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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Art in Culture

20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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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제10회 광주비엔날레(9.5~11.9)가 개막한다. 1995년 한국의 첫 국제 비엔날레로 출범한 후 어느덧 20년이 지났다. 스무 살 건장한 '성인'이 된 광주비엔날레는 아시아 탑, 세계 5대 비엔날레로 우뚝 섰다. 지금, 광주비엔날레는 '세계'의 비엔날레다. Art가 광주비엔날레 20년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대형 특집기사를 꾸미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광주비엔날레는 21세기 한국 미술계를 움직이는 중요한 제도이다. 창작은 물론 전시 기획, 미술의 국제화, 문화행정 시스템 등과 같은 미술 환경에 폭넓은 영향을 끼쳐 왔다. 광주비엔날레 창설 이후 한국에 크고 작은 비엔날레가 10여 개나 생겨났으며, 아시아에서도 50여 개의 비엔날레가 뒤를 잇고 있다. 광주비엔날레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초' '최대' '최고'의 비엔날레로 국제적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특히 오늘날의 비엔날레가 다원주의와 혼종성 등 컨템포러리 아트의 '살아 있는' 담론을 이끌고, 글로벌 아트 네트워크의 거점으로 부상한 점을 상기하면 광주비엔날레가 갖는 문화적 의미는 미술의 동시대성으로 뻗어나간다. 광주비엔날레는 더 이상 '광주'의 비엔날레가 아니다. Art는 광주비엔날레의 20년의 역사, 그 씨줄과 날줄을 분석한다. 먼저 제1회전시부터 역대 출품작과 올해 제10회 전시의 주요 작품을 묶어 '하이라이트 지면 전시'를 꾸몄다. 각 전시마다 주제와 구성, 평가 등을 요약하고, 전시 주제에 부합하는 작품을 선별했다. 한국의 전시 기획의 변천은 물론이고 컨템포러리 아트의 역동적인 지형 등 시간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다. 또한 광주비엔날레 20년의 산증인 이용우 대표이사와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비엔날레 설립 배경, 상임부이사장으로 부임 이후 펼쳤던 시스템 정비와 사업 전략, 비엔날레의 경쟁력과 생존, 그리고 비엔날레와 살아 온 라이프 스토리까지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자리다. 또한 광주비엔날레의 발자취를 조사 정리한 아카이브를 실었다. 매회 이사회, 감독 및 작가 선정, 작품 설치, 해외 홍보, 심포지엄 등 비엔날레의 막전막후, 그밖의 재단에서 벌이는 다양한 부대사업을 연보로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광주비엔날레를 보다 입체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비엔날레에서 활약했던 미술계 인사와 '숫자로 본 광주비엔날레'를 덧붙였다.

Contents

COVER
         마류밍(Ma Liuming) 〈No.28〉 캔버스에 유채 200x150cm 2008 학고재갤러리 제공 ⓒ Ma Liuming


SPECIAL FEATURE    
         光州 20年 1995-2014 
         Gwangju Biennale

100    ❶ Pictorial
         다시 보는 광주비엔날레, 제1회부터 제10회까지   
134    ❷ Interview
          ‘비엔날레 타짜’의 광주 이야기 / 호경윤
144    ❸ Chronology 
         광주 오디세이 / 탁영준


FOCUS

058    올해의 작가상2014展: 경계 위의 게임 / 이선영
         홍승혜展: 픽셀의 수사학 / 김해주
         스펙트럼-스펙트럼展: ‘동시대성’이라는 스펙트럼 / 정연심
         김옥선展: 나무의 관상 / 김계원
         이탈리아 젊은 작가展: 모순과 역동의 ‘청년 의식’ / 양효실
         새벽질주展, 김병국展, 김종범展: 가장자리를 향하여 / 안소연


ARTIST

078    마류밍(Ma Liuming)
         : 부유하는 주체, 저항의 예술 / 김복기
088    김종구
         : 쇳가루 산수화, ‘짜름’과 ‘흩음’의 미학 / 김종길


MEMORIAL

156    온 카와라(On Kawara)
         
: 날짜 여행자 / 김승덕 & 프랑크 고트로(Franck Gautherot)


ART LAB

166    박흥용: 만화가, 생명의 메신저 / 채연


NEW VISION

171    2014뉴비전미술평론상
         ❶ 심사평 / 유진상, 정연심, 임근준
         ❷ 파이널리스트 선정
         김구림展 / 문정현 
         생명수업: 세상에게展 / 이빛나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展 / 이기원


ART ON PAGE

096    오늘날의 부침개 / 구민자


ETC.

057    EDITORIAL / 김복기
181    ART FIELD
196    P.S
197    SUBSCRIPTION
198    CREDIT

Articles

[ABROAD] ​Measuring Inventing Temperature展

‘엑스’를 발명하기
Measuring Inventing Temperature展 6. 25~8. 2 런던 주영한국문화원

/ 김 예 란(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남화연 〈Dimension Variable〉 벽에 드로잉 2013

과학은 신화를 진실로 세운다. 그렇지만 예술은 과학을 신화로 만든다. 비판력은 과학의 허구성을 해체한다. 그리고 상상력은 예술적 창조성을 출산한다. 그래서 엑스(X)는 비판의 활개이고 발명은 상상력의 결정체다.런던에 위치한 한국문화원(Korean Cultural Centre UK)의 KCC Lab이 기획한 <Measuring Inventing Temperature>는 비판과 발명의 접경을 실험하고 그들 간의 월경을 초래한다. 과학철학자 장하석의 ‘온도의 발명’ 테제를 원용한 이 전시는 서구 과학적 이성의 위업인 온도 ‘측정’에 과감하게 엑스를 그으면서 온도 ‘발명’의 미학을 상상한다.



〈Temperature: Existencè, Time and Space〉 비디오 설치 2014

그 전략 중 하나는 과학이라는 장치를 해체하며 ‘발명적 비판력’의 급진성을 해방하는 것이다. 지극히 정교하며 때로는 강박적일 정도로 집요한 탐구력으로 과학의 내부를 해부하고, 그 짐짓-보편적인 진실이라는 우산 안에 은폐되어 있던 다기한 잠재들을 발산한다. 니콜라우스 갠스테레의 <Drawing a Hypothesis, Table of Contents>(2012)는 다양한 미디엄들을 조합하여, 다면적인(따라서 절대로 하나로 확정 불가능한) 과학적 가설의 모호성이란 본질을 표출한다. 이승준의 비디오 작품 <212 drops of water>(2014)는 물방울과 사물의 밀통에서, 상태와 운동의 질서가 훼손되고 광채와 증기가 발작적으로 혼합되어 마침내 신생의 에너지로 생성되는 미적 표면에 주목한다. 박주연의 <헬싱키/암스테르담>(2009~11)은 실재적인 감각역 너머에서 발생하는 빛, 공기, 물의 세계에 시선을 던진다. 정상화된 지각의 구조를 역으로 분할하고 대각으로 교차시켜 만든 지극한 침묵의 순간, 특이한 에테르들이 생경의 풍경을 내파한다.



노경민 〈Continuation of Science by Other Means〉 2채널 비디오 2014 

다른 하나의 전략은 댄스다. 댄스는, 내게 주어진, 내가 던져진 세계를, 안고 휘젓고 뒤집으면서 새로운 시간과 공간의 리듬으로 창출하는 육체적 수행이다. 댄스는 ‘비판적 발명력’의 창조성을 실천한다. 김수희의 <Hybrid Words>(2014)는 춤추는 문자들의 축제를 연출한다. 디지털 입자들의 입체적인 율동은 인간 정신이 탄생-파열-부활하는 생명적 흐름을 상징하는 듯하다. 남화연의 <Dimension Variable>(2013) 연작은 비디오 작품과 벽 드로잉이 결합된 일종의 스크린-흔적 퍼포먼스다. 궁리하고 항해하는 몸의 행위가 직선적인 공간 구조를 휘고 접고 펼치며 새로운 운동적 무대로 갱신해 낸다. 역시 남화연의 작품인 <The Botany of Desire>(2014)는 붕괴되는 육성의 사운드와 터질 듯 팽배하는 튤립의 관능적인 이미지를 위태롭게 병치한다. 이 격렬하고 다감각적인 충돌은 절정과 파국을 대립시키는 정서적 규범에 도전하면서 안정과 위기에 대한 동시적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종국에 이 모든 무/질서는 순전한 욕망으로 개화할 것이다. 길초실의 <Ducks and Drakes>(2014)는 발랄한 푸른 풍선들과 동전의 소박한 금속성이 어우러져 여러 층위의 공중 평면들을 구성한다. 관객의 숨결과 몸짓에 자연스레 표류하는 이 사물들은, 참방참방하는 물 위의 돌멩이처럼, 상호작용성이라는 관계적 존재 원리를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미학으로 체현한다. 오혜린의 <Temperature>(2014)는 연보라빛의 감미로운 합성 피부의 막과 겹들을 몸놀림으로 펼쳐 내리는 작품이다. 막의 열림과 닫힘, 공기의 퍼짐, 몸의 헤쳐나감. 이 섬세한 조우의 결들에서 인간과 사물과 환경이 교호하는 유혹의 무대가 드러난다. 존재와 환경(milieu)은 상호 교환적인 내접과 관통 속에서 각자의 개체성을 형성하고 변혁한다. 혹은 그 역이다. 나아가 질베르 시몽동이 강조하듯이, 인간은 그러한 생성과 변화를 안에 있을 뿐 아니라 그를 향한 정념과 의지를 발휘한다는 점에서 고유한 존재다. <Measuring Inventing Temperature>전은 비판적이고 발명적인 인간이 지닌, 도저한 정념과 의지를 진지하게 통찰하고 제안하는 매우 탐구적인 기획이다.

[MEMORIAL] 온 카와라(On Kawara), 날짜 여행자

‘은둔의 작가’ 온 카와라가 올해 7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1950년대 초 일본에서 작가 활동을 시작한 그는 뉴욕에서 <오늘> 연작을 발표하며 개념미술의 선구자로 세계 미술사에 이름을 새겼다. 2015년 2월에는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 <침묵>이 개최될 예정이다. 자고, 일어나고, 읽고, 여행하고, 사람을 만나는 등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를 회화, 드로잉, 엽서, 지도, 책, 신문, 레코딩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수집/보관하며 시간과 장소 그리고 의식으로 확장하는 새로운 예술 방법론을 탄생시킨 위대한 발명가. 온 카와라가 평생에 걸쳐 세상을 향해 송출한 “나는 아직 살아 있다”는 간절한 메시지의 수신자는 이 세상에 남겨진 우리 모두다. 그가 남긴 날짜 여행의 흔적을 하나둘셋 따라가 보자. / 김승덕 & 프랑크 고트로

온 카와라는 29,784일 또는 29,771일을 살았다



<JAN. 4, 1966> 캔버스에 아크릴릭 20.5×25.5cm 1966_온 카와라의 <오늘> 연작은 회화와 작가가 선택한 그 날의 신문이 박스에 함께 동봉되는 형식으로 제작됐다.

한 아티스트와 30년 이상 함께 일하다 보면 어떤 특권과 책임이 생긴다. 작가와의 개인적인 기억은 물론 그에 관한 전설과 작품을 적절한 방법으로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에겐 온 카와라가 그렇다. 그는 자신이 살던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실 우리는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자취를 감췄고, 무(無)로 사라졌을 뿐이다. 그는 살아서 작품에 관해 인터뷰한 적도 없고, 단 한 장의 작가 사진이 출판되는 것조차 금기시했다. 그의 죽음이 발표됐을 때, 언론에서는 약간의 혼란이 있었다. 그는 카탈로그와 모든 인쇄물에 자신의 생일을 표기하는 것을 거부했고, 대신 자신이 살아온 날수를 적어 두었다. 최소한 생일 날짜 2개가 부고 기사에 등장했다.

햇수든 월수든 일수든, 숫자를 세는 일은 카와라가 세상을 대면하며 그의 위치를 역사와 그 지형도 안에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시간과 장소는 인간으로서는 물론 예술가로서의 존재를 구성하는 두 축이다. 온 카와라의 말이 사실이라면, <백 년의 달력(100 Years Calendar)>이라는 작품을 통해 그가 생존했던 날짜를 계산할 수 있다. 그는 한 장의 종이가 백년(1900~2000)을 나타내는 격자와 숫자를 인쇄해 3색 모촉 마커로 점을 표기했다. 노란 점은 작가의 개인적인 날들을, 녹색 점은 ‘데이트 페인팅(date painting, 보통 ‘일일 회화’‘날짜 회화’ 등으로 번역되나, 이 글에서는 고유명사처럼 한글로 표기)’을 제작한 날을, 붉은 점은 회화를 2점 이상 제작한 날을 의미한다. 첫 노란 점을 자세히 살펴보면 1932년 12월 24일에 표시돼 있다. 그러나 각 달은 31일이다.

‘데이트 페인팅’, 현대미술의 정원에 던져진 하얀 돌


<백만 년(미래)>의 세부 14.4×10.5cm 1980_<과거>와 <미래>는 각 10권의 책 형태로 구성됐다.

온 카와라는 ‘온 카와하라(河原 溫)’라는 이름으로 아이치 현에서 태어났다. 1950년대 전후 일본에서 작가로서 크게 성공했던 그의 첫 전시는 1952년 도쿄에서 열렸다. 하지만 이 시기의 작품이 해외에 알려지기까지 여러 해가 흘렀다. <욕실(Bathroom)> <창고 이벤트(Events in a warehouse)> <시카멘(Shikamen, 죽음의 마스크)>이 1952년부터 1956년 사이에 일본에서 제작한 세 주요 연작이다. 각 연작은 제한된 수의 드로잉으로 대개 하나의 완전한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드로잉과 유사한 문제와 주제를 지닌 화려하게 채색된 유화 캔버스 작품도 제작했다. 이 작품은 내러티브나 그림 속의 시점에 맞춰 캔버스가 변형됐다. 일본에서 발표한 아주 독창적인 작품에 관한 자료와 평론은 많지 않다. 작품 속 인물 형상은 극적이며 배경은 매우 건축적이다. 드로잉 연작 <시카멘>은 1995년에서야 나고야에서 30점의 석판화와 함께 전시됐다. 그는 검정 연필로 죽은 사람들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초기 작품에 나타난 상처 입은 전후 일본이라는 실존적인 레퍼런스는 그에게 미술계에서의 큰 인정과 성공을 가져다 줬다. 물론 온 카와라는 당시 그의 작품에 관한 단면적인 해석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듯했고, 이 시기의 작품에 관해 언급하기도 꺼리는 것 같았다.



<백만 년> 2002_오쿠이 엔위저가 감독을 맡았던 카셀도쿠멘타11에서 남녀 참가자가 온 카와라의 작품을 낭독하는 모습

1960년대 미국에서 ‘개념적(conceptual)’이라고 알려진 미술 유형을 얘기하고 분석할 때, ‘삶과 죽음’은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주제가 아니다. 1960년대 중반부터 뉴욕에서 역사적으로 왕성히 활동했던 일련의 작가들에게 더욱 추상적인 개념, 해체의 패턴과 분석 등이 관심 대상이 됐다. 그들의 관심은 곧 전 세계로 퍼져 이러한 미술에 입문하는 작가들의 낭만적 급진주의를 어떤 학문적인 경향으로 변모시켰다. 새로운 형식적 혁명을 위해 타자기로 작성한 종잇장과 헐거운 사진이 사용됐다. 온 카와라는 일본에서 제작한 작품 중 대부분을 1959년 멕시코로 떠나기 전에 도쿄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그는 일본을 떠나 5개 대륙을 떠도는 오랜 여행을 시작했다. 전설도 그때 시작됐다. 멕시코에 머문 시절 동안 그가 작품을 만들었다는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그는 한때 모든 것을 폐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멕시코에서 자신이 찬미했던 멕시코의 벽화가 몇 명을 만났다. 1956년 일본에서 멕시코 벽화가의 그룹전이 개최됐고, 카와라는 《미술비평(美術批評)》에 그 전시 리뷰를 썼다. 이 시기에 멕시코에서 그의 작품을 본 일부 여행객의 말로는, 일본에서 제작한 변형 캔버스(shaped canvas) 작품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그는 벽화도 그렸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이하 생략]

[ARTIST] 마류밍(Ma Liuming)

마류밍의 개인전이 학고재갤러리(9. 2~10. 5)에서 열리고 있다. 2006년 이후 두 번째로 열린 한국 전시에는 40여 점의 회화와 영상, 사진과 입체 등을 한자리에 모은 회고전 성격을 띠고 있다. 그는 1990년대 초 장후완과 주밍 등과 함께 베이징 동촌에 아방가르드 실험미술 공동체를 만들어 ‘신체 해방’이라는 주제로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펼쳤다. 중국 사회의 정치적 탄압과 통제에 저항했던 마류밍의 퍼포먼스는 일약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마류밍의 파격의 벌거벗은 신체는 세계를 누볐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회화로 귀환해 10년 동안 펼쳤던 퍼포먼스를 그림으로 재탄생시켰다. 그는 ‘펀·마류밍’이라는 또 다른 자아를 통해 과거와 현재, 남성과 여성, 아기와 어른 등 부유하는 주체의 문제를 줄기차게 파고든다. / 김 복 기

부유하는 주체, 저항의 예술


〈One day, No.2D(f)〉 혼합재료 200×150cm 2009_학고재갤러리 전시장에서

중국 현대미술이 국제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20여 년에 불과하다.(작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그 2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특별전이 열린 바 있다.) 이 짧은 역사 속에서 중국 미술은 지난 100여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해 온 서구 미술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수용하는 ‘초고속 가도’를 달리고 있다. 마류밍의 예술 편력 또한 컨템포러리 아트 씬에서 차지하는 중국 미술의 특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 예술 편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마류밍이 중국 현대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인 위상이다. 그는 중국 현대미술사에서 퍼포먼스 아트의 선구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퍼포먼스는 사진, 영상으로도 자연스럽게 치환된다. 특히 마류밍의 나체 퍼포먼스는 아방가르드 미술을 불온시했던 1990년대 중국의 미분화된 사회 시스템에서는 엄숙한 ‘저항의 예술’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만큼 마류밍의 예술 여정은 도전의 벽이 높았다고 할 수 있다. 마류밍에게 일약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 주었던 퍼포먼스 〈펀·마류밍(Fen·Maliuming, 芬·馬六明)〉도 실은 그 발표 무대가 대부분 중국 밖이었다. 마류밍은 욱일승천의 기세로 해외 전시회를 연이어 펼쳐 나갔다. 베니스, 광주, 이스탄불, 광저우, 프라하에서 열린 비엔날레에 잇달아 초대를 받는가 하면, 세타가야미술관, P.S.1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등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런던, 뉴욕, 뒤셀도르프, 뮌스터, 리옹 등이 그의 주요 발표 무대였다.(중국 현대미술은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해외로 망명했던 주요 작가들의 눈부신 활동과 그 국제적 성과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베이징 동촌에서 활동한 작가들과 함께 선보인 <이름 없는 산 1m 높이기> 1995


<펀·마류밍 만리장성을 걷다> 퍼포먼스 1998 

둘째는 2000년대에 들어서 회화 작가로의 변신이다. ‘변신’이라고 했지만, 마류밍은 대학에서 유화를 전공했고, 퍼포먼스와 병행해 회화 작품을 꾸준히 지속해 왔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퍼포먼스를 그만두고 회화에 ‘주력’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마류밍의 회화는 내용상 퍼포먼스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벌거벗은 자신의 신체를 갓난아기로 그려 내는가 하면, 〈펀·마류밍〉 퍼포먼스에 참여했던 관객들과 함께 했던 순간을 그림으로 재현하는 일련의 시리즈를 발표하고 있다. 물론 새로운 회화 형식을 찾으려는 설치로의 확산 등 조형적 몸부림도 꾸준히 지속하고 있다. 회화로의 변신에는 어찌되었건 이유가 있을 터이다. 우선 소박하게는 퍼포먼스의 양식화(일종의 동어반복적 자기 복제) 앞에서 새로움을 향한 작가의 반동적 예술 의지가 작동했을 것이다. 또 ‘저항의 예술’이 더 이상 효력을 상실하고 만 시대 변화에도 요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작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2000년대 이후 중국 미술에 밀려온 급격한 상업주의의 태풍 같은 변수도 떠오른다. 이러한 예술 내외적인 환경의 변화 속에서 ‘아방가르드 제1세대’의 훈장을 달고 있는 마류밍의 예술은 ‘진행 중’이다. [이하 생략]



<뒤셀도르프의 펀·마류밍> 퍼포먼스 2000_수면제를 먹은 작가는 전시 공간에서 관객이 자신과 함께 사진을 찍도록 유도했다. 관객은 나체로 잠이 든 작가와 자유롭게 포즈를 취했다.

[SPECIAL FEATURE] 광주비엔날레 20년

光州20年
1995-2014 GWANGJU BIENNALE


❶ Pictorial 역대 광주비엔날레 전시 하이라이트
2010 만인보



“<만인보>는 우리가 후세에 남기는 이미지들에 관한 전시이며, 우리가 이미지들을 통해서만 알고 있는 이름 없는 많은 사람의 삶에 관한 전시다. 하지만 이 전시는 또한 이미지들의 삶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그 이미지들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유통되고,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소멸되는가.’” / 마시밀리아노 지오니

2010광주비엔날레(9. 3~11. 7, 총 66일간)는 본전시에 29개국 133명(팀)의 작가가 참여했다. 예술총감독은 당시 뉴뮤지엄의 특별프로젝트 디렉터였던 마시밀리아노 지오니가 맡았다. 최초의 유럽인이자 최연소 감독이었다. 고은 시인의 <만인보(10,000 Lives)>에서 주제를 차용, 이미지의 속성을 탐구했다. 1901년부터 2010년까지 제작된 미술품과 인물과 상징물, 얼굴과 가면, 우상과 인형 등 비미술품 등을 한데 모아 ‘경이로운 방’처럼 구성, 역대 비엔날레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전시로 평가받았다. 각 전시실은 하나의 주제로 구성됐다. 1전시실은 이미지를 통한 자아의 성찰을 다루는 작품, 2전시실은 시각적 환상과 초과학적인 시각의 메커니즘을 탐구, 3전시실에서는 영웅과 순교자를 묘사한 작품, 4전시실은 마이크 켈리가 1993년 손스빅 국제 조각전에서 기획한 <언캐니(Uncanny)>전에 대한 오마주로 구성됐고. 5전시실에서는 극장과 텔레비전의 구조에 대한 작품을 모아 놓았다. 비엔날레 전시관을 비롯해 광주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민속박물관에서도 전시가 이어졌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는 신디 셔먼, 앤디 워홀, 데칭셰의 작품처럼 자화상과 스스로를 묘사한 작품을, 광주시립민속박물관에서는 이미지와 기억의 상호 작용을 다루는 헨리크 올레센과 안드로 베쿠아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하 생략]


❷ Interview 이용우 ‘비엔날레 타짜’의 광주 이야기
‘비엔날레 타짜’의 광주 이야기

지난 8월, 광주에서 이용우 대표이사를 2번 만났다. 먼저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달콤한 이슬>의 개막식에서 봤고, 이후 홍성담의 작품 <세월오월> 전시 유보 논란이 이어지자 그가 대표이사직 사퇴를 발표한 직후 8월 21일에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용우는 일찍이 1993년 휘트니비엔날레 서울 전시를 유치하고,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건립에도 기여했던 인물이다. 또한 광주비엔날레 첫 회에 전시기획실장을 시작으로, 예술총감독, 상임부이사장을 거쳐 2년 전 대표이사에 올랐다. 또 그는 지난해에 세계비엔날레협회 초대회장에 선임되었다. 이제 이용우는 광주를 떠날지라도 광주비엔날레를 창설부터 세계 5대 비엔날레로 성장시킨 주역이라는 역사적 타이틀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비엔날레 타짜’로 살아 온 그가 지난 20년의 광주를 긴 이야기로 풀어 냈다. / 호경윤 편집장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 이용우

<세월오월> 전시 논란, 그 이후

Art 홍성담의 작품 <세월오월>이 박대통령 비하 내용과 관련해 광주비엔날레 20주년 전시에 걸리지 않았다. 또 다른 참여 작가들도 잇달아 작품을 철수하는 등 그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는 상황에서 결국 대표직 사퇴를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당연히 사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 사태의 내용과 과정은 토론의 여지가 많지만, 간단히 말하면 내가 대표로 있는 기관에서 열린 전시에 초대된 작가의 작품을 걸지 못한 것이다. 홍성담 작가는 비엔날레와의 계약 내용도 존중하지 않았으며 약속도 어겼고, 윤범모 책임 큐레이터와 주제를 놓고 벌인 토론의 결과도 존중하지 않았다. 계약 내용대로 한다면, 그의 그림은 전시에 걸릴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도 홍성담이 그린 그림은 이 나라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 아닌가. 개발 독재 시대와 군부 독재를 통과하면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기 검열의 버릇을 지니고 산다. 나는 규정이나 법적 해석을 넘어 홍성담의 그림이 던져 주는 메시지를 위해 비엔날레는 이 그림을 걸었어야 한다고 믿었고 그렇게 발표했다. 그림을 거는 것이 실정법을 위반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홍성담은 큐레이터의 수정 요구를 받아들여 홍성담답지 않게 작품을 부분 수정했다. 나는 기관의 대표로 내부의 보수적 분위기를 고려해야 하지만, 또 그림을 걸어야 한다고 발표하는 것이 정부 기관이나 광주시에 배신행위로 비쳐질지언정 비평가로서 나의 입장은 비엔날레의 내부 정서를 역사적 명분과 혼동하지 않아야 할 부분이 있었다.

Art ‘국제’ 비엔날레를 지향하는 대규모 현대미술 전시를 창설하고 이끌어가는 데 있어, 광주의 특수한 역사적 배경이 늘 ‘논쟁 지대’였다. 이번 사건과 이른바 광주 정신과는 어떤 관련이 있다고 보는가?
20년 전, 내가 광주비엔날레 선언문을 작성할 때, 그 속에 ‘광주 시민정신’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래서 이번 20주년 특별전도 광주 정신의 역사적 회귀가 아니라 상생과 화해와 치유가 더 중요하고, 광주 정신의 역사적 가치보다 미래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나는 이번 특별전의 홍성담 작품에서도 세월호라는 소재를 통해 미래적 가치를 보았다.

Art 현재 광주비엔날레재단의 이사장은 광주시장이 당연직으로 되어 있다. 공교롭게도 최근 시장이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이번 사건을 단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슈가 아니라 비엔날레와 지자체 사이의 완력 다툼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비엔날레 개최 도시와 비엔날레재단 또는 비엔날레는 결국 동반자 관계이다. 개최 도시는 브랜딩 전략을, 비엔날레 측은 문화적 자존심을 드높이며 국제도시로 향하는 동반자로서의 자격을 얻는 것이다. 문제는 과연  ‘동반 성장’을 목표를 달성하는가의 문제다. 경제적 자립도가 비교적 안정권에 드는 몇 곳을 제외하고는 ‘동반 성장’이라는 꿈을 실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베니스비엔날레 이사진을 보면, 파울로 바라타 재단 이사장은 이탈리아 중앙정부 환경부장관 출신이자 이탈리아 상업은행장 출신이다. 그리고 베니스시장이 부이사장이고, 베네토 주지사 및 연방 상원의원 등 5명이 이사로 구성되어 있어 사실상 정치인 일색이다. 대신 감사 기능이 강하다. 카셀도쿠멘타는 카셀시장이 재단 이사장이며, 미술 전문가인 아네트 쿨렌캄프라는 전문인 대표이사가 있다. 그리고 지역의 예술인, 경영인 등 20여 명의 이사진들로 구성되어 광주와 유사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Art 최근 상페테르부르크(마니페스타), 이스탄불, 샤르자, 심지어 부산에서도  참여 작가들이나 개최지 문화예술인들이 비엔날레를 보이콧하는 사례가 있었다. 각기 다른 사회적 긴급성(social urgency)과 맞닥뜨리는 경우 비엔날레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수용하고 대응해야 하는가?
검열 이슈의 경우, 실제로 심각한 검열에 부딪쳐 비엔날레에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고, 예술가들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대응하거나 과장해서 해프닝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독재 국가나 개발도상국의 경우 검열의 문제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중국처럼 검열이 법으로 정해진 나라도 다수다. 검열이 상습적으로 일어났던 과거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는 자체 검열의 버릇을 버리는 치유가 중요하다. 홍성담도 자기 나름의 ‘사회적 긴급성’을 가지고 나왔다. 우리는 군사독재 시대, 개발중심 시대를 거치면서 스스로 자체 검열을 배워 왔다. 그리고 이 이슈가 자체 검열을 넘어 폭발적인 수준으로 넘어가 버렸다. 나는 항의 사직했다. 백인과 흑인 사이에 인종 문제가 불거지면 흑인이 100% 승리한다. 미술계에서 검열 문제가 불거지면 그 주체 기관이 100% 패배한다.

20년 동안 900억 원 예산 소요

Art 광주비엔날레 20년을 회고해 보자. 1990년대 초반은 한국미술의 ‘변혁기’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민중미술이 제도권으로 진입하면서 모더니즘 미술과의 헤게모니가 와해되기 시작했고, 미술시장도 88올림픽 이후 경제 활기를 업고 전에 없는 호황기를 누렸다. 특히 광주비엔날레가 창설된 1995년은 ‘미술의 해’로 제정되어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졌다. 이런 환경과 광주비엔날레 출범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정부가 문화예술의 장르별 후원을 위해 문학의 해, 연극의 해 등을 제정했는데, 그 당시의 후원 분위기가 비엔날레 설립에 역할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광주비엔날레 창설의 배경을 설명할 때마다 등장하는 ‘미술의 해’ ‘광복 50주년’ 등의 역사적 지표는 타당성을 설명하는 부분적인 이유는 되겠지만, 그 내면은 좀 더 넓고 깊게 파악해야 한다. 가령 1994년 김영삼 정부가 발표한 지방자치제 도입 결정, 1980년에 일어난 광주민중항쟁의 뿌리가 있다.

Art 광주비엔날레 출범 때 전시기획실장을 맡았다. 함께 일하게 된 계기는?
— 당시 강운태 광주시장이 제일 먼저 속칭 ‘비엔날레 타짜’라는 나를 선택했다. 그래서 강운태 시장도 늘 자신을 ‘공동 창설자’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광주시에서 발의했기 때문에 강운태 시장이 창설자이고, 나는 예술적으로 실천했기에 창설자다. [이하 생략]


❸ Chronology 광주 오디세이 
숫자로 보는 광주비엔날레


[FOCUS] 올해의 작가상2014展

경계 위의 게임

/ 이 선 영

올해의 작가상2014展 8. 5~11. 9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구동희 <재생길> 전경_미술관 옆 놀이동산이라는 장소성과 최근 한국에서 발생한 사건을 조합해 장방형 대칭 구조인 전시장에 뫼비우스의 띠 형태인 건축적 구조물을 설치했다. 관객은 작품 관람을 위해 ‘안전 수칙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안전모를 착용해야 한다.

<올해의 작가상2014>전에 초대된 작가 구동희 김신일 노순택 장지아는 1970년대 초중반 태생으로, 이번 전시는 그들이 그동안 해 왔던 작업 이력의 중간 평가쯤 되는 맥락을 가진다. 이 공적인 기회를 통해서 그들은 이제까지 해 왔던 작품보다 앞으로 해야 할 작업이 더 많은 작가라는 기대를 짊어지게 됐다. 이전 작업을 바탕으로 하긴 하지만, 새로 시도되는 작품이 많은 것은 그들이 기왕의 익숙함에 안주하기보다는 매번 낯선 길을 택해 왔던 ‘진짜 작가’임을 알려 준다. 동시에 이러한 성과는 작가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구체적 결실을 맺은 것이라 믿는다. 작품은 하나가 투입되면 단지 하나만 나오는 것이 아니며, 작가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파생효과를 낳을 수 있다. 전시로 의미 있는 결과를 맺을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지원이 병행되는 이런 범례가 더욱 활성화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예술에 대한 열정 그 하나 때문에, 작가 또는 인간으로서의 삶이 갈수록 곤혹스러워지는 사태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 장치를 미술계는 확보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활용한 미디어는 겹치는 부분이 많았지만, 작품이라는 결과물은 뚜렷하게 4인 4색이다.

칸막이 처진 인접한 공간을 채우는 여러 개의 세계는 그 자체로 매혹적이며, 예술은 현실에서 찾기 힘든 이질적인 체험을 가능케 해 준다. 그럼에도 굳이 어떤 공통점을 찾는다면, 상징적 점과 점 사이를 잇는 최단 거리로서의 선을 거부하는 태도와 몸짓이다. 각 작품에는 말소 하에 놓여진 선(線)이 발견된다. 선은 확실한 경계와 개념을 규정하고, 각 개인들을 끼워 맞추는 환원적 가치로 군림하며, 불확실한 삶을 확실한 기준으로 틀 지우는 억압적 권력이다. 이러한 단선적 사고방식이 생산적이라면 그 생산성은 보편적이지 않다. 효율성, 합리성, 생산성 등으로 불리는, 현실을 지배하는 단선적 사고방식은 궁극적으로 소수에게만 그 혜택이 돌아가는 지극히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비생산적인 것이다. 작가는 본능적으로 이러한 단선적 사고방식에 거부감을 보인다. 예술 자체가 모두를 하나의 방향으로 몰고 가는 단선적 사고와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일시적 합의에 불과하지만, 공리적으로 작동하는 법칙화된 규칙을 상대화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구조적 장치

그들의 작품에서 선은 신비롭게 또는 과격하게 사라진다. 건축적인 규모로 막다른, 또는 불가능한 길을 연출하는 구동희의 작품은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기 위해 노란 벽돌 길을 따라 여행하는 동화 속 주인공처럼 예측 불가능한 미지의 사건들에 대한 관객의 기대치를 높인다. 김신일은 가장 확실한 의사소통 매체인 문자를 확장, 해체한다. 여기에서 문자는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지시하는 본래의 역할을 잃고 환경 전체와 함께 작동하는 물질 또는 에너지로 변모한다. 노순택의 다양한 사진은 그 기원에 분단선이 존재한다. 분단이라는 현실에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이 놓여 있으며, 그것은 지배자와 저항자들 사이의 전선을 긋는다. 그의 사진은 분단선이 만들어 내는 전선 안팎에서 벌어진 사건의 산 증거다. 장지아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그어진 금기, 그 경계를 넘나드는 불온한 상상력이 있다. 몸은 개인과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질서 감각을 부여하는 가장 구체적인 경계다. 초창기 작업부터 자주 등장하는 체액은 경계를 넘나들며, 신작은 이제 성과 속의 경계마저도 도전한다.



김신일 <이미 알고 있는(Ready-known)> 전경_전시장에 설치된 센서를 통해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전시장의 빛이 조절된다. 문자가 겹쳐져 높이 2.4m의 추상적인 구조물이 된 문자 조각, 심장박동 소리에 따라 흔들리는 거울 앞에 설치된 ‘마음, 믿음, 이념’, 영상 <42000초 안에서의 대화> 등을 선보였다.

네 작가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구조적 장치다. 미술이 작가의 의도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형식을 통해서다. 형식이 물화돼 형식주의로 귀결된다 해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만큼 미술에서 형식의 위상은 크다. 백 마디 말이 필요 없이 보여 주는 것, 단지 보여 주는 것을 넘어서 주체와 객체에게 상호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점에서 이 전시의 작가들은 이른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당면한 문제 해결 방식이 집요하고, 이로써 최초의 메시지는 증폭되며 관객에게 강하게 전달된다. ‘전달’은 작가가 발신했다고 가정되는 메시지를 관객이 온전히 읽어 내라는 불가능한 주문이 아니다. 예술은 결론이 아닌, 최초의 강력한 자극으로 충분하다. 이러한 유혹의 장치는 자발적으로 이어질 추후의 해석들을 이끌어 낸다. 관념에서 관념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작업과정에서 관념이 나온다. 그렇게 만들어진 구조적 장치들은 작가 내부에 있다고 가정되는 의미를 단지 밖으로 끌어내는 수단 즉 표현이나 재현을 넘어서, 미지의 것으로 재구성 또는 생성된다.

구동희의 작품 <재생길>은 건축적 스케일의 작업으로, 작품 안팎으로 복잡한 잠재적 동선을 깔아 놓는다. 납작한 육면체로 이뤄진 전시 공간을 최대한 이동할 수 있게 고안된 장치는 36개의 모듈이 270도 회전하는 뫼비우스의 띠 형태의 구조이다. 전시장 가득한 작품 규모는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이상적인 조망 지점과 시점을 감춘다. 길을 따라가며 체험하는 시시각각의 풍경이 지각과 기억을 동시에 촉발한다. 예측하기 힘든 굴곡 면을 이동하는 관객은 불현듯 현재에 침투하는 과거, 과거를 불러오는 현재라는 불투명한 시공간에 놓인다. 김신일의 작품에서 심장박동 소리에 맞춰 움직이는 거울, 이쪽과 저쪽을 넘나들 수 있는 틀, 글자의 안과 밖을 동시에 주목하게 하는 형태는 한 공간에서 낮과 밤을, 이성과 감성을, 시각과 청각을, 견고함과 유연함을, 도시와 자연을, 시와 산문을 교차, 중첩시킨다. 문자에 대한 공간적 상상력은 문자로 대변될 수 있는 관념적 체계를 해체한다. 기념비적 스케일로 확대된 문자 내부에는 미로 같은 또 다른 길들이 뻗어 있으며, 마치 연골 조직이나 나뭇가지처럼 자라나는 듯하다.



노순택 <무능한 풍경의 젊은 뱀> 전경_‘무능한 풍경’이란 잔인하지만 현실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풍경을, ‘젊은 뱀’은 다른 매체에 비해 짧은 역사를 지닌 사진의 속성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의 문제적 장면을 포착한 사진과 사진 매체의 속성을 포착한 사진을 출품했다.

노순택은 우리 사회의 갈등 현장을 누벼 왔지만, 카메라가 세상을 보는 투명한 창이라 한정짓지 않는다. 작가는 합법을 앞세운 국가의 폭력과 그에 대항하는 또 다른 힘인 정의가 맞부딪히는 역사적 현장에 있었지만, 이러한 폭로만으로 충분치 않음을 안다. 어떠한 강력한 증거를 들이대도, 무심히 소비하는 현대적 소통 구조가 더 문제다. 그는 사진 아래에 깨알만 한 글자로 현장에서 포획한 장면을 보충한다. 현실의 단면이지만 진실까지는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사진을 시각적으로만 소비하지 말고 천천히 읽어 보라고 권한다. 개막 퍼포먼스와 함께 선보인 장지아의 작품은 노동 기구이자 고문 도구였던 바퀴에 올라탄 12명의 여성을 보여 준다. 여성들이 부르는 노동요과 성가가 조합된 기묘한 음률은 성적 희열이라는 의외의 방향을 향한다. 육체를 교란하는 가학/피학적인 도구를 종종 등장시켜 온 작가는 다양한 매체로 사랑과 고통의 관계를 탐색해 왔는데, 그 역설적 관계는 이번 작품에서 모순되는 범주가 바퀴처럼 돌고 도는 신비적 차원으로 고양된다.
 

예술, 시대의 몸과 감각을 향한 가격

각 구조들은 구조를 위한 구조가 아니라, 작동하는 구조, 즉 몸과 밀접하다. 그들의 작품에는 단순히 앞에 놓인 대상을 넘어서, 작품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으며, 나올 때는 이전과 달라짐을 체감한다. 구동희의 <재생길>은 놀이기구, 클라인병, 삼반고리관 등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작품의 형식과 내용을 총괄적으로 파악 가능한 이상적 위치가 없다.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계속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구불거리는 통로는 몸이 그러하듯 시간이라는 불안정한 축에 의존한다. 김신일의 전시 공간의 리듬을 주도하는 것은 심장박동 소리다. 소리는 구조에 그냥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거울이나 틀을 변형시킨다. 구조에서 구조가 재현, 복제되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변형시키는 미지의 힘이 제시된다. 몸은 이성적 관념이 추후에 행하는 바를 전시 부제처럼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마음처럼 유동하는 구조는 생명력으로 추동된다. 움직이는 빛이 가세하면서 문자라는 견고한 구조체도 흔들린다. 투명하거나 반짝이는 재질로 된 채워진 문자 내부는 환경 전체로 복잡하게 짜인 텍스트성을 확장한다.



장지아 <금기는 숨겨진 욕망을 자극한다> 전경_흰 천이 드리워진 성소처럼 전시장에 설치된 <아름다운 도구들 3>은 중국에서 들여온 1950~60년대 수레용 바퀴 12개를 활용한 작품이다. 깃털 달린 바퀴를 돌리는 노동은 여성의 음부를 스치는 쾌락과 중첩된다.

노순택의 사진에는 몸의 자유와 자율이 억압되고 침해됐다는 근본적인 사태 고발이 있다. 매향리 미공군 폭격장, 평택 대추리, 용산, 쌍용자동차 공장, 제주 강정마을, 밀양의 송전탑 등 지난 10여 년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사건의 장소는 몸과 몸이 맞부딪히는 갈등의 장이었고, 작가의 몸 또한 그 현장에 있었음을 말한다. 동시에 그가 보여 주는 ‘잔인한 풍경’ 이면의 ‘무능한 풍경’은 몸 대신 눈과 손만 까딱거리는 스펙터클의 문화이다. 누군가로부터 끝없이 폭행 당하는 초기 작업부터 숭고한 외관을 갖춘 대형 자위기계들이 에워싼 장지아의 작품 한가운데는 몸이 있다. 몸이라는 미묘한 경계는 그것이 침해되는 오염이나 위반의 경험을 야기한다. 오염과 위반은 삶의 극단인 죽음마저도 포괄한다. 경계를 나누는 금기의 위반은 그 시작과 귀결이 몸이기에 더욱 섬세하고 내밀하다. 그래서 반향도 크다. 그 반향이 상식적 인간의 무지와 오해이든 일탈에 대한 무조건적 추종이든, 오늘날 예술 작품이 물질도 정신도 아닌 것들(정보)로 둔감해진 몸과 감각을 가격하는 강력한 충격이어야 함은 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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