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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1.04

Abstract

World Art Market Now_Go Up!? 4월 art의 특집은 세계 미술시장의'지금'이다. 2008년 리만브라더스의 붕괴 이후 깊은 침체의 늪에 빠졌던 세계 미술시장은 현재 바닥을 치고 다시 오름새를 보이고 있다. 미술시장이 이륙하려는 것일까? 세계 미술시장의 어제와 오늘을 점검했다. Top Artist 100 순위와 함께 '지각 변동' 중인 세계 미술시장의 흐름을 살피고, 올 미술시장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뉴욕 ‘아모리 아츠 위크’를 리포트한다. 마지막으로 중국 미술시장의 지난 10년을 되돌아 보는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싣는다.

Contents

표지  스테판 길 C-프린트 61×51cm 2006

영문초록

에디토리얼  일본의 대참사,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김복기

핫피플  
    박만우_‘백남준의 집’새 사령탑  장승연
    샘 개러비츠_수교 50주년의 ‘문화 외교’  김수영
    유상덕_‘숨어 있는 소나무’처럼  김재석
 
프리즘
    국가 소장 미술품 관리 시스템 시급하다  최은주
    ‘전국 미술대학 학장 협의회’ 창립에 부쳐  이선우

포켓 속〉〉〉디카 속〉〉〉이미지 채집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포커스
    정희승展|전소정展  정연심
    운율에 맞춰 춤을 추다展|문성식展  강수미
    TEXT/VIDEO/FEMAIL: Art after 60’s展  양은희
    손정은展|이보람展  이선영 

특집  World Art Market Now Go Up!?
    (1) Top Artist 100  김수영
    (2) ARMORY ARTS WEEK 2011  변홍철
    (3) Chinese ART MARKET 10YEAR  art in ASIA 편집부

특별 취재  울리 지그  
    ‘푸른 눈’의 컬렉터가 지은 중국 현대미술의 보물창고  곽준영

아티스트 인사이드
    이득영_종횡으로 변주되는 한강 프로젝트  김재석
    이정민_화가의 경험 & 회화의 감각  호경윤

오후의 아뜰리에  봄을 맞이하며  한용진

테마 스페셜  2010마을미술프로젝트
    ‘예술-지역-공공’을 위하여  김미진
    비로소 공공미술은 시작되었다  김해곤

아트 포럼  
    도자의 새로운 경계를 찾아서  이인범

이미지 링크  Hackney Flower  스테판 길

해외 미술  제10회 샤르자비엔날레
    비엔날레를 위한 플롯, 혹은 음모  박재용 장혜진

암흑물질  ‘오늘, 여기’ 젊은 예술가의 생존법10 
    이수성 최원준 안데스 정윤석 조은비 이은우 함영준 이상현 김소영 윤사비

잇 아티스트  박유미|김운섭|김홍빈|유장우

전시 리뷰
    심문섭|조해영|서용선|김하영|박종빈
    앤디 덴즐러|주황|조현진|네이버링 이펙트|홍인숙

전시 프리뷰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예술-지역-공공’을 위하여

대전광역시 <중촌동에는 거리미술관이 있다> 김종한, 권재현, 이청학 <왜 울어요?> 아크릴 수지 1300×280cm

‘예술-지역-공공’을 위하여

글 | 김미진 ·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

왼쪽 · 서울 마포구 <함께 움직이는 마을-동동동(同動洞)> 김형관 <꽃잎가벽> 타일 외 혼합재료 | 오른쪽 · 제주 제주시 <독사 천(川) 흐르네> 송창훈, 윤덕현, 이승수 <독사천 조형물> 제주석, 브론즈 140×140×350cm

우리나라는 원조를 받던 개발도상국에서 OECD의 24번째 회원국으로 급성장한 지구상의 유일한 국가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정치와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내부의 성장통은 매우 컸지만, 그 가운데 우리는 어느덧 우리나라가 선진국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선진국이란 경제적 지표를 넘어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가 강하고, 그에 대한 욕구 역시 많은 나라다. 문화는 부를 이루더라도 한 번에 그것을 사들이거나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예술은 시대정신을 대변하며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문화예술이 자연스럽게 삶 속에 스며들어 우러나와야만 진정 풍요롭고 질적인 부를 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국민 스스로가 지속적으로 향유하고자 노력하는 태도와 교육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문화예술을 향유한다는 것은 개개인의 관심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도 활발한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1% 미술장식품 설치법, 환경조각, 도시갤러리, 다양한 공공미술프로젝트를 통해 예술진흥책을 펼치고 있다. 마을미술프로젝트 역시 이런 공공미술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행된 것이다. 이 사업은 크게 보자면 작가들의 일거리 창출과 지역 문화 발전이라는 두 가지 목적으로 국가주도하에 2009년에 시작됐다. 추진위원회가 설명하는 이 프로젝트의 목적을 좀 더 열거하자면, 역사 지리 생태 문화적 가치가 잠재되어 있는 지역에 테마가 있는 공공미술을 가미하여 문화예술공간을 창조하고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 그리고 공공미술을 통해 도시재생과 마을의 랜드마크를 만들어 소외지역 생활환경 개선 및 문화예술 향유증진과 지역 경제에 기여하자는 의의가 있다. 즉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이미 문화예술 인프라가 어느 정도 보급된 주요 도시나 환경적으로 부유한 지역을 떠나, 지역 구석구석의 문화 소외지에 예술을 전파하려는 정책인 것이다. 지역의 많은 예술가들과 행정가, 주민들이 힘을 합쳐 예술의 사회 정착화를 시도하는 것은 곧 쾌적한 환경과 풍요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비록 눈높이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예술적 환경 안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변화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키고 더 나은 환경을 향유하며 살아가기 위한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결국 이것은 우리의 행복과 직결된다.

울산광역시 남구 <장생포, 고래를 기다리며…> 이강준, 김기연 <고래 찾는 자전거> 350×450cm

다채로운 결과물들

2010마을미술프로젝트는 작가와 지자체가 단일팀으로 구성해 응모함으로써, 2009년 프로젝트보다 한 단계 더 발전된 양상을 보여 주었다. 예산 부분에서도 국비 및 지자체 예산이 합쳐져 작품의 질적인 효과를 상승시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지자체의 관심과 협조가 필요한 사후 관리의 문제까지도 보완하는 데 손을 뻗었다. 그리고 지역 작가들이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발표의 장과 일자리 제공 부분에서 어느 정도 대안을 제시해 주는 결과를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2010년 사업은 문화적으로 소외되고 쇠락한 거점시설에 지역의 특성이 반영된 공공미술을 도입하는 프로젝트 ‘우리 동네 문화소동’과, 지역의 역사 문화 콘텐츠 스토리텔링하기 및 재활용을 통한 환경 친화적 공공미술프로젝트로 구성된 ‘테마 이야기’라는 2가지 공모로 진행됐다. 지면상, 각기 공모 주제에 따라 잘 완결되었다고 평가되는 몇 가지 사례만 여기서 되짚고자 한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450번지 성산시영아파트 내 도서관의 <함께 움직이는 마을-동동동> 프로젝트는 ‘소통과 환경의 순환’이라는 주제에 따라 오랫동안 방치된 낡은 아파트의 복지관을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버려진 가구들을 주민들과 함께 리폼하여 다시 지역 경로당이나 시설에 기증하는 공방을 운영함으로 삶과 함께 예술의 순환을 시도했다. 사각의 작은 입구에서부터 화려하면서도 추상적인 색채와, 벽에 설치된 꽃과 나뭇잎 조형물 덕분에 건물 스스로 하나의 작품이 되어 주변 환경을 자연스럽게 바꾸어 놓았다. 특히 이곳은 도서관으로 사용됨으로써 교육과 소통의 공통 공간이 되고, 주민들이 장기적으로 예술을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게 한 실용적인 예라고 본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만남의 광장 주변의 <Word in Word Typo Art Park>(Project Movement)는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안산공단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여 미술과 접목시킨 형태다. 각국의 전통 문양의 실루엣을 스텐실로 작업하여 건물 외벽을 장식하고, 광장 계단은 ‘감사합니다’라는 의미의 각국의 언어로 장식했다. 각 나라의 존경받는 인물들을 표현한 패널화를 광장 입구에 설치하고 마당 한 켠에 아이들이 쉽게 놀 수 있도록 우리나라 전통놀이인 사방치기 그림을 그려 놓은 것은 한국 안에서의 다문화 지역을 해석하는 섬세함과 배려를 느끼게 한다. 단지 화강암으로 만든 아트벤치는 견고성은 있겠으나 예술적인 해석이 부족하고 차가운 느낌을 주는 점이 아쉽다.
태백시의 (구)공점동 사무소의 <태백의 기억>(미술모임 ‘사계’)은 폐탄광이 늘어 경제적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의 재생을 위해서 예전의 활기찬 광산의 모습을 소재 삼아 향수와 추억으로 풀어 낸 작업이다. 현재는 없어지고 잃어버린 도시를 기념하는 그 지역의 장소적 역사성과 특징을 잘 살린 작업으로 평가하고 싶다. 탄광 인부가 일하는 모습을 도상으로 기호화시켜 제작한 외벽이나 실내의 초상화 시리즈는 이 지역에 실제 일을 했던 광부의 얼굴과 모습을 담고 있는데, 이는 기록적인 부분과 디자인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 지역만의 기념비를 만들고 있다. 충북 괴산군 군민체육공원의 <해, 달, 별 그리고 사람(프로젝트 봄)>은 괴산이 청정자연 지역이라는 것을 주제를 잡았다. 지역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체육시설과 산책로를 선택하여 주민들이 이곳을 문화공간 및 학습장 역할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새롭게 조성했다. 별자리를 기록한 파고라와 특산물 고추로 만들어진 아트 벤치는 나무와 스테인레스를 적절하게 사용한 친환경적 작품으로 격조와 유머를 갖춘 동양적 감성이 돋보인다. 동물모양의 철골조 조형물 역시 추후 넝쿨이 자라나면 자연스럽게 천연 동물원과 같은 유쾌한 모양새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제주시 이도2동의 <독사천(川) 흐르네>(제주창작연구소 美)는 거대하여 삭막해 보였던 아파트 옹벽과 주차장의 빈 벽을 캘리그라피와 조형물, 타일벽화로 통일성 있게 작가들의 노력이 돋보이는 좋은 예라고 본다.

강원 영월군 <아트미로>이희경, 정진아, 박창식, 김민아, 김남돈 <아트미로> 전경 2700m²

좀 더 창의적일 필요가 있다

이렇듯 각 사례들마다 크고 작은 장점과 개성이 돋보이지만, 2010마을미술프로젝트를 전반적으로 살펴 보면 각 지역에서 취할 수 있는 다채로운 주제에 비해 완성된 작품들의 형식 등에서 그다지 큰 차별성을 찾을 수 없었다. 마을미술프로젝트의 완성물은 공공성, 장소적 환경에 부합하는 작품을 만드는 동시에 현대미술로서의 예술적 가치를 보여 줘야 한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칠 것이다. 참여 작가들의 많은 고민에도 불구하고, 마을미술프로젝트가 더욱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새로운 소재와 표현 방식을 꾸준히 연구해야 할 것 같다. 앞으로의 격려의 의미로 몇 가지 사례를 지적해 보고자 한다.
전북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구서도역 일대의 <마안 서도가 좋아졌등교?>(행.희.낭 프로젝트)는 근대문화유산이 된 (구)서도역의 작은 시골기차역과 최명희의 소설 《혼불》의 중심 배경 소재를 접목시켜 프로젝트를 실행한 것이다. 철도 침목에 《혼불》에 나오는 일부 문장을 붙이고 이를 마을 입구에서부터 4m까지 세워 ‘문학마을’이라는 것을 인식시켰다. 사실적 기법으로 소설에 등장하는 내용을 그려 넣은 벽화와 입체조형물은 그다지 특색 있는 작업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러나 역사 담장에 그려 넣은, 서도에서 혼불문학관으로 떠나는 완행열차의 창문에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 넣은 작업은 꽤 흥미롭다. 경북 경산시 증방동 돼지골목의 <하늘공간-미술관 경산>(Enjoy Culture)과 울산광역시 남구의 <장생포, 고래를 기다리며…>(연어와 첫비)는 낙후되고 소외된 지역에 잃어버린 꿈과 이상, 희망을 상징하는 주제를 통해 재생과 활력을 되찾아 주려는 목적으로 진행된 프로젝트다. 그러나 의도와는 달리 경산의 작가 개개인이 그린 벽화나 조형물로만 이루어진 작업을 보면, 과연 지역민들과 함께 연구하며 섬세하게 접근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장생포의 ‘고래’ 테마의 작품들은 차분하게 정리되어 보이는 부분은 높이 평가되나 여전히 벽화와 조형물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면이 아쉽게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공모3. 테마 이야기’는 충북 보은군의 <도깨비잔치(현조형연구소)>, 전북 군산시의 <길111 in 군산>(길111 in 군산), 경기 김포시의 <꿈꾸는 대명항>(아트로드), 강원 철원의 <Forever Fish Project>(Anima D’arte 조형연구소), 강원 영월군의 <아트미로>(Art Maze)가 진행되었다. 이러한 사업의 경우는 ‘테마’를 전면에 내세울수록 꾸준한 연구와 검토를 통해 실질적인 테마형 공공미술프로젝트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규모가 큰 프로젝트인 만큼 각 참여 작가들의 고생도 컸을 것이라 짐작된다. 하지만 단순한 공공미술 작품을 넘어 각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게 될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만큼 큰 책임감이 따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의 강점을 꼽자면 문화 소외 지역 주민들이 작가들과 함께 각 지역의 스토리를 발굴하며 작품 제작에도 참여하고, 교육도 받을 수 있는 예술 향유의 첫 번째 단계를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는 것이다. 물론 빠르게 변화되는 환경과 다양한 일반 대중과의 만남이 빈번해지면서, 지역마다 특화된 예술마을을 만들 수 있는 창의성과 질적 요구가 곧 따를 것이다. 예술성 공공성 지역성 모두를 요구하는 마을미술프로젝트는 대중성과 전문성 간의 격차라는 태생적 문제 가운데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격차를 줄이는 것이 예술적 질일 것이고, 그것은 결국 공공미술의 성공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마을미술프로젝트의 2011년 사업이 슬슬 시작되었다고 들었다. 앞으로도 계속될 새로운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이번에 성공한 예를 발판삼아 한 단계 더욱 나아갈 것이라 기대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두 번의 프로젝트에 관해서도 관, 민, 예술가들이 함께 연구하면서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며, 각 지역들이 수준 높은 예술마을로 정착되기를 바란다.

비엔날레를 위한 플롯, 혹은 음모

임란 쿠레시 <사랑의 땅에 대한 축복들> 2011

비엔날레를 위한 플롯, 혹은 음모

글 | 박재용, 장혜진

혁명에 대해 직접 말하기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해 루마니아에서는 차우세스쿠 정권에 대항하는 시민혁명이 일어났다. 수도 부쿠레슈티의 시민들은 방송국을 점령하고 12월 21일부터 5일간 스튜디오의 카메라로 혁명의 과정을 중계했다. 작가 하룬 파로키(Harun Faro cki)와 안드레이 우지카(Andrei Ujica)의 작업 <어떤 혁명의 비디오그램(Videograms of a Revolu tion)>(1993)은 그 5일 간의 기록을 1시간 46분 길이의 영상으로 편집한 작업이다. 혁명의 생생한 순간과 이면을 거친 화면으로 보여 주는 이 작업은 아랍에미레이트 연합 북부 지역, 페르시아 만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토후국 샤르자에서 열리는 샤르자비엔날레의 출품작이다. 올해로 10번째를 맞이하는 샤르자비엔날레는 비엔날레를 위한 플롯, 혹은 비엔날레를 위한 음모라는 뜻으로 읽힐 수 있는 ‘Plot for a Biennial’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샤르자 시내 곳곳의 18개 장소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는 중의적인 주제와 함께 여러 개의 복잡한 단어들을 제시한다. 우선 전시 전체에 대해서는 반역(Treason), 필요(Necessity), 폭동(Insur rection), 연합(Affiliation), 부패(Corruption), 헌신(Devotion), 폭로(Disclosure), 번역(Transla tion)이라는 단어들이, 참여 작가들에 대해서는 배신자(Traitor), 모략가(Traducer), 협력자(Collabo rator) 실험가(Experientialist)라는 단어들이 제시된다. 물론 제시된 단어들은 명확한 규정적 의미들의 집합이라기보다는 비엔날레라는 플롯에 대한 비선형적 이해를 돕는 참조어의 리스트에 가까운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혁명과 혼돈, 신뢰의 상실 가운데서 예술은 어떤 위치를 점유하며, 어떤 역할과 입장으로 의미를 찾고 이 복잡한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 연일 예측할 수 없는 정치적 사건과 변화가 이어지고, 전시 개막일 무렵에도 GCC(Gulf Cooperation Council, 걸프 협력 회의)가 바레인으로 시위 진압 병력을 파병하는 등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혼란 가운데 열리는 비엔날레는 어디쯤에 위치하는 것인가. 이번 샤르자비엔날레는 하룬 파로키와 안드레이 우지카의 비디오 작업에서 재현되는 혁명의 순간을 보며 느끼게 되는 모종의 당혹감과도 같이, 예상치 못한 면모를 통해 이런 질문에 응답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샤르자비엔날레의 역사와 주변부의 동시대 미술 행사로서의 전략을 살펴보는 것이 이번 비엔날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왼쪽 · 쇼레 메란 <여학생들> 캔버스에 유채 2009~2010 | 오른쪽 · 기욤 카사르 <스키테일> 2011

페르시아 만의 가장자리, 샤르자

헐리우드 영화를 통해 학습되는 전형적인 ‘아랍’의 이미지나 ‘7성급 호텔’이라는 말로 회자되는 화려한 두바이의 이미지만을 생각한다면, 페르시아 만 끝자락에 자리잡은 샤르자를 방문하는 경험은 분명 당황스러운 일이다. 인도로 향하는 교역로에 위치한 샤르자는 수천 년에 달하는 긴 역사를 가진 도시로, 18세기 초부터 카시미(Qasimi) 일가가 통치하고 있다. 건축이나 금융 등에 집중한 연합 내의 다른 토후국들과는 달리, 샤르자는 1980년대부터 도시가 가진 풍부한 문화적 유산에 집중하고 있다. 1993년부터 시작된 샤르자비엔날레 역시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된 행사이다.
2003년 이전의 샤르자비엔날레는 지금과 같은 국제적 동시대 미술 행사가 아니었다. 샤르자비엔날레는 다만 아랍에미레이트 연합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토후국으로 알려진 샤르자에 걸맞은 전통적 주제의 회화 작업을 주로 선보이는 큰 규모의 전시회였을 뿐이다. 하지만 2002년, 영국 왕립예술학교를 갓 졸업한 샤르자 토후의 딸 셰이카 후어 알-카시미가 비엔날레의 디렉터 직을 맡으면서부터 샤르자비엔날레는 동시대 미술의 전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처음부터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2003년 봄에 열린 6번째 샤르자비엔날레는 25개국 출신의 작가 117명이 참가한 큰 규모의 전시였지만, 오프닝 당일까지도 일부 작업의 설치가 끝나지 않는 등 운영상의 문제점들이 있었다. 당시로서는 샤르자뿐만 아니라 어떤 아랍 국가에서도 국제적인 규모의 동시대 미술 행사는 생소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아랍권은 분명히 현대미술의 중심부와는 먼 곳에 서있는 듯 보였다.
협력, 자기반영, 확장: 주변부를 위한 전략
뒤늦게 시작하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기회가 없었던 주변부에서 펼쳐지는 국제적 규모의 동시대 미술 행사는 어떠한 방향성을 띠어야 할까? 2003년 샤르자비엔날레의 ‘변화하는 지평에서의 예술: 세계화와 새로운 미학적 실천(Art in a Changing Horizon: Globalization and New Aesthetic Practice)’이라는 다소 긴 제목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2003년 샤르자비엔날레는 변화하는 지평에 있었고, 동시대의 예술적 맥락을 놓치지 않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강력하고 지속적인 협력, 자기 반영, 확장의 전략을 선택했다. 물론 이러한 전략은 토후국의 아낌없는 재정적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랍에미레이트 연합 내의 다른 토후국과 다른 국가들에서 경쟁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각종 예술 행사들과의 차별점으로, 샤르자비엔날레는 자기반영과 협력에 더해 스스로의 영역에 대한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2009년 치러진 9번째 비엔날레는 처음으로 전시를 담당하는 큐레이터와 퍼포먼스 및 영화에 대한 큐레이터를 별도로 두고 각각 ‘미래에 대한 예비(Provisions for the Future)’와 ‘다가올 날들의 과거(Past of the Coming Days)’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바 있으며, 금년에는 수잔 코터(Suzanne Cotter, 현 구겐하임 아부다비 전시 큐레이터), 라샤 살티(Rasha Salti, 독립큐레이터, 작가), 해이그 아이바지안(Haig Aivazian, 작가) 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큐레이토리얼 팀이 시각 예술에서 출판, 영화와 음악에 이르는 다양한 영역을 통섭하는 전시를 시도하고 있다.
동시대 미술 행사로서 재출발을 시작한 이후 끊임없이 비엔날레의 역할과 정치성에 대한 자기 반영을 멈추지 않은 21세기의 첫 10년 간, 샤르자비엔날레는 중동 지역에서 가장 비중 있는 동시대 미술 행사로 입지를 굳혀 나갔다. 그러한 과정 가운데서도 전통적인 비엔날레의 모델을 탈피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은 지속되었다. 2008년부터 시작된 샤르자비엔날레 프로덕션 프로그램(Sharjah Biennial Production Programme) 또한 그러한 노력의 결과이다. MENASA(중동 북아프리카 남아시아) 지역의 예술가들에게 공개 지원을 받아 선정 작가들에게 총 3만 달러의 지원금과 함께 작품 제작을 돕는 이 프로그램은 일회적 행사로서의 기능을 넘어서서 지역 내에서의 예술 창작 활성화를 도모하며 MENASA 지역에서 샤르자비엔날레의 비중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정보 시각화와 관객 참여를 통한 지도 제작, 배포 프로젝트인 <샤르자 시티 맵>으로 이번 비엔날레에 참여한 뉴욕의 알렉시스 바흐갓(Alexis Bahgat)과 샤르자비엔날레에 대해 나눈 여러 이야기들 중 인상 깊은 대목은 이렇다.  “중동과 아프리카에는 훌륭한 생각을 가진 시각 예술가, 작가들이 많이 있다. 지금은 여러 레지던시나 프로그램이 생기고 있지만, 그들에 대한 지원은, 아직도 부족하다. 샤르자비엔날레는 여러모로 지역의 재능 있는 사람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발판이 되고 있다.”
참여 작가인 바흐갓의 이러한 평가는 비엔날레의 참가 작업에 대한 지원 방식에서 잘 드러난다. 119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이 전시의 작업들 중 65개 이상이 샤르자 프로덕션 프로그램의 커미션을 통해 새롭게 제작되었다. 작품 커미션이 반드시 컬렉션으로 이어지지는 않으며, 비엔날레를 운영하는 샤르자예술재단은 커미션된 작업 중 일부만을 컬렉션에 추가한다. 이와 함께 샤르자 프로덕션 프로그램이 시작된 2008년부터 매년 3월마다 ‘3월 회의(March Meeting)’를 열어 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예술 기관과 작가, 큐레이터들이 서로의 작업을 소개하고 교류하는 기회와 함께 동시대 미술과 예술 전반의 흐름을 논의하며 그들의 네트워크를 강화시킨다. 또한 샤르자비엔날레가 창립한 1993년부터 시작되어 지금은 샤르자예술재단에서 수여하는 샤르자비엔날레상은 비엔날레 참가 작가들을 대상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 남아시아뿐 아니라 보다 넓은 지역의 작가들을 지원하는 제도로 이어지고 있다.

왼쪽 · 래어 사키시안 <처형 광장> 람다프린트 2008 | 오른쪽 · 요아나 하지토마스, 카릴 요레이 <레바논 로켓 협회: 기념비를 위한 요소들> 2011

새로운 비엔날레를 위한 플롯

문화재 구역의 오래된 건물에 설치된 하룬 파로키와 안드레이 우지카의 작업에서 혁명의 순간들을 목격한 뒤 밖으로 나와 조금 걸어가면, 슬라브와 타타르들(Slavs and Tatars)의 설치작업 <국가들의 우정(Friendship of Nations)>을 마주하게 된다. 이 작업은 1979년의 이란혁명과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 2009년의 미국발 금융위기를 소재로 한 토크 프로그램인 <79.89.09>와 전시기간 중 관객들에게 정치문화적 코드를 유머러스하게 뒤튼 그림이 그려진 풍선을 나눠 주는 퍼포먼스를 동반하는 일련의 작업들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로 샤르자 곳곳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 풍선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시아파의 모스크 바로 옆, 천장이 사라진 옛 건물에 설치된 슬라브와 타타르들의 <국가들의 우정>은 비엔날레를 보러 온 사람들, 동네 주민들이 둥글게 앉아 준비된 민트차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환대의 공간’이다. 우리가 이곳에 들어서자 동네 주민들은 따뜻한 차를 내어 주며 앉아서 편히 쉬고 가기를 권했다.
이런 모습은 주 전시장인 샤르자미술관 앞 광장에 설치된 <레바논 로켓 협회: 기념비를 위한 요소들(Lebanese Rocket Society: Elements for a Monument)>에서도 여지없이 살펴볼 수 있다. 대리석과 금속으로 만들어진 8m 높이의 실물 크기 로켓 모형은 군사용 미사일을 연상시키는데, 이 주변은 해가 저물어 가면 인근 주택가에서 몰려나온 아이들의 소프트볼 구장 혹은 놀이터로 변한다. 광장을 빠져나가면 바로 시작되는 수크(souk, 전통 시장)의 중심부 벽면과 공중 화장실 입구에는 주디스 배리(Judith Barry)의 영상 작업 <카이로 이야기…(Cairo Stories…)>가 상영되고 있다. 2003년 이라크 침공 무렵부터 시작된 이 작업은 카이로의 여성들과 그들의 삶에 대해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배우들이 독백을 하는 다수의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업은 수크뿐만 아니라 17개의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벽면에 상영되거나 스피커를 통해 재생되고 있다.
에미레이트 연합에 속한 시민보다 인도와 필리핀, 파키스탄 등지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훨씬 더 큰 인구 비중을 차지하는 샤르자에서 두 달간 진행되는 전시는 지역 주민 및 외부 관객에 대한 치밀한 고민과 배려가 엿보인다. 전시장 벽면의 작품 설명은 아랍어와 영어를 기본으로 하되, 각 전시장 주변의 인구 구성에 따라 힌디어 타밀어 러시아어 등이 추가되어 있다. 오프닝 주 동안 주 전시장 인근에서 진행된 음악 프로그램과 전시기간 두 달 동안 시내 극장에서 진행되는 영화 상영 프로그램 역시 일반 관객에게 접근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수천 년 간 지속된 도시의 구조상 전시장과 시민의 생활 공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뒤섞여 있다는 점 자체가 비엔날레에 참여한 대부분의 작업들이 일정부분 장소특정적일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거의 모든 참여 작가들에게 작업의 장소특정성을 떠나 전시 준비 기간 중 한 번 이상 샤르자에 방문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 역시 특기할 만하다.)
관객들은 전시장과 시내 곳곳에 비치된 영어와 아랍어 가이드북을 참조하여 각자의 ‘비엔날레를 위한 플롯’을 구성해 볼 수 있다. 위키리크스, 이집트, 신뢰에 대한 배반에 관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도록의 글에서 큐레이터 수잔 코터가 안토니와 네그리의 다중(Multitude)과 공통적인 것(Common wealth)을 언급하고, 전시의 시각적 배치에 대해 새들의 수분(受粉)을 기다리며 초원의 곳곳에 펼쳐져 있는 나무와 꽃들을 비유로 삼은 것은 그런 면에서 의미심장하다. 격변하는 정치적 상황과 되돌릴 수 없는 세계적 변화를 목격하며 진행되고 있는 이번 샤르자비엔날레는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전시 안팎을 둘러싼 다양한 변화와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비엔날레를 위한 플롯, 혹은 음모를 구성할 수밖에 없다. 마치 영화 시나리오의 씬을 구성하듯 강한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작업들과 미적 아름다움에 천착하는 듯한 작업들이 병치된 이 전시에서 관객들은 의도된 열린 결말을 향해 자신의 플롯을 구성하게 된다.
한때 병원으로 사용되었던 전통 양식의 2층 건물, 베이트 알 세르칼(Beit Al Serkal)의 중정 바닥을 핏자국처럼 보이는 문양으로 물들인 임란 쿠레시(Imran Qureshi)의 장소특정적 작업 <사랑의 땅에 대한 축복들(Blessings Upon the Land of Love)>은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만들 수 있는 ‘플롯’에 적절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안내문을 따라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 내려 볼 때엔 마치 학살이 끝난 뒤 남은 핏자국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작업을 가까이서 살펴보면, 인도 북서부 카시미르 지역의 식물 잎사귀를 미니멀하게 그린 패턴의 반복을 볼 수 있다.

아델 아비딘 <그들의 꿈> 2010

샤르자비엔날레를 위한 짧은 안내서

오프닝 주의 행사로 진행된 큐레이터 투어에서, 수잔 코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것은 열려 있다.” 당면한 정치적 불안정함과, 중동이라는 특수한 지역적 맥락에서 파생되는 선입견과 편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내가 이곳의 정치 체제를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흔히 생각하는 아랍에 대한 고정관념과 에미레이트 연합은 다르다. 여러가지 문제와 해결해야 할 지점이 있지만, 이런 전시를 열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글의 말미에 이르러 솔직한 이야기를 보태자면, ‘아랍권의 비엔날레는 어떨까’하는 본능적인 호기심으로 샤르자비엔날레 방문을 결정했기 때문에 비행기에서 내려 샤르자로 가는 내내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사전 리서치 과정에서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샤르자에 관한 정보가 빈곤했기에 걱정은 더했다. 아랍에미레이트 연합이 지금과 같은 부유함을 얻게 된 것은 불과 30여 년의 짧은 시간에 불과하며, 두바이 아부다비 샤르자는 엄연히 별개의 정치적 주체임을 인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런 불안감은 중동 지역에 대한 고정관념과 뉴스를 통해 접한 정치적 불안정함에 대한 이미지 탓에 더욱 커졌다.
사실 비엔날레 오프닝 당일에도 일군의 작가들이 전날 바레인에서 총격으로 사망한 시민 40명의 이름이 적힌 작은 패널을 들고 국왕 방문 장소에 서서 침묵시위를 벌여서 경찰에 연행된 해프닝이 있었다. (큐레이터가 체포된 작가들과 동행했고 곧 훈방되었다.) 오프닝 주간에는 비엔날레의 큐레이터 수잔 코터가 전시 큐레이터를 맡고 있는 구겐하임 아부다비에 대한 보이콧 성명도 이어졌다. 이번 비엔날레 참여 작가를 다수 포함한 130여명의 예술가들이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에 공개적 항의 성명을 발한 것이다. (이어 구겐하임 재단 측은 3월 23일 공개 서한을 통해 시정 조치를 약속했다.) 신문들은 연일 이웃 국가인 바레인, 예멘, 오만의 불안정한 상황을 일면에 실었으며 역설적이게도 지역 신문의 주말판 부록은 자동차 구매, 여성을 위한 금융투자, 터키로의 여행을 다루었다.
샤르자 예술 재단의 전폭적인 지원 가운데 커미션을 받은 작가들은 꽤 즐거웠을 터이다. 재단의 든든한 지원을 받은 샤르자비엔날레를 보고 돌아가는 관객의 마음은 불안을 떨치며 가벼워졌고, 가방은 무거워졌다. 665페이지에 달하는 양장본 도록과 더불어 캐비넷 매거진(미국)의 《Cabinet’s Collector’s Album》, 각기 다른 7개의 언어와 영어로 된 6권의《반역을 위한 매뉴얼(Manual for Treason)》을 비롯해 여러 작업들과 함께 커미션된 다양한 크기와 두께를 한 책자들은 서울로 돌아오는 가방의 무게를 거뜬히 늘려 주었다. 2003년의 비엔날레가 이라크 침공 직후의 불안함 가운데서 변화의 시작을 알린 것처럼, 올해는 아랍 전역의 긴박한 정치적 변화 가운데 열리며 샤르자비엔날레의 다음 단계를 예고하는 듯했다.

박재용, 장혜진 서울을 기반으로 동시대 미술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각자의 방법으로 함께 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현재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으로 <Disappearing into the Crowd(가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박재용은 2010년 미디어시티서울에서 웹프로젝트를 담당했고, 번역을 주로 한다. 장혜진은 ‘사무소’에서 라운지 프로젝트와 아카이브를 담당하고 있다.

볼 수 있는 것들의 시학

문성식 <무제> 종이에 아크릴릭 16×37cm 2007

볼 수 있는 것들의 시학

글 | 강수미 미술평론가

동시대 회화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17살 때 수채화로 그린 자화상이 있다. 거칠게 칠해진 검정색 어둠에서 쪼개져 나온 밝은 쪽 얼굴이 단호한 침묵과 동시에 꽤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화가의 초상이다. 훗날 리히터는 그 그림 속에는 즐거워 보이는 다른 이들을 향한 질투, 괴로움, 분노가 담겨 있으며 당시 자신이 썼던 “시(Poems)들도 마찬가지로 쓰라리고 허무주의적인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현재 그 시를 읽을 수 없다하더라도, 그의 자화상을 보며 우리는 젊은 리히터가 시에 썼을 언어의 이미저리를 유추할 수 있다. 그만큼 그림이 작가의 과거 감정과 정서를 생생히 토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풍경 회화의 수사

단순 비교는 곤란하지만, 비슷한 창작의 구도를 한국의 젊은 작가 문성식의 경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를테면 작가의 사적인 과거 경험과 내면에 잠재된 감정의 표현, 그리고 그런 감각적 질(質)을 창작의 원천으로 삼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행위 같은 것 말이다. 문성식이 최근 개인전 <풍경의 초상(Landscape Port rait)>에서 선보인 그림들은 그 안에 어떤 이야기들이, 어떤 감정의 덩어리들이 응축된 표상이다. 그것은 얼핏 보면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여전히 그곳이 고향인 작가를 둘러싸고, 가깝거나 먼 시간 속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의 일러스트레이션 같다. 하지만 종이 위에 연필이나 수채화 물감 또는 아크릴로 소박하게 그린 일련의 그림들에서 죽음, 폭력 같은 큰 주제를 건드리는 성찰의 기록이 읽히며, 두려움이나 상실감처럼 표현하기 힘든 정서를 수사(修辭)하는 말들이 들리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닌 게 아니라, 작가는 전시에 나온 몇 작품을 지난 2009년 5월부터 12월까지 《현대문학》지에 자신이 쓴 단편(短篇)과 함께 소개했다.
예컨대 오직 검은색 연필만으로 별이 막막하게 떠 있는 깊은 밤하늘과 그 아래서 소박하게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 풍경을 다채롭게 표현한 <별과 소쩍새 그리고 내 할머니> 그림은, “여름의 한가운데… 병으로 고생하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많은 사람들은 음식을 먹으며 서로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며 초상집의 일반적 모습을 만들어 주었다.… 그 모든 게 그날 내게 온 것들이었으나 모두 다른 세계로부터 온 것처럼 어울리지 않았다”라는 문장과 공존했던 것이다. 물론 전시장에는 그림들만 보이고, 각각의 드로잉과 회화 작품은 작가의 또 다른 창작물인 글의 도움이 필요 없는 독립적이고 자족적인 시각 형상이다. 그 때문에 감상자는 문성식의 그림 자체만으로 미적인 감흥에 젖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그 미적 감흥 혹은 미적인 경험이 단순히 시각이미지로부터만 유발되는 것이 아니라, 그 ‘볼 수 있는 것’이 이를테면 그림 속의 ‘읽을 수 있는 것’과 연동해 있는 상태로부터 발생한다는 점이다. 문성식의 그림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곧이곧대로 묘사하거나 작가의 주관적 내면을 회화의 특정 표현 기법을 통해 추상화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마치 한 편의 운문이 은유 비유 상징의 단어들을 동원하는 것과 같이, 여러 이미지의 수사법을 통해 작업의 원(原)질료였을 일상의 잡다한 경험과 기억 속 편린들을 질서 있게 조직한 ‘이미지-언어의 구성물’이다.
이 구성물은 특히 문성식의 작품 중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의 전통 회화 형식 중 하나인 두루마리 그림처럼 가로로 길게 그린 그림들에서 빛을 발한다. 두루마리 형태가 대상을 한눈에 일망타진 하듯 만끽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라는 감각적이고 정신적인 공간을 완상하며 읽어나가는 특수한 즐거움을 예비하는 장치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가령 가로 길이가 3~4m가 넘는 <밤> <무심한 교차> <숲의 내부> 같은 그림 앞에서 우리의 보기는 일거에 이뤄지지 않고, 행간이 세로로 정렬된 책을 읽듯이 천천히, 이미지와 이미지가 배열된 평면들을 음미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거기에는 간혹 고라니 한 마리가 올무에 걸렸고 또 다른 고라니들이 애처롭게 그 주변을 떠나지 못하는 식의 드라마틱한 사건이 묘사돼 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화면은 세로로 늘어선 자작나무와 땅 위의 무수한 낙엽 형상의 반복으로 채워져 있을 뿐이어서, 그림을 보는 감상자는 삽화의 파편들에 현혹되기보다 우리가 통상 느낄 수는 있으나 소유할 수는 없는 세계의 분위기 질감 서정을 경험하며 나아갈 것이다.

김나영+그레고리 마스 <It’s Tough World in Here> 혼합재료 가변설치 2011

미술에서 시적인 것

굳이 “시는 그림과도 같다”고 말한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학(Ars Poetica)》을 살펴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문인들이 시각적 보기와 표현법을 언어에 적용하려 고심해 온 예술의 역사를 안다. 그와 마찬가지로 미술가들이 시각이미지 속에 서술적 내용과 문학적 상상력을 함축하려 부단히 시각 체계를 변화시켜 온 역사를 안다. 그리고 앞서 리히터나 문성식의 경우에서 보듯이, 현대 미술계에서 여전히 다수의 작가들은 가시적 이미지와 그 효과에만 매달리지 않고, 때로는 시를 짓고, 때로는 글을 쓰면서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물론 미술은 시각이미지를 주요 속성으로 하지만 많은 경우 그 이미지는 의미 개념 내러티브와 동행하거나 상호작용한다. 특히 고도로 장르의 복합화와 시각언어의 지성화라는 경로에 있는 현대미술 경향 속에서는 ‘이미지’와 ‘시적인 것’이 공존하거나 상호 교환되는 차원이 실재하고, 이미지의 언어적 차원 또는 텍스트적 차원이 과거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중요시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금호미술관 외부 기획전 <운율에 맞춰 춤을 추다(Dancing to the Rhyme)>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획자 오선영에 따르면, 전시는 “작품에 내, 외재되어 있는 이미지와 언어,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운율과 그 운율을 통해 만들어지는 리듬에 대한 이야기”란다. 그러니까 여느 그룹전과 별 다르지 않게 국내외 작가 14명(팀)이 각자의 의도와 맥락에 따라 제작한 작품들이 하나의 집합을 이루고 있는 이 전시에서, 차별화된 구성의 원리이자 주제는 미술 작품의 ‘운율’ 또는 ‘시적인 차원’이다. 이는 전시기획 분야에서 특별할 것이 없거나, 반대로 매우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 즉 한편으로 모든 전시기획이 이질적이고 기원이 상이한 작품들을 마치 텍스트를 쓰듯이 씨실과 날실로 직조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아무리 동시대 미술이 개념화 비물질화하고 한시적이거나 우연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하더라도 조형과 물질적 존재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한, 각 작품이 지닌 운율, 시적 속성을 어떤 전시가 성공적으로 드러내기는 힘들다.
<운율에 맞춰 춤을 추다>전 또한 이렇게 예상 가능한 양가적 가능성을 깨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몇몇 작품들이 탁월할 만큼 시각예술에서만 가능한 운율의 질서 혹은 가시적인 것들의 시학을 선취한 덕분에, 전시는 애초 기획측이 설정한 바를 비교적 만족스럽게 실현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감상자에게 책의 공간과 문자 형상들과는 다른 성격의 시적 경험을 제공했을 것임은 물론이다. 예를 들어 1층 전시장 흰 벽에 프린트된 히맨 청의 <Walking Long and Hard>는 베를린이나 린츠 같은 도시에서의 작가 행보를 몇 줄로 기록한 문구가 곧 작품이다. 그런데 그 짧고 건조한 문장들은 대지미술가 리처드 롱의 구도자적인 취향과도 다르고, 19세기 서정시인 보들레르의 도시 산보와도 다른, 지금 우리시대 걷기의 감수성을 압축하고 있다. 이를테면 스마트폰을 들고 글로벌 도시의 다운타운을 헤매며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단문 메시지를 전송하는 식의 감수성. 또 김나영+그레고리 마스의 경우는, 일견 극히 평범하거나 심지어 조악한 생활 속 물건들을 생경한 방식으로 조합하고, 공간 속에 비선형적으로 배열함으로써 상투적 기능 및 위치를 벗어난 사물의 감촉을 감상자가 지각하도록 이끈다. 가령 2층 전시장 구석의 창문 옆에 놓인 두 개의 장식용 유리관이 문자 그대로 투명한 빛의 시정(詩情)이라면, 트라이폴더로 연결된 ‘순창 골드퐁’ 플라스틱 통과 샹들리에는 로트레아몽의 ‘수술대 위의 우산과 재봉틀’ 만큼이나 초현실주의적인 시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전시에서 가장 멋지게 ‘시각이미지의 시학’을 제시한 경우는 최승훈+박선민의 작품들일 것이다. 그들이 전시장의 허공에 배열한 알전구들은 노랗게 빛을 발하면서, 청각장애인들의 점자 텍스트를 대신할 뿐만 아니라 활자들의 내부에서 미처 발화되지 못한 말의 온도를 느끼게 한다. 또 이 작가들의 영상 작품에서, 별모양으로 오려진 종이가 바람에 흔들리며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 혹은 먹물처럼 짙은 어둠으로부터 정체모를 빛 조각이 떠올랐다 흐려지기를 반복하는 순간은 무수한 언어들이 포착하려 했으나 항상 그 뒤에 단어만 남았던 존재를 직관적으로 경험케 한다. 명명하자면 ‘볼 수 있는 것들의 시학’이라 할 만한 미술의 오래된 수사법은, 현재 이렇게 허무하지만 세련된 취향의 대상으로 이어지며 동시에 사라져간다.

종횡으로 변주되는 한강 프로젝트

이득영 <69개의 간이매점> 가변 크기(부분) 2006

종횡으로 변주되는 한강 프로젝트

글 | 김재석 · 본지기자

“두두두두두두……. 헬리콥터 프로펠러 소리가 규칙적으로 귀를 때렸다. 몇 번 타서 익숙해질 만도 했지만, 윤진우 과장은 프로펠러의 규칙적인 소음과 진동으로 얼굴이 창백했다.” 이득영이 <소설 01: 이준호를 찾습니다>전에 참여하며 쓴 단편 소설 <한강의 ‘기적’>의 첫 두 문장이다. 서울의 도시계획에 대한 손정목의 책을 기본 텍스트로 삼아 쓴 이 짧은 소설의 주인공 윤진우는, 헬기를 타고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 상공을 탐색하는 이득영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참고로 그의 휴대폰 컬러링은 알 켈리의 ‘아이 빌리브 아이 캔 플라이’다.)

이득영 <두 얼굴> 가변 크기(부분) 2010 강남 쪽의 모습

한강에 헬기를 띄우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틈날 때마다 취미로 사진을 찍어 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기계적인 것으로서의 카메라나 프린트에 관심이 많았다. 1990년대 말에만 해도 디지털 프린트가 흔하지 않던 시기라, 그 메커니즘을 함께 공부하는 모임이 있었다. 가령 CMS(Color Management System)를 어떤 시스템으로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지, 디지털 프린트가 C-프린트처럼 구현될지 등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파이버베이스를 사용해 ‘계산된 감수성’을 넣은 살롱틱한 분위기의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득영은 <69개의 간이매점>으로 ‘사진작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한강변의 간이매점을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며 비교적 일정한 거리에서 ‘유형학적 사진’ 형식으로 카메라에 담아 냈다. 평소 가족과 산책을 하기 위해 즐겨 찾던 한강변에서 간이매점이 눈에 들어온 것. 작가는 리서치를 통해 간이매점의 구조와 형태가 자본과 결합된 구조라는 것도 알게 됐다고 한다.이 작업을 “정말 하고 싶어서 했다”는 그는 직접 전시장을 대관해 전시를 열었다.
사진 제작과 관련된 ‘기술적 문제’에 대한 그의 초기 관심은 헬기를 타고 한강 다리를 수직으로 촬영한 <25개의 한강 다리>에서 물꼬가 트인다. 그는 작가노트에서 이 작품을 “현대적 건축물인 25개의 한강 다리들의 인공위성적 시각과 좌표가 들어간 개념적 사진 작업”이라 정의한다. 그에게 한강의 다리는 “하나의 개념미술이자 설치미술”이다. 그는 많은 사람이 한강을 지나면서 정작 다리 자체에 대해선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제대로 된 한강 다리의 모습을 보여 주기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간이매점 이후 두 번째 한강 프로젝트로 헬기를 타고 수직으로 한강 다리를 찍겠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기계비평가’ 이영준은 이렇게 반문했다고 한다. “그게 될까요?” 이후 이영준은 완성된 이득영의 한강 다리 연작을 보고 “사진을 객관적으로 찍는다는 것이 얼마나 물리적으로 힘든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고 평했다. 흡사 건축가가 다리를 짓기 위해 온갖 과학지식을 동원하듯이 그는 한강 다리를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서 찍기 위해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각기 다른 크기의 한강 다리를 동일한 프레임에 담기 위해 ‘구글 어스’로 다리 중심의 좌표 값을 구해 다리 길이와 카메라 렌즈의 화각에 대한 삼각함수 탄젠트 값을 계산해 비행 높이를 정했다. 또한 GPS를 이용해 수직으로 찍힌 사진의 정확한 좌표를 찾아내고, 비행 궤적을 데이터로 표시해 한강의 흐름과 일치시켰다.
복잡한 리서치 작업과 꼼꼼한 계획에도 실제 촬영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처음 그는 헬기 내에서 창문을 통해 외부를 촬영했지만, 촬영된 사진에는 헬기의 다리도 찍히고 완벽한 수직이 아닌 비스듬한 각이 잡혔다. 그는 고심 끝에 헬기 바닥에 카메라(1Ds Mark II)를 고정해서 찍기로 한다. “핫슈에 CCTV도 설치했다가, 그것도 자꾸만 초점이 빗나가고, 내가 생각하는 뷰파인더의 사진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장비를 보충해 CCTV를 설치하고 LCD를 보며 촬영 했다. 렌즈도 처음에는 35mm 단렌즈를 사용했지만, 다리가 한 화면에 잡히지 않아 광각렌즈를 사용했다.” 날씨도 큰 문제였다. 헬기는 일주일 전에 예약해야 했고, 일기예보는 틀리기 일쑤였다. 일정은 몇 번이고 번복됐고, 시간당 180만 원이 소요되는 헬기를 띄웠다가 촬영을 포기한 적도 많다.
한국의 수도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 일대를 공중에서 촬영한다는 점에서 행정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았다. 청와대 주변인 비행금지구역 ‘P73’과 비밀기지의 항공 촬영을 위해서는 국군기무사령부에 허가를 요청하고 촬영 직후에는 원데이터를 보내 검열을 받았다. 다행히 한강 다리의 촬영 이미지는 살아남았다. 이렇게 해서 누구도 제대로 본 적 없는 25개 한강 다리의 ‘맨얼굴’이 드러났다. 그가 한강 다리를 촬영하며 부딪힌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듣고 나면, 누구든 그의 사진이 결코 전처럼 뵈지 않을 것이다.
상공에서 바라본 한강 다리와 서울의 도심지 모습을 포착한 그가 헬기에 이어 카메라의 몸체로 선택한 매체는 한강을 떠다니는 배다. 이번엔 한강을 따라 수평으로 이동하며 한강의 강남과 강북을 따로 촬영하기로 한 것.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지나가는데 지역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달라지는 풍경이 재미있었다. 교각과 아파트들의 다양한 모습도 그렇다. 어떻게 하면 이런 경험을 좀 더 시각화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는 하루 동안 한강 유람선을 타고 한강변의 풍경 일부분을 촬영한 파노라마 <유람선>을 <감각의 확장>전에서 처음 선보였다. 사진 약 4천 장을 조합해 만든 이 작품은 포토샵 작업만 총 두 달이 걸렸다. 이후 네 번째 개인전 <두 얼굴>에서 이 작품은 거대하게 확장된다. <두 얼굴>은 왕복 94km 거리인 한강 상류의 경기도 미사리에서 하류인 경기도 김포대교까지를 한강 행정선, 유람선, 청소선으로 바꿔 타며 한강변의 풍경을 파노라마로 담았다. 촬영한 사진만 약 13만 장. 셔터 박스가 나갈 정도였다. 그는 개별 사진을 포토샵으로 꼼꼼하게 이어 붙여, 송원아트센터의 갤러리 공간에 맞춘 사이즈로 출력해 강남과 강북을 아래위로 나눠 벽면 전체를 둘렀다. 그는 “이 작업을 하면서 정말 죽고 싶었다”고 토로할 정도로 육체적 물리적으로 힘들었다고 한다.

이득영 <Superblock 115> 피그먼트 프린트 60×90cm 2011

한강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한강 프로젝트가 종횡으로 이동하며 한강변 풍경을 3부로 변주했다면, 2009년 발표한 <테헤란>과 갤러리2에서 선보인 신작 <슈퍼블럭>은 ‘한국 경제 성장의 아이콘’인 강남 일대의 사거리를 상공에서 촬영했다. 헬기를 타고 수직으로 피사체를 촬영한 방식은 동일하다. 빽빽한 도시의 살풍경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빌딩 그림자가 없는 겨울의 흐린 날에 헬기를 띄웠다. “흥미로운 점은 강남 일대를 헬기로 촬영한 대부분의 사진은 용역을 줘서 부동산 관련 문제의 보상을 위한 증거물로 제시된다는 점이다.” 이 작품들은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황량한 들판이었던 강남 개발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압축해 보여 준다.   
이득영의 사진은 도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많은 이들은 온기 없는 그의 작품을 보고 한강에 얽힌 개인적 경험을 향수에 젖어 이야기 한다. 작가는 앞으로 계속해서 한강 프로젝트를 진행해 ‘다이나믹’하게 변화하는 서울의 모습을 추적해 나갈 계획이다. 한강의 간이매점은 ‘한강 르네상스’ 사업으로 그 본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의 사진이 문화 사회학적 기록물로써의 가치를 획득하는 아이러니한 순간이다. “10개의 한강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게 목표다. 사람들이 내 사진을 보고 한강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한번쯤은 생각해보면 좋겠다.” 우리는 앞으로 그의 사진 속에서 서울의 어떤 모습을 어떤 각도에서 얼마나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푸른 눈’의 컬렉터가 지은 중국 현대미수의 보물창고

‘푸른 눈’의 컬렉터가 지은 중국 현대미수의 보물창고

글 | 곽준영 ·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디렉터

피렌체 미술과 메디치(Medici),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탄생과 록펠러(Rockfeller), 영국 현대미술과 사치(Charles Saatchi). 우리는 단순히 작품을 소장하는 차원을 넘어 미술사와 미술 세계의 문맥을 변화시킨 상징적인 패트론과 소장가들을 종종 보아 왔다. 그리고 21세기 초반을 뒤흔든 중국 현대미술의 부흥을 논할 때, 많은 이들은 중국 주재 스위스 대사를 역임했던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의 울리 지그(65)를 떠올린다.
울리 지그는 이제껏 350여 작가의 2,100여 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해 왔으며, 중국 현대미술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20년이 넘도록 열정과 노력을 쏟아 왔다. 그는 중국 현대미술의 가장 영향력 있는 컬렉터이자 ‘중국 현대미술의 세계 대사(大使)’로 칭송 받는다. 아마도 컬렉션의 역사성 중요성 규모 등을 고려할 때, 그의 유일한 카운터파트라 불릴 수 있는 이는 얼마 전 800여 점이 넘는 컬렉션을 시장에 내놓은 울렌스 부부(Mr.&Mrs. Ullens)뿐일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아직 체계적인 소장품 개념이 없는 중국에서 그 어떤 미술관이나 기관도 실행하지 못한 일을 중국인도 아닌, 푸른 눈의 외국인인 그가 이루어 왔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그의 컬렉션이 지니는 가치와 의미는 어떤 것일까.
중국미술과 관련된 수많은 행사에서 모습을 드러내던 그가 얼마 전 자신의 작품을 대거 대여한 국립현대미술관의 <메이드인팝랜드>전의 특별 강연회 <중국 현대미술과 지그 컬렉션>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의 강연을 통해, 그리고 이후 스위스로 돌아간 후 전화로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지그 컬렉션의 탄생과 역사, 그의 다양한 활동, 더불어 중국 현대미술의 과거 현재 미래와 아시아 현대미술의 발전을 전망하는 그의 귀중한 생각을 들어볼 수 있었다.

왼쪽 · 위에 민쥔 <일출> 캔버스에 아크릴릭 180×250cm 1998 | 오른쪽 · 팡 리쥔 <무제> 캔버스에 유채 250×180cm 1995

중국과의 인연은 행운이었고, 필연이었다

중국이 개방 정책을 막 펴기 시작한 1970년대 말, 스위스 기업 쉰들러 그룹에서 일하고 있던 울리 지그는 자사의 첫 중국 지사를 열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비즈니스맨이었다. 이후 10년 넘게 이어진 중국과의 인연과 경험으로 결국 그는 1995년 주중 스위스 대사로 임명되었고, 자연스레 개혁 개방의 시작과 중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가장 초기 단계서부터의 현장을 고스란히 목격하고 함께하게 된다. 그는 이를 “우연보다는 행운, 필연에 가까운 기회였다”고 회고한다.
울리 지그가 작품 소장을 시작하려던 당시 중국에는 가치 평가의 잣대로 활용할 수 있는 미술 시스템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전문적인 갤러리 큐레이터 전시 미술관 인터넷을 통한 정보 제공 시스템, 도록이나 미술 잡지 등이 없어 중국미술에 대한 전반적인 관망과 분석이 불가능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나는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수백 명의 작가 스튜디오를 방문했고, 그들과 직접 대화하면서 중국미술을 이해하고 소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자신과 같이 중국 현대미술을 소장하려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울리 지그는 어느 순간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르는 중국 현대미술을 거울처럼 반영하는 ‘다큐멘터리적 컬렉션’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중국 문화를 이해해 보려던 관심이 결국 문화를 기록 유지 연구하는 일종의 ‘역사적 사명감’으로 바뀐 셈이다.
“중국미술을 처음 접한 초창기에 서양 현대미술의 잣대로 작품을 보았을 때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후에 1979년 제작된 작품들부터 1989년 중국미술관에서 열린 상징적인 전시 〈차이나 아방가르드〉의 출품작 등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 있는 주요 작품들을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에 동료들의 작품을 구입, 보관하고 있던 한 의식 있는 작가로부터 〈차이나 아방가르드〉 전의 주요 출품작 12점을 구입할 수 있었다.”
울리 지그는 소장이나 보존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어진 수많은 실험적 작품들에서부터 지금은 명실공이 중국 미술계의 스타가 된 정치적 팝과 냉소적 리얼리즘 작가들 즉, 왕 광이, 위에 민쥔, 팡 리쥔 그리고 장 샤오강의 초기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회화 조각 설치를 망라한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소장하게 되었다.
울리 지그는 개인의 취향을 넘어서 마치 국가 기관이나 미술관의 컬렉션처럼 성격과 방향이 정해지자 작품 선택의 객관성과 가치평가 시스템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미술계 인사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는 대사로서의 인맥을 십분 활용하여 국제적 미술계 인사들을 중국으로 초청하기 시작했다. 그 중 스위스의 전설적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을 초청함으로써 국제 미술계의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억되는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에 20명의 중국 작가가 대거 참여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더욱이 1998년 중국 미술계에서는 전무했던 현대미술시상식(CCAA)을 창설하고 시상식의 심사위원으로 하랄트 제만을 위시한 아이 웨이웨이, 알라나 헤이스, 후 한루 등을 초청하여 지속적으로 젊고 유망한 작가들을 발굴할 수 있는 주요한 기반을 다졌다. 그리고 10년 후인 2007년에는 비평 어워드도 추가시켜 중국 미술 비평계의 독자성을 키우려는 노력을 더했다.

왼쪽 · 치 지롱 <무제> 캔버스에 유채 80×50cm 1999 | 오른쪽 · 쉬예 송 <형상(붉은 마오)> 120×100cm 1996

중국 미술시장, 잔치가 휩쓸고 간 자리

중국 현대미술을 알리기 위해 중국 내외부에서 진행된 울리 지그의 숨은 노력이 전 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단연 2005년 6월 스위스 베른미술관에서 열린 <마종(Mahjong)>전을 통해서였다. 베니스비엔날레와 아트바젤이 동시에 열려 전세계 미술 관계자들이 그랜드투어를 하고 있던 그해 여름, 우리는 세계의 미술 관계자들이 <마종>전과 중국 현대미술에 대해 논하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논의의 중심에는 150점에 이르는 모든 전시작을 포함하여 엄청난 양의 중국 현대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컬렉터 울리 지그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중국 작가들이나 자국 미술 관계자들마저도 잊고 있거나 보지 못했던 1979년에서 2004년까지의 중국 현대미술 작품들을 한데 모은 이 전대미문의 전시와 400여 페이지의 소장 도록은 이후 함부르크, 버클리, 보스턴, 피바디미술관 등에서의 순회전을 통해 전세계로 소개되었다. 그의 첫 번째 〈마종〉전 이후 불과 몇 달 되지 않아 열린 2006년 2월 중국 현대미술 홍콩 경매에서는 추정가의 5~10배 이상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낙찰가를 기록하는 ‘스타 작가’들이 탄생했다. 바야흐로 중국 현대미술의 폭발적 붐이 그 서막을 알렸다.
이후 미술시장의 급격한 확대와 전에 없던 열기로 많은 작가들이 그 어느때보다 풍요로움을 만끽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중국미술에 대한 그의 국제적 홍보가 2005~08년의 중국 미술시장의 폭발적 부흥을 불러일으키는 데 결코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쳤음에도, 정작 울리 지그 본인은 시장 가격의 급격한 상승으로 자신이 후원한 작가들의 작품을 더 이상 구입하기 힘든 상황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100~1000달러로 구입했던 수많은 그의 작품들은 사실 돈으로 환산하기 힘들 정도로 시장 가치가 상승해 있었고, 그는 자연스레 수많은 딜러와 옥션 하우스의 러브콜을 받았다고 한다.
작품을 판매할 의향이 없었던 그는 중국미술에 대한 ‘역사적 사명감’으로 엄청난 돈을 벌 기회도, 더 공격적으로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기회도 스스로 물렸다. 미술시장의 과열이 오히려 그의 컬렉션을 소극적으로 만든 셈이다. 하지만 당시 그는 화려한 시장의 그늘에 가려진 실험적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함으로써 그들을 지원했다. 시장의 유혹에도 꿈적하지 않고 ‘사명감’을 유지했던 그는 더 나아가 2009년 이후 여러 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방대한 그의 컬렉션이 결국 중국에 남기를 희망한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일반 중국 대중들이 아직까지 보지 못했고, 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현대미술을 나의 컬렉션을 통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경이롭고 신선해 보이기까지 한 이 외국인 컬렉터의 중국 문화를 향한 노력은 현대미술 시장의 붐과 버블, 경제 위기가 한바탕 휩쓸고 간 지금, 다시금 아시아 미술의 발전적 미래를 준비하는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 2005년 말에서 2008년 말 사이 신자유주의 금융 시장의 급성장과 더불어 투기적 성격의 미술펀드와 개인 컬렉터들이 급증했다.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고, 많은 작가들이 그 잔치에 춤을 추었다. 거대한 자본력, 미술시장을 향한 관심과 열망은 더 많은 작가들에게 기회의 장을 열어 주었지만, 그 가운데 진정한 컬렉터에 대한 믿음은 상대적으로 옅어졌다. 좋은 의도를 내세우며 거대 자본을 빌미로 작품을 소장하거나, 전시한 후 몇 달도 채 되지 않아 옥션 시장에서 큰 이익을 내며 작품을 팔아버리는 이들로 인해 불신의 벽이 쌓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중에 많은 이들은 경제 위기와 함께 단기간의 풍요로운 잔치를 마치고 아예 자취를 감췄다.

왼쪽 · 위 요우한 <사오산의 소작농과 토론하는 마오> 캔버스에 유채 200×150cm 1999| 오른쪽 · 옌 샤오팡 <무제> 캔버스에 유채 160×120cm 1994

아시아 미술의 진정한 발전을 염원하며

여기서 울리 지그의 컬렉션 방식만이 가장 훌륭하다거나, 취향보다 역사적 사명을 앞세우는 것이 더 올바른 컬렉션이라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 스스로도 “컬렉션은 실수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고 언급한 것처럼, 사실상 한 사람의 개인 컬렉션이 지닐 수 있는 역사성과 객관성의 한계도 논의되어야 할 문제일 것이다. 모든 컬렉터에게 그와 같은 역사학자 혹은 연구가의 사명감과 국가 기관급 컬렉션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정도가 아니라 가능하지도 않는 일이다. 자신의 집을 꾸미기 위해 작품을 사는 경우도, 기업의 문화적 이미지를 위해 컬렉션은 하는 경우도, 혹은 미술가들에게 매료되어 그들의 작품을 기억하기 위해 소장하는 경우도, 투자를 목적으로 작품을 사는 경우조차도 미술시장을 활성화시키고 더 많은 작가들의 활동을 가능케 하는 동력이 된다는 점에서는 저마다의 의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컬렉터가 ‘진정한(descent)’ 컬렉터이며 존경 받을 만한 인물인지 끊임없이 가치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려 한다. 좋은 미술관, 좋은 갤러리, 좋은 작가, 좋은 평론가, 좋은 아트페어를 논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자본의 논리에만 좌지우지되는 가벼운 성장이 아닌, 굳건하고 건강한 문화 발전을 고민하는 모두의 바람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울리 지그에게 중국 현대미술과 아시아 미술계의 미래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그는 폭넓은 작가군을 보유한 중국 및 아시아 미술계의 긍정적 발전을 전망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논리에 좌지우지되는 지나친 시장의 과열은 조심하되, 가능성 있는 좋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후원할 수 있는 체계적 비평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국 미술시장의 전반적 경향에 대해, 그리고 아시아 미술의 성장을 위해 그는 진심 어린 조언을 내놓았다. “외국(서양)의 블록버스터급 유명 작가를 찾아 소장하는 것도 좋지만, 좀 더 국내 및 아시아 작가 작품을 소장하고 후원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자국의 젊은 작가들이 국제적으로 역량 있는 작가로 성장할 수 있다. 결국 그것이 한국, 아시아 미술계의 경쟁력 강화에 큰 발판이 될 것이다. 여기서 국가급 미술관과 작가를 발굴 관리 지원하는 전문 갤러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국제 미술 인사들이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더 많이 접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제공되어야 한다.” 지극히 올바른 정석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많은 이들의 관심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사항일 것이다.

미술시장의 Up & Down

앤디 워홀 <200 One Dallar Bills> 앞에 선 관객

미술시장의 Up & Down

글 | 김수영 · 본지기자

미술시장 분석 전문 회사 아트프라이스가 72개국 2,900개 옥션사의 경매 결과를 토대로<2009/2010 애뉴얼 리포트>를 발표했다. 아트프라이스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세계 현대미술 시장은 아직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2005~08년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현대미술 작가들의 최고가가 무너져 내린 후의 여파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 경기 변화가 민감하게 작용하는 미술시장에서, 2009년 현대미술 ‘스타 작가’들의 옥션 판매 성적이 바닥을 쳤음은 주지된 사실이다. 2008년 리만브라더스 붕괴의 여파가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2009년 데미안 허스트는 매출액이 전년의 14분의 1로 줄었고, 제프 쿤스와 뱅크시도 매출 총액이 전년 대비 3분의 1로 떨어졌다. 2009년 세계 양대 경매 회사인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순수미술 분야 수입이 각각 43%, 58%씩 감소하는 한편, 2009년 7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집계한 현대미술 경매 매출 총액은 2008~09년 동일 기간보다 23% 감소했는데, 이는 이미 그 이전해 동일 분기에 비해 54% 감소한 수치에서 더 떨어진 것이다.
현대미술 작품의 전반적인 판매 부진에도 불구, 세계 미술시장의 급변하는 기류 속에서 경매 총액 그래프는 2010년 확연한 반등세로 돌아섰다. 아트프라이스가 이 리스트를 통해 발표한 각종 지표는 세계 미술시장의 경향이 안정성 중심의 투자로, 저가 중심 시장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음을 제시한다. 또한 아시아 시장이 급속하게 팽창하고 있음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해 이학준 서울옥션 대표는 “지난 1990년대의 미술시장 위기와 달리, IT의 발달로 미술시장의 정보가 보다 빠르고 폭넓게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구매자들이 쉽게 접근하고 있으며, 그만큼 시장의 복원력도 크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미술시장의 하락 곡선을 상승 곡선으로 바꾼 첫 신호탄은 앤디 워홀의 작품 <200 One Dollar Bills>가 39만 달러(약 4억 2천만 원, 2009년 11월, 소더비 뉴욕)에 팔린 사건이었다. 이에 자극 받은 시장의 낙관적 기류는 대체로 모더니즘 대가나 전후 현대미술가 작품의 인기로 이어졌다. 2010년 초부터 연이어 경신된 미술품 경매 최고 기록은 자코메티, 모딜리아니, 피카소로 소더비는 단 세 번의 경매를 통해 총 176.7만 유로(약 273억 원)를 벌어 들였다. 지난해 2월 3일,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1>이 소더비 런던에서 1억 430만 달러(약 1,133억 원)에 거래되어 기록을 경신하자, 몇 개월 뒤인 5월 4일, 크리스티 뉴욕에서는 피카소의 <누드, 초록 잎과 상반신>이 1억 640만 달러(약 1,156억 원)에 낙찰되어 그 기록을 재차 경신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6월 3일 베이징의 폴리옥션에서 북송시대의 황팅지엔이 남긴 서예 작품 <디주밍>이 3억 9,000만 위안(약 647억 원)에 낙찰되어 아시아 최고 경매 기록을 수립했다. 한편, 유럽에서도 6월 14일 모딜리아니의 두상 조각이 크리스티 파리 경매에서 4,318만 유로(약 668억 원)에 거래되어 프랑스 경매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에 힘입어 2010년 상반기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순수미술 분야의 수입은 전년대비 67%와 140%로 증가했다.
이와 같은 결과에 대해 김윤섭 미술경영연구소 소장은 “미술품 구매 추세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작품은 대개 고전적 성향이거나 기존의 검증된 작가의 것이다. 이는 시장이 불안정할 때는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안정성 유지나 점진적 발전을 꾀한다는 여느 경제 투자 논리와 마찬가지인 셈”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미 가치가 검증된 19세기 서양 미술의 거장이나 근대 중국화가가 경매 결과에서 상위권에 랭크되는 것은 현대미술 가격의 거품 붕괴 이후 나타난 명확한 현상이다. 아트프라이스가 발표한 2010년 작가별 랭킹 탑 10위를 살펴보면, 1위 피카소, 2위 제백석, 3위 앤디 워홀, 4위 장대천, 5위 자코메티, 6위 서비홍, 7위 마티스, 8위 모딜리아니, 9위 부포석, 10위 리히텐슈타인이다. 상위권 랭킹에서 현대미술가가 사라지고 보다 안정성을 보장하는 작가의 부각이 분명히 나타난다.
컬렉터들은 좀 더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하는 작가들에게 투자를 집중하는 한편, 드로잉 판화 사진 등 접근하기 쉬운 가격대의 장르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트프라이스에 따르면 2010년 미술 경매 거래 건수 중 1000유로(150만 원) 이하에 거래된 작품들이 40%에 달하고 있다. 좀 더 상세하게 들여다 보면 1000유로(약 150만 원) 미만으로 거래된 드로잉 작품이 47%, 판화가 67%를 차지했고, 1000~ 10,000유로(약 150만~1500만 원) 사이에서 거래된 사진이 80%를 기록했다.

중국이 세계에 던진 ‘쇼크’

아트프라이스를 비롯한 국내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지적하는 현재 미술시장의 가장 뚜렷한 트렌드는 ‘세계 미술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압도적인 점유율’, ‘자국 문화와 고미술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아시아권 컬렉터들로 인한 미술시장의 확대’이다. 미술시장의 중심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동의 신흥 부호들이 미술시장에 가세한 것은 물론, 10%의 경제 성장을 이룬 중국의 막강한 힘이 세계 시장의 지형을 변화시키고 있다.  
아트프라이스가 발표한 2010년 세계 경매의 국가별 점유율을 보면, 중국이 33%로 29.9%를 차지한 미국과 19.4%를 차지한 영국을 제쳤다. 2009년까지 3년 연속 3위에 머물던 중국이 1위로 올라선 반면, 3년전 41.7%의 압도적 점유율을 자랑했던 미국은 이듬해 35%로 내려앉고, 올해 다시 5%가 떨어진 결과다. 서진수 강남대 교수는 “지난 시절의 ‘서양 미술의 독재’가 중국의 약진으로 흔들리고 있다. 서양이 100년 동안 이룬 것을 중국이 단 5년 만에 성취한 것으로, 서양에서는 이 결과가 일종의 쇼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 경매 회사 상위 15위 중에서 중국의 회사가 5개를 기록하고 있고, 가고시안의 홍콩 진출 등에서도 보이듯 많은 투자자가 홍콩을 비롯한 중화권으로 몰리는 현상이 관측된다.
이는 중국 내부에서 경제력이 높아진 신흥 컬렉터들이 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국의 고미술품을 사들인 결과이기도 하다. 김윤섭 소장은 “중국 미술시장은 중국 서화의 거래액이 높으며 트렌드에 민감한 현대미술의 의존도가 낮아 서양 중심 흐름에서 독립된 튼튼한 기반을 갖췄다. 중국의 급진적인 글로벌화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게 됐다.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를 망라한 전 방위적인 영향력은 고스란히 미술시장에서 재현되고 있다”고 말한다.
아트프라이스가 발표한 2000~10년 분기별 경매 총액 그래프를 살펴보면, 2010년 총액인 93억 63만 달러는 지난 10년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던 2007년의 거래액 93억 98만 달러를 거의 따라잡은 수치다. 여기에는 중국의 폭발적인 성장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 미술시장의 주요 작가들

아트프라이스가 발표한 ‘2010 Top 500 Artists’ 중 생존 현대미술 작가만을 대상으로 ‘Top 100’을 재구성했을 때, 상위 20위 작가들의 출신국 구성을 보면 9명의 중국, 6명의 미국, 각 2명의 독일과 일본, 1명의 이탈리아 작가가 포진해 있다. 미국과 유럽 작가들부터 살펴보면, 1위에 랭크된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총 거래액이 4배 가량 뛰어오르며 꾸준한 상승세를 거듭하고 있다. 작년에 8위를 기록했던 재스퍼 존스는 4위로 부각되었고, 2009년 급락 후 약간의 회복세를 보이는 제프 쿤스가 5위를 차지했다. 8위와 9위를 차지한 리차드 프린스와 에드 루샤는 각각 2009년 대비 3위와 10위씩 상승했다.
특히 생존작가 Top100에 올라온 작가들을 2009년과 2010년의 Top500 총순위를 참고해 보면 그 변화 추이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먼저 Top100 중에서 20위를 차지한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총 순위에서 보면 143위가 껑충 뛰어올라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2위에 오른 중국 수묵화가 퀴 루주오가 총 순위에서 무려 286위 상승하며 순위권에 모습을 드러냈고, 3위는 2009년의 Top 100에서 1위에 올랐던 중국 원로 거장인 자오 우키가 차지했다. 여기서 아시아 작가들의 성적을 보면 중국 현대미술 작가로는 6위에 쩡 판즈, 10위에서 12위에 장 샤오강, 리우 샤오동, 왕 이동이 차례로 이름을 올렸고, 최근 무섭게 인기가 치솟고 있는 리우 예가 16위에 오르는 등 중국 작가의 강세를 부정할 수 없다. 일본의 경우 무라카미 타카시가 거래액이 대폭 상승하여 14위에 올랐고, 쿠사마 야요이는 18위에 머물렀다. 한편 한국 작가로는 올 6월 구겐하임미술관 개인전을 앞둔 이우환이 64위로 유일하게 10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아시아권의 순위 구성을 보면 랭킹 100위안에 포함된 중국 작가가 37명, 일본 작가가 3명, 인도 작가가 4명으로, 중국의 뚜렷한 강세를 확인할 수 있다.
아트팩츠넷은 경매 결과와는 무관하게 작가들의 국제적 ‘활동’ 순위를 집계하는 곳 중에서 가장 높은 신뢰도를 자랑하는 기관이다. 매일 업데이트되는 아티스트 랭킹은 작가의 전시 경력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데, 지난 5년간 작가들이 참여했던 국제 전시의 수준과 횟수를 점수로 환산해 순위를 매기고 있다. 아트펙츠넷 랭킹 1위를 차지한 작가는 앤디 워홀로 1998년부터 현재까지 1위를 놓치지 않고 있으며, 410회의 개인전과 1,351회의 단체전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 뒤로는 파블로 피카소가 잇고 있으며, 3위를 차지한 브루스 나우만이 생존 작가 중 1위다. 4위는 아트프라이스 생존 작가 ‘Top 100’에서 1위를 차지한 게르하르트 리히터다.
아트팩츠넷은 일시적인 경매 결과에 좌우되지 않는 축적된 전시 경력이 순위 선정의 주요 고려 대상이므로 대체로 작가들의 순위 변동은 크지 않다.  100위 안에서 순위가 10계단 이상 상승한 작가들을 살펴보면, 호주의 비디오 아티스트 발리에 엑스포트(48위)와 사진작가 어윈 웜(53위), 칼 안드레(74위), 태시타 딘(78위), 리암 길릭(80위), 마우리치오 카텔란(84위)으로 현재 활발한 전시 활동으로 상승세를 탄 작가들이라 할 수 있다. 아트펙츠넷 ‘Top 100 Artist’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아시아 작가는 백남준으로 34위를 차지했다. 이 밖에 한국 작가로 김수자(209위), 이불(454위), 구정아(667위), 서도호(798위), 양혜규(831위), 니키리(967위)가 1000위 안에 포함됐다.

미술시장은 살아나는가

아트프라이스와 아트팩츠넷의 세계 작가 랭킹을 살펴 본 국내 전문가들은 한국 미술시장에 대한 염려를 표하기도 했다. 최병식 미술평론가는 “각각 경매 결과와 전시 활동을 기반으로 한 양쪽 순위 모두에서 공통되게 인정받는 작가들이 많아야 시장이 안정됐다. 우리의 실정은 그렇지 못하다. 중국미술의 약진 뒤에는 자신의 전통을 아끼는 자국민의 힘이 있듯, 우리 스스로 국내 작가들을 보호하고 판매해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점차 되살아나고 있는 세계 미술시장의 기상도 속에서 한국 미술시장의 기류는 어떻게 감지되고 있을까. 국내 미술시장의 앞날을 예측하는 이들의 목소리에는 낙관적인 전망도 존재했다. 서진수 교수는 “세계 미술시장의 회복세와 더불어 국내 시장도 약간 회복되었다. 단지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상승세는 아니며, ‘V자 회복’ 아닌 ‘U자 회복’이다.”라고 진단했다. 한편 이상규 K옥션 상무는 “미술시장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미술 시장이 붕괴됐을 때, 구매자는 어떻게든 싸게 사려는 경향이 강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좋은 작품이라면 비싼 가격이라도 작품을 구매하려고 한다. 이런 심리적인 변화는 시장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지금의 회복 단계에 힘을 실어 줄 변화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미술시장의 급변하는 지류 속에서 성장을 위한 한걸음을 생각할 때다. 앞으로의 추이에 대해서는 올해 열리는 아트페어에 주목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주연화 갤러리현대 기획차장은 “이번 홍콩아트페어의 결과에 따라 국제미술시장 지형도에서 아시아의 입지가 더욱 강화될 수 있다. 시장의 회복세가 중국 작가들의 부상으로 형성된 것이긴 하지만, 다른 아시아 작가들에게도 분명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장의 콘텐츠 자체가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변화를 한국 갤러리가 어떻게 대응해나갈지도 주목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정재호 갤러리2 대표는 “중국의 경우 이미 1990년부터 정부 주도하에 차곡차곡 진행된 일들이 2000년대에 중국의 급격한 시장과 맞물려 가시화된 것이다. 한국 작가의 해외 시장 프로모션은 근본적으로 정부가 커버해 줘야 한다. 수익 자체만을 놓고 시장을 판단하는 것은 무리다. 성장을 위해서는 시스템의 정리와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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