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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2.01

Abstract

201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art는 21세기 해외에서 '동분서주'한 한국미술을 점검합니다. 이 특집은 '미술 한류'를 한국미술의 '밖'과 '안'의 시선으로 꼼꼼히 살피고, 글로벌리즘의 새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자리하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미술 한류'는 서구 중심으로의 '세계화' 나 '해외 진출 달성' 과 같은 진부한 논제가 결코 아닙니다. 세계와 나, 중심과 주변의 대등한 등식에서 글로벌리즘에 접근하는 일입니다. 먼저 '친한(親韓)' 외국 미술계 인사 11인의 한국미술 현장 체험기를 듣습니다. 이들은 한국미술의 국제 네트워크 형성에 한 축을 맡고 있는 주인공입니다. 21세기 국제화 주역들인 한국 작가와 큐레이터들의 해외전시 고군분투기도 함께 합니다. 진정한 '미술 한류'를 위해 이제 그들이 전하는 '안(In)'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시점입니다. 마지막으로 2000년 이후 한국미술이 해외에서 남긴 발자취를 추적합니다. 2012년 한국미술 해외전 프리뷰까지. 한국미술 해외 진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점검하는 특집을 1월호에서 만나세요.

Contents

01    표지  김한용 <대한항공 카렌다, 1973년도 3월, 4월> (모델 정윤희)

34    영문초록

37    에디토리얼  김복기

38    핫피플  데브캣의 게임아트 전사 6인
    온라인 게임, 갤러리를 습격하다!  호경윤
    
42    오후의 아틀리에    
    이보다 더 좋은 친구가 있으랴  노은님

58    포커스
    김병호展|김종구展  정연심
    이혜인展|강민수展  이선영
    김종학展  김영순
    
70    특집  한국을 뛰어넘는 한국미술
    [1] 한국을 뛰어넘는 한국미술을 말한다
    [2] 글로벌과의 전쟁, 이것이 문제다
    [3] 미술 한류, 내일을 꿈꾸다

112    아티스트 스펙트럼  곽남신
    ‘반反빛’ 혹은 그림자의 시선  강수미

118    스페셜 인터뷰  이준
    전시 기획은 ‘소통의 기술’이다!  장승연

126    이슈 앤 크리틱 ㅤㅉㅓㄶ
    천년고찰의 예술, 비우고 통하기  김백균

132    이미지 링크  Elad Lassry

138    특별 기고    
    “대를 이어 충성을 다하렵니다!”  하타야마 야스유키

148    WHO WE MET  요리스 라만  김수영

150    암흑물질  김한용의 광고사진
    소비 판타지를 자극한 상상력의 엔진들  박해천

157    BRAND NEW      
    OB. SCENE  김보란

158    전시 리뷰  
    겹의 미학|Labour of Love, Revisited
    최대진|사윤택|김옥선|백현진
    백순실|파산의 기술|오원영

166    전시 프리뷰  
    임응식|세라믹스 코뮌|SHIFT|정병국
    파동, The Forces Behind|박진영|서용인, 최욱
    한국 추상 10인의 지평|독일 국립미술관 신진 작가상
    K옥션, 서울옥션, 아트에디션2011|일우사진상 

174    에디터스 블로그

Articles

온라인 게임, 갤러리를 습격하다!

온라인 게임, 갤러리를 습격하다!

글|호경윤 수석기자

게임은 예술이 될 수 있는가? 물론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가 게임 캐릭터를 작품화한 것처럼 게임의 비주얼 이미지가 발산하는 예술적 상상력은 대단하다. 또한 상호소통성과 가상성이라는 게임에 내재된 주요 속성을 감안하면 ‘게임=예술’이라는 등식은 더욱 확고해진다. 미디어아트 분야에서는 비디오게임이나 증강현실을 이용한 작품이 등장한 지 오래다. 게임은 확실히 예술이다. 그렇다면, 게임을 만드는 사람은 아티스트인가?

왼쪽 <마비노기>에 등장하는 캐릭터 타우네스와 메리엘. 수채화 같은 배경 화면의 표현이 특징이다.
오른쪽 2004년 데브캣스튜디오가 제작한 게임 애니메이션 <로나와 판의 판타지 라이프>. <마비노기>의 시스템과 세계관을 담은 영상물

예술과 게임,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다

오는 1월 20일부터 313아트프로젝트에서 열리는 <Borderless>전의 참여 작가들은 온라인 게임 제작팀에서 아트디렉터, 일러스트레이터, 애니메이터 등을 맡고 있는 게임아트 전문가들이다. 그동안 컴퓨터그래픽 기술로만 작업해 온 이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붓과 조각도를 손에 들고, ‘우리는 아티스트다!’라는 선전포고를 한다. 전시 제목 <Borderless>는 예술과 게임의 경계는 물론, 가상과 현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영역을 넘나든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Borderlss>전에 참여한 6명의 아티스트 이은석 이근우 이진훈 김호용 김범 한아름은 데브캣스튜디오(devCAT Studio)의 주요 멤버다. 개발자(Developer)와 고양이(Cat)의 영어 단어를 합성한 데브캣은 온라인 게임 산업에서 선두를 달리는 (주)넥슨에 소속된 개발 전문 스튜디오 중 하나다.
데브캣스튜디오는 2001년 처음 설립되어, ‘생활형 MMORPG(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마비노기>를 제작했다. 처음엔 데브캣팀으로 시작되었으나 2004년 데브캣스튜디오로 승격, 넥슨에서 독립성 강한 스튜디오 체제를 구축했다. 그 이후 이들은 2010년 대한민국게임대상에서 대상을 포함한 6개 부문을 석권한 <마비노기 영웅전>을 제작했으며, 최근에는 <마비노기2>를 비롯한 신규 프로젝트를 개발 중이다. 상업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마비노기> 시리즈는 웨일스 음유시인의 노래를 통해 전해 내려 온 켈트 신화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물로서, 탄탄한 스토리에 화려하고 역동적인 3D 영상으로 게임 유저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데브캣스튜디오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이은석 실장은 KAIST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인재로서, 2002년 넥슨에 입사한 이래 <마비노기><마비노기 영웅전> 등에서 특유의 예술적 감성과 앞선 기술력을 접목한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이러한 활약을 통해 그는 차세대 온라인 게임 산업을 이끌 주요 개발자로 꼽히며,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 외에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다. 게임 개발로 승승장구하던 이들이 작가로 새로운 도전장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
넥슨은 1994년 설립 이후, 세계 최초의 그래픽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를 선보인 이래,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태국 싱가포르 미국 캐나다 등 전세계 104개국에 <마비노기영웅전> <카트라이더>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등 57종에 이르는 게임을 진출시켜, 현재 약 12억 명이 넘는 엄청난 회원수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 규모가 확대되어 제작 시스템이 분업화될수록, 점차 개인이 갖고 있는 개성을 반영할 수 있는 범위가 약화되었다. 거대한 톱니바퀴의 한 부품처럼 반복적인 업무 속에서 한 곳에 매몰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 분야에서 10년 넘게 활동하며 전문가로 인정받은 이들은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았던 또 다른 영역을 체험해 봄으로써, 예술적 감수성으로 충전하는 계기가 필요했다. 각자 표현해 보고 싶은 창작욕을 맘껏 표출해 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들도 ‘게임’이라는 매체를 사용할 뿐, 결국은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창작자이기에….
<Borderless>전에는 기존의 게임을 모티프 삼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 낸 작품 20여점이 전시된다. 가장 최신의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던 주특기를 살려 새로운 예술의 형식을  제시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먼저 데브캣스튜디오에서 원화를 담당해 온 이근우는 이번 전시에 아크릴화와 함께 <마비노기>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픽셀로 색분할을 한 뒤, 컴퓨터에 랜선을 꼽는 부품을 이용해 퍼즐 맞추기 식으로 픽셀아트를 구현했다. 또한 비주얼파트에서 이펙트, 사운드, 멀티미디어를 주로 맡아 온 이진훈은 게임에 등장하는 유저들의 캠프파이어 모습을 미디어 인스톨레이션 작품으로 재해석했다. 이은석의 인터랙티브 아트 작품 <아바타 거울>은 관객의 몸동작을 인식해 곧바로 모니터 위에 디지털화된 아바타의 모습으로 재현한다. 자신의 모습이 디지털화된 것을 즉각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관객은 가상과 실제의 경계를 다시 한 번 환기하게 된다.
반면, 페인팅과 조각 등 순수미술의 방식에 도전한 작가들도 있다. 이번 전시 참여 작가 중에서 홍일점인 한아름은 평소 게임 포스터 작업을 많이 맡았다. 그동안 그녀가 제작해 온 포스터는 붓터치와 빛의 효과가 살아 있어 전통적 서양화 같은 느낌을 물씬 풍긴다. 그러나 느낌만 그럴 뿐 컴퓨터로 그린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한아름은 자신이 과거에 제작했던 포스터 그림을 대형 캔버스로 옮겨 극사실적인 유화를 그렸다. 미루어 보건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았을 터. 컴퓨터 그래픽툴로 표현할 수 있는 극적인 비주얼은 아무리 유화를 많이 그려 본 사람이라도 표현해 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그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거의 처음으로 유화를 다뤄 봤다고 한다. 그럼에도 굳이 유화를 고집한 이유를 물었더니 “게임하는 사람들조차 게임을 하위문화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순수미술 매체를 통해 그러한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고 답했다. 한아름과 함께 페인팅에 도전한 김범은 게임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아크릴화로 표현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인기 여배우의 이목구비와 닮아 있고, 핸드백과 하이힐 등 명품패션으로 치장하고 있다. 또한 평소 게임 캐릭터를 소형 피규어로 만드는 작업을 해 온 김호용은 게임에서 신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을 거대한 조각상으로 만들었다. 근엄하고 육중한 외형은 마치 고대 그리스 로마 유적에서 출토된 대리석 조각상을 떠올리게 한다.

왼쪽 이근우의 픽셀아트 작품. <마비노기> 시리즈의 캐릭터를 컴퓨터 부품으로 픽셀화해서 표현하고 있다.
오른쪽 게임의 여주인공을 현대도시 여성으로 재해석한 김범의 아크릴화의 제작 과정

예술보다 파급력 강한 ‘예술’을 꿈꾸며

물론 이들이 단 한 번의 전시로 전업 작가가 되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걸고 독립된 작품을 제작해 그것을 관객에게 발표하는 행위는 분명 색다른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참여 작가 김범은 “모니터와 태블릿, 마우스만 사용하다보면, 기법은 물론 생각까지도 얽매어 있게 된다. 그림을 직접 그리면서 의식이 많이 깨어졌다. 작품의 발상과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의 폭이 넓어졌고, 기존 작품의 변화에도 자신감이 생겼다. 전시가 끝난 뒤에도 틈틈이 개인 작업을 더 해보고 싶다”며 이번 전시의 의의를 강조했다. 사실 이 전시는 지난해 초부터 장기간 준비해 온 것으로, 참여 작가들은 몇 달 전부터 사옥 부근에 작업실을 얻어 일과 작업을 병행해 왔다.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예술가’로 벅찬 일정을 소화하느라 그들의 얼굴은 피곤함이 역력했지만, 눈빛만은 전시를 앞둔 여느 작가들처럼 설렘으로 가득 차 보였다.
넥슨에서는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향후 데브캣스튜디오 외에 다른 팀들의 예술 프로젝트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순히 ‘보여 주기’ 위한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하위문화로 치부되는 게임에 대한 인식 저변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예술 접근 방식을 모색 중이다. 일찍이 네덜란드 문화사학자 요한 호이징아는 그의 저서 《호모 루덴스》에서 ‘문화란 원초(原初)부터 유희되는 것이며, 인간의 본성은 유희에서 비롯된다’고 역설한 바 있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분야인 만큼 게임이 가진 파급력은 전시장에 걸린 작품과 비교할 수 없이 강하다. 보다 예술적인 게임, 그리고 게임처럼 재밌는 예술. 미래의 예술은 분명 이 둘의 간극이 좁혀진 모습일 것이다.

차가운 금속에 깃든 섬세한 정신성

김종구 개인전 전경

차가운 금속에 깃든 섬세한 정신성

글|정 연 심

현대조각에서 가장 주목 받은 재료 중 하나는 바로 ‘철’이다. 오랜 시간동안 대리석과 청동은 전통적 재료로서 변하지 않는 사랑을 받아 왔지만, 철은 산업혁명 이후 유리와 더불어 새로운 매체를 모색하던 작가들을 매료시켰다. 도널드 저드와 같은 미니멀리스트 조각가들이 사용하던 산업화 규격화된 유닛(Unit), 로버트 스미드슨이 강조한 엔트로피한 물성에 적합해 보이던 아스팔트, 혹은 로버트 모리스가 주장한 ‘반형태(Anti-form)’에 어울리는 규격화된 큐브에는 산업 시대의 특징을 반영하는 매체적 속성이 뒤따랐다. 그리고 리차드 세라의 작품처럼 거대해진 강철 조각은 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교감과 만남을 강조함으로써 조각의 물질성과 관람자들의 신체성을 더욱 극대화했다.
그러나 이들이 이룬 궤적은 서구 조각의 흐름 안에 위치하는 반모더니스트적인 실험 중 일부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쇳가루를 이용하는 김종구와 알루미늄이나 철 등 금속 재료를 사용하는 김병호의 매체적 실험과는 거리가 있다. 김종구와 김병호, 이 두 작가는 회화적이고 조각적인 조형성이라는 각 측면에서 서로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문명의 상징이었던 철이나 금속 재료를 이용해 인간성의 회복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지닌다. 김종구의 작업에서 평면의 천 위에 뿌려진 쇳가루는 수직으로 설치되면서 중력과 산화 과정에 의해 끊임없는 자기 변화와 생성을 경험한다. 반면 김병호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유닛을 통해 현대 사회가 처한 규율과 감시를 반영하지만, 그의 조각은 감각적이고 섬세하다. 이는 정적이면서 동적인 요소를 동시에 아우르는 삶의 에너지를 쏟아 낸다.

김병호 <Radial Eruption> 아노다이징 알루미늄, 피에조 아두이노, 사운드 140×160×160cm 2011

숭고한 쇳가루 산수화

김종구는 쇳덩어리를 가루로 갈아서 이용하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조각을 공부한 작가에게 쇳덩어리란 마치 철기시대나 청동시대를 연상시키듯 가장 원초적인 조각 재료이다. <더 볼(The Ball)>처럼 쇳덩어리는 무겁고 공격적인 모습이지만, 작가는 이를 역이용해 쇳가루를 물감 덩어리 같은 존재로 변화시킨다. 또한 쇳덩어리로서 볼은 금속을 다루는 연금술처럼 변형 가능한 물성을 함축한다. 김종구의 작업에서 결국 많은 것들은 작가의 순수한 의지대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공기와의 산화에 의해서 쇳가루의 원래 색이 결국 변하듯 말이다.
물질성과 정신성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작가는 쇳가루 텍스트 작업과 쇳가루 회화에서 이 두 개념을 동일하게 다룬다. 또한 이 개념은 작가가 서체로 남긴 <그곳으로> <이곳으로  오면>과 같은 텍스트 작품에서 발현된다. 투박한 쇳가루에서 소통 가능한 텍스트가 완성되기까지 작가는 마치 독백하듯 대화를 시도하는데, 이러한 시간성과 노동은 김종구의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즉 작가가 작성한 텍스트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를 거치게 되는데 이러한 형태의 변화는 생각의 변화요, 새로운 의미의 생성으로 연결된다.
김종구가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제작한 대형 쇳가루 산수화(Steel Powder Painting)는 쉼표 없이 계속 진행되는 무한한 독백이자,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흔적과 제스처가 지표화되어 있는 공간이다. 마치 기념비적인 산수화처럼 설치된 이 작품은 ‘숭고(Sublime)’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마치 붓 터치의 흔적이 나를 감싸안듯 눈 앞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작가는 바닥에 광목을 펼친 다음 쇳가루를 뿌린다. 그러나 작가의 움직임과 궤적을 기록하는 쇳가루의 흔적이 이후 수직으로 설치되면서 우연성과 같은 변수를 통해 작가도 생각하지 못했던 형태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작가는 이러한 흔적을 접착제로 고정시키지만, 이 흔적은 녹슬고 산화, 부식되어감에 따라 같은 쇳가루라 하더라도 똑같은 색채를 보여 주지 않는다. 김종구는 이러한 작업에 대해 “녹슬어 가며 계속하여 자기 숨을 내쉬고 있다”고 고백한다.
원앤제이갤러리에 전시된 이러한 김종구의 작품은 회화적 설치에 가깝다. 이 대형 스케일의 평면 설치 작품 앞에 서게 되면, 그 재료가 쇳가루였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자연 속에 있는 토양을 대하는 것 마냥 그의 작품은 쇳덩어리, 쇳가루와 같은 산업시대 재료의 특징에서 완벽하게 이탈하고 있다. 쇳가루 회화는 오히려 우리가 잊고 살았던 흙과 자연에 대한 복귀를 유도한다. 조각적인 재료였던 쇳가루는 작가의 손에 의해, 작가의 부산한 움직임에 의해 그 자체의 물성은 전복되고 그 흔적만 남게 된다.

김병호 <Soft Crash> 알루미늄 피에조, 아두이노, 사운드 330×330×165cm 2011

연극적인 사운드 조각

김종구가 쇳가루의 조각적인 물성을 회화적 흔적으로 전치시키는 것과 달리, 김병호는 알루미늄이나 철과 같은 금속 재료의 속성을 최대한 강조하고 이를 조형적으로 제시한다. 김병호의 작업이 금속 재료의 차가운 속성이나 표준화되고 규격화된 유닛을 반복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미니멀리스트적인 ‘하나 이후의 또 하나(One after another)’를 연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조형적인 특징보다는 반복된 유닛이 의미하는 상징성에 천착한다. 작가가 설계한 모든 유닛들은 도면에 맞게 공업적으로 처리되는데, 작가는 이러한 반복성과 표준화 규격화 양상이 우리 사회의 구조와 맞닿아 있다고 논한다. 규율 규범 관례 등 사회를 구성하는 시스템, 즉 사회 구조와 체계를 은유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스탠다드한 유닛을 반복적으로 재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김병호의 작업은 이러한 형태적 특징 외에도 사운드가 필수적으로 동반된다. 작가가 직접 만든 회로를 통해 발생하는 사운드 또한 반복된 유닛처럼 짧은 단파음이 반복되는 기계적 느낌을 준다. 한편 작품 중심부에 설치되어 있는 전자부품들은 전자기 판을 통해 진동을 만들어 내는데, 작품 앞에 서서 반복된 유닛을 보는 순간 이 유닛들이 관람자와 함께 움직이는 느낌을 준다. 그의 작품이 사회의 체계, 구조 등을 보여 준다고 하지만, 그의 조각 설치는 관람자들에게 숨어 있는 감각을 일깨우는 지각적 심리 효과를 통해 인터랙티브한 결과를 낳는다. 수학적인 유닛에 따라 반복, 제작된 그의 작품은 주체적이고 주관적인 심리를 자극함으로써 일상생활에서 쉽게 지각할 수 없는 감각과 감정을 일깨워 준다.  
‘사운드 조각’ ‘사운드 설치’라고 명명할 수 있는 김병호의 작업 제목은 다음과 같다. <Irreversible Damage> <Soft Crash> <A Memory of Rule> <Logical Intervention> <Equilibrium> <Radial Eruption>. 각 제목을 ‘되돌릴 수 없는 상처-부드러운 굉음-규칙의 기억-논리적인 중재-균형-분출’로 해석해 보면, ‘손상 충돌 규칙 중재 균형’이라는 서로 상충하는 명사들의 조합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충돌과 에너지, 움직임과 역동성 등을 유추해 볼 수 있는데, 김병호의 작업은 바로 이러한 상반된 요소들을 변증법적으로 모으면서 에너지를 방출한다. 그것은 육중한 금속 재료의 속성을 보여 주면서도 반복성과 율동성으로 인해서 동적인 요소가 무한대로 반복 증가한다는 느낌을 준다. 무엇인가를 흡입할 것 같은 <Soft Crash>는 멀리서 보면 흐물거리는 비정형의 아메바를 연상시키지만, 이 작품 앞에 서는 순간 차가운 금속의 반복된 배치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금속성 재료라기보다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관람자에게 착시 효과를 주는 것은 <A Memory of Rule>도 마찬가지이다. 작품 중앙의 블랙홀은 관람자를 흡입할 것 같은 순간적인 공포를 주지만 이 작품을 옆에서 보게 되면 금속 조각이 벽에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각각 조각이라는 매체에서 출발한 김병호와 김종구는 조각의 영역을 확장하고 변형시키는 작업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는 매체 자체의 실험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실험적 매체를 기제로 이용하여 결국 사회와 인간,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안팎으로 되짚는다. 따라서 부식된 쇳가루의 표면이나 차가운 금속면은 이러한 관계성을 조명하기 위한 작가들의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

‘반反빛’ 혹은 그림자의 시선

왼쪽 <메~롱!> 네온, 합판에 락커 350×720cm 2011
오른쪽 <달밤> 합판에 락커, LED 226×135cm 2011 가인갤러리 전시 전경

‘반反빛’ 혹은 그림자의 시선

글│강수미·미학,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우리는 이 글에서 작가 곽남신의 미술을 논할 것이다. 대상은 1990년대 중반 경부터 2011년 최근까지 전시를 통해 선보인 작품들이 될 것인데, 그가 평면과 입체, 그리기와 판화 기법 등을 혼용하고 단일 작품의 제시와 작품의 공간 연출을 넘나들며 창작 활동을 하는 이유로 장르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제까지 작가는 모티프 면에서 ‘그림자’를 주요하게 채택해 왔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는 꽤 일관된 지향성을 보인다. 또한 그 그림자를 “의미가 함축된 상상적 이미지”(2004년 작가 인터뷰)로 이해하면서, 직접적이고 물질적인 현실의 날것 상태와는 다소 거리를 둔 감각들, 감수성, 정서를 거기 담아 표현해 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작업 주제의 지속성 또한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을 존중한다면 우리는 먼저, 곽남신의 미술에서 ‘그림자’라는 모티프를 조형예술의 관점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상상적 이미지’로서 작품 속 그림자가 지닌/잠재하고 있는 사변을 철학적이고 미학적으로 논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언쟁(Argument)> LED 260×290cm 2011

평면성을 위한 흔적에서 실재의 표상까지

흐릿한 윤곽을 가진 그것, 검고 부피 및 무게가 없어 부정적인 의미로 빛과 색채와 실체의 정반대편에 있다고 간주되는 그것. 곽남신의 작품을 앞에 두고 사람들이 가장 먼저 보고, 논자들이 가장 비중 있게 언급하는 그것은 바로 ‘그림자’다. 그도 그럴 것이 1979년 이 작가가 한국 미술계의 신예로 주목 받는 계기가 된 그림에서부터, 이후 30여 년이 지난 현재 중견작가로 자기 미술의 자리를 견지하며 내놓는 복합적 형식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곽남신의 거의 모든 작업에는 그림자 이미지가 핵심적으로 등장한다. 그는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단색조 화면에 마치 반투명 창호지에 적요하게 비치는 나무 그림자 같은 형상을 흑연으로 흐리게 그려 넣었다. 또 파리 유학 후인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회화와 판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실험을 하던 시기에도, 유적지의 흙바닥을 연상시키는 배경 위에 돌 뼛조각 토르소 암각화의 동물 선묘와 유사해 보이는 도상(Icon)을 그림자 이미지로 그리거나 빚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는 사각형의 평평한 표면에 한정되지 않고, 반(半)입체, 입체, 특정 형태의 캔버스(Shaped Canvas), 설치미술 등 여러 공간과 여러 표현 방식을 가로지르고 접목하면서 삶 속의 부박한 면모/순간/분위기를 그림자로 현상하고 있다. 예를 들면 키스 직전 남녀의 서로 다른 제스처라든가, 멀리 뻗어나가는 남자의 오줌줄기라든가, 빙 둘러 수다 떠는 이들의 집단 실루엣에서 느껴지는 공모의 기운이라든가.
위와 같이 시기로 구분하고 세부 내용에 따라 변화를 가늠했지만, 그간 곽남신이 해 온 작업에서 우리는 원환처럼 그림자라는 특정 모티프를 중심으로 도는 이 작가 특유의 미적 정향을 발견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평자들은 곽남신이 “그림자 같은 본원적 이미지를 탐색”(양정무)한다고 분석하기도 하고, “어떤 현현(顯現)의 과정을 드러내려”(김원방) 시도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또 그 작품의 그림자 이미지가 궁극적으로는 의미의 완료가 아니라 개방을 지향한다고 풀이하면서, 그 “개방성이야말로 곽남신의 조형론에서 중추적인 요인”(심상용)이라 정의한 평도 있다. 관점과 내용은 모두 상이하지만, 여기 인용한 이들의 논평은 곽남신의 미술 중 가시적 대상으로서 그림자에 이론적 배경과 의의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새길 만하다.
한편, 작가는 애초부터 개념적이거나 논리적인 차원에서 그림자를 다루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보다 곽남신은 자신의 경험 조각과 마음의 편린으로부터, 혹은 덧없이 흐르는 일상 중 눈길이 간 소소한 사물과 생활의 에피소드를 통해 느낀 바를 자신만의 조형예술로 증류하고 종합하는 과정에서 그림자라는 구체적 시각 언어를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그림자가 작가 내부의 정서적이고 경험적인 영역에서 유래했고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선별된 ‘시각 언어’라는 점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앞서 우리가 크게 세 시기로 나눈 곽남신의 미술에서 그림자는 각기 다른 형태와 내용을 띠며, 다양한 실험의 와중에 각각의 조형 방법론 및 매체를 통해 구현되기 때문이다. 그 다름과 이행, 그간 꽤 많은 작품들 속에서 가시화된 그림자의 다양한 세부가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그것은 고정된 조형 이념에 따르기보다는 가변적인 순간들, 외부의 존재들이 던지는 일종의 메시지를 작가가 감각적으로 수신해서 거기에 매번 가시적인 형(形)을 주고 질서를 부여했던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요컨대 이런 과정에서 그림자 자체가 때로는 그저 평면적인 속성을 가진 존재의 흔적으로서, 때로는 문명사적 도상의 대리 기표로서, 또 때로는 뻔하고 진부한 우리 생활의 면면들을 제유하는 수사적 장치로서 언어화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즉 곽남신의 작품에 주요한 모티프인 그림자가 미술사적으로 따져서 ‘사람의 그림자 윤곽을 따라 그린’ 회화의 기원(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 젖줄을 대고 있든, 또 미국 모더니즘 회화의 평면성 강령(그린버그의 <모더니스트 회화>)과 한국식 모노크롬 회화의 취향 그 어디에 결부돼 있든 간에, 관건은 그의 작업들이 개별적인 형태와 스토리를 담고 변이해온 점이라고 말이다.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반복되지만 곽남신이 작품에서 그리고 찍고 빚고 깎고 배치하고 구성하는 그림자가 이미지 제작의 결과가 아니라 그 제작과 결과를 주도하는 시각 언어라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2000년대 들어 곽남신이 선보이고 있는 그림자 작품들은 작품의 외적이고 물리적인 형태와 내부 스토리의 동기화(Synchronize)가 두드러진다. 이는 아마도 작가 자신이 의식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작가 내부에서 질료 및 기법의 조형적 운용과 말하고자 하는 바의 언어적 표현이 일종의 ‘잘 쓰고 잘 장정된 책’처럼 큰 틈 없이 맞물려 돌아간다는 예증일 것이다.

<키스> MDF에 락커, 줄전구 248×262cm 2007

‘모든 것’에서부터 ‘어떤 것도 아닌 것’까지

우리는 좀 전에 곽남신의 근작들에서 형태와 내용이 동시에 진행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 말이 곧 그의 작품들이 모든 감상자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전달하거나, 동일한 상상을 촉발시킨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예컨대 <키스>라는 제목의 작품에서 대부분의 감상자는 제목과 동일한 사태를 눈으로 보고 싶어 하고 그것을 볼 수 있다. 이때 본 것이 그 작품의 내용이자 작가가 말하고자 한 바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사실 <키스>는 대형 MDF 판재를 두루뭉술한 윤곽선으로 자르고 그 위에 검은색 락커를 칠한 후 그 배면에 푸른색 전구로 조명장치를 한 평면 설치작품으로 얼핏 봐서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상인지 알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작품에서 여자의 어깨를 붙들고 막 키스를 하려는 남자와 살짝 몸을 뒤로 뺀 여자의 실루엣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다분히 작품의 제목에 영향 받은 결과다. 따라서 만약 어떤 감상자가 그 작품의 타이틀을 모르는 상태로 <키스>를 봤다면, 그 실루엣은 전혀 다른 이야기로 어필했을 것이다. 애매모호한 윤곽선을 그리고 있는 사방 300cm 크기의 평평하고 검은 이미지 덩어리 안에서 무슨 일이,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는지 그 누구도 세부를 단일하고 규정적인 언어로 정리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 대목에서 곽남신의 그림자가 잠재하고 있는, 전체와 세부에 대한 인과론적 해석의 전횡을 넘어설 가능성이 떠오른다. 곧바로 이에 대한 논설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우리 몸에서 전(全) 신체와 각 지체들 간의 위계 짓기 내지는 종속관계에 대한 오래된 담론부터 들어보자.
머리와 손처럼 신체의 가장 중요하고 귀한 부분은 항상 노출된 채 온갖 생활의 대소사를 처리하느라 바쁘다. 반면 남녀 생식기처럼 가장 본능적이고 사람들이 부끄럽게 여기는 부분은 통상 옷으로 감춰지고 은밀히 보호된다. 이는 언뜻 단순한 역설로 들리지만, 지금 바로 우리 몸의 형편만 들여다봐도 바로 인정하게 되는 사실이다. 한편, 이 같은 생각을 별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몸의 부분들을 위계로 나누고 우열을 따지는 것이 아닌가. 말하자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머리, 무엇인가를 만들고 조직하는 손은 생리적 기관인 성기보다 더 상위에 속한다는 논리, 한 몸 안의 지체들을 그저 각각 다른 것으로서가 아니라 차별과 종속의 관계로 구분하는 논리 말이다. 사도 바울은 이 같은 문제를 상호 보상을 통한 평등, 즉 글 첫머리에 썼듯 신체의 중요한 부분이 헐벗고 수치스러운 부분이 치장된다는 논법으로 해결했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전지전능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이들이, 즉 할례를 했든 그렇지 않았든, 능력이 있든 없든, 건강한 이든 그렇지 않은 이든 동등한 하나임을 보여 주는 증거라며 구원 받을 인류의 보편성을 설파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과 별 가치 없는 것이 눈에 뻔히 보이고, 전체와 그에 속한 부분들이 뚜렷이 구분돼 보이는데 우리가 어떻게 모든 것을 똑같이, 차별 없이 대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문제는 ‘시각’이다. 즉 이러저러하게 보인다는 것이고, 그 보이는 것에 따라 이러저러하게 일정한 판단 및 해석을 내린다는 것이다. 그럼 이 난제를 시각 이미지로 풀어본다면? 그림자라면 그 차별적이고 단선적인 보기와 사고를 넘어서는 일이 가능하지 않은가? 왜냐하면 그림자란 실재의 반영이지만, 세부로 나뉘지 않는 하나의 존재, 그 내부와 외부가 일치하는 무한히 가볍고 무한히 유연한 형상이기 때문이다.
곽남신이 반드시 이상과 같은 맥락을 고려하면서 그림자 이미지를 다루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언젠가 이 작가는 전시 도록에 “그림자는 현실의 형태로부터 얼마든지 자유롭기 때문에 무궁무진한 표현의 폭을 가지고 있고 내부의 모든 3차원적 형상이 오직 외곽선의 형태로만 압축된다”고 썼다. 이 명료한 문장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할 의미는 한편으로 조형적 대상으로서 그림자가 가진 표현 역량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체와 부분에 대한 현실의 차별적 시선이 작동할 수 없는/작동하기 힘든 지각과 인식의 모델로서 그림자를 사유할 계기다. 어쩌면 전자의 의미에서 그림자의 역량이 앞서 우리가 논했듯 이제까지 곽남신의 미술이 수행하고 거둔 조형적 변화와 성과를 견인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후자의 의미에서 그림자를 경험하고 생각할 여지는 우리 감상자의 몫이다. 거기서 경험적 의미의 폭은, 앞서 인용한 심상용의 평론이 이미 짚었듯이 ‘개방’돼 있다. 그리고 생각의 양은 마치 조금의 두께도 없으면서 실재하는 무수한 것들과 현존하는 다양한 것들을 보증해 주는 그림자처럼(그림자가 없다면 그것은 비존재다) 잴 수 없지만 풍부할 것이다. 그래서 다시 곽남신의 근작들에서 보이는 형태와 스토리의 일치 현상 및 그에 대한 감상자의 인과론적 해석 여부 문제로 돌아가 보면, 비록 그의 작품에서 의미를 지시하는 형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무궁무진한 표현의 폭’을 지닌 그림자인 한 무궁무진한 해석의 폭 또한 예비한다고 우리는 결론 내릴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곽남신의 그림자는 모든 것에서 어떤 것도 아닌 것까지를 품은 보편적이고 개별적인 이미지다.
마지막으로 곽남신의 일련의 작품들 중 회화의 물질적이고 물리적인 측면을 이미지의 내용에 직접적으로 결부시킨 것들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예컨대 <소녀>는 부끄러운 듯 그러나 다소 요염하게 몸을 꼬고 선 어떤 여자의 실루엣을,  <싸움>은 서로의 몸을 잡아 당기며 싸우고 있는 세 사람의 그림자를 보여 준다. 그런데 실상 감상자가 그 같은 미묘한 정서를, 밀고 당기는 힘을 지각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인물의 묘사 때문이 아니라, 그 그림자 이미지가 그려진 실제 캔버스 천이 상하 또는 좌우로 팽팽히 당겨져 있는 덕분이다. 이를테면 소녀의 간지러운 동시에 도발적인 감성은 신체의 특정 부위(그러나 그림자로 그려졌기 때문에 단언할 수는 없는)를 향해 잡아끌어 내려진 천의 주름으로부터 온다. 또 몸으로 벌이는 세 인물의 사생결단은 화면 오른쪽에 비끄러매진 천의 팽창에 따라 느껴지는 것이다. 이렇게 보자마자 어떤 사태를 직감하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의 힘은 어디서 왔을까? 우리는 그 힘이 혹시 세계에 대해서, 대상에 대해서 분할하고 차별 짓는 빛의 시선이 아니라, 그것들에 스며들고 품는 반(反) 빛/그림자의 시선에서 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왼쪽 <소녀> 캔버스에 스프레이, 색연필 162×130cm 2009
오른쪽 <섹시걸> 캔버스에 락커 스프레이, 조화 240×173cm 2007

김한용의 광고사진: 소비 판타지를 자극한 상상력의 엔진들

<OB맥주 카렌다용> 모델 최무룡 김지미, 기획 이병수, 디자인 민철홍 1964

김한용의 광고사진: 소비 판타지를 자극한 상상력의 엔진들

글|박해천·디자인 연구자

2층 양옥의 응접실에 3인 가족이 모여 앉아 화목하게 정담을 나누고 있다. 레이스가 달린 흰색 블라우스 위에 빨간색 카디건을 받쳐 입은 여자는 맥주가 가득 담긴 컵을 들고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녀의 시선은 남자를 향하고 있다. 탁자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는 보라색 줄무늬 카디건을 걸치고 도쿄의 관광 안내서를 한 손에 쥐고 있다. 여자에게 무언가 말하려는 찰나다. 그런데 그의 시선이 어색하다. 여자와 안내서 사이를 그냥 지나쳐 사진 바깥의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선의 엇갈림 때문일까? 사진 속의 부자연스러운 대목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영부인 덕분에 유행을 탄 탓인지 여자의 올림머리 스타일은 이마 선을 강조하고, 받침다리를 잘라냈는지 소파의 높이가 유난히 낮다. 입식도 좌식도 아닌 상태, 그래서 그녀는 약간 옹색한 자세로 앉아 있다. 남자의 옷차림새도 묘한 구석이 있다. 그의 티셔츠 칼라가 카디건 위에 보기 흉하게 접혀 있다.
그러면 남자 곁에 바싹 붙어 엎드려 있는 소년은 어떤가? 사실 이 사진에 가장 이상한 부분은 이 소년의 존재다. 얼핏 기계충 자국이 보이는 스포츠형의 머리 모양은 그가 중학생 정도의 나이임을 암시한다. 반면 그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는 처녀로 보일 정도로 젊다. 소년과 여자의 표면적인 나이 차이, 그것은 눈치가 빠른 이들로 하여금 이 가족의 내력을 상상하도록 부추기기에 충분하다. 까까머리 소년 주변을 배회하는 호기심 어린 시선들. 하지만 소년은 애써 모른 척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수행한다. 오늘 그의 임무는 오른손으로 턱을 받친 채 도쿄의 호텔 소개 브로슈어를 펼쳐 보는 것이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흘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 미소의 의미가 가족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의 어색한 상황을 비웃는 것인지, 소년만이 알고 있다.
그러면 이제 약간 뒤로 물러나 사진 전체의 구도를 살펴보자. 위에서 묘사한 남자와 여자 그리고 소년, 이 삼자의 관계는 쐐기 형태의 삼각형 구도를 만들어낸다. 쓰러질 듯 아슬아슬하게 기울어진 구도, 정말 훅 불면 어디론가 가볍게 날아가 버릴 것 같기도 하다. 그 때문일까? 이들 사이에, 세월의 때를 탄 지구본, 그리고 팔등신의 한복 인형이 끼어든다. 그리고 안정적인 오각형의 구도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불안한 분위기를 완전히 지워내지는 못한다.

<현대자동차주식회사 코티나 포스터>

1960년대가 상상한 소비문화의 단면

한미사진미술관의 <김한용, 광고사진과 소비자의 탄생>전에 전시된 1964년도 OB맥주 카렌다용 사진을 보면서 느낀 점은 대략 이런 것들이었다. 기획자 이영준은 김한용 작가의 사진들 중 1960년대 광고사진들을 주축으로 삼아 총 다섯 개의 섹션을 나누고, 각각 ‘고전미인도’ ‘소비 생활의 발견’ ‘소비자의 초상’ ‘비현실’ ‘에로틱’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명료한 분류법에 따라 정돈된 전시장에서 유별난 힘으로 시선을 잡아당기는 사진이 있었으니, 바로 이 카렌다용 사진이었다.
다른 광고사진들이 모델의 과장된 포즈, 독특한 컬러의 색감, 맥락 없는 소품의 쓰임새,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섹슈얼리티 그리고 한결같은 여자 모델의 입모양새 등으로 1960년대적 감각의 면면을 제각각 드러내 보인다면, 당대 최고의 배우 최무룡과 김지미가 등장하는 이 사진은 일종의 소실점으로서 다종다양한 사진들의 표층을 나름의 질서로 구획하는 듯 보였다. 만일 그렇다면, 전시된 사진들의 역사적 위치와 문화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 이 사진을 길잡이로 삼아 보는 것은 어떨까? 아마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서두부터 길게 이 사진을 묘사한 이유도 바로 이런 판단 때문이었다.
이영준은 이 사진과 일련의 카렌다용 가족사진들을 함께 묶어 ‘비현실’이라는 제목의 섹션으로 분류하면서, 그것들이 1960년대가 상상한 현대적인 소비문화의 단면들을 담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이 사진들은 당대의 현실과는 거리를 둔 풍요로운 가정의 모습을 보여 주기에 여념이 없다. 거기에는 ‘소비자의 초상’ 섹션의 흑백 기록사진들이 보여 주는 가난과 궁핍의 흔적이 완전히 지워져 있다.
이 ‘풍요’의 비현실은 어디에 연원을 두고 있던 것일까? 먼저 그런 세계를 창조해낸 1924년생 작가의 이력을 추적해 보자. 주지하다시피 1924년에 태어난 이들을 일컫는 흥미로운 표현이 있다. ‘묻지 마라 갑자생’이 그것이다. 일제강점기의 한복판에 태어나 제국의 신민으로 교육받았지만, 10대 후반부터 파란만장한 역사의 격동을 한몸에 떠안아야 했던 세대. 그들은 세계대전과 6.25동란, 두 차례에 걸쳐 전쟁에 동원되는 수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작가의 이력도 평균적인 갑자생들이 겪었을 법한 고난의 연대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평안남도 성천군 출생, 만주 봉천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일제에 징용됐다가, 일본 본토에서 해방을 맞이한 뒤 평양으로 귀환. 그리고 한국전에는 사진기자로 종군. 이런 측면에서 보면, OB맥주 카렌다용 사진은 물질적 풍요를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갑자생 작가가, 아직 당도하지 않은 미래의 일상을 상상한 결과라고 말할 수도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 사진이 당시 저개발의 경제적 상황을 괄호로 묶어버리려고 시도한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진공 상태에서 탄생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든든하게 뒷배를 봐 줄만한 현실 속의 대상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사진 속의 집에 주목해 보자. 1930년대 이후부터 절충식 한옥이 서울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로 자리 잡고 있었고, 남산 주변에 일본인이 지은 문화주택들이 이국적 경관을 만들어내는 정도였다. 전후 이승만 정권 시절에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부터 변화의 싹이 보이기 시작한다. 서대문 인근에 넓은 정원을 갖춘 고급 2층 양옥이 하나둘 지어졌던 것이다. 당시에 이런 집에 거주할 수 있었던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주식회사 금성사 포스터> 모델 염혜숙, 기획·카피·디자인 문달부

판타지의 밑그림들

그 구체적인 내막을 들여다보기 위해 1942년생 소설가 김원일의 1967년 데뷔작 《어둠의 축제》를 살펴보자. 1960년 겨울부터 1961년 봄까지를 배경으로 삼은 이 소설에서, 주인공 친구 언표가 거주하는 집이 고급 2층 양옥이다. 금호동 경사지에 있는 그의 집은 “이백 평은 족히 됨직한 널찍한 대지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지방 출신 고학생인 친구들의 눈에는 대궐 같은 집이다. 초인종을 누르면 식모가 나와 직접 대문을 열어주고, 안으로 들어서면 도베르만이 목줄을 끊을 듯 앞발을 쳐들고 집주인을 맞이한다. 잔디밭 사잇길에는 장미 아치가 세워져 있고, 넓은 정원에는 “모양새 좋게 자란 관상수들”이 심어져 있다. 또한 “웬만큼 산다는 집도 이불은 자개장롱에 옷은 횟대보로 가려 못에 거는 게 보통”인데, 연표의 방에는 책장, 서양식 옷장, 이불장이 세 벽면을 두르고 있다. 그리고 사진작가가 장래희망인 언표를 위해 집 안에는 개인 암실까지 마련되어 있다.
언표의 집을 떠받들고 있는 경제력은 어디서 온 것인가? 친구들은 “육이오 때 피난 나온 삼팔따라지가 십 년도 안 된 세월에 무슨 재주로 이렇게 큰 집 살 돈을 모았을까”라고 언표에게 힐난 섞인 질문을 던진다. 실제로 그의 아버지는 평양 지주 집안 출신으로 해방 후 공산당의 핍박을 받다가, 한국전 당시 언표와 함께 단둘이 월남했다. 그리고 휴전 후부터 설탕 원재료 수입과 도매업으로 갈퀴로 긁어모으듯 돈을 벌어들였다. “미국의 한국법인 원호처와 짜고” “평화시대가 오면 사람들이 가장 원 없게 먹고 싶은 게 달콤한 설탕”이라는 것이 게이오대학 영문과 출신으로 영어에 능숙했던 언표 아버지의 판단이었다. 그렇게 부를 축적한 아버지는 이북에 남겨진 가족을 버려둔 채 젊은 여성과 결혼을 한다. 그는 해방 후 북한에서 집체유희로 폴카 정도의 기본스텝을 배운 기억을 되살려, 타관살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동화백화점의 꼭대기 층에 있는 카바레에 드나들곤 했는데, 그때 만난 파트너가 언표의 새엄마이자 이 집의 안주인이 되었던 것이다.
자, 여기에 묘한 반복이 있다. 1961년을 배경으로 삼은 소설에서는 1920년대 초반생 아버지, 1930년대생 새엄마, 그리고 1942년생 대학생 아들이 한 가족으로 등장한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64년에 찍은 사진에서는 1928년생 최무룡, 1940년생 김지미, 그리고 중학생 모델이 가족을 연기한다. 즉, 소설의 허구와 사진의 ‘비현실’ 속에서 동일한 형태의 가족 모델이 반복되는 것이다. 아니, 반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특정 계층의 제한적인 재생산이라고 해야 할까?
이 지점에 도달하면 작가의 사진이 재현하던 ‘비현실’의 일상이 현실과 어떤 연관성을 맺고 있는지 분명해진다. 원조 경제의 수혜자들, 즉 생필품의 수입업에 종사하면서 신흥 부자로 급부상한 이들과 그 가족의 생활상이 소비의 판타지를 가시화하는 데 밑그림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고급 2층 양옥의 가족 모델은 상상력의 엔진으로 기능하면서 풍요로운 소비 경관을 확장해 나간다. 실제로 1966년에 같은 용도로 찍은 다른 사진에는 3인 가족이 등장해 스키 별장 내부의 벽난로 앞에서 흥겹게 맥주를 마시고, 커피 광고용 사진에는 4인 가족이 중대형 승용차를 후경으로 삼아 야유회를 즐긴다.
이런 판타지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판타지가 미래를 바라보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현실 세계가 급선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전환을 암시하는 것은, 1969년에 찍은 코카콜라 카렌다용 사진이다. 수경을 머리에 쓴 채 호쾌하게 웃는 젊은 남성과 형형색색 꽃무늬 비키니를 입고선 코카콜라를 마시는 젊은 여성,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위에서 연출된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의 문화. 그것은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상황 변화를 암시하고 있다.

왼쪽 <대한전선 카렌다 1969년 9, 10월>, 오른쪽 <경남모직 카렌다 1974년 9, 10월>

예상치 못한 현실 세계의 급선회

첫째는 미국의 대표적인 다국적 법인기업인 코카콜라가 한국 시장의 진입을 시도할 정도로 국내 경제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박정희 군사 정권은 일본의 전쟁보상금 지급과 베트남전 특수라는 지정학적 조건을 활용한다. 1967년의 제2차 경제개발계획부터는 경공업 중심의 수입대체형 전략에서 탈피해 중화학 공업 중심의 수출주도형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초유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내수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이를 반영하듯이 각종 언론은 1970년대가 ‘마이카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고, 코카콜라 역시 서둘러 시장 진입을 시도했다.
이 사진이 암시하는 변화의 두 번째 측면은 무엇일까? 그것은 새로운 세대가 소비의 주역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코카콜라 사진에 등장하는 자유분방한 20대, 1940년대에 태어난 세대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김원일의 표현을 빌리자면, “생애의 첫 기억을 전쟁으로 시작”했고 한글 교과서로 미국식 민주주의를 학습했으며, 4.19혁명과 한일협정 반대 시위를 주도했던 해방 후 첫 신세대. 그들은 ‘4.19세대’나 ‘한글세대’라는 정치적 세대론의 작명법에 따라 호명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국 근대화’의 실무자이자, 대량생산된 상품의 소비자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경제 변화와 세대교체가 진행되자, 광고시장의 주도권도 개인 사진가나 디자이너에서 대기업이 출자한 대형 기획사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 모든 변화가 집약된 좀 더 근본적인 층위의 변화도 있었다. 그것은 김한용이 연출한 소비의 판타지가 물적 토대와 함께 대중적 호소력도 상실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상상력의 엔진 역할을 해주던 고급 2층 양옥은 세력을 확장하지 못한 채 점차 주변부로 밀려날 운명이었던 반면, 1940년대생의 가족들이 거주하게 될 강남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은 대중 소비의 근거지로 급부상하려는 찰나였다.
이 양자 사이에 애매하게 끼어 있는 작가의 처지는 1970년대 초중반에 찍은 기업 카렌다용 사진들에 잘 드러나 있다. 1960년대 후반의 코카콜라 광고에 등장했던 20대의 여성들은 이 사진들에서는 젊은 엄마로 변신해 있다. 아이들과 함께 화구를 들고 야외로 나가 그림을 그리거나 고삐를 쥔 채 아이들에게 승마를 가르치기도 하고, 리모컨으로 조종해 모형 비행기를 날리거나 실내에서 클래식 현악기를 연주하기도 한다. 일견 그녀들은 1970년대의 교양 주부로서, 나름 여유 있는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960년대적인 과장된 표현 양식의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린 것도 아니다. 60년대와 70년대의 불균질한 동거. 이런 상황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조종사 헬멧을 착용한 젊은 엄마가 헬기조정관을 잡고 아이들과 함께 창공으로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사진이다.
그러나 이런 과도기도 잠시 잠깐. 시대는 바야흐로 ‘약동’과 ‘전진’의 1970년대였다. 새로운 소비의 판타지가 강남 아파트와 현대 포니와 수퍼체인과 8군과 대형 교회를 상상력의 엔진으로 삼아 역사의 무대 위로 오를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한용의 1960년대 사진이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신중산층’의 시대가 바싹 눈앞에 다가온 것이었다.

새 밀레니엄 10년의 발자취

김수자 <Lotus: Zone of Zero> 2008_벨기에 브뤼셀갤러리 로툰다 설치 전경

새 밀레니엄 10년의 발자취

글 | 김재석 기자

21세기 한국미술은 해외 무대에서 어떤 발자취를 남겼을까? 2000년 이후 한국미술은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국가에서 많은 전시를 개최했다. 해외에서 열리는 한국미술의 전시는 국가 기관이나 단체가 기획한 전시, 국제 공모전, 비엔날레, 아트페어 출품 등 여러 방식이다. 해외전의 횟수가 늘었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한국미술이 해외에 알려질 기회를 많이 얻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심문섭 <Re-Presentaion> 나무, 화분, 캔버스 422×286×130cm 2007

2008년, 가장 많은 해외전 열려

2000년 이후 한국미술의 해외 진출은 매년 증가 추세를 보였다. 이는 국제 미술계의 정보 급증, 글로벌 네트워크의 확충, 해외 진출을 위한 국내외 인프라 구축, 세계 미술시장의 호황, 국가 교류전의 활성화, 아시아 미술에 대한 관심 증가 등 여러 대내외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전시 장소나 기획 양상도 점차 다변화되고 있다. 2000년 초반만 해도, 회화 사진 공예 등 장르별로 묶인 ‘한국’이 강조된 ‘한국현대미술’ 전시가 주축을 이뤘다면, 2000년 중반부터는 한국미술의 정체성이나 주제에 집중한 전시가 늘어났다. 주요 전시로는 <페이싱 코리아> <양광찬란><서울:언틸 나우><비평의 전쟁><엘라스틱 터부>전 등이 있다. 전시 장소는 상업 갤러리, 미술관, 문화원, 아트센터, 대안공간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전시 기획의 방식도 국내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개념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기관과 인력 네트워크를 형성해 기획 단계부터 긴밀하게 진행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매년 한국미술의 주요 현황과 관련 통계를 분석한 《문예연감》의 시각예술 분야 자료를 살펴보면, 한국미술 해외전의 연도별 횟수는 2000년 151건, 2001년 188건, 2002년 188건, 2003년 196건이다. 2004년 100건으로 주춤했던 한국미술의 해외 전시는, 2005년 191건, 2006년 260건, 2007년 233건으로 다시 상승했으며, 2008년에는 508건으로 급증한다. 이후 2009년 376건, 2010년 304건을 기록했다. 이러한 추이는 2000년 중반부터 뜨겁게 달아올라 2008년 정점을 찍은 세계 미술시장의 호황과 급랭의 사이클과 맞물린다.
해외전은 작품 운송과 보험 등 국내에서 전시를 치르는 것보다 많은 예산이 필요하며, 준비 절차도 까다롭다. 이런 해외전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대부분 비상업적인 목적으로 기획된 한국미술의 해외 전시도 결국 미술계에 도는 ‘금전적’  활기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은 국가간의 문화예술 교류 사업을 담당하는 기관의 미술 분야 지원 현황에서도 나타난다. 국제교류재단의 분야별 지원 규모를 살펴보면 2006년 7건, 2007년 9건을 기록하던 ‘현대미술’ 전시 사업이 2008년에는 21건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국가 지원 이외에도 중국이나 미국, 일본 등에 진출해 해외시장에서 활로를 모색한 한국의 상업 갤러리도 한국미술의 해외 진출을 위한 플랫폼 역할에 한몫 기여했다. 2005년부터 상승 곡선을 타던 미술시장의 호황에 힘입어 여러 갤러리들이 해외전시 기획팀을 꾸리거나, 중국 베이징(문 현대 아라리오 표 아트사이드 구 금산 PKM 공)과 상하이(샘터), 홍콩(카이스), 미국 뉴욕(가나아트 아라리오), 도쿄(금산 한국미술센터)에 지점을 열면서, 한국 작가들이 해외 전시를 열 기회가 그만큼 확대했다.

2000~2010 한국미술 해외전 국가별 장르별 분포도(《문예연감》참고)

미국에서 이집트까지, 매년 30여 개국에서 열려

한국미술의 해외전은 매년 한국과 해당 국가의 문화 경제 정치 관계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미술의 해외 전시는 매해 30~40개국에서 열린다. 국가별 분포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국가는 22%로 미국이다. 그 다음은 일본 20.6%, 중국 18.4%, 프랑스 10.2%, 독일 5.4%, 영국 3.4%, 이탈리아 3.1% 순이다. 국가별 분포는 지리적 접근성, 세계 미술계에서 해당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 등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지난 2002년 해외전이 가장 많이 열린 곳은 일본으로, 총 74건의 전시가 열렸다. 미국 33건, 프랑스 20건보다 2배 이상의 많은 전시가 열렸다. 2002한일월드컵을 계기로 두 국가 간의 문화 교류가 활발했기 때문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기념해 열린 <11&11 한일 현대미술 2002>전은 이동기 신미경 강홍구 노상균 전준호 등 한국 작가 11명이 일본 도쿄 긴자의 11개 화랑에서 동시에 개인전을 개최했다. 2011년 한국 미술계에 호주미술이 급작스럽게 많이 소개된 것도 그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호 우정의 해’ 50주년을 기념해 양국에서 열린 <텔미텔미>전을 열었다.
그간 비교적 국가간 왕래가 잦은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 꾸준하게 한국미술 전시가 열렸다면, 중국의 전시 빈도는 2000년 중반 이후 급격히 증가했다. 2000년 중반까지 중국에서 2000년에 7건, 2001년 14건, 2003년 16건 등 20회 안팎의 한국미술 전시가 열리다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기점으로 150건의 한국미술 전시가 집중적으로 열렸다. 2007년 46건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2009년에도 중국에서 99건의 전시가 개최돼 미국 75건, 일본 56건보다 많은 횟수를 기록했다. 이런 현상은 2003년 이후 한국의 최대 교역 국가로 부상한 중국의 비약할 만한 경제 성장은 물론, 중국미술이 국제미술에서 차지하는 위상 변화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비록 1~3차례 정도의 적은 횟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세계 곳곳에서 한국미술 전시가 열렸다. 이집트 칠레 파라과이 네팔 우루과이 콜롬비아 등 좀더 다양한 국가에서 한국미술이 소개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 수가 증가 추세에 있다. 예를 들면,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미술의 세계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한 <박하사탕>전은 칠레 산티아고현대미술관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국립미술관을 순회했다. 이 전시는 한국미술이 덜 알려진 중남미 지역에 대규모로 열린 첫 해외전 사례였지만 현지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중국과 일본 외에 베트남 싱가포르 태국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에서 열린 전시가 늘어난 것도 특징으로 꼽을 만하다. 아시아 국가와 한국의 협력 관계가 해를 거듭하며 다각화됐고, 이를 계기로 다양한 문화 행사가 추진됐기 때문이다.

2000~2010 한국미술 해외전 연도별 분포도(《문예연감》참고)

장르로는 회화 비율 가장 높아

해외전에 출품한 한국미술의 작품 장르별 분포를 살펴보면, 설치, 뉴미디어, 퍼포먼스 등의 ‘종합’ 매체가 39.4%를 차지했다. 매년 새로운 형식의 해외 전시가 활발히 전개된 주요 요인으로 원로나 중진작가에 비해 신진작가들의 해외 진출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점을 꼽을 수 있다.
또한 단일 장르를 선보이는 개인전보다는 주제에 걸맞은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의 작품을 한데 모은 단체전의 횟수가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단일 장르로는 회화가 34.8%로 가장 많았다. ‘종합’이라는 분류에 여러 장르가 합쳐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회화의 비중은 단연 압도적이다. 이밖에 공예 디자인 9%, 사진 6.4% 조각 5% 등의 분포를 보였다.

박찬경 <신도안> 싱글채널비디오 45분 2008

왼쪽부터 <엘라스틱 터부>전(오스트리아 비엔나 쿤스트할레빈, 2007) 도록
<Daily Life in Korea>전(태국 방콕 퀸즈갤러리, 2008) 도록
<Chaotic Harmony: Contemporary Korean Photoraphy>전(미국 휴스턴미술관, 2010)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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