이 형상화된다.
  그것이 이전 작업들과 다른 점이다. 하지만, 이것도 우연의 소산이지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은 아니다. 계속 돌아다니면서 찍다보니까 나중에는 무너져서 없어진 경우도 생기면서 만들어진 산물이다. 어쩌면 이런 과정을 통해 관객이 서사적 구조를 가진 것처럼 보아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또 하나는 시간을 짧은 순간에 고정시키는 사진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슬라이드를 통해서 살짝 확장해 보려고 했다.

삶의 일부가 강제로 사라질 때

  2006년 개인전에서 ‘미키’라는 대상을 통해 풍경을 완성하고 바라보게 했는데, 이번 작품에도 그런 대상이 있나?
  없다. 그냥 내 스스로가 관찰자로서 보려고 노력했다. 이것은 <오쇠리 풍경>을 찍었을 때와 비슷한 태도다. <오쇠리 풍경>은 정말 구경꾼 입장에서 가짜 파노라마의 성격을 강화했었다. 이후 미키네 집을 찍을 때는 <오쇠리 풍경> 때와 다르게  ‘놀이’이자 ‘발언’인 것이 없을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철거된 집에서 발견한 오브제를 이용했다. 이번 전시는 일단 <오쇠리 풍경> 때로 돌아가 내가 보는 것에 충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곳의 현실을 모르고 단순히 사라진 대상으로 파악하는 경우 보는 사람 입장에 따라 추억으로 보일 수 있지만, 선생 입장에서는 촬영 당시부터 현실을 보고 찍었기 때문에 현실적 요소가 더 강하게 작용했겠다.
  최근 용산 참사를 계기로 뉴타운이나 재개발 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좀 부담이 된다. 때문에 이번 작업이 좀 감상주의적 측면에 머무른 것이 아닌가라는 관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 삶의 일부가 무언가에 의해 강제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걸 보았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용산 참사를 보면, 은평 뉴타운 지역은 순조롭게 진행된 것처럼 보인다.
  은평 뉴타운 지역은 그린벨트가 많았기 때문에 면적은 넓고, 인구는 적었다. 그리고 은평 뉴타운은 뉴타운 사업 초창기 지역이어서 개발에 따른 이득에 대한 환상이 주민들에게 좀 있었던 듯 하다. 물론 거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양주택단지 주민들을 비롯해 저항이 있기는 했지만 용산과 같은 격렬한 거부와 참사는 없이 지나갔다. 그럼에도 현재 은평 뉴타운의 원주민 재정착률은 낮은 상태다. 분양가 문제 때문에 법원에 재판이 계류 중이기도 하고. 어쨌든 대다수의 원주민들은 우리도 모르는 그 어딘가로 사라진 것이다.
  원주민이 제외된 상태로 이주민들을 위한 새로운 도시가 생성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촬영 당시 원주민들과 사적인 관계도 있었나?
  물론 있었다. 그런데 되도록 사적관계를 배제하려 했다. 관계를 맺어서 그들의 삶에 개입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내가 그 정도까지 에너지와 능력이 없고, 둘째로 거리를 두고 풍경이 말하게 하고 싶었다. 접근하면 할수록 개발 행위에 대한 분노와 감정이 복잡해지고 커져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게 되기 때문이다.

<사라지다-은평:흰 개> 디지털 사진 220×90cm 2009

풍경의 죽음

  이번 전시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기존 작업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하는데….
  형식적으로 새롭게 시도해본다든가, 접근 방법을 바꿔본다든가, 뉴타운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겠다든가 등은 고려하지 않았다. 다음에 내가 이런 비슷한 작업을 계속할지는 알 수 없지만, 현실이 너무나 강력해서 어떤 형식적인 변화보다 그것을 찍어두는데 바빴는지도 모른다. 아마 찍으면서는 찍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혹은 형식적인 어떤 고려가 무의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재개발, 뉴타운 등이 너무 많아서 이제 이런 종류의 작업을 마무리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또한 특정 공간으로 한정해서인지, 작가의 시선도 보이지만, 무엇보다 그곳의 사물의 삶도 보이면서 그들이 사라져 가는 모습이 보인다. 2003년 대안공간 풀의 전시 글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었는데, 이번 전시에서도 ‘죽음’의 그림자가 보인다.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대상이 사라지면서 ‘풍경의 죽음’이 보였다.
  예전에 있던 것들이 사라지고, 지금 새롭게 무엇인가가 만들어 지면서 새로운 풍경이 만들어 졌는데, 이런 인위적인 새로운 풍경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한마디로 하면 이것이 풍경에 대한 학살 아닐까. 풍경은 서양의 경우 도시가 만들어지면서 사람들의 전원에 대한 향수에서 출현했다고들 하는데, 다시 말해 그 말은 도시 내부에는 풍경이 없었다는 거다. 풍경을 죽이면서 풍경에 대한 향수를 만들어 풍경을 발견하는 이러한 과정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이 아이러니가 이 시대에도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다. 그래서 새롭게 만들어진 풍경을 아이러니로 보고 싶다. 사람들이 아파트 밀집지역에 거주를 원하면서도 자연과 접촉해 놀고 즐기려는 욕망은 점점 증대되고 있다.
은평 뉴타운의 경우에도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고 있다. 자연 친화적인 공원과 녹지의 확장. 심지어 상업 지구에도 어떻게 하면 자연 친화적인 것을 끌어 들일까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인위적 풍경은 자연에 대한 욕망이 풍경 내부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것을 인위적으로 철저하게 재현하는 것이다. 인위적 풍경이란 것은 길, 나무, 물 등의 세부적 항목을 하나하나 위치를 지정해 풍경을 제어한 것이다. 이것은 외형적으로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본질적으로는 풍경은 아니다.
  최근 ‘친환경적’ ‘친자연적’이라는 말이 도처에 출몰하는 것을 보면, 인위적 풍경이 우리 삶에 은연중에 그러나 철저히 개입하는 듯하다.
  풍경에 대한 고려를 하면서도 여전히 한계를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아무래도 자본의 증식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이번 작업에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서, 풍경 자체가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동 인구가 적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되도록 사람이 들어간 사진은 배제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났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 이 작업이 지향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도 유년 시절을 목동에서 보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1980년대 무허가 건물이 무차별적으로 부서지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과정을 목격했었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개발의 광폭함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우리나라 개발 지역은 어디나 비슷하다.
  이번 작업들이 은평 뉴타운에 대한 이야기지만 확장해서 보면 한국 근대화와 맞닿아 있다.
  그렇다. 은평 뉴타운은 우리나라 전체 개발을 압축해 놓은 현장 같아 보인다. 언제나처럼 원주민은 힘이 없다. 처음부터 개발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전체 설계에 참여하는 것도 아다. 즉, 원주민에 대한 기본적 고려가 전혀 없다.  
  은평 뉴타운의 경우 한국적 근대화 과정을 보여주지만, 오히려 지난 시기보다 더 빠른 속도감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그 속도는 자본의 축적도와 비례하지 않나 싶다. 궁극적으로 자본이 혹은 자본과 결탁한 권력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면 클수록 속도가 빨라진다. 속도가 빠르면 이익이 커지기 때문이다. 우려되는 것은 전에도 그랬지만 신도시와 재개발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은평 뉴타운의 경우 계획서에는 30년 동안 개발에 소외된 지역, 전원형 신도시 뉴타운 지역이라는 수사가 붙었지만, 핵심은 일정한 자본을 가진 사람들을 참여시켜 이익을 보겠다는 것이다     
  경기도에는 ‘명품 신도시’도 등장한다고 하더라.
  명품 신도시 역시 철저하게 상업적 목적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원주민을 비롯해서 거기에 있는 모든 사물에 대한 배려가 생략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원주민들은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만, 결국에는 그곳에서도 다시 개발되어 쫓겨나고 있다.  
  당사자를 배제시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렇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지금 여기에 살았던 사람들이 현재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것은 개발의 문제이기도 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삶 전체의 문제다.

<수련자-금강불괴> 디지털 사진 220×90cm 2005~6

구경꾼으로서 보여주기

  그간의 작업을 보면, 선생은 도시의 변방에 주목하고 있는데, 선생이 생각하는 변두리 혹은 도시의 변방은 어떤 의미인가?
  일종의 도시 속에 존재하는 ‘내부 식민지’라고 생각한다. 모든 식민지에서 발생하는 것이 착취인데, 변두리에서 이런 착취가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다는 명목 아래 원주민을 내쫓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이주민으로 들어와 원주민의 삶을 착취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거대 자본이 큰 이익을 보고, 누군가의 표현을 빌면 나머지는 그 부스러기를 줍는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풍경 혹은 공간 자체의 파괴가 망설임 없이 진행된다. 겉보기에 나의 작업이 쇠락한 변두리의 풍경처럼 보이지만, 나는 내부 식민지로서 변두리의 위치와 입장을 풍경에 각인시켜 보여 주고자 했다.  
  선생 작업에서 사진의 의미는 무엇인가?
  처음부터 사진을 했던 것이 아니라서 뭐라고 정의하기가 어렵다.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본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그리고 그것을 빠른 방식으로 이미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사진의 굉장한 강점이다. 그리고 사진에 대해서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은 시선 처리의 어려움이다.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와 대상과의 거리의 문제다. <오쇠리 풍경> 작업을 하면서 그것을 전부다 말할 수 없다는 느낌, 그리고 그곳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거리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고민했는데 아주 어렵더라. 가까이 다가가면 부딪치고, 멀리가면 남의 일이 되고, 그래서 구경꾼이면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이번 작업에서도 그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젊은 미술가들의 경향 중에 하나가 도시 이미지를 이용하는 것인데, 그들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떤가.   
  도시 자체가 이미 일종의 독특한 풍경이 된지 오래여서 흥미 있는 작업이 많이 보인다. 그런데 도시 전체의 사회적 경제적 맥락과 함께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사적인 측면이거나 이벤트가 일어나는 장소를 다루는 경우는 많은데 그것들을 맥락화하는 작업이 생각보다 적다. 사적 경험과 사회 전체의 맥락과 접촉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요즘 작업들이 개인적 경험에 너무 치우쳐 있다. 사적 이야기를 서술한다고 해도 그들이 이미 사회적 존재이기에 그것들 간의 관계를 읽고 그것을 바탕으로 작업 했으면 하는데, 그런 작업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작업을 보면서 나는 단순히 ‘눈은 있는데, 작가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욕심 부리자면, 사회적 자아와, 경제적 자아, 예술적 자아가 결합했으면 좋겠다.

故 한풍렬, 희고 밝은 빛의 반사체들

한풍렬 <노래와 꽃과 대나무 그리고…> 혼합재료 90×90cm 1993

희고 밝은 빛의 반사체들

글 | 김 병 종 | 화가, 서울대 교수

“한풍렬 선생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제자로부터 전화를 받고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며칠 동안이나 전화를 드렸지만 받지를 않아서 궁금하던 차였는데 돌아가셨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건강이 좀 좋지 않아지셨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불과 얼마 전에도 통화를 하시면서 새봄에 남쪽으로 여행을 함께하자고 약속까지 하신 터여서 나로서는 더더욱 믿기지가 않았던 것이다. 주섬주섬,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는 영동 세브란스 영안실로 달려가니 아직 가족도 나와있지 못한 채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아직 꾸며지지도 않은 빈소 곁에 선생의 영정 사진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물끄러미 그 사진 속의 한 선생을 바라보고 있자니 “미안해. 이렇게 되고 말았어” 라고 얘기하시는 것 같았다.
한 선생은 수십 년 동안 가까이 지낸 선배였지만 특히 내가 재직하는 대학의 대학원에 출강하셨던 지난 5년 동안은 조석으로 뵙곤 했다. 늘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이셨고 목청까지 좋은 데다 화제도 풍부하셔서 많은 후배와 제자들이 격의 없이 따르곤 했다.
지난해 봄에는 안동으로 학생들과 여행을 함께 떠나셨는데 그 곳에서의 2박 3일이 그렇게 좋으셨던지 앞으로 자주 그런 기회를 갖자고 몇 번씩이나 다짐하곤 하셨다. 내가 여름에 북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라고 했더니 꼭 함께 가시고 싶다고 하여 함께 아프리카 여행 계획까지 세우곤 했던 터였다. 대학을 정년하신 후부터 작가로서의 의욕을 더욱 불태우고 작품 제작 계획을 전보다 더 왕성하게 세우곤 해서 후배들은 경탄해 마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운명을 하시고 만 것이니 차마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내게는 특히 뉴욕에 거처를 마련한 후 본인이 개발한 조개 가루 안료로 뉴욕의 풍경을 본격적으로 그려보겠다고 구체적 제작 계획까지 소상히 들려주곤 하셨다. 결국 뉴욕에 스튜디오를 마련하는 문제로 미국으로 떠나시는 바람에 아프리카는 함께 가지 못했지만 그토록 작가 2기의 삶에 비상한 열정을 기울이셨던 것이다. 정말이지 한 선생은 무엇을 하든 남다른 열정과 부지런함으로 시종하시곤 했다. 축 처져 있다가도 한 선생을 만나면 불끈 힘이 날 정도였던 것이다. 수십 년간 감기 몸살 한번 앓는 모습을 뵌 적이 없고 단 며칠이나마 병원에 입원해 있으신 적이 없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바람을 일으키며 다니셨고 늘 활기에 넘치는 모습이셨던 것이다. 성격 또한 직설적이었고 호, 오(好, 惡)가 분명하셨다.
도무지 위선이나 내숭과는 거리가 먼 분이었다. 그르다 싶을 땐 거침없는 독설도 퍼부어대지만 다른 한편으론 한없이 정 많고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분이셨다. 특히 당신이 한 번 좋은 사람에게는 막무가내인 타입이셨다.  빈소에 왔던 분 중 누군가가 “황창배 선생과 그토록 가까이 지내더니 저승길이 외롭다고 황 선생이 어서 오라고 한 모양”이라고 말했을 만큼 화단에선 작고한 황창배 선배와 가까이 지내셨다. 얘기 끝에는 자주 일찍 세상을 떠나간 황 선배를 애석해 하셨고 “우리는 오래 살자. 오래 살면서 좋은 작품 많이 하자”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하시곤 했는데 당신이 이처럼 홀연히 떠나실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양평에서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이양원 선생이 “이 사람 이럴 수가 있나. 죽음의 길도 본인 성격대로 떠나고 말았군” 하고 말했지만 아닌 게 아니라 한 선생은 그 ‘팩’ 하시던 성격대로 “그만둬, 그만둬. 나 떠날 테야” 하고 가버리신 것만 같았다.

2008년 김병종(필자)과 함께한 한풍렬 선생

지루하지 않은 삶을 살다 간 풍류남아

한 선생은 많은 선배 동양화가들이 문인화적 격조나 문, 사, 철의 사고 언저리에 머물러 있던 시절에 수학을 한 분이지만 그 관심 영역이 유난히 넓고 다채로웠다. 1971년 겨울, 내가 입시생으로 몇 달간 광화문의 그 유명한 입시미술학원에 드나들 때 한 선생은 미대를 휴학한 상태에서 학생들에게 입시 미술을 지도하고 계셨는데 ‘한아름’이라는 필명의 카툰 에세이스트로도 이름을 날리고 계셨다. 무언극처럼 일체의 대사 없이 선 몇 개로 처리되는 《한아름 카툰에세이》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진보된 형태의 만화였다. 삐딱한 모습의 주인공이 세상과 사물을 삐딱하게 보고 특히 당시의 현실 정치를 풍자하고 비판한 듯한 분위기를 보이는 작품이 많다 하여 관계 기관에 불려가 고초까지 당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아름 카툰에세이》는 당시 진보적 지식인들의 잡지를 비롯, 여성지 등에도 자주 보이게 되어 많은 화제가 되었는데 한 선생은 이에 그치지 않고 조수까지 두면서 《만화공방》을 내어 몇 권의 단행본을 내기도 하였다. 네모의 칸 위로 지나가는 함축된 선 몇 개가 의미하는 세계는 네 번째 칸의 간결한 한 문장과 함께 종결되면서 마치 선 몇 개로 울리는 일본의 삼미센 음악처럼 미니멀하면서도 그 여운이 길었다.
비단 만화 영역뿐 아니라 사람과 일에 있어서도 대단히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셨다. 작고한 소설가 최명희 선생이나 극작가 이금림 선생, 의사 최형기 박사, 그리고 수다한 도인과 철학자, 쟁이, 정치가들이 한 선생의 구기동 집에 드나들면서 야심하도록 술잔을 기울이곤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셨던 한 선생은 한때 자신의 문화적 비전과 꿈을 한 사람의 정치인에 걸고 과도하다 싶을 만치 그 분을 위해 온 몸을 던져 헌신하기도 하였다. 한번 필이 꽂히면 평생을 함께 가야 하는 것으로 아는 인간관계처럼, 한번 관심이 쏠리는 일이면 이처럼 앞뒤 재지 않고 뛰어드는 열정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80년대 중후반으로부터 90년대 초까지 한 선생의 구기동 집에 놀러가곤 했는데 특히 신정, 구정 무렵이면 그 곳에서 야심하도록 주연이 열리곤 했다. 언제가도 따뜻이 맞아주시고 금방 뜨거운 음식을 해 내놓으시는 사모님 덕에 일연회(一硯會)를 비롯한 한 선생의 화우들과 후배들이 구기동 댁에서 새벽까지 통음하며 포커 놀이를 하곤 했다. 그렇다. 한 선생은 짧은 인생을 참 재미있게 살다가 가셨다. 풍류남아이자 한량으로 주유천하하면서 당신의 미의 포충망에 걸린 풍경들을 희게 빛나는 풍경들로 열심히 그리다가 가셨다.

《한아름 카툰에세이》에 실린 한풍렬의 카툰

따스하고 환한 빛을 머금은 캔버스

한 선생의 기질이나 삶처럼 그 분이 그린 그림에는 우중충함이나 우울함이 없다. 어느 풍경이든 빛 속에서 부유하며 아름답게 반사한다. 밝고 낙천적인 성격처럼 작품들도 희고 밝은 빛의 반사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언제나 부지런하고 언제나 어디론가 향하여 걷고 있던 이미지의 한 선생은 그러면서도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로웠던 분이었다. 얼마 전 인천 송도의 한 일식집에서 후배 최병국 선생과 저녁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한 선생은 이런 말을 하셨다. “무조건 열심히 그려야 돼. 무조건 재미있게 살아야 돼.” 재미없이 살고, 지루하게 살기에는 삶이 너무 짧다는 의미로 하신 얘기였다.
영동 세브란스에서 영구차가 장지로 떠나던 날은 안개가 짙어 한 치 앞을 볼 수가 없었다. 그 새벽 평생 재직하시던 경희대 미대에서 장례 의식을 치룬 후 평소 그리도 사랑하시던 구기동 자택으로 왔다. 영정을 앞세운 장녀의 흐느낌 속에 화실과 서재를 둘러보게 되었다. 아직 서명이 끝나지 않은 몇 점의 미완성 작품들과 책상에 금방 펼쳐 본 듯한 책들로 인해 마치 한 선생은 근처 산책이라도 나가신 듯한 느낌이었다.
유난히 여행을 좋아하셔서 내가 여행 계획을 말할 때마다 무조건 동행하겠다고 나섰던 한 선생이었지만 이제 한 선생과 세웠던 그 많은 여행의 계획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었다. 한 선생을 떠나보내고 나는 한 보름 동안을 혹독하게 앓았다. 몸보다 마음의 공허가 컸던 탓이리라. 긴 시간을 한 직장에서 형과 아우처럼 지냈던 하동철 선생이 돌연 떠나시던 때도 미처 그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오랫동안 시름시름 앓았는데 이번의 경우도 똑같았다. 아프리카에서 돌아왔을 땐 후배 배성환 교수가 보낸 문자 메시지가 아직 지워지지도 않았는데 그의 부음을 들어야 했고, 후배 한정수 교수 또한 그렇게 홀연히 떠나갔다.
세상을 오래 산다는 것은 그만큼 이별을 많이 겪는다는 뜻이리라. 오래 살지도 않았건만 벌써 아픈 이별을 겪곤 한다. 다시는 이별 없는 곳, 눈물 없는 곳으로 여행을 떠난 한풍렬 선생. 이제는 분주함을 내려놓고 모처럼의 길고 오랜 안식 속에서 평안하시기를 바란다.

왼쪽·<뉴욕 스케치> 먹 조개가루 모래 호분 석채 분채 72.5×60.5cm 2008|오른쪽·<비엔나 그 길에서> 먹 조개가루 모래 호분 석채 분채 43.5×36cm 1999

2009 March Special - 핑크 월드, 핑크 아트

최민화 <이십세기-1960.5> 실사 출력에 유채 150×206cm 2007

핑크 월드, 핑크 아트

글 | 심상용·미술사학 박사, 미술평론

색에도 정체성이라 할 만한 것이 있다. 그리고 그 정체성은 열려 있다. 색의 정체성은 문명에 따라 다르고, 시대와 운명을 함께한다. 지역 간에도, 세대 간에도 색에 대한 이해들 간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차이가 존재한다. 오늘날 핑크색의 주 무대는 도시의 다운타운이다. 하이패션에서 싸구려 플라스틱 제품에 이르기까지, 고급스런 쇼 윈도우의 조명에서 뒷골목 홍등가를 밝히는 그것들에 이르기까지, 핑크의 물결은 욕망과 소비를 부추기는 도시의 한 가운데서 넘쳐난다. 하지만, 핑크가 처음부터 세속과 욕망을 대변하는 색은 아니었다. 오래 전에 핑크는 자주 천상의 은총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했다.

왼쪽·크리스토와 잔느 클로드 <둘러싸여진 섬> 1980~83|오른쪽·젤리틴(Gelitin) <토끼> 모직, 건초, 밀집 65m 2005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핑크의 역사

14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지오토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성모자상>(1310~15)과 두치오의 <성처녀>(1308~11) 같은 작품에서 예수는 주름이 정교하게 표현된 연한 핑크색 옷을 걸치고 있다. 마사치오의 <세금>(1425)에서 의심 많은 바리새인들에 둘러싸여 있는 예수 그리스도 또한 연한 핑크색 옷을 걸치고 있다. 당시 핑크는 숭고미를 대변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부와 명예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림에는 예수뿐 아니라 주변의 유대 종교 지도자들도 분홍 계열의 옷을 입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다수 작품은 연한 핑크가 천사의 색이었음을 알려준다.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에 등장하는 천사는 아름다운 수가 놓인, 주름들이 가지런히 흘러내리는 연한 핑크색 가운을 걸치고 있다.
최근 미켈란젤로가 그렸던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벽화의 복원이 끝났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움 반, 혐오감 반이었다. 이제까지 미켈란젤로는 형태의 정확함을 위해 색채의 화려함을 희생한 작가로 알려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백 년 동안 덧입혀진 때를 벗겼을 때, 그의 그림은 온통 핑크나 밝은 하늘색, 보라색 같은 화려한 원색들로 가득 차 있었다. 천사와 구름, 예수와 성자들의 망토가 놀랍게도 눈부시게 강렬한 핑크색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어둡고 다소 칙칙한 색조를 고전 특유의 성격으로 여기던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로코코 양식이 만개했던 18세기는 ‘핑크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당시 핑크는 궁정과 귀족의 색, 부와 권위를 과시하는데 필요한 색이었다. 귀족과 상류층은 가난한 하층민과 구분되기 위해 드물고 값비싼 색의 망토와 드레스를 걸쳐야만 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핑크색이었다. 당시의 궁정화가 프랑수와 부쉐의 그림 속에서 장미수가 가득 한 핑크색 드레스를 입은 퐁파두르 부인의 모습은 로코코와 핑크의 연관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부인은 전형적인 궁정복인 ‘로브 아 라 프랑세즈(robe ?la Francaise)’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고 있다. 여기에서 핑크색은 퐁파두르 부인의 봉긋한 젖가슴이 보일 만큼 움푹 파인 칼라의 중앙부를 장식한 커다란 리본 장식에서 상징적으로 강조된다. 우아미를 대변하는 핑크색은 다시 드레스 전체를 흐르는 크고 작은 장미송이들에 의해 조율된다. 장미송이들은 양 어깨선에서 시작해 가슴과 배를 거쳐 비취색의 치마 단을 따라 미끄러지듯 흘러내린다. 부인은 말 그대로 장미의 정원에 파묻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시기에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두 색 중 하나가 바로 ‘로즈 퐁파두르’, 즉 퐁파두르 핑크색이다. 매우 고급스럽고 광택이 도는 파스텔 톤의 연한 핑크색인 ‘로즈 퐁파두르’는 1757년 그녀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이 색은 오늘날 세계 용어사전에 오를 만큼 유명해졌으며, 프랑스의 상징적인 색으로 간주되는 ‘로열 블루’와 함께 가장 프랑스적인 색으로 자리하고 있다.
20세기에 핑크의 물결이 다시 밀려들어 온 곳은 아메리카 대륙이었다. 그 흐름의 중심 또한 더 이상 귀족이나 엘리트 계층이 아니었다. 특히 20세기의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새로이 부각된 핑크의 물결은 대중문화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정확하게 1959년에 핑크가 가전제품 시장에 등장했다. AT&T사가 출시한 핑크색 전화기 ‘프린세스’의 붐은 이후 핑크 타자기와 핑크 세탁기, 핑크 냉장고로 이어졌다. 핑크색 가전제품의 출현은 곧 풍요로운 일상의 상징으로 간주되었다. 1959년은 핑크에 관한 또 하나의 신화가 만들어진 해로서 바비 인형 붐이 바로 그것이다. 늘씬한 몸매의 바비 인형이 붐을 일으키자 메텔사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바비 핑크’ 색에 대한 엄격한 관리에 들어갔다. 포장지 디자인에서 매장의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바비 핑크는 엄격한 조색 관리를 받아야 했다. 이밖에도 여성의 속옷과 화장품과 향수, 심지어는 여성용 면도기에 이르기까지 핑크는 전형적으로 현대적이며, 특히 여성적인 브랜드의 가장 각광받는 색채로 자리 잡았다.
대중문화의 물결을 탄 핑크는 곧바로 소위 고급 예술계로 흘러들어 왔다. 영미권을 중심으로 일어난 팝아트는 이러한 대중문화와 핑크의 유행을 앞 다투어 차용했다.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스타인, 클래스 올덴버그…. 팝아트의 전성기에 핑크의 적극적인 흔적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젊은 작가들은 르네상스나 바로크의 전통이 아니라, 거리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광고 포스터에서 영감을 얻곤 했다. 이 작가들도 여전히 모델을 그리고 누드를 그렸지만, 이번에 그들은 립스틱을 짙게 바른 광고 모델의 노골적인 포즈를 하고 있다. 이제 화가의 모델들은 파이프를 문채 줄무늬가 있는 패브릭 소파에 점잖게 앉아 있는 대신 글래머의 거대한 엉덩이를 관객에게 들이민 채 곁눈질을 하고 있다. 물론 그들은 핑크색 립스틱을 바르고 핑크색 하이힐을 신고 있다.
이 시대를 지나면서 핑크는 마치 문명의 해결사쯤 되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스위스 출신의 젊은 전위 예술가 실비 플러리는 엔진의 강한 추진력으로 인해 전통적으로 남성의 상징이었던 자동차를 핑크색으로 칠해버렸다. 그녀는 엔진이 완전히 들어내졌을 뿐 아니라 회복 불가능할 만큼 찌그러진, 더 이상 제 기능을 못하게 망가진 캐딜락 전체를 핑크색으로 도색함으로써 새로운 자동차를 탄생시켰다. 도색에 사용된 핑크는 작가 자신의 립스틱의 샘플 차트에서 특별히 선택한 꽃분홍색이다. 여기에는 문제가 많은 남근적 문명을 고유하게 여성적인 세례를 통해 교정한다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의 핑크 처방은 권력적이고 남성적인 미술의 전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유효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전의 화가들을 생각해 보라. 미켈란젤로나 다빈치는 성서를 읽고 기도하면서 초월로 빠져나가는 출구를 생각했을 것이다. 모네나 마티스 같은 화가들도 갈 수 없는 나라를 꿈꾸고 그리워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미켈란젤로는 천국과 최후의 심판을 그렸고, 모네나 마티스는 일본 같은 아시아 국가에 향수를 가졌었다. 하지만, 왜 예술은 항상 먼 곳을 보며 꿈만 꾸어야 한단 말인가? 이러한 질문이 플러리에게 현재 진행 중인 자신의 쇼핑을 마음껏 즐기는 것으로서의 예술, 또는 가장 예술적인 쇼핑에 대해 생각하게 했을 것이다. 그녀는 쇼핑을 즐기고, 다만 즐겁기 때문에 계속 그렇게 하는 것이다. “나는 내게 맞는 것을 사고 나를 즐겁게 할 것을 산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작품의 소재를 얻는다.” 그녀는 자신의 예술이론을 빛내기 위해 거창한 형이상학적 담론들을 주워대지 않는다. 대신 그녀의 인상에 남은 광고 문구를 댄다. 이 광고 문구들이야말로 그녀의 영감을 자극하는 흥분제요 영감의 통로 같은 것이다. 예를 들면 “인생은 무거울 수 있어도 마스카라는 무거워서는 안 돼!” 같은 것들이다. 오늘날 핑크는 또 다른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핑크는 현재 예술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무색하게 하면서 가장 손님을 끌고, 가장 잘 팔리는 색이다. 핑크는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를 파고드는 상업적인 전략의 한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왼쪽·어네스토 네토 <분홍 동굴처럼 생긴 화성에서 걷기> 2001 베니스비엔날레 브라질관 출품작|오른쪽·제임스 리 바이어스 <핑크 실크 오브제> 실크 드레스 1969

핑크의 열린 스펙트럼

핑크색은 결코 단순한 색이 아니다. 그 스펙트럼의 폭은 매우 넓다. 핑크는 그 달콤함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삶의 시름을 슬쩍 잊게 하고, 저 밑에 메여 있던 꿈을 흔들어 깨우기도 한다. 삶의 긴장이 위축시켰던 안식의 일부를 회복하도록 돕는다. 느낄 수 없을 만큼이긴 해도, 혈관을 확장시키고 근육의 이완을 돕는다. 혈압이 낮아지고, 맥박도 느슨해진다.  그러나 핑크는 주변의 색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를 들어 ‘버터플라이 옐로우’나 ‘그로써머 그린’ 같은 우아한 파스텔 톤과 함께 있을 때, 핑크는 안도감을 넘어 신뢰감까지 조성할 수 있다. 반면, 발렌타인 같은 진한 핑크가 블랙이나 자극적인 보라-‘매직 바이올렛’이나 ‘카이 무라사키’ 같은-와 이웃할 때, 그것은 신속하게 교감신경을 자극하는 쪽으로 작용한다. 이 때 핑크는 매우 자극적인 것이 된다. 핑크는 그 채도와 명도, 주변 조건에 따라 퐁파두르 부인의 우아미와 로코코식 귀족 취향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거리의 여인들의 값싼 에로티시즘을 대변하기도 한다. 미소한 변화로도 소녀적 발랄함에서 자살 따위의 병적인 창백함 사이를 오간다. 톤을 조금만 상향하면 어느새 부글거리는 욕망의 창구가 된다. 농도를 약간만 달리하는 것으로도 황후의 품위를 만들거나 창녀의 천박함을 재현할 수 있다.
이제 핑크를 대하는 이 시대의 통념으로 돌아오자. 이는 ‘걸리시 마케팅(Girlish Marketing)’이란 용어에 그 중요한 한 의미의 부분이 드러나 있다. 이 신조어는 10대 소녀 취향의 소비자를 주 타깃으로 한 전략으로, 성년이 된 후에도 10대 소녀처럼 사고하고 행동하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생겨났다. 걸리시 마케팅의 핵심 전략 중 하나가 ‘프리티 앤드 핑크(pretty and pink)’전략이다. 소녀 취향의 만화 캐릭터를 활용하고, 제품의 디자인은 깜찍하게, 그리고 핑크빛을 띠게 하는 것이다. 예컨대 컴퓨터 업체인 게이트웨이가 <금발이 너무해>라는 영화의 속편 곳곳에서 자사 제품인 핑크색 노트북 컴퓨터를 등장시킨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핑크 콤플렉스’라는 용어도 핑크에 대한 이 시대의 통념이 무엇인가를 시사한다. 그것은 성에 대해 억압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기성세대의 속성을 일컫는 말이다. 이 시대의 도처에서 핑크는 성에 대한 일체의 규범들, 성인의 편견과 억압된 도덕률에 편입되지 않은 자유분방함, 미성년 특유의 철이 덜 든 세계, 점점 더 ‘어른을 기피하는’ 시대, 성숙과 무관한 문명, 탈역사적이고 신화적인 세계의 대변자로 나서고 있다.
통념이 모두에게, 특히 모든 작가에게서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작가로선 가까이에 있는 최민화의 회화가 그렇다. 1990년대부터 초부터 지속되어 온 그의 핑크색 모노크롬 회화 연작은 핑크의 당대적인 용례와는 사뭇 거리가 멀어 보인다. 격하고 치열했던, 때론 유혈이 낭자했던 시대사의 서술에 핑크가 적절하다고 답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지만, 최민화는 지속적으로 그렇게 실행해 왔다. 이재현은 최민화 회화의 핑크를 들어 ‘고양된 가두투쟁(街頭鬪爭)의 에로티시즘’이라 했다. 가두투쟁이라는 정치적으로 고양된 순간은 일종의 에로틱한 클라이맥스에 근접해 있다는 것이다. 시위 현장에 누워 있는 사람들의 도상에선 이 투쟁의 에로티시즘이 집약되어 있다고도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에로틱한 순간에 최민화가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해석의 유효성이 아니라, 그것의 근거를 이루는 부분이다. 즉, 최민화 회화의 참여적 발언을 에로티시즘에 비유하도록 만든 근거가 거의 전적으로 핑크색에 있다는 사실이다. 핑크색이 에로티시즘을 불러내는 일종의 주술이라는 것은, 적어도 이 시대에 있어선 결코 과장이 아니다.

김아타 <뮤지엄 프로젝트 #135-니르바나 시리즈> 시바크롬 프린트 120×158cm 2001

성기 에로티시즘, 핑키 에로티시즘

그럼에도 최민화 회화의 핑크가 어떤 해석적 치열함을 제공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회화를 통째로 역사적 발언에 바칠 수 없었던 작가의 ‘예술적 강박신경증’의 발로이건, 작가의 존재 내면에 깊숙이 내재해 있는 ‘반파쇼 기질’로부터 유래한 것이건 그의 핑크는 정신적 미숙아의 달콤한 방종 따위와는 거의 아무런 상관이 없다.
반면, 핑크가 에로티시즘을 불러내는 반자동기제쯤 된다 할 때, 핑크의 그러한 코드에 부응하는 극적인 방식으로 최경태의 회화를 예시할 수 있다. 최경태의 그림들이 시비에 휘말린 것과 그 결과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법적 차원의 결정 반대쪽에는 예컨대 최경태의 회화 행위를 “사회 공간의 수준에서 작동하는 성에 관한 집단적 위선과 기만, 그리고 권력의 훈육적 작동을 들추어내는” (김동일) 일종의 참여 미술로 보는 시각과 여성 신체의 외설화(eroticizing)와 식민화(colonizing)로 보는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 최경태의 회화는 사드(Sade)적 맥락의 과도하고 성기적인 에로티시즘과 관련되어 있으며, 특히 그의 ‘여고생’ 연작이 여성의 신체와 생식기를 중요한 관심사이자 모티프로 삼았던 것은 사실이다. 성기 에로티시즘의 사제격인 사드에게 에로티즘은 전적으로 성기의 만족을 추구하는 성적 쾌락의 차원이었다. 사드는 자신의 소설의 여러 부분에서 성기의 크기나 외양 묘사에 지나칠 정도로 집중했다. 최경태의 회화들에서도 ‘섬세하면서 도발적으로 물들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여성의 성기였다. 그것이 남성들의 성적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건, 아니면 사회적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이건 말이다.
표현이 보다 완화된 그의 최근 작품들은 교복을 걸친 젊은 여성의 피부를 에로티시즘의 맥락에서 다루는데 있어서 핑크가 어떤 방식으로 기여하는가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작가가 그린 모델의 피부 묘사는 켄터베리 로즈나 퐁파두르 핑크 계열이 감도는, 다소 과장된 혈색의 격한 느낌을 준다. 특히 <Adarasi Fantasy>(2008)라는 제목의 그림에서 여성은 슬쩍 음부 위로 치켜 올려진, 열대적 느낌조차 감도는 워터멜론 로즈색의 원피스를 입은 채 노란색 소파에 길게 누워 있다. 이는 핑크가 어떻게 전형적인 소녀적 발랄함과는 거의 무관한, 격한 욕망의 세계의 일원이 되는가를 보여주는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성기 에로티시즘의 시각적 표현에 있어 핑크는 최우선적인 요인이다. 속성상 핑크만큼 영혼이 아니라, 몸에 속해 있는 색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 빛깔은 초월계를 묘사하기엔 너무 세속적이고, 영감이나 계시를 다루기엔 너무 살 냄새가 난다. 존재의 이중성이란 측면에서 보자면, 핑크는 초월이 아니라 현실계, 무의식이 아닌 의식, 그리고 존재의 추구보다는 실존에 급급한 차원에 속한다. 핑크의 급수가 상승할수록, 신체는 결합을 지향하는, 곧 흥분 상태가 된다. 강렬한 핑크는 에로스를 지향하는, 자신을 개방한 성을 소개한다. 여기서 핑크의 톤은 전적으로 욕망의 강도와 비례한다.
사드주의적 생식기 에로티시즘의 경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의 미국에서 새로이 나타난 누드운동으로 이어졌고, 이후 점점 더 현대적 현상으로 자리해 갔다. 같은 시기 미국의 팝작가 탐 웨셀만의 <거대한 미국의 누드> 연작은 이러한 맥락에서 언급할 필요가 있다. 웨셀만의 글래머에서 핑크는 자외선에 덜 노출된 팬티와 브래지어의 흔적 안에서 유두와 음부의 묘사에 나타난다. 이를 제외한 신체의 다른 묘사는 전적으로 생략되어 있다. 두 개의 유두는 덜 태워진 흰 피부 위에서 약간 주황기가 도는 선명한 베스타 핑크색으로 그려져 있다. 바로 위로는 슬쩍 치아를 드러낼 만큼 벌어져 있는 입술 위에 로즈 핑크의 립스틱이 윤기를 발하고 있다. 유두는 팽창해 있고, 살짝 개방된 입술은 유난히 도톰하다. 마찬가지로 덜 일광욕된 피부 위에서 핑크색 음부는 검은 음모와의 대비로 더욱 도도하고 음탕해 보인다. 탐 웨셀만의 섹스어필 글래머들에는 탐욕과 풍성함이라는, 지난 세기의 미국 문명을 관통하는 상징적인 두 코드가 함축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핑크는 미국적인 풍요와 소비라는 욕망의 성취와 연관되어 있다.
이런 배경에서 제프 쿤스 같은 작가가 탄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쿤스가 자신의 아내 치치올리나와 성교 장면을 담은 <Made in Heaven> 같은 일련의 연작들은 어떤 종류의 하드 포르노와 비교해도 그 급수가 떨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피부의 세부 묘사는 물론이고, 성기의 삽입까지 노골적으로 다루고 있다. 웨셀만의 글래머와 핑크가 복합된 것 같은 이미지가 사상 유례 없는 스케일로 플로리다 해변에서 실현되었다. 크리스토는 플로리다 해안의 한 작은 섬을 핑크색 천으로 둘러쌈으로써 그 섬의 한 가운데 있는 숲을 여성의 거대한 음모로, 그리고 그 자체를 흥분된 여성의 성기로 보이게 한 것이다.  
핑크빛이 감도는 성기적 에로티시즘은 현대미술의 도처에서 목격된다. 잘 알려진 루이스 부르주아는 핑크색과 여성의 젖가슴을 연관 지었다. 부르주아는 여성 성기 말고도 ‘몸’쪽으로 해석 가능하다. 낸 골딘은 열댓 개의 거대한 핑크색 젖가슴을 앞에 단 식당 종업원으로 분하여 퍼포먼스에 임했다. 신디 셔먼 역시 자신을 핑크빛이 도는 거대한 성기로 축소시키는 사진들을 제작했다. ‘yba’의 크리스 오필리는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에 도색 잡지에서 오려낸, 핑크 색이 도는 여성의 엉덩이와 성기들을 콜라주해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트레이시 예민은 자신의 성교 장면에 관한 드로잉을 부드러운 파스텔 톤 핑크 위에 그리곤 했다.

왼쪽·요헨 비호프 <카네이션들> 무대 디자인:피터 파브스트, 안무:피나 바우쉬, 댄서:줄리 앤 스탄작 2000|오른쪽·리판 <Suck> 종이에 수채, 프로필렌 55×67cm 2005

핑크와 공주병, 신델레라 콤플렉스

오늘날 예술계에서는 거의 모든 일이 일어난다. 순수성은 무지나 고집이 아니고선 입에 담기도 어려운 가치로 치부되는 반면, 통속과 오락의 온갖 산물들은 날개를 달고 창공을 날아다닌다. 전술했듯, 역사의 부침만큼이나 색의 존명도 극심하게 리듬을 탄다. 팝아트 이후로는 대중매체를 뒤덮었던 온갖 원색들, 감관의 자극이 그 목적인 부조화한 배색들이 이전의 평화로운 조화, 질서 의식과 정서적 안정감에 기여했던 색계를 대체했다. 급진적인 변화 이후 가장 각광을 받는 색 중 단연 으뜸은 핑크색이다. 강렬한 고채도의 핑크는 펑크와 팝과의 호환성에 있어서 다른 어떤 색에 뒤지지 않는다. 그것은 가벼우면서도 흥분을 유발시킨다.
홍경택, 이동기, 낸시 랭 등과 같은 보다 젊은 세대의 작가들에서 핑크는 그들이 곧잘 차용하곤 하는 잘 알려진 스타나 캐릭터, 상품 이미지만큼이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홍경택 회화를 설명하는 적절한 개념들인 플라스틱적 미감, 그래픽적 요인, 훵크(Funk), 그리고 훵크와 오케스트라의 합성어인 훵케스트라 등은 가볍고 허구적이면서도 이질적이기보다는 친근하게 다가오는 핑크색과 잘 호환되는 독특한 판타지에 부응하는 것들이다. 이동기의 아토마우스 캐릭터의 얼굴 피부는 마치 바비 인형의 것과 흡사한 핑크 계열이다. 이동기의 세계를 이루는, 핑크를 비롯한 파스텔톤의 색들에 대해 김희령은 말한다. “파스텔이란 원색의 틈새에 자리한 색채이다. 이는 완전하지 않은 것 또는 미숙함을 의미하며 동시에 인위적인 조작을 뜻하기도 한다. 바로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아토마우스의 심리다.”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핑크는 지적 미숙함이나 기질적 유치함, 신경증적이고 유아적 인격 장애, 특히 여성의 경우에 해당되는 공주병과 결부된다. 정신 병리학적 용어를 빌자면, 공주병은 일종의 자기애적 인격 장애(narcistic personality disorder)의 일환이다. 이에 해당하는 여성들은 자신의 특출한 재능이나 미모로 인해 늘 주목 받아 마땅하며, 실제로 주목 받고 있다는 일종의 자아과대망상 증세를 보인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러한 인격 장애는 리비도가 자기 신체의 내부로 향할 때 발생하는, 즉 자기 신체로부터 쾌감을 얻고 자신의 이상형을 형성하는 유아기의 초기 단계에서 유래하는 정상적인 심리 상태다. 이 자기도취적 심리 상태는 성장하면서 완화되지 않을 때 인격 장애로 진전되는 것이다. 공주병은 유아기의 나르시시즘, 과도한 자기애나 자기중심성이 성인이 되어서도 자연스럽게 소멸되지 않는, 미숙과 부실한 성장의 결과인 셈이다. 
이 철부지적 인격은 집단에 속하는 대신, 튀는 것에서 존재감을 확인하려든다. 자신의 재능과 성취에 과대하게 집착하고, 성공, 권력, 뛰어난 미모, 이상적 사랑이 골자가 되는 공상에 몰입하고, 타인의 관심과 칭찬에 부응하려는 자기현시적 욕구가 강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려 든다. 결국 공주병은 분별력을 상실하게 해 대인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가고, 주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좌절감과 분노, 시기심에 시달리게 한다.
이러한 인격 장애가 현대인의 전형적인 심리 특성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지적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미모와 착한 마음씨로 승부를 거는 공주 이야기의 결말은 온통 핑크빛이다. 핑크는 단지 공주의 드레스 색이 아닌 것이다. 공주 이야기가 매우 교훈적인 척 하면서 실상은 남성주의적 욕망의 산물에 다름 아니라는 지적이 단지 고전적인 공주군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1980년대의 세리나 밍키 같은 비현실적인 일본의 만화 주인공들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된다. 이들에게 핑크는 여성을 성적으로 타자화하는 남근주의의 변질된 욕망을 대변하고 있다. 하늘거리는 핑크 블라우스를 입고 있는 <세일러문>은 메이크업을 통해 변신한다. 그 소녀의 전투복은 여고생 교복의 연장이고,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음으로써 전사가 된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욕망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이보다 선배격인 <요술공주 밍키>도 변신하기 위해 나체의 글래머를 경유해야만 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과학의 이름을 빌린 망상과 공주우화를 얼기설기 엮어 놓은 핑크색 저패니메이션이 고스란히 현대미술의 장으로 유입되었다. 다카시 무라카미의 주식회사형 아틀리에 ‘카이카이키키’에서는 이 같은 가상의 인물들이 3D 버전으로 제작되고 있다. 미소녀 피규어 제1호인 <미스 코(Miss Ko2)>(1977)는 팝가수가 되기를 열망하는 웨이트리스다. ‘미스 코’는 반소매에 하얀 레이스가 달린 핑크색 원피스와 핑크색 구두를 신고 있다. (2003년 5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5억6천만원에 거래되었다.) 같은 해 제작된 미소녀 피규어 2호인 <히로뽕(Hiropon)>은 전혀 그 기능을 하지 못하는 작은 핑크색 브래지어를 비웃는 듯한,  거대한 가슴을 가진 글래머 소녀로, 양 가슴에선 모유로 보이는 액체가 격하게 분출되고 있다.
일본의 여성 비디오 작가인 마리코 모리의 시공을 초월하는 변신 역시 세라나 밍키의 맥락에서 언급될 수 있다. <열반>(1996~97)이라는 3D 비디오 작업에서 그녀는 불교 신의 하나인 길상천(吉祥天)으로 변신하는데, 모리가 본 열반은 온통 소나타 핑크와 카메오 핑크로 가득한 세계다. 신비스러운 제스처와 음향에도 불구하고 이 열반에서 진지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지극히 일본적이고, 저패니메이션다운 상황이다. 일본사회에서 유난히 꿈의 변종들이 난무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세일러 문에서 마리코 모리의 섹스어필하는 사이보그에 이르기까지, 이들 모두는 전형적인 남근주의적 사회가 잉태한 섹스어필의 미인 개념과 일치한다. 즉 ‘사고력이 없는 아름다운 외모와 순응적 성격’의 반영이다.   
공주와 핑크, 이 둘은 오늘날 다른 어느 것보다 섹스어필의 상업주의와 결탁해 있으며 허위 의식을 만연하게 하는 사회문화적 기호가 되어있다. 대중매체는 그것들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고, 여성은 과거의 어느 때보다 더 성적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는 마치 여성의 정체성의 등에 혹처럼 달려 있다. 정소연의 바비 인형은 이런 맥락에서 언급될 수 있다. 바비 인형은 금발에 가는 허리의 글래머, 남성들의 시선을 반영하는 전형적인 서구 미인형이다. 바비 인형을 통해 여자 아이들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달콤하고 핑크빛이며 글래머인 여성, 능숙하게 공주와 오피스 우먼을 오가는 여성을 학습한다. 핑크와 섹슈얼리티를 접합하도록 강하게 동기화되는 환경 속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윤정미 역시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색에 대한 통념이 생성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여자-분홍, 남자-파랑 등의 구분은 심지어 아이들이 태어나기 이전, 그러니까 부모가 신생아 용품을 준비할 때 이미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과정들이 결국 한 사람의 색 감정, 조형 감각과 심미 인식 전체에 거부하기 어려운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왼쪽·실비 플러리 <Pleasures> 월페인팅 1996, <무제> 카펫, 소파, 상자 1996|오른쪽·폴 매카시 <회전하는 찻잔> 혼합재료 1978~94

핑크의 한 형이상학 : 치유와 데카당스 사이

오늘날, 내일의 삶에 대한 예측은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극심한 불황이 장기화되리라는 예측 속에서 삶과 노동의 거의 전 분야에서 미래 전망은 암울하기만 하다. 여기에 과도한 경쟁과 계층 간 양극화의 심화, 졸렬한 정치 풍토, 만연한 거짓과 부패 같은 현대화의 고질적 병폐가 더해지면서 사회적으론 심각한 스트레스를 넘어 집단적 우울증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불안과 근심, 두려움으로 인한 존재의 위축은 한편으론 사행성 오락문화가 (매스미디어를 넘어) 예술의 영역까지 잠식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다른 한편으론 출산율과 자살률의 급증 같은 절망의 고조된 급수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세기말 이후 최근까지 핑크색의 유행은 낙조적인 시대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핑크가 넘실거리는 화사한 거리의 이면에는 어둡고 침울한 사회가 존재한다. 이 시대를 지나는 사람들은 설사 그것이 실체성이 아니더라도, 어떤 거짓의 신호라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거짓에 기대서라도 춥고 어두운 영혼의 겨울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것이리라. 만연한 부조리와 그것들이 남긴 온갖 상처들은 온기와 부드러움과 치유를 필요로 한다. 이 온기와 치유에의 호소는 핑크색이 대중문화와 예술 전반을 채색하는 작금의 현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실존의 혹한을 경험한 영혼이라면 금방 알아볼 수 있는 어떤 가치가 핑크색에 내재되어 있다. 핑크만큼 따뜻하며 안도감을 선사하는 색은 없으며, 그것이 이 색을 춥고 불안한 실존에서 우선적으로 불러내는 색으로 만든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은 인생이 자주 ‘어려움의 산’과 ‘죽음의 골짜기’와 ‘고난의 늪지’들에 에워싸이는 여정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인생이라는 각축장에서 ‘다른 사람보다 앞서 나가야 한다는 것’이 보편의 지침이다. 트로이 전쟁의 출정을 앞둔 아들 아킬레스와 글라우코스에게 주어졌던 부친의 당부도 ‘앞서 진격하라’는 것이었다. 이 영웅의 지침은 시민의 시대 이후 보편적 욕망으로 자리했다.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더 많이, 더 빨리”를 외치며 산다. 하지만 어떻게 질주하는 동시에 어떤 실수도 범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니체의 답은 확고했다. “네가 알아서 해라”가 그것이다. “당신이 인생의 강물을 가로질러 건너야 할, 그 다리를 대신 만들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오직, 당신, 당신만이 그것을 만들 수 있다.” 그렇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만 급류에 휩싸여 떠내려갔는지! 하지만, 선택된 소수만을 남기는 이러한 도태야말로 니체에겐 제대로 굴러가는 역사의 모습이다. 니체에겐 위버맨쉬(Ubermensch), 참된 진보의 주체만이 그 생존이 의미가 있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종교적, 형이상학적 미몽에서 깨어난 자, 전통 가치의 전도를 담당하는 자, 목적론적이고 이원론적 세계관의 허구를 깨달은 계몽된 자, 곧 힘의 의지를 삶 속에서 구현하는 위버맨쉬만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릴 적자라는 것이다. 
니체에 따르면 거창한 역사의 수레바퀴의 담장자들인 영웅의 반대편에는 이 위대한 수레바퀴에 깔려죽는 개미들, 즉 역사의 선택에서 버림받은 다수가 있다. 이들에게 주어진 선택은 도덕적 관용에 의존해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거나 역사의 청소부에 스스로를 맡기거나 둘 중 하나다. 물론 위버맨쉬가 개미들의 생명보험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게 니체의 생각이었다. 니체에게 심리적 위안은 패배자의 데카당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까. 하지만, 역사의 ‘진정한(?)’ 주체들만 남아 쉴 새 없이 수레바퀴를 굴려대는, 깔려죽는 개미떼에 의해 그 속도조차 완화되지 않는 세상이란 과연 어떤 세상인가? 아마도 니체 자신조차 그런 세상에선 단 하루도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자멸! 아마도 그것이 답일 개연성이 높다. 위버맨쉬의 나머지들을 고작 역사의 수레나 망가뜨리거나 그 바퀴에 깔려 사지가 잘리는 역사의 조무래기들로만 정의하는 이분법은 니체 같은 ‘불행하게 잘난’ 자의 착각에서나 유효한 것이다.
존재와 실존의 이해에 있어 전쟁터만큼 중요한 현장이 야전 병원이다. 이곳은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부상자들이 모이는 곳이지만, 용맹한 전사들조차 언제까지 이곳을 피할 수는 없다. 여기서는 절단된 사지를 붙이고, 튀어 나온 내장을 수습하고, 지혈하고, 상처를 부패와 염증으로부터 보호한다.
색채심리학의 맥락에서 부드러운 핑크색은 마음의 고통을 덜어주고, 흥분을 가라앉게 한다. 분노를 삭이고, 자신의 실패에 대해 관대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성격으로 핑크는 다감하고 우정 어린 친구가 될 수 있다. 약효는 인생이 우리에게 주입시킨 ‘주의 집중’의 철학을 부드럽게 해체함으로써 발휘된다. 그것의 파장은 그 심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횡적으로 조용히 번져 나가는 것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핑크는 굳건한 의지의 소유자며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위버맨쉬의 색이 아니다. 핑크는 그들의 특성인 치열한 승부근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역사의 수레바퀴 에는 관심이 없으며, 목청을 높여 외쳐야만 할 어떤 절박한 구호도 없다. 횡적 성격, 배경이나 이면의 부재는 핑크의 탈역사성을 의미한다. 핑크는 어떤 과거의 전승이나 미래의 조망도 담고 있지 않다. 통일성이나 연대감이나 정합적 차원과도 무관하다. 그것은 진정성이나 전통과 같은 문맥을 부정하고, 하나의 서사 구조로 전진되는 것을 거부한다. 그것의 세계는 매우 감미로운 무질서, 안락한 아노미 상태와 흡사하다. 
바로 이 탈역사적 평면성, 실존에 반하는 느슨함이 핑크를 질식할 것 같은 역사의 압박감에서 튕겨져 나온 낙오자들, 영웅에 눌리고 주눅이 든 대다수 소시민들의 색으로 만드는 요인이다. 핑크의 처방은 긴장을 풀고 한 숨을 돌리고, 경직된 근육을 이완시키는 것이다. 신념, 의무, 사명감 같은 것들이 얼마나 마음을 누르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하고 악몽에 시달리게 하는가. 핑크는 상처받고 소외된 내면을 치열한 경쟁과 과로와 스트레스로부터 격리시킴으로써 고통을 완화시킨다.    
핑크는 실존의 압력을 현저히 낮추는 성능 좋은 강압기와 흡사하며, 그 느낌은 노을이 깃든 석양만큼 편안하다. 그것의 정서는 원색들로 난무하는 치열한 한낮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님프들의 나지막한 연주를 환기시킨다. 어떻든 또 하루가 탈 없이 지나간 것을 자축하는  정서, 하루의 고된 순간들을 뒤로 하고, 평화로운 밤을 맞도록 마음을 비우는 의식, 그것이 바로 핑크의 주조적인 정서이다. 
하지만, 핑크의 치유적 맥락은 그 의미가 과장되거나 오용될 때 기만적인 것과 관련될 수 있다. 그럴 때 그것의 치유적 맥락은 또 다른 교묘한 상실과 고통의 전주곡일 수 있다. 핑크의 힘은 실존의 정치적인 차원들이 제거된 안전한 온실을 제공한다는 데에 있지만, 이는 동시에 생의 변증법적 긴장이 결여되어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것이 핑크 요법의 오남용이 특히 경계되어야만 하는 이유다. 핑크의 온수욕 효과는 오히려 회복의 처방을 통해 약화시키고, 피부에 난 환부를 싸매면서 정작 심연의 상처는 방치하는 역설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데카당스는 언제나 자신의 반대물로 위장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핑크도 마찬가지다. 핑크의 따듯함은 영혼의 냉각을 은폐하거나 위장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핑크 요법에 전적으로 기대는 순간, 핑크의 파괴 작업이 착수된다니 말이다. 산업화된 핑크, 핑크의 산업화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오늘날 색 역시 점점 더 산업과 자본의 맥락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감성의 내밀한 차원에서가 아니라 소비의 진작을 위해 연구된다.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공격하기 위한 전략의 차원에서 접근되고 있다. 디자인계는 미래의 시장이 색채 경쟁의 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으면서 전의를 불사르고 있다. 색은 칼라 마케팅, 칼라엔지니어 등의 신조어의 어근으로 활용되며, 이미 ‘컬러리스트(colorist, 색채전문가)’라는 자격증도 등장했다. 색은 매일처럼 사적인 공간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상업 전단지와 같은, 축복이 아니라 공해의 성격을 띠어가고 있다. 핑크 산업은 현재 그중에서도 절정에 달해 있다.
핑크는 오늘날 거대한 현대적 상업 시스템에 의해 꿈의 소비라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이 비인간적이고 억압적인 방식에 의해 강제 동원되고 있다. 그 결과 핑크는 현대도시의 일상을 뒤덮고 있으며, 분별력을 공략하는 거부하기 어려운 폭압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 심리적 친화력은 더할 수 없이 비인간적으로 작용하고, 가장 공격적이고 침투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오늘날 색의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정직한 본성을 회복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일에는 그것에 대한 편견과 왜곡과의 싸움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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