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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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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비엔날레 시즌'을 맞아 8월 말부터 9월 내내 수많은 아트피플이 한국을 찾았다. 세계 미술의 '중심'이 한국으로 이동한 것이다. Art는 국제 심포지엄과 서울, 광주, 부산, 대구의 비엔날레, 크고 작은 전시 오프닝 현장을 누비면서 200여 명의 해외 아트피플을 만났다. 숨겨진 보석에서 세계적 수퍼스타까지, 글로벌 기업처럼 거대한 미술관의 디렉터에서 가난한 대안공간의 운영자까지, 작가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갤러리스트와 컬렉터, 전 세계 주요 미술 기관을 유랑하는 큐레이터, 유명 매체에 기고하는 평론가와 저널리스트 등 미술계를 이끌어가는 각 분야의 주역들이 총망라됐다. 그 어느 해보다 막대한 예산과 인력이 투입된 한국 아트씬의 이상 기류 속에서 그들이 본 것과 들은 것, 맛본 것은 무엇일까? 그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또한 'Mr. Sam'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 Art가 취재 현장에서 만난 해외 아트피플의 코멘트를 토대로 2014년 9월 한국 컨템포러리 아트씬의 뜨거운 열기를 전한다. 지난 한 달간 한국에서 열린 주요 전시 36개를 선정, 화보를 곁들여 전시 주제와 특징을 압축적으로 정리했다. 해외 아트피플이 각종 SNS에 실시간으로 올린 사진과 Art를 위해 특별히 보내 온 사진을 함께 공개한다.

Contents

COVER
         함경아 〈추상적 움직임/ 모리스 루이스 무제 A〉 북한 기계 자수, 세계 인터넷 기사, 중개인, 불안감, 검열, 술, 나무 프레임 245×292cm(부분) 2014 ⓒ함경아, 삼성미술관 리움 제공


SPECIAL FEATURE
         비엔날레 시즌, 한국미술 아트씬
078    ❶ Interview
         Welcome to Korea! World Art People 
124    ❷ Exhibition
         Mr. Sam의 한국미술 탐방기 / 호경윤, 김재석
         : 북촌 신(新)문화벨트, 컨템포러리 아트의 심장
         : 비엔날레의 계절, 경부선과 호남선을 누비다
         : 한국미술의 얼굴, 세대별 장르별 스펙트럼
         : KIAF에서 DMZ까지, 다이내믹 코리아!
146    ❸ B-Side of K-Art 
         왔노라! 보았노라! 즐겼노라!


FOCUS
058    신상호展: 도예 대혁명 / 류병학
         로사 로이(Rosa Loy)展: 여자는 일하면서 꿈꾼다 / 양효실
         심영철展: 엑소시즘의 정원 / 최태만
         정재훈展: 더미의 복화술 / 이용우
         최치원-풍류탄생展: 풍류 미학의 후예들 / 민병직
         양아치展: 타버린 것, 재로 남은 것 / 방혜진


ART HISTORY
152    한국 근대 판화 새 발굴, 새 조명 / 하타야마 야스유키(畑山康幸)


ART LAB
170    장소의 정신展: 샤넬, 문화를 입다 / 채연


NEW VISION
160    2014뉴비전미술평론상
         파이널리스트 인터뷰
         ❶ 권력과 중심의 가장자리에서 / 김영원+문정현
         ❷ 모순과 죄책감 사이의 예술 / 하태범+이기원
         ❸ 사소한 조정, 관계적 실천 / 손혜민+이빛나


ART ON PAGE
150     SLASH Chair Design Control Drawing / 잭슨홍


ETC.
057    EDITORIAL / 호경윤
175    ART FIELD
184    P.S
185    SUBSCRIPTION
186    CREDIT

Articles

[ART HISTORY] 한국 근대 판화, 새 발굴, 새 조명

한국 미술사의 근간을 되짚어 탄탄히 다지는 일은 장차 우리의 위상을 제고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이런 맥락에서 홍선웅이 올해 출간한 《한국 근대 판화사》는 처음으로 한국의 ‘근대 판화’만을 전문적으로 조명한 결과물이기에 마땅히 환영할 저작이다. 하지만 동아시아현대문화연구센터 대표 하타야마 야스유키(畑山康幸)는 이 저작이 구체적 근거가 결여된 기술되었다며 그 한계를 지적한다. 그는 판화사 연구 방법론, 근대 한중일의 판화 교류 등에 관한 사료들을 조목조목 제시하며 한국 근대 판화사의 조각 난 퍼즐을 맞춰 나간다. 또한 Art는 한국의 첫 판화집으로 추정되는 필자 소장의 《LE IMAGE》을 최초로 공개한다.
/ 하타야마 야스유키(畑山康幸)

한국 근대 판화, 새 발굴, 새 조명


왼쪽부터 · 최지원 〈걸인과 꽃〉_1939년 제18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 미전에서 한국인이 판화로 입선한 유일한 예다. / 미키 히로시 〈명절〉_가네무라 류사이의 《아세아시집》 겉장에 실렸다.

올해 1월 판화가 홍선웅이 저술한 《한국 근대 판화사》가 출간됐다. 홍선웅은 1980년대의 ‘민중미술 운동’을 이끌었던 한 사람으로, 2008년 일본 후츄시(府中市)미술관 등지에서 열린 〈민중의 고동—한국미술의 리얼리즘 1945~2005〉전에 판화 〈민족통일도〉와 〈해방의 노래〉를 출품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한반도의 판화에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비평을 친구이자 야마나시(山梨)학원대학 교수인 미야츠카 토시오(宮塚利雄)가 대표를 맡고 있는 미야츠카코리아연구소의 기관지 《축배(祝杯)》 제3호에 발표했고, 또 지난 6월에는 일본의 조선사연구회에서 서평을 쓰기도 했다. 본고에서는 《한국 근대 판화사》에 관해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조선 근대 판화사를 구축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그리고 그 조건이 무엇인지 실례를 들면서 제언하고자 한다.

홍선웅의 《한국 근대 판화사》 기술의 문제점


왼쪽부터 · 한국의 첫 판화집으로 추정되는 하타야마 야스유키 소장의 《LE IMAGE》 표지 / 《LE IMAGE》의 첫 번째 장에는 김정환과 이병현의 영문 이름과 함께 ‘1934. 6’이라는 사인이 들어 있다.

필자는 먼저 《한국 근대 판화사》가 남북한을 통틀어 처음으로 출간된 근대 조선의 판화사를 주제로 한 전문 서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 책의 서문에서 홍선웅은, 한국에서는 “판화 기법서나 현대 판화사 또는 근현대 판화를 작가론 중심으로 다룬 책은 출간되었지만 근대 판화만 조명한 것은 처음이라 여겨진다. 근대미술에 대해서는 1970년대부터 이경성, 이구열 등 선학의 연구가 있어 왔지만 근대 판화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중론일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이구열의 〈한국 판화예술의 흐름〉1), 홍선웅의 〈한국 근현대 판화의 흐름과 이상〉2), 김진하의 《출판미술로 본 한국 근현대 목판화 1883~2007: 나무거울 전시 도록》3), 정상곤의 《한국 현대 판화의 담론과 현장: 1958~2008》4) 등 판화를 다룬 논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근대 판화에 관한 연구가 적다는 점은 필자도 절실히 느끼고 있는 바이다.

일본의 경우, 근대에 접어들기 이전에 목판은 중요한 인쇄 수단이었다. 많은 서적이 목판으로 인쇄됐고 일본을 대표하는 에도시대의 풍속화인 우키요에도 화가(繪師), 조사(彫師), 접사(摺師)의 협동 작업으로 제작되어 널리 보급됐다. 그러나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외국의 기술과 문화를 받아들이고 급속한 근대화 정책을 취하면서 인쇄 수단도 종래의 목판 인쇄에서 활판 인쇄로 변화해 우키요에 같은 목판화도 서서히 쇠퇴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1904년 판화가이자 서양화가, 교육자였던 야마모토 카나에(山本鼎, 1882~1946)는 잡지 《묘죠(明星)》에 판화 〈어부(漁夫)〉를 발표했다. 이 판화는 이전까지의 목판과는 달리 판화가 자신이 판화를 예술로 의식하고 자화(自畵), 자각(自刻), 자접(自摺)한 작품이었다. 일본에서는 야마모토의 판화 〈어부〉를 ‘창작 판화’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1918년에는 일본창작판화협회(일본판화협회 전신)가 결성됐고, 1927년에는 제국미술원전에서 판화를 수용했으며, 1935년에는 도쿄미술학교에 임시판화교실이 설치됐다. 1920년대부터 《창작 판화와 판화를 만드는 방법》, 《판화를 만드는 사람에게》 등의 판화 기법서가 출간됐고, 《판예술(版藝術)》 등의 창작 판화 잡지가 전국 각지(부산에서도)에서 간행됐다. 히라츠카 운이치(平塚運一), 온치 코시로(恩地孝四郞), 무나카타 시코(棟方志功) 등 유명한 판화가들이 창작 판화가 확장되던 시기에 태어났다. 한편 1920년 전후부터는 에도시대 우키요에와 같은 목판화 기법을 계승한 화가, 조사, 접사의 협동 작업에 의한 ‘신(新)판화’도 등장했다. 카와세 하수이(川瀨巴水), 엘리자베스 키스 등의 신판화 작품은 서양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왼쪽부터 · 상하이에서 발견된 잡지 《중류》 1936년 11월호에 실린 리화의 판화 〈루쉰선생목각상〉(1936) / 《경성일보》 1937년 2월 19일자에 실린 《대루쉰전집》 출판광고

한국 근대 판화사의 경우에도, 창작 판화의 역사가 언제 시작됐는지, 판화가가 스스로 판화를 예술로 의식하면서 자화, 자각, 자접한 작품은 어떻게 제작됐는지, 판화가 단체들은 어떠한 활동을 전개했으며, 또 판화 전시는 어떻게 개최됐는지 등을 밝히는 것이 근대 판화사 연구의 주요 주제다. 일본의 경우, 미술관에서 근대 (창작)판화나 신판화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고, 판화 전문 미술관도 전국 각지에 있다. 또 근대 판화를 수집하는 컬렉터도 많아, 도쿄에는 판화를 판매하는 전문점도 몇 군데나 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근대 판화, 특히 해방 전에 제작된 판화를 직접 보기가 매우 어렵다. 홍선웅은 이 때문에 책의 서문에서 “판화 도판이 들어 있는 근대의 신문이나 교과서, 문학, 종교, 시사 잡지 등의 인쇄물을 수집하기 시작하였다”고 기술했다. 인쇄물이나 출판물에 남겨진 ‘판화’ 도판을 찾아 내고 이를 통해 근대 판화사를 탐구하려고 했던 것이다. 판화가이자 큐레이터인 김진하가 기획한 〈출판미술로 본 한국근현대 목판화 1883~2007: 나무거울〉전(제비울미술관 2007~2008)의 도록에도 김진하가 발굴한 ‘판화’가 게재된 잡지나 서적이 다수 수록됐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는 이러한 인쇄물에 게재된 ‘판화’ 도판에는 원화가 판화일 것으로 인정되는 도판이 있는 반면, 도저히 판화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도판도 많이 섞여 있다. 홍선웅의 저서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고, 출판물에 남겨진 도판만으로 판화라고 판단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조선에서는 언제부터 ‘창작 판화’가 시작된 것일까. 홍선웅의 저서에서 명확하게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1915년 《학지광(學之光)》 제4호 표제지에 실린 김찬영의 목판화나 1920년 《신여성(新女性)》 제2호에 실린 나혜석의 〈저것은 무엇인고〉, 《신여성》 제4호에 실린 나혜석의 〈김일엽 선생의 가정생활〉을 초기 창작판화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들이 판화라는 확실한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으며 “목판화처럼 보여…”라는 회의적 견해를 보이는 연구자도 있다.5) [이하 생략]

1) 《한국 현대판화 40년》, 현대미술관회, 1993.
2) 
〈Red Blossom: 동북아 3국 현대목판화 특별전〉, 도록, 일민미술관, 2005.
3) 제비울미술관, 2007.
4) 한국현대판화협회, 국립현대미술관, 2007.
5) 윤범모, 《화가 나혜석》, 현암사, 2005.

[SPECIAL FEATURE ❷] Mr. Sam의 한국미술 탐방기

* Art는 ‘Mr. Sam’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 해외 미술인의 시각을 빌려 2014년 9월 한국 컨템포러리 아트씬의 뜨거운 열기를 전한다. Art가 취재 현장에서 만난 해외 아트피플의 코멘트를 토대로 했다. 또한 지난 한 달간 한국에서 열린 주요 전시 36개를 선정, 화보와 함께 전시 주제와 특징을 압축적으로 정리했다.

2014년 8월 말부터 9월 말까지, 나는 한 달간 한국에 머물기로 했다. 보통 홀수 해에는 비엔날레가 베니스, 리옹, 이스탄불 등 서구권에서 열리고, 짝수 해에는 상하이, 타이베이, 요코하마 등 아시아권에 몰려 있다. 아시아 국가 중 유독 한국에 오래 있는 이유는 한 나라에서 거의 동시에 5개 이상의 비엔날레가 열리기 때문이다. 그것도 고속열차로 3시간이면 각 도시가 연결되니 이동도 매우 편리하다. 얼마 전 광주비엔날레가 ‘세계 5대 비엔날레’로 꼽혔다는 기사를 봤는데, 정말 그럴 만한지 내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가 있나. 또 다른 이유는 오랜만에 전 세계 ‘미술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세계 곳곳의 미술인이 한자리에 다 모일 기회는 작년 베니스 이후로 흔치 않았다. 또한 벌써부터 《E-flux》나 《Ocula》 같은 온라인 미술 매체에 한국의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 및 심포지엄 등 홍보기사들로 온통 ‘도배’가 되어 있는 걸 보면, 한국의 들끓는 ‘욕망’이 느껴진다. 나는 이번 한국 방문을 앞두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첫째, 왜 한국인가? 왜 한국에서 이렇게 많은 행사가 한꺼번에 열려야 하는 것일까? 둘째, 한국 컨템포러리 아트씬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셋째, 한국미술의 차세대 주역들은 누구인가? 넷째, 오늘날 글로벌 네트워크는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되는가? 근데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항공편과 숙박권을 제공해 준다는데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으니까….

내가 한국을 처음 방문했던 시점은 2000년 미디어시티서울 때다. 이후 서너 번 더 왔었기 때문에 그리 낯선 곳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왔던 게 재작년에 어느 미술상 심사로 왔으니까 2년 만이다. 그런데 인천공항부터 전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아시안게임 때문인지, 뭔가 더 북적이고 술렁대는 분위기였다. 초청 기관 측에서 공항 픽업을 나와 주지 않았다면, 숙소까지 가는 데만도 꽤 고생했을 것이다. 지난번에는 5성급 호텔에 머물렀는데, 이번에는 레지던스 호텔을 예약해 줬다. 어째 좀 섭섭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북촌과 가까운 동네라서 움직이기 편했다. 문제는 아침이었다. 씻지도 않고 조식을 먹으러 식당에 내려왔는데, 맙소사! 미술계 사람들로 북적였다. 낯익은 얼굴도 있지만 통성명을 하지 않은 사람이 많아 대충 허기를 때우고 객실로 들어와 버렸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해외 아트피플이 한국에 온 건지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들었다. 어쨌든 서울에서의 첫 날을 기분 좋게 시작하리라 마음 먹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향했다.

북촌 신(新) 문화벨트, 컨템포러리 아트의 심장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 국립현대미술관
문지방 〈신선놀음〉 2014
뉴욕현대미술관, 현대카드와 공동으로 주최했다. 서울관에서 열린 첫 건축전이다. 구름 형상의 팽창형 풍선, 안개처럼 분사되는 미스트,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나무 계단 등으로 야외에 건축물을 세웠다. 관객의 놀이와 휴식 공간으로도 활용됐다.

처음 가 보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내가 잘 찾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큰 길가에 넓은 면적을 차지한 건물뿐 아니라, 거대한 버섯 같은 하얀 조형물들 덕분에 한눈에 ‘미술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로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5: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7. 8~10. 5)에 출품된 〈신선놀음〉이라는 작품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한국을 찾는 해외 미술인 대부분의 첫 방문지는 이곳 북촌 일대가 될 것이다. 오래 전부터 국제, 학고재, 현대, 아라리오, 스케이프, PKM 같은 한국의 주요 갤러리가 모여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관이 개관하면서 이 동네는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벨트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사실 예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국립현대미술관이 너무 멀어 곤혹스러웠다. 이런 빅시즌에 요즘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한국작가 4명을 선정한 〈올해의 작가상〉전을 서울관이 아닌 과천관에서 열었다는 점은 좀 안타까워 보였다.



전준호 개인전 / 갤러리현대 신관 
〈마지막 장인〉 2012~14 
​현실과 이상, 진실과 신화의 간극에서 인간 삶의 거처를 묻는다. 해골을 깎는 장인과 아이디어를 내는 현대미술가가 등장하는 소설을 직접 쓰고, 그 내용을 형상화했다. 현대미술의 창작 관행을 터치한다. 전준호는 문경원과 함께 내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됐다.

대신 김성환 개인전: 늘 거울 생활(8. 30~11. 30)을 보러 바로 옆의 아트선재센터로 발길을 돌렸다. 그는 양혜규에 이어 최근 해외 주요 미술관에서 괄목할 만한 활동을 펼치는 한국작가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다. 마침 그날은 신작 퍼포먼스 〈수박의 아들들〉이 열렸는데, 대기표를 받고 기다리는 한국의 젊은 관객을 보면서 작가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퍼포먼스는 김성환과 어린이 퍼포머, 작가의 오랜 파트너인 데이비드 마이클 디그레고리오, 음악가 권병준이 함께 했다. 6년 동안 김성환과 전시를 준비해 온 큐레이터 김선정은 한국미술을 국제 무대에 알리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로 해외에 익히 알려져 있다. 그가 운영하는 SAMUSO의 자료실은 나처럼 한국의 아트씬을 단시간에 파악하려는 외국인에게는 더 없이 좋은 장소다. SAMUSO는 올해 ‘비엔날레 시즌’을 맞아 영문 리플렛 《Hop on Art》를 발간해, 아트선재센터뿐 아니라 최근 열린 주요 전시를 소개했다. 이 작은 종이 조각은 분명 서울을 찾는 해외 아트피플을 의식하고 제작했을 것이다.



김성환 개인전 / 아트선재센터 
〈수박의 아들들〉 2014 
​비디오, 드로잉, 설치, 퍼포먼스 등을 한 공간에서 유기적으로 구성했다. 한국사와 개인사가 신화와 엮여 실제와 꿈같은 가상이 혼재하는 ‘시각적 문학’의 장을 펼쳤다. 2012년 런던 테이트모던의 ‘탱크(The Tanks)’의 첫 커미션 작가로 선정돼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 밖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주요 미술관들 역시 이번 시즌을 겨냥해 각기 다른 비전을 내세운 기획전을 선보였다. 규모로 치면 삼성미술관 리움의 교감(8. 19~12. 21)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겠다. 올해로 개관 10주년을 맞아, 3개로 나뉜 미술관 전관에 걸친 대형 전시를 선보여 어깨에 제대로 힘을 줬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 전통미술품부터 이불, 서도호, 이수경, 최정화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비롯해 리암 길릭, 리크리트 티라바닛, 로니 혼 등 국제적인 수퍼스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게다가 모든 출품작이 소장품이라니, 웬만한 세계적 미술관과 겨루어도 손색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세계 어느 곳에서든 만날 수 있는 작가의 작품은 외국인인 나로서는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한국만의 ‘유니크함’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지 않겠는가. 오히려 한국의 전통 도자기 ‘청자’와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작가 바이런 킴의 미니멀한 옥색 그림을 병치시킨 장면이 좋았다. [이하 생략]



교감 / 삼성미술관 리움 
올라퍼 엘리아슨 〈중력의 계단〉 2014
​처음으로 미술관 전체를 하나의 전시로 엮었다. 국보급 고미술품부터 세계적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까지 총 230여 점을 선보였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작품과 관객 사이의 교감 등 3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이 신작은 거울과 LED를 이용해 공간을 우주적 규모로 확장한다.


스펙트럼-스펙트럼 / 삼성미술관 플라토 
지니서 〈Rivers〉 2014
​아트스펙트럼의 회고전. 지니서는 ‘작가-작품-관객’이라는 세 층위의 공간적 관계성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유리로 둘러싸인 전시장의 두 기둥을 가죽 끈으로 감싸 서로 이었다. 매듭을 틀듯이 공간을 째는 팽팽한 긴장감과 역동적인 에너지가 압권이다.


최정화 개인전 / 문화역서울284 
〈꽃의 뼈〉 2014
​미술, 디자인, 공예, 인테리어, 공공미술, 시각문화 등의 전방위 활동가 최정화의 융복합 전시. 그의 전매특허인 플라스틱 오브제 조형물과 갖가지 진귀한 작가의 컬렉션으로 화려한 총천연색 향연을 펼쳤다. 범속한 꽃에서 장엄한 종교적 성화(聖花)까지 다양한 꽃이 피어났다.

[SPECIAL FEATURE ❶] Welcome to Korea! World Art People

‘비엔날레 시즌’을 맞아 8월 말부터 9월 내내 수많은 아트피플이 한국을 찾았다. 세계 미술의 ‘중심’이 한국으로 이동한 것이다. Art는 국제 심포지엄과 서울, 광주, 부산, 대구의 비엔날레, 크고 작은 전시 오프닝 현장을 누비면서 200여 명의 해외 아트피플을 만났다. 숨겨진 보석에서 세계적 수퍼스타까지, 글로벌 기업처럼 거대한 미술관의 디렉터에서 가난한 대안공간의 운영자까지, 작가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갤러리스트와 컬렉터, 전 세계 주요 미술 기관을 유랑하는 큐레이터, 유명 매체에 기고하는 평론가와 저널리스트 등 미술계를 이끌어가는 각 분야의 주역들이 총망라됐다. 그들은 서로 “Hi!”를 연발하며 국제적 인맥을 넓히기 바빴고, 가까운 미래에 진행할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또한 한국의 각종 전시를 관람하고, 갤러리와 국공립 미술 기관을 방문하거나, 한국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의도치 않게 한국은 한 달 넘게 글로벌 아트의 ‘소셜라이징 플랫폼’ 역할을 맡게 됐다. 그 어느 해보다 막대한 예산과 인력이 투입된 한국 아트씬의 이상 기류 속에서 그들이 본 것과 들은 것, 맛본 것은 무엇일까? 불시착한 외계인처럼 여전히 낯선 그들을 소개한다. 반갑습니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 호경윤(H), 김재석(K), 채연(C), 탁영준(T)
/ 사진 권현정

Liam Gillick, Rirkrit Tiravanija, Ernesto Neto ‘관계미학’의 3인방


왼쪽부터 · 리암 길릭, 리크리트 티라바닛, 에르네스토 네토

리암 길릭(b.1964 영국), 리크리트 티라바닛(b.1961 태국), 에르네스토 네토(b.1964 브라질)가 내한했다. 삼성미술관 리움의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열린 <교감>전의 부대행사로 마련된 공개 강연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주제는 ‘관계의 창조’. 브라질을 대표하는 ‘천과 향의 전도사’ 에르네스토 네토가 강연의 첫 주자로 나섰다. <교감>전에 출품된 작품은 거대한 유기체적 구조물에 색색의 나일론 천을 뒤덮고 코끝을 자극하는 향신료를 배치했다. 관객은 괴생명체의 자궁처럼 연출된 작품의 안과 밖을 오가며 오감으로 작품을 경험한다. “숨 쉬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는 네토는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감사합니다’라는 한국어를 합장하는 스님처럼 길게 한 자 한 자 발음하면서 강연을 시작한 그는 노래와 랩 중간 사이의 리듬과 빠르기로, 천과 향신료를 이용해 제작한 작품들을 소개했다. ‘요리하는 작가’ 리크리트 티라바닛은 작업이 어떻게 현재 지점에 도달했는가를 차분히 설명했다. 그의 화두는 작가나 작품이 어떤 공간에 들어가 관객과 서로 상호작용하며 형성되는 새로운 시간 개념. 전시장에서 요리를 해 관객과 나눠 먹거나, 친구의 아파트를 그대로 재현하면서 사람들이 점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전시 기간 동안 그의 나선형 목조 공연장 <데모 스테이션 No. 5>에서는 마임, 패션쇼, 바이올린 연주, 플라멩고, 퓨전 판소리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질 계획이다. 익숙한 공간을 낯설고 새로운 플랫폼으로 전유하는 리암 길릭은 리움의 카페에 색색의 모듈식 오브제 <일련이 의도된 전개>를 설치했다. 벽 장식, 계산대의 차양, 이동식 파티션으로 기능한다. 그의 작품은 ‘미술가가 사람들이 운영하는 사회적 구조와 시스템에 들어가면 어떤 결과가 만들어질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강연 말미에서 그는 오늘날 미술관에서 관객의 개념은 재정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한 관객이 ‘당신은 작가인가 관객인가?’라는 공통 질문을 던졌다. 작품을 통해 관객과의 소통을 탐구했던 세 작가의 답변은 미묘하게 달랐다. “나는 결코 관객이 아니다”(리암 길릭), “나와 관객과의 교감은 어렵다”(에르네스토 네토), “나는 장소에 따라 관객이다”(리크리트 티라바닛) / K

Camille Henrot ‘핫’한 작가의 모델


프랑스 작가 카미유 앙로

카미유 앙로(b.1978 프랑스)는 최근 국제무대에서 가장 ‘핫’한 작가로 급부상했다. 2010년 마르셀뒤샹상 후보에 올랐고, 2013년 워싱턴 스미소니언협회의 작가연구초청프로그램에 초대됐으며, 여기서 제작한 비디오 작품 〈거대한 피로〉로 2013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올해는 뉴욕 뉴뮤지엄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2014휴고보스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광주비엔날레에 〈증강 오브제〉를 출품했다. 이베이(eBay)에서 구매한 물건에 점토와 타르를 덧입혀 획일적인 대량생산품에 유일무이한 성격을 부여했다. 그는 인류학이 직면한 풀리지 않는 문제나 과학적 방법론이 유발하는 과오 등을 탐구한다. 대표작 〈거대한 피로〉에서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인류의 지식 및 사물의 양상을 훑어보면서 13분 동안 세계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제시했다. 스미소니언 데이터베이스, 파리 자연사박물관, 구글 등에서 수집한 자료와 스튜디오에서 직접 촬영한 결과물이 뒤섞인 이 영상은 컴퓨터 모니터 상에 여러 창으로 중첩되며 빠른 속도로 나타나고 사라진다. 작가의 연인인 조아킴이 리드미컬한 시를 낭송하는 듯한 사운드를 덧입혔다. / T

Chiharu Shiota 베니스 일본관 작가


일본 작가 치하루 시오타

치하루 시오타(b.1972 일본)는 부산비엔날레에 200여개의 여행 가방이 공중에 매달려 부유하는 장소특정적 설치 작업 <집적-방향을 찾아서>를 발표했다. 오브제의 집적과 불연속성을 통해 디아스포라 주체의 불안정성과 무장소성을 시각화했다. 1996년부터 베를린에서 거주하며 본인의 디아스포라 경험을 형상화한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제자로 트레이닝을 받았다. 모스크바비엔날레(2009), 베니스비엔날레(2011), 키예프비엔날레(2012)에 참여했고, 한국에서는 광주비엔날레(2006)와 서울시립미술관의 <시티넷 아시아 2011>전에 참여했다. 최근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 대표 작가로 선정됐다. / C

Germano Celant 프라다재단 관장


이탈리아 큐레이터 제르마노 첼란트

‘아르테포베라’를 이끈 이론가이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큐레이터 제르마노 첼란트(b.1940 이탈리아). 현재는 프라다재단의 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지난해 베니스 프라다미술관의 개관전으로 과거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하랄트 제만의 <태도가 형식이 될 때>전을 리메이크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자리를 옮기는 도중, 명함을 건네는 해외 미술인들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하고 수차례나 이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전시 현장을 뛰어 다니는 노장 큐레이터로서 리움-광주비엔날레의 심포지엄 <확장하는 예술 경험>에서 ‘비엔날레의 확장과 현대미술의 진화’를 주제로 토론을 진행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 전시에 대해 “정말 터전이 불타려면 원점으로 돌아가 미술이 자살을 빼고 할 수 있는 모든 대안은 다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현대미술 수석큐레이터(1989~2008), 베니스비엔날레(1997) 예술감독 등을 역임했으며, 2013년 세계독립큐레이터협회(ICI)로부터 ‘에그니스 건 전시기획상’을 받았다. / H 

 

 

 

[FOCUS] 신상호展

도예 대혁명

/ 류 병 학

신상호展 8. 29~9. 28 금호미술관



<Surface and beyond> 세라믹, 철골 115×3.5×200cm 2014

신상호 개인전 타이틀은 <사물의 추이(Vicissitude of things)>이다. ‘vicissitude’라는 단어는 글자 그대로 프랑스어와 포르투갈어, 그리고 영어로도 사용된다. 그런데 뜻은 조금씩 다르다. 프랑스어로는 변천, 변동 그리고 (인생의) 부침, 성쇠, (특히) 불행 또한 (옛)변화, 불안정, 연속, 계기 등의 뜻으로 사용된다. 포르투갈어로는 (특히 환경, 경험, 세상의) 변동, 변천, 천이(遷移), 영고(榮枯), 성쇠, 전변무상(轉變無常), (인생의) 부침(浮沈) 그리고 우연한 일, 생각치 않은 재난 또한 순환, 교체(交替) 등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우여곡절을 뜻한다. 금호미술관 신상호 개인전의 타이틀에서 사용된 vicissitude는 ‘추이(推移)’로 번역되어 있다. 추이는 일이나 형편(形便)이 차차 옮아가거나 변해 감을 의미한다. 이번 전시는 신상호의 작품세계가 어떻게 차차 옮아가거나 변해 가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 전시로 적어도 필자에게 보였다. 한마디로 신상호의 우여곡절(迂餘曲折)을 보여 주는 전시라고 말이다. 자, 그럼 금호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서 신상호의 여러 가지로 뒤얽힌 복잡(複雜)한 사정(事情)이나 변화(變化)를 살펴보도록 하자.

금호미술관 지하 전시실에는 중국의 문화대혁명 (文化大革命)을 기념하는 붉은 태피스트리를 배경으로 명대의 도자기들, 아프리카 부족의 무기와 장신구 및 가재도구들이 연출되어 있다. 신상호는 흔히 ‘현대도예의 선구자’로 불린다. 그러나 그가 현대도예의 선구자로 불리기까지는 ‘서자’의 설움이 있었다. 신상호는 1960년대 중반 홍익대 공예과를 다녔다. 당시만 하더라도 (신상호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자면) “미술계에서 도예는 ‘서자 같은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도예는 (순수)미술계의 천대는 두말할 것도 없이 공예과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0년 후 그는 홍익대 교수가 되어 공예과에 속했던 도예를 도예과로 독립시켰다. 따라서 그의 ‘현대판 분청사기’ 작품은 다름 아닌 서자의 설움을 극복하기 위해 오히려 서자의 설움을 밑거름 삼아 치열하게 작업하여 나타난 그만의 브랜드였다.

신상호의 우여곡절


<WOW>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4_홍익대 교수 및 미대 학장을 지낸 뒤 2005년 퇴임한 신상호는 이번 개인전에서 미대 교육의 폐단을 지적하는 신작을 발표했다. ‘WOW’는 홍대가 자리 잡은 와우(臥牛)산에서 따왔다.

신상호는 일명 ‘현대판 분청사기’에 대해 당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새로운 것을 탐구하려는 많은 도예가들은 무엇보다 전통적인 배경을 중요시하면서 시대성에 맞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 분청사기는 조선 초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서민적인 성격을 갖는 대표적인 한국 고유의 전통 도자로 16세기 말 임진왜란 이후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신상호는 잃어버린 ‘가문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분청사기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다. 옛 분청사기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무엇보다 ‘현실 인식’을 관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실 인식이 부재하는 분청사기의 재구성은 일종의 ‘앙꼬 없는 찐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현대판 분청사기에서 옛 분청사기에 대한 현실 인식을 관통한 탁월한 분석력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기념하는 붉은 태피스트리를 배경으로 놓인 명대의 도자기들은 다름아닌 신상호의 ‘현대판 분청사기’를 암시하는 것이란 말인가?

그렇다! 신상호의 ‘현대판 분청사기’는 그의 ‘도예대혁명’의 시작인 셈이다. 신상호의 2차 ‘도예대혁명’는 1987년 서울신문사 서울갤러리에서 열린 <추상도조>전과 아프리카를 주제로 작업해 1991년 조선일보미술관 <분청사기>전에 출품한 ‘헤드(Head)’ 시리즈 그리고 2002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아프리카의 꿈>에 전시된 그의 도조(陶雕라기보다 차라리 陶彫)라고 필자는 본다. 도예와 조각이 접목된 그의 ‘도조’는 금호미술관의 지하 전시실에 연출된 아프리카 부족의 무기와 장신구 및 가재도구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참으로 긴 시간 수집을 해 왔다. 단순 취미로 시작했으나 수집품들은 어느새 작업 영감의 원천이 되고 아예 작업의 일부가 됐다. 나의 수집 행위는 진귀하거나 시각적 아름다움을 좇는 데 있다기보다 하나하나에 녹아들어 있는 역사와 시간을 중요시한다.” 그는 “물건 하나가 개인이나 사회의 역사, 사건, 산업, 시대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상호의 생활 속 도조(陶彫)


신상호 <사물의 추이> 지하 전시장 전경_도자 작품 외에도 작가가 지난 50여년 간 수집한 오브제들을 선보였다. 창틀, 수도펌프, 아프리카 원주민의 무기 및 장신구, 중국 명대의 도자기  등 청계천과 해외 곳곳의 벼룩시장에서 구한 것들이다. 작가가 수집한 사물이 도자와 결합해 새로운 연상을 도출해 내는 추이를 살펴볼 수 있다.

금호미술관 2층 전시장에는 일명 <서피스 앤드 비욘드(Surface and beyond)> 시리즈가 전시되어 있다. 그것은 유럽 어느 거리에서 떼어 낸 듯 보이는 낡은 철제 창틀을 프레임 삼아 도자기 패널을 채색해 끼워 넣은 작품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도자기 패널’은 신상호의 ‘불의 회화(Fired painting)’를 뜻한다. 일명 ‘구운 회화’는 타일보다 큰 도자기 판에 유약으로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굽듯 고온에서 구워 내는 도자 회화를 뜻한다. 따라서 ‘구운 회화’는 단지 실내공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실외공간에도 설치 가능하다. 한마디로 ‘구운 회화’는 건축과 어울리는 회화라고 할 수 있겠다. 신상호 왈, “실외로 나갈 수 있는 그림은 없어요. 그림은 최대 50년입니다. 보관도 애로 사항이죠. 하지만 도자기는 천년이 가도 변하지 않아요.”

신상호는 <서피스 앤드 비욘드> 시리즈를 ‘구운 그림’을 업그레이드한 작품으로 본다. 왜냐하면 한지에 먹이 스며들고 번지는 수묵담채를 <서피스 앤드 비욘드> 시리즈에 담았기 때문이다. 그는 “흙판에 유약으로 그림을 그리고 불 속에 넣으면 자화되는데, 어떤 포인트 지점에서 녹아서 물처럼 된다. 그때는 자기 마음대로 흘러서 서로 섞인다.”며 “흙에서 한지로 보여줄 수 있는 수묵담채, 동양의 사상을 풍겨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서피스 앤드 비욘드> 시리즈를 “내가 그리지만 스며들어 가는 것은 불이 결정하므로 결국, 불이 그린 것”이라고 진술한다. 그는 <서피스 앤드 비욘드> 시리즈 작업이 싫증 나지 않아 좋다고 했다. “깊고 맑은 색을 내는 고려청자의 비색은 우러나오는 색이다. 우리가 표면에 일부러 색을 칠해서 나오는 색이 아니어서 언제 봐도 지루하지 않다.”



<Grid> 세라믹, 철골, LED 조명 200×85×210cm 2011

물론 신상호의 신작 <서피스 앤드 비욘드> 시리즈의 특징은 한지의 특성을 담았다는 점에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신상호는 “내 전시를 계기로 도예의 전통이 그릇을 벗어나 순수미술로 영역을 넓힐 수 있길 바란다”고 말한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신상호의 <서피스 앤드 비욘드> 시리즈의 특징은 ‘창문틀’을 이용한다는 점에 있다. 신상호는 이화익갤러리 개인전에서 갤러리 외벽에 창문틀 작업 3점을 설치해 마치 실제 건물의 창문처럼 보이게 했다. 따라서 ‘서피스 앤드 비욘드’ 시리즈는 ‘순수미술’로 향한다기보다 오히려 도예의 고향인 ‘생활미술’로 향한다고 할 수 있겠다.

신상호는 생활도자였던 분청사기를 현대판 분청사기로 재해석한 이후 도조 작업을 통해 회화와 건축 등으로 작품세계를 확장하면서 다시 생활미술로 돌아왔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가 컴백한 생활미술은 옛 생활미술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의 <서피스 앤드 비욘드> 시리즈는 동시대성을 담은 생활미술(생활도조)이라는 말이다. 그의 현대판 생활도조는 두말할 것도 없이 지나가면서 필자가 중얼거렸듯이 전통적인 생활도자를 관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는 우여곡절 끝에 현대판 생활도자의 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그의 현대판 생활도자가 (신상호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자면) “흙을 다루는 사람의 새로운 돌파구가 됐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전시장 3층을 방문하면 ‘대한민국 미술 교육 안녕하십니까’라는 문구를 만난다. 전시장 센터에는 홍대 미대에 있던 의자들이 뒤엉켜 쌓아 올려져 있고, 그 좌우에는 (홍익대) 미대의 11개 학과를 의미하는 비석 11개를 세워 놓았다. 그리고 ‘미술대학교 총동문회 구출작전함’이라고 쓰여진 나무상자도 ‘미술교육 발전을 위한 설문’지와 함께 전시되어 있다. 따라서 3층 전시장 설치 작품은 미술대학 교육의 문제점, 특히 신상호가 30년 가까이 몸을 담았던 모교의 교육 문제를 직설적으로 비판한 셈이다. 물론 신상호 자신도 미술 교육의 문제에 대해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작가의 자기 반성적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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